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원래 새해 1월에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 두 권을 읽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실제로 책도 조금 읽었다 아주 호기롭게. 그러나 바로 장애를 만나고 말았으니, 그 작가의 이름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였다. 아주 오래 전, 노대가의 <애너벨 리>인가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엔원년의 풋볼>을 사두었다. 오에 겐자부로(앞으로 나도 누구처럼 그를 겐산로라고 부르겠다, 내 마음대로다)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지 2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노대가를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영하의 맹추위를 뚫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간 나는 겐산로 선생의 책 두 권을 빌렸다. 하나는 바로 오늘 다 읽은 <읽는 인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익사>였다. 이렇게 새해 첫 달에 내가 읽게 될 작가는 오에 겐산로 선생으로 당첨 확정!

 

겐산로 선생은 막부 시절, 도사 번이 있던 시고쿠 시골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십대 시절에 만난 책의 역자인 도쿄대 불문과 교수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정말로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재수도 하셨다고 했던가. 마음 먹으면 그대로 되는 건가? 이웃 최고의 학부 출신의 엘리트 지식인인 겐산로 선생은 마냥 겸손하다. 반세기도 넘게 글을 써온 양반이지만, 이렇게 겸손할 수가 있나 그래. 고희를 넘기셔서도 문학에 대한 배움을 자세를 지니고 계신 품새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를 처음 만나 그의 저작에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이란. 그의 인간됨이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읽기 선배로서 그에 대한 호감은 읽는 만큼 성장한다는 선언 앞에서 바로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읽고 쓰기의 수도를 해온 겐산로 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얼치기 독서인으로 강호의 고수이자 대가의 풍모를 지닌 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조근조근하게 풀어 나가는 이야기에 그만 매료되었다.

 

일본이 막부 말기부터 동도서기론에 입각해서 서구의 문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일본 막부의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존왕양이운동을 하면서도 서구 문물의 도입을 위해 번역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할 정도였다.

 

그 덕분일까? 겐산로 선생 역시 선배 역자들이 번역한 다양한 서적들을 섭렵한 모양이다. 그리고 번역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자세를 취한다. 세상에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번역이 아닌 반역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어쩌면 선생의 말대로 가장 좋은 책읽기는 더듬거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긴 해도 원서를 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선생은 실제로 평생의 친구였던 이타미 주조라는 친구에게 불어 번역을 배우기도 했다지 않은가. 지식욕이 왕성할 시절에 그런 친구를 만난 것도 복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선생은 그의 여동생과 결혼했다고 한다.

 

문체에 대해서도 지면의 할애를 아끼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서사 구조에 집착하는 독서인이라 그런지, 문체의 중요성에 대해 대가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선생이 자신의 작품에도 많이 인용했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아직도 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아마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마음의 준비가 되면 시를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겐산로 선생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요소 중의 하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장남 히카리의 존재였다. 이십대의 나이에 두뇌에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게 된 상황이 어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삶이 고난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이라면, 아마 선생만한 고난을 체험한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이런 인생에서의 시련이야말로 선생을 위대한 작가로 거듭나게 해준 그런 계기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선생이 제시해준 독서법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모든 독서는 재독이라는 퀘스트로 귀결된다는 것일까. 첫 독서가 막무가내라면, 재독(rereading)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독서라는 설명이 폐부를 찔러온다. 그렇지, 내가 처음에 읽을 적에는 그렇게 거의 사투에 가까운 독서경험이었던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이 작년에 다시 만났을 적에는 그야말로 경쾌한 리듬으로 읽지 않았던가. 그것도 수년 동안 미루어 오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완주하고 난 뒤라 더 상쾌하게 만났던 것 같다.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디바인 코미디>에 대한 긴 설명을 읽던 얼치기 독서인에게 언젠가는 <신곡>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 엄습해 온다.

 

마지막 유대계 지식인이라는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와의 우정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후반도 인상적이었다. 지식인들의 교류는 그러한 것이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쇼팽 녹턴을 연주한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을 주선한 사이드 교수의 재치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이 정도되는 인사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되어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20일 동안 몇 권의 겐산로 선생의 책을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번 부지런히 읽어볼란다. 선생의 삶과 사유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이제 읽기 모드로 돌입한다. 출발은 물론 <만엔원년의 풋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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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1 1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새해 읽는인간으로 ! 오에 센세 만쉐!

레삭매냐 2021-01-12 11:50   좋아요 1 | URL
만엔원년의 풋볼부터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서리...

붕붕툐툐 2021-01-12 0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저도 읽고 싶은 책으로 담아놓은 책이군요~ 매냐님 따라 저도 곧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1-12 11:51   좋아요 2 | URL
일단 오에 센세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대표작부터 만나보겠습니다.

han22598 2021-01-12 0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드뎌.시작하셨군요. 기대가 됩니다. 레삭매냐님은 어떻게 읽어나가실지.

레삭매냐 2021-01-12 14:02   좋아요 2 | URL
일단 산뜻하게 출발은 했습니다...

읽은 책들이 많아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숙제하듯이 하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단발머리 2021-01-12 14: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오래 기억나는 책이라 레삭매냐님 리뷰 읽는 것도 즐겁네요.
레삭매냐님의 존경과 겸손이 리뷰 곳곳에 묻어납니다. ㅎㅎㅎㅎㅎ 오에 겐자부로가 70세에 이탈리아어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 좋더라구요. 신곡을 읽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이탈리아어를 배울 생각이 없지만 말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2 16:02   좋아요 2 | URL
오 그러셨군요... 그 연세에 대단하신
도전입니다.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사촌형님이
신부님이시라, 기숙하는 숙소에 점심
얻어 먹으러 갔었는데, 수도원장님이
이태리말 못하는 사람이 ‘닝겡‘이냐
라고 하셨대요.

물론 인종차별 그런 건 아니었구요,
그만큼 자기네 나라 언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더라나 뭐라나....

추가로 수도원에서 요리하시던 어느
아주머니에게도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제
턱을 손으로 콱 잡으시면서 둘이 턱
이 닮았네라고 하셨었어요...

scott 2021-02-10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원래도 읽는 인간이셨지만
짠돌이 알라딘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ㅋㅋㅋ 추카~추카~
오에 센세 만쉐!ㅋㅋ

설날 연휴 평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역대급 한파가 몰아 닥쳤다.

어느 뉴스에서는 2020년이 가장 따뜻했다고 하는데, 그런 뉘우스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현재를 사는 우리 닝겡들에게는 지금 눈앞의 추위가 가장 추워 보이니 말이다.

 

당장 우리 사무실(2)에서 1층이 얼어붙어서 탕비실로 물이 역류한다. 겨울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관리소장님은 조치를 안해 주시는 건지 모르겠다. 1층이 물바다가 되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1층 배수관이 얼어 2층의 우리가 아침마다 물을 퍼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긴 예전에 꽤 오랫동안 한파 때문에 사는 동네에 빨래대란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빨랫감을 싸가지고 빨래방을 찾았다가 그야말로 장사진을 친 모습에 급하게 철수했던 적도 있다. 놀랍군. 내가 사는 동네가 좀 중심가에서 외진 곳인데, 이곳까지 빨래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걸 보면 급하긴 했구나 싶기도 하다.

 

자주 쓰지 않아서인지 어쨌는지 차도 방전이 돼서 어제 점퍼를 잡으려고 보험사 긴급서비스를 요청했다. 아저씨는 30분만에 오신다고 했는데, 실제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도 승질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저 와주신 것만으로도 어찌나 감지덕지하던지. 인근 이맛트에서는 장장 세 시간이나 걸려서 긴급출동(전혀 긴급하지 않은)이 도착했다나 어쨌다나.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네 어째네 하지만, 꼴랑 이런 추위에 하나에 닝겡들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자연 어르신께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 그냥 궁금해졌다.

 

원래 빨래 때문에 벌어진 물바다에 대한 공동체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이 추위에 배수관이 어는 건 기본이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실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당분간 빨래를 자제해 달라는 방송을 앵무새처럼 틀어대고 있다. 그런데도! 당장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몰지각한 닝겡들이 아래층에 사는 이들을 눈꼽만도 생각하지 않은 채,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저층에 사시는 분들은 아닌 밤중에 물벼락을 맞아야 했고, 며칠 전 나의 모습처럼 각종 도구들을 동원해서 대야인지 바께쓰인지에 물을 퍼 날라야했다. 아파트에 사는 게 어느덧 표준이 되어 버린 21세기에 이 정도로 우리의 공동체 삶에 대한 협조와 인식이 부족한 지 그리고 나 하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작태가 넘실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됐다. 동네 커뮤너티에는 빨래 좀 고만하라는 글들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영효율화(라고 적고 경비 절감이라고 읽는다)를 위해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을 모두 해고한 모양이다. 지난주 수요일에 내린 폭설 때문에 아무도 눈을 치우지 않아 멍멍이판이 됐다. 물론 아파트 경비원님들이 눈을 치우시는 분들은 아니겠지만, 그분들 덕분에 아파트 입주민들은 직접 제설작업하는 수고를 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자리를 빌어 경비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의 경비원 분들을 모두 해고한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은, 입주자회의에서 경비원 분들 해고에 앞장선 입주자들이 나와서 눈을 치우라고 아우성이다. 이런 썰들은 정말 소설로 써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아마 좀 더 흥미롭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과장 섞인 양념도 필요할 것 같다.

 

암튼 빨래를 하기 위해 갖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농업용 배수로(?)를 사서 화장실로 세탁기에서 나오는 물을 빼는 방법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 방법도 송수관이 아예 동파되어 작동하지 않는다면 만사휴의다. 예의 배수로? 배수관은 10미터에 만원도 하지 않는다고 가격 부담도 덜하다고 한다.

 

어느 신축 아파트에서는 동파와 난방이 둘 다 되지 않아 지난 목요일부터 고생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몇 년 전에 다른 단지에서 난방공사를 가을부터 시작했다가 이러저러한 사정과 비리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는 통에 한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아 집에서 야외용 텐트를 치고 살기도 했었다. 공사 시점부터 시작해서 비용, 인력의 수급, 관리 이슈 등등해서 모든 게 문제였다. 아 참, 코로나 3차 대유행과 강추위로 아무 데도 나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울분과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한 아해들이 방방 뛰기 시작하자 발생한 층간소음 문제도 거의 폭발 수준이다. 작년에 읽은 정소현 작가의 <가해자들>이 바로 생각났다.

 

어쨌든 당분간은 원활한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라도 빨래를 자제합시다. 내가 편안하자고, 다른 이에게 불편의 원인을 제공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당분간 세탁기를 돌리지 못할 것 같아, 어젯밤에 손으로 속옷 빨래를 했다. 세상살이 만만치 않구나.

 


이 컷은 맹추위에 시달리는 즁생들의 허기를 자극하기 위한 염장샷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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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1-10 09: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난리네요 ㅜㅜ
시간이 갈 수록 미끄러져 엉덩방아 찍으면 ㅜㅜ 이제 병원 가서 물리 치료 받아야할판인데, 경비 이저씨들 모두 해고는 이런 난리에 더 이해가지 않네요 ㅜㅜ
저희는 단지 안에서도 눈을 이저씨들이 치워주셔도 차들이 언덕 앞에서 긴장하는데 에효.

레삭매냐 2021-01-10 12:34   좋아요 2 | URL
음식 배달 서비스도 그렇고,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온
일들이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을
착취해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오직 비용절감만
외쳐대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mini74 2021-01-10 1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타인에게 야박해지는 것 같아 씁쓸해요. 저희도 며칠전부터 계속 안내방송을 하고 역류 피해를 이야기하는 거 보면 기어코 돌리는 몇 몇 집이 있네요 저희 집 빨래 산처럼 쌓았더니,강아지가 너무 좋아해요 ~

레삭매냐 2021-01-10 12:36   좋아요 2 | URL
신나라하는 댕댕이가 커엽~네요.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서로가
좋은데, 너무 이타적인 감수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얄라알라 2021-01-10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파트 이야기로 페이퍼를 썼는데, 레샥매냐님 말씀에 많이 느끼고 갑니다!! 그런 문제가 있네요....저희 단지에서도 폭설 내리던 날, 새벽까지 치우시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1-10 19:13   좋아요 2 | URL
어느덧 아파트 살이가 표준이 된 세상
에 조금 더 양보하는 공동체 의식도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바람돌이 2021-01-10 1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추우면 빨래도 안되는군요. 영하로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여긴 따뜻한 남쪽이라 추워서 빨래 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어요. 다들 저기 맛나고 뜨끈한 족발 맞죠. 하여튼 저거 드시고 다들 힘내세요

레삭매냐 2021-01-10 19:15   좋아요 2 | URL
아 따땃한 남쪽 나라, 너무 부럽습니다.

저희 동네는 하루 종일 빨래 하지 말아
달라는 안내방송에, 몰지각한 이웃이
아랑곳하지 않고 빨래를 했다고 비난
하는 글들이 동네 커뮤니티에 폭주하고
있네요...

막 솥에서 삶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 사진을 보니 사진으로 남기고
싶더라구요. 빠이팅~입니다.

붕붕툐툐 2021-01-10 1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사진의 믹스매치에 이끌려 들어왔습니다(물론 아니어도 들어옵니다만..ㅋㅋ). 저부터도 공동체 의식이 절실한 요즘이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1-01-10 19:16   좋아요 2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일 수밖에
없으니 조금만 더 양보하고 이
해하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scott 2021-01-10 14: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이끌려서 들어옴 ㅋㅋㅋ매냐님 말씀에 동감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빨리 최대한 싸게 누군가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 ㅜ.ㅜ

레삭매냐 2021-01-10 20:02   좋아요 2 | URL
최근 등장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도
면밀하게 살펴 보면, 말로는 무언가 대
단히 기술혁신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러 보이지만, 결국에 나서는 하부에
있는 영세상인들이나 라이더들을 착취하
는 구조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져야 하는 책임은 외면하고,
폭설이나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자들을 위험한 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21-01-11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집은 빌라 1층이에요. 작년 여름에 부엌 싱크대 위에서 물이 새어 나왔어요. 제 방의 벽에 물이 샌 자국이 남아서 그 자리에 곰팡이가 생겼어요. 물이 샌 원인은 2층이었어요. 2층 거주자가 사비를 들여서 싱크대 위치를 옮기는 공사를 2년 전에 했어요. 문제는 공사 마무리가 부실했어요. 싱크대 배관을 구불하게 배치하는 바람에 거기가 터져서 물이 샌 것이었어요. 원인을 확실히 알아내서 2층 거주자에게 보상을 받았고요, 물이 샌 자국이 있는 부부만 도배를 했어요. 이거 때문에 꽤나 고생했어요. 방에 있는 책장, 책상, 책들 다 거실로 옮겼거든요.. ^^;;

레삭매냐 2021-01-11 19:32   좋아요 0 | URL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겠습니다.
저희 사촌 매형은 홍수가 나서 아끼는
장서들이 모두 물에 젖어서 못쓰게
되는 바람에 끌어 안고 우셨다고 하더
라구요.

책 옮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선은 당혹스러웠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나라에서 대통령 당선자의 인증을 위한 절차를 위해 상하원 의원들이 모인 나름 경사스러운 날, 한 줌도 되지 않는 트럼피들에 의해 국가적 망신을 당한 게 아니던가. 그것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있는 그대로 미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사건을 보며 대부분의 상식적인 미국 시민들의 감정은 어느 미국 의원이 말한 대로 참담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작년 미국 대선은 20년 전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다. 그 때는 전국 총 투표에서 앨 고어가 아들 부시를 이기고서도 대통령 선거인단 확보에 지자, 온갖 부정에 대한 음모론과 선거 오류가 난무하던 플로리다 재검표 소송에 들어가는 대신 그야말로 대승적 차원에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공화당 보수파지만, 내가 존경하는 존 매케인 아저씨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나서 성난 자신의 지지자들을 다독이며 상대방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연설을 했다. 이런 게 바로 미국 정치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아니 어쩌면 너무 느슨하고 복잡한 연방 시스템이 작금의 혼란을 부추긴 것인 지도 모르겠다. 종래의 미덕을 모두 부정하는 이제 임기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어느 대통령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게 아니던가. 2020년 그 어느 때보다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사람들이 대선 당일 투표보다 우편투표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을 도널드 트럼프는 몰랐을까? 선거 당일 투표를 먼저 개표하는 보통 선거의 특성상, 개표 초반 자신이 앞서자 남은 우편투표 결과는 필요 없다고 대선 승리를 선언하는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수일에 걸친 우편투표 개표와 재검표 결과, 지난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결에서 자신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박빙 우세로 승리를 거두었던 펜실베이니아, 위스컨신이 조 바이든에게 넘어가고 자신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애리조나와 남부의 조지아까지 바이든이 가져가면서 트럼프의 패배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니 이 정도까지 되었다면 담담하게 선거 패배를 인정했어야 했는데 사리구별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행정부 수반으로 있으면서 선거관리를 했음에도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그야말로 상식을 모조리 파괴하는 언동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그런 선거불복과 선동의 여파가 이번 미국 의회 의사당 테러의 원인이었다.

 

사건의 현장이었던 워싱턴DC로 열성 트럼피들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트럼프가 누구였던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며, 딸 이방카까지 나서서 애국자라며 칭송하는 트윗을 날리자 이에 자극받은 트럼피들이 의사당에 난입해서 이 사단을 만들지 않았던가. 결국 트럼프 지지자 한 명이 그들을 제지하던 의회 경찰이 총에 맞아 죽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주 방위군을 출동시켜 달라는 요청을 행정부 수반이 무시하자, 이번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나서서 민주주의의 본산 미국에 이런 무정부적인 행태를 멈춰 달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이 없을 것이다.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이런 폭거를 미국 정부는 다스릴 능력이 없단 말인가. 아울러 왜 이번 의회 의사당 점거 사태에서 경찰들이 예전 BLM 사태와는 달리 엄정한 법집행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흑인들이 총기를 들고 의사당에 난입했다면, 이번 사태처럼 경찰들이 손 놓고 보고만 있었을지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그곳에서도 아마 선택적 정의가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미국 의회 의사당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자랑하던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 비록 바이든 행정부가 행정부에 이어 미국 상하원 의회 권력까지 모두 쥐게 되었지만, 트럼피들로 대변되는 반대 세력들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국가 통합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와는 달리 분열과 갈등을 획책한 전임자 때문에 둘로 나뉜 미국의 앞길이 심히 걱정된다.



[뱀다리] 이번 의사당 사태를 통해 핵인싸로 등극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애리조나에서 온 도라희이자 큐어넌 지지자 제이크 앤절리라는 청년이다. 어때 복장부터 특이하지 않은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려면 이 정도 코스튬은 기본이지시중에 돌아 다니는 그의 모습은 담은 여러 이미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조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렁차게 포효하는 컷을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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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1-08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뉴스를 보며 놀람, 다음엔 탄식이 나오더군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또하나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특정 개인에 대한 허상인지, 특정 국가에 대한 허상인지, 어떤 이념에 대한 허상인지, 아주 모호합니다.
제이크가 사랑한것은 ‘국가‘ 맞을까요? 에효...

레삭매냐 2021-01-08 17:42   좋아요 0 | URL
‘샤먼‘ 제이크가 사랑한 것은
조국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착각한 그 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연 2021-01-08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스트레스 해소할 데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맹목적적이던데..ㅜㅜ
마지막 사진의 제이크. 헐...........................

레삭매냐 2021-01-08 17:43   좋아요 0 | URL
파이프 폭탄도 발견되서 FBI도
나섰다고 하더라구요.

천조국의 스타일은 정말 남다
르네요.

고양이라디오 2021-01-08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트럼프가 연임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트럼피보니 태극기부대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ㅠ

레삭매냐 2021-01-08 17:44   좋아요 1 | URL
퇴임을 앞두고 정말 화끈하게
한 판 보여주고 가네요.

후임 대통령 취임식날 그 자리
에 참석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2024 대선 출정식을 가질 예정
이라는 루머가 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1-08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언제든 폭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말 그대로 생중계로 보고 말았네요. 평범한(?) 사람들도 많아 보였구요. 언론의 책임이 크죠.
트럼프가 4년 뒤 돌아온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던데 어제의 기세대로라면 뭐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에휴, 미국 어쩔 ㅠㅠㅠ

레삭매냐 2021-01-08 17:46   좋아요 0 | URL
미국 역사에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
이 절치부심해서 4년 뒤에 돌아온
케이스가 있는 지라, 트럼프도 희망
고문에 들어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의 정계 은퇴식이 되길
희망합니다. 가정은 생각만 해도 아찔~
합니다.

stella.K 2021-01-0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그러더군요. 트럼프는 원래 아버지로부터 패배라는 걸 모르도록
교육 받고 자라왔다고. 그게 오늘 날 이런 패단을 낫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겁니다. ㅉㅉ

레삭매냐 2021-01-08 17:50   좋아요 1 | URL
그 이전에 대통령 답지 않은 이들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모든 전례를 깨는
워스트 프레지던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장식한 지도자로 오래 기억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mini74 2021-01-08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 영구정지 당한 대통령은 그 분이 최초일듯. 거기다 국회의사당 물건이 이베이에 올라오고 ㅠㅠ 정말 역대급 사건인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1-08 17:58   좋아요 0 | URL
얼굴책 계정 정지와 이베이 건은
미처 몰랐던 정보네요 세상에나...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내세우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파천황급이네요.

mini74 2021-01-09 23:08   좋아요 1 | URL
ㅠㅠ 페이스북아니고 트위터라네요 ㅠㅠ

페크pek0501 2021-01-0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뉴스 보고 충격을...
비상식적인 장면이 미국에서 연출되었다는 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레삭매냐 2021-01-09 08:10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쉬르-리얼리스틱한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제국이 이렇게 몰락하는구나하는.

하나의책장 2021-01-08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보며.. 충격 받았었어요.. 의회에 난입해 휩쓸고 간 것을 보면서 순간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었나 생각했을 정도였거든요.. 트럼프가 당선될 당시 미국뉴스 중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을 것이라는 당시 뉴스의 한 부분이 문득 떠올랐는데 이번 사건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1-09 08:14   좋아요 1 | URL
5년 전, 암울한 예언들은 거의 다
들어 맞은 것 같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정치에서의 선의가 조금도 작동
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사태를
통해 배우게 되었네요.

cyrus 2021-01-09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가 싼 똥들을 치우느라 꽤나 고생할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21-01-09 09:47   좋아요 0 | URL
도람푸가 재선에 실패한 몇 안되는 대통령
중의 하나인데, 말씀해 주신 대로 그 후유증
이 어마어마할 것 같습니다.

그는 진정 파천황급 인사였네요.
 
미국사 산책 3 -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 미국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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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준만 선생의 책을 다 읽게 될 줄이야. 그것도 자그마치 미국사에 대해서! 물론 이 책을 읽게 된 연유는 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덕분이다. 항상 그렇지 않은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든 독서란. 굽시니스트 작가가 소개한 미국 남북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너튜브를 참조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찾아 보았는데, 개설서로 강준만 선생의 책이 제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 상당한 비준으로 다룬 태평천국에 대해서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란 책이 있던데 가격과 분량에 있어 후덜덜이라 일단 보류 중이다.

 

미국은 건국된 지 채 1세기도 지나지 않아 남북의 첨예한 갈등으로 나라가 두 쪽이 났다. 결정적 차이는 역시나 남부 대농장에서 실시 중인 노예제도였다. 노동집약적 면화산업을 위해 남부에서는 다수의 일손이 필요했고, 그 결과 남북전쟁이 발발할 당시 남부 900만 인구 중에 350만 명이 흑인 노예일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남부와 달리 산업화가 진행된 북부는 인구도 배나 더 많고(2,200) 생산력도 월등했다. 북부의 극렬한 노예 폐지론자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강준만의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 특히 존 브라운의 활동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새로 연방에 가입하는 주들에 노예제를 허용하냐 마느냐에 대한 격론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남부에서는 북부의 노예폐지론을 자신들의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 들였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허무는 노예제 폐지에 절대 공감할 수 없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필두로 한 7개주는 186011월 공화당 출신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연방 탈퇴를 결의한다. 켄터키 주 호젠빌 출신의 링컨은 사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천재이자 박식했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하나의 미국, 연방을 지키기 위해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링컨은 남부 제주들이 연방에 존속하기만 한다면 노예제에 대해서는 눈감아 줄 의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연방 유지라는 대의 앞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버린 노예제 폐지는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정략적 카드였다. 북부의 유화적인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1861412일 제퍼슨 데이비스를 수반으로 세운 남부연합군이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연방 요새인 섬터 요새를 공격하는 것으로 5년 내전의 막이 올랐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링컨의 북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북부의 생산력의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종결시킨다는 낙관론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번째 불런 전투에서 남군에게 대한 패배를 필두로 해서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에서 동부전선의 포토맥군이 연패를 당하면서 전쟁을 장기전으로 접에 들게 됐다. 물량만 앞세운 북군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재산(노예!)과 영토 그리고 명예를 지킨다는 결의로 무장한 남군 부대의 사기는 북군의 그것을 능가했다. 게다가 기존 연방군의 주축을 이루던 남부 출신 고위 지휘관들이 연방군에서 물러나 남군에 가담하면서 전황의 추는 남북의 균형를 이루게 된다.

 

한편 내전 초기, 노예주였던 메릴랜드, 델라웨어, 켄터키, 미주리를 연방이 정치 군사적 압력으로 제압했던 것도 남부에게는 타격이었다. 동부전선에서 계속해서 밀리던 북군은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된다. 그리고 윌리엄 테컴세 셔먼이 지휘하는 테네시군이 아나콘다 작전으로 미시시피 강의 수운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진격을 개시하면서 전황은 블루군(북군의 제복 색깔)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역시 전쟁의 게임의 체인저는 뭐니뭐니해도 186311일 링컨의 전격적인 노예해방령이었다. 이 선언으로 중립 상태에서 미국내전에 개입을 노리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북군은 노예제 존속을 위해 싸우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남부연합을 제압하면서 도덕적 차원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병력과 군수물자 생산 그리고 도덕적 명분까지 모두 북군에게 빼앗긴 남군에게 셔먼이 이끄는 북군이 남부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애틀란타를 함락시키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등장하는 불타는 애틀란타 시가지의 모습이 예의 재현이라고 했던가. 전 시가지의 95%를 전소시킨 초토화작전으로 셔먼 부대는 남부의 전쟁 의지를 꺾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대서양의 서배너까지 진격하면서 남부를 휩쓸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남부 사람들이 셔먼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하니 셔먼의 청야전술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1866년 조선 대동강에 상륙해서 사단을 일으킨 제너럴 셔먼 호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결국 그렇게 5년을 끈 내전은 남부군의 항복으로 종식되었고, 애틀란타 공략으로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독재자의 이미지를 벗고 연방의 영웅이자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암살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링컨에 대한 책과 학술 서적 그리고 숱한 연구들이 행해지고 있다고 하니, 위인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건국 89년 만에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을 이루게 된 연방국가 미국은 비로소 제국으로 팽창할 준비를 끝냈다. 동부의 7개 식민주에서 출발한 미국은 팽창주의를 숙명으로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건국부터 독립전쟁으로 시작한 이 나라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서방으로 진출했다. 셔먼은 남북전쟁 뒤에는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인디언 전쟁을 수행했는데, 서부 개척은 철도 부설을 앞세운 투기 세력의 제국화의 과정이 다름이 아니었다. 철도 재벌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와 자본가 대니얼 드루로 대변되는 산업자본가들이 전쟁 특수를 타고 자본주의 제국 건설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남북전쟁 전까지만 해도, 3류 산업국가였던 미국은 특유의 근면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천박한 물질주의에 힘입어 영국과 프랑스 등 종래의 산업국가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전신 전화 그리고 백열등 같은 첨단 신기술의 발명과 도입은 세계 패권국가 미국의 조연이었다. 대륙횡단 철도를 부설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간 것도 미국이 조성한 세계제국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전쟁영웅이었던 그랜트 행정부 아래서, 각종 특혜과 이권을 챙긴 기업가들은 건국의 선조들이 꿈꾸던 모두가 행복한 나라 미국이 아닌 소수의 그들만 행복한 나라로 변모시켰다. 숱한 탈법과 위법을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자본가들의 천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저자는 냉정하게 분석한다.

 

그렇게 미국사 산책을 하면서도, 강준만 선생은 조선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결국 미국사를 통해 연계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는 의미일까.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조선은, 미국과도 역시 조약을 맺게 된다. 그나마 세계열강 중에 낫다고 판단한 조선 조정은 미국과의 선린관계 유지에 힘을 쓰지만 미국의 주된 관심은 일본 개국이었고, 조선은 관심 밖이었다. 고종은 이이제이 전략으로 미국이 다른 열강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 미국은 딱히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미국사 산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많은 너튜브 컨텐츠들이 어쩌면 강준만 선생의 책을 참고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정보들이 많더라. 유사상품을 보고 나면, 역시 오리지널이구나 싶다는 게 바로 이런 감정이려나



미국 의회 의사당 담벼락을 기어 오르는 트럼피들의 모습. 추락하는 미국식 의회 민주주의 민낯이 그대로 라이브로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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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1-01-07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언젠가는 강준만 교수와 산책을 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한국 근대사산책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대단하세요~전 요즘 연작읽기가 안되네요ㅠ

레삭매냐 2021-01-07 10:54   좋아요 1 | URL
제가 어찌 17권짜리 연작에 도전
하겠습니까 그래.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읽다가 참고로 만났답니다.

연작은 넘사벽이라 잠시 미루겠습니다 :>

유부만두 2021-01-07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의적절한 독서에요!

레삭매냐 2021-01-07 11:14   좋아요 2 | URL
열혈 트럼피들의 미의사당
난입 사건은 정말 쵝오!~였습니다.

외신에서는 rioter 라고 표현하네요.

미국식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만방
에 생중계로 알린 쾌거가 아닐 수
없네요. 세상에나...

2021-01-07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2   좋아요 2 | URL
아주 다양한 연구 자료까지 섭렵하셔서
미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의 그것
에 접목하시려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
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7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미국사 산책>이 분량 많은 시리즈물로 알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빠른 시일 내에 완독하신 레삭매냐님이라면 금방 읽으실 것 같네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레삭매냐 2021-01-07 14:23   좋아요 2 | URL
으아 총 17권로 완결되었더라구요 ~

제가 완독에 도전하는 것으 아니고요,
달랑 3권만 읽는 것으로 일단은.

주변의 압박으로 도전해야 하나요 ㅋㅋ

페크pek0501 2021-01-08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선생의 책을 저도 몇 권 가지고 있지요. 글이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죠. 재미도 있고요.
이 책은 17권까지 있더군요. 맞나요?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저술이라니 감탄스럽네요. 지금 이 시간에도 강 선생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것만 같아요.
미국사 산책, 제목이 좋네요. 왠지 이 책을 읽으면 세계가 다 얽혀 있어서 세계사를 공부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레삭매냐 2021-01-09 08:10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언제고 17권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너무 많으니...

붕붕툐툐 2021-01-13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미국사 산책 13권까지 읽었다고 자랑질하고 가야지~하며 신났는데... 내용이 몇 개밖에 생각이 안 나서 자랑 못하겠당..ㅠㅠ

레삭매냐 2021-01-13 17:00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저는 꼴랑 한 권
읽었는 걸요 ㅋㅋㅋ

네 권 더 고고씽~
 
돌의 부드러움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 / 북스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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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조각들>을 읽고 나서 바로 내리 달렸다. 이번에는 마리옹 파욜의 <돌의 부드러움>이다. 알라딘 이웃님의 포스팅을 보고 나서 아마 도서관으로 냉큼 달려가 빌린 책이다.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파욜 작가의 책이 두 권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연말에 연간 독서 권수를 늘려 보겠다는 아주 얄퍅한 계산도 들어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냐만서도.

 

<돌의 부드러움>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아버지가 폐를 한쪽 잃고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던가.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그런 무기력한 존재로 변신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시절 절대자로 군림하던 이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배우자로서 그리고 자식으로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어디까지가 정답일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을 해 보니, 돌아가실 즈음해서 치매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던 손주도 못 알아보시고, 며느리도 못 알아보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같이 지내던 사촌 동생이 임종까지 했다고 했던가.

 

아버지가 코부터 시작해서 입술 그리고 눈까지 잃어 가는 과정을 작가는 차분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상실의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아마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냥 경황 중에 그 모든 게 지나가길 바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실감은 아주 나중에 그렇게 찾아오길 바랄 뿐.

 

흰 옷 입은 병사들의 등장은 아빠를 돌보는 파욜 가족에게 위기로 작동한다. 파욜 가족은 속수무책이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결국 그들은 결정한다, 그들 스스로가 흰 옷 입은 병사들이 되어 아빠를 호위하기로.

 

왕좌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아빠가 곧 삶의 무대에서 퇴장할 거라는 걸 가족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기에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쿠데타를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갖가지 변명거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세월이 사람의 모난 성정을 다듬어 준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정이 둥글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자고로 나이와 술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니까 말이다. 내 젊은 날의 모습과 지금의 그것은 너무도 다를 테니까.

 

이건 여담으로, <돌의 부드러움><관계의 조각들>보다 3,000원이 싸다. 그 차이는 어쩌면 프랑스문화원의 도움차이 때문이려나. 분량도 두 배 정도 되고, 글밥도 더 많은데 싼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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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3 00: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덩치크고 뾰족한 말투로 항상 상처를 주었던 돌, 그 돌이 작가 아버지네요 그돌이 아버지에 병마 일수도 있고 ㅜ.ㅜ

레삭매냐 2021-01-03 12:46   좋아요 3 | URL
오! 중의적인 해석~
고저 놀랍습니다...

페넬로페 2021-01-03 0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죽음앞에서는 모두가 나약해지죠~~
본인도 우리들도요^^
왜 죽는걸 다 알연서도
그렇게 나쁘게 행동할까요?

레삭매냐 2021-01-03 12:48   좋아요 4 | URL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모름지기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의도적
으로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