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서 작년 12월에 방영된 <책의 운명>이라는 프로그램을 짤로 봤다.
제대로 된 프로는 유튜브에도 나오지 않더라.
1부는 <종이책의 미래>, 2부는 <독자의 미래>다.
종이책의 운명은 모두가 걱정하는 대로, 다름 미디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종이책만 책으로 볼 것인가? 아니다. 예전에는 종이책으로만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가 있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학생들이 인강으로 수업을 듣고 있고, 요리나 기타 모든 게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는 시절이다. 그런데도 굳이 종이책을 고집할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미 이북도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도대체 이북에 정이 가지 않는다. 아마존에서 이북인 킨들이 나왔을 때, 종이책이 4-5년 정도면 사라질 거라고 했는데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나도 이북은 사지도 않을 생각이다. 이북이 어쩌 종이책이 가지는 물성을 대신한단 말인가.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난 이북은 영 그렇다.
프로그램을 보니, 책을 사고 읽는 이들은 더욱 더 책을 사대고 읽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연평균 독서양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개인이 책이건 인터넷이건 어떤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지혜 그리고 문학적 감동을 얻는다면 굳이 매체를 따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매체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는 중고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아주 쿨하게 대답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넘실거리는 중고책방은 냉엄한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다. 팔리지 않을 책이라면 주인장이 매입하지 않을 거라는 게 김영하 작가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팔리지 않을 책을 누가 매대에 둔단 말인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와 컨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 중고책방에서도 그 작가의 책을 산다는 지적이다.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중고책방에 가는 책으로부터 어떤 금전적 혜택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유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느 작가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인세를 받아야 하니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리지 말고 사서 보라고 강권했다지 아마. 그런 작가의 책이라면 앞으로도 나는 영원히 읽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SNS 상에는 책읽는 활동에 대한 포스팅이 차고 넘친다. 현실과 괴리가 느껴지지 않은가 말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책읽기는 고상한 행위로 간주되는 모양이다. 제 아무리 먹방이 대세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이 그리고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물론 기호학자들이라면 또 어떤 구조적 분석을 시도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예전보다도 더 북 커버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내 보기에 그렇지 않은 무신경한 출판사들도 여전하지만. 어쨌든 김영하 작가의 분석은 그렇더라. 타인의 독서가 나의 독서를 추동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모두가 좋다고 하면 한 번쯤은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도 주지 않는 편이다. 북 커버를 보고 책을 사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삘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망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알고 지낸 저자보다는 아무래도 잘 모르는 미지의 작가의 작품에 도전을 했다가 낭패당하는 수가 많다.
유럽에 간 김영하 작가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인 분서가 벌어졌던 독일 베를린의 베벨 광장을 방문한다. 1933년 5월 10일,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서 비독일적인 행위를 일소하겠다는 일념으로 18,000권에 달하는 책들을 광장에 쌓아 두고 불질렀다고 한다. 그날 비가 내려서 휘발유까지 동원해서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불살랐다고 한다. 정말 야만적이지 않은가.
그 다음 방문지인 파리에서는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번의 파리 방문에서는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키니스트들이 책을 전시하는 곳을 방문해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3,500여개에 달하는 프랑스 서점들은 도서정가제를 바탕으로 해서 이북의 파상적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북은 고작 프랑스에서 팔리는 책들의 5%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에 등장한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이 책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점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교육의 목적이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점도 우리네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변별점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식 대입시험인 바칼레로아에서는 그래서 단순 암기식 시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을 기르기 위한 지적 능력에 방점을 찍는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도저히 기를 수 없는 것을 독서는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어려서 책을 많이 읽던 아이들도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오로지 스코어링에 중점을 둔 문제 맞추기를 위한 독서를 하다 보니, 성인이 되어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누구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아마 그에게서 책을 뺏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이다. 다만 책읽기가 습관이 되고, 더 나아가 즐거움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책읽는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시민 선생의 말대로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는 이유로, 누구나 다 읽는 책이라는 이유로 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무한정으로 확장되고 있으니 나에게 맞는 책만 읽어도 시간은 부족하다. 자, 오늘은 또 무슨 책을 읽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