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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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중고서점에 들러 브라질 출신의 작가 그리실리아누 하무스의 <메마른 삶>과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샀다. <루시 게이하트>를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두어장 읽다 말았나 보다. 어제 저녁에 <메마른 삶>을 찾아 단숨에 읽었다. 분량도 적고, 20세기 브라질이라는 이국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파비아누의 사연이 우리네 그것고 많이 닮아서 독서에 가독이 붙더라.

 

브라질의 세르탕에서 혹독한 가뭄을 피해 소몰이꾼 파비아누는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다. 무시로 찾아드는 가뭄과 가난 그리고 무지는 파비아누 가족을 괴롭히는 디폴트 같은 요소다. 사실 부자들이라면, 그런 요소들은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명의 가족 가운데 하나였던 앵무새를 희생시키고 발레이아(포르투갈 어로 고래를 의미한다고 한다)가 잡아온 기니피그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파비아누 일가. 아이들조차도 마초맨 파비아누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소설 초반에 그랬던가, 파비아누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고 싶었다고. 우는 아이에게 격렬한 증오를 느끼는 파비아누.

 

어쨌든 어느 버려진 농장에 새로운 삶의 거처를 차린 파비아누는 가뭄이 끝나고 돌아온 주인에게 날품을 파는 소몰이꾼이 된다. 지주는 결코 파비아누처럼 글도 읽지 못하고 무식한 카브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실컷 파비아누를 부려 먹고는 가축들을 분배하지만, 낙인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파비아누는 다시 주인에게 헐값으로 넘기고 채무노예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 모든 게, 주인공 파비아누에게는 배움이 없는 탓이라고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은연중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주로 대변되는 세상의 기득권층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배움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주장일까. 비토리아 어멈의 요청대로 옷을 만들 옷을 사고, 생필품을 사러 시장에 나갔다가 노란 제복의 군인의 꼬임에 빠져 노름판에 뛰어 들었다가 파비아누는 밑천을 다 날려 먹고 낭패에 빠진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군사독재가 횡행하던 브라질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저격한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헌정질서를 뒤엎은 군사 독재정권이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한 적이 있었던가.

 

가진 돈만 날렸으면, 파비아누는 그저 운이 없었다고 하겠지만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일단의 군인들에게 포위된 파비아누는 마체테로 실컷 두들겨 맞고 결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가 감옥에 갇힐 이유가 있었던가? 폭압적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성과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이 사건으로 파비아누는 그 좋아하는 술집 출입도 꺼리게 되었다. 이런 대중의 자발적인 자제야말로 군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가.

 

소설에는 파비아누 가족들의 시선이 차례로 등장한다. 아이들의 시선도 나오지만 좀 약하다. 대신 비토리아 어멈과 가족에 헌신했지만 비참하게 죽고 마는 발레이아의 시선이 주목할 만하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저 그녀에게는 제대로 만들어진, 제분소 토마스 씨가 가지고 있던 침대만이 삶이었다. 유랑민 같이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파비아누 가족에게 침대란 어떤 의미였을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이지 싶다. 그리고 유랑을 멈추고 한곳에 정착하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초 파비아누와 달리 비토리아 어멈은 셈도 할 수가 있었고, 자신의 남편이 지주에게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음 타자는 발레이아다. 아이들보다 더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 가족들이 기아에 시달릴 적에는 통통한 기니피그를 잡아 아사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도 했다. 또한 태어나면서도 파비아누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파비아누는 발레이아에게 가차 없이 총질을 해댔다. 역설적으로 발레이아의 신세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파비아누의 미래이기도 했다. 지주에게 반항한다면, 땅이 없는 소작농 신세의 카브라로서는 해고와 더불어 쫓겨남을 의미한다. 그에게 선택지가 있었을까? 심지어 그는 연대할 동지조차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결정은 야반도주였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냐는 도박에 나선다. 문제는 모든 기회가 사라진 다음에 내린 결정이라는 점이다. 사실 인간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요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자각,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액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파비아누는 도주에 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메마른 삶>이 마냥 희망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말미에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결국 발레이아처럼 소용이 없어진 이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의 자식들은 대도시가 원하는 순수한 노동자로 수용되게 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파비아누는 자신을 노름판이라는 함정에 빠뜨려서 돈을 갈취하고, 감옥까지 쳐넣은 노란 제복의 군인을 만나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마체테 칼날을 휘두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종복으로 활동해야 하는 군인들이 대표하는 정부라는 조직에서 퍼트린 선전선동에 세뇌된 대중(파비아누)은 반란을 꿈꾸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행동하지 못한다. 1930년대, 브라질 대중이 직면한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돼지를 잡아 시장에 팔러 나왔다가 세금징수원에게 당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죽음과 세금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던가. 하무스 작가는 소설의 어딘가에서 파비아누가 배웠다고 해서 그의 삶이 나아지거나,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한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자각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파비아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묻게 된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기자, 정치인(시장) 그리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메마른 삶>1938년에 발표된 하무스의 네 번째 소설이다. 브라질 법에 따라, 사후 70년이 지난 202411일 저작권이 만료되었다고 한다. 책을 살펴보면, 저작권 부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유 이용 저작권(public domain) 책인가 보다. 처음 만난 하무스 작가의 <메마른 삶>은 짧지만 강렬했다. 하무스의 다른 작품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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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0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보물을 건지셨네요^^

레삭매냐 2024-11-21 09:55   좋아요 1 | URL
네 그러합니다 ^^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도
같이 사서 읽고 있는데, 여러 책들
을 동시에 읽는 바람에 지지부진
하네요 ㅠ

젤소민아 2025-01-08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늦었지만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늘 알찹니다~~

2025-01-08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8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리대왕 : 그래픽 노블
아메 데용 그림, 이수은 옮김, 윌리엄 골딩 원작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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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그래픽노블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원전을 빌려서 먼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소설은 번역 이슈 때문인지, 소문만큼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픽노블 <파리대왕>은 달랐다.

 

같은 원전을 바탕으로 했으니 내용이 다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그래픽노블에 좀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게 또 영화하고는 다른 맛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독자는 원전과 어떤 점에서 변별력을 찾아야 하는 걸까. 원전을 얼마 전에 읽어서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그래픽노블을 만나니 그 장점에 반해 버렸다고 해야 할까.

 

원전에서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던 부분들이 그래픽노블에서는 좀 더 시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물론, 원전의 재창조를 맡은 아메 데용 작가의 상상력이 어쩌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랠프와 뚱보 그리고 잭들이 표류하게 된 섬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그들의 고립성에 대해 좀 더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이것은 작가가 시도한 하나의 실험이라고나 할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격체들이 그들을 지도하거나 통제할 어른들 없이 고립된 섬에 모였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문명국가 영국에서 자란 소년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놀이와 먹거리 충족이라는 본능에 충실해지고 구조가 우선이라는 랠프와 뚱보는 소수파가 된다. 이런 권력의 이동이야말로 윌리엄 골딩이 원작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잭 메리듀와 로저 일당은 구조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주의를 내세운다. 사실 랠프와 뚱보가 주장하는 구조는 언제올지 모르는 희망이고, 실현될 가능성도 요원하다. 전자의 주장이 자력으로 가능한 현실이라면, 반대로 후자의 주장들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두 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화재로 섬을 홀라당 태워 먹을 만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섬 외부에 배가 보이면 봉화를 올리기로 한 팀들이 사냥에 정신이 팔려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잭 메리듀 일당은 사냥을 핑계로 얼굴에 위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종의 마스크로 자신들의 수치심을 가리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방식이었다. 동시에 위장을 거부한 랠프와 뚱보를 배척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동시에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일종의 야만화 선언을 위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생존을 위해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뚱보의 합리적 조언에도 잭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지금 이대로, 당장의 먹거리들만 해결이 된다면 섬에 남아도 좋다는 식의 사고의 발로다.

 

원작의 아우라가 너무 강렬해서 그래픽노블을 맡은 아메 데용 작가의 부담이 크지 않았을까. 핵무기 경쟁으로 세상에 공멸해 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1950년대, 인류의 문명이 과연 올바른 길로 진화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기반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이 넘실거린다. 물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문명세계에서 소외된 인간들은 결국 다시 야만 혹은 자연친화적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런 형질은 과연 선천적인가? 아니면 후천적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어지는가. <파리대왕>의 그래픽버전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년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하늘에서 내려온 짐승'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화도 주목할 만하다. 공포는 대상에 대한 진실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이미 죽은 조종사를 괴물 혹은 괴상한 짐승이라고 규정한 소년들은 아예 근처에조차 가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철 있는 어른이었다면 조종사의 낙하산 천을 이용해서 오두막 지붕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종사가 탈출하면서 지니고 있던 물품 역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근원적 공포는 모든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켜 버렸다.

 

잭 메리듀가 실권을 잡기 전에, 선거로 선출된 두목 랠프는 우리 보통 사람을 상징한다. 그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뚱보는 합리적 사고의 선봉장이다. 잭 무리의 상징인 무력을 애초부터 사용할 수 없기에, 뚱보는 잭 대신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랠프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그런 뚱보가 잭 일당에게 죽은 뒤, 랠프의 운명 역시 풍전등화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사냥감이 되어 쫓기던 랠프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문명의 구조를 받게 된다.

 

마침내 섬에 도착한 순양함에서 파견된 일군의 해군들이 소년들에게 묻는다. 몇 명이나 되는 소년들이 섬에 있느냐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알 수가 없었던 그들은 할 말이 없다. 인간사냥을 하던 잭의 무리에게 무슨 재밌는 놀이를 하고 있냐는 말에도 역시 대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하더라도, 관점에 따라서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진 장교는 그들이 순진무구할 거라는 예단을 하고 있었던 것일 지도. 결국 외부인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그래픽노블은 보여준다.

 

엔딩의 극적인 장면에 이르기까지 아메 데용 작가는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활극을 지어낸다. 원전에서 출발해서 무언가 원전과 다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구상은 그런 점에서 성공했다는 판단이 든다. 원전에 등장하는 '오랑캐=savage' 번역 때문에 정말이지, 새로운 번역을 기대해 보고 싶다. 그게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원전보다 그래픽노블에 좀 더 높은 평가를 하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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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08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랑캐 ㅎㅎ
야만인 놔두고 오랑캐
너무했어요
저도 그것때문에, 그외에도 더 있지만 신뢰가 안가더라구요. 일단 끝까지 읽고 원서로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4-11-08 19:09   좋아요 1 | URL
책이 어렵지 않아 저도 언젠가
한 번 원서로 도전해 봐야지
싶더군요 !

원서로 선독하셨다니 고저
대단하십니다.

번역이 참... 그랬습니다.
 
나를 안아줘 - 자크 프레베르 시화집
자크 프레베르 지음, 로낭 바델 그림, 박준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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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말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다. 희망도서로 신청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그래픽노블>이 도착했다고 해서. 집에서 출발할 때는 추웠는데, 도서관에 가는 동안 더워졌다. 아니, 걸어서 더워졌는지도. 쓱데이라 쇼핑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마트에 갔을 적에 지하 주차장 온도는 31도였다. 11월인데 이거 여름인가 싶더라. 근데 걱정하지 마, 다음 주에는 바로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니까.

 

또 살짝 옆으로 새는구나.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화집 <나를 안아줘>였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하지만, 리뷰를 쓰기 위해 일단 대출해서 집에 가져왔다. 책을 다섯 권이나 빌려서 집에 오는 내내 무거웠다. 내가 쓰는 쓰는 리뷰는 그만큼의 무게일까.

 

40쪽 남짓 되는 시화집에는 파리에 사는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내가 또 이런 거 좋아하지. 로낭 바델이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체에서는 왠지 2년 전에 작고하신 장 자크 상페가 떠올랐다. 프랑스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스타일의 왠지 헐거워 보이는 그런 그림체들을 선호하는가 싶기도 하고. 세밀화 보다는 왠지 모르게 빈 공간 혹은 여백의 미학의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 마음에는 든다. 카툰도 왠지 미국 스타일의 그것보다는 유럽 작가들의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시화는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니 키스를 하는 커플에 대한 자크 프레베르의 시선이었다. 이곳이 한국의 서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대중의 시선은 비슷한 모양이다. 누군가는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해서, 공공장소에서 그런 애정행각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네. 온전히 그 시간은 그들의 것이라고, 작가는 선언한다. 그냥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나.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너그러움과 관대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국 삶에서 온 게 아닐까. 누구나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아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아니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모두 다 알고 싶지도 않다. 결국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본질적 질문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오페라하우스 같이 으리으리한 홀에 우뚝 선 지휘자. 지휘자 좌측에서는 하프로 무장한 궁수 같은 이가 사랑의 화살을 우측의 가냘파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날리기 일보직전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에게 노래 혹은 화살로 평생 갈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공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전달해도, 그전에 이미 무언의 제스처나 공기의 흐름 같은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던가. 짧은 메시지와 한 컷의 그림만으로도 참 많은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도마뱀이 내 손에서 튀면서 꼬리를 남기고 떠났대.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누군가를 구속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남긴 부작용을 작가는 도마뱀 꼬리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시시각각 소용돌이 치는 내 감정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는데 어찌 타인의 감정을 내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삶을 알지 못하고, 날을 알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사랑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가. 삶이나 사랑이 모두 예정된 길로만 가게 된다면 그 또한 심심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변주되면 또 그것도 감당할 수 없겠지만.

 

짧은 시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자크 프레베르의 <나를 안아줘>에는 많은 울림이 담겨 있다.뭐랄까 오래 전, 진지보수 공사 나가서 땅에서 캐낸 칡을 씹는 그런 맛일까. 씹을수록 맛이 나는, 읽을수록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원제 <Embrasse-moi>(웅브하세 무아~)는 샹송 가수 뤼시엥 드릴이 1946년에 발표한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드릴의 샹송은 아주 간드러진다. 책 읽다가 이렇게 샹송곡도 알게 되는구나.

 

[뱀다리] 나온 지 4년 밖에 안 되었는데 절판이라니,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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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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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는 채널은 다양하다. 종이신문에 실리는 책 소개도 참조하고, 요즘에는 인스타 그리고 스레드를 통해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된다. 나의 인스타 피드에 오른 캐드펠 수사 시리즈도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렇다면 또 내가 참을 수가 없지.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무려 20권이나 된다는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빌렸다.

 

우리의 주인공은 58세 정도로 추정되는 퇴역한 십자군 전사 캐드펠 수사다. 캐드펠 수사는 젊어서 세상을 주유하면 많은 경험을 쌓았다. 동방에 가서는 성도 예루살렘에도 갔었다고 했던가. 이 양반은 수도원보다 어쩌면 속세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런 매력을 지닌 특이한 수사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러 여성과 연애 경험도 많은 것 같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중세 교황들은 자식도 여럿 두었었다.

 

지난 15년 동안,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의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허브 밭을 가꾸며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게 살던 캐드펠 수사에게 이제 막 파란만장한 모험이 펼쳐질 5월의 어느날이 다가왔다.

 

클뤼니 수도회에서 촉발한 성인들의 유물 그리고 유골 수집에 대한 열풍은 슈루즈베리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광과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 줄 성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야심가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결탁(?)한 콜룸바누스-제롬 수도사 콤비의 활약으로 귀더린이라는 곳에 있다는 성처녀 위니프리드의 유골 발굴에 나선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여기서 정확하게 중세를 휩쓸었던 성물 수집 열풍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시선을 보여준다. 나도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가톨릭 사제로 로마에서 유학하던 사촌 형님과 성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 성화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자 문제는 귀더린 사람들이 슈루즈베리에서 파견된 6인조 유골 발굴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 캐드펠은 웨일스 출신으로 잉글랜드 사람들을 위한 통역으로 발굴단에 선발됐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에 있던 수사라기보다 건달 같아 보이는 존 수사도 같이 동행한다. 캐드펠은 특유의 친화력과 같은 웨일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역 유지인 리샤르트와 그의 딸 쇼네드, 대장장이 베네드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캐드펠과 대조적으로 노르만 귀족 출신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고압적이고 오만한 자세로 귀더린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산다. 사실 국왕의 권력을 능가하던 중세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 촌구석에 사는 이들의 외지인에 대한 반감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오해에서 비롯된 충돌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유지 리샤르트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망신만 당한다. 더 큰 문제는 다시 한 번 성 위니프리드의 유골 이전 문제에 대한 협상을 하기 위해, 모임에 오던 리샤르트가 행방불명되고 나중에 싸늘하게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소설은 미궁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우리 캐드펠 수사가 실력을 발휘할 순서다. 중세 사람답지 않게, 리샤르트가 살해된 현장을 보존하라고 귀더린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런 건 현대식 수사 방식이 아닌가. 이야기는 성 위니프리드 유골 이전 문제에서, 리샤르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지문 검사나 CCTV나 녹음 자료 같은 범행의 전모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캐드펠 수사의 수사는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식도 상당히 중세스러운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가 행복한 엔딩이다. 역시 수사답게, 모든 건 신의 뜻에 맡긴다. 신의 종을 자처하는 수사지만 캐드펠은 미제 사건을 상당 부분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현대식 탐정들과 달리, 일이 흘러가는 대로 억지스럽지 않게 하는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47년 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드스쿨 스타일에 아주 세련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 캐드펠은 신의 소명을 받은 수사지만, 동방의 성도에서는 사라센인들의 화살 공격에 맞서 싸운 전사였으며 15년 동안의 수도원 허브 밭 주인으로 진통제 역할을 하는 양귀비즙의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아는 그리고 속세의 잔기술을 사용하는 데도 능한 그런 인물이다. 수도원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존 수사가 사랑을 찾아 떠날 때에도 전적으로 공감해 주지 않았던가. 엄숙한 신의 뜻과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의 본질을 잘 아는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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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1-0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결 방식은 중세스러운데 실사 내용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3권 수도사의 두건은 캐드펠 수사가 좋은게 좋은거지라고 하면서 끝맺어지거든요. 진짜 설마 이렇게 맺을까 싶은데 딱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이 시리즈 너무 좋네요. 지금 4권 읽고 있는데 갈수록 더 좋습니다. 그리고 벌써 10권까지 나왔어요. 신나요. ㅎㅎ

레삭매냐 2024-11-01 12:48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1권 다 읽고 나서
바로 10권으로 넘어 갔답니다.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수배해
서 보려구요.

한동은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옴팡지게 빠져서 보낼 듯 하
네요. 아, 당장 읽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11-01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권이나 되는 시리즈네요.
일단 한 권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배경이 중세라서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4-11-01 12:54   좋아요 1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B4CraGmc7Xw

BBC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대요.
너튜브에 있는가 보더라구요.

위키피디아를 참조해 보니
1편의 배경이 1137년 5월이라고
하네요.

엘리스 피터스는 1977년부터
1994년까지 17년 동안 캐드펠
시리즈 21편을 썼네요.
현대판 발자쿠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Forgettable. 2024-11-0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새로 나와서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11-01 14:1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
예전에도 한 번 나왔던 것
같더라구요. 저희 도서관
에 오래 전 버전이 있더라구요 ^^

전 21권의 완간을 기대해 봅니다.

coolcat329 2024-11-0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2권 거의 다 읽어가는데 정말 캐드펠 수사 때문에 읽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참 끌리는 캐릭터에요.

레삭매냐 2024-11-01 19:5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저는 1권에서 10권으로 건너
뛰어 읽고 있답니다 ^^

중간도 읽을 계획이랍니다.

캐드펠 수사, 마음에 드는 캐릭
터입니다.

stella.K 2024-11-0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리즈 첨 나왔을 때 재밌다고 해서 사 봤는데 뭐가 쟀다는거지? 읽다 결국 포기한 적이 있어요. 제 스탈은 아니던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때 왜 그랬을까 참회하며 읽게 될까요? 😢

레삭매냐 2024-11-01 19:52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서 찾아 보니 무려 20년
전에 나왔더라구요 :>

어쩌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또 보게 되면 감흥이 다를 수도 있
지 않을까요. 참회까지야...

stella.K 2024-11-01 19:59   좋아요 1 | URL
헉, 20년 밖에 안 됐나요? 전 한 30년쯤 됐나했더니. ㅎㅎ
그렇긴 하죠? 첨 읽을 땐 뭐야? 하다가도 나중에 읽으면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어? 할 때도 있죠.
이 시리즈가 그런 게 되길 바라며 언제고 함 읽어 보겠습니다.

서니데이 2024-11-01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도서관에서 이 시리즈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때는 그렇게 인기있는 책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나오면서 표지가 달라져서 잘 몰랐는데, 리뷰 보니까 평이 좋은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11-02 10:29   좋아요 1 | URL
저는 이런 책이 있는 지도 몰랐
는데, 예전에 나온 책을 아시는
분들이 역시 알라딘 서재에는
많네요.

무언가 새로 만나는 기분이라
그런지 열심히 달려볼까 합니
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네요

레삭매냐 2024-11-03 00:39   좋아요 1 | URL
시리즈 시작부터 아주 화끈하게 나갑니다.
 
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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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하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었다. 사실 하도 그전에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작 읽어본 적은 없는 그런 고전이라고 해야 하나. 도서관에 들러서 <육두구의 저주>를 찾다가 눈에 띄어 빌려서 바로 다 읽어 버렸다.

 

미국 대학생들의 필독서라고 하던데, 읽기 쉽고 주제가 비교적 뚜렷해서 인기가 있지 않나 싶다. 책은 1954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번역이 많이 아쉬웠는데, savage를 오랑캐로 번역한 건 좀 아닌 듯 싶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핵전쟁이 일어나고, 영국 출신의 소년들이 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남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고립된 장소, 부족한 먹거리 그리고 분출하는 갈등, 뭐 이 정도 설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말이다.

 

6살부터 대략 12살에 해당하는 소년들은 처음에는 그나마 민주적인 방식으로 랠프를 지도자로 선출한다. 소라를 불어 소년들은 모은 랠프가 대장이 되는데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돼지(피기)의 역할이 컸다. 다른 소년들이 쾌락주의자라고 한다면, 돼지는 상당히 자신들이 처한 사실을 잘 파악하고 나름 최선을 도모하는 그런 인간형이다.

 

랠프와 돼지 그리고 사이먼이 이성을 대변하는 한 패라고 한다면, 성가대 출신으로 사냥부대를 자처하는 잭과 로저 일당이 반대편을 구성한다. 장발족 랠프들은 우선 탐험을 통해 고립된 섬의 지형을 파악하고, 산꼭대기에 봉화를 피워 지나가는 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구조받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자력으로 섬을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타당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무인도에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머물 수 있는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는 어린 친구들에게 설파한다.

 

반면,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인간형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야만으로 치닫게 되는 잭이 이끄는 사냥부대는 섬에 사는 야생 멧돼지를 잡아 배를 채우자고 주장한다. 전자가 상당히 계획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그런 계획이라면 후자는 당장 입에 채워지는 즐거움과 군중을 자극하는 단선적 계획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자랑스러운 대영 제국의 후손으로 랠프들이 문명을 대변하는 그런 캐릭터로 그려진다면, 잭 일당은 그에 반하는 이단적인 성향이 농후하다. 랠프와 돼지가 우연히 얻은 소라 나팔은 권위를 상징한다. 누구든 회합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소라를 들고 말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든다. 하지만, 이 또한 잭 패거리의 횡포로 나중에 가서는 별다른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니까 대중을 즐겁게 해주고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 그게 문명이든 야만이든 상관 없다는 게 윌리엄 골딩이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실제로 소설에서 잭의 사냥부대가 결국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고, 잭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니 랠프는 자신의 동지들인 사이먼과 돼지를 차례로 잃게 되면서 재기불능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실 불 피울 도구조차 없는 아이들이 돼지의 안경을 화경으로 사용해서 불을 붙이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대책이 없는지 잘 알 수가 있다. 내가 랠프라면, 아이들을 동원해서 비행기에서 추락한 잔재들을 끌어 모아 오두막 짓는 자원으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서 거의 광기에 미쳐 날뛰는 잭 패거리를 초기에 제압하는 방식은 또 어떨까. 소년들의 회합에서 정한 합의와 규칙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난 잭들은 오로지 사냥에만 미쳐 날뛰다가 결국에는 동료들조차 죽이게 되는 비극에 도달하게 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사실 짧지만 강렬한 성장소설의 외피를 두른 <파리대왕>은 영국 모험소설의 전통을 따르면서, 통제되지 않은 욕망이 어떤 비극을 부르게 되는지 강렬한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미 소년들이 아무런 도구나 장비 없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을 때, 생존을 위한 광기의 폭발은 예정되어 있었고,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한편, 소설에서 폭력과 광기를 담당한 잭 역시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 멧돼지로 대변되는 식량이 결국 소년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잭은 사냥 부대의 리더가 되어 먹을 거리로 그들을 지배한다. 물에서 올라온 짐승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짐승의 실체에 대한 규명 없이, 그런 심리적인 요소들조차 자신의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꼬마들의 무섬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이먼은 하늘에서 떨어진 짐승의 실체가 사실은 죽은 조종사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 직접 확인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이먼이 광기의 축제가 한창 진행되는 순간에 등장해서,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다음 타자는 돼지였고, 그나마 이성의 끈을 놓치 않았던 랠프마저 그들의 죽음이 살해가 아닌, 어쩌면 우연히 발생한 사고였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에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파리대왕>에서 윌리엄 골딩이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야만과 문명은 한 끗 차이라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리 우리가 문명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극한에 내몰리게 된다면 결국 우리도 소설에 등장하는 '새비지' 무리와 다를 게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아직 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새비지 무리의 소년들은 당장의 허기를 채우고, 즐거울 수 있다면 나머지는 알 게 뭐냐는 식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상위 권력을 가진 어른들의 부재에서 오는 아노미적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에 나온 책이고, 또 그 후로 비슷한 상황 설정을 가진 여러 가지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다 보니 입소문만큼의 강렬한 무언가는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소년들과 비슷한 나이에 이 책을 읽었다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려나. 너무 무게를 주지 않고, 가볍게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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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30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기 어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품 아니겠습니까?
저도 중학교 땐가 사 두기만하다 결국 못 읽었죠.
어렵다기 보단 재미없는 작품이었군요. 어째스까~ ㅎ
그래도 영화는 두번쯤 본 것 같은데 인상 깊었던 기억이나요.

레삭매냐 2024-10-30 07:45   좋아요 1 | URL
아 맞습니다, 영화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영화는 책하고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네요 :>

1950년대에는 수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70년이 지난 다음
에는 좀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1-0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게 중론인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4-11-03 00:40   좋아요 1 | URL
번역이 너무 거시키합니다.

새로 나온 <파리대왕:그래픽 노블>
이 훨씬 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