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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비아호의 소년, 얀 ㅣ 사계절 1318 문고 48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며칠 전에 주경철 교수님의 <일요일의 역사가>를 읽었다. 예전에 서경식 교수의 <내 서재 속 고전>을 읽고 나서 한참을 서 교수님이 소개한 책들을 읽겠다고 책을 구하러 다니던 생각이 났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을 필두로 해서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 나탈리아 긴즈부르그의 책 등 정말 다양하게도 모았었다. 물론 아직도 국내에 소개된 책이 없기도 하지만. 책사냥꾼에게 어떤 점에서 보면 하나의 미션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책에 소개된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의 아메리카 인디오에 대한 기록도 보고 싶은데, 역시나 절판된 책이라 구할 수가 없구나.
시작부터 여느 때처럼 삼천포로 맹렬하게 달려 가는구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주 교수님의 책 역시 어쩌면 나에게 그런 열망을 다시 피어오르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집에 사놓은 책이 원체 많고, 그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어딜 나다닐 수가 없으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일요일의 역사가>에도 등장한 바타비아호 사건을 소설화한 라헐 판 코에이의 <바타비아호의 소년, 얀>을 주문했고 밤새워서 다 읽었다.
사계절 출판사 청소년 시리즈로 나온 모양인데, 일단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그전에 사전 정보를 알고 있어서 그런 진 몰라도 읽는데 가속이 휙휙 붙더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타령을 하다가 결국 새벽 두시까지 다 읽고 잠이 들 수가 있었다. 자수하자면 도중에 살짝 졸기도 했었다.
소설의 주인공 얀 벰멜은 16세 소년으로 전적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위트레흐트 상인의 장남이었던 얀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자신이 서자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계모에 의해 바로 내쳐진다. 계모에 대한 클리셰이는 문학에서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게 좀 불만이다. 암스테르담으로 빌헬름의 도제가 되어 갔지만, 가난과 굶주림으로 얀은 탈출을 도모한다.
1628년 당시에 네덜란드가 개척한 동방의 식민지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바)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은 모두 동방으로 건너가 한몫 챙기기를 꿈꿨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무일푼의 얀에게도 바타비아는 이상향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동방으로 출항하게 될 동인도회사의 바타비아호는 당시 최첨단 범선으로 360여명의 사람들과 4,000만 유로에 달하는 재화를 싣고 향신료 무역을 향해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얀은 바타비아 선단의 부상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와 5년 계약을 맺고 선실 사환의 신분으로 동방행에 나선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서부 1629년 6월 4일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암초를 만나 난파하기까지가 소설의 1부에 해당한다. 나머지 진짜 비극은 2부에서 시작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바타비아의 무덤’을 창조해낸 약제사 출신 코르넬리스는 재세례파 출신 이단자로 <일요일의 역사가>에서 소개된다. 그는 이미 바타비아호가 난파되기 전부터, 선상 반란을 꾸미고 있었다. 대상인 프란시스코 펠사에르트와 야콥스 선장이 구조를 위해 떠난 뒤, 선단의 선임자로 최고 권력을 쟁취한 코르넬리스의 악행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문명사회 출신으로 오로지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물과 식량을 아끼기 위해,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병자,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한 이들에게 사주를 해서 서로를 죽이게 만들었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얀도 살아남기 위해 코르넬리스가 주도한 살인게임에 참여했고, 다른 동료들처럼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도대체 이게 야만이 아니라면 무엇이 야만이란 말인가. 공존을 위해 서로 협동하고 상부상조하는 대신,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배제하는 잔혹한 방식을 정당화하는 코르넬리스의 왜곡된 사고도 비극에 한몫했던 게 아닐까. 신이 있다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곧바로 응징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신도 자신의 행위를 용인한 것이다 식의 자기합리화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대자연이라는 야만 앞에서 유럽식 교육과 예절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라헐 판 코에이 작가는 상당히 순화시켜서 표현을 했지만, 아마 실상은 더 끔찍하지 않았을까.
포로가 된 코르넬리스에 이어 지휘자가 된 발터 로스가 이끄는 반란군은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마지막 전쟁에 나선다. 위기에 순간, 펠사에르트가 선도하는 구조대가 등장하면서 바타비아호의 비극은 종료된다. 처음부터 코르넬리스의 음모를 파악한 얀은 숱한 고민을 하지만, 일개 사환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결국 코르넬리스 무리에 가담했고, 심문과 고문을 거쳐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다만 감형되어 발터와 함께 오지에 유배형에 처해진다. 다소 동화 같은 결말이지만 바타비아호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소년 얀의 절박한 처지를 알게 된 코르넬리스는 선실을 드나드는 얀을 이용해서 대상인과 선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을 조종했다. 타인이 모르는 정보는 그렇게 악용되었다. 코르넬리스에게 코가 꿴 사람들은 차례 차례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 고민하는 영혼 얀은 코르넬리스의 명령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대신,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람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실제로 벌어진 광란의 잔혹한 카니발 대신 끝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는 개인의 영혼에 방점을 찍는다. 나라면 과연 코르넬리스의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거부하고, 단호하게 맞설 배짱이 있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바타비아호의 소년, 얀>을 읽고 났더니 동일한 사건을 다룬 넌픽션인 마이크 대쉬의 <미친 항해>도 읽고 싶어졌다. 또 그의 다른 저작인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도. 세상엔 정말 내가 모르는 책도, 읽어 보고 싶은 책들이 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