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세계
찬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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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드디어 3개월 만에 만나는 달궁 독서모임의 날이다. 불과 하루를 앞두고 내일 독서모임 책인 <격정세계>를 마침내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우리 두목님도 말했지만, 읽히지 않아도 너무 읽히지 않는 책을 마침내 다 읽었다. 내 자신이 뿌듯할 지경이다. 시간이 되면 찬쉐 작가의 다른 책인 <마지막 연인>도 읽어 보려고 했으나 기진해서 불가능하게 되었다.

 

680쪽의 <격정세계>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가상의 도시 중국 남부의 '멍청'이라는 도시에 둥지를 튼 <비둘기 북클럽> 멤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의 격정적 드라마 그리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문학이라는 힘을 중독성 있는 서사로 풀어내는 찬쉐 작가의 도전에 경의를 표하게 됐다.

 

일단 비둘기 북클럽의 창립멤버는 헤이스, 페이 그리고 리하이다. 이들은 멍청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문학에 대한 격정으로 가득차 있다. 아니 좀 더 원초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문학에 죽고 사는 이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유지해 왔지만, 그들처럼 온전하게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격정세계>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장마다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커플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우선 일번타자로 대학동창이었다는 샤오쌍과 헤이스가 나온다. 샤오쌍은 이 아저씨라는 그야말로 멍청 문학계의 태두 같은 지긋한 어르신과 교류를 하며 내적 성장과 발전을 이뤄간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헤이스에 이끌려 비둘기 북클럽에 안착하게 되면서 문학의 넓디넓은 세계에 투신한다. 그들에 북클럽에서 하는 토론을 보면서 이들은 밥은 먹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문학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구체적으로 그들이 토론을 하게 되는 책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는 점을 <격정세계>에 대한 약점으로 꼽고 싶다. 충분히 찬쉐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있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책에 대한 지나친 찬사는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동시에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렇듯 멍청의 모든 독서인들이 빠지게 되는가 에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둘기 북클럽은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흡입력 강력한 블랙홀 같은 그 무엇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거의 모든 이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둘기 북클럽을 추종한다. 심지어 코어 멤버들에 대한 존경심에, 자신도 속히 도전과 연구를 통해 성장과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지게 된다. 비둘기 북클럽은 절대 손쉽게 모임에 나가 읽을 책들을 논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거의 신계에 도달한 독서의 달인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현실 세계의 북클럽에서 이런 식의 진행을 했다가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나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0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모여서 의견 개진을 하다가는 독서 모임이 시간이 무한정으로 늘어지지 않을까라는 현실적 궁금증도 생겼다.

 

비둘기 북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애관계는 너무 복잡하게 전개된다. 1부에서 헤이스와 샤오쌍의 밀당이 너무 지루하게,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신중하게 진행되면서 흥미를 감소키신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그들이 격정적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 거칠 것 없는 사랑의 단계로 넘어간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하는 불륜도 그들은 문학의 힘(?)으로 가볍게 돌파해낸다. 세상의 어떤 기준도 문학 앞에 세운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걸까. 독학으로 천재 소설가 반열에 오른 한마와 그의 남편 페이의 케이스가 그렇다. 페이는 결국 웨를 임신시키고, 동반자 한마의 곁을 떠나지 않는가. 홀로 남은 한마는 같은 비둘기 북클럽의 열성 회원 샤오웨와 새로운 사랑을 추구한다.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데 싶지만, 문학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헤이스가 언급한 "삶의 결계" 앞에 과연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모름지기 독서인이라면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부단하게 연구와 도전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찬쉐 작가의 꾸짖음 같은 서사도 조금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즐거움이나 오락을 위해 책을 읽는 행위는 그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일까. 결국 책으로 대변되는 이상세계에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적용시키야 한다는 주장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 자각한 지성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선언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버겁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바로 이런 깨달음의 발로는 아니었는지. 더 놀라운 사실은 모두 12권의 찬쉐 작가 소설 중에서 <격정세계>가 그나마 접근성이 가장 좋다는 점이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어떻다는 말이지.

 

찬쉐 작가가 구축한 멍청이라는 이상향에서 펼쳐지는 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배치된 인물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희로애락의 드라마는 확실히 우리 같은 독서인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무언가 결정적 사건사고가 배제되어 많은 분량을 읽어내는데는 역시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사서 열심히 읽다가 지쳐서 잠시 보류해 두었다가, 결국 시험을 앞두고 초치기를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읽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완독하는데 성공했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들은 내일 달궁 동지들을 만나서 채우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뱀다리] 참 소설의 초반에 표범과 검은 고양이 그리고 후반에는 호랑이까지 등장하는데 과연 그 녀석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고수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리뷰마저도 시간에 쫓겨 쓰다 보니 어쩌면 더 추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모임에 가기 전에 토론할 내용에 대해서도 좀 정리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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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08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 동물 모두 야행성이죠?
그럼에도 그들은 동물을 찾죠(제 기억으론) 독서과정에서 좀처럼 드러내지않고 만나기 어려운 에피파니의 순간이 아닐까요?

레삭매냐 2025-03-11 07:18   좋아요 1 | URL
우와~ 정말 멋진 말씀이십니다.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야행성 동물 삼총사가 무언가
소설에서 주술적 리얼리즘의
상징으로 작동해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또 선을 넘지는 않더
라구요.

삽하나 2025-03-10 2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어질 대로 늘어진 데다 애매한 내용의 서사를 이렇게나 잘 정리해 주시다니! 부족한 저는 또 이렇게 덥썩 얻어 먹습니다(?). 동물들은... 깜깜한 곳에서 등장하던 녀석들로 기억을 하는데 (기억이 맞으려나요ㅠ) 개인적으로는 독서의 짜릿한 격정을 더해주는 감각적인 요소 내지는 장치로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 고양이과 삼총사가 제게는 물릴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을 내어 주고 싶은 그런 동물들이거든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5-03-11 07:21   좋아요 1 | URL
모임 전날 아슬아슬하게 다 읽고 리뷰까지
일사천리로 그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고양이과 삼총사에 한 방을 기대했는데
찬쉐 작가가 그렇게는 또 하지 않았더라는.

읽다만 <마지막 연인>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죽은 자의 몸값 캐드펠 수사 시리즈 9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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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BC 이번 시리즈는 12세기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벌어진 잉글랜드 내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다. 114122, 링컨 전투에서 기사도 타령을 하던 스티븐 왕은 모드 황후 편에 선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게 역사적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국왕의 편에서 출전했던 슈롭셔의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의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 역시 부상을 당했지만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의 상관인 프레스코트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는 부상당하고 역시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왕과 행정 장관으로 포로로 잡아 기세가 오른 반란군들은 휴 베링어 관할 내의 슈루즈베리 지역으로 침투를 시도한다. 하지만 고드릭 포드로 침공한 웨일스인 부대는 매그덜린 수녀가 지휘하는 지역 민병대와 숲 사람들에게 호된 패배를 당한다. 그리고 청년 엘리스 압 키난이 포로 신세가 된다. 역시 같은 웨일스 사람이자 TCBC 시리즈의 해결사인 캐드펠 수사가 나서서 통역도 하고, 엘리스가 나중에 프레스코트와 포로 교환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다.

 

TCBC 시리즈에서 역사적 배경과 살인사건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하는 캐드펠 수사의 맹활약이 중심이긴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매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남선녀들의 로맨스다. 웨일스 출신으로 오만한 엘리스는 거의 원수나 다름 없는 프레스코트 장관의 딸 멜리센트를 보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진다. 아니 이 녀석이 금사빠였나? 멜리센트 역시 훨칠하고 잘 생긴 낙천주의자 엘리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문제는 엘리스에게는 고향에 오래 전부터 정혼한 크리스티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멜리센트의 완고한 아버지 길버트 프레스코트가 둘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으리라는 점이 강력한 장애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캐드펠 수사의 노력으로 길버트 프레스코트가 비록 심각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엘리스와의 맞교환을 성사시킨다.

 

낙천주의자 엘리스 압 키난은 포로 신세지만 사랑에 빠진 멜리센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공연하게 자신의 연정을 사방에 떠들고 다닌다. 철부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환갑을 지난 노련한 캐드펠 수사의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언행과 어쩌면 이렇게 비교가 되는지 역시 작가의 훌륭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가마를 타고 귀환해도 되는데 굳이 말을 타고 돌아오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낙마해서 상처가 덧난 길버트 프레스코트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진료소로 옮겨진다. TCBC 시리즈에서 살인사건은 디폴트지. 그렇다면 이번에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프레스코트가 예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다양한 이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실제로 엘리스는 자신과 함께 자란 젖형제 엘리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결혼 승낙을 프레스코트에게 받겠다고 진료소로 그를 찾아간다. 그전에 멜리센트를 얻기 위해서라면 프레스코트를 없애겠다는 말까지 했으니, 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외에도 재산 문제로 악연을 쌓은 모리스 수사 그리고 자신의 이복동생을 프레스코트의 판결로 잃은 목동 애나이언이 차례로 의심을 받는다.

 

한편, 우리의 탐정 캐드펠 수사는 죽은 프레스코트의 시신에서 질식사의 결정적 단서들을 찾아낸다.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증거 확보를 시도하는 동시에, 냉철한 추리와 직관으로 유력 용의자들을 수사 선상에서 배제해 나가는 실력을 보여준다.

 

슈롭셔 지역을 책임지는 행정 장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회로 삼아, 반란군들이 준동을 시작하고 위기가 계속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캐드펠 수사는 양측 모두에게 얻은 신임을 바탕으로 해서 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찾는 노력을 계속한다.

 

잉글랜드 내전에서 결정적 장면이었던 링컨 전투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스티븐 왕이 반란군에게 포로로 잡히면서 무게 중심의 추가 모드 황후 측으로 갑작스럽게 기울기 시작했다.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던 헨리 주교 역시 모드 황후 편이 되었다. 이런 급변하는 잉글랜드 역사를 무대로 해서, 엘리스 피터스는 작가는 속세의 정의를 추구하는 캐드펠 수사와 그의 파트너 휴 베링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한다.

 

평소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내전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슈루즈베리 수도원과 마을이 초토화될 수도 있는 그런 위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전에 이미 실력이 검증된 휴 베링어는 웨일스의 오아인 귀네드와 동맹을 맺어 반란군들로부터 자신의 영지와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을 지키는 임무를 탁월하게 처리해낸다. 휴가 슈롭셔 북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떠났을 때, 본진을 지킨 앨런 허바드의 등장도 반갑다. 그전 에피소드에 등장한 여걸 매그덜린 수녀처럼 사이드킥으로 이렇게 시리즈의 주요 인물들을 보필해 주는 조연들도 필요하니 말이다.

 

러브 트라이앵글 역시 진부하긴 하지만, 시리즈의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번 편에서도 엘리스-멜리센트-엘리드 그리고 크리스티나 4인의 실타래처럼 엉킨 이야기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핵심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너무 속세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은 역시 캐드펠 수사다. 하지만 그가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거둘 수 없다는 핸디캡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그 점이 바로 캐드펠 수사의 장점이기도 하지 않을까. 성속의 경계선에서 우뚝 선 거인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그의 노련미에 흠뻑 빠져 버렸다.

 

이제 출간된 10편의 TCBC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앞으로 외전까지 해서 11편이 더 남아 있는데, 더욱 현명해진 해결사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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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26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시리즈 5편까지 읽었는데 빨리 읽으셧군요.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근데 5편 세인트 자일스의 나환자는 앞의 편들보다 좀 맥이 빠지더라구요. 근데 뒤로 가니 또 이런 스펙터클이.... ㅎㅎ 언제나 기대되는 시리즈입니다.

레삭매냐 2025-03-05 10:06   좋아요 1 | URL
저도 우연하게 알게 돼서
입문하게 되었는데 캐드펠 수사
의 매력이 대단하더라구요.

북하우스에서 나머지도 얼른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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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12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의 내전이 격화되어 가는 와중에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강력사건)의 해결에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초점을 맞춘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말이 안된다는 지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에 치트키가 있으니 당시가 중세라는 점이다.

 

캐드펠 수사는 십자군 전사 출신의 수도사다. 일찍이 성도 예루살렘을 비롯한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고 나서, 나이 사십이 넘어 신에 귀의를 결정했다. 세상의 경험이 많은 만큼, 평생 수사로 산 이들과 생각의 폭과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 수도원장 라풀두스도 캐드펠 수사에게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다. 성무에 묶인 다른 수사들과 달리, 캐드펠 수사는 그만큼이 자유재량권을 지닌 셈이다. 그리고 온갖 허브와 약재로 요즘으로 치면 전문의 정도가 되는 치유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문 의사가 없던 시절, 아프고 다친 이들은 모두 캐드펠을 찾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얻게 되는 정보의 질은 아주 고급이지 않았을까.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19세의 메리엣 애스플리다. 그는 지역에서 잘 나가는 영주 레오릭의 차남으로 어느날,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을 찾아 견습수사가 되어 서원할 것을 결심한다. 이에 수도원에서는 회의를 갖고, 정말 메리엣이 미래의 수도사가 될 자질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논의를 갖는다. 우리의 캐드펠 수사는 아직 메리엣이 어리니 시간을 두고 보자는 그런 편이다. 라둘푸스 수도원장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1년간의 견습수사 시간을 갖기로 결정한다. 한 번한 서원은 되돌릴 수 없으니 충분하게 시간을 갖자는 주장이다.

 

문재가 뛰어나고 귀족 출신답게 독선적인 성격의 메리엣은 주위의 시기를 산다. 더 큰 문제는 그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고함과 괴성을 지르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수도사들은 메리엣이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하고 더욱 더 그를 기피하게 된다. 게다가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심복인 제롬 수사와의 사건으로 메리엣은 태형이라는 징벌까지 받게 된다. 이거 이야기가 심각하게 전개되는데 그래.

 

한편, 북방 영주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헨리 주교와 엘뤼아르 참사회원은 피터 클레멘스 사제를 북부에 파견해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문제는 레오릭 애스플리의 먼 친척인 피터 클레멘스가 실종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때? 벌써부터 무언가 음모가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불에 탄 피터 클레멘스의 시신이 발견된다.

 

메리엣은 캐드펠 수사에게 자신이 피터 클레멘스 사제를 죽였다고 고백하지만, 우리의 캐드펠 수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지. 그는 대번에 메리엣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시리즈의 다른 편에서는 대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번 편에서는 상당히 이야기가 진행된 다음인 중반 정도에 등장한다. 물론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도망친 농노 해럴드를 투입해서 독자들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시도를 전개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의 원대한 의도를 파악하기란 독자로서 역부족이다. 결국 말미에 가서 그랬었구나 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물론 사건의 진범은 항상 소설에 출현한 인물 가운데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의도를 오직 엘리스 피터스 작가 밖에 모른다는 거지. 당연한 설정이 아닌가. 역사적 배경도 함께 하는데, 스티븐 왕의 기세에 눌려 충성을 맹세했던 체스터의 라눌프와 루마르의 윌리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당시 잉글랜드 역사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그쪽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어떤 책을 참고해야 하는지부터 막혀 버렸다.

 

수도원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해 있던 메리엣은 세인트 자일스에서 일하고 있던 마크 수사에게 보내져 함께 환자들을 돌본다. 이 소설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아버지 레오릭에게 느끼지 못했던 부정을 캐드펠 수사로부터 경험하게 되는 메리엣의 이야기는 참 훈훈하게 다가왔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내공 정도라면 이 정도의 설정은 기본인지도 모르겠다.

 

거의 내몰리다시피 수도원에 가게 된 메리엣을 지지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이소다 포리엣이었다. 이소다는 레오릭 애스플리를 찾아온 캐드펠 수사에게 당돌하게 메리엣은 자신의 남자라고 선포를 했던가. 아주 당찬 아가씨가 아닐 수 없다. 미래 자신의 연인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고, 피터 클레멘스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아주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이소다였다. 이런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야말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보다 강력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아닌가 싶다.

 

8<귀신 들린 아이>를 읽고 나서 바로 다음 편인 <죽은 자의 몸값>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 편에서는 보다 더 많은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해서 흥미를 고조시킨다. 시리즈의 나머지는 언제 나올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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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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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하는 생각이지만 나에게 도서관은 보물창고 같다고나 할까.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고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이 콜롬비아 저널리스트 출신 글쟁이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의 <한국에 삽니다>란 책이었다. 원어로는 아마 그 뜻이 아닐텐데... 스패니쉬를 모르니 알 수가 있나 그래. 대충 <봄에 온 노트> 정도인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우리네 일상에 대한 스케치는 흥미로웠다. 펼쳐들었을 때는 당장에라도 읽을 것만 같았지만, 또 너튜브도 보고 또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온갖 뉴스에 휩싸여 있다가 어제 저녁에 분발해서 다 읽을 수가 있었다. 2014년에 발표된 책이니 아마 그 즈음의 시절을 다루지 않았나 싶다. 북한에서는 계속해서 미사일을 쏴대고, 콜롬비아 대사관에서는 자국민들의 대피를 걱정하던. 처가댁인 부산을 떠나, 서울 이태원에 둥지를 튼 국제부부의 고단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미스터 솔라노는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어먹고 살겠다는 결심으로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향살이에 일견 무모하게 도전한다. , 그가 쓴 글을 부인인 이수정 씨가 번역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스페인어로 쓸까? 아니면 영어로 쓸까. 보아하니,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다국적 노마드 같은 작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원에서 일거리를 맡기도 하고, 또 단편 영화의 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에 정착한 얼치기 이방인이 아닌 쏘주와 김치찌개를 즐길 줄 아는 수도(pseudo) 코리언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또 동시에 드는 생각이 아무래도 한국 독자들도 상대해야 하다 보니 아주 신랄하게 한국 정서를 비판하는 글은 좀 자제해서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쓰기는 애시당초 존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아 그를 통해 독일 작가 빌헬름 게나치노를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냉큼 달려 나가서 절판된 게나치노 작가의 책을 사들였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전개, 대환영이다.

 

책의 어디선가 미스터 솔라노가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를 닮았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궁금해서 그의 사진을 검색해 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굳이 사실을 확인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지. 책에서 만난 사실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닌가 싶어서.

 

무슨 일이든 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제는 한국에 사는 이방인 뿐 아니라 이 땅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족쇄 같은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아무래도 이방인이다 보니 그게 쉽지 않은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한국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은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 또 기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관영방송이라고 그렇게 욕을 먹는 KBS에서 다양한 언어의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세계 각처로부터 다양한 내용의 편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흥미로웠다. 한국 아내를 구해주세요부터 일자리 그리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독서쟁이들이 계속해서 책을 가까이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방송국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해남 여행에 나선 부부의 이야기도 재밌다. 그 여행길에 그는 오늘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었지 아마. 진부하지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오늘 쓰리닷커피에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조금 행복하지 않았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돈과 지겨움 그리고 날씨 때문에 싸운다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사람살이는 어디서나 다 비슷하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역시 책에서 소개된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 레너드 코헨의 <부기 나이트>를 듣는다. 코헨 특유의 늘어지는 목소리에 잔잔하게 깔리는 베이스 라인이 이 추운 겨울밤에 참 어울리는구나 그래. 동시에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느끼는 절대적 고독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여름에 즐기는 냉면(콜드 누들) 먹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우리의 미스터 솔라노는 아마 예외인 모양이다. 이미 코리언 패치가 된 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나 그래. 참 애덤 존슨이라는 작가의 <고아원 원장의 아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절판된 책이라고 하네. 내일 도서관에 가게 되면 한 번 빌려다 조금이라도 봐야지 싶다. 분량이 700쪽이나 되네. 책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미스터 솔라노가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쪼록 글로 벌어 먹고살겠다는 그의 미친 생각이 성공을 거두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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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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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서관을 이용해서 읽을 수 있는 TCBC 시리즈는 8권과 9권을 빼고는 모두 다 읽었다. 명절에 잠시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명절 전날 중고서점에서 산 궈창성의 <피아노 조율사>를 읽고 나서 또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만 하고 주춤하던 <성소의 참새>를 다 읽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다시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이달은 넘기지 말고 다 읽어야지.

 

또 서설이 길었군. 때는 1140년 어느 봄날, 다시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자. 수사들의 새벽기도를 깨는 불청객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떠돌이 음유시인 릴리윈이었다. 살인과 절도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도피성 같은 수도원으로 피신하게 됐다. 그를 추격해온 흥분한 일단의 무리들은 수사들이 새벽기도를 드리는 성소라는 개념도 없이 그를 마구 두들겨 팼다. 우리 수사님들이 이런 불쌍한 참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그를 구하고, 행정관의 정당한 판결을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그에게 4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일가친척 하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기예를 팔아먹고 사는 릴리윈에게는 불리하다. 월터 아우리파버네 집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서 좌중의 흥을 끌어 올리도록 고용된 릴리윈은 아우리파버 집안의 실질적 주인인 줄리아나 부인의 차주전자를 깨먹고, 원래 받기로 되어 있던 3페니 중 1페니만 받고 쫓겨난다.

 

그 날 밤에, 금세공인 월터 아우리파버는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죽었고(죽은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결정적으로 그가 금고에 보관 중이던 재화들을 도둑 맞았다. 앙심을 품고 쫓겨난 릴리윈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이렇게 40일의 유예기간을 채우고 법정에 서게 된다면 그의 운명은 교수형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태도를 취하는 우리의 주인공 의사이자 수사 캐드펠 형제는 흠씬 두들겨 맞은 릴리윈을 치료하고, 그의 진술을 듣고 나서 그가 이런 사악한 범죄를 저지를 법한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한다.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슈롭셔의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 역시 캐드펠 수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진범이 잡히지 않는다면 릴리윈의 운명은 뻔할 뻔자가 아닌가 말이다.

 

추리물답게 누가 월터 아우리파버를 공격한 진범인가에 대한 추적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며느리로 들어온 대니얼의 아내 마저리가 유부녀 세실리와 통정한 남편을 개스라이팅해서 아우리파버 집안의 대권을 그동안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해온 수재너로부터 어떻게 빼앗는 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과정이 소개된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범인이 될 수 있는 가정 아래, 그네들의 사정을 전개한다. 이런 게 바로 미스터리물의 기본이 아닌가.

 

캐드펠 수사와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는 한 때 라이벌이었지만, 이제는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캐드펠이 신의 영역에서 일하는 의사이자 탐정 그리고 해결사라면, 휴 베링어는 인간계를 관장하는 관리로서 시리즈에서 맡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아무래도 케드펠이 수사라는 신분에 있다 보면, 관헌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휴는 그러한 캐드펠 수사의 필요를 충실하게 채워준다. 사사건건 캐드펠의 수사가 관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상충하게 된다면, 그 또한 답답한 설정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휴가 출장 나간 틈에 벌어진 사건에서 독자는 그런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편, 릴리윈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수재너의 하녀로 일하는 래닐트와 연정을 키워 나간다. 깐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 수재너는 래닐트에게 하루 휴가를 주고, 릴리윈에게 흠뻑 빠진 래닐트는 잔칫날 남은 음식과 수재너가 건네준 대니얼의 낡은옷을 가지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둘은 거칠 것 없는 그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등장할 차례다. 미스터리의 극적 전개를 위해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살인사건 역시 필요악이라고나 할까. 대충 월터에 대한 살인미수 그리고 절도 정도로는 약하다는 걸까. 그날 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마스터 월터의 세입자이자 자물쇠 제조공인 볼드윈 페치가 세번 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유명한 낚시꾼인 그가 익사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유능한 탐정 캐드펠 수사는 페치의 사인이 사가 아닌 질식사라는 걸 밝혀낸다. 다른 편에서는 살인사건이 대개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한다.

 

바로 전 6편에서는 정말 스펙터클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좀 쉬어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웨일스 근방의 중세 영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살인사건과 그에 따른 미스터리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맨스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빚어내는 서사가 역시 일품이다.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힌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권력의 파노라마, 마스터 월터의 주체할 수 없는 재화에 대한 욕심, 집안의 모든 걸 통제하려는 줄리아나 부인의 노욕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성소로 날아든 참새 같은 이미지의 순수한 청년 릴리윈의 사랑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변주가 어우러지면서 엔딩의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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