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최후의 14일
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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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씨름하던 중에 무언가 기분 전환으로 읽을 만한 책이 없나 하고 서가를 뒤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마의 산에 오를 수는 있는 걸까. 도끼 선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죄와 벌>을 신나게 내달리고 나니 장편에 대한 거부감이 좀 줄어 들어 도전했는데...

 

우리에게는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가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14일을 그린 르포르타쥬가 바로 <히틀러 최후의 14>이다. 아주 오래 전에 절반 값으로 중고서점에 샀는데 몇 번 읽어 보려다가 실패하고 마침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언제나 성공하게 될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히틀러가 이끄는 제3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서방 연합군이 아니라 소비에트 적군이었다. 히틀러가 기획한 최후의 공세였던 1944년말 벌지 전투로 알려진 아르덴 공세에서 히틀러는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을 상대하고 있던 최정예 연대들을 서쪽으로 이동배치했고, 비록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군을 상대로 한때 유럽 전역을 석권했던 베어마흐트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역설적으로 히틀러는 제국의 수도이자 심장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독일 본토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모두 아르덴 공세에서 소진시켜 버렸다. 결국 세르게이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소련군은 1945416일 자그마치 25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제3제국의 마지막 목줄을 끊는 베를린 점령 전투에 나선다.

 

주코프 사령관이 기획한 오데르 강 연안의 젤로브 고원지대 공략전은 치밀한 계획 없이 오로지 파시스트 독일군을 일소한다는 대전략을 앞세운 막무가내식 공격이었다. 이미 압도적인 소련군에 대항해서 병력이나 물자, 보급 등에서 역부족이었던 독일 방어군은 일단 소련군의 포화를 피한 다음, 효과적으로 소련군의 예봉을 돈좌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방향으로 나누어져 베를린으로 향하는 복수에 불타는 소련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 때 도이치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던 총통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전쟁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보강된 베를린 지하의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는 여전히 후퇴는 없다, 현지 절대사수!’라는 실패가 인증된 방식을 고수했다. 같은 방식으로 3년 전, 청색 작전에서 주공을 맡았던 독일 최정예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되어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소멸해 버리지 않았던가.

 

결정적인 것은 히틀러가 조국과 도이치 민족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으로부터 사수하기 위한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라인란트 진주 이래 계속된 히틀러의 크고 작은 성공들이 어쩌면 궁극적인 신들의 황혼의 이유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삶의 끝자락에서 망상에 사로잡힌 총통은 존재하지도 않는 슈타이너 그룹이나 벵크 군단 같은 부대가 수도 베를린을 적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의 그런 착각은 어쩌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중증으로 발화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으로 마침내 권력을 손에 쥐게 된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일단의 국가사회주의 그룹은 1차세계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으로부터 도이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보였다. 상이용사 출신 총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악한 권력을 이용해서 독일을 병영국가로 바꾸어 버렸다. 서유럽에서 전쟁 외에는 더 이상의 영토확장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동방으로 눈을 돌렸다. 동방에는 파시즘과는 불구대천의 원수 볼셰비키 스탈린이 이끄는 슬라브 제국 소련이 존재했다. 작은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선택한 뒤, 그들의 희생을 통해 도이치 민족의 동질성을 획득한 히틀러의 창끝은 폴란드와 프랑스를 석권하고 나서 동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그런 선택은 결국 자신과 도이치 민족 그리고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제국이 잘 나갈 때에는 그렇게 최고권력자에게 빌붙어 온갖 아양을 떨던 이들이 신들의 황혼이 내리자 결국 자신만의 안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 대표선수가 바로 제국의 2인자라던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이었다. 패전 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도 총통을 배신하고 연합군과 항복 조건을 흥정하지 않았던가. 반면, 3제국의 흥망을 함께 하고 이데올로기의 첨병이자 선전수였던 괴벨스 일가는 총통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미 서부 전선에서 패퇴한 발터 모델이나 부르크도르프 같은 장군들은 선배들의 예를 따라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제국의 구세주, 아니 처음부터 제국의 파괴지왕이었던 히틀러는 자신과 도이치 민족의 운명을 동일시했다. 그는 일찍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모조리 잿더미가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예언을 했는데 그런 그의 예언은 19454월 현실이 되었다. 십대 히틀러유겐트 부대원부터 시작해서 중년의 향토예비군들까지 베를린 사수에 동원되어 애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폐허의 잿더미에서 독일 국가가 불사조처럼 다시 부활하리라는 망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자포자기한 독일 병사들은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 아래 죽었고, 파시스트들의 수도 베를린 점령에 나선 소련군도 자그마치 30만 명이나 전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들의 황혼이라는 신화에 걸맞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요아힘 페스트는 한편으로는 마치 CNN이 보도하는 전쟁 뉴스를 들려주는 것처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또 다른 축에서는 얼치기 전쟁광이자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도이치 민족을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현실의식이 결여된 독재자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끝없이 다른 사람들의 탓만 해댄다. 전쟁 초기의 성공들은 모두 자신의 올바른 결정 덕분이고, 패전의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민족의 구세주로 도이치 사람들을 현혹했던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깔끔하게 자신만 그런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히틀러와 그의 부인 에바 브라운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훗날 다양한 형태의 음모론들이 활개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냉정한 시선으로 히틀러 최후의 몰락을 그린 요아힘 페스트의 기록이 보여주는 힘은 대단했다. 저자가 꼽은 히틀러 몰락의 터닝 포인트는 1941년 그리스에 개입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원래 계획보다 6주 지연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411127일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공략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히틀러가 소련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면 현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제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역사 소설 <당신들의 조국>을 읽을 시간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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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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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30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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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핫한 정보들은 모두 인그램에서 얻는 것 같다.

 

BLM으로 미국 사회가 도가니탕처럼 펄펄 끓는 마당에 이번에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하이츠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이 화제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어떤 필리핀계 미국인 아저씨가 퍼시픽 하이츠의 어느 집 담벼락에 스텐실로 Black Lives Matter 구호를 쓰고 있었다.

 

산책을 하던 백인 커플이 이 남자에게 그 담벼락이 사유재산이라고 주의를 준다. 그네들의 말투는 아주 정중하다. 아마 자신들은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BLM 구호를 쓰는 건 쓰는 이의 자유지만, 남의 사유재산은 침해하지 말라는 거다.

 

촬영하던 남자가 경찰을 부르던가 아니면 주인에게 말하라고 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여성의 패착이 등장한다. 자신이 집주인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여성은 경찰을 불렀고, 출동한 경찰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 버린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나중에 들어난 사실은 촬영자 제임스 후아닐로 씨가 바로 샌프란시스코 고급 주택지 퍼시픽 하이츠의 문제의 집에 살던 집주인이라는 점이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은 리자 알렉산더로 화장품 회사 <라페이스>의 사장이라고 한다. 곁에 있던 남성은 그녀의 남편이었고.

 

결론적으로 말해 리자 알렉산더는 진짜 집주인인 제임스 후아닐로 씨를 알지도 못했고(거짓말이었다!!!) 인종적 편견에 사로 잡혀 지난 18년 동안 그 집에 살던 집주인을 모욕했던 것이다. 참고로 후아닐로 아저씨는 독 워킹 사업(dog-walking)을 하시는 분이란다.

 

또 한 가지, 이 커플이 내내 떠들던 사유지(private property)란 말도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이놈의 사유지/사유재산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그런 것인가 보다. 공공성이나 정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렇다면 이 사건의 후과는 어땠을까? 자신의 인종차별 영상이 만방에 영구박제된 <라페이스>의 사장은 그야말로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 라페이스의 파트너들은 사장의 인종차별을 이유로 들어 모든 협력관계를 단호하게 끊어 버렸다. 어느 누가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사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만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겠는가. 후회 막급한 리자 알렉산더는 제임스 후아닐로 씨에게 뒤늦은 사과를 한다며 쑈에 나섰으나, 엎어진 물을 담을 수 없는 법. 라페이스의 파트너였던 버치박스 같은 회사가 협력관계를 끊지 않았더라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나섰을까? 천민자본주의를 숭상하는 이들에겐 돈줄이 막히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대놓고 악다구니를 해가며 인종차별을 하는 이들보다 리자 알렉산더처럼 평조 톤을 유지해 가면서, 교양 있는 어휘로 시전하는 연성화된 인종차별이 더 무섭다는 걸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뱀다리] 다만 그녀가 새로운 캐런이라는 표현은 좀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미디어에서 새로운 먹잇감에 달려들어 프레이밍하는 짓거리는 어디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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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를 누빈 위대한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숭고한 이야기
게리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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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인스타에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우리가 즐기는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몬산토에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양고추가 국산이 아니었나? 그 이유는 청양고추의 씨앗 종자를 몬산토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몬산토를 사들인 독일의 제약 기업인 바이엘로 돈이 흘러간다는 사실이었다. 글로벌 시대의 웃지 못 할 풍경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접한 청양고추 이야기가 때마침 읽기 시작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가 다루는 주제와 일맥상통했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이미 식물 육종 연구에 있어 선구자였던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의 연구 행적과 식물다양성이 인류를 각종 자연재해가 야기하는 기아로부터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9년 전, 바빌로프 연구소가 있던 레닌그라드는 나치 독일군의 맹공격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위대한 소련의 식물 육종 연구가 바빌로프의 노력으로 세워진 세계 각처에서 모아온 귀중한 씨앗들을 보관하던 바빌로프 연구소 역시 독일군의 포화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1941년 겨울은 그 어느 겨울보다 추웠고,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연구소 설립자인 바빌로프 박사는 독재자의 눈 밖에 나 사라토프 감옥에 갇힌 상태였고, 그의 남은 동료들은 연구소에서 귀중한 씨앗들을 지키다 산화해 갔다. 첫 스토리부터 짜릿하지 않은가.

 

제정 러시아 시절이었던 18871125, 모스크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1910년 모스크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평생의 과업이었던 식물 육종 연구에 투신한다. 그의 행적을 읽으면서 느낀 건 바빌로프가 여느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과 달리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실천형 연구자였다는 점이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연구장비가 바로 노새였다는 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파미르 고원을 필두로 해서 전 세계가 바빌로프 박사의 연구 무대였다. 책의 후반에 나오는 대로, 볼셰비키 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유물론적 사고와 바로 성과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년간의 종자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무시하고 최대한의 빠른 성과만을 바빌로프 박사에게 요구했다. 그런 조급증이야말로 1930년 초반, 소련을 휩쓴 대기근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 죽어간 비극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종자 개발을 위해서는 8~9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소련의 정치지도부들은 그런 과학적 절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당장 인민들과 서구 자본주의 라이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성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바빌로프 박사의 비극은 시작부터 이런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빌로프의 탁월한 연구 성과는 개발과 자본주의적 성과가 판을 치고 있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효과적으로 보이는 단일경작이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바빌로프 박사는 잘 알고 있었다. 작물 재배의 다양성이야말로 병충해나 대기근에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처럼 바빌로프 박사의 식물 육종 연구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실험실에서 다양한 연구로 새로운 씨앗을 개발하는 연구자들도 인류의 식량안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식량안보의 전사들은 바로 농부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연구 결과라도 필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말이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3.0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최첨단 기술과 농법으로 무장한 연구자들은 종종 그런 현장의 농부들을 무시할 때가 많지만, 조상 대대로 전수되어져온 그들만의 노하우야말로 절망적인 대기근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세계 각처에서 입증되었다.

 

1980년대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를 덮친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다. 이에 세계의 내로라하는 연구소들이 병충해와 가뭄에 효과적인 종자들로 위기를 돌파해 보려고 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서구의 선진 농법에는 비용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다량의 물이 필요한 관개농법이 아프리카 같은 건조 지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수로 건설이 새로운 재앙으로 이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자그마치 15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현지들의 문화 풍습을 습득하는데 주력했던 바빌로프 박사는 현지의 다양한 문화적 다양성이야말로 작물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점도 일찍이 파악했다. 현지의 다양한 작물과의 혼종 재배, 단일경작 대신 혼작이야말로 인류의 식량안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그는 파악했다. 보다 생산하기 쉬운 단일작품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연을 파괴해야만 했다, 친자연적인 방식의 재래식 작물재배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도 바빌로프는 강조한다. 아마존 정글에서 요즘처럼 대규모 개발로 경작지를 늘리는 대신 그야말로 자연에 묻어가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의 효율성에 주목하지 않았던가.

 

바빌로프 박사는 식물의 육종연구와 씨앗 확보를 위해 나선 연구여행에서 불안정한 정세와 소비에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해를 사고, 때로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인류를 위한 그의 연구의 진정한 방해자는 조국 소련과 독재자 스탈린이었다. 자고로 선지자는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시간 부족으로 거의 날림으로 진행된 라틴아메리카 연구여행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집단농장 시스템으로 1932년과 1933년의 대기근에 대처하지 못한, 소련 정부와 스탈린은 희생양으로 바빌로프 박사를 삼았다.

 

스탈린의 총애를 받던 사이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이론이나 연구 성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바빌로프는 거의 모든 면에서 충돌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과학적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리센코는 바빌로프를 압도할 수 없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바빌로프는 영국과 미국 정부를 위해 첩보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비공개재판에서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그 후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사라토프 노동수용소에 수용된 바빌로프는 1943126, 만성적 기아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마녀의 연쇄 독서로 만나게 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내가 올해 상반기에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고 싶다. 개인의 유익이나 영광이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의 일대기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인류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충분하게 공급되어야 할 자원 공급의 문제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식량민주주의와 농민의 권리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무엇보다 미래의 인류에게 전해 주어야 할 소중한 씨앗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초여름 접시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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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눈썹
손석춘 지음 / 단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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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이 책을 집어든 게 실수였다. 요즘 도끼 선생 챌린지에, 마의 산에 오르는 등 고전 읽기를 하던 차에 문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찾게 되더라. 지난달에 코로나 사태로 다시 도서관이 휴관하기 전에 빌려온 책이 바로 손석춘 작가의 <호랑이 눈썹>이었다. 진보 논객으로 알고 있던 저자의 무려 10번째 소설이란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강연호다. 직업 군인으로 28년을 복무한 연천의 호랑이는 뼛속까지 투철한 반공투사이며, 열혈 태극기 부대원이다. 고희를 넘긴 태극기 전사가 빛고을을 찾는 장면으로 아마 소설은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비몽사몽간에 읽다 보니 내용이 오락가락한다. 물론 소설을 읽다 각성되어 밤잠을 설친 건 비밀이 아니다.

 

1948, 그러니까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뒤 태어난 연천의 호랑이는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돌아가신 조상님의 자랑스러운 후손이었다. 다만, 부모님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 키워져야 했다. 대학에 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강연호는 집안 사정으로 진학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미국은 멀리 베트남에서 통킹만 사건으로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하게 되었고, 군인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던 한국에서도 혈맹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려 3개 부대를 파견하게 되었다.

 

아무런 배움도 가진 것도 없던 연천의 호랑이는 기회의 땅 월남으로 가, 조국에도 봉사하고 돈도 벌어 오겠다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월남행 배에 오른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 청년 연호는 미친 맹호로 변신한다. 살인과 폭행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양민과 게릴라를 구분하는 건 청년 병사들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베트남은 연호에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의 첫 번째 살인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림자처럼 그를 쫓기 시작한다.

 

하루에 2명씩 전사자가 나왔다는 죽음의 땅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귀국선에 탄 연호를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가혹했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자신이 애써 번 돈은 대처에 사는 고모가 모두 가로채 버렸다. 월남에서 리설 웨폰이 되어 돌아온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직업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연호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정희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가 싶었으나 그것 또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아내에게 살짝 드러냈지만, 정희는 전쟁터에서 다 그럴 수 있지 않았냐며 적당하게 봉합한다. 연호의 자기기만적 삶이 시작되는 게 바로 이 순간이었던가. 그러면서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 연호는 두 번째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가정을 멀리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만들기 위해 특전사에 자원해서 11공수의 유능한 부사관이 되었다. 삼십대 초반의 강연호가 치른 두 번째 전쟁은 19805월의 빛고을이었다. 손석춘 작가는 그동안 이러저러한 채널로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뜨거웠던 그해 5월의 광주를 가해자의 시선에서 재구성한다. 첫 번째 전쟁에서도 그렇지만 두 번째 전쟁 역시 연천의 호랑이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겨 주었다. 그나마 월남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의 전쟁이었다면, 이번에는 자기와 같은 말을 쓰는 동족을 상대로 한 그런 전쟁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처럼 연호는 역사의 현장에 머물렀다. 연호가 가해자의 입장이었다면, 그의 아내 정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공고해 보이던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누구나 민주주의의 봄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로 대변되는 신군부 세력을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저항에 나선 빛고을 시민들을 무차별 진압에 나선다. 그리고 그 때 동원된 사람이 바로 연천의 호랑이였다.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있던 연호는 개인적 복수와 무고한 양민들을 조준 사격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고민한다.

 

자신이 모시던 대대장들이 연달아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좋았던 시절이 끝났음을 깨달은 연호는 28년 동안의 기나긴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 한탄강으로 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연천의 호랑이가 전쟁터에서 치른 업보의 대가는 혹독했다. 우선 포천 부잣집으로 시집간 지혜가 IMF의 여파로 집안이 거덜 난 신랑 신증산의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서울에 나가 성공한 아들 지만은 광화문에 있는 어느 신문사에 취직해 시골의 가족을 등진다. 딸 지혜가 남긴 손주들인 강산과 슬기 키우던 중 비보가 날아들고, 생모가 남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연천의 호랑이는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참전하게 된 세 번째 전쟁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그런 전쟁이었다.

 

더 상세한 디테일도 많지만, 조국 근대화에 있어 그 누구보다 희생한 세대이지만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게 강연호로 대변되는 세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그의 말대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베트남의 밀림에서 소총을 들고 적군과 싸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문에 투신했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역사의 혹독한 재평가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방에서 편안하게 있던 이들이 조국 근대화의 과실을 독점했다는 울분이 치솟아 오른다. 서북청년단이었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삶이 가짜 뉴스 생산에 부역한 아들 지만의 그것과 묘하게 공명을 이룬다는 지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나마 강연호 할아버지는 생떼 같은 손자가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죽게 되자 비로소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 철민과 유일하게 남은 혈육 슬기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극복에 나서는 장면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소설 <호랑이 눈썹>은 역사적 사실을 질료로 삼아 잘 만든 소설이 틀림없다. 하지만 강연호라는 주인공이 감당해야 하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안의 사람들도 이렇게 화합하지 못하는 마당에,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 화합을 이루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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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코로나 광풍이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에서 벌어진 맥주 사재기 풍경은 또 색달랐다. 세계인들의 삶의 모습은 그만큼이나 다양하다는 방증이겠지 싶다.

 

건강한 거리두기에는 예외가 없다. 우리만 하더라도 5월 연휴를 앞두고 수그러들던 코로나가 재유행하면서 2020년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닌가 말이다. 내수진작 소비촉진을 위해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가 재난지원금까지 등장했다.

 

인스타에 보면 자가격리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각종 짤들이 넘쳐흐른다. 나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만, 그냥 귀찮더라. 아이디어 도출, 세팅 그리고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런 짤들을 생산해낸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을 다해 촬영에 임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넘쳐 나다 보니 책을 따로 살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샀지만 읽지는 않고 째려 보곤만 있던 녀석들을 책장에서 소환해냈다. 그리고 벽돌책들을 하나씩 깨고 있는 중이다.

 

멕시코 맥주 사재기 열풍을 이야기하다 또 삼천포로 새 버렸다. 내가 그렇지 뭘. 그동안 멕시코가 전세계 맥주 생산의 27%나 차지한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웃 동네에서 금주령 타령을 할 때마다 남쪽 이웃들은 엄청난 생산력으로 북쪽의 양키들에게 젖과 꿀을 공급해 주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맥주 생산마저 멈추면서 메히코 사람들이 대환장 파티가 시작됐다. 모두가 집안에 갇혀 있게 되면서 맥주 소비가 그야말로 스카이로켓처럼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나. 우리에게 마스크가 그랬던 것처럼.

 

시장에서 수요가 달리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짭이었다. 식용 대체할 수 있는 에탄올 대신 공업용 메탄올을 사용한 밀주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밀주 스캔들로 사망한 사람이 자그마치 189명이나 된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존재의 소멸 앞에서 실명이나 식물인간 같은 부작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세상에 이게 21세기 대명천지에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61일부터 맥주 생산 금지가 풀리고, 코로나 맥주를 필두로 한 맥주생산이 재개되면서 밀주 스캔들 때문에 발생하는 사망자수도 없어져 버렸다. 그동안 멕시코의 확진자수는 14만 명, 사망자는 17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불과 두 달 만에 189명이나 밀주를 마시고 죽었다고 하니, 코로나 시대의 또 다른 비극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 왜 시아시된 맥주가 마시고 싶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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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6-16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을 그다지 즐겨하지는 않는데 맥주 거품을 보면
그게 참 맛있어 보이더라구요. 막상 먹으면 별론데...
맥주는 역시 거품이죠!!^^

레삭매냐 2020-06-17 10:45   좋아요 1 | URL
어제 기사를 보고 나니 왤케
션한 맥쥬 생각이 나던지요.

살얼음맥주는 역전 할머니
맥주가 가히 최고라고 하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