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서 기록

 

지난달에는 모두 6권의 책들을 만났다.

아무래도 책보다 다른 재미를 붙이다 보니, 책읽기가 소홀해진 그런 느낌이다.

 

너튜브라는 신세계를 만나 이것저것 보다 보니 책읽을 시간이 없더라.

확실히 너튜브가 대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류에 잘 편승하지 않는 나도 그렇게 매달리니 말이다.

 

하도 타령들을 해대서, 오징어 게임도 두 편 보고... 그 다음에는 안봤다.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리고 대망의 <>도 봤다. 영화는 정말 황홀했다.

 


올해초에 세운 나의 목표가 일년에 책 120권 읽기였는데 지난달에 끝냈다. 예전에는 미친 듯이 그렇게 책을 읽곤 했었는데 이제는 좀 수그러든 모양이다. 책은 여전히 사대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인천에 갔다가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 호텔> 그리고 알리나 브론스키의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를 샀다. 두 권 모두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잡고 있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할렘 셔플>이 끝나면 도전할 계획이다. 화이트헤드 작가의 신작은 이전의 두 작품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를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왠지 <언더그라운드><니클>에서 보여준 그런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나 할까. 물론 재미는 만점이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요즘 주식으로 옮겨간 그런 느낌이다. 지난 십여년 동안 책에 미쳐 살았었는데... 이제는 소소한 용돈벌이, 아니 어쩌면 그렇게 돈을 벌어서 책을 살라고 하는 건 아니고? 욕심을 자제하는 법도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상장한 엔켐으로 몇 권의 책값 정도는 벌었다. 공모주로 여름에 무턱대고 들어간 롯데렌탈 말고는 꾸준하게 수익을 내고 있으니 다행이지. 첫 공모였던 크래프톤에서 거의 망할 뻔 했으나 존버로 손해보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탈출한 게 그나마 위안이다.

 

낼 모레 카페이 상장에서 도끼샘 책값을 벌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열책에서 낸 금장 표지의 책을 보니 정말 손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 열책은 진작에 이런 책들을 낼 것이지 기존에 책 산 사람들 멕이는 건가. 부디 카페이의 성공적인 주식 시장 데뷔를 기대하며... 나의 도끼샘 책들이 달려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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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01 1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징어게임은 딱 두 편 봤어요.ㅎㅎ
목표 이미 달성하셨군요!! 목표는 세워야 달성을 하게 되나봐요.
저는 목표 없이 읽었더니 이제 겨우 30권 읽었나?? 싶어요. (몇 권 읽었는지도 모르는;; 반성!)
근데 존버가 무슨 의미에요??( ˝);;;
매냐님도 도끼샘 책을 사실 계획이시군요!!
그런데 금장이 손에 묻거나 하진 않을까요?? (돈키호테 책 생각남요..ㅠㅠ 아, 그건 은장이었나??)

레삭매냐 2021-11-02 00:35   좋아요 2 | URL
보통 100권 정도를 잡고 초과달성
을 목표로 하곤 한답니다.

도끼샘 책은 페이퍼에도 적었다시
피, 카페이 공모가 성공적으로 끝
나면 그 자금으로다가 ^^

존버는... 끝까지 막무가내로 버티
자 뭐 그런 뜻으로 알고 있답니다.

페넬로페 2021-11-01 22: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너튜브나 넷플릭스에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6권이면 양호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보다가 넘 슬퍼서 다 못 본 상태이고 저는 넷플릭스로 ‘갯마을 차차차‘ 두번이나 돌려보고 있습니다.
저한테 너무 힐링을 주네요~~
한번씩 주식투자 공부에 대한 팁도 올려 주시기 바래요.
그곳으로 눈을 좀 돌려야겠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02 00:37   좋아요 4 | URL
제가 그렇답니다.
특히 솔캠의 불멍은 진차 -

6권 뭐... 욕심낸다고 원하
는 대로 되질 않더군요.

저도 주린이인지라, 고저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정보
로 책벌이 정도 하고 있답
니다.

독서괭 2021-11-02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끼샘 책값 벌기…!! 그 이상으로 성공하시길 빕니다^^
지난달 6권 읽으셨다니 인간적인 숫자다! 하다가 이미 지난달에 연 120권 목표를 끝내셨다는 거 보고 아니 그럼 그렇지.. 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02 08:12   좋아요 3 | URL
두 쪽에 공모를 신청해서
하나는 도끼샘 책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우를 기대해 봅니다 ㅋㅋ
성투 고고씽!!!

올해는 치트키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픽 노블이니 얇다란 책들을...

새파랑 2021-11-02 06: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이 읽으신 6권 전부 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책값을 위해 카페이 상장과 상한가를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21-11-02 08:13   좋아요 3 | URL
지난달에 만난 책들은 모두
흡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권수는 적지만요.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니 급속
도로 독서 의지가 박약해지는...

성투 응원 감사합니다 !!!

mini74 2021-11-02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폭망 ㅠㅠ 집에 있는 책 사세요 책 사세요 ! 성냥팔이소녀가 아니라 책팔이아줌마 될 판입니다 ㅠㅠ 매냐님은 훨훨 날길 가원하며 ㅎㅎ

레삭매냐 2021-11-02 20:36   좋아요 2 | URL
저도 오늘 램프의 요정이 주는
그놈의 적립금 때문에 또 책
을 사게 될 그런 팔자랍니다...

근데 뭔 책을 살 지는 아직
미정이랍니다 ^^
 


소외와 고독 그리고 숙명의 이야기

 

어제 우연히 20년 전에 본 영화 A.I.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 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 생각이 났다.

 

내친 김에 위키피디아와 너튜브를 통해 검색해 보니 영화 A.I.의 원작은 따로 있었다. 1969년 브라이언 알디스라는 작가의 단편 소설 Supertoys Last All Summer Long이 원작이었다. 영화와 소설은 비슷한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이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영화 버전이 더 확장해내지 않았나 싶다.

 

일단 원작 소설의 주인공들인 헨리와 모니카 스윈튼, 데이빗 그리고 곰돌이 인형 테디는 그대로 등장한다. 원래 이 소설의 판권을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사들여서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수차례 제작이 연기되던 중, 1999년 큐브릭 감독이 사망하면서 스티븐 스필버르가 영화 제작의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원래 큐브릭 감독이 의도한 어두운 부분들이 스필버그식 페어리 테일로 순치된 게 아닌가 싶다.

 

원작에서 미래 세계에서 엄격한 인구 통제가 이루어진다는 설정인데, 영화에서는 기후문제로 거의 세계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상황이라는 점이 좀 다른 것 같다. 오프닝에서 사이버트로닉스의 하비 박사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새로운 스타일의 로봇을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비 박사의 호언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불치병으로 아들 마틴을 저온상태로 보관하던 스윈튼 부부(헨리와 모니카)는 하비 박사의 제안으로 어린 아이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데이빗을 입양하기에 이른다. 단 반품하는 경우, 폐기한다는 조건을 달고서.

 

물론 처음에 데이빗이 스윈튼 가정에 적응하는데 껄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아들 마틴을 대신할 로봇의 입양에 소극적이던 모니카도 점점 사랑스러운 데비잇의 모습에 끌리기 시작한다. 원작에도 등장하는 슈퍼토이 곰돌이 테디가 홀로 집에 남아 있던 데이빗의 절친이 된다. 그리고 데이빗이 마틴의 빈 자리를 차지할 즈음, 기적적으로 마틴이 치료되었다는 소식이 스윈튼네 가정에 날아든다. 부모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꼬맹이 로봇 데이빗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누군가의 행복이 또 다른 이에게는 불행이란 말이었을까.

 

마틴은 데이빗을 사주해서 엄마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잘라 오라고 사주한다. 식탁에서 시금치 사건(!!!) 등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아버지 헨리는 모니카에게 이제 마틴이 돌아왔으니 데이빗을 반품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한다. 반품하면 폐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모니카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결국 데이빗을 데리고 숲 속에 가서 버리고 돌아온다. 이 장면에서는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첼>이 연상됐다.

 

그 다음에는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골로 조(주드 로 분)가 등장할 차례다. 여자박사를 자처하는 지골로 조는 루즈 시티에서 여성 고객들에게 기쁨을 주는 그런 로봇이다. 하지만 그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로봇이면서 로봇 같지 않고 또 인간 같지도 않은 다중적인 캐릭터라고나 할까.

 

숲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데이빗은 폐기된 로봇들을 사냥해서 잔인하게 파괴해 버리는 로봇 사냥꾼 집단 <플레어 페어>에게 사로 잡히게 된다. 로봇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일단의 인간들은 숲에서 방황하는 로봇들을 잡아 잔인한 방식을 동원해서 파괴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에는 나오지 않던 극적인 장면들을 추가해서, 점점 더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플레어 페어 쇼에서 탈출한 로봇 데이빗은 진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지골로 조와 함께 루즈 시티에 모든 것을 다 아는 박사를 찾아간다. 피노키오와 블루 페어리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영화에 몰입한 관객들에게는 불가능한 소설에 불과하지만, 진짜 인간이 되어 엄마 모니카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하는 데이빗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진심이었다. 결국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심과 인정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영화 <A.I.>는 방점을 찍어 버린다.

 

결국 물에 잠긴 맨하탄으로 사이버트로닉스의 책임자 하비 박사를 찾아가 자신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데이빗.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잠수정을 물속에 잠긴 블루 페어리를 찾아간다. 그 전에 자신의 동료였던 지골로 조는 경찰에게 다시 체포된다. 그리고 물 속에 잠겨 버린 데이빗.

 

그 다음의 이야기는 좀 황당한데, 결국 빙하기가 찾아와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전멸해 버린다. 2,0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지구별을 찾아온 외계인에 의해 발견된 데이빗. 생존한 인류가 한 명도 없는 가운데 A.I. 데이빗은 외계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들은 데이빗이 간절하게 소원하는 엄마 모니카와의 하루를 선물해준다.

 

외계인들은 인류의 흔적으로 인류를 다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단 하루 밖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데이빗에게 알려준다. 때마침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곰돌이 테디의 도움으로 데이빗은 2천년을 기다린 꿈을 마침내 이룬다. 그리고 소멸한다.

 

개인적으로 <A.I.>는 정말 슬픈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엔딩은 결국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숙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큐브릭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로 만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스필버그 스타일의 동화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서 빛나던 데이빗의 요즘 모습.

너무 달라져 버려서 좀 충격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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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0-31 09: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원작 소설이 있었군요.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저도 궁금하네요.
할리 조엘 오스먼트 눈코입은 그대로인데 얼굴 면적이 넓어지면서 완전 딴 사람이 되었어요.

레삭매냐 2021-10-31 10:48   좋아요 4 | URL
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았는데...
역변이 참 안타까운 배우가
아닐 수 없네요.

그 시절에는 정말 장난 아니
었는데 말이죠.

아마 큐브릭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면 배우들이 다 미쳐
버렸을 지도 ㅋㅋㅋ

새파랑 2021-10-31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세월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군요 ㅜㅜ
저 이영화 봤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레삭매냐님 리뷰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

레삭매냐 2021-10-31 10:48   좋아요 4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
으로 본 영화라 그런지 진짜
기억이...

오늘 아침에 너튜브에서 리뷰
영상을 찾아 보았는데 대부분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

참 슬픈 영화였습니다.

얄라알라 2021-10-31 1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 Dune 팬이시죠? AI 슬펐어요. 저도...슬픈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적인 것 뿐 아니라 후에 주드로의 변모도 슬프고요.

레삭매냐 2021-10-31 18:32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영화 나오기 전에
책을 먼저 보겠노라고 작심했
으나, 작심은 작심으로 끝나
부렀습니다. 그런 거죠.

A.I. 영화는 곱씹을 수록 슬프
지 않나요... 주드 로는 츤데레
같았어요.

mini74 2021-10-31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ㅎㅎ헉 나의 데이빗이 이럴리 없어요 ㅎㅎ 자꾸 보니 귀엽네요.

레삭매냐 2021-10-31 19:18   좋아요 2 | URL
생각하면 할수록 슬퍼지는
그런 영화라고나 할까요 -

데이빗의 역변에 좀 충격
먹긴 했습니다.

붕붕툐툐 2021-10-31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변의 아이콘이군요~ 그 귀욤한 아이는 어디로? ㅎㅎ 저도 몇번 보려고 했는데 못 본 영화예요~ 이렇게 만나니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11-01 07:2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한 때 잘 나가던
아역 배우였는데 나중에 커서
잘된 영화 제목은 들어본 적
이 없어서리...

라로 2021-11-01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기 잘하는 꼬마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렸을 때 모습이 보여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영화에요,,, 넘 슬픈...ㅠㅠ
듄은 아직 못 보고 있어요. 10월은 왜 이리 바쁠까요!!!ㅠㅠ 11월은 듄 보는 목표!!^^;;;

레삭매냐 2021-11-01 18:36   좋아요 2 | URL
어려서 그렇게 연기를 잘했는데
커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듄>은 반다시 보세요.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후속편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11월도 수월치 않게 그렇게
휙휙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라로 2021-11-01 19:59   좋아요 2 | URL
그렇죠! 저도 11월이 수월치 않을 것 같긴 해요.
11월 7일까지 숙제 3개 내야 해서 이번 주도 볼 시간이 없고,
다음 주는 저희 엔군과 동갑인 큰시누이 아들 결혼식이라 (저도 넘 놀랏습니다,,결혼이라니,,^^;;;)
일단 3째주에 보는 계획인데,,하아
12월은 더 만만찮을 것 같고요..
레삭매냐님 이미 보셨으니 부러워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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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만나기 전에 원작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개봉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너튜브 콘텐츠로 사전에 공부도 많이 했다. 중세 기사도를 필두로 해서, 아직 현대적 사법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시절에 진위를 가리기 힘든 재판을 소위 신명재판이라는 이름 아래 한판 맞짱을 떠서 해결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야만스러운 방식의 재판이 흥미를 자극한다. UCLA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은 여러 면에서 독자 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다. 결국 영화화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13681229일 토요일, 파리 부근의 생마르탱 수도원에는 수천명의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왕국의 국왕 샤를 6세를 필두로 한 수많은 귀족들과 인류 역사상 법원이 마지막으로 인정한 사법 결투를 직접 목격하려는 사람들이 다시없을 빅 이벤트 구경에 나선 것이다. 국왕과 파리 고등법원이 정식으로 허가한 사법 결투의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다. 원고 장 드 카루주와 피고 자크 르그리. 이 둘은 노르망디 출신의 귀족들로 오랜 친구 사이였으나, 노르망디의 대영주 피에르 알랑송 백작의 영지에서 봉토를 둔 갈등과 어느 사건 때문에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판돈으로 건 마지막 도박, 아니 결투에 나섰다.

 

<라스트 듀얼>의 저자 에릭 재거 교수는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중세 마지막 사법 결투로 기록된 카루주와 르그리의 사투를 추적했다. 저자는 두 사나이 간의 갈등의 원인부터 시작해서, 결투에 나서게 된 결정적 사건의 전개 과정과 법정 다툼 그리고 결국 결투장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이 역사적 사건은 중세라는 시대에 대한 모든 흥미로운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도에 대한 엄격한 규칙과 의전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모욕당했다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기사들의 격투,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법정드라마까지 그야말로 좋은 서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라스트 듀얼>의 시대적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계속되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왕의 봉신이자 지역 영주였던 장 드 크루주는 종기사(스콰이어) 신분의 백전노장이었다. 하지만, 발루아 왕조의 귀족 피에르 알랑송 백작이 카루주의 새로운 주군이 되면서 유서 깊은 귀족 카루주의 신세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정치적 식견이라고는 갖추지 못한 완고한 성격의 카루주는 하급 성직자 교육까지 받은 자크 르그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알랑송 백작의 총애를 받은 르그리가 잘나갈수록 카루주의 처지는 비참해졌다. 원하던 영지는 라이벌 르그리에게 돌아가고, 자신의 상관 격인 알랑송 백작과의 봉토 다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카루주는 자신의 주군인 알랑송 백작의 눈에 날 만한 행동들을 골라했다. 나라도 이런 부하하면 탐탁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후사마저 끊길 위험에 처했던 카루주는 새로운 규수 마르그리트를 맞아 새출발에 나선다. 나이 차가 많이 다는 새색시 마르그리트는 아름답고 총명한 처자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녀의 집안이 프랑스 왕을 두 번이나 배신한 대역죄인 집안이라는 것이었다. 두둑한 지참금에 미래의 풍족한 소작료를 보장할 영지 상속까지 받을 그런 집안의 마르그리트를 몰락해 가는 카루주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핸디캡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궁핍한 재정 때문에 카루주는 부하 기사들을 데리고 스코틀랜드 원정에 나선다. 스코틀랜드 연합군과 함께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몫 잡아보려는 그런 꿍꿍이였다. 약탈에 눈이 먼 무자비한 프랑스군은 방화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중세 전쟁의 본질이 명예나 무공 따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루주는 처음의 기대와 달리 별 소득 없이 고국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그리고 왕에게 지급받지 못한 봉급을 수령하기 위해 파리로 간 사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육욕에 눈이 먼 전우이자 오랜 친구였던 르그리가 카루주와 그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마르그리트가 머무는 곳을 찾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마르그리트는 이 사건을 자신의 남편인 카루주에게 알리고, 카루주는 일단 자신의 직속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 알랑송 백작에게 르그리의 파렴치한 범죄행각을 고지했다. 하지만, 알랑송 백작은 철저하게 르그리의 편을 들어 이 사건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영주였던 알랑송 백작의 행동은 어떻게 보더라도 공평한 그런 판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카루주는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와 파리 고등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심했다. 중세 말기로 접어들면서 거의 명맥을 잃어 가고 있던 사법 재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폭행당한 아내의 명예와 복수를 위해, 완고한 귀족 카루주는 자신과 아내의 목숨까지 판돈으로 건 것이다.

 

14세기에도 변호사들이 법정을 무대로 활동했던 모양이다. 르그리의 변호사로 선임된 르코크는 하급 성직자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할 지도 모를 결투 재판을 피하고자 했지만 자신을 고용한 르그리는 유능한 변호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카루주와 맞짱을 받아들였다. 파리 고등법원은 카라주의 상고를 받아 들여 세기의 이벤트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듀얼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결투장으로 선정된 생마르탱 수도원에서는 모든 준비가 이루어졌다. 귀족 간의 결투 의식은 그전에 이루어진 법정에서의 심리만큼이나 복잡했다. 마상 결투를 위한 군마의 준비부터 시작해서, 전투용 도끼와 장검과 단검 모든 과정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구름 같이 모여든 군중들에게 이것은 절대 오락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경고와 함께 결투를 방해하는 이들은 재산과 생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선포도 이루어졌다. ,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명의 기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저자의 논픽션은 픽셔너리한 드라마를 능가하는 그런 재미를 가지고 있다. 마르그리트 성폭행사건의 진위는 변호사 르코크의 기록처럼 알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중세 여성들은 배우자의 재산처럼 간주되었다. 만약 카루주가 사법 결투에서 패한다면, 마르그리트 역시 위증죄로 산 채로 화형당할 그런 운명이었다. 프랑스와 해외 각처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든 대중들에게 사법 결투만큼이나 쇼킹한 후속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카루주 부처는 사방이 적대적인 상황에서 모험에 나선 것이다.

 

에릭 재거는 중세의 꽃이라고 불리는 기사들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라스트 듀얼>이라는 역작을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공간적 무대가 된 노르망디에 대한 현지답사는 물론이고, 갖가지 사료들을 검토하고 심지어 태피스트리에 기록되었다는 전언까지 분석하면서 마지막 사법 결투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카루주의 잉글랜드 종군 묘사 장면도 그렇지만, 카포메스닐 사건 현장을 그야말로 카메라로 중계하는 것 같은 기술 그리고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드론까지 날려 원거리와 근거리를 커버하는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영화에서도 생마르탱 수도원 결투 씨퀀스 고증을 상당히 잘했다고 들었다.

 

이번 가을에는 왜 이렇게 멋진 책들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안드레 애시먼의 <아웃 오브 이집트>를 필두로 해서,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 그전부터 읽고 있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할렘 셔플> 그리고 오늘 막 도착한 N. 스콧 모머데이의 <여명으로 빚은 집>까지. 잇달아 좋은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어디 가서 꺅꺅대며 비명이라고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꿀꿀한 코로나 시국의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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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28 1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일 개봉했는데 벌써 평점이 9.10이네요?!!맷데이먼도 나오고 제가 좋아하는 조디 코머가 아마도 마르그리트 역인가봅니다. 사법결투라니 일단 영화를 먼저 한번 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21-10-28 19:25   좋아요 2 | URL
영화 개봉하기 전에 배급사에서
한다하는 너튜버들에게 콘텐츠
를 좀 맹글어 달라, 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논픽션 역사물은 그야말로 끝내
줍니다. 영화도 기대만빵이구요.
어제 오늘 해서 이틀만에 다 읽
었답니다. 드랍게 재밌어서요.

아, 조디 코머가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 맞습니다. <프리 가이>
에서 깜딱 놀랐습니다. 오 멋져
부러~

붕붕툐툐 2021-10-28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스트 듀얼> 재밌다는 얘기 들었어요~ 원작 책이 있는 건 처음 알았네요!ㅎㅎ 레삭매냐님의 꺅꺅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정말 큰 위안이죠!!😄

레삭매냐 2021-10-28 19:27   좋아요 2 | URL
이달에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작
가들의 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
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콜슨 화이트헤드, 안드레 애시먼...

에릭 재거 선생이 무려 10년이나
되는 시간을 투자해서 쓴 책이라
하니 더더욱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완성도가 탄탄합니다.

coolcat329 2021-10-28 19: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비문학인줄 알았는데 글 읽어보니 문학이군요 . 이 책 읽고 영화보면 정말 다 이해되겠어요. 이 영화 별 관심 없었는데 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9 07:22   좋아요 2 | URL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에릭 재거
교수가 상상력을 양념으로 재구
성하 작품이랍니다.

영화는 원작을 어떻게 요리했
는지 궁금하네요.

scott 2021-10-28 2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도 플레그 착 붙 파 셨네요 영화가 넘 잘 만들었는데 원작도!

레삭매냐 2021-10-29 07:23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책에 밑줄이나
메모 같은 거 하나 없이
봤었는데, 언제부턴가 연필
로 죽죽 그어 가면서 본답
니다. 플래그도 달구요 ㅋ

mini74 2021-10-28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신명재판. 그 당시 귀족들은 결투 신청이 두려웠을거 같아요. 안하자니 겁쟁이 하자니 죽을 수도 있고. 기사도에 신명재판 아!!! 넘 재미있겠어요. 영화도 왼성도가 높은가봐요 ㅎㅎ

레삭매냐 2021-10-29 07:24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그놈의 명예가
무언지...

기사가 명예를 잃으면 살
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그런 생각이 대세를 이루
던 시절이었다네요.

딱 할리우드가 좋아할
법한 스토리입니다. 아니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까
지 고려하지 않았나 싶기
도 하구요. 일타쌍피!

새파랑 2021-10-28 2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나면 너무나 즐거워서 미칠거 같아요 ㅋ 레삭매냐님의 비명을 듣고 싶습니다 ^^ 멋진 책이라고 하셔서 바로 찜입니다~!!

잠자냥 2021-10-28 22:58   좋아요 3 | URL
새파랑 변태설 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10-28 23:02   좋아요 3 | URL
앗 😅 저 그런 사람 아닌데 ㅎㅎ 레삭매냐님 느낌에 공감이 가서 제가 오바했나봐요ㅋ

레삭매냐 2021-10-29 07:25   좋아요 3 | URL
읽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는데
1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네요.

장장 10년을 준비해서 쓴 책이
라고 하니, 정성이 대단하네요.
 
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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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해마지 않은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집트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의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은 올해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과연 나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문학을 필두로 한 모든 서사들은 모름지기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또 타인의 그것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단조로운 나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범상치 않은 다른 이들의 삶에 나를 투사해 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세파르디 유대인의 후예로 태어나, 로마를 거쳐 결국 미국인이 된 안드레 애시먼의 기구한 삶이야말로 그런 좋은 이야기를 위한 소재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스페인/포르투갈에서 가톨릭 통일왕국의 압제를 피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세파르디 유대인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했다. 지난 세기 초, 야만적인 오스만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이 시작되던 시절 즈음인 1905년 애시먼의 가족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그들은 번성했다. 새로운 위험들이 닥쳐오기 전까지 말이다.

 


저자 안드레 애시먼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잃어버린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르빈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카이로를 향해 진격해 오는 동안에도, 애시먼 가족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 잔류한 유대인들이 어떤 가혹한 운명을 겪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물론 그들도 어디론가 피난을 가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들은 하고 있었다. 독일군 기갑부대가 추격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마다가스카르 아니면 인도까지 생각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안식할 땅은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시먼 가족은 태생적으로 한 곳에 정주할 수 없는 그런 숙명이었다. 압도적으로 아랍인들이 많은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유월절 같은 절기를 비롯해서 자신들의 관습과 의식 그리고 언어를 고수했다. 디아스포라 이래 그들을 덮친 숱한 위기 속에서도 애시먼들은 생존에 성공해온 것이다.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으면서 왜 그렇게 유대인들이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집트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같은 이방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에게 아랍은 천박함 그 자체였다. 상이한 종교에서 유래한 태생적 이민족과의 불화는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전에 아버지 앙리와 청각 장애가 있던 엄마 지지의 로맨스도 상당히 생각해 볼만한 그런 점들을 제공해 준다. 각각의 자녀들의 엄마들이었던 공주와 성녀는 이웃에 살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집트로 이주해온 공주네는 당구장을 시리아계 유대인인 성녀네는 자전거포를 운영했다. 라디노 유대계인 공주네는 성녀네 집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아마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대인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전의 이야기들은 모두 가족의 전언으로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하바드 출신 박사이자 문학 교수님이 된 안드레 애시먼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끌어 모아 이런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반세기나 너무 더운 이집트 땅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두 번째 위기가 닥쳤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와 일단의 장교단이 부패하고 영국 제국주의에 협력해온 파루크 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나세르가 촉발한 아랍 민족주의 물결은 결국 서방 열강과의 충동을 야기했다.

 

4년 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이집트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유화 선언을 하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에서는 연합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재침략이었던 수에즈 전쟁은 각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세계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비밀공모는 패착이었다. 나세르는 비록 전쟁에 지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이 시기를 안드레 애시먼은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루고 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아랍인들은 엄격한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등화관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참 매력적이었다. 전쟁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보니 코로나 시국에도 우리는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지 않던가. 그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유대인들은 적에게 협력한 비열한 배신자로 내몰린다. 플로라 숙모와 거리에 나갔던 안드레는 돌팔매질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숙명의 한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아랍 학생들이 절대다수인 학교에서도 안드레는 체벌을 당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아랍어에 코란까지 필사해야 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애시먼 가족들은 반세기나 살아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다. 무슬림 세계에서 유대인보다 차라리 기독교인의 존재가 나았는지 무슈 시뇨레는 그리스 정교도로 개종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개종까지도 불사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보니,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에서 개종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을 신뢰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마지막 위기는 명백하게 애시먼 가족을 위시한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재산 몰수와 추방령이었다. 그런데 마치 애시먼 가족들은 이 모든 사태를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특히 공주 할머니는 손주를 데리고 그전부터 해온 자산의 해외도피를 서슴지 않는다. 안드레의 아버지 앙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섬유공장을 경영하면서 이룬 재산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세르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통치하는 이집트 국가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재산을 빼앗고 아랍 국가에서 떠나라는 일방적인 명령을 내렸다.

 

안드레의 할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100세가 넘으신 증조할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온갖 위기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돌파해온 가족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온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찬란한 지중해 바다와 아지자와 같은 삶의 동반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나고 살아온 정든 땅을 왜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들의 존재는 언젠가는 그곳을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랍 현지인들보다 더 알렉산드리아라는 공간을 더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 앙리를 찾는 전화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지 않았던가. 누가 학교에서 아랍인들의 개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고, 교사들로부터 아랍어를 하지 못하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체벌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안드레의 엄마 지지가 학교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체벌한 교사에게 뺨을 내갈기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수줍고 얌전한 아줌마였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 용맹무쌍한 전사보다도 열렬하게 싸우는 게 바로 안드레의 엄마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한 곳에서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동조로 가슴이 먹먹했다. 동시에 저자가 회고록(메무와)의 곳곳에서 보여주는 진중한 유머는 안드레의 할머니들이 즐기는 달콤한 간식거리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런 달콤 쌉싸름한 서사의 구사와 균형감각은 역시나 대가다운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하바드 스퀘어>의 출간을 기다려 보련다. <아웃 오브 이집트>도 나왔으니 말이다.

 





안드레 애시먼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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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0-26 19: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착각해서 고대가 연상돼요.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야기는 1900년대 같군요~~
레삭매냐님께서 만난 올해의 최고의 책이라니 급관심이 갑니다^^
내용도 흥미로워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그러고 보니 서양의 도시 이름
들이 모두 이집트에서 연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랍니다.

알렉산드리아, 테베, 멤피스
그리고 이브라히미에(아브라함)...

메무와의 시기는 1940년대부터
애시먼 가족이 이집트를 뜨는
1965년까지인 듯 합니다.

새파랑 2021-10-26 1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올해의 책이라니 이건 필독서군요~!! 전 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진 않았는데 읽어봐야 겠어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 싶어
지는 그런 작가랍니다.

강추하는 바입니다.

mini74 2021-10-26 2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난 매냐님의 행복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ㅎㅎ 매냐님 올해의 책이라면 저도 당연히 *^^*

레삭매냐 2021-10-26 22:18   좋아요 1 | URL
두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책입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

붕붕툐툐 2021-10-26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애치먼 작가군요! 레삭매냐님 글에는 안드레 애시먼라고 되어있는데 읽는 방법의 차이겠죵? 이러나 저러나 저에겐 초면인데 매냐님은 좋아하는 작가시군요!! 저도 담아두고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6 22:20   좋아요 3 | URL
한국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으로 알려졌는데 저는 <알리바이>
읽고 나서 뻑이 갔습니다.

애시먼 작가 이름의 발음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너튜브 동영상
을 하나 달았습니다.

저는 백 번 들어도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저자의 이름이 애시먼
으로 들립니다.

붕붕툐툐 2021-10-26 22:43   좋아요 2 | URL
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군요!(작가 이름을 잘 안 읽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저도 <알리바이> 읽어보고 싶네용~ 너튜브 들어보니 애시먼이 정확한데요? 근데 왜 굳이 애치먼이라고 쓰는 걸까요?🤔
 
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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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헌책방에서 새로 나온 프랭크 허버트의 <> 신장판을 샀다. 가을에 영화판 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먼저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너튜브로 스페이스 오페라 듄의 방대한 세계관에 대한 정보도 열심히 메모해 가면서 시청했다. 모든 건 영화 <>을 만나기 위한 나의 세심한 준비였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해온 영화 <>을 만났다. , 참 책은 미처 읽지 못했다. 한 절반 정도 읽었나. 내가 그렇게 만난 <>은 타투인 행성에서 시작된 또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의 그것을 능가하는 역작이었다.

 

어제 어느 팟캐스트에서 들은 것과 달리 155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은 1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영화를 어디에서 찍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 아라키스 행성 씬은 요르단의 와디 룸과 UAE의 아부다비에서 찍었다고 한다. 아트레이드 집안의 칼라단 씨퀀스는 노르웨이에서. 자그마치 56년 전에 나온 원작소설을 가지고 이런 영상들을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주력 1만년 정도에 시작되는 <> 사가가 품은 기본 얼개는 생존과 복수다. 우주를 통치하는 제국의 황제는 아트레이트 가문을 아라키스 행성의 새로운 지배자로 파견한다. 아트레이드 가문의 전임자는 라이벌 하코넨 가문이었다. 그들은 80년 동안 사막으로 이루어진 아라키스 행성에서 우주 항해(stella travel)에 꼭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채굴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초암 공사라고 불리는 길드(guild)가 우주 항해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항해사들에게 스파이스는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었고, 스파이스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는 자가 광활한 우주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왜 잘하고 있던 하코넨 가문 대신 레토 아트레이드 공작을 아라키스에 파견해서 분란을 일으킨 걸까?

 

<> 사가의 상당 부분은 중세 봉건시대의 주종관계를 연상시킨다. 나는 이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서양 중세의 봉건제는 동양의 절대군주권을 바탕으로 한 봉건제와 전혀 달랐다. 어디까지나 서양 봉건제의 기본은 대영주와 소영주의 계약 관계였다. 중세 경제의 기본은 토지를 대영주가 소영주에게 제공하고, 토지의 지배를 일임받은 소영주는 대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깨달은 이들은 중세로 돌아간 것처럼 우주선을 띄우는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중세 기사들의 칼싸움 전통을 다시 부활시킨다. 스페이스 오페라에 샤이-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크리스 나이프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듄의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근거지인 물이 풍부한 칼다란을 떠나 레이디 제시카와 아들 폴을 데리고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척박한 아라키스에 도착한 레토 아트레이드. 언젠가 레토의 지위를 이어받을 아들 폴은 격렬한 무술 작업을 받으면서 차세대 공작으로서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프랭크 허버트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베네 제세리트라는 미스터리한 집단의 활동을 추가한다. 폴의 어머니 제시카는 그 집단의 일원으로 언젠가 출현할 메시아의 도래를 위해 음지에서 모종의 계획을 준비한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미래의 메시아가 될 운명의 남자 폴(티모시 샬라메 분)은 베네 제세리트 집단의 후예답게 밤마다 앞으로 그에게 닥칠 기구한 운명의 실마리들을 꿈을 통해 예지한다. 폴은 꿈에 등장하는 미지의 프레멘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다. 과연 아라키스 행성에서의 삶은 그를 어떤 운명으로 인도할 것인가.

 

<스타워즈>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가 타투인 행성의 평범한 청년에서 갤럭시를 구할 영웅으로 거듭나듯이, <>에서도 폴 아트레이드는 가문의 숙적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과 황제가 계획한 음모를 분쇄하고, One이 되기 위한 장도에 나서게 되는 과정이 듄 파트원에 담겨 있다. 1984년인가 아니면 그전에 영화 듄을 기획한 감독이 듄의 방대한 세계관을 담기 위해서는 적어도 16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영화와 소설을 번갈아 보니 그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반군의 희망이자 라스트 제다이였던 것처럼, 철부지 소년 폴 아트레이드 역시 제국 정예부대 사다우카들의 공격과 닥터 유에(장 첸 분)의 배신으로 아버지 레토를 잃고 단신으로 레이디 제시카와 불구덩이가 된 아라키스의 수도에서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 그전에 스파이스 채굴 광경을 시찰나섰다가 처음으로 무시무시한 샤이-훌루드의 공격에 직면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에서 자신들을 옥죄는 제국과 하코넨 가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와 사막에 거주하는 프레멘들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만여명의 프레멘들이 사는 아라키스 행성는 한 때 낙원도 될 수 있었으나, 스파이스가 발견되면서 프레멘들의 운명은 그전과 1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레토 공작이 프레멘들의 지도자 스틸가에서 약속을 해도 프레멘들은 아트레이드 가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현대 문명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인 석유가 중동에서 발견되면서, 그 동네가 세계의 화약고가 된 것 같은 운명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프레멘들에게는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전에 이미 아라키스 행성에서 공작을 시작한 베네 제세리트들의 활동이 주효했던 것은 아닐까. 이 역시 서양 문명에서 하나의 중심축을 형성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물이라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의 풍족한 공급을 약속한다면, 프레멘들은 폴에게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시 아라키스를 장악한 하코넨 남작은 자신의 행동대장 라반(그렇다, 그가 바로 가오갤의 멋진 캐릭터 드랙스다!)에게 프레멘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참고로 데이브 바티스타 아저씨는 왕년에 WWE 레슬링 챔피언이라고 한다. 놀랍군. 미국 레슬링이 기본적으로 쑈라는 걸 감안한다면, 연기의 확장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듄을 또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아버지 레토 공작과 모든 것을 잃은 미래의 메시아 소년 폴이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해 가면서 One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모든 것이 적대적인 주변환경 속에서 폴은 자신이 지닌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면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결투까지 마다하지 않고 극복해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폴에게 주어진 것은 거니 할렉에게 전수받은 전투기술과 프레멘 소녀 차니가 건네준 크리스 나이프 한 자루 뿐이다. 이런 기구한 운명을 이겨낸 사람만이 미래의 One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영웅서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런 방대하면서도 잡다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듄의 서사가 얼마나 영화화하기에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희대의 망작으로 알려진 데이빗 린치의 <>의 경우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번에 메가폰을 잡은 드니 빌뵈브는 그런 모든 지표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롭게 재탄생한 <> 사가의 시작을 만방에 알렸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영화 <>은 나에게 1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헤딘 아저씨가 탐험했다는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심지어 스파이스 가루가 섞여 있는 사막 풍경은 오히려 신비롭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런 촬영들을 어떻게 해낸 걸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말이다. 37년 전에는 특수효과의 미비로 구현이 불가능하던 시퀀스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기술적으로 극복된 점도 새로운 듄의 성공의 한 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1984년작에서 폴 역을 맡았던 카일 맥라클란에 비한다면, 티모시 샬라메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여리여리하지만 강단 있는 캐릭터로 성장해 가는 주인공 역할에 이보다 더 좋은 캐스팅은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영화에서 다른 프레멘들은 모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감싸지만(, 난 왜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 생각이 나는 걸까)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모래를 막는 마스크 따위는 과감하게 착용하지 않는다. 이건 팬서비스인가?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사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호메로스가 구전으로 <오딧세이> 타령을 시작한 이래, 사람들에게 좋은 구라가 외면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나저나 Part Two는 언제 나오는 건가 그래. 리부트된 스페이스 오페라는 시작부터 창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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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3 08: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디럼은 마션의 촬영지였기도 하지요.
가 봤다는 거 자랑하고요 ㅎㅎ
듄에서도 티모시의 미모가 사는군요
레샥님 페이퍼 읽으니 영화 봐야지 싶어요.
이런 판타지 스토리 좋아요.

레삭매냐 2021-10-23 09:39   좋아요 3 | URL
오오 와디럼이라는 곳이
데저트 로케이션으로 유명한
곳인가 보네요 :> 대단히 부럽~
페트라 유적지도 가보셨네요 !!!

스타워즈에 가히 필적할 만한
그런 스페이스 사가였습니다.

프레이야 2021-10-23 09:47   좋아요 3 | URL
넵. 페트라도요. 정상까지 올라갔지요. 꼭 가보고 싶었던 두 곳이라 ㅎㅎ 코로나 이전에 가길 얼마나 잘했다 싶은지요.

포스트잇 2021-10-23 1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맥스로 관람했는데, 아직도 돌구르는 소리와 모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이건 극장에서 봐줘야 하는 영화같습니다.
듄 세계관은 여전히 완전 납득은 잘 되지 않지만, 음악과 음향만은 👍🏾

책으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2편은 나올 수 있을까요?.......

레삭매냐 2021-10-23 12:55   좋아요 2 | URL
너튜브에 보니 듄 세계관을 정말
잘 정리한 콘텐츠들이 많더군요.

우주 항해, 길드 그리고 스파이스
와의 연관 관계가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엔딩을 보니, 아마 시퀄에 대한 촬
영은 된 것 같고 포스트프로덕션이
한참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스트잇 2021-10-23 13:42   좋아요 3 | URL
오호~제작하긴 하는 모양이네요.

듄 세계에 대한 영상을 통해 인류가 중세로 퇴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보긴 했는데 막상 영화로 보니 중세적 세계, 질서, 부름받은자.. 이런 점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 싶더라구요. 제가 이제 늙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ㅎㅎ

잠자냥 2021-10-23 1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러 오랜만에 극장 갈 예정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극장 나들이도 설렌다능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10-23 16:51   좋아요 3 | URL
영화는 정말 끝장~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중요한 배역들이 추풍
낙엽처럼 우수수 나가 떨어지는
걸 보니 참, 아쉽더라구요.

mini74 2021-10-23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듄 너무 보고싶어요 ㅠㅠ 하나 있던 아이맥스가 문을 닫아 ㅠㅠㅠ 어디로 가야하나요 ㅠ 음악도 넘 좋다고 들었어요. 아이는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후다닥 첫 개봉일 저녁거 봤는데 넘 좋다고 !!!! 일반관에서라도 봐야 하나 싶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1-10-23 16:52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의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
아저씨는 진정 천재가 아닐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답게 모든 요소들
이 다 담겨 있거든요.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거임...

라로 2021-10-23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먼저 보셨군요!!! 저는 모레 시험보고 다음주에 볼 예정인데 책은 건드리지도 못했어요.ㅎㅎㅎㅎ
해든이는 이제 마지막 부분 읽고 있는데 다음주에 영화보러 가기 전에 다 읽을 것 같아요.
듄은 제 남편의 최애 소설이랍니다, 읽고 또 읽고 하더라구요.ㅎㅎㅎ
레삭매냐님 글을 읽다가 멈췄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읽고 영화볼까?싶은 마음도 있고요,,(아~~ 갈등;;ㅎㅎㅎ)
저희는 아이맥스 하루에 4번 해주는 것 같아요. 셤 끝나고 아이맥스로 보고 매냐님 글 읽는 것으로. 암튼 부럽습니다!!!^^
이 영화 책 1권의 반의 반도 내용을 다 싣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죽기 전에 쓴 책이 6권이니까 스타워즈처럼 계속 나오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만,,

레삭매냐 2021-10-23 16:55   좋아요 3 | URL
제가 스타워즈 팬이긴 하나,
최근 디즈니로 넘어간 뒤에
넘어간 뒤에 나온 것들은 정말
노답이지요.

리부트된 <스타 트렉>이 나은
것 같을 정도니깐요. 하긴 20세기
팍스가 디즈니로 넘어간 뒤에는
다 비슷해져 버린 걸까요? 무튼...

저도 목표가 영화 보기 전에 책
읽기였더랬는데, 결국 책은 못 다
읽고 너뷰트 콘텐츠로 듄 사가
워밍업을 하고 나서 영화를 먼저
보았습니다. 물론 후회는 1도 없
구요. 뭐 책은 마저 읽으면 되니깐
요 ㅋㅋㅋ

거의 프랜차이즈급으로 가지 않을
까 싶습니다.

붕붕툐툐 2021-10-23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학구적인 레삭매냐님~ 영화보러 가기 전에 공부 열심히 하셨네요~~ 팟케스트에서는 지루하다고 하던가요? 좋은 구라가 외면당한 일 없다는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레삭매냐 2021-10-24 20:30   좋아요 3 | URL
아마 워낙 러닝 타임이 길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름 진입 장벽
이 높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워즈>의 경우나 생각나네요.

방대한 스타워즈 사가의 전모를
몰라서 후발 주자들은 심심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blanca 2021-10-30 13: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듄 1권만 읽어볼까 고민 중인데 레삭매냐님 글 읽으니 영화도 봐야 할 것 같은.... 저는 SF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테드 창이랑 브래드버리 작품들은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이건 더 좋을까요?

레삭매냐 2021-10-30 21:16   좋아요 2 | URL
제가 찐 오랜 <스타워즈>
팬이긴 한데, <듄>도 그에
못지 않은 그런 걸작이라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과 영화의 콤비네이션 절묘
했습니다.

독서괭 2021-11-05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F 별로 관심 없는데 읽고 싶어지게 만든 리뷰.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2   좋아요 1 | URL
저도 SF 물은 잘 만나지
않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더라구요.

그레이스 2021-11-05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11-06 08: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11-05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4   좋아요 2 | URL
책 리뷰라기 보다 영화 리뷰
에 가까운데 헷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1-05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식도 성공, 리뷰도 당선~!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11-06 08:15   좋아요 2 | URL
카페이 탄력 받아서
어제 엄한 데 들어갔다가
그마 깍~!하고 물려 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1-06 02: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받은 적립금은 도끼샘 책
사는 데 보태려구요...

thkang1001 2021-11-06 0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레삭메냐님은 생각도 훌륭하십니다!

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