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무산일기>에 대한 약간의 내용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과 관련된 광고에서 늘 등장하는 것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다, 새로운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늘상 그렇듯이,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글쎄. 그 잃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듯도 하지만, 아무튼 간에 이 작은 기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어찌되었던 간에 다른 것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내 경우라면 그 안의 여러 복잡한 미로들 중에서 가장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읽는 것과 쓰는 것에 관련된 것인데, 팟캐스트와 다양한 메모 기능이 그것이다. 먼저 팟캐스트를 생각해보면 새삼 놀랍기도 하다. 처음에 열심히 무료 어플들을 찾아 다니다가 부실한 업데이트 기능들에 실망하고, 결국 정착하게 된 것은 유료 어플인 Beyond Podcast인데, 이 작은 어플은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동시대의 생각들을 매일 충실하게 배달해준다. 더구나 1992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잘 때 들을 수 있게도 해준다.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한 어떤 달콤한 보상책들.

또 하나는 메모 기능이다. 지금 이 짤막한 글을 쓰려고 시도하는 것도 어지럽게 쌓여 있는 메모들을 본 이후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끄적끄적 남겨놓았던 메모들. 몇 주 전에 남겨놓았던, 이제는 왜 남겨놓았는지 이유가 알 수 없어져 버린 메모들. 아마도 그 때 그 메모들에 조금 더 쓸만한 옷들을 입혔더라면 조금은 더 읽을만한 리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무엇인가를 쓸 만한 시간도 없었고, 시간이 있더라도 무엇인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버려질 이 메모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뭔가의 기록을 남겨 놓고 싶다. 물론 이것은 앙상한 기록들, 지연된 생각들에 불과하지만.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무와 같은 것들이지만.  



적과의 동침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2011년 4월)

이 영화가 기대 이하의 관심을 받고, 쉽게 사라져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러 가지 약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웰컴 투 동막골>과 사뭇 비슷해보이는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그 영화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이 결국 어떤 판타지의 세계(예를 들어 수류탄이 폭발하여 팝콘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말해주듯이)로 달려갔다면, 이 영화는 그 보다는 훨씬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결국 결말의 처리라고 할 수 있는데, <웰컴 투 동막골>은 여전히 판타지의 세계에 머물러, 남한군과 북한군과 유엔군 몇 명이 힘을 합쳐, 어떤 제3의 거대한 적에 대항한다는 식의 결말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결말은 그보다는 훨씬 비극적이며, 더욱 심각한 질문을 담고 있다. 그 질문은 결국 이들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인가라는 점이다. 그들을 죽게 만드는 그 '명령'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그 명령들(이들의 죽음에는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부'의 명령'들'이 있다)의 기원에는 국가가 있으며, 우리는 결국 '국가'라는 이름의 살인기계, 혹은 살인마를 마주하게 된다. 그 국가라는 이름의 살인마는 당시 우리나라 곳곳을 활보하며, 때로는 유엔군의 탈을 쓰고, 혹은 인민군의 탈을 쓰고, 혹은 국군의 탈을 쓰고, 비슷한 유형의 범죄들을 자행해왔다. (이 영화 <적과의 동침>보다 조금 더 현실에 발을 디딘 버전으로는 <작은 연못>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우리나라 영화 제작자들의 '종합선물세트를 관객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즉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 반복된다는 지젝의 신봉자들도 아닐진대, 같은 이야기를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중간의 코믹적인 에피소드들의 상당 부분은 거의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아무리 그 개인기가 출중하더라도 사족인 듯이 느껴진다. 어떤 상황적인 페이소스를 살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유머들은 생각해 볼만한 질문들을 거의 잡아먹는다. 메시지도 들어 있고, 유머도 들어 있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도 들어 있는 이 종합 과자선물세트는 관객을 먹다가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아쉬운 영화.



인사이드 잡 (CGV 대학로, 2011년 5월)

재앙은 레이건의 금융규제 완화부터였다. 이 <인사이드 잡>이라는 영화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끄집어내 관객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 내부'란 지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내부이다. 이 영화는 그 내부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를 지극히 건조한 어조로 미세하게 헤집어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어조가 건조하다고 해서, 내용마저 건조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때로 분노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식의 발상이 가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도덕적인 책임감을 스스로 없애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아주 정치적인 메시지를 마지막에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비극을 한 번 더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내부'에서 벌이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또다른 영화가 담배회사의 내부고발자를 다루었듯이, 이 영화는 그 스스로가 '내부고발자'가 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여러 다양한 자료를 친절하게, 흥미롭게, 순차적으로 제시하면서 관객들에게 금융위기의 본질을 이해시킨다. 아마 경제에 거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혹은 아무리 신문기사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내부에 들어있던 것들에 대해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결국 집어내는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아니라, 레이건의 금융규제 완화이다. 그것에서부터 모든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친절한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 다른 것들에 생각이 미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금융규제 완화의 시작에 와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나 은행들의 통합 정책을 볼 때에 어떤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소로스가 영화에서 명쾌하게 말하였듯이 유조선에서는 기름을 여러 칸에 나눠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파도에 배가 휩쓸려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칸의 벽들을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오로지 더 많은 기름을 실으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은 이득을 보고자 하는 그 욕심 때문에.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든 생각인데, 이렇게 인터뷰 중심의, 그리고 영화 자체의 영문 자막이 많은 영화의 경우 더빙을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아무리 맷 데이먼의 나레이션이라도 말이다. 영화 초반에는 너무 많은 자막으로 인해 조금은 멍해지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차리고 볼 것. 곧 흥미진진해진다.



무산일기 (인디플러스, 2011년 5월)

탈북자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다. 2등민, 계급사회. 125로 시작되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는 우리사회의 2등민이라는 낙인이다. 물론 2등민에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만 포함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경제력에 따라 보이지 않는, 때로는 보이는 계급이 갖추어져 있으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거기 아래부분 어딘가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계급은 자꾸만 그 계급의 단계수를 증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힌트를 영화의 한 부분에서 찾을 수도 있다. 숙영은 탈북자 승철과 어떻게든 자신을 구별하려 한다. 그것의 이유는 숙영과 승철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숙영이, 승철이 처해있는 곳으로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승철과 경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경철은 같은 탈북자이지만, 승철과 자신은 다르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다. 그 가장 밑바닥에 어떤 불길한 자화상으로 승철이 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자화상은 경철과 숙영의 몫만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어쩌면 가장 미스테리한 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극단의' 리얼리즘이 아니다. 리얼리즘이 가장 망가지는 순간은 아마도 그 자신이 '내가 리얼리즘이다'라고 나설 때일 것이다. 어떤 것이 리얼이라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그 순간 가장 리얼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황해>의 리얼리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마지막에도 어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 순간 마음이 움직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리얼'과 거리가 멀, 어쩌면 승철의 꿈인것처럼도 생각되는 승철이 교회에 가서 마음을 조금 연 숙영과 같이 성가를 부르는 장면과 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이다. 희망을 보여줄 듯 하다가, 다시 그 어떤 희망도 내비치지 않는 이 마지막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이 마지막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또는 절망을) 애써 찾게 되는 것일까.

.........................................

여전히 복잡한 6월이다. 잃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6월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엇을 얻게 된다고 말할 때에 그로 인해 무엇을 잃게 되는지는 여전히 생각해보아야 한다(꼭 스마트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본 수많은 영화에서 얻은 교훈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얻는 것이 있다면,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잃어가고 있는 것들, 자꾸 말로 되뇌어지는 속에서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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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1-06-29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할말이 많은 세영화죠~

맥거핀 2011-06-30 01:27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 빨리 리뷰를 썼으면 더 여러가지를 기억에 남길 수 있었을텐데,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8기 활동 종료 페이퍼

사실 짤막한 이 글은 <사유의 악보> 리뷰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 구질구질한 몇 가지의 이유로 나는 책을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고(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겨우 읽는 척을 하는 중이고), 그 '홀가분한 마음'이라는 친구를 곧 만나게 될 성 싶지는 않다. 그러니 9회초에 야구장을 빠져나와 응원팀을 저주하며 오징어다리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는, 혹은 영화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마감시간에 쫓겨 대충 리뷰를 적어 올리는 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먼저 올려야 할 듯도 싶다. 물론 어쩌면 그로 인해 9회의 멋진 역전을 보지 못한 채, 다음날 스포츠신문에서 기사를 읽고 뒤늦은 환호 및 급탄식을 올리거나, 영화의 멋진 결말을 다른 사람의 글로 보아야 하는 씁쓸함을 맛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뭐 나같은 자에게 따르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결말일 것이다.

* 가장 좋았던 책 BEST 3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사

조지 오웰은 분명히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의 문장들은 꽤 오래전 쓰여진 것이지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그 문장들이 아직도 현실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지 오웰의 통찰들은 지금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며, 대상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그것에 대한 적확한 묘사는 우리를 그 시점으로 데려다놓고, 다시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글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그 기본 바탕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 오웰을 단지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새로운 그의 면모를 보게 해준 책. 



反 자본 발전사전 / 볼프강 작스 외 / 아카이브

발전이라는 것의 모든 것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신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라고 누군가 직접적으로 묻는다면, 딱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소비적인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할 것이고, 발전이 모든 부분에서 악이라고 자신있게 외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몇 가지의 다른 시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부인한다고 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 발전 레이스의 끝에는 확실한 공멸이 있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는, 적어도 아니 나는, 다른 삶에 대하여 지속적인 고민과 실천을 (앞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칭 / 마커스 드 사토이 / 승산

수학자들의 세계는 완벽을 향한 여정이다. 완벽한 증명, 완벽한 정리, 그리고 완벽한 대칭. 그러나 이 완벽의 여정은 이 책에서 말하여지듯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완전한 대칭이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 보이는 완전한 대칭도 이 3차원 세계에서나 완전한 것이지, 다른 차원에서는 완전한 대칭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넓은 세계 앞에서, 경이를 표하며 최대한 겸손해져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저자의 글쓰기가 참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 어려운 내용을 쥐락펴락하며 최대한 재미있고, 최대한 쉽게 전달하는 것.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먼저 여러번 반복되어 왔던 말이지만, 이 신간평가단의 카테고리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될 필요가 있다. 물론 외부에서(즉 이 신간평가단으로서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알라딘 내부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고, 외부에서 잘 모르는 현실적인 필요나 몇 가지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현실적인 필요'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전체 신간평가단의 구성이 어딘가모르게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누락되어 보이는 몇몇 부분들도 그렇고, 각 분야 밑에 놓여진 카테고리들도 조금 이상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일단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여러 알라디너들의 의견을 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간평가단 내에서 어떤 식으로 의견교환을 활발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이것에도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 되었겠지만, 현재와 같이 공간만을 만들어놓고, 평가단 개인의 자유로운 참여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는 몇 가지 작지만 나름 민감한 문제들이 개입된다. 참여를 가장한 강제성의 문제 혹은 신간평가단 담당자 님의 역할론과 같은 문제, 알라딘 서재 활동과의 연계와 같은 부분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동 시간대에 같은 책(가장 최신간)을 읽고 같은 공간에 리뷰를 쓴다,라는 이 좋은 조건을 만들어 놓고도 의견의 교환이 간단한 감상의 나눔으로만 그친다는 점도 아쉬운 감이 있다. 어떻게 이를 긍정적인 활발한 토론의 장으로 만들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몇몇 흰소리를 했지만,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분들과 신간평가단 담당자님. 그리고 여러 의견 나눴던 이웃 알라디너 분들. 좋은 리뷰들로 책을 다시 돌아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신 다른 신간평가단분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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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5-0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헉)달려오느라..
1.2위가 저랑 같네요..^^
아, 선정 이유가 넘 멋있어요. 제가 하고픈 말이었습니다..^^
맥거핀님, 포근하고 산뜻한 봄날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맥거핀 2011-05-04 18:22   좋아요 0 | URL
포근하고 산뜻..해야 하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서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인사를 주고받으니, 왠지 어색한데요..? 흐흐..;;

반딧불이 2011-05-0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신히 마지막 리뷰를 썼는데 써야할 페이퍼가 또 있군요.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매사에 애정이 느껴져서 참 따듯합니다.
에고..스마트폰으로 적느라.. 메일을 받으신다면서너개가 갔을것 같으네요. 죄송합니다

맥거핀 2011-05-05 20:0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도 온라인상이라 그렇게 보이겠지요..;;) 반딧불이님은 마지막 리뷰도 올리셨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페이퍼 쓰시면 되겠네요. 글구 메일은 한통밖에 안왔습니다.^^

네오 2011-05-0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맥거핀 2011-05-12 13: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앞으로 수고(?)해주세요.^^
 

얼마전 <리영희 평전>에서 읽은 20세기형 코미디

http://blog.naver.com/oneman64?Redirect=Log&logNo=90100365748

그리고 이것은 조금 더 코믹해진 21세기형 코미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4519.html



한국의 검사들은 50년이 가까워오도록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참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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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5-0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안면근육이 말이 아닙니다. 정말 코미디라면 좋겠는데 이게 현실이라는게 아득하네요.

맥거핀 2011-05-02 15:05   좋아요 0 | URL
말로는 '쥐20'을 외치는 위정자들의 현 수준이 딱 이거라는 거겠지요. 나름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인데, 어째 상태가 저 모양이신지, 참 미스테리합니다.;;

네오 2011-05-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는 그들에게 박수쳐주고 싶어요 혹은 쉴드쳐주거나~

맥거핀 2011-05-04 01:19   좋아요 0 | URL
음..그냥 포기하신다는 말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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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키에르케고르가 알면 썩 좋아하지 않을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지금도 당신의 아주 가까이에서, 혹은 당신의 살 속에서 멋진 성찬을 즐기고 있을 가정용 곤충들을 설명하고 있다. 빈대, 이, 진드기, 파리, 개미, 바퀴벌레, 흡혈진드기 등등의 이 가정용 곤충들은 인간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공격하고, 나무를 뜯어먹고, 애완동물의 피를 빨아 마시고, 수많은 2세들을 낳고, 서로서로를 잡아먹기도 하고, 이곳저곳 쉴새없이 뛰어다니면서 소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들은 사실 그것을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눈에 보일 때마다 그들을 때려잡고, 가끔은 보이지도 않지만 후려치기도 하고, 이상한 가려움증을 느끼면서 손톱 끝으로 긁어내기도 하고, 더이상 못견디면 때로는 '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극히 일부분에 대항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우리가 어떤 벌레 한 마리를 우연치 않게 발견한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근처에는 그 개체가 분명히 한국시리즈 7차전을 관람하는 인파만큼 북적거리고 있으리라고 장담해도 좋다.

사실 이 책의 제목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보다 그 부제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는 이 책의 보다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벌레들은 가정용 곤충(Household Bugs)들이다. 그리고 그 '가정용'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사실 이 가정용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참 웃긴 것이, 어떠한 '가정용 동물(가축)'도 우리에게 그렇게 불러줄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그저 우리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그들에게 '가정용'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우리 곁에 놓아두고, 우리 멋대로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의 지위를 그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이 '가정용'이라는 말이 '곤충'이라는 말 앞에 붙을 때에, 그 관계는 역전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들은 이번에는 그들이 최대한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기를 바란다. 바퀴벌레 구이나 불개미 만두를 좋아하는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우리 모두는 그들이 우리 눈에 최대한 띄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곤충들이 철저하게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의 곁에 달라붙어 있다. 그러므로 '가정용 곤충'이라는 말은 사실 어쩌면 다음과 같이, 즉 우리 인간들이 사실은 이 곤충들의 '가정용 숙주'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익살스러운 경고문구를 표지에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 서가에 놓일 책이 아닙니다. 당신과 한집을 쓰는 '작은 가족'에 대한 은밀한 에세이입니다.' 위 경고문구가 말하는 바대로, 이 책은 생물학적 도감이라기 보다는, 위트를 담은 에세이에 가깝다. 예를 들어 각 곤충의 소개 말미에는 이 곤충들을 퇴치하기 위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소개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당신은 아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러나 이 책의 방법들을 탓할 것도 못되는 것이, 기생생물을 퇴치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숙주(바로 당신!)를 없애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일종의 호러 영화(ex. 에일리언)를 보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상상하고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에일리언이 당장 내일 지구를 습격할 것이 명백하다면 우리가 그 영화를 즐길 수 있겠는가. 그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이러한 일이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이 책을 훨씬 즐겁게 즐기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TV에서 하는 <스펀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프로그램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도대체 그 정보들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인지 전혀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 속에 있는 달걀을 뒤집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우리 삶의 뭔가가 달라질까.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가정용 곤충들의 아주 세부적인 생김새와 그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안다고 해서 우리가 이 곤충들과의 동거를 더 잘해낼 수 있을까. 역시나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과 같이 살아가야만 한다면, 어쩌면 모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덧.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요새 프로야구 스카우팅 책자를 열심히 보고 있다. 게임을 자주 볼 수 없으니, 그 대안으로 그렇다면 책이라도 사서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있는데, 꽤나 재미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이 책은 가정용 곤충들의 스카우팅 리포트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특성, 습관, 그리고 상세한 사진, 그리고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와 같이) 특정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일종의 백과사전적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그저 재미로 적어보는 이 책에 나온 가정용 곤충들의 스카우팅 리포트. 인간이라는 투수를 상대로 한 타자 편이다. 컨택(어떤 범위에 나타나는가), 장타력(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가), 타석에서의 끈질김(얼마나 퇴치하기 어려운가)라는 관점에서.

빈대: 전천후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이다. 장타가 좋은 편은 아니나, 경기 후반 치명적인 뜬금포를 종종 터뜨린다. 타석에서 아주 끈질기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볼을 골라내어 1루로 출루할 수 있다. 발도 빠르니, 전형적인 1번타자 유형.

이: 투수가 비듬을 발라 던지는 스핏볼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타격이 좋은 편이라 보기 힘들고 장타력도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다. 타석에서도 볼을 길게 보지 못하고 쉽게 휘두르는 스타일. 맞춰잡는 투구가 필요하다.

집먼지진드기: 이와 마찬가지로 비듬스핏볼을 아주 좋아한다. 장타력은 별로 없으나 타석에서 선구안이 아주 좋아, 낮은 타율에서도 높은 출루율을 자랑한다.

모낭진드기와 옴진드기: 무시무시한 생김새로 타석에서 투수에게 위압감을 주며, 넓은 컨택 범위와 한 시즌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장타력을 소유하고 있다. 전형적인 중거리 타자 유형.

서양좀벌레와 집게벌레: 언더핸드와 같은 특정 유형의 투수(책)에만 강점을 가지고 있다. 타석에서도 상당히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니 경기 후반 대타로 사용하면 좋다.

파리: 투수의 구질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좋은 타격을 자랑하는 특이한 유형의 타자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플라이볼을 많이 양산하는 타자이며, 결승타를 유독 많이 쳐낸다. 실투는 아주 치명적일 수 있다.

개미: 투수의 공보다는 투구시의 습관이나 버릇 등을 관찰하고, 그것을 타격으로 연결해낸다. 컨택이 좋지는 않으나, 맞았다 하면 장타이다. 타석에서도 아주 끈질긴 편이며, 연습벌레, 일명 '기계'로 알려져 있다. 집안 대대로 야구를 해온 야구 가문.

바퀴벌레: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가정용 곤충계의 이대호(심지어 이대호와 체형도 비슷하다). 투수에게 아주 공포스러운 타자로 각인이 되어 있으며,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며, 어떤 투수의 어떤 볼도 가리지 않는다. 컨택, 장타 모두 뛰어난 타자로 지난 수만년간 좋은 시즌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시즌도 당연히 기대된다.

흰개미: 서양좀벌레와 같이 특정 유형의 투수(나무)에만 강하다. 역시 특정 유형의 투수가 등판했을 때 기용할 수 있는 타자.

벼룩과 흡혈진드기: 넓은 컨택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거의 모든 구질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힘이 아주 좋아 단타보다는 주로 장타를 생산하는 유형. 벼룩의 경우 넓은 외야수비를 자랑하는데, 특기는 펜스 위로 점프하여 홈런 타구를 걷어내는 것. 일명 '홈런 도둑'.

의류해충과 부엌해충: 타격보다는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단, 작전 수행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는데, 감독의 지시를 거의 안듣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게임에 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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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ker_1201 2011-04-2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덧'을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롯데 팬으로서, 현재 모든 가정용 곤충이 해충 이상의 실력발휘를 전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군요.ㅠㅠ

맥거핀 2011-04-22 00:55   좋아요 0 | URL
아..저는 요즘이 왠지 불안한 LG팬입니다.^^ 올해는 엘롯기 동반 포스트시즌 진출을 한번 해야할텐데요.ㅋ

네오 2011-05-04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스카우팅 리포트~ lg는 레벨 게이지 상승하려면 멀었다고 생각되는 엘지골수팬, 이럴때 떠오르는 문구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

맥거핀 2011-05-04 01:23   좋아요 0 | URL
아..LG팬이세요? 아 반갑반갑..흐흐 맞습니다. 잘놈잘이고, 내팀내죠. 그치만, 올해는 가을야구! 기대를 안하려 하는데, 기대가 되네요.
 
파수꾼 - Bleak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 <파수꾼>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그 자체의 어떤 것 보다는,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다른 것을 환기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들, 낡고 끊어지고, 바래져 가는 기억들, 혹은 무의식적으로 밑바닥에 밀어넣어 두었던 기억들의 일부를 아주 조심스레 끄집어내게 만든다. 물론 그것들의 거의 대다수는 영화 속의 어떤 일들처럼 저런 극적인 사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비슷한 기억들이 있다. 다른 어떤 것들에 밀려 잊고 있었던 것들, 이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의 좋았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지금 기준으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옛날의 (친구와 멀어지게 된) 사건들. 예를 들어 영화 속 기태(이제훈)의 모습은 옛날 학교 가던 길에 나에게 갑자기 이단옆차기를 날렸던 어떤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것이 어떤 것 때문이었는지는 세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건의 중요한 몇몇 부분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상당수는 그런 시간을 살아왔다. 어떤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또 어떤 것은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동시에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은 기억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잊으면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어떤 심리학적인 디테일한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 의미가 있다해도, 그것을 또 애써 설명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지 않을까. 기태는 자신에게 왜 그랬는지 설명해 보라는 동윤(서준영)의 요구에 항변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 이 부분은 상황을 무마하려 넘어가려는 기태의 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기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설명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그것 자체가 정당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기태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기본 구조가 아들이 자살한 이유를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질문들로 이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아들이 왜 죽었을까. 반복되는 질문들 속에 답은 없다. 아니, 답은 있지만, 그 답이 설명될 수 없는 것임을 동윤이나 희준(박정민)이나 알고 있다. 애써 설명한다고 해도, 그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설명과 그 설명이 결국 말해주는 것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 때의 우리들에게는 그것만이 가능한 관계의 전부였으니까. 그 관계들만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중요해져 버린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니,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어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청소년들의 어떤 미성숙성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기태와 동윤과 희준의 이러한 관계는 청소년기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관계는 언제 어느 때에나 누구에게나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지금도 우리 주위에 살짝 가로놓여져 있다. 다만, 그것이 파국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다른 중요해진 것들이,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는 파국에 이르지 못한다. 단단해져야만 깨질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청소년기의 비극이란, 그러한 관계들이 필연적으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아무 것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시기에 우리는 대부분 한두 가지에 모든 것을 걸고, 그것을 단단하게 만들려고 한다(타인이 보기에는 약해보여도, 자신들은 단단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 때의 우리에게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그것이 깨지지 않도록 지켜봐주는 파수꾼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벼랑 너머로 누군가 떨어지려고 하면, 붙잡아주려고 했던 것처럼. 혹은 기차가 지나가려고 할 때 지켜보며, 종소리를 울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처럼. 마지막 기차길에서의 동윤의 회한은 그래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파수꾼이 되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다른 파수꾼들이란 없었으니까.
.............................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 이 어려운 작업을 가능케 하고, 이것에 힘이 느껴지는 원동력 중에 하나는 독특한 서사구조와 그것을 화면에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던져놓고, 그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이야기에 긴장을 불어넣는 방식도 그렇거니와, 대과거와 과거, 현재를 독특하게 붙이는 리듬이 훌륭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 동윤이 울다가 나와서 기태를 만나고, 기태와 대화를 하고(이 장면에서 기태와 동윤은 분절되어 있다. 거울을 기민하게 활용하여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되, 감정은 분리시킨다.), 다시 기태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잇는 것을 보거나, 기태가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과 기태 아버지가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을 비슷한 구도로 만들어내는 장면 등을 보면, 이는 감독의 탁월한 감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여기에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결합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영화 <파수꾼>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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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4-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요즘 상영한 건가요? 생소해서요.
맞아요. 청소년기엔 파수꾼이 필요하죠. 님 말씀처럼 깨지지 않도록 멀리서 지켜봐주는 파수꾼. 부모의 역할일듯.

맥거핀 2011-04-11 14:10   좋아요 0 | URL
네..상영한지 한 달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상영관은 몇 군데 없지만요. 기회되신다면 꼭 보세요. (가능하면, 찾아가서 보시라고도 권하고 싶구요.) 분명히 만족하실 겁니다.^^;
부모가 파수꾼의 역할을 맡는 것이 맞기는 한데,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의 이야기는 부모가 맡을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아버지에게 끝내 만족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겠지요.

2011-04-18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1-05-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3대천왕 독립영화중 이 영화만 안봤네요^^

맥거핀 2011-05-04 01:21   좋아요 0 | URL
<혜화, 동>하고 <무산일기>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는 아직 그 두 영화 모두 못봤습니다. 이 <파수꾼>도 참 어렵게 봤네요..;; <무산일기> 보러가야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