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기록될 얼간이 대통령은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서도 불복할 태세다. 선거를 통해 얼마나 미국 사회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엉터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전 세계 시민들이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일찍이 말했다지 않은가. 잘못된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마차타고 다니던 시절의 선거 시스템을 고집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슈퍼 라떼 꼰대 올리브 키터리지 여사도 돌아왔다. 남편 헨리를 여읜 교사 출신 라떼 꼰대 올리브. 심지어 그녀가 사는 동네조차도 현대 미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뉴잉글랜드 메인 주다. 아니 어쩌면 올리브 키터리지가 실존 인물이라는 얼간이 대통령에게 투표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원작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서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달랑 한 편의 소설로 때우는 건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이 작가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모두 13개의 연작소설 같은 구성으로 <다시, 올리브>는 이루어져 있다.

 

내가 오늘 새벽에 만난 새 소설의 맛보기는 네 번째 인스톨인 <엄마 없는 아이(Motherless Child)>였다. 스토리는 간단한다. 대도시 뉴욕에 사는 아들 크리스토퍼와 앤 그리고 네 아이들이 올리브의 초청으로 메인 주의 포틀랜드를 찾는다. 뉴욕 방문 3년 만이라고 하는데, 아마 뉴욕 방문 당시 호되게 며느리 맛을 본 올리브는 다시 아들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메인과 뉴욕의 거리 만큼 모자 관계도 썩 원만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이번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도시와 농촌 간의 거리 같다고나 할까.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얼간이 대통령이 대선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캠페인에 열광했다. 이미 세계 제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은 반 세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지 않았던가. 제국으로서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자국 우선주의에 침잠하는 모습이 올리브 여사의 그것에서 느껴졌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올리브 여사는 온 몸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또 한 가지 나의 관심을 끄는 건 핏줄에 대한 집착이다. 크리스와 앤 사이의 자식들은 모두 이부형제들이다. 리틀 헨리와 내털리가 올리브의 진짜 손주인 셈이다. 라떼 꼰대 여사는 리틀 헨리에게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찾는다.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족부학 전문의인 아들과도 사이가 영 껄끄럽다. 자신의 앞에서 서슴지 않고 가슴을 드러내고 모유 수유를 하는 며느리 앤도 영 탐탁지 않다. 이만큼 구 시대의 가치와 정면충돌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또 있을까. 무언가 거대한 것을 통해 사회의 변해가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이렇게 전 세대와 다는 육아방식 같은 소소한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통 방식의 토스트 대신 치리오스인지 뭔지 하는 시리얼 타령을 해댄다. 결국 올리브 여사사 나서서 마트에 가서 아이들이 애타게 찾는 치리오스를 사온다. 이번에는 우유가 떨어졌다. 정말 , 맙소사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제 진짜 크리스 가족을 메인으로 초대한 이유가 등장할 차례다.

 

그것은 바로 전편의 말미에서 만난 잘난체하는 스타일(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하버드대에서 평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역사에 대해 가르친 잭 케니언과 결혼발표다. 참, 잭은 그녀에게 처음에는 '재수 없는 영감탱이'였지 아마. 두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신에게 냉랭했던 어머니의 아들인 크리스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폭발해 버린다. 결국 그것을 위해 자기 가족을 메인으로 부른 게 아니냐고 격렬하게 대꾸질에 나선다. 아마 올리브는 그 순간, 연인 잭에게 S.O.S.를 칠 생각도 했으리라.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몫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아들 크리스 입장에서 볼 때, 무뚝뚝한 엄마 올리브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어 보이진 않았을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올리브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니 말이다. 생전 사용하지 않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나, 어울리지도 않는 스바루 SUV(사실 잭 케니언의 차였다)를 운전하는 모습이 자신이 아는 고루한 시골 할머니의 스타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앤에게 야단 맞는 아들의 모습에서 올리브는 자신이 죽은 남편 헨리에게 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국 아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부인을 얻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가정사가 언제나 그렇듯 별 것도 아닌 다른 차이로 인해 격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세계대전을 앞두고 부부싸움을 하진 않으니까. 대도시 뉴욕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담아주는 종이봉투가 뉴욕 출신 아이들의 눈에는 생경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또 자신은 어머니가 사별하고 나서 외로움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것에 대해 반감을 유감없이 표출한다. 이게 뭔지? 무언가 공평하지 않잖아! 올리브는 사부인이 최근에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앤을 통해 알게 된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사돈관계에서 대소사가 서로 교류되는 한국이었다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질 그런 상황이 아닌가. 모든 게 그렇듯, 이런 일들을 통해 올리브는 앤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다고 해서 극적은 무언가를 이루고 그러는 건 없지만.

 

나머지 열두개 이야기의 출간을 기다리다 못해 슬쩍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는 치팅을 해보았다. 역시나 전편과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위스키를 사러 갔다가 경찰에게 과속딱지를 띠는 74세의 역사학 교수님, 오지라퍼답게 베이비 샤워에 갔다가 엉뚱한 아이를 차에 싣고 오는 에피소드 등등. 역시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싶었다. 드디어 책이 내일 나온다 하니 기대해 본다.


[뱀다리] 잭 케니언과의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서 전편을 찾아 들고 출근했다. HBO 드라마는 어디에 두었더라.


[뱀다리2] 올리브는 전작에서 당시 대통령을 정신지체라고 표현했었다. 그보다 더 쎈 얼간이 대통령은 뭐라고 부를지 궁금해라.

 


어제 <다시, 올리브> 페이퍼를 쓰고 나서 다시 <올리브 키터리지>의 몇 인스톨을 읽어봤다. 십년 전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 휘발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다시 읽으니 주술처럼 그렇게 기억들을 소환되더라. 이런 맛에 재독을 하는 거이지.

 

올리브의 뉴욕행은 재난이었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에서 올리브는 하버드 출신의 잘난 박사 학위를 두 개나 가진 재수 없는 잭 케니언을 만난다. 둘 다 모두 배우자를 잃었고,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진 노인네들이었다.

 

바로 읽고 싶은데 책을 살 수도 없다. 아직 미출간이란다. 그래서 결국 구글링을 해서 원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네 그래.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내러티브에 집중하면서 읽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단속, 원서에는 Arrested라고 되어 있던데... 하긴 체포가 되진 않았으니 단속이 더 맞는 표현인 듯. 속옷 때문에 잭은 계속해서 프리포트를 타령을 하던데 옛 기억을 되살려 보니 프리포트에 아웃렛이 있었지. 이렇게 읽다 보면 책이 수중에 들어오기 전에 제법 읽겠는 걸 그래.

 

, 그리고 올리브는 공화당에 절대 투표하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 잭과 만났을 때 개심한 코카인쟁이에게 잭이 투표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한 걸 보면 말이다. 아마 얼간이 대통령에게도 투표하지 않았겠지. 어디선가 92세 된 미국 할머니가 얼간이 대통령 반대 운동을 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문득 올리브 키터리지가 떠오르더라. 재독하면서 그렇게 기억 속에 잘못 각인된 점들을 교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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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10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베이비 샤워 얘기 정말 재밌어요!! 어쩜 그렇게 베이비 샤워에서 생기는 일에 대한 표현을 잘 하던지!! 그것 말고도 재밌는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올리브가 실존 인물이라면 얼간이 대통령 절대 안 찍고 욕을 해줄 것 같아요. 올리브는 꼰대 같은면서도 젊은 사람보다 더 개방적인 면도 있거든요. (제 의견) 그건 그렇고 요즘 가끔 보이는데, 라떼,,, 어느 경우에 사용하는 단어인가요? ^^;;

레삭매냐 2020-11-10 10:2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제가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읽고
있는데 전임 대통령을 정신지체라고 부르는
걸 보니 ㅋㅋㅋ

‘라떼‘는 꼰대들이 ˝나 때는 말이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희화화한 거라네요.
저도 직장 동료들에게 한 수 배웠네요.

단발머리 2020-11-10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이웃 분 서재에서 ‘올리브 키터리지‘ 여태 안 읽은 사람 저 뿐이라는 소식에 좀 슬펐는데 ㅎㅎㅎ 레삭매냐님 방에서도 <올리브 키터리지> 만나니, 이 책은 저에게 운명인가 봅니다.
차근차근 따라가려 해도 어마무시 읽을 책이 많네요. 레삭매냐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0-11-10 13:26   좋아요 0 | URL
아니 여적... 올리브 키터리지를 안 읽으신
분이 다 있다니 ㅋㅋㅋ

저희 달궁 모임에서 예전에 이 책으로 독
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희 멤버 중
의 한 분이 당대 미국 사회를 비유한 작품
이라는 해박한 분석에 격렬하게 동의했던
시절이 있었습죠.

이 자리를 빌어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랄한 사회비판을 안고
돌아왔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이번 10월에는 두 명의 작가와 만났다.

 

한 명은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독일 출신의 작가 율리 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지난 2005년에 작고하신 캐나디언-아메리칸 작가 솔 벨로다.

 

일단 율리 체는 지금까지 12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국내에 소개된 네 권의 소설들을 10월에 부지런히 읽었다. 법학 박사님 출신으로 현직 법조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소설가로도 자신의 본업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연상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평행우주 이론을 등장시켜 소설읽기를 사랑하는 나 같은 문과 출신을 기겁하게 만들기도 하고, 카나리아 군도의 란사로테로 독자를 유혹해서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지닌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단상을 엿보여 주기도 한다. 건강이 최고가 된 미래사회에서 병날권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통제사회와 싸우는 SF적인 스토리를 제시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꼽은 율리 체 최고의 작품은 역시 란사로테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치정극이자 전문적인 잠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잠수 한계 시간>이다. 사람들이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준 수작이다. 인간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공기가 없는 우주에 대한 도전은 극히 어려운 반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물속으로 잠수복을 입고 웨이트 벨트를 차고 경이로운 세계로 침잠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주 조금은 숭고해 보이기도 하더라. 내가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잠수에 대한 주제여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고, 또 예전 책들은 계속해서 절판/품절되는 와중에 책사냥에 나서느라 약간(?)의 고생을 한 건 안비밀이다. 하긴 쉽게 얻은 건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없기 마련이긴 하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계속해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타자는 솔 벨로. 순전히 제임스 설터의 위험한 책 <소설을 쓰고 싶다면> 때문에 읽게 되었다. 물론 우리 독서 모임인 달궁모임에서 솔 벨로가 기가 막히게 좋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선뜻 손에 가지 않았다. 국내에 소개된 대표작 <오기 마치의 모험>(전미도서상), <허조그> 그리고 <비의 왕 헨더슨> 역시 품절/절판의 수순이다.

 

게다가 나의 컬렉션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먼저 <비의 왕 헨더슨>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유진 H. 헨더슨은 아프리카의 돈키호테라고 부를 만하다. 보통 유대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솔 벨로는 헨더슨을 비유대인으로 설정했다. 헨더슨은 2차 세계대전 최고의 격전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몬테카지노 전투에서 생존한 전쟁영웅이다. 자신을 코네티컷의 돼지치기라고 부르는 이 남자는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친구 찰리 앨버트의 아프리카 신혼여행에 동반한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 중에 만난 무패를 자랑하는 아르느위 부족의 이텔로 왕자와의 씨름 대결에서 특공대 출신의 기량으로 왕자를 두 번이나 메다꽂는 중년남자의 힘을 과시한다. 어느 인스타에서는 헨더슨 씨를 난봉꾼이라고 부르던데, 조금 공감했다. 딱 여기까지 읽고서 이번에는 <허조그> 1권이 도착해서 <허조그>에도 달려 들었다. 동시에 다른 책을 읽는 나의 엉뚱한 패기란.


아프리카를 이상향으로 삼은 돼지치기 헨더슨 씨가 우연히 만난 이텔로 왕자는 예상과 달리 영어를 사용했다. 일찍이 소아시아 미션 스쿨에 유학해서 영어를 배웠다는 왕자의 등장에 깜짝 놀랄 수밖에. 하긴 이미 탐험이 되지 않은 곳이 없었던 1950년대 말이 아니었던가. 서구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제국주의적 시선이 이식된 듯한 느낌에 어리석은 독자는 화들짝 놀라 버린다.

 

아르느위 부족의 눈물 사절단에 헨더슨 씨는 식겁한다. 왜 이러는 거지? 알고 보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자 먹거리를 제공하는 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가뭄에 들어 그런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소들에게 먹일 물의 식수원이 개구리와 올챙이들에게 오염된 것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었던 거구의 헨더슨 씨가 나설 차례다. 과연 그의 등장이 재앙인지 축복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테고.

 

미국 사회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추방당한 헨더슨 씨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열망을 좇아 미지의 세계인 아프리카로 도피한다. 아니 좀 더 고상한 표현으로 하자면 순례길이라고 할까. 광기에 사로 잡혀 기사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 나선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헨더슨 씨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아프리카의 돈키호테라... 긴 창 대신 매그넘으로 무장하고, 비루먹은 로시난테 대신 찰리 앨버트에게 뜯어낸 최신형 지프를 타고 그의 산초 판자인 로밀라유와 함께 모험에 나선다.

 

결국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헨더슨 역시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긴 여정에 오른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이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시행착오로 귀결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삶에서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것들을 폭바로 날려 버리면서 그는 자신 내부의 결핍을 해소한다. 결국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성장이라는 것일까. 솔 벨로가 현대판 우화로 포장한 <비의 왕 헨더슨>은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허조그><비의 왕 헨더슨>만큼이나 좀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느낌이다. 물론 허조그는 주인공 모지스 허조그의 이름이다. 이 양반도 중년으로 대학교수 출신 유대인이다. 소설의 소개를 보니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가깝다나. 허조그는 오쟁이진 남편으로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다. 아니 그 순간에 이미 이혼했던가. 그 사실에 괴로워 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동정을 느끼려는 순간, 이 인간 역시 이혼한 제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이게 뭐야! 그리고 허조그의 현실도피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도 일단은 여기까지.


단순히 오쟁이 진 불쌍한 주인공의 고독한 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허조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내 매들린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사방에 편지를 쓰고, 지식인으로서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야말로 폭발한다. 한 시절, 세상의 모든 생산은 물론이고 지적 생산력까지 독점했던 미국이 가진 소프트파워가 느껴졌다. 세계대전과 대학살의 시대를 지나 인류의 지속적인 진보가 가능한가 그리고 지금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기술의 발전을 우리 인류가 수용가능한 수준인가에 대한 논의는 대단했다.

 

어느 순간, 철저한 개인사에서 공리적인 차원의 논제로 넘어가는 바탕에는 주인공 모지스 엘카너 허조그가 대학교수라는 점이 자리한다. 어느 작가라도, 이런 거대한 어젠다 세팅을 그야말로 돈에 미친 크로아티아 제철 노동자에게 맡기진 않았으리라. 당대 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의 학자야말로 이런 설정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맛이 씁쓸해진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들로 해서 솔 벨로는 나에게 10월의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의 책들을 몇 권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고, 바로 읽기 시작하니 만사 제쳐두고 이 책들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리고 지적 유희는 물론이고, 읽기에 재밌고 도대체 이 놈의 인간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지도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책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솔 벨로의 책들은 펭클과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그나마도 다 절판됐다)이 몇 권 되지 않는다. 퓰리처상에 전미도서상 3회 수상 그리고 무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임에도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다니... 고저 아쉬울 따름이다.



<비의 왕 헨더슨><허조그>를 차례로 읽고 난 뒤에는 대작 <오기 마치의 모험>에 도전할 차례다. 아직 <허조그> 두 번째 권과 <오기 마치> 마지막 권을 구하지 못한 것은 안비밀이다.


이번 솔 벨로 도전에 나서면서 한 가지 느낀 점. 일단 사둔 책은 언제고 읽게 된다는 간단한 진리. 그러니 언젠가 만나게 될 책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무슨 책을 사들일까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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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29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기 마치의 모험>으로 솔 벨로우를 시작했다가, 아주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오기 마치....>가, 이거 참, 원래 그런지 아니면 (이렇게 말하면 진짜 실례지만) 반역적 번역을 했는지, 그거 읽고 벨로우는 미국 내 유대인 프리미엄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오랜 시간동안 읽지 않았다가 오늘 쓰신 <허조그>를 읽은 다음에 좋아하기 시작했습지요.
<...핸더슨>부터 읽으신 것이 어쩌면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29 13: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디선가 솔 벨로가 미국
문학계의 짱이다라는 평을 듣고
부지런히 책을 모았습니다.

물론 읽지는 않구요... 글다가 설터
선생의 자극을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비의 왕 헨더슨>이 신의 한수였나
봅니다. <오기 마치>는 세 권이라 ㅋㅋ
그리하야 오기 마치는 맨 끝에 읽는
것으로. <허조그>도 참 좋네요.

겨울호랑이 2020-10-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어떤 분야나 융/복합이 대세인 듯 합니다. 덕분에 어느 분야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요. 이를 다양한 분야를 알 수 있어 좋은 변화라 해야 할지,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느껴야 하니 안 좋은 변화라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0-10-29 13:22   좋아요 1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라고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설터 샘의 인도를 따라 그냥
어중이 독자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서를 하는 것으로 ㅋㅋ

그런데 방대한 독서를 하시는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 자극을 느끼곤
하지요. 다만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
인지라 현실에 만족하려구요.

han22598 2020-10-31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덕에 알게 된 율리체..... 새해, 잠수 한계시간 두권 샀어요 ^^ 잠수한계시간이 괜찮다고 하시니 그것부터 시작해봐야겠네요. ^^

레삭매냐 2020-10-31 21:55   좋아요 0 | URL
<잠수 한계 시간> 정말 재밌습니다.

율리 체 박사님의 책이 다 그렇지만
<잠수 한계 시간>은 특히나...

페크pek0501 2020-11-11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작으로 뽑히신 것 우선 축하드리고요...
솔 벨로의 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급관심...
 
세상 끝의 풍경
쟝 모르.존 버거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주로 한 놈만 팬다. 어느 한 작가가 꽂히면 일단 그 작가의 책들부터 수집한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최근에 독일 출신 작가 율리 체가 그랬다. 그나마 율리 체는 번역서가 네 권이어서 다행이지. 로맹 가리나 이언 매큐언 같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책이 끝없이 나온다. 그래서 전작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존 버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고책방에서 왜 그렇게 존 버저의 책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은지. 지난 여름에 존 버저의 이름을 보고 산 <세상 끝의 풍경>도 그랬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건 존 버저의 책이 아니라, 그의 문학적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사진가 쟝 모르의 책이 아닌가. 뭐 그래도 상관없다. 책이 인도하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정도(正道)만은 아닐 테니까.

 

사진가인 쟝 모르는 세상의 인정을 받았던 모양이다. 곳곳에서 그에게 일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벌이는 동부 유럽 루마니아(루마니아에도 말라리아가 발생하는지 처음 알았다)를 비롯해서 산디니스타의 초대를 받아 지배하던 니카라과의 마나과 그리고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북한에도 가본 모양이다.

 

스위스 국적인 쟝 모르는 뜨거웠던 동서냉전 시대에 비교적 자유롭게 사회주의 진영에도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쟝 모르는 언론인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나라들이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진가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기껏 촬영한 필름들을 모두 뺏기고(그 시절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초대 받아 방문한 북한에서도 공화국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당국의 사전검열로 대부분의 사진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나 역시 잔뜩 기대하고 북한 편을 보았지만 달랑 두 컷이 전부였지 싶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선을 거두지 못했던 서방 언론들은 그런 순치된 이미지들을 자신들의 신문 지상에 싣고 싶지 않았으리라. 자신들보다 못한 후진 나라들의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양심적인 사진작가인 쟝 모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방문하면서 사람이 끄는 인력거인 릭샤가 주는 매력과 호사에 빠지기도 하지만, 앞에서 전력을 다해 인력거를 끄는 노동자의 등줄기에 나는 땀을 보고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런 쟝 모르의 인간적인 점들이 너무 좋았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도 한때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는 관찰과 아무런 의미 없이 셔터를 누르는 그런 행위가 필요하다. 물론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필름이며 현상 그리고 인화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를 때 초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도래한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는 필름 카메라 시절만큼의 자본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제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도 저물로 휴대폰 카메라 시절이 도래한 걸 잊었다. 쟝 모르의 책 <세상 끝의 풍경>과 만나면서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그리고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진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우연의 작동이 더 크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내가 쟝 모르처럼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진을 찍다 보니 내가 의도해서 찍은 사진보다 우연히 얻어 걸린 사진들이 더 마음에 든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의 삶도 그렇지만, 우연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사진찍기와 삶은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구나 싶다.

 

책을 읽느라 그동안 사진찍기를 멀리 했었는데 오늘은 간만에 집에서 책사진이나 찍는데 쓰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우연을 만나고 이미지를 포착하러 출사나 나가볼까 싶다. 나에게 이런 삶의 작은 동기를 부여해 준 쟝 모르 선생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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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10-2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깊이 있는 독서를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저는 진득하게 그처럼 한 작가, 한 분야를 읽지를 못합니다... ㅜㅜ 화창한 가을 날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레삭매냐 2020-10-25 09:16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

오히려 제가 겨울호랑이님의 광범위한
독서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요.

<스페인 내전> 포스팅을 보고 나서
많은 독서의 자극을 받았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참으로.

겨울호랑이 2020-10-25 09:34   좋아요 1 | URL
에고 아닙니다... 괜히 쑥스럽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가을날 되세요! ^^:)

비연 2020-10-25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주로 한 놈만 팬다. 어느 한 작가가 꽂히면 일단 그 작가의 책들부터 수집한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저랑 완전 같다는 것에 감동^^

번역 많이 되어 나온 작가도 고민이지만, 너무 안 나온 작가도 가끔 고민이에요. 원서를 읽으려고 했더니 영어가 아닌 경우도 있고. 그저 턱 괴고 기다려야 하니.

레삭매냐 2020-10-25 20:14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한놈만팬다 중의 한 명인
설터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데...

30-35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라고 하네요.
하 - 공감하면서도 세상에 참 어려운 일
이지 싶네요.

너무 많아도 걱정, 너무 없어도 걱정~
이놈의 걱정하다가 가게 생겼습니다 :>

han22598 2020-10-2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찍으시는 레삭님! 멋지시네요 :)

레삭매냐 2020-10-25 20:18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필카 시절에는 참 사진
열심히 찍었었는데...

디카 시절로 넘어 오면서부터는
확실히 더 사진을 찍지 않게 되
었네요.

오늘도 디카 메고 나가려고 했으나
귀찮니즘으로 결국 포기했네요 -
사진은 무엇보다 열정이 중요하다는.

근데 디카 에라에는 관리가 더...
 
토끼들의 반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안경미 그림, 김목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칠레 출신의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이 1986년에 발표한 <토끼들의 반란>을 읽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토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도르프만의 토끼가 피노체트 정권의 독재 아래 고사 위기에 빠진 칠레의 민주주의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 아무리 탄압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칠레 민중의 투쟁으로 해석했다.

 

늑대 중의 늑대는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다. 칠레식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기득권층과 종교계 그리고 외세의 지원을 등에 업은 늑대들은 토끼의 존재 자체를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토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들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토끼들은 늑대들이 지닌 권력을 조롱하듯, 사방에서 출몰한다. 아니 어쩌면 도르프만은 칠레 민중을 의인화한 토끼의 끈질긴 생명력에 주안점을 두고 이 성인들을 위한 우화를 쓴 게 아닐까.

 

나의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초반의 전개를 까먹어 버렸다. 늑대 두목은 토끼들의 땅을 점령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독재자 피노체트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그리고 늑대 왕은 독재자답게 검열을 시작했고, ‘솜꼬리토끼란 녀석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이야말로 독재가 지닌 역설이 아닐까.

 

원숭이 사진사가 찍는 사진마다 늑대 왕이 그렇게 부인하고 싶었던 솜꼬리토끼들이 출몰한다. 이에 왕실 고문인 늙은 회색 여우는 사진을 조작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사실의 부인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가짜 뉴스 전파에 여념이 없는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있는 미디어의 현실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다.

 

원숭이 사진사가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에 등장하는 토끼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늑대 왕은 높은 왕좌에 올라 토끼들에 대한 감시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왕실 고문인 회색 여우는 원숭이 사진사에게 사진에 나타나내는 토끼 녀석들을 용액을 사용해 지우라고 명령한다. 그런다고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도르프만은 독재자가 자행하는 폭압적인 통치라는 역경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언젠가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칠레 민중들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적으로 늑대들을 압도한 토끼 군단은 늑대 왕이 앉은 왕좌를 물어뜯고, 씹고, 갉아 먹고 결국 왕과 일당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다시 토끼들의 세상이 도래했다.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은 <토끼들의 반란>에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흉포한 늑대 왕에 대항할 아무 힘도 보이는 토끼들이 반란이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낙수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를 향한 다수 칠레 민중들의 열망은 원숭이 사진사와 용액을 동원한 눈속임이나 사술로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늑대와 토끼의 대결에서, 토끼 군단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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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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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눈은 언제라도 눈물샘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존 버저 작가가 섬세하게 구상한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의 감정은 그런 태세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은 그저 아름다웠다.

 

대륙을 양쪽에서 가로 지르는 황홀한 서사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타마타(tamata:그리스 정교에서 교회에 바치는 편액)를 파는 눈먼 이야기꾼으로부터 시작한다. 평생을 철도원이자 이급 신호수로 살아온 알프스 프랑스에 사는 이탈리아 이민자 장 페레로는 죽어가는 딸에게 줄 타마를 초바나코스(양치기)에게 산다.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딸을 위해 타마를 산 아버지. 심장이 그려져 있는 타마.

 

소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남자 주인공 지노의 신부가 될 23세 처녀 미농 페레로가 태어나기 이전의 시절로. 장의 아내 니콜은 일찌감치 자신의 삶을 살겠노라고 선포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장의 곁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 사태로 이방인 신세가 된 기술자즈데나 홀레체크가 채운다. 그리고 미농이 태어난다. 서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갈 태세를 마쳤다.

 

주인공들은 각각 세 방향에서 슬프고 기쁜 결혼식이 열릴 베네치아의 고리노로 향한다. 장 페레로는 자신의 빨간색 혼다 CBR 오토바이를 정성스레 정비해서 긴 여정에 나선다. 다른 한쪽에서는 즈데나가 브라티슬라바에서 두 번째 서방행을 감행한다. 즈데나는 딸의 결혼 선물로 지빠귀 울음소리가 나는 피리를 주려고 시민을 찾아 나선다. 모데나에 사는 미농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전해 듣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장의 아름다운 딸이자 신부 미농이 죽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낭트의 교도소에서 탈옥한 어느 요리사와 보낸 하룻밤이 문제였다. 정말 드라마 같은 사연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 미농은 노점상하는 청년 지노(루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미농은 자신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자신의 삶 그리고 어쩌면 지노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미농은 자책한다. 미농의 친구 마렐라는 인류에게 내려진 최악의 역병을 SIDA(프랑스어로 에이즈를 의미한다)라고 부르지 않고, 레트로바이러스 혹은 스텔라라고 부르며 그녀를 위로한다.

 

아마 스텔라가 없었더라면, 지노는 미농과의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미래를 잘 아는 미농은 지노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청년 지노는 결별이 아닌 결합을 선택한다. 베네치아의 고리노에 가서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단과 브라티슬라바에서 장과 즈데나의 재회를 위한 로드 트립이 시작된다. (la strada)에서 그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네 삶은 직선적이다. 지구별에 도착한 인간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을 운명이다. 지노에게 미농과 결혼을 말리는 페데리코의 말처럼 그게 언제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생 장 드 모리엔의 철도사고처럼, 누군가는 예상보다 이른 죽음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천수를 누릴 뿐.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애써 눈 감은 채, 삶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페라라의 고리노 광장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결말의 곳곳에서 계시처럼 등장하는 사위어가는 미농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묘사는 읽기내기가 쉽지 않았다. 미농과 지노의 결혼식에 준비된 농어와 장어 요리로 대변되는 삶의 최고의 순간들과 어쩌면 그렇게 대조가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삶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삶은 순수한 미스테리오소인지도 모르겠다.

 

유유자적하게 슬픔을 안고 도로를 달리는 장 페레로의 모습은 우리 보통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평생을 고지식한 신호수로 살아온 사람답게, 도로에 사람이 없어도 신호를 준수한다. 외롭게 오토바이에 한 대에 의지해서 먼 길을 나선 장의 모습에서는 일견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장은 살아남기 위해 실리콘 형제애를 내세운 해커 집단의 활동명 세례 요한을 만나기도 한다. 즈데나는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만난 대머리 아저씨 토마스를 (구원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가며 버스를 잡아둔다. , 그렇게 모두가 구원을 원하고 서로를 구원하는구나 싶다. 조금 신파스러운 맛이 없진 않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개인들의 일상이 무너진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4반세기 전에 발표된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한 세상의 삶이 순수한 미스테리오소라는 점 말이다.


[뱀다리]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1999년에 해냄에서 이윤기 씨의 번역으로 <결혼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결혼식 가는 길>은 재개정판인 셈이다. 출판사가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서비스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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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23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봐야겠군요.ㅋㅋ

레삭매냐 2020-10-24 13:57   좋아요 1 | URL
간만에 만나는 존 버저의 책, 반가웠습니다.

페크pek0501 2020-10-23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를 존 치버로 알았다는... ㅋㅋ
204쪽이라 맘에 드네요.

레삭매냐 2020-10-24 13:57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수월하게
읽었습니다.

내용은 기대이상이었구요.
추천해 드립니다.

비연 2020-10-24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 애정하는 작가. 소개 감사요~

레삭매냐 2020-10-24 13:58   좋아요 0 | URL
저도 팬인지라 존 버저의 책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수급이 쉽지가 않네요 다들 애정
하는 작가의 책들이라 그런지.

초딩 2020-10-31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네요~
저 결혼식 가요

레삭매냐 2020-10-31 21:56   좋아요 0 | URL
오 책 제목과 딱 떨어지는 상황이시네요 :>

코로나 시대의 웨딩은 어떨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