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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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르덴 형제의 인물들은 늘 그랬다. <로제타>의 로제타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을 고발했다. <약속>의 이고르는 아프리카 불법이민자를 죽인 일에 동참하였던 것도 모자라, 이제 그의 아내를 팔아넘기는 일에도 연루될 참이다. <아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범을 만나 그를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충동에 휩싸인다. <로나의 침묵>의 로나는 자신과 위장결혼한 마약중독자를 죽이는 음모에 동참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에서는 소년 시릴(토마 도레)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의 꾐에 빠져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돈을 빼앗는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거의 과오를 저지른다. 과오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들이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큰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였고, 때로는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고 길을 거슬러 올라 다시 돌아오려고 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 운놓게 아주 좁은 돌아오는 길을 발견하기도 하였고, 애타게 돌아올 것을 소망했으나, 너무 많이 나가 도저히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갈림길 사이에서 주인공들을 내버려둔 채, 아니 그것을 보는 우리들을 내버려둔 채 영화들은 극장 밖으로 우리를 밀어냈다.

 

이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르덴 형제의 새로운 변화를 말하는 목소리는 많았다. 형식상으로 보았을 때 롱숏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밝은 이미지의 컷들도 꽤 빈번하게 등장하고, 음악이 본격적으로 삽입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확실한 변화는, 위에서 말한 전작들과 비교한 결말의 변화, 즉 다르덴 형제가 우리를 선택의 갈림길에 내버려둔 채로 영화를 끝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를 놀래킨 것은 단지 그 결말의 변화가 아니다. 놀라게 한 것은 전작들보다 결말은 명확해졌지만, 다르덴 형제의 문제의식은 이 안정적인 결말 속에서도 그대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가는 도둑을 끝까지 물고늘어지며 놓지 않았던, 그래서 '핏불'로 불렸던 소년이 병원에 같이 가자는 남자에게 괜찮다며 태연히 떠나는 이 마지막은 이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는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의 새로운 변화를 내비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의 익숙한 인장들도 드러내보이고 있다. 영화의 첫장면은 왠지 익숙하다. 소년이 달리고, 카메라가 흔들거리며 그의 뒤를 쫓아간다. 흔들리는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주인공의 어떤 불안한 심리를 그것을 보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이시키지만, 이 효과는 그들의 정면샷을 결코 잘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배가된다. 정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을 몰래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몰래 관찰하는 자, 즉 우리들은 당연히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장면이 다르덴의 장면이기도 한 것은 이 장면은 아무런 설명이 없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년이 왜 뛰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려고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소년이 자전거를 찾으려, 그리고 보육원에서 아버지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어떠한 이야기들이 생략된 채 관객을 영화의 한가운데에 던져두면서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곧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가 등장한다.

 

이 사만다야 말로, 다르덴 형제의 생략의 드러나는 인물이다. 아무런 전사(前事) 없이 불쑥 등장하는 사만다는 시릴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다. 시릴과의 관계 외에 어떤 그럴듯한 이야기가 붙지 않는 사만다는 그럼으로써 영화상으로 볼 때 미스테리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에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없으면서도 비중있게 나오는 인물은 두 가지 중의 하나다. 아주 악인이거나, 아니면 성인(聖人)이다. 오직 보통의 인간만이, 그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이야기가 붙는다. 그러므로 이 <자전거 탄 소년>에서의 새로운 결말에서의 변화는 이 사만다의 등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어떠한 조력자도 없이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릴에게는 사만다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 (물론 나는 이 부분에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사만다와 같은 인물들은 어쩌면 '보통의 인간'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만다를 일종의 성녀로 규정하는 나의 말은 비참한 사회에 길들여져 버린, 회로가 망가진 비참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가장 상층의 인간이 사만다라면, 가장 하층의 인간들은 시릴의 아버지(제레미 르니에) 또는 시릴을 꾀는 불량청소년이다. (물론 이것은 도식적인 나눔이고, 시릴의 아버지의 경우와 불량청소년은 또한 같지 않다. 이 영화에서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은 시릴이라기 보다는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는 그의 아버지이다. 이 아버지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다르덴 형제가 늘 묻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하층과 상층 중간 어딘가에 우리들, 예를 들어 영화의 마지막에서 쓰러진 소년을 놓고 중간의 애매한 선택을 하는 피해자 아버지 같은 인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각각의 지점, 즉 사만다의 미용실, 시릴 아버지의 식당, 풀숲가의 트레일러에 고정되어 있고, 자전거를 탄 소년은 이 고정점들을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약속>과 마찬가지로 소년이 달리는 순간은 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된다(착한 고정점에서 나쁜 고정점으로의 이동, 혹은 그 반대의 이동). 즉 자전거로 달리는 소년은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고정점에서 하나의 고정점으로 이동하는 변화 과정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시릴의 내면의 가장 극적인 변화가 영화의 후반부 그가 두 번의 버림(불량청소년과 아버지에게)을 연달아 받고, 사만다의 미용실로 자전거를 탄 채 달릴 때 일어나는 것은 상징적이다. 이 컷은 짧게 생략되어 있지만,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기에 가장 심리적으로는 길고 큰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제목이 '자전거 탄 소년'임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생략은 여기에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사만다에게로 돌아온 시릴과 마지막 쓰러졌다 일어나서 태연히 걸어나가는 시릴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마지막 시릴의 모습은 마치 사만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별다른 저항없이 돌아서는 시릴의 대응 방식은 그 전의 사만다의 대응방식들과 비슷하다. 즉 이 마지막에서 시릴은 거의 사만다化되어 있다. 두 번의 버림 후 사만다에게로 돌아왔던 시릴과 미 마지막 시릴과의 차이는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돌아옴 후 그 마지막 장면들이 있기까지 다르덴 형제가 생략시킨 시간들, 즉 사만다와 함께 했던 좋았던 시간들로 가능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에도 엄청나게 변하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의 미학 중 어쩌면 핵심적인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략의 지점에서 존재하는 리얼리즘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위 다르덴 형제의 고유한 형식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이 있다. 흔들리는 카메라, 정면샷의 배제, 롱숏의 활용 등 흔히 말하는 '날것의 카메라'라 하는 것들. 그러나 이것으로 다르덴 형제의 특유의 리얼리즘이 만들어진다고 오인한 어떤 다르덴류 영화들은 이 형식만을 그대로 따와 인물들 뒤에 카메라를 위치시키고, 인물들이 뛸 때, 그들을 따라서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모든 것을 천천히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리얼리즘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현실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말 그대로 리얼리즘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화면을 보는 인간들은 아무 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화면을 그대로 볼 뿐이다. 리얼리즘은 그의 눈만 스치고 지나갈 뿐, 그들의 머리 속은 눈앞에서 보여준 (가짜로 만들어진) 화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극단의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그것이 현실인가? 물론 아니다. 모든 영화는 현실을 모사한- 설혹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가짜일 뿐이다. 오직 현실과 가깝거나 멀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리얼리즘의 핵심은 어쩌면, 리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자에게 리얼을 생각(상상)하여 채워넣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다르덴 형제의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의 빈공간에 존재하는 상상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생략의 앞과 뒤에 존재하는 윤리의 질문이 담긴 장면들이다. 하나의 윤리에서 다음의 윤리로 진화한 인간을 보여주는 것은 그 생략된 장면들에 가득 담긴 것들을 그 순간 우리의 머리 속으로 슬그머니 밀어넣는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는 아마도 사만다의 무한한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물론 그것의 정답은 없다. 다만, 다르덴 형제의 다음의 말들에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씨네21>837호 다르덴 형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이 마지막 장면은 신적인 것의 개입과는 무관하다. 다만 우린 처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 끔찍한 사실을 시릴이 받아들이기를 바랐고 또한 그만큼이나 그가 사만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으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을 뿐이다") 사랑은 신이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랑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 마지막에서 다시 그들의 처음을 돌이켜 보게 된다. 영화의 시작, 보육원 관계자들을 피해 병원에서 시릴은 우연히 사만다의 품으로 뛰어든다. 사만다와 시릴의 첫만남. 이 넓은 황량한 세상에서 시릴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도 따뜻하고 유일한 품. 이 기막힌 우연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그런 기막힌 우연들에 때로 다른 이름을 붙인다. 우리는 그 다른 이름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랑은 기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기적은 오로지 인간들의 세계에서만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세계에서 기적이란 신의 세계에서는 그저 아이들 장난같은 시시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기적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기적 중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손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랑이다. 리얼리스트 다르덴 형제가 말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최선의 긍정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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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별 다섯개일 줄 알았어요! . 그러므로 안 읽을 거예요! (주말에 보려고요.ㅎㅎ)

맥거핀 2012-01-26 00:13   좋아요 0 | URL
아니 언제 또 바람같이 댓글을 달고 가셨나요..다르덴 형제 영화는 별 5개 줘야지요..안주면 배신! 배반이야..!

꽃도둑 2012-01-2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전당에서 매년 여름 즈음에 영화비평 교실이 열려요.
별 일이 없다면 이번 해에 도전해볼까 해요,
접근법에 따라 달라지는 오묘한 영화의 세계로 빠져볼까 하는데
그러면 맥거핀님처럼 영화평을 쓸 수 있겠죠?,,아주 분석적이고 명석한!
가능하다면 특이하게도 쓰고 싶어요.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해서리,..ㅎㅎ

잘 읽고 갑니다~

맥거핀 2012-01-27 00:44   좋아요 0 | URL
잘 배우시면 저처럼 쓰시면 안되죠~! 저는 야매라. 야매보단 정통의 방법을 배우셔용. 나중에 좋은 영화비평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비평은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 영화의 가치를 전달해줄수 있는 비평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영화비평은 영화와 별개로 그 자체로서도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나 본 사람이나 어떻게든 그 영화를 다시 찾아서 보게끔 만드는 비평,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매우 멉니다.

아이리시스 2012-01-2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제 저는 <로나의 침묵>이랑 <약속> 봐야지!

고마워요, 맥거핀님. 그렇잖아도 뭘 하나 더 볼까 하다가 한 줄짜리 줄거리보니 두 개가 맘에 드네요ㅋㅋㅋ 맨날 훔쳐가는 거 맞죠, 저?

저는요, 결말이 미심쩍어요.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되는 거잖아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뭔가 달라지면 좋겠다고 계속 바랐었나 봐요.

맥거핀 2012-01-27 00:47   좋아요 0 | URL
결말이 미심쩍나요. 저는 그 영화의 그 이후를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년은 다시 돌아가서 사만다와 계속 살테니까 점점 달라지겠죠.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사만다와 같은(아마도 그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이후를 생각하게 하는 뭔가 남겨진 잔향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로나의 침묵>보다는 <약속>으로 시작하시는 것이 다르덴 형제를 느끼기에는 더 좋을 듯..아무래도 <로나의 침묵>은 다르덴 형제의 범작이라는 평판들이 있으니까요.

아이리시스 2012-01-27 02:09   좋아요 0 | URL
결말이 이해가 안된다거나 안좋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엄청 좋더라고요) 소년이 달라지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나 봐요. 잔향이 엄청나고 감독이 계속 고민했다는 것도 알겠고요.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저 예전에 형제들 싫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맥거핀님이 저 포스터 <약속> 맞죠? 계속 고수하신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알았어요, <약속> 먼저 볼게요^^

맥거핀 2012-01-29 00:38   좋아요 0 | URL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마음에 드셨다면, <약속>은 필히 봐야할 영화죠. 영화관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 먹먹하던(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2012-01-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우와 영화 잘 만들었다." 이랬는데, 맥거핀 님은 어떻게 잘 만들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놓으셨군요. 그리고 다르덴 영화의 특징도 잘 설명해 주셨고요.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맥거핀 2012-01-29 00:41   좋아요 0 | URL
뭐 그냥 제 나름의 이해(혹은 오해)를 쓴 것 뿐입니다만, 조금이라도 글이 영화의 감상을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주말에 영화보신다더니 빨리 보셨네요. 다르덴 영화는 사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스타일 같은 부분을 보게 되요. 근데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강점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2012-01-29 13:04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강점이면서 위험한 부분도 있는 것이네요. 근데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모든 사람들의 모든 창조물이 결국 다 한 가지 스타일을 가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평생 한 작품만 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제가 예전에 페이퍼에 쓴 적 있는 건데, 진짜 "Tne man is the style."(문체는(스타일은) 사람이다.)이지요. 그런 게 정말 재밌어요. 그런 걸 관찰하는 것, 그런 사실 자체, 둘 다요.

맥거핀 2012-01-29 12: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글'이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특유의 문체가 있어야죠. 뭐 꼭 소설같은 것만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알라딘 리뷰들에도 보면 각자 나름의 스타일들이 있는 글들이 있구요. 비평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몇 문장을 읽어보면 아..이거 누가 썼구나 하고 알게 되죠. 근데, 그 문체와 스타일이라는 것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까..식상함을 동반하는 법이고, 어떻게 보면 발전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되니까, 그 스타일을 어느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부분들을 담아낼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지겠지요.

그런 면에서, 다르덴 형제의 이번 영화는 인상적이었어요. 그 전의 <로나의 침묵>이나 <더 차일드> 등이 너무 스타일에 매몰된 범작이라는 인상을 준 반면에 이번 영화는 몇 가지 새로운 요소의 도입으로 영화가 꽤 흥미로워졌습니다.

2012-01-29 13:0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누구나 타고난 유전자에서 나온 (듯한) 고유한 스타일은 있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새롭게 바꾸는 것. 그건 할 수 있겠고, 다들 하고 있겠고, 또 하려고 하겠군요. 그리고 다르덴 형제가 이번에 그렇게 했군요.
그래서 '재미'가 중요한가 봐요. '재미있다'는 것은 그런 게 있는 것, 창작자 입장에서도, 감상자 입장에서도. (예전에 저 알던 후배가 '내가 추구하는 美는 '재미'야~' 이랬던 생각이 나고...ㅎ)
좀 더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맥거핀 2012-01-30 17:21   좋아요 0 | URL
섬님 말씀대로 일단 본인부터 계속 하던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좀 새로운 형태의 리뷰를 써봐야 하는데, 매번 그냥 그렇게만 쓰고 있으니 슬슬 재미가 없어져요. 좋은 글들을 봐야 좀 자극이 되는데, 요새 시간이 없어서 영 글들을 못 읽고 있어요.ㅠㅠ

네오 2012-01-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르덴의 영화를 엄청나게 좋죠???? (긍정의 대답을 원합니다^^V) 저도 그의 열혈빠휴먼이지만 매번 칸에서 놓치지 않는 상복에 대해선 조금은 아쉬워요~ 그러니깐 출품만 하면 오토매틱으로 황금종려 혹은 감독은 수상하져 다른 감독들은 불만일꺼 같은데요 헤헤 물론 좋은 작품에게 줘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거의 심사위원들이 그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이 안되서요~ 저에게요~ 이글에서 나타내듯이 인간이 펼칠수 있는 그 무언인가에 대한 대답이겠지요^^

맥거핀 2012-01-30 17:24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그 먼 벨기에에서 온 어떤 나이든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고, 전세계의 사람들(우리를 포함해서)이 삶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게 참 경이롭지 않습니까?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아마도 그 심사위원들도 보셨을 것 같고, 전세계적으로 다르덴 감독의 영화가 칭송받는 것을 보면 결국 인간들의 시각이란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참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것 같고...

좋죠..좋지요.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늘 좋지요.

네오 2012-01-30 17:53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네오 2012-02-01 21:49   좋아요 0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소년이 병원에 같이 가자는 남자에게 괜찮다며 태연히 떠나는 이 마지막은 이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는가." 라는 대목이 정말로 정말로 제가 가지고 의문하고 백퍼씽크로 일치했습니다!! 다르덴의 영화가 뭘랄까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것 같다는 확신이 드네요!!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보고나서 마지막 그 마지막 소년이 살가? 죽을까?를 가지고 영화안에서 흐르는 짧은 시간안에서 한참을 고민했답니다. 설마! 설마! 하면서요~ 다행히 소년은 살아서 제가 원하는 이미지로 중심이동하던데요! 간만에 조금은 이 영화가 흥분하게 만드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정말 맥거핀님 말씀대로 바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작품들중에서 거의 음악이 없었는데 베토벤의 교향곡5번 황제 2악장이 나오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거의 <블루>의 효과처럼 씌여졌다는 막연한 생각만요 ㅋㅋㅋㅋ 다르덴이 참 흥미로워졌어요^^

맥거핀 2012-02-01 23:03   좋아요 0 | URL
다르덴 형제라면 이제 거장으로 불러도 좋겠죠? 그 짧은 마지막에서 보는 사람을 애타게 만들고, 결기있게 나가는 그 뒷모습은 다르덴의 새로운 변화, 아마도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믿고 싶게 만들어요. 그 뒷 이야기를 또 상상하게 만들구요. 음악도 대체로 그렇지만, 기존의 스타일에서 새롭게 변화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기존의 스타일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려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많은 뮤지션들이 그래서 수많은 팬을 잃기도 하구요. 저도 이 영화 보기 전에는 그 변화들을 우려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변화를 긍정하기로 했고, 또 다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미 다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거장의 새로운 발전을 볼 때에 그것만큼 즐거운 것이 있을까요.
 
미스티 블루 (Misty Blue) - 4/4 Sentimental Painkiller 겨울은 봄의 심장
미스티 블루 (Misty Blue) 노래 / 파스텔뮤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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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미스티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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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1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2012-01-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곡. 오늘 수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기억은 겨울보다 차갑다.

아이리시스 2012-01-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티 블루가 어디 간대요? 그렇구나.. 저는 음악은 영 모르는가 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지어 요즘은 아이팟도 충전기 고장으로 방치되어 있어요. 할부로 사서 기계값은 계속 나가고 있는데..( '') 아참, 제 폰은 스마트폰 아니고요.

맥거핀 2012-01-27 00:40   좋아요 0 | URL
공식 해체했어요. 보컬 정은수씨 목소리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던 그룹이었는데, 보컬목소리도 목소리지만 특유의 감수성이 참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4부작 연작의 이 사계절 시리즈는 명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팟 고장인데 어떻게 버티고 있어요? 저는 휴대폰은 없어도 MP3 없이는 못살아요. 휴대폰 외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챙겨다녀요. 소니 엑스페리아가 음악감상에 엄청 특화되어 향후에 나온다기에 기대중..제 귀가 소니에 적응되어 있어서;;

아이리시스 2012-01-27 02:15   좋아요 0 | URL
음.. 별로 들을 시간이 일단 없고요(낮에는..) 인터넷 켜면 그걸로 듣거나 가족들 스맛폰 쓰고 있어요. 안들으면 또 안듣고도 잘 살아지더라고요ㅋㅋㅋ 저 좀 문화 문외한 같아..( '')요.. 아하하.

근데 엑스페리아도 스맛폰 아니에요? 뭔지 몰라서 검색하니까 한 가격 하네요. 저는 공부한다고 폰도 안바꿨더니 그 이후로 어떤 좋은 폰이 나오고 있는지 도통 몰라요. 그렇잖아도 동생이 막 사주겠다는데 뭐 저는 필요도 없고... 이러니까 막 되게 소중한 사람 같아요ㅋㅋㅋ 난 갖기 싫은데 막 사주겠대요ㅋㅋㅋ

맥거핀 2012-01-29 01:41   좋아요 0 | URL
네..엑스페리아도 스맛폰이죠. 요새 폰이랑 MP3랑 따로 들고 다니니까 영 귀찮아서요. 둘다 매번 충전시켜야 하는 것도 그렇고..그래서 폰이면서도 음감기능이 좋다고 하는 엑스페리아는 어떨까 생각해본 것 뿐입니다. 뭐 근데 항상 돈이 문제기는 하죠.ㅋ 아이리시스님 쿨하시네요. 사주겠다고 그러는데 난 그런거 별로 필요없다고 하시는 거 보니.^^

마녀고양이 2012-01-3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들었는데, 너무 좋네요...
미스티 블루, 음, 찾아 들어야겠네요. 제가 이런 곡들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해체라니 아쉽군요.

맥거핀 2012-01-31 22: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괜찮죠. 이런 좋은음악을 들려주는 그룹이 해체라니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늘상 컴백이라는 게 있으니 기대를 해봅니다. 미스티블루 곡들은 대체로 이런 분위니까요, 아마도 전체 앨범이 마음에 드실거에요.
 
쥬라기 공원 -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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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클라이막스 씬은 지금 다시 보아도 영화의 활력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는 명장면이다. 20년이 거의 되어가는 지금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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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1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에 나왔던 스필버그 특집기사를 보고, 스필버그의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다. 사정상 여러번 잘라서 영화를 보았음에도, 거의 매장면 스릴과 위트와 활력이 흐른다. 브라키오사우러스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과 마지막 클라이막스 씬이 압권. 특히 티라노의 뼈 모형을 앞에 두고, 티라노가 벨로시랩터를 물어뜯으며 주인공이 위기를 벗어나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며, 스릴과 리듬을 훌륭히 유지시킨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장면이다.

예전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이나, 영화를 보며, 카오스이론을 이야기하는 말콤박사가 왜 계속 나오는걸까, 이 이론이 이 이야기에서 왜 자꾸 이렇게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의문이었는데, 그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그럼 그런 말콤박사를 섬에 불러들인 존 해먼드야 말로 사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가 주는 (카오스와 관련한) 교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유효하다 못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랜트 박사가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것, 그리고 2편에서 말콤박사와 딸과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의 행동이나 딸의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스필버그가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재미있는 듯 하다. (예전의 'ET'같은 영화와 연관지어 보면 더 그러하고..)

맥거핀 2012-01-1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공룡같은 거대한 생물이 이 지구상에 등장하여 어느순간 멸종하여 버린 것에 상당히 관심이 간다. 관련된 책들을 좀 찾아봐야 겠다.

2012-01-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싯적에 원작소설을 읽으며, 말씀하신 '카오스 교훈'이 정말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각 장 앞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카오스 이론 그림과 함께.
물론 영화 개봉 당시 재미있게 봤었지만, 그냥 잘 만든 오락영화거니 했는데요, 맥거핀 님 말씀을 읽으니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러고 보니, 독서취향은 예전보다 협소해지고 완강해진 듯 합니다. 옛날에는 그냥 친구방에 굴러다니던 마이클 크라이튼 소설도 보고 하던 제가, 요즘은 진짜 제가 마음에 들어 고른 책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맥거핀 2012-01-18 22:46   좋아요 0 | URL
아..저도 책에 있던 거 기억나요. 그 프랙탈 곡선인가 그랬죠. 고딩 때 이 책 볼 때는 쌩뚱맞게 이게 뭐야 이랬던 거 같기도 한데, 지금와서 보니 크라이튼 씨 소설이 단지 액션 오락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네요. 예전에는 저도 그런 소설들 많이 봤었어요. 기억 나시죠? 로빈 쿡이니, 마이클 크라이튼이니, 존 그리샴, 시드니 셀던이니 아마 좀 보셨을 듯. 근데 저도 요즘에는 마찬가지로 독서의 폭이 협소해진듯. 말랑말랑한 마음의 옛날이 좋았어요. 지금은 내가 뭐라고, 아 이 책은 좀...그러고 있죠.;

Shining 2012-01-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룡을 무서워해서; 이 영화 보면서 거의 덜덜 떨었던 기억만 나요;
'영화를 봤다'는 기억만 있고 실체가 거의 사라진 영화 중의 하나거든요.
맥거핀 님의 말씀을 읽으니 다시 찬찬히 영화를 보고 싶네요, 지금도 공룡은 무섭지만;
(겁이 참 없는 편인데 뱀이랑 공룡은 유일하게 무서워요;)

맥거핀 2012-01-18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공룡은 무서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 거대한 티라노를 딱 맞닥뜨리는 것을 상상해 보면요. 특히 영화에 나오는 벨로시랩터같은 애들은 정말 무섭고요. 근데 이 영화는 그런 공룡이 무서워도 볼만한 가치가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단순 액션 스릴러물, 혹은 호러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스필버그 씨는 아주 녹록하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꽤 넣어놓았더라구요. 그리고 옛날 영화들 보면 또 재미가 있는게 배우들의 비교적 풋풋한 예전모습도 볼 수 있으니 흥미롭구요. 이 영화를 예로 들자면 이 때만 해도 별 비중없는 역할이었던 사무엘 잭슨같은 경우.

아이리시스 2012-01-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 공룡은 귀여워요. 미드 <테라노바>요ㅋㅋㅋ 저도 이거 봤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때랑 완전 기억이 다르네요. 그런데 맥거핀님 어째서 갑자기 [쥬라기 공원]을 보신 겁니까, 이 겨울에! 라고 묻기에는 제 취향도 뭐 별로 그다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맥거핀 2012-01-18 22:56   좋아요 0 | URL
공룡영화랑 겨울이 좀 쌩뚱맞기는 하네요.ㅋ 씨네21에서 스필버그 씨 전작들 칭찬을 하도 해서 좀 챙겨보려고 하거든요. 스필버그 씨 영화들을 극장에서 본 게 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작품들이고, 이전 작품들은 그저 TV에서 띄엄띄엄 보았던 기억밖에는 없는데, 좀 제대로 챙겨봤으면 싶어서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몇 번이나 보았고, '태양의 제국'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요.)

아이리시스 2012-01-19 03:17   좋아요 0 | URL
이번에 [워 호스]도 스필버그 연출이던 것 같은데, 저는 동물이 나오는 걸 잘 못보겠어요. 뭐랄까, 아킬레스건 같아요. <태양의 제국>은 본 건줄 알았는데 눈물이랑 착각했네요. 87년도 영화니까 못본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민망;;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중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끌려가서 봤는데 그때는 진짜 전쟁영화가 싫어서 졸기만 했어요. 아.. 뭔가 꼭 다시 보고싶은 것들이에요. 저는 로만 폴란스키도 멈춰있는데ㅋㅋㅋ

맥거핀 2012-01-19 23:18   좋아요 0 | URL
하하..라이언 일병 구하기. 저는 이 영화 소개팅에서 만난 분과 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는 선택이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분과 170분짜리 전쟁영화를 본다라..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보며, 아마 그분은 저에게로의 상륙을 일찌감치 포기하셨겠지요. 아마 나라도 안 선택할 겁니다.
'태양의 제국'은 강추하는 영화입니다. 아직도 그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곡 'Suo Gan'을 들으면 뭔가 아련해져요. 무려 크리스찬 베일의 데뷔작이기도 하구요. 군국주의 미화 논쟁으로 저평가되는 부분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군국주의 미화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스필버그가 스펙타클한 액션으로만 알려진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나 '뮌헨'이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것을 보면, 이런 부문에도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네오 2012-01-3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캐팅 그분과의 170분의 전인미답의 침묵의 데이트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구절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러니깐 언해피엔딩이라는 거죠? 애프터도 없이요?

맥거핀 2012-01-30 17:31   좋아요 0 | URL
암튼 그분이 지금 없는 걸로 봐서는 어찌되었건 언해피엔딩이죠.ㅎ 그러니까 교훈은 "매우 못만든 로맨티코미디 하나가 열 잘만든 전쟁영화보다 낫다.""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영화를 보지 말고, 보고 나서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를 봐라. 그녀만 기억하면 되지, 영화 따위는 기억해서 뭐할 것이냐" 라는 거죠.

하긴..일단 영화같은 건 안보는게..;

네오 2012-01-30 17:56   좋아요 0 | URL
아~ 이글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었서요^^ 저는 정말 이 분 마음속깊이 애정을 보냅니다~

그리고요~ ㅋㅋㅋㅋㅋ 로맨틱에 대한 영화에 대한 조언 매우 동감입니다^^ 사실 저도 이런이유때문에 로(맨스)코(미디)를 가리지 않고 보지요 ㅋㅋㅋㅋ

맥거핀 2012-01-30 18:1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영화를 다시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씨가 확실히 그간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하긴 영화를 몇십년이나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죠.
 
Jam Docu 강정 - Jam Docu KA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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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1년이 지나갔다. 그들은 여전히 다사다란(多邪多亂 - 많이들 사악하고 많이들 엉망진창)했고, 우리들도 여전히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다사다란(多死多瀾 - 많이들 죽었고, 많이들 파란만장)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2011년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큰 일들은 기억하기도 힘들고, 언급하기에도 힘들다. 다만, 우리를 웃겨주었던 몇몇 사건들과 연관된 인물들은 잠시 추억해 보기로 하자. '올해의 개그상' 개인 부분은 막판 김문수 도지사의 혼신을 다한 맹추격이 있었지만, 강용석 전 의원이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집착남'으로 출연하는 '신의 한 수'를 둔 덕분에 무난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길래 김문수 도지사가 먼저 '이름집착남'으로 출연했으면 마땅히 역전 수상의 기쁨을 누렸을텐데,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올해의 개그상' 단체부분은 어버이연합, 한나라당 비대위 등등 여러 단체가 경합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뉴세븐원더스 재단' 및 그의 팬들에게 대상 및 부상인 황금삽이 수여되었다. 이 경우는 본 단체의 활동보다 팬들의 놀라운 응원 및 지지가 수상의 원동력이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이 팬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은 천혜의 자연, 아름다운 섬 제주를 운운하며, 동시에 그 제주의 자연을 파괴하는 해군기지공사를 강행하는 것인데, 비슷한 예를 들자면, "우리 딸 세상에서 가장 이쁘다"라고 하면서, 생일선물로 성형외과 시술권을 선물하거나, 나는 여자친구 따위는 필요없이 혼자 살거라고 공공연히 떠들면서, 결혼정보회사에 몰래 등록하여 괜찮은 여자 없다고 진상을 부리는 경우 등을 말할 수 있겠다.

 

뭐 농담은 그쯤 하고, 아무튼 그 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룬 <Jam Docu 강정>을 보고 왔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이다. 그 제목이 어느 정도 말해주듯, 이 영화는 아마도 즉흥의, 그러므로 탄생되지 않을 수 있었던, 동시에 탄생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좋았을 영화이며, 동시에 그만큼 시급한 영화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그 '시급성'이며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일정한 시간들이 지난다면, 이 영화의 가치는 현저하게 떨어질지도 모른다(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떨어지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예전의 '어떤 사건'을 다룬 영화가 지금에도 가치가 있는 것은 지금 역시도 그러한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 시기라는 또다른 반증일 것이므로 말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그런 작품들이 언젠가 단순히 유머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고대한다. 저런 말도 안되는 개그같은 시절이 있었지 하하.) 그러나 즉흥적이고 시급하다고 해서 이 영화의 가치나 구성의 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8명의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는 옴니버스적 구성이지만, 흔히 말하는 'Jam' 연주가 그렇듯, 각각의 악기(작품)들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8개의 작품들은 이 사태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적절하고 다채롭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어느 한 작품이 너무 튀거나, 특별히 질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작품의 구성적인 면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각각의 작품의 제목이 시작되고, 마지막에 짧은 크레딧이 흐르고, 다시 다음 작품이 시작되는 구조가 아니라, 전체의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의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고,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때 역시 짧은 영상으로 부드럽게 연결하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그 화면의 한 구석에 살짝 떠오를 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 전체의 엔딩 크레딧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각각의 작품 크레딧이 아니라 ['Jam Docu 강정' 사회적 제작단]이라는 크레딧이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의 이유는 여러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제와 관련하여 동북아 지역의 불안과 위험을 고조시키는 도화선 중의 하나로서 강정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일 뿐이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왜 해군기지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왜 하필이면 이곳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가 필요한가?"의 질문일 것이다(그러므로 강정 문제하면 으레 언급되는 평화를 위해서는 안보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나, 평화를 언급하는 사람들을 종북빨갱이로 몰아가는 식의 주장은 약간 핀트가 어긋났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해군기지가 더 필요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포인트는 '왜 이곳 강정인가'라는 문제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우리는 해군기지 자체를 반대하며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현재 그것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은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제주 강정마을에는 붉은발말똥게, 연산호, 맹꽁이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2009년 12월 제주도 의회가 관련 법안을 날치기 통과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절대보전지역'에 속했다. 그것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강정의 자연풍경들을 꼽는 권효 감독의 <말똥게의 사진수업>이나 천혜의 연산호 군락지를 보여준 후 바다 속으로 투하되는 케이슨(바다를 메우기 위한 시멘트 블록이며 하나가 약 20m 크기.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강정 이전 해군기지 후보지였던 제주 화순에 투하되는 장면이며, 현재 강정의 사람들은 이의 투하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을 보여주는 양동규 감독의 <범섬에 부는 바람> 등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강정에는 해군기지를 위한 공사가 계속되는 중이며, 명물인 구럼비 바위는 이미 폭파되었고, 수백 마리의 붉은발말똥게는 해군이 설치한 통발에 갇혀 죽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의 건설을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일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축소된 함의와 다르게 '절차상'의 문제는 마을 주민들의 생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런 문제로 보여지는데, 김태일 감독의 <마을의 기억>이나 경순 감독의 <안녕 구럼비>, 최하동하 감독의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등이 그것이다. 해군은 제주도 화순과 위미 등의 지역에서 이미 해군기지 건설의 반대에 봉착하였고, 이곳 강정에서는 일부의 주민들을 얄팍한 보상금으로 회유한 후 재빨리 건설 지역으로 선정하여 버렸다. 그 증거들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강정은 후보지로 선정된 후 일주일만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건설이 결정된 2007년의 마을임시총회도 1천여 명의 주민 중 고작 80여 명의 해녀와 노인들만이 참석해 투표가 아닌 박수로 건설안이 통과되었다. 그런 와중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제주도지사 소환을 투표로 이루어내고자 했지만, 낮은 관심으로 소환 투표는 개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현재 강정은 찬성과 반대의 주민들로 나뉘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것을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예를 들어 작게는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자신의 뜻과 다른 가게의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고, 크게는 친형제가 갈라져 더 이상 얼굴을 안보는 비극이다. 그 비극 속에서 정부는 그 분열을 조장하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억대의 소송을 걸고, 전면에 나선 사람들을 업무 방해로 잡아넣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겁을 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가 말해주는 또하나의 문제는 외부인들의 고민이다. 감독과 제작진을 비롯하여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활동하는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결국 '외부인'이다. 이러한 외부인들은 정부에서 흔히 말하는 대로 때로 '전문시위꾼'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며, 반대만을 위한 반대론자로 보여질 수 있다. 반대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였으나, 지금은 약간 의욕을 잃은 한 주민의 말대로 이들에게 "왜 이제서야 오셨냐?"는 말을 물을 수도 있다. 절차로 막을 수 있는, 힘을 모아 저지할 수 있는 때에는 어디 있다가, 구럼비가 파괴되고, 기지 건설이 시작되는 지금에서야 왜 나타났는가라는 물음. 한편으로 그 질문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이곳이 외부인들이 대거 나타날 때마다 4.3 등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던 제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을의 기억>이나 홍형숙 감독의 <구럼비에 멈춰서서>는 보여준다. 연대에 나서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연대인가, 과연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자기반성, 그리고 그에 따른 진정성 있는 활동이 되어야만 이 반대운동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이 작품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외부인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나의 입장에서 묘하게 울림이 다가오는 것은 <뻑큐멘터리-빡통진리교>로 잘 알려진 최진성 감독의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다. '항공모함을 너무나도 좋아해 해군이 되었던' 최진성 감독은 마트에서 뽀로로 낚시대를 사서 거기에 프라모델 항공모함을 붙여 질질 끌고 다닌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용산 국방부 앞.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그 정문 앞에서 '무키무키만만수'는 <투쟁과 다이어트>라는 곡을 그야말로 열창하고, 그 옆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감독은 낚시대에 달린 프라모델을 끌고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 몽롱하게 따라붙는 나레이션.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정말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 앞이 안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러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본 날의 기억. 영화를 보러 가니 이 추운 날씨에 아무도 없는 극장 앞에서 두 사람이 탈을 뒤집어 쓰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음악을 틀어놓고 '퍼포'(옛날 식대로 말하면 '마임')를 하고 있다. 잠시 후 그들은 극장 안으로 들어와 탈을 벗고 잠시 쉬면서 나를 포함한 2-3명의 관객들에게 강정에 대한 전단지를 나눠 준다. 딱했다. 아니, 딱한 것은 이 추운 날씨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그들이 아니라, 극장 안 유리창으로 그들의 뒷 모습을 보는 나와 그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우리들이었다. 우리야말로 아마도 물어야 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영화 안에서 인상적으로 나온 '무키무키만만수'의 곡 <투쟁과 다이어트>의 가사. (그들의 홈페이지 http://mukimukimanmansu.co.cc/에 가면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다같이!)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이고!)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어머니!)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버지!)

 

그냥 잘 살고싶다오

편히 잘 살고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싶다오

그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

 

그들은 배불리 먹고

고급스런 상점에 들어가네

나는 여기에 남겨져서는

운동만 열심히 해야하지 (투쟁!)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이렇게 운동만 하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는데

먹고싶은 것 먹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하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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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Jam Docu 강정> 무료 공개
    from MacGuffin Effect 2012-03-28 18:29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유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인디플러그' 사이트에서 영화 을 무료로 공개중입니다. (인디플러그에 감사드립니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입니다. 아래의 곳으로 가시면 되고, 회원가입만 하시면, 결
 
 
맥거핀 2012-01-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교롭게도 계속 다큐만 보게되네.

아이리시스 2012-01-0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게 많아 행복한 세상이잖아요!

"왜 내가 이러고 있나" 맥거핀님에 대한 것들인 줄ㅜㅜ

누군가 어딘가에 해군기지는 어차피 필요하지 않냐고 하던데요. 이 와중에 세계자연경관 그런데에 뽑힌 제주도 아이러니고요. 참 아름다운 곳인데 어째서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게 이토록 힘들까요. 맥거핀님 다큐쟁이ㅋㅋㅋ

맥거핀 2012-01-06 15:56   좋아요 0 | URL
어딘가에 해군기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집앞마당에 해군기지 짓고, 옥상에는 공군기지 지으라고 하세요.(-_-; 병맛스런 댓글) 불공평한 세상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세계 7대자연경관 같은 것은 TV에서 대대적으로 축하쇼를 하면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도, 강정은 거의 아무데서도 이야기되지 않으니까. (저도 지난번에 PD수첩에서 이야기를 하길래 알게되었습니다.)

쓸데없이 위에 많이 썼지만, 화면을 보고나면 왜 이것을 저지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요.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데를 왜? 이 생각부터 드니까.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눈이 먼저 반응을 하니까.

낚시성 제목이군요. 죄송합니다. 제 얘길 쓸 걸 그랬나요? ㅎ

마녀고양이 2012-01-0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한숨을 짓게 하는 리뷰군요............... ㅠㅠ
왜 하필 강정인가 에서 시작하여, 한 마을의 사람들이 웬수보다 더한 꼴로 싸우는 것과,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외부 사람들. 각자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고 그것이 풀 수 없는 매듭이 되어가는 느낌이예요. 어떻게 해도 엄청나게 손상된 그 상채기는 복구하기 힘들겠죠.

강정 마을을 지키기 위해 들어간 활동가들의 뜻은 물론 올바르지만,
저는 그보다 먼저 반대편(친정부)에 선 사람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로 안쓰럽고 가슴아파요.

맥거핀 2012-01-06 16:06   좋아요 0 | URL
확실히 목적의식이 있는, 정치적인 다큐죠.(하지만, 물론 모든 영화는(다큐를 포함해서)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B급 정크무비라도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몇 개 다른 리뷰를 찾아서 읽었는데,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감상이 많이 달라요. 특히 이런 나름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 반대를 하거나, 찬성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일단 논리적인 설득이 잘 먹히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의 왜곡된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이겠지만요. (다만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들에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심하게 떨어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말씀하신대로 찬성한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우리가 잘 모르는 내부사정이 있겠지요. 근데 그 자신의 찬성이라는 것이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그 찬성에 찬성해야할까라는 생각은 있어요. 언제부턴가는 다른 사람의 희생의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요.

무거운 얘기를 하다보니 쓸데없이 덧글도 무겁네요.^^;

꽃도둑 2012-01-1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과 자괴감과 분노와 무력증이 동시에 밀려드는 리뷰네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어떤 일은 꼭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그 모두는 자신의 가치판단으로 결정을 했을 테지만
결과는 비극적이라는 거죠... 형제가 등을 돌리고 아주 평화롭고 사이좋던 공동체가 무너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파괴되는 그야말로 탐욕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없다는 거죠, 막아내기엔 너무 무력하다는 게 화가 나는 거죠, 그러다 지쳐 포기하고,,, 4대강도 그렇고 강정마을도 그렇고,,. 깨어나야죠..그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맥거핀 2012-01-10 15: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떻게 보면 외부의 활동가들이야 자신들의 신념을 가지고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이지만, 여기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전혀 원치않는 과정에서 문제에 휘말렸으니까요. 여기있는 어떤 주민들도 정부의 반대편에서 생존을 건 투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반대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찬성을 위한 투쟁이더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여기에 앉아서 이렇게 글줄이나 남기는 것도 한심스럽기는 한데, 이런 리뷰로 한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되었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죄책감을 지워봅니다. 이런 영화, 이런 문제일수록 한명이라도 더 아는 것이 큰 힘이니까요.

karma 2012-01-1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제야 맥거핀님 리뷰도 읽었는데, 제가 쓴 리뷰는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하면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리뷰였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나저나 [잼 다큐 강정]은 제목을 좀 더 자극적으로 지었어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폭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소문을 타고 계속 좀 이슈가 되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질 않아서 안타까워요 ㅠㅠ

맥거핀 2012-01-10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끌어쓴 리뷰가 되지 못하고,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채운 제 리뷰보다는 karma님 리뷰가 더 좋은 리뷰죠. 하기는 저도 개인적으로는 자극적인 홍보나 자극적인 영화제목 모두 싫어하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야 말로 자꾸 논쟁적인 이슈를 끌어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다른 영화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마이웨이'같은 영화가 친일 문제로 이슈화되는 것과 비교해보면요.)

이런 영화야 말로 장기상영하며, 계속 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결국은 상업적인 논리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 귀결이고 보면, 다큐멘터리가 상업영화와 동일한 루트에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가 조금 이상해보이기도 하죠.

2012-01-1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현재상영"이라는 문구가 반갑군요.
글 하나에 영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다양한 단상을 자연스레 녹여낸 것과, 또 그것이 영화 바깥의 풍경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 이글도 마치 한 글 안에 여러 이야기가 훌륭한 '잼'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무척 글을 잘 쓰십니다.
물론 이런 한가한 칭찬을 하기엔 영화나 글이 담고 있는 문제가 너무도 심각합니다만.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분명 이 나라는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역력해서(버스를 타고 어딜 가든 풍경을 보는 게 괴로울 때가 많지요. 시골이든 도시든 길이든 들이든 산이든 강이든...), 그걸 보는 게 너무 싫어서 차라리 외면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늦추면 당장 이런 일이 중대하게 발생을 하니 정말 모두 정신차리고 감시하고 발언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 감독들, 그 영화관의 2~3명 관객들, 이 글의 필자(맥거핀님) 모두 고마울 뿐입니다.^^

맥거핀 2012-01-18 22:41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워요. 일단은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좀 보고난 다음에 하면 좋으련만, 결국 볼 사람만 보는 그들만의 영화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정상적인 홍보 루트가 없으니, 대다수가 하는지도 모르죠. (현재 이 영화 네이버 평점이 5점대에요. 1점과 10점의 영화평이 번갈아 오르는 영화를 보지도 않은 평점들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죠. 물론 알바들이 암약하기도 하지만, 거기 20자평들 보고 있으면 아주 재밌어요.)

확실히 이 나라가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게 돌아가는 건 사실이겠지요. 가끔 인터넷 게시판들 보면 그런거 있잖아요. 서로 도시들 고층빌딩 사진 올려놓고 발전경쟁하는 거. 그런 거 보면, 이 나라에서 MB씨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4대강을 개발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어요. 해군기지 찬성론자들의 주장도 그런 것과 연관되지요.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해군기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너네는 왜 반대하는가, 너네는 단지 매국노일 뿐이라는 주장. 그런데 그 발전이란 게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요. 발전하는 나라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고 이루어진 발전은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요. 답답한 마음 뿐입니다.

글 칭찬도 감사하구요. 그런데 칭찬은 독이니 딱 10분만 좋아할께요.^^

맥거핀 2012-03-0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2.3.7. 정부, 구럼비 바위 폭파 강행 시도
 
오래된 인력거 - My Barefoot Frien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쓴다. 기본적으로 좋은 글이란, 좋은 리뷰란 글쓴이의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일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리뷰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글쓴이의 생각이 왔다갔다하거나 백과사전적인 정보만이 가득한 리뷰일 것이다. 물론 항상 자기 눈에 눈곱은 보지 못하는 법이어서, 말은 이렇게 해도, 내 지나간 리뷰들을 보면, 뭐 이런 소리만을 잔뜩 써놨지 하는 리뷰들이 부지기수다. "지금 다시 쓰라고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텐데"라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질테니 더 이상의 생각은 관두기로 하자. 아무튼 글을 쓰기 전에는 대체로 한 두 가지의 생각은 정리하고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 비슷한 장면을 붙여두고 있다. 이 영화는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 샬림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취재한 다큐멘터리이다. 그 샬림은 영화의 처음 더 이상 자신을 찍지말라고 화를 낸다. 당신은 나의 친구도 아니고, 나는 더 이상 찍히고 싶지 않다, 당신은 그저 외국인일 뿐이며, 언젠가 돌아갈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나 감독은 카메라를 뿌리치는 그를 껴안으며 말한다. 다 이해한다고, 우리는 친구이지 않냐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병든 아내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그간 삼륜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을 쓰려고 결심하며 다시 한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이 돈을 이렇게 써야 하다니, 어떻게 모은 이 돈을. 그리고 말한다. 눈물을 흘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찍지 말라고.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두라고.

 

이 장면들을 보는 상당수의 관객들은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 장면들을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러한 마음들을 감독에게 묻는 관객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의 한 가지 질문. 왜 제작진은 샬림을 위해 삼륜차를 사주지 않았는가. 감독은 말한다('오래된 인력거 블로그' 제작노트 http://blog.naver.com/report25?Redirect=Log&logNo=150127999834). 제작진은 샬림을 위해 삼륜차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았다. 그러나 샬림은 그 돈으로 고향에 집을 지었으며, 우리는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는 감성적으로 풀 수 있지만, 온정주의로 풀어서는 안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샬림 개인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분제와 착취구조인 인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그것이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도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점이라는 것. 이와 관련하여 김영진은 <씨네 2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835호). "<오래된 인력거>는 이 지점에서 솔직하다. 설령 그것조차 자신들의 윤리적 곤란을 드러냄으로써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삼는다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았다. (중략) 대체로 우리는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소비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다른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그 불편함을 드러낸다."

 

글쎄. 이 영화가 그 균열을 지그시 응시하고 드러내보임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윤리적 불편함을 안겼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것(불편함)이 과연 충분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조금 의문이 간다. 김영진은 "이 당당함이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화하는 대다수 인습적인 텔레비전 카메라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준다. (중략) 카메라로 그의 삶은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틀 안에, 공감과 연민과 위로의 틀로 가장한 수직적인 시선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들은 과연 이 영화를 본 이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감독이 말한 '신분제와 착취구조에 대한 관심, 그것이 우리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불행한 인도의 인력거꾼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것, 아니면 혹시라도 있을 인도여행에서 그저 낯선 관광객이 되어 인력거를 타지 않는 것(그러나 영화에 따르면 이 인력거도 보기 안좋다는 이유로 인도 정부에 의해 곧 금지될 예정이다), 인도 정부에 카스트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물론 이는 농담이면서, 농담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영화를 도리어 그런 불편함을 사라지게 하는 진통제로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도의 카스트제도, 그리고 그와 연관이 있는 가장 원시적인 노동이자 비인간화된 노동처럼 보이는 인력거(물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때로는 상상이상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니까),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지독한 가난,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대를 이어 대물림되는 지독한 가난. 우리는 사실 대부분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즉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 빠짐없이 재생된다. 그것에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새로움의 차이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 영화를 소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래도 이런 영화 봤으니 되었어, 왠지 마음의 짐을 조금 덜한 것 같잖아, 이런 면죄부. (<워낭소리>가 결국 어떤 식으로 관객에게 소비되었는지를 이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이 영화의 어떤 아이러니한 점은, 앞과 뒤에 샬림이 자신을 찍지 말라고 화를 내는 장면을 붙이면서도, 그 모든 장면들, 즉 샬림이 찍힌 모든 장면들을 결국 영화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단순하게 말해서, 찍지 말라고 항변하는 샬림의 장면을 보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도리어 역으로 그 화면을 보는 사람들의 윤리적 면죄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관객을 조금 더 몰아붙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영진이 <하얀 정글>에 한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결국에는 관객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내려는 의지와 결기는 없는 상태"가 아닐까. 그러므로 궁금해지는 것은 사실 영화의 마지막 이후이다. 자신을 찍지말라고 카메라를 뿌리치는 샬림을 어떻게 설득하여 이 영화는 탄생되었는가, 그리고 그 이후 샬림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가. 영화는 그러나 어떤 설명 없이 약간은 급한 봉합을 한다는 인상이 짙다. 샬림은 그 이후로도 가족 때문에 길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나레이션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 있어서 나레이션의 역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외수의 나레이션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친절하다. 그래서 때로 관객의 감정을 미리 예단한다는 느낌을 준다. 즉 내가 판단하기 전에 나레이션이 판단을 내려준다. 이것은 TV 다큐멘터리를 오래해온 감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여러 군데에 있다. 김영진의 말대로 이 영화의 카메라는 단순히 구경거리로 그들을 비추려고 하지 않으며, 단순히 수직적이고 타자적인 관점의 카메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면서 예를 들어, 외국인을 속여서 물건을 파는 장면을 보면서 도리어 통쾌함을 느끼게 되고, 인력거가 단순히 운송 수단이나 가난의 문제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인도 사회의 계층 문제와 착취구조의 문제와도 연관된 것임을 이해하게 되며, 샬림의 영화 속 낙관적인 태도들이(감독은 샬림이 인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친절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넘어서려는 결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가장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영화 속 샬림의 동료이자, 샬림보다 더한 영화적 인물인,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노즈를 잡은 한 장면. (샬림이 밝음으로 결기를 보여준다면, 마노즈는 반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침묵으로서 결기를 보여준다. 제작노트에 보면 이 장면은 마노즈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찍었다고 한다.) 마노즈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천민이었던 아버지가 카스트 전쟁 때 지주에게 맞아 죽은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그 지주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샬림의 질문에 대답한다. 도망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면서 카메라를 지그시 응시하는데, 카메라에 잡힌 그 눈은 공포에 질린, 그리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눈이다. 이어지는 컷은 10년 전 당시의 마노즈를 우연히 촬영한 컷. 감독은 10년 전 카스트 전쟁을 촬영하면서 어린 마노즈를 우연히 촬영했었고, 오랜 후에 마노즈의 이야기를 듣고 이 컷을 찾아낸 것. 마노즈의 그 눈은 온연히 바로 그 어린아이의 눈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와 분노를 오롯이 잡아낸 이 영화라는 마법. 오로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대상만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기다릴 수 있는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마법.

 

그래서 2시간도 채 안되는 영화는 때로 그 천배, 만배의 시간을 우리에게 경험하도록 한다. 물론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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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1-0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이거 종편에서 해주지 않았어요? 종편출범할 때 다큐가 좋은 게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그린란드(?) 하여튼 그쪽이었구요! 제가 관심있게 콘텐츠들을 봤었는데ㅋㅋ 찜해놓고 기다렸는데 결국 종편채널 네 개에 눈붙이고 앉아있기가 어쩐지 죄(?)스러워서 못봤어요.(실제로는 시간을 놓친 거ㅋ) 드라마는 봤는데(빠담빠담 같은 정우성 나오는 거) 그래도 배우들은 외주제작한 경우에는 본인 작품이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할지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죄책감을 덜었달까. 하하.

영화로 나와서 좋네요. 그때 맨발로 달리는 걸 보고 이것도 건방진 얘기겠지만 참 서글펐거든요.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열심히 살고 계신 거잖아요. 저보다도 훨씬. 그래서 짐을 제맘대로 덜어냈어요. 인도처럼 양면적인 국가가 또 있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면 정말 눈부실 정도로 색감이 좋아서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나라 같은데, 이젠 인도에 가보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인 것 같아요. 가고 싶지 않아요. 10년동안.. 황홀한 집념이네요. 무려 무산에서도 하네요! 우리집 근처 동네에 있는 극장인데 처음 들어보는 데서요.ㅜㅜ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세요, 맥거핀님?ㅎㅎㅎ

맥거핀 2012-01-03 19:14   좋아요 0 | URL
종편에서 했었나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극장에서 봐서. 종편도 이런 컨텐츠를 많이 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즘에 사실 종편을 본 적이 없어서 뭐가 하는지도 전혀 몰라요. (아..하나 아네요. 소녀시대하고 남자애들 나오는거..;;) 빠담빠담도 노희경씨 극본이라 그래서 보고싶기는 한데, 왠지 양심에 찔려서..(그럼 소시는?-_-)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인도에 대한 인상이 딱 하나 남았는데, 아..사람 진짜 많다, 정말 많다 이 생각만 했어요. 땅덩이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그래도 놀라운 것은 살림을 비롯하여 거기에 나온 상당수의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예를 들어 영화 중반부에 폭우가 퍼부어 완전 물바다가 된 장면이 있는데, 거기 사람들은 뭐 이정도 가지고..이런 표정으로 여유있게 웃더라구요. (이런거야 말로 타자적인 시선일지도 모르지만..)

새해에는 아직까지 일복만..하하.

2012-01-04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2-01-0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영화였군요..다큐멘터리인가요? 작년에 본 영화 한편(아고..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ㅠㅠ) 보고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버렸는데 이 영화도 왠지 그럴 것 같은..

맥거핀 2012-01-05 00:53   좋아요 0 | URL
다큐멘터리구요.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도 한국 분이고, 한국 제작진들이 주로 만든 영화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든 영화는 아니구요. 감독이 TV 다큐 쪽에서 오래 경력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한편으로 그래서 약간 TV 다큐 느낌도 있어요. 즉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지만...여력이 되시다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네요.^^

네오 2012-01-3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는 않았지만 종편방송에 방영한다고 시끄러운 작품인걸로 기억해요~

맥거핀 2012-01-30 18:19   좋아요 0 | URL
근데 한편으로는 종편에서 이걸 한다고 하니 뭔가 살짝 의심을 하게 되는게, 저도 마음이 역시나 너무 편협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