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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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책을 많이 읽으면 눈이 멀게 될까? 실명한 도서관장(같은 경우로 실명한 네 번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라고 한다) 보르헤스에게 수년간 책을 읽어준 알베르토 망겔의 이야기다. 그는 긴 유목민 생활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살다가 도서관장직 제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같은 저주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망겔은 위대한 독서가이고 그의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우리 같은 독서인들에게 참으로 위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았느냐는 준엄한 꾸지람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같은 대지의 숨을 쉬는 이런 동지가 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나의 독서 스타일은 일단 꽂히는 작가가 생기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의 책들을 모은다. 그리고 읽는 건 나중의 일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사서 바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달만 하더라도 홋타 요시에 작가에 꽂혀서 일단 책부터 사들이지 않았던가. 기세 좋게 시작한 <고야>는 아직도 1권을 못 읽었다. 그동안 다른 책들을 읽느라.

 

누가 뭐래도 내가 읽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다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망겔 선생 역시 도서관장으로 부임한 이래, 새로운 독자들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책읽기가 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열혈독서광인 선생은 단발성 캠페인으로 새로운 독자들을 양성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게임에 흥미진진한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너뷰트를 상대로 수천년 동안 종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건덕지가 1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애서가 혹은 열혈독서광들은 쿨하게 패배를 선언해야 하는 걸까?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망겔 선생은 솔직하게 자신이 탐욕스러운 책의 약탈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도 예전에는 책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책에 메모는커녕, 접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비닐로 싸서 보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게 다 무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4B연필로 간단한 메모와 밑줄을 죽죽 그어 가며 망겔 선생에 버금가는 탐욕스러운 약탈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오독일 지도 모르겠으나, 망겔 선생에 따르면 글쓰기라는 문학의 스타일은 모방과 반복의 연속이다. 조금은 신학적 귀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완벽한 창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상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은 불완전하다는 말일까. 저자도 언급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에게 명명하는 장면은 지난 수세기 동안 논의되어온 고전적인 주제라고 한다. 원래 그들의 이름이 존재했던 걸까? 아담은 무슨 수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동식물들의 이름을 명명할 수가 있었을까. 무지한 일개 독자로서는 저자가 제기한 질문들에 골이 깨질 지경이다.

 

또한 망겔 선생은 문학은 영원불멸의 골렘이라고도 선언한다. 요 골렘이라는 녀석은 내가 즐겨하는 모바일 게임에 나오는 몸빵 돌멩이 몬스터가 아니라, 유대인의 무슨 설화에 나오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나. 우습게도 어리석은 독자는 대가가 만든 명제를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저자가 만들어낸 보편(이데아)의 질서를 따라가야 하는 걸까?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어 보인다. 창작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진대, 불완전한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고? 오만가지 질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쏟아져 내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알베르토 망겔 선생이 의도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책을 읽고 누군가 회의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만드는 것 말이다. 무언가 알려고 사유의 단계로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테니까.

 

망겔 선생은 사전 예찬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려서 국어선생님이신 아버지가 집에 비치해 두신 엄청 두꺼운 두 권짜리 국어사전으로 모르는 낱말들을 찾아보곤 했었다. 자전은 또 어떤가? 그나마 사전은 쉽기라도 하지, 부수를 모르면(사실 획수도 아직까지도 헷갈린다) 김찬삼 선생이 세계일주를 구술한 여행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횡서가 아닌 종서라 읽다 보면, 줄을 틀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정자도 아닌 약자를 왜 그리 쓰셨는지. 세상의 온갖 정의를 담은 사전의 세계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무지의 벽을 부수기 위해 꼬마 독서전사는 사전에 자신의 계몽을 의탁했었다.

 

문득 어제 오랜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너튜브 콘텐츠의 깊이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이 났다. 하긴 짧은 시간 동안에 영상을 통한 정보 전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무엇이 다룰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전권이 주어지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밀레니엄 시절에 콘텐츠 제작은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기존의 작가들이 글쓰기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동영상 제작이라는 방식으로 책을 대체할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 독자들은 예전에 책을 소비하던 방식대로, 그렇게 생산된 동영상 콘텐츠들을 비판 없이 꾸역꾸역 소화해 내고 있는 중이다. 전통의 책이 지배하던 시절과 달리 댓글이라는 유용하면서도 치명적인 소통의 방식이 더해지면서 콘텐츠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깨부수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책을 대체할 새로운 미디엄으로 너튜브 세계의 확장에 그렇게 비판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너튜브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독자들은 자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책을 찾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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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7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튜브에서 눈과 손가락을 못떼고 있는 1人 매냐님말에 동감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27 14:36   좋아요 1 | URL
저도 비판적으로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너튜브에 이미
영혼을 털렸네요...

syo 2021-01-27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이라는 곳에 무슨 문제 있는 게 아닐까요? 석면이라든가..... 헛소리입니다.

레삭매냐 2021-01-27 14:40   좋아요 1 | URL
아 씨오님!
씨게 쳐주시네요... 점심 묵다 보고
는 빵 터져부렀습니다.

석면 때문이었고나.

2021-01-2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27 14:46   좋아요 1 | URL
아, 참말로 부끄럽습니다.

대가 망겔 선생이 의도한 바를
과연 제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세상에 허명은 없는가 봅니다.

얼마나 열심으로 책을 읽으시면
그런 지경에까지 도달할까요.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적당
하게 읽어야지 싶습니다. 아 무셔라.
 
표범 - 어떻게 두꺼비를 삼킬 것인가 동안 더 빅 북 The Big Book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최명희 옮김 / 동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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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자 가디언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역사소설이라는 광고가 허명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책에서 이탈리아 출신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 혹은 <레오파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원작 소설이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 수년 전에 수배해둔 <표범>이 가까이에 있었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책을 펴들었다. 그렇게 잘 읽다가 잠시 휴지기를 거쳐 마침내 다 읽었다.

 

람페두사가 고른 시기는 18605월 그리고 공간은 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던 두 개의 시칠리아 왕국 중에 하나였던 시칠리아였다. 우리의 주인공은 50세의 멋쟁이, 살리나 공작 돈 파브리치오다. 북부 피에몬테의 사르디니아 왕국을 중심으로 한 리조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일운동)가 한창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귀족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은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부르주아 계급이 기존의 지배계급이었던 귀족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질서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수백년 동안, 민중 위에 군림해온 귀족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지 못하고 몰락해 가고 있었다. 수대에 걸쳐 교양과 예의범절 그리고 특유의 신중함으로 무장한 돈 파브리치오를 필두로 한 귀족들은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불온한 혁명의 움직임에 귀족들의 반응은 엉성했다.

 


돈 파브리치오의 젊은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 공작 같은 경우, 혁명군의 대열에 서서 부르옹 왕조의 대항에 나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루키노 비스콘티가 1963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도 보게 됐다. 영화는 상당히 소설에 충실한 편이다. 종교와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난봉꾼 역할을 무난하게 해내는 돈 파브리치오 역의 버트 랭카스터는 안성맞춤의 캐스팅이었다. 시대의 미남자 알랭 들롱이 맡은 탄크레디는 또 어떤가팜므 파탈 같은 매력을 발산하는 앙겔리 역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대단했다.

 

소설에서는 밋밋하게 전개된 팔레르모 시가전이 영화에서는 기대 이상의 규모로 스펙터클하게 재연되었다. 리조르지멘토의 국민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인대(붉은 셔츠부대)가 목숨을 내걸고 부르봉 왕군과 싸우는 장면은 대단했다.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부르봉 왕군은 포로로 잡은 천인대원들을 현장에서 즉결처분한다. 총살당한 병사들의 가족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비극에 울부짖는다. 부르주아로 보이는 왕당파 스파이를 매달라는 시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 때, 눈에 들어온 인물이 하나 있으니 내게는 <돌아온 튜니티>로 얼굴이 익은 이탈리아 출신 테렌스 힐이었다. 놀랍군 그래. 마카로니 웨스턴 배우로만 알았던 튜니티가 이런 역사물에도 출연을 했었군.

 

소설 <표범>에 리조르지멘토라는 커다란 역사의 축이 있다면, 또다른 한편에는 젊은 청춘들의 로맨스가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사촌지간인 탄크레디와 돈 파브리치오의 영양 콘쳇타의 사이에, 촌장 카로제로의 아름다운 딸 앙겔리가 등장하면서 파문이 인다. 돈 카로제로는 혁명군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영주들에게서 토지를 사들이고, 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회경제적 부를 축적한다. 매력적인 앙겔리의 외모에 반한 탄크레디에게 몰락해가는 살리나 공작의 영양인 콘쳇타 보다 앙겔리와의 결합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냉정한 돈 파브리치오는 판단한다.

 

기존의 귀족계급을 대신할 부르주아 계급의 대두라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 돈 파브리치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로서는 전란의 혼란기에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고, 얼마 남지 않은 영지를 수호하는 게 고작이었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혁명의 물결 앞에 무기력한 돈 파브리치오였지만, 마지막 남은 표범 혹은 사자답게 세파에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새로운 통일국가 이탈리아에서 상원의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거절하고, 아내와 후계자인 장남을 먼저 보내고 임종을 맞는 순간까지 존엄과 자부심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수회 출신 피로네 신부도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살리나 공작 가문에 봉사하면서, 그네들의 특성을 꿰뚫은 혜안을 기른 파드레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이 마땅치 않은 농민들에게 의전 같은 스타일에 집착하는 귀족들의 속성에 대해 설파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에 있어서는 파드레라는 신분을 빌어 양측의 화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혼전임신을 한 조카 운칠리나를 위해 해결사로 나선 피로네 신부는 자신의 백부 투리가 신부의 여동생 사리나 몫인 아몬드 밭을 탐하는 장면을 통해 귀족이나 농민이나 다를 게 없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한다. 혁명군이 가톨릭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들을 몰수하자, 그동안 교회가 해오던 빈민구제 같은 사업을 누가 대신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폰테레오네 집안에서 벌어진 사교모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무도회 시퀀스는 압권이었다. 영화에서는 자그마치 45분에 달한다고 하던데, 종언을 앞둔 귀족사회의 마지막 불꽃놀이였다고나 할까. 시칠리아의 한다하는 선남선녀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들만의 세상을 연출했다. 좌중의 시선을 한데 모은 인물은 바로 돈 카로제로의 딸이자 미래의 공작부인인 앙겔리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사교계의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고, 돈나 앙겔리를 위한 완벽한 사교무대 데뷔전이었다. 앙겔리는 탄크레디의 외삼촌 돈 파브리치오에게 마주르카를 추자는 제안을 던지고, 노쇠한 자신의 스텝을 고려한 살리나 공작은 왈츠를 추는게 어떠냐고 응대한다. 진짜 고수들의 대결이 아닌가. 저녁을 같이 하자는 앙겔리의 제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유추해서 정중하게 사양하는 절제의 미덕을 선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런 게 귀족 스타일이라는 점을 람페두사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고수답지 않은가.

 

가리발디의 마르살라 상륙 후, 반세기가 지난 시점의 엔딩에서는 미혼으로 인생의 황혼을 맞은 콘쳇타가 다시 한 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아닌 앙겔리를 선택한 탄크레디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고, 공작가의 영양들이 애지중지하던 초상화와 성물들이 교구 사제의 부적격 판정을 받는 것으로 소설 <표범>은 마무리된다.

 

속세의 인간들이 가장 탐할 만한 주제인 정치, 종교 그리고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람페두사 작가의 전략은 탁월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욕망을 추구했다. 그리고 필멸의 존재들은 시간 속에서 사위어 갔다.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주체는 우리 인간이라는 점을 그는 <표범>을 통해 보여준다.

 

[뱀다리] 소설은 정말 훌륭하나, 번역은 너무 심했다. 감수를 하지 않은 걸까. 같은 페이지에서도 한 인물의 이름을 오기하다니...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출간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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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26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책도 영화도 너무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1-01-26 13:08   좋아요 2 | URL
책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니
무언가 합이 짝짝 들어 맞는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다만 러닝타임이 186분이라
ㅎㄷㄷ입니다. 야금야금 보고
있습니다.

수이 2021-01-26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소설 목록 짜고 있었는데 레삭매냐님이 이렇게 짠 올려주시니 얼른 올려놓아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1-26 13:19   좋아요 2 | URL
출간될 거라고 했지만 결국
나가리가 난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시칠리아에
곰들이 쳐들어왔어요>와
죽기 전에 꼭 읽어 봐야 한다는
<타타르 황야>도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런던, NW
제이디 스미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읽던 제이디 스미스의 <런던 NW>를 한달도 넘어서 다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읽다 말고 이 책 저 책 집적거리다가 더 이상 묵혀 두었다가는 아예 완독하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서 읽었다. 그전에는 비슷한 케이스로 람페두사의 <표범>을 읽었다. 지금 영화도 보고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역시 비스콘티다.

 

이번에도 역시나 삼천포로구나. 리뷰를 차례대로 써야 하는데 가장 최근에 읽은 책부터 하려다 보니 쓸데없는 말들이 길어졌다. NW는 런던 북서부를 지칭하는 우편번호라고 한다. 런던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 순전히 런던 토박이라고 볼 수 있는 저자의 인도를 따라가는 수밖에. 해외문학을 접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지명이나 사회적 배경을 안다면 쏙쏙 들어올 법한 이야기들이 예의 지식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소설 <런던 NW>에는 콜드웰 출신, 네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진짜 주인공은 첫 주자인 리아 한월과 변호사로 출세한 내털리 블레이크다. 다른 제이디 스미스 작가의 소설들처럼 <런던 NW>에서도 계급 문제와 인종 이슈가 빠지지 않는다. 전형적이 중산계급 출신의 리아는 사회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경우다. 하지만, 그녀의 절친 내털리 아니 원래 이름인 키샤는 어쩌다 보니 구질구질한 동네 콜드웰을 벗어나 변호사로 성공했다. 게다가 남편인 프랭크 드 어쩌구는 잘 나가는 금융업자다.

 

한 마디로 말해, 키샤 블레이크는 비록 중산계급 출신의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모조리 부수고 성공의 사다리에 오른 그런 입지전적 인물이다. 문제는 거의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사회경제적 레쥬메가 그녀의 행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설정 자체가 하나의 클리셰이라고 해야 할까? 모든 가정마다 소소한 문제들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추구하는 부촌에서 완벽한 가정을 건설하는데 성공한 내털리 블레이크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갈급증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삐딱하는 순간,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붕괴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샤라는 얼치기 사기꾼에게 피같은 생돈을 뜯기는 리아는 순수하다. 남편 미셸은 내털리네처럼 성공하고 싶다. 아니 한 마디로 말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이민자 출신 중산계급이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없다는 게 현실이다. 우리네처럼 한 주에 7명씩 뽑히는 로또나 기대하는 수밖에. 그래도 성공의 사다리에 대한 욕심을 저버릴 수 없어, 주식투자에 나서지만 어디 개미들이 소액투자로 그런 막대한 성공을 거둘 수는 없는 법이다. 주식시장이라는 도박판은 결국 돈많은 투자자가 항상 이기는 법이다.

 

리아와 미셸 부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하나의 강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낳는 것이다. 미셸은 무척이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지만, 리아는 그런 남편 미셸의 바람을 저버리고 몰래 피임약을 복용한다. 물론 이에 동조자는 내털리다. 후반에 가서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미셸은 내털리에게 전화해서 화를 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이 둘에 비해 부수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필릭스 쿠퍼와 네이선 보글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아니 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털리(키샤)와 나머지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필릭스나 네이선 모두 약쟁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털고 새출발을 원한다. 필릭스는 새로운 애인을 만나 과거를 일거에 청산하려다가 그만 어이없는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제이디 스미스는 앞으로 선행을 하겠다고 마음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고 싶었던 걸까.

 

자신의 일탈이 남편 프랭크에게 드러난 내털리가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만난 이가 바로 학창 시절 친구였던 네이선이었다. 내가 보기에 필릭스보다 더 문제가 많은 인간이 바로 네이선이었다. 자신이 노숙자라는 사실을 성공한 변호사 내털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네이선. 그에게 과연 새출발할 의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성공이 오롯하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런던 NW>는 어쩌면 하나의 복음처럼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순간의 즐거움 대신, 미래의 성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한 내털리 블레이크 같은 변호사야말로 각박한 각자도생의 시대를 상징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 리아와 필릭스(역설적이게도 그 이름의 뜻이 행운아라고 하던가) 그리고 네이선은 모두 그런 경쟁에서 낙오한 인물들이다. 그러니 작금에 그들이 보여 주는 삶의 모습들은 마땅한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이디 스미스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둔 내털리/키샤 같은 인물도 실제 삶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오히려 내털리의 남편 프랭크는 리아와 미셸 부부가 자신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물질의 유무와 상관없이 상대적이란 말일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키샤 블레이크에게 성공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는 개명(改名)이었다. 흑인이나 여성이라는 문제는 그녀에게 장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콜드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내털리를 키샤로 기억한다. 노력에 의한 신분이나 계급적 상승도 사람들의 기억마저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일까.

 

<런던 NW>를 다 읽고 나니, 미루던 숙제를 마친 듯한 그런 느낌이 들더라. 제이디 스미스 작가의 에세이 모음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그 책은 나오지 않나. 그리고 아울러 5년 전에 발표된 마지막 소설 <스윙 타임>도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게 원서로 453쪽이라고 하니 분량이 상당한 모양이다. 일단 그 때까지 아디오스, 제이디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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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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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자고로 외로운 법이다. 오래전 이방인 생활을 하던 시절에 느꼈던 바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홀로 지내다 보면 참 벼라별 생각이 다 들곤 했다. 그 땐 진짜 시간이 넘쳐흐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되돌아보면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영국 출신 이방인 다니엘 튜더와의 만남은 오래 전 그의 첫 번째 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은 다 읽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다 읽지 못했을까? 궁금했다. 이번에는 다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우선 들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단상 그리고 이런저런 삶의 양태와 사유들이 어디서나 사는 건 다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대학 옥스퍼드 출신의 이방인은 저널리스트로 한국을 찾은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주말 7시에 등산가니 나오라는 말에 식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는 분명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른 거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에서 그런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직장상사는 무소불위한 권력의 화신이다. 까라면 깐다의 은근한 비판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그는 이방인이니 봐주지, 같은 얼굴을 한 이들에게 자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처리즘의 세례를 받은 글쓴이의 아버지 역시 신자유주의 치하에서 역시 각자도생이 최고라는 프로파간다를 받아 들였지만, 정작 당신이 실직되고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국가 공동체의 혜택을 많이 받은 대표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공동체 의식의 부활이야말로 삶에 있어 중요한 핵심 중의 하나라는 전도에 그만 항복하게 된다. 초코파이 선전에나 나올 법한 정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조금은 지저분하고 불편하지만, 이 있었던 공간들은 죄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삭제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감 어린 공간들이 철거된 후에 그 곳을 채우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맛과 스타일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들이다. 우리의 이방인은 우리에게 그런 게 좋냐고 묻는다. 이방인에게 에 대한 레슨을 받게 될 줄이야. 그가 말한 아현동으로 대표되는 공간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를 엿보자.

 

이방인의 차별과 모욕에 대해서도 저자는 솔직한 고백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향이 아닌 타지에 가서 정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은 바로 그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구사다. 이방인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이 아무리 한국말을 하더라도 자신보다 태생적으로 잘하는 닝겡들이 최소한 5천만 명은 된다고. 문득 그를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강대국 출신의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잘 알고 있다. 너무 솔직해서 더 정감이 간다고나 할까. 바로 이거지.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 인류에게 자연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점점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부담스러워 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충실한 분석을 보여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빛처럼 빠른 속도로 반응하는 전자 기기의 메시지를 더 선호하게 됐다.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기피하게 됐다. 카톡도 좋아하지만, 역시 진정한 관계는 대면에서 비롯된다는 나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물론 요즘 같은 코시절에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사실 다니엘 튜더가 지적하는 대로 관계에는 수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는다는 건, 불행하게도 그 사람의 우선순위에서 친구나 지인에게 낼 시간이 없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원한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만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전에 유럽 여행에서 만난 동생의 결혼식 초대를 받았는데, 신랑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예식장에 가려니 그렇게 꺼릴 수가 없더라. 그런데 그 마음을 접고 갔다 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 초반에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었는데, 현대인들이 점점 더 관계에서 오는 친근함을 원하지만 또 동시에 그런 관계 설정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가 감정의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하는 안아주기 같은 서비스들이 창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작고한 김광석의 목소리를 샘플링해서 인공지능이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를 보았는데 그야말로 소름이 끼치더라. 한편으로는 너무 똑같은 고인의 음색에 신기하면서도 아니 어느새 이렇게 기술이 발전했을까? 앞으로는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네 삶을 바꿀까하는 노파심이 불쑥 들었다. 지금도 버거킹에 등장한 키오스트 주문대 때문에 연세드신 분들이 주문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린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누군가의 편리함이 또 누군가의 실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언젠가 고별하고 소멸해야 할 존재인 나의 죽음에 대한 자세도 마음에 들었다. 죽음이라는 소멸을 거부하고 영생불사가 과학의 힘으로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현실이 저만치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니 영사불사는 아니더라도 수명연장의 꿈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글쓴이의 할머니처럼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 보지 못하며 빈껍질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용을 전공한 다니엘 어머니의 말처럼도 싫고. 그저 적당하게 살다가 가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렇다면 과연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뭐 그것도 어떻게 되겠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글쓴이의 말처럼 삶의 어느 부분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길게 돌아왔다. 글쓴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외로움 공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외로움을 어떻게 달랠까 생각해 본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21세기 문명은 인류 협동의 소산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종래의 공동체 정신을 부인하고, 혼자 사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노년의 삶을 위해서도 인간관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은퇴 또는 해고되었을 때,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운단 말인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나에게 묻는다.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느냐고. 외롭거나 심심할 때면 나는 책을 읽는다. 그거면 됐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뱀다리] 홋타 요시에 작가의 <라 로슈푸코> 전기를 읽는 중이라 그런지,

책의 도중에 만난 프랑수아 라 로슈푸코의 <막심>에서 인용한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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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2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26 01:00   좋아요 0 | URL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네요...

그 ‘정‘은 정말 깨끗하고 훤한
곳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유니콩
같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동안 팔린 초코파이로 지구를
몇 바퀴는 돌릴 수 있다고 하던데
이제는 정말 사양길인가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5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 출신의 이방인이라고 하시니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이 생각나네요^^:)

레삭매냐 2021-01-26 01:18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나니 정말 그렇네요.

스팅의 그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반한 곡이었답니다.

같은 앨범에 들어 있는 <Sister
Moon>도 참 좋습니다.

han22598 2021-01-26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방생활로 그나마 사람다운 생각을 하고 살 수 있는 일인 여기 있습니다. 그 전의 나를 생각하면 끔직합니다.

레삭매냐 2021-01-26 19:21   좋아요 0 | URL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란...
정말 -

지나간 뒤에 생각해 보면 그런
적이 있었나 싶지만, 그 시절에
는 참 그랬습니다.
 



그렇다, 내가 이달에 사들인 책들은 이 세 권이 전부가 아니다.

실컷 땡기길래 어렵사리 수배해서 산 홋타 요시에 선생의 <고야>는 아직 1권도 마저 읽지 못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같은 저자로 한길사에서 나온 <라 로슈푸코의 인간을 위한 변명>이다.

이 책 역시 고야 시리즈처럼 절판된 책이다.

 

지난주에 인천에 갔다가 램프의 요정에서 데리고 왔다. 바로 읽기 시작해서, 2/3 지점을 돌파한 것 같다. 이 책부터 읽었어야 했는데...

금발 귀신이라 불리던 바이킹들이 갈리아 지방을 노략질하던 첫 번째 천년말부터 시작되는 유구한 역사를 다룬다. 바이킹의 배를 드라칼이라고 부른다지. 먼 훗날, 육지로 배를 실어 나른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도 그들에게서 기술을 배웠던 게 아닐까.

 

베르퇴유에 근거한 로슈푸코 가문 역사는 프랑스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를 포함한 근세사 그 자체다. 잉글랜드와 왕위계승 문제로 다툰 백년전쟁은 물론이고,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신구교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위그노 전쟁에도 로슈푸코 집안의 당주들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공작력에 사는 이들은 모두 프로테스탄트인데 정작 당주는 가톨릭편에서 서서 내전을 치르는 아이러니란.

 

성 바르텔레미의 학살 당시 당주였던 프랑수아 3세가 살해되었고, 종교전쟁의 와중에 프랑수아 4세도 저격당해 죽었다. 역사소설의 주인공 프랑수아 6세는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에 대항해서 프롱드의 난의 주역으로 전장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 역시 전장에서 저격당해 실명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배신과 음모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던 당시 프랑스에서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했던가. 자신의 집사 출신 능력가 구르빌의 활약을 보고 주인공은 자신을 돈키호테에 그리고 해결사 구르빌을 돈키호테의 시종 산초 판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홋타 요시에 작가는 당시 부르주아 계급이 상업과 매관 등의 방법으로 경제적 제패를 사회적 제패로 이어 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주인공이 활약하던 17세기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다가올 대혁명의 여명기라고 해야 할까.



다음은 오늘 램프의 요정에 달려가 산 켄 리우의 소설집이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이다.

그리고 보니 다른 소설집인 <종이 호랑이>도 지인의 추천으로 읽다 말았던 것 같은데...

어제 간만에 우리 달궁 멤버들하고 채팅을 하고 나서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사자! 점심시간에 나가서 책을 샀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부터 읽었다. 소설집 가운데 가장 분량이 긴 소설이었는데 단박에 읽어 버렸다.

내가 켄 리우였다면 전설의 군신이자 관제라고 불린 의리와 충성의 상징인 관우를 중국집 주방장이나 라이더로 그리지 않았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로 대중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중화요리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그런 쉐프 말이다. 중화 요릿집의 이름은 <관운장>, 어떤가 나의 발칙한 상상력이.

 

켄 리우는 그 대신 남북전쟁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합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쿨리라는 이름으로 수입한 중국인 노동자들의 신산스러운 삶에 방점을 찍는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이다호는 아직 준주였고,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다. 얼마 전에 만난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 만난 쿨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책읽기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서둘러서 단편 2개를 읽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를 읽기 시작한다. 이제 열 개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월요일에 광활한 우주점으로 주문해서 오늘 받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그 후>. 이 책은 순전히 지난 주말에 한겨레 기사로 만난 로쟈 선생의 펌프질 덕분이다. 토요일날 살 수도 있었으나 민음사 세문보다 현암사 버전을 원해서 기다리던 중, 중고서점에 떴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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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1-20 20: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현암사 <그 후> 중고로 떠서 바로 샀었어요. 물론 안 읽었지만요 ㅎㅎ
켄 리우 <종이 호랑이> 는 몇 작품이 아직도 안 잊혀집니다.ㅠ 레삭님은 추진력이 굉장하신거 같아요. 바로 나가서 사오시고...👍

레삭매냐 2021-01-21 11:00   좋아요 2 | URL
아 그러시고나... 저도 지난 주말부터
노리고 있었는데 중고로 떠서 일단
사두었답니다 :> 민음세문은 왠지
땡기지가 않아서요.

책은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네요.

아유 <종이 호랑이>도 마저 다 읽
어야 하는데...

scott 2021-01-20 20: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찬 책쇼핑! 저도 홋타요시에 라로슈푸코 먼저 읽고 프랑스 영국 백년전쟁 종교 전쟁 귀족들끼리 서로 죽이고 싸웠던 시절 역사 책들 찾아 읽느라 정신없었던 적이 ㅋㅋ소설보다 더 잼나요 번역이 좋아서 당시 상황이 눈앞에 생생 . 전 그후 윤상인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아직 다른 소세키 책들을 완독 하지 못해서 딱 정의 하기 힘들지만 산시로-그후 -행인은 소세키 3대 명작이라고 ㅋㅋㅋ 켄리우는 종이 호랑이 읽고 그냥저냥이였는데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이책은 킨들에 묵혀두었는데 꺼내 읽어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1-01-21 11:02   좋아요 2 | URL
전 요즘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
어케 구하나 고민 중이랍니다.

고야는 예상 외로 쉽게 구할 수가
있었거든요. 1-2권은 새 책으로
나머지는 중고사냥으로 ㅋㅋ

뒤마의 <여왕 마고>가 완역으로
소개되면 치열했던 위그노 전쟁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보니 작년엔가
<여왕 마고>도 영화로 만났나 봅니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 삼부작도 만나야
하는데... 일단 책부터 지르려고 하니 ㅋ

<순록 떼> 중에 일단 관우 아메리카
정착기는 갠춘했습니다.

scott 2021-01-21 11:13   좋아요 3 | URL
매냐님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보면 몇권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요 ?
뒤마는 뻥을 너무 많이 쳐서 마고를 불쌍하게 묘사했으요
전 토마스만 형 하인리히 만이 쓴 역사서를 읽었는데 엄청 두꺼움 앙리 4세
이책이 역사서에 담지 않은 야사가 많아여 ㅋㅋ
매냐님을 자꾸 책사냥꾼으로 만드는것 같으 ^0^

레삭매냐 2021-01-21 19:21   좋아요 3 | URL
그렇지 않아도 토마스 만 샘의 형님
이 쓰신 <앙리 4세>도 컬렉션 모음
에 들어 있답니다.

근처에서 판다고 하면 바로 달려갈
뻔 했습니다. 사냥꾼으로 전업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뒤마가 카트린느 드 메디치
는 희대의 악녀로 그리고 마고 공주는
아주 지고지순한 사랑꾼으로다가...

여튼 읽으면 읽을수록 빠지는 16세기
17세기네요.

mini74 2021-01-20 2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가 켄 리우랑 테드 창 좋아해서 알게 됐어요. 저도 관우 이야기 기억에 남아요.~

레삭매냐 2021-01-21 11:03   좋아요 1 | URL
오옷 책읽는 패밀리? 대단하십니다.

전 SF 팬도 아닌데, 주변에 SF 마니아
들이 있어서 덕분에 줍줍하고 있답니다.

켄 리우의 글쓰기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붕붕툐툐 2021-01-20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램프의 요정에 자꾸 달려가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1-01-21 11:03   좋아요 2 | URL
고만 가야 하는데...
이건 뭐 습관적으로 들락거리니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