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 The Golem, 2018
감독 - 요아브 파즈, 도론 파즈
출연 - 하니 퍼스텐버그, 이샤이 골란, 알렉스 트리텐코, 브리니 퍼스텐버그
아들의 사망 이후, 7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 시댁의 눈총을 받는 ‘한나’. 그녀가 사는 유대인 마을은 폐쇄되고 고립된 곳으로 랍비인 시아버지의 지도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엔 전염병이 돌지만 한나의 마을만 멀쩡하자, 이웃 마을에서는 랍비가 주술로 저주를 내렸다 생각한다. 그들은 전염병에 걸린 이웃 마을 부족장의 딸을 살려내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 경고한다.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한나는 경전에 나오는 골렘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랍비는 여자가 어찌 경전을 아느냐 질책하고, 그녀의 제안을 무시한다. 여동생이 충격으로 아이를 유산하자, 한나는 혼자 힘으로 골렘을 만들기로 하는데…….
영화는 무척이나 답답했다. 17세기라는 시대가 원래 그러했는지, 아니면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상황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대놓고 이혼하고 새 며느리를 얻어야 한다는 마을의 지도자인 시아버지가 제일 답답했다. 그래놓고 이웃 마을에서 쳐들어왔을 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한다. 그때 이웃 마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한 것은, 마을의 치료사인 여자였다. 그리고 한나가 경전의 글자를 이용해 골렘을 만들자고 했더니, 자기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기도나 하자고 그녀를 쫓아낸다. 아이도 못 낳는 주제에 골렘을 만들 수 있냐고 비웃으면서 말이다. 여기서 또 웃긴 건, 기도를 드리는 건 남자들뿐이다. 경전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해석할 수 있는 것도, 또 그걸 가르칠 수 있는 건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경전을 읽고 글자를 아는 건, 크나큰 죄였다. 그냥 살림이나 하고 아들이나 낳아야 한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래놓고 한나가 골렘으로 이웃 마을을 물리치니까, 그녀에게 마을의 규율을 어겼다고 난리 친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다가 다 죽어야 하나? 아니, 한나가 만든 골렘이 신이 보낸 선물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나? 여자가 남자들이 알아서 할 일에 나선 게 괘씸한 거였나? 그런데 마을 남자들이 한 건, 모여앉아서 기도드린 거밖에 없잖아? 그들이 한 일은 계속해서 마을을 위험에 빠트릴 뿐이었다. 애초에 며느리인 한나에게 제대로 경전과 글자를 가르쳤으면, 무능한 아들보다 더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마을을 보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한나였기에, 골렘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후반부에 드러날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장르가 공포인데,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 몇몇 장면은 잔인했는데, 심지어 그 부분조차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공포란 차곡차곡 쌓아가며 감정을 고조시켜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냥 몇 장면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 끝이다. 공포의 감정을 쌓을 틈이 없었다. 게다가 한나가 자신이 만들어낸 어린아이 모습의 골렘에게서 모성애를 느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한 공포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와 엄마를 보호하려는 아들의 모습이 더 드러나고 말았다.
인간의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골렘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여인 한나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