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씁쓰름하다. 점심도 먹지 않고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는데, 물리치료만 받고 정작 침은 맞지 못하고 그냥 왔다. 이럴 거면 예약은 왜 했나 싶다. 원장의 시간만 중요하고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다는 건가. 내일 일단 예약을 다시 잡긴 했는데, 신뢰가 떨어져서 여길 계속 가야 하나 어쩌나 싶다. 종아리가 조금 아픈 것도 이런데, 전쟁터에서 총상을 두 번이나 맞아 쇼크사할 뻔한 이의 감정은 어땠을까.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지만 책의 컨디션이 너무 후져서 중고를 사려고 기다리던 차에 새로운 번역으로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 재출간됐다. 이 장편소설에는 모두 22개의 미네소타 오스틴 출신 작가 팀 오브라이언이 직접 보병으로 참전한 베트남의 정글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청년 티미는 부당한 전쟁에 참전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원 진학을 기다리던 19686, 소집영장이 나왔다. 스물한 살의 청년은 전쟁에도 나가고 싶지 않았고, 전쟁광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적에게 총질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게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캐나다로 도망가는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인공 티미는 부모님에게 짧은 쪽지를 남겨두고 월경을 도모하기 위해 무작정 차를 몰고 떠난다. 그 여정에서 팁 톱 오두막이라는 낚시 리조트를 찾고, 훗날 자기 인생의 영웅인 엘로이 버달을 만난다.

 

엘로이는 곤경에 처한 청년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그는 요즘 어쭙잖은 세상살이로 라떼꼰대라 불리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포용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니 전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티미를 작은 보트에 태워 레이니강 너머 캐나다 땅으로까지 인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나도 엘로이 버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 이것저것 따지는 게 너무 많아진 모양이다. 오히려 청년 시절에 더 관대한 게 아니었을까.

 

우리의 티미는 작은 마을에서 자신에게 쏟아질 병역기피자 내지 반역자라는 꼬리표가 너무 쪽팔려서 전쟁터로 향한다. 바로 그런 솔직함이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다른 전쟁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는 책들과 변별점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전쟁은 국가 재건을 위한 용병수출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고, 수세기 동안 이어진 식민침략자들에 대항해서 분연히 일어난 민족해방 투쟁일 수도, 티미 같은 땅개들에겐 억지로 끌려온 그 무엇이었으리라.

 

저자는 기본적으로 전쟁은 지옥이라는 기본 컨셉트를 부인하지 않는다. 소설의 곳곳에서 그런 점이 보인다. 전쟁에서 돌아온 다음에 태어난 딸이 그에게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 전쟁은 어마어마한 전비와 병력을 투입한 미국의 패전으로 끝났지만, 중년이 된 저자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소설에 순서대로 등장하는 테드 라벤더와 커트 레몬 그리고 카이오와 같은 전우들이 바로 곁에서 어이 없이 죽어가는 장면은 초현실적이다. 방금 전까지 전장의 긴장을 달래기 위해 농담하고 장난치던 전우가 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에 산산조각이 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그저 단순하게 그는 죽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이분법적 구조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용감했던 인디언 전사 카이오와는 지미 크로스 중위의 오판으로 오물 속에서 박격포탄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전우들이 똥물을 뒤지는 동안, 지휘관은 전사한 대원의 부모님에게 보낼 문구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다. 시신낭이나 판초에 또래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은 슬픔 그 자체였다.

 

한편, 생전 처음으로 내가 아닌 타인을 죽였을 때의 감정에 대해 저자는 여러 꼭지로 당시 상황을 묘사한다. 정치적으로 리버럴인 저자의 양심선언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군장처럼 등에 짊어진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 난 청년들이 공산당과 싸우기 위해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에서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들은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면서 비틀린 어른으로 성장한다.

 

클리블랜드 하이츠에서 날아와 정글의 애인과 합류한 메리 앤 벨의 이야기는 전설 그 자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본국의 십대소녀가 애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태평양 바다를 건너, 수송헬기에 숨어 작전 지역에 침투한다고? 나는 도저히 못 믿겠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최전선에서 메리 앤은 위생병으로 그리고 소총수로 심지어 그리니들과 함께 매복에도 참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령 군인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 진 사람이 없다? 전쟁 자체가 워낙 광기로 물들다 보니 별의별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 싶다.

 

내가 보기에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미국이 빠졌던 수렁 같은 베트남 전쟁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담고 있다. 살기 위해 병역기피를 할 뻔한 순간의 티미로부터 시작해서, 총상을 두 번이나 당하고 결국 본부중대로 재배치된 전사가 아닌 존재의 티미, 본국으로 귀환해서 작가가 된 티미 그리고 어린 딸과 카이오와를 추모하기 위해 그가 전사한 장소로 돌아가 모카신을 논바닥에 심은 티미.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여행 에세이집에서 언급한 추구의 플롯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시행한 케이스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생생한 비극의 재현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어떤 미디어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팀 오브라이언이 지적하는 대로 정확하지 않은 기억과 나중의 기억들이 뒤죽박죽된 초현실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주인공 티미는 엉덩이에 총을 맞고 피를 쏟고 있는 자신의 구조 요청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위생병 보이 조겐슨에게 치졸한 복수를 계획한다. 어느 순간 멈춰야 했지만, 이왕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동료 아자의 주장에 이끌려 아무런 의미 없는 복수극을 실행에 옮긴다. 그것은 마치 찰리 콩들의 테트 공세 이후, 베트남에서 승리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미국 전쟁지도부가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실시하지 못한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오래 기다림만큼 만족할 만한 그런 독서였다. 그런데 나는 팀 오브라이언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피아 구분이 확실한 전쟁터에서 전투병 사이에서의 살상이야 그렇다 치고, 과연 한 번도 무고한 민간인은 죽인 적은 없느냐고. 그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뱀다리1] 책이 지닌 가치에 사소한 오탈자 정도는 패스하도록 하자.

[뱀다리2] 책의 뒷면을 보면 <카차토를 쫓아서>가 출간 예정으로 되어 있는데, 실질적 주인공 폴 벌린이 탈영병(AWOL) 카차토를 추적하는 소설인 모양이다. 그런데 카차토가 파리까지 도망갔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예전에 달궁 독서모임에서 우리 미쿡 브랜던 친구에게 왜 백인들은 흑인의 서사를 쓰지 못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때 내가 염두에 두고 물은 작가가 폴 비티인지 아니면 콜슨 화이트헤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어제 퓰리처상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콜슨 화이트헤드가 3년 만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니켈 보이스>로 두 번째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놀랍군. 누구는 평생 글을 써도 한 번 받을까 말까한 상을 두 번이나 받다니. 역사상 4번째이고 흑인 작가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할 테니 세 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침 예전에 사두기만 하고 쓰담쓰담 하던 책을 어제 자려고 누웠다 말고 찾아냈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플로리다 탤러하시 출신의 엘우드 커티스는 학교 수업에 가려고 타인이 훔친 차에 탔다가 그만 인생이 지독하게 꼬여 버리고 만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교정 시설인 니켈 아카데미로 보내진 엘우드. 그곳에서 만난 잭 터너와 함께 벌이는 서사가 흥미만점이다. 얼핏 본 서머리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유수의 문학상을 받을 만한가에 대해서는 직접 읽어봐야겠지만.


소설은 31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작가의 말. 미국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를 날것 그대로 파헤쳐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캐내는 문학 장인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켈 보이스>는 전작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속편이다. 동시에 플로리다 니켈 아카데미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흑인 소년들에 대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교정 시설이지만 성폭행과 채찍질 같은 구타 그리고 독방 감금은 그곳에서 일상이었다. 심지어 살인도 수시로 벌어졌다. 독방에 감금됐던 16세 소년은 전구를 삼켰다고 했던가.

 

후기에 실린 작가가 어떻게 해서 니켈 아카데미의 진실을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더라. 작가는 플로리다 마리애나에서 실제 있었던 아서 도지어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아직 읽기 시작은 하지 않았다. 아마 이러다 번역이 나오길 기다리게 될 지도. 아마 은행나무가 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나 번역서가 나오려나. 그리고 보니 <1구역>도 사두기만 하고 안 읽었는데.

 

파이널리스트에는 앤 패칫의 <더치 하우스>와 벤 러너의 <토피카 스쿨>이 올랐더라. 어쩔 때 보면 본상보다 파이널리스트 작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이창래 선생의 <생존자>가 그랬지. 아 근데 왜 이창래 선생의 책들이 죄다 품절이지? 판권이 만료되었나.

   

그나저나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더듬거리며라도 읽기 시작해야지 싶다. 오래 전 나의 선택은 탁월했구나.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onnight 2020-05-06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군요. 게다가 무려 두번째 퓰리처@_@;;;;; 읽어야지 별 수 없겠네요^^;;;;

레삭매냐 2020-05-06 21:20   좋아요 0 | URL
판권 가지고 있는 출판사의 대응이
좀 아쉽습니다. 작년부터 대작이라는
평이 곳곳에서 있었는데... 뭘하고 있
는지 참. 번역해 두었다가 차라~ 하고
푸는 미덕은 없는 거겠죠 아마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모르
는가 봅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퓰리
처상이 맥을 못추긴 하지만요.

coolcat329 2020-05-06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더그라운드가 번역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두 번이나 풀리처를 그것도 흑인으로선 첫 수상이라 하니 원서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네여. 레삭매냐님 원서로 읽으시는군요!

레삭매냐 2020-05-06 21:22   좋아요 1 | URL
콜슨 화이트헤드 말고는 좋은 글을
발표하는 작가들이 수두룩 한데
어째 발굴(?)을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지브 사호타가
번역되기를 기대하고 있답니다.

원서로 더듬거리며 만나 보려고 합니다.
아마 다 읽기 전에 번역이 나오지 않을
까 싶습니다만.

coolcat329 2020-05-06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라서 찾아보니 작가 이름이군요.🤤 Sunjeev Sahota ~잊지않을거 같네요ㅎ
댓글저장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별다방 라떼에 얼음을 부어 마시며 리뷰를 쓰는 즐거움이라... 어제 왼쪽 종아리 비복근 부상으로 얼음 찜질까지 하면서, 더 바랄 게 없구나. 샌드위치 데이라 그런지 나를 성가시게 하는 전화조차 걸려 오지 않는다. 살짝 천국에 발을 담근 그런 느낌이랄까.

 

점심 때 머리 자르러 가서 대기하는 동안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다 읽었다. 지난달에 사서 바로 4개의 에피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당일로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세풀베다의 책에, 츠바이크의 카스텔리오를 위한 변명 등등을 읽다 보니 후순위로 밀렸다. 하지만 마저 읽는 건 누워서 떡먹기 프로젝트여서 금세 다 읽었다.

 

어느 100자평인가를 보니 서울깍쟁이 여성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작금의 염량세태를 대변하는 수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감상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게다가 무척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예전에는 돌려치기가 문학의 감수성을 대변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돌려까지 말고 무조건 직진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인스타 열컷 만화로 미리 만난 우동마켓에서 신상을 판매하는 거북이알이 등장하는 이야기와 필요할 때만 부르는 회사 언니에 대한 이야기(, 제목도 잊어 먹었다)에 어찌 공감하지 않으리오. 결혼식에서 1차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말을 절감했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청첩장을 받아가 놓고선 나타나지 않는 건 기본이었다.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 언니는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정확하게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요즘 사람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사람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나도 얼마 전에 친척분이 돌아가셔서 부조 접수를 보았는데 455,000원을 내신 분이 있더라. 아무래도 5만원으로 5천원으로 착각하시지 않았나 싶다. 부조는 갚아야 하는 돈인데, 그럼 갚을 때도 455,000원으로 돌려 드려야 하나 싶더라.

 

영어학원도 아니고 회사에서 영어식 이름을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대표이사 같은 상사야 누구든 하대를 하니 상관없겠지만,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좀 그럴 것 같은데. 오래 전 영어 학원 다닐 적에 맥스란 이름을 사용했더니 모두가 앞에다 매드를 달아서 한동안 곤욕을 치렀던 것 같다.

 

요즘 세대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그리고 누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거부한다. 가만 보니 예정에 정이라고 불리던 것들이 어떻게 보면 간섭일 수도 있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가령 예를 들어 반세기 전에는 백만 명이던 출산인구가 이제는 28만 명 정도로 1/3 토막이 나버렸다. 그 시절에는 인구폭발로 아이를 더 낳지 말라고 난리였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는데, 이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그 저변에는 자식 세대를 위해 희생한 부모 세대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도움의 손길>에서는 고단한 가사 일에 도움을 받고자 업체를 통해 도우미 아줌마를 요청한 주인공의 관찰일기가 등장한다. 아마 집안 청소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청소라는 게 정말 아무리 해도 태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바쁜 회사일 만으로도 번잡한 마당에 합리적(어쩌면 이 단어가 이 소설의 주제를 타격하는 핵심 키워드일 지도 모르겠다) 비용으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일 수도 있겠지. 인간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어느 아줌마의 꼼꼼한 청소 솜씨에 반해 정기적으로 방문을 요청하지만, 아줌마는 초심을 잃고 어느 순간부터 매너리즘에 빠져 청소며 빨래를 대충하기 시작한다. , 주인공이 요청한 창틀 청소는 정말 고난이도의 작업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 원 더 드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관계의 파국이 예상되지 않는가.

 

<탐페레 공항>에서는 평생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던 소녀가 현실을 직시하고 보통의 회사원이 되는 그런 과정을 담담하게 적어낸다. 피디가 되기 위해, 이력서에 얹을 경험을 얻기 위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환승지였던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은퇴한 사진작가 양반과의 인연이 중심을 잡고 있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분이 찍은 자신의 사진이 귀국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하려는 주인공의 시도는 먹고사니즘에 바빠서 그리고 취뽀를 위해 맹진해야할 시간이라는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소멸된다. 그런다고 과거의 애잔한 추억이 기억에서 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다. 언제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유예일 따름이다.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치환될.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장류진 작가의 스타일과 작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호흡이 짧은 단편과 장편은 또 다르지 않을까. 장류진 작가가 장편을 쓴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로 이 경쾌한 스타일의 리듬감을 이어갈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거는 아시는지. 일에 기쁨이나 슬픔 따위는 없다는 거. 매달 노동과 스트레스의 대가로 주어지는 통장에 따박따박 찍히는 숫자가 제공하는 푹신함만 존재할 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ngsil 2020-05-04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나 언니 보면서 내 주위의 누군가가 떠오르고,또 누군가에게는 내가 빛나언니 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가감정이 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0-05-04 16:21   좋아요 0 | URL
의견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부인하고
싶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빛나 언니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미처
못해봤네요...

이래서 삶은 어려운가 봅니다.

moonnight 2020-05-04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빛나언니 알고 싶은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좋다는 말 많이 들었고 신문에서 작가 인터뷰도 읽었지만 왠지 과대평가 된 거 아닌가,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직접 읽어봐야겠네요^^

통장에 따박따박. 참 좋지요;;

레삭매냐 2020-05-04 22: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너무 블러핑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여튼 알싸한 맛이 나는 스토리들
이 단짠하니 재밌더군요.

장편을 만나 보기 전까지는 평가
를 유보하는 것으로.
댓글저장
 


 

TVN에서 작년 12월에 방영된 <책의 운명>이라는 프로그램을 짤로 봤다.

제대로 된 프로는 유튜브에도 나오지 않더라.

 

1부는 <종이책의 미래>, 2부는 <독자의 미래>.

 

종이책의 운명은 모두가 걱정하는 대로, 다름 미디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종이책만 책으로 볼 것인가? 아니다. 예전에는 종이책으로만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가 있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학생들이 인강으로 수업을 듣고 있고, 요리나 기타 모든 게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는 시절이다. 그런데도 굳이 종이책을 고집할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미 이북도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도대체 이북에 정이 가지 않는다. 아마존에서 이북인 킨들이 나왔을 때, 종이책이 4-5년 정도면 사라질 거라고 했는데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나도 이북은 사지도 않을 생각이다. 이북이 어쩌 종이책이 가지는 물성을 대신한단 말인가.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난 이북은 영 그렇다.

 

프로그램을 보니, 책을 사고 읽는 이들은 더욱 더 책을 사대고 읽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연평균 독서양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개인이 책이건 인터넷이건 어떤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지혜 그리고 문학적 감동을 얻는다면 굳이 매체를 따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매체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는 중고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아주 쿨하게 대답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넘실거리는 중고책방은 냉엄한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다. 팔리지 않을 책이라면 주인장이 매입하지 않을 거라는 게 김영하 작가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팔리지 않을 책을 누가 매대에 둔단 말인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와 컨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 중고책방에서도 그 작가의 책을 산다는 지적이다.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중고책방에 가는 책으로부터 어떤 금전적 혜택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유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느 작가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인세를 받아야 하니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리지 말고 사서 보라고 강권했다지 아마. 그런 작가의 책이라면 앞으로도 나는 영원히 읽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SNS 상에는 책읽는 활동에 대한 포스팅이 차고 넘친다. 현실과 괴리가 느껴지지 않은가 말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책읽기는 고상한 행위로 간주되는 모양이다. 제 아무리 먹방이 대세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이 그리고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물론 기호학자들이라면 또 어떤 구조적 분석을 시도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예전보다도 더 북 커버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내 보기에 그렇지 않은 무신경한 출판사들도 여전하지만. 어쨌든 김영하 작가의 분석은 그렇더라. 타인의 독서가 나의 독서를 추동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모두가 좋다고 하면 한 번쯤은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도 주지 않는 편이다. 북 커버를 보고 책을 사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삘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망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알고 지낸 저자보다는 아무래도 잘 모르는 미지의 작가의 작품에 도전을 했다가 낭패당하는 수가 많다.

 

유럽에 간 김영하 작가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인 분서가 벌어졌던 독일 베를린의 베벨 광장을 방문한다. 1933510,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서 비독일적인 행위를 일소하겠다는 일념으로 18,000권에 달하는 책들을 광장에 쌓아 두고 불질렀다고 한다. 그날 비가 내려서 휘발유까지 동원해서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불살랐다고 한다. 정말 야만적이지 않은가.

 

그 다음 방문지인 파리에서는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번의 파리 방문에서는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키니스트들이 책을 전시하는 곳을 방문해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3,500여개에 달하는 프랑스 서점들은 도서정가제를 바탕으로 해서 이북의 파상적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북은 고작 프랑스에서 팔리는 책들의 5%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에 등장한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이 책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점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교육의 목적이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점도 우리네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변별점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식 대입시험인 바칼레로아에서는 그래서 단순 암기식 시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을 기르기 위한 지적 능력에 방점을 찍는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도저히 기를 수 없는 것을 독서는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어려서 책을 많이 읽던 아이들도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오로지 스코어링에 중점을 둔 문제 맞추기를 위한 독서를 하다 보니, 성인이 되어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누구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아마 그에게서 책을 뺏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이다. 다만 책읽기가 습관이 되고, 더 나아가 즐거움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책읽는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시민 선생의 말대로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는 이유로, 누구나 다 읽는 책이라는 이유로 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무한정으로 확장되고 있으니 나에게 맞는 책만 읽어도 시간은 부족하다. , 오늘은 또 무슨 책을 읽어 볼까나.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막시무스 2020-05-03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근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ㅎ

레삭매냐 2020-05-04 09:0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저희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서 적어 보
았답니다.

페넬로페 2020-05-03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생은 그냥 종이책으로~~

레삭매냐 2020-05-04 09:08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에 이북을 사긴 했는데
전혀 무소용이네요...

저도 이번 생에는 종이책으로 고고씽~

라로 2020-05-03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냐 님과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종이책만을 고집하는,,그러다 미국에 오니까 한국책에 있어서는 그렇게 안 되네요. ^^;; 이제는 좋은 이북 리더기를 찾고 있는 현실이에요. ^^;;

레삭매냐 2020-05-04 09:11   좋아요 0 | URL
김영하 작가의 말마따나 매질/매체
가 뭐가 중요하겠습니다.

미디어가 담고 있는 텍스트를 얼마
나 내 것으로 만드냐가 관건이겠지요.

그럼 점에서 이북의 효용성에 대해서
는 찬성하는 바입니다.

다만 아날로그 닝겡은 계속해서 종이
책으로 가는 것으루다가.

chika 2020-05-03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세받기위해 도서관말고 책을 사라고 한 작가는 누굴까,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0-05-04 09:10   좋아요 1 | URL
저도 어디선가 주워 들은 지라
확실...히는 잘 몰라요.

여행 작가라고 하는 것 같던데 -
이상 카더라 통신이었습니다.

chika 2020-05-04 09:30   좋아요 1 | URL
농담처럼 나온 얘기라면 이해하겠는데 진지하게 그런 얘길 했다면 그 작가님은 생활비가 필요한걸로다가.. ㅡ,.ㅡ

2020-05-04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4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5-04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책과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이 했었군요. 처음 알았어요. 저는 최근에 ‘밀리의 서재’에 가입했어요. 이제 방에 종이책을 놔둘 공간이 없어서 최대한 종이책을 덜 사는 방향으로 책을 읽으려고 해요. 단, 꼭 사야할 책은 사야죠. ^^;;

레삭매냐 2020-05-04 09:13   좋아요 0 | URL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덜어내는 삶을
추구하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책탑이 줄어들
거나 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책 좋
아하는 이들에게 제게는 필요 없는
책들을 나누어 주고 또 사들이고의
무한반복이네요.

저의 꿈 중의 하나는 빈 책장이랍니다.
그런 게 있다면 또 마구 채워 넣겠지
만요.

단발머리 2020-05-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짤로 봤다,에서 큭!하고 웃었습니다. 저도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이북은 듣는 맛이 있어서 간간히 이북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간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거든요.
<책의 운명>은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저도 찾아서 봐야겠어요. 책의 생산자 중 하나인 소설가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전, 참 좋게 보이네요. 김영하를 좋아해서 그런 걸까요? 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05-04 13:54   좋아요 0 | URL
저는 김영하 작가가 작은 책방을
응원하다고 하고서는
<밀리의 서재> 광고에서는 아직도
서점에 가니인가 어쩐가 하는 걸
보고서는 충격 먹었습니다.

역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구요.
댓글저장
 
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기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시공에 사는 이들의 다양함과 다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로런 그로프의 소설집 <플로리다>는 그런 점에서 충실하게 소설의 기본 의도를 충족시켜준다.

 

모두 11편의 소설이 담긴 <플로리다>에는 플로리다와 어떻게든 얽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주드.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파충류를 연구하는 교수로 플로리다에 지천으로 널린 뱀을 연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말 없는 소년 주드는 책을 사랑하는 북부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해 보이는 숫자를 사랑했다. 아버지가 전쟁으로 부재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 지긋지긋한 뱀 표본들을 늪지에 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놈들은 삽날로 머리를 날려 버린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자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지닌 소년 주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대로 잃고 남자로 성장한다. 난 왜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소설에는 다양한 새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소설에도 따오기며 갈매기 같은 새들이 비슷한 구성으로 나온다. 소설의 전문가라면 이 새들의 상징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도 싶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관계로 패스. 올해는 시간이 되면 <스토너>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숙자가 된 이들도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플로리다의 가난한 지역에 둥지를 주인공의 집 아래 사는 노숙자 커플이 등장하기도 한다. 동네를 달리며 보이는 가족어항 속의 인간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늪지의 개구리가 들려주는 당김음이란 단어도. 그런데 영어로 당김음은 어떤 단어지?

 

열대지방은 플로리다를 강타하는 허리케인은 조용한 삶에 대한 타격으로 읽힌다. 이별한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있다가 죽었다는 주인공에게 허리케인의 아이월속에 갇히자 남편을 비롯한 망자들이 방문한다. 한 해 연금보다 비싼 샴페인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인간도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모든 운명은 비극적으로, 행운이라는 측면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한 때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스테이션 왜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노숙자의 길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가는 마당에 자존심은 허기 앞에 굴복한다. 바에서 만난 어린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집 냉장고를 털다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최악이라고 선언했던가. 차마저 털리자 진짜 본격적인 노숙자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인간의 육신에서 뿜어내는 악취를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공복이 주는 나락으로의 초대였다. 바에서 청소 일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던 이가 병으로 쓰러지자 허름한 모텔에서의 생활도 곧 끝이 난다. 야영장에서 자신이 가진 초라한 먹을거리를 나누고, 제인 일행에 합류한다. 그렇게 몰락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나는 궁금하다, 한 때 대학의 교수 일도 하던 주인공이 왜 번듯한 직장을 찾지 않고 또 비록 재가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지. 타인의 삶은 내가 가진 기준점으로 결국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의 간호를 맡았던 아름다운 여성이 브라질의 살바도르란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운명에 대한 서사도 흥미롭다. 시간은 그녀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지만, 언니들이 보장하는 한 달 간의 화려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주인공은 남국의 빛나는 바닷가를 찾는다. 그리고 고급 호텔로 향하지만, 갑작스레 도달한 폭풍우에 휘말려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물론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녀를 말리지만, 그녀의 행동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원하지는 가게 주인으로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새벽을 맞는다. 휴가지에서 가장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상황을 로런 그로프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기 드 모파상에 대한 애증을 지니고 두 아들들을 데리고 어머니이자 작가인 그녀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이포르란 곳으로 향한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경이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들이 프랑서 어를 그야말로 습자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원하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계속해서 등장하는 모파상이 쓴 소설에 대한 평가와 매독에 걸려 광증에 시달리다 죽은 파렴치한 색정광이었다는 사실이 전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에 비해 저렴하고 질 좋은 부르고뉴 와인을 한껏 마시면서 어머니인 그녀는 지난 십년 동안 미뤄온 기에 대한 평가를 싫어한다고 결론짓는다. 오랜 기간 습득한 프랑스 어지만 결국 이방인의 언어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떠나온 플로리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사친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뉴스를 오랫동안 터지지 않았던 와이파이가 터지자 알게 된다. 진실의 유예가 때로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던가.

 

소설집 <플로리다>는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작가의 작품이었다. 공간으로서 플로리다는 내가 가보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가보지 못할 곳이겠지만, 그 공간을 채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에서 태어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장소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무더운 여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곳일 수도, 휴가를 마치면 돌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일 수도 있는 그런 곳이겠지. 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동경의 장소일 수도. 나에게 소설 <플로리다>는 작가가 전달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넘실거리는 그런 어떤 것도 가능한 공간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0-05-03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명과 분노> 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오바마 대통령의 유혹..) 이번에는 레삭매냐님 리뷰에 유혹당합니다^^ 저는 <운명과 분노>를 읽으며 왠지 자꾸만 <스토너>가 떠올랐거든요. 레삭매냐님 이번 작품에서 그랬다 하시니 괜히 반가워하며 공통점을 찾아봅니다. 팬심ㅎㅎ;; 로런 그로프도 <스토너>를 애정하는 거 아닐까 상상도 하면서 혼자 히죽합니다. 평안한 일요일 보내시길요. ^^

레삭매냐 2020-05-03 12:37   좋아요 0 | URL
유혹, 성공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운명과 분노>보다
이번에 만난 <플로리다>에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뷔페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
까요. 작가의 자전적인 스토리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