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 나는 토마스 만이 만든 마의 산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도대체 언제 샀는지도 모를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 지도 몰라서 책으로 가득한 책방을 뒤졌다. 그리고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마의 산>1924년 토마스 만이 세 번째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그는 평생 모두 6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작품을 쓰는데 무려 12년이나 걸렸다고.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1번을 장식한 토마스 만 샘의 책은 1편만 653쪽이다.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 카라마조프는 읽었는데 하는 만용으로 나는 마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읽기 전에 대략적인 워밍업을 시작했고, 자기 전에 독서에 돌입했다.

23세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 다보스 베르크호프 결핵요양원에 입원한 사촌 요아힘 침센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만 샘은 시간에 대한 오묘한 설파를 서문에 공개했더랬지. 시간소설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어쨌든 나의 2020년은 고전의 해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구나.

 

그나저나 도끼 샘의 <죄와 벌> 재독은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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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와 벌>을 다 읽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어제 시작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인스타인지 어느 SNS에서 빡센 등정이라는 <마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렇다면 나도하는 마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연 내가 1,300쪽이 훨씬 넘어가는 대작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이미 한 번 읽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망했다지자그마치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1권의 당당한 타이틀이라는 점에서도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그런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는 모름지기 자족적인 취미가 아닐 수 없다게다가 다른 취미활동에 비해 돈도 적게 든다가성비는 훨씬 더 좋다그렇다고 돈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독서를 위한 근육이 필요하다어떤 지루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단과 쌩가는 기술도 필요하다내 경험에 유추해 보면 책에 나오는 모든 걸 이해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토마스 만 같은 대가가 100년도 더 전에 살면서 피부로 느끼고 또 당대의 모든 것에 대해 능통하지 못하면서 그의 저술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 그 자체일 것이다... 라고 변명하면서 나는 쌩가기 기술로 고전 독파에 나섰다.

 

이번에 <마의 산>도 훌륭하게 등반에 성공하게 된다면 읽다 만 <모비 딕>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2020년은 나에게 고전의 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그런 해로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내친 김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그리고 에릭 홉스봄의 시대 3부작도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독서기록장] 토마스 만의 <마의 산> 1권 등반 2일차 오전 11:54 현재 47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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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는다.

 

주인공은 23세 한스 카스토르프다사촌 형제 요아힘 침센을 만나러 스위스 다보스 산중에 있는 베르크호프라는 결핵요양소를 3주간 방문할 계획으로 찾는다.

 

청년은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다그리고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어려서부터 그에게 죽음은 멀리 있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상회를 정리한 돈 40만 마르크는 종조부였던 영사님이 관리해주신다연수익의 2%의 이자를 띠면서 말이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재산 관리자는 그에게 평생 유복하게 살려면 200만 마르크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독일이 제국이던 시절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기차와 마차를 번갈아 타고 베르크호프에 도착한 한스는 사관후보생 요아힘 침센과 만난다건강 이상으로 이미 반년을 요양원에서 보낸 요하임나이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청춘들에게 6개월이 갖는 의미는 더 크지 않았을까.

 

한스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는 한스가 요양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옆방의 러시아 부부가 방에서 벌이는 상스러운(?) 행동에 청년은 뭐라고 했던가.

 

배에 대한 스케치에 재주를 보였던 한스는 조선기사 시험을 패스하고 엔지니어로 함부르크의 어느 회사에 취업했다지뭐 이 정도가 내가 만난 마의 산의 초반 이야기들이다.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적어 놓아야지.


핑계같지만 어젯밤에는 바빌로프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기록을 읽다 보니 <마의 산>에 조금 소홀했다일단 바빌로프와 그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키려고 했던 종자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읽고 나서 <마의 산>에 다시 오를까 어쩔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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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2년 걸려서 완성한 작품이라면 읽어봐야 할텐데, 제목에서부터 힘겨운 여정을 예고하네요. 마의 산~~~~~

레삭매냐 2020-06-13 09:55   좋아요 0 | URL
상하권해서 1,300쪽이 넘는 지라
읽다가 엎어지지나 않을까 걱정
부터 됩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찬찬히 읽는 것
으로. 근데 이런 책들은 사실 전력
투구해야 하는 시츄라 -

유부만두 2020-06-13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의 병원으로 올라가는 데 까지만 읽다 덮어뒀어요;;;; 옛날 옛적에요. 산은 잘 있나요?

레삭매냐 2020-06-13 11:29   좋아요 0 | URL
7년 짜리 등반이니...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 있다고
하니, 또 한 번 속아서 들이대는 중이
랍니다.

Falstaff 2020-06-13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고딩 2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실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읽은 삼중당 문고판, 추억의 책입니다. 너무 오래라 거의 기억에 남은 게 없어서, 주인공을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라 불렀던 건 아주 인상깊었습니다만, 다시 읽어야 하나, 시방 고민만 열라 하고 있습지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0-06-13 11:30   좋아요 1 | URL
대단하시네요 고딩 시절에 토마스
만을 접하셨군요.

전 그 때 아마 무협지를 읽었지 싶
습니다만.

더운데 빡신 고전을 읽으려니 쉽지
가 않네요. 망하면 더위 탓을 하려
고 작정했습니다.

chika 2020-06-13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오르시고난 후의 감상이 궁금해지네요. 너무 궁금하지만 차마 등정은 못하고 있는지라...^^

레삭매냐 2020-06-13 11:31   좋아요 0 | URL
인스타인지 어느 SNS에선가
등반기를 접하고 나서...

아, 나도 이제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따라쟁이로 나섰습니다.

타인의 감상으로는 역시나
제 맛이 아니어서 말이죠.

완반에 대해서는 쿨럭.

chika 2020-06-13 11:36   좋아요 2 | URL
오옷, 역시! ^^
저는 다른분의 감상이 그 책을 접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해요. 도대체 어떻길래?라는 걸 획인해보고싶달까. 그러고보니 레삭매냐님처럼 제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건 똑같은건지도...ㅎ

정상의 기쁨을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20-06-13 21:27   좋아요 0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이번에
사알짝 치트키를 쓰긴 했네요 ㅋㅋ
공감하는 바입니다.

syo 2020-06-13 1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겁나 재미없었던 기억이....
아 이 책 자체가 마의 산이로구나 하면서 꾸역꾸역 읽었습니다만, 주인공이 한스였다는 것도 레삭매냐님 글 보고 기억이 날 정도네요.

레삭매냐 2020-06-13 21:2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전 이번에 도끼 챌린지를 하면서
<카라마조프>로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초반에는 그런저럭 넘어
가고 있답니다. 버뜨 어느 순간,
엎어져 버릴 지도 ㅠㅠ

잠자냥 2020-06-1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바로 이 책으로 1권만 두 번 읽었어요. 한 번 읽고 지루해서 멈추고... 몇 년 뒤 다시 읽자해서 또 시작. 또 1권만 읽고 멈춤.... =_=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러다 또1권만 세 번째로 읽는 거 아닌가 몰라요. ㅋㅋㅋㅋㅋ 암튼 그 덕분에 아직까지 1권은 생생합니다.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0-06-14 08:43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그리스인 조르바>를
시도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랄까요...

어떤 분은 인생책이라고 할 정도인데
전 그 정도는 아닌가 봅니다. 책이 나
올 때마다 사들여서 너댓권이나 되는
데 완독을 못하고 있네요.

계속 앞부분만 줄창 읽어서 읽을 때
마다 반갑고 뭐 그렇더라는.

고양이라디오 2020-06-22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지루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단과 쌩가는 기술도 필요하다.˝

공감합니다. 저는 요즘 독서근육이 많이 약해진 거 같아요ㅠㅠ
 
역사의 끝까지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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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된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소설을 읽었다. 모든 마지막은 언제나 슬픈가 보다.

 

4년 전 발표된 루이스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1994년 발표된 <귀향>의 시퀄이다. 전작에 등장한 후안 벨몬테가 다시 침묵 속에서 소환되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세풀베다 작가를 추모하는 재독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가장 읽어 보고 싶던 책이었는데 결국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못 읽었다. 결국 어제 예전에 써둔 리뷰로 대강의 줄거리를 갈무리했다.

 

이번 <역사의 끝까지>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역사의 곳곳에서 반동의 주역이었던 크라스노프 집안의 아타만들이다. 우선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 지도자였던 카자흐 아타만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크라스노프가 등장한다. 세상에, 그는 레프 트로츠키가 적군을 이끌던 시절의 악당이 아니었던가. 두 번째 세계대전 와중에는 카자흐 독립국가를 약속한 히틀러의 제3제국에 속아 카자흐 기병단을 이끌고 참전하기도 했었다. 그들을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한 스탈린에게 카자흐 사람들은 참혹한 보복을 당했다.

 

세풀베다는 북위와 남위의 여러 곳을 넘나들며 시공을 뛰어넘는 대서사시를 구축한다. 볼가강으로 차리친에서 모스크바, 뮌헨 같은 북반구 도시들은 물론이고 남반구에서는 칠레의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느와르 스타일의 박진감 넘치는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슈타지 출신 스위스인 오스카 크라머는 66세의 은퇴한 게릴라 전사 후안 벨몬테가 거절할 수 없는 부탁으로 최근 칠레에 잠입한 5인조 악당들의 거처를 파악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동지 페드로와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 연인 베로니카를 안전하게 피신시킨 벨몬테는 영문도 모른 채 위험한 사내들을 쫓는 추격전에 나선다. 아마 전작 <귀향>에서도 이 게릴라 전사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소개되었겠지만,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에서도 볼리비아 정글에서 신화가 된 체 게바라와 함께 민족해방 전선의 일원으로, 조국 칠레에 돌아와서는 박사님 아옌데와 함께 위대한 투쟁에 나섰던 화려한 전력들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벨몬테는 비야 가리발디의 인간백정 미겔 크라스노프(맞다 그는 처음에 소개된 표트르의 손자였다)의 희생자였던 연인 베로니카의 생사여부도 모른 채 조국을 떠나야만 했다. 소련으로 건너간 그는 로디온 말리놉스키 군사 학교에서 뛰어난 저격수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 뒤에는 1979년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에 대항하는 산디니스타 운동에 시몬 볼리바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해서 마나과 해방전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었다. 뭐 이 정도면, 라틴아메리카 혁명운동에 있어 레전드급 활약을 한 투쟁가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은퇴한 게릴라 전사이긴 하지만 그의 실력을 잘 아는 노회한 크라머는 그를 이용해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로 변신한 러시아와 칠레간의 통상에 저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한다. 무려 20개에 달하는 반인륜적 범죄로 144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받은 인간백정 미겔 크라스노프를 자신들의 마지막 아타만(대장)으로 인정한 카자흐 과격주의자들이 그를 코로디예나 교도소에서 탈출시키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카자흐 3인조들의 조력자로는 벨몬테의 소련 시절 옛 동지였던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이고르)가 참전했다.

 

사실 세풀베다는 처음부터 <역사는 끝까지>가 추구하는 명확한 서사의 방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겔 크라스노프라는 악당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가 네 명의 칠레 동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 지점에 가서야 비로소 저자가 그린 원대한 계획을 볼 수가 있었다. 결말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수십 년 동안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망명자였던 세풀베다식 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역사의 끝까지><귀향>과 더불어 <우리였던 그림자>까지 포함한 삼부작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나 자신의 안위 따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일단의 열혈 청년들이 반세기가 지나 돌아보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고찰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들은 더 이상 사르트르나 프란츠 파농의 저작들을 읽지 않고, 손 안의 휴대폰을 조작하느라 정신이 없지 않았을까. 무심한 자본주의의 가면은 모든 것을 돈이 대신하는 그런 사회로 만들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어설픈 타협 대신 노장 벨몬테의 화끈한 복수를 원했지만, 작가가 구상한 결말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식의 타협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루이스 세풀베다의 신작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뱀다리] 소설 도중에 오데사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하도 성급하게 리뷰를 쓰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해선 아예 언급도 하지 못해 아쉽다. 다시 쓰려기 귀찮아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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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끝까지> 루이스 세풀베다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슬프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는 작고한 작가의 마지막은 더더욱.


두 달 전 우리의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된 루이스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이 출간됐다.

그를 추모하며 그의 책들을 허겁지겁 읽던 게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란 말인가.


아직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을 마저 읽지 못했는데.

하지만 나에게 그 어느 누구의 책보다도 지금은 세풀베다의 책이 더 중요하다.

모든 읽기를 중지하고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을 만난다.


내용은 그가 예전에 발표했던 <귀향>과 비슷한 궤적이지 않나 싶다. 지난 세기의 역사적 사건을 모든 경험한 은퇴한 게릴라 전사 후안 벨몬테의 마지막 여정은 작가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작가에게 보내는 작은 경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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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6-13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분의 마지막 책을 받아보면 마음이 참 아리죠..
저는 신영복 선생님. 황현산 선생님의 마지막 책을 받았을 때 그런 마음이였어요

레삭매냐 2020-06-14 08:50   좋아요 1 | URL
애정하며 오랫동안 즐겨 읽던 저자
의 부고를 들으니 너무 허망하고
그랬습니다.

공감합니다.
 
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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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 하지 않겠다. 고전 중의 고전,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은 읽지 않은 이들은 많아도 이 책에 대해 들어 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항상 고전에 대해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은 다시 읽는 법이지에 대해서도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 고전은 모름지기 다시 읽는 법이다. 한 번 읽고 말 책이라면 고전이라 불릴 자격이 없을 테니까.

 

나이가 들은 모양이다. 처음으로 <죄와 벌>을 읽을 적에는 그렇게 지겹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도전은 정말 수월했다. 그동안 독서의 내공이 쌓인 걸까? 에이 그럴 리가. 그냥 이번에는 새로운 번역으로 자간도 넉넉하고 뭐 그랬다는 이유를 듣고 싶어라. 좀 더 현대적인 번역, 그래서 반역인지 번역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불후의 고전에 대한 리서치를 좀 해보았다. 물론 읽기 전에는 안된다. 나의 책에 대한 감상을 해칠 수 있으니.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가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다. 전도유망한 법학도였던 이십대 청년 라스콜니코프(혹은 로디온, 로쟈로도 불린다)7월의 무더운 여름날, 공기 중에 떠다니던 불온한 사상인지 열에 들떠 악질(순전히 주관적인 표현이다)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의 불쌍한 여동생 리자베타도 함께.

 

본격적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알아보자. 표트르 대제 시설 급격한 서구화를 추진하던 절대군주의 명령을 건설된 인공도시는 위대한 시간(농노제 해방, 1861)이 도래하면서 급격한 팽창을 맞이한다. 지주계급의 착취로부터 벗어난 무산자 계급(프롤레타리아트)들은 일자리와 먹거리를 찾아 도시로 줄지어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빈부의 격차는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도시 빈민들은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로 비참했다.

 

이상이 1860년대 계급적 모순이 비등점을 향해 달리고, 서구에서 들어온 공기 중에 부유하던 불온한 사회주의가 지식인 계급에서 힘을 얻어가던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단상이었다.

 

다시 라스콜니코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남루한 행색에 이틀 정도 굶었고, 한 때 사위가 될 뻔하기도 한 집주인 파셴카에게 몇 달째 방세조차 밀린 신세다. 귀족 집안 출신이면 뭘 하나, 아버지는 돌아 가셨고 얼마 되지 않는 연금으로 수도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아들을 지원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개뿔도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로쟈의 어머니 플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콜니코바와 동생 두네치카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라스콜니코프의 속이 얼마나 썩어 갔을지 상상이 간다.

 

고향에서 과외선생을 하던 동생 두네치카는 과외 가정의 가장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비열한 책동으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몰락한 집안의 희생양을 자처한 두네치카는 또다른 비열한 인간이자 45세의 중년 변호사 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진의 약혼녀가 되었다. 우리의 도끼 선생은 페미니즘을 전혀 고려하시지 않았던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희생자 역할을 여성들에게 맡긴다. 두네치카와 소냐 그리고 라스콜니코프가 죽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리자베타 모두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19세기 러시아의 시대적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오빠의 성공을 위해 자신과 어머니를 페테르부르크로 초대하고서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거지 같은 숙소에 묵게 한 루진, 두네치카를 포기하지 않은 채 의문사한 부인을 뒤로 하고 그녀를 쫓아 페테르부르크까지 달려온 스비드리가일로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문제의 근원인 라스콜니코프에 이르기까지 악역은 죄다 남자들이다. 루진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돈이나 연애 따위의 감정에 휘둘린 좀스러운 차원의 악당이라면 라스콜니코프는 그들과는 좀 다른 궤도에 올라선 자신만의 논리를 지닌 빌런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인물이 아닐까. 게다가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던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된 도끼 선생의 <죄와 벌>1부에서 치밀한 범죄자 라스콜니코프의 죄를 묘사한다. 나머지 다섯 개의 챕터에서는 모두 어느 누구도 그에게 부여하지 않은 죄에 대한 처벌권을 행사한 라스콜니코프가 감당해야 했던 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가 고리대금업으로 악행을 했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사법 시스템 아래에서의 합법적인 사업이었다. 21세기에도 고리의 대부업이 CM송의 흥겨운 리듬을 타고 방송에 횡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섬망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했다.

 


자신과 같이 불운한 처지에 빠진 청년을 돈을 매개로 해서 착취하는 전당포 노파에 대한 사적 응징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리자베타까지 포함한 이중살인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리자베타 역시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의 빈민이 아니었던가. 단지 그녀가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당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쟈는 자신의 의도와 반대로 비뚤어진 정의의 사도에서 파렴치한 살인범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 다음부터 라스콜니코프가 아무리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는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그의 행위는 동정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라스콜니코프의 독자적인 위험한 생각이다. 그는 스스로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역사에서 나폴레옹과 마호메트와 같은 이들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이고서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니체의 위버멘쉬[overman]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그는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자신의 범행 목적이 극빈한 자신의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금품을 탈취하지 않았던가.

 

청년 시절, 공상적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사형 직전에까지 갔다가 황제의 특별사면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십년을 보낸 도끼 선생은 혁명가의 삶 대신에 고단한 민중의 삶에 눈길을 돌렸다. 그가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삶을 바꾸기 위해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구제불능의 노름꾼이었으며, 돈을 벌기 위해 매문하는 작가였다. 속기사를 고용해 소설을 쓸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시베리아에서 독실한 신자로 거듭난 도끼 선생은 인간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는 대신, 신에게 귀의했던 것 같다.

 

<죄와 벌>에서도 라스콜니코프의 실제적인 범죄인 살해보다도,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거의 모든 면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의 오만함이야말로 진짜 죄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고작 이십 몇 년을 산 청년이 세상만사를 모두 알고, 자신이야말로 보통 사람들 가운데 비범한 사람이자 정의의 사도인 체하는 모습이 얼마나 거슬리는가. 도끼 선생 자신도 청년 시절 과격한 혁명가 벨린스키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자신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는 오만하고 자유로운 청년 라스콜니코프가 보여 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이미지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니 역설적으로 이런 캐릭터를 동정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묻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친구를 자처하는 라주미힌이 불쌍해 보인다. 과연 외톨이 라스콜니코프가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밥그릇까지 덜어 가면서 독일어 번역물을 친구에게 양보하는 라주미힌과 그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로쟈의 모습은 상충적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친구 간의 건강한 교제의 모습이 아니다.

 

비범한 사람 로쟈의 씀씀이도 또한 문제다. 당장에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면서도 돈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펑펑 써댄다. 어머니가 어렵게 구한 35루블을 보내오자, 라주미힌이 그의 입성을 챙기기 위해 10루블을 쓴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교통사고로 죽은 주정뱅이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장례식에 쓰라고 나머지 돈을 희사한 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소설 <죄와 벌>을 읽다 보면 도대체 당대 페테르부르크에는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다. 로쟈에게 돈을 받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연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 살 걱정이 눈앞인데 또다른 비렁뱅이 로쟈의 선의에 기대어 성대한 추모연을 치르는 장면도 이해가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합리적인 이성주의를 대변하는 예심 판사 포르피리와의 한판 대결과 지고지순한 천사 소냐의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극적인 터닝포인트가 기다리는 나머지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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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열린책들 판으로 읽었는데 첨에는 이름도 너무 길고 복잡한데다 무슨 애칭은 또 그리 많은지@_@;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었는데 말씀처럼 어느 고비를 넘기고 나니 책장이 정신없이 넘어갔던 기억이에요. 고전의 힘을 느꼈지만.. 언제쯤 다시 읽을 수 있을지는 ㅎㅎ^^; 레삭매냐님 존경합니다^^

레삭매냐 2020-06-10 13:36   좋아요 0 | URL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른 분들 다 읽은 책을 이제
다시 읽게 되었으니 말이죠.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서 밑줄
도 좍좍 긋도 메모도 하면서
읽다 보니 복귀할 시간이 되었
더라구요.

아, 다 때려 치우고 책만 읽고
싶습니다 증맬루.

2권은 6년 전에 산 열린책들 판
으로 읽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6-10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책의 제목을 보니 반갑네요. 이걸 읽고 도스토~가 천재라고 생각했었죠.
얼마나 흡인력이 있던지 두꺼운 책을 줄창 읽었었죠.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했던 경험이었어요.

레삭매냐 2020-06-10 17:57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처음에 읽을 적에는 참으로 지루하다
뭐 이런 생각이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재밌네요.
다 읽고 나면 쟁여둔 도끼 선생
의 다른 책들을 만나 볼까 합니다.

페넬로페 2020-06-10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판으로 꼭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0-06-11 08:04   좋아요 1 | URL
전 1권은 문동 그리고 2권은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고 있는데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열린책들 버전에서는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왠지 좀 가볍게 묘
사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가독성은 확실히 문동이 좋네요.
 


사랑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만난 책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하지만 왠지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사고 버텼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나온 사랑의 역사는 냉큼 사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엽서나 패브릭 포스터(아직 펴 보지도 않았다)에 혹했을 지도.

 

어쨌든 책이 왔으니 펼쳐 보기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읽기는 시작했다.

 

요즘 도끼 챌린지가 한창이라 우선 순위가 어찌 될런진 모르겠지만. 일단 <카라마조프>는다 끝내서, <죄와 벌>을 한창 읽다 말고 <사랑의 역사>를 읽게 됐다.

 

그런데 책의 서두에 쓴 내 삶의 전부라는 또다른 분더킨트 조너선과 갈라 섰다고.

그냥 나는 태클이 걸고 싶어졌다. 글로 쓴 건 이래서 지울 수가 없구나 싶기도 하고.

아니 내 삶의 전부라매. 결혼이라는 삶의 과정에서 전부는 어느 순간엔가에는 정리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이 한 문장 때문에 책에 몰입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왜 내가 이런 문장으로 책을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는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왠지 사랑의 역사에 오점이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냥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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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07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 먼저 만났는데.. 책을 읽게 될지 모르겠네요-_-;;;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카조형 끝내셨다니 일단 존경@_@;;;

레삭매냐 2020-06-07 13:08   좋아요 0 | URL
카조 브라더스는 수년 간
노려보기만 하다가 이번에야
말로... 허허 감사합니다.

영화가 있는 지 처음 알았네요.
일단 저는 책부터 보고 나서리.

유부만두 2020-06-07 13:41   좋아요 1 | URL
영화가 있어요????

moonnight 2020-06-07 14:39   좋아요 1 | URL
영화가 개봉은 안 한 모양인데 저는 캐치온에서 방영하는 걸 우연히 봤네요^^;;;

초딩 2020-06-07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사랑의 역사를 읽었는데이 판도 손이 가네요 :-)

레삭매냐 2020-06-07 13:08   좋아요 0 | URL
왠지 민음사 판의 버전보다
이번 버전의 책 표지가 더 마음
에 들더라는.

유부만두 2020-06-07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 표지 책으로 읽었어요.

조너선이 바람 피워서 헤어진 걸로 (아주 단순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사랑은 변하기도 하니까요. 새 표지로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레삭매냐 2020-06-07 21:44   좋아요 0 | URL
미국 작가판 부세였나 보네요...

니콜 크라우스의 고백이 무색하네요
증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