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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69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평점 :

아주 오래 전에 산 책을 작정하고 읽기에 나섰다. 그리고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독서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는 서양 작가의 글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장만해 두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읽은 불가코프의 책은 <개의 심장>이었지 아마. 두툼한 책의 두께에 질려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칩거의 시간들이 길어져 가는 어느 봄날 밤에 나는 드디어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집어 들었다. 아니 이 소설 왜 이렇게 재밌는 건가. 읽고 있던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를 때려치우고 <거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대체 거장은 누구고, 마르가리타는 누구란 말인가.
러시아 소설들이 그렇듯 한 주인공의 이름이 다양하게 변주되기 때문에 역시나 그들이 푸는 썰의 흐름을 쫓는데 좀 헷갈리기도 했다. 어쨌든 모스크바의 어느 봄 날, 문인 베를리오즈(절대 작곡가가 아니다!)와 이반(이바누시카)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 낯선 이방인/외국인을 만나면서부터 이야기는 내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놀라운 건 이방인 볼란드 교수가 베를리오즈의 처참한 죽음을 예언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소설 속의 소설로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도 흥미진진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SF장르물 같은 성격으로 이천년을 되돌려 예르샬라임의 예슈아(마시아!)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장>의 배경이 되는 현재의 시점이 아마 부활절 즈음에서였을까. 볼란드 교수는 당시 현장에서 예슈아의 수난을 그대로 목격했다지 않은가. 이 정도면 정체불명의 볼란드가 누구인지 슬슬 감이 오지 않는가.
검은 마술의 대가를 자처하는 볼란드는 자신의 수하들인 코로비예프와 빨간 머리 아자젤로, 말하는 검정고양이 베헤못 그리고 비서 헬라를 동원해서 대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놀라운 흑마술을 시전하면서 관객들을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은 1938년, 스탈린 공포정치가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 쓰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험이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소비에트 인민들은 여전히 미신과 탐욕에 절은 인간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거장>을 통해 불가코프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문제인 거주문제에서 모스크바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면에 걸려) 얄타로 날라간 극장장의 아파트를 차지위해 벌이는 암투는 심각한 거주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다. 그 시절부터 이미 거주문제 혹은 토지소유 문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던 걸까.
한편, 정신병원에 수감된 청년 시인 이바누시카는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느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분열증에 시달리는 불쌍한 영혼으로 규정된다. 그의 모습에서는 진실이 왜곡되고 사라져 버린, 스탈린 치하 비극적 소비에트에 대한 불가코프의 신랄한 비판이 읽혀진다.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해 마지않던 거장이 등장한다.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을 정신병원의 동료 수감자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슈아를 유대의 축제 기간에 다른 흉악한 범죄자들과 함께 민둥산(골고다 언덕)에서 처형한 로마의 기사 출신 다섯 번째 유대 총독이었다. 거리의 철학자 예슈아를 신성모독으로 처벌하라는 대제사장 카이파를 대신해서, 사법권을 지닌 유대 총독이 무고한 예슈아에 사형 판결을 내리면서, 지난 이천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욕받이가 된 인물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 되시겠다.
한편 본디오 빌라도는 예슈아를 30드라크마에 판 키리아트 출신 배신자 유다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밀명을 두건 쓴 사나이(총독의 비밀호위대장) 아프라니우스에게 내리지만, 유다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깔끔한 실력을 갖춘 자객의 칼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자, 그렇다면 거장은 바로 그런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을 쓴 사람이라면 마르가리타는 누구인가. 바로 그 “거장”을 사랑하는 젊은 유부녀다. 그리고 볼란드 교수의 초대에 응해, 발가벗고 빗자루를 탄 마녀로 변신해서 연인 거장의 복수에 나선다. 정숙해 보이는 마르가리타가 거장의 소설을 퇴짜 놓은 라툰스키가 사는 건물을 초토화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종교와 흑마술, SF시간여행으로 점철된 이 소설을 넷플릭스에게 실사로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복수심에 불타는 마녀 마르가리타가 벌이는 사회주의 심장부에서 벌이는 반달리즘은 스탈린의 폭압적인 통치에 대한 인민의 저항심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저항에 나설 수 없기에, 불가코프 스타일의 판타지가 등장하는 게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흑마술로 인민을 현혹시키는 사탄 볼란드 교수는 스탈린으로, 코로비예프를 비롯한 그의 수하들은 NKVD 수장으로 사회주의 러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베리야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볼란드 교수와 측근들이 벌이는 난장판은 수년 뒤에 벌어질 독소전의 전초전으로도 보인다. 러시아에서 인민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며 마시아 노릇을 하던 독재자가 주최한 만월의 봄밤에 행해지는 대무도회는 그야말로 소설 <거장>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거장 불가코프의 현란한 상상력과 할리우드 자본과 영화 테크놀로지가 의기투합한다면 정말 걸작 영화가 탄생할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소설에 대한 몰입을 어지럽힌다.
개인적으로 1부에서 현란하게 전개되던 내러티브는 역동성은 2부에서 상대적으로 현저하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미샤 베를리오즈의 처참한 죽음과 볼란드의 화려한 흑마술에 넘어간 시민들이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노출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의 고뇌. 인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볼란드 교수 일당이 벌인 소동에 대한 설명이 집단 최면이었더라는 허무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유려한 스토리가 아닌가 말이다.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삶을 공언한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한 혁명가들의 약속이 결국은 하나의 최면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과연 현대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시대를 앞서 간 거장의 은유적 체제 비판, 판타스틱한 내러티브, 흥미진진한 소설의 전개 방식 등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늦게 만난 점이 아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