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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텐션
조셉 칸 감독, 데인 쿡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원제 - Detention, 2011
감독 - 조셉 칸
출연 - 조쉬 허처슨, 데인 쿡, 스펜서 로크, 제스 헤이만
뭐라고 딱 정의하기 힘든 영화이다. 분명 십대가 나오는 슬래셔물인데, 그러면서 엽기적으로 웃기고 온갖 패러디가 들어있다. 그 뿐인가? 시간 여행까지 하고, 지구를 멸망에서 구하기까지!
영화는 시작부터 학교 퀸카의 하루 일과 소개와 영화 캐릭터인 신데헬라에 의한 살인을 경쾌하고 밝게 보여준다. 살인 장면이 이렇게 유쾌하고 리듬감 있게 나오는 건 오랜만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역대 찌질이 2위의 빛나는 여학생 라일리의 등굣길. 뒤이어 학교의 온갖 장소에 출연배우와 제작진의 이름이 나타나는 오프닝도 재미있다.
똥배가 나온 여학생에게 교장이 ‘고딩 주제에 임신이라니!’라고 설교하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남 얘기 같지가 않아…….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야. 거기에 학교 복도에서 목을 매달았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는 라일리는 정말 불쌍했다. 살인마가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역시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천재와 병신, 허세남과 외톨이, 된장녀와 여왕벌, 또라이와 살인마 그리고 반만 인간인 괴력의 소년이 공존하는 그레즐리 레이크 고등학교.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은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대사만 내뱉고, 아이들의 대사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관심 밖의 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은 그냥 고등학생들의 연애, 학교생활, 친구간의 갈등에 간간히 살인마도 등장하고 괴력을 가진 불운한 소년의 안타깝지만 웃음이 나는 최후가 살짝 긴장감을 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진행 속도가 빠르고, 재치 있는 대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중반쯤에는 사고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 근신처분을 받아 도서관에 집합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갑자기 학교에 박제되어 있는 곰이 외계인과 만난 과거가 나오더니, 그들의 도움으로 엄마와 몸과 영혼이 바뀐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다 이십년 동안 도서관에서 근신 처분을 받은 남자와 교장의 불행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러다 갑자기 살인마가 나타나서 살인을 벌이고,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없다.
후반에서는 엉뚱하게도 아이들은 지구 종말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십년 동안 도서관에 갇혀있던 사람이 수식을 풀었는데, 10분 후에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아이들은 박제 곰을 가장한 시간여행기를 타고 1992년으로 간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애들은 90년대를 너무도 좋아한다. 진정한 복고는 90년대라면서, 엄마와 영혼이 바뀐 애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좋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2011년에 있던 애들도 그 당시 영화나 배우 이름을 얘기하면서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노래도 90년대 것이 흐르고, 치어리더들도 그 당시 춤을 춘다. 심지어 졸업 무도회와 살인마와 싸우는 장면에서까지!
처음에는 황당하고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다른 관점으로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끔 소설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보면, 예전 영화나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배역이 있다. 엘러리 퀸만 봐도 라틴어 구절이나 외국 명언 내지는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전 자료의 구절을 다 알다니 똑똑하구만!
이 영화의 아이들 역시 그런 게 아닐까? 그들에게 1990년대는 겪어보지 못한 과거일 뿐이다. 다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맛만 봤던 그런 시기. 인간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과거는 미화하고 현재 자신이 겪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90년대를 동경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과거를 바꾸는 길은 현재를 바꾸는 것이라 말하며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 모두 각자 행복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이런!
끝까지 황당하고 엽기 발랄함을 잃지 않는 영화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정신이 없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