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룰 수가 없어 1,752쪽 짜리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이미 1권과 2권을 읽고 3권에서 멈춘 적이 있어 더 조심스럽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단아,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의 로베르토 볼라뇨의 역작 <2666>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과연 그전에 한 번 읽어서 그런지 기시감도 들고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지니. 이제 겨우 초반전일 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배배 꼬이고 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나의 혼을 빼놓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1920년대 프로이센 출신의 독일 출신 소설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가 있다. 아니 그의 정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었던 유럽의 중추를 이루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출신 학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미지의 작가 아르킴볼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볼라뇨는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정밀한 타격을 가한다.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작가에 대한 태생적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 그 작가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럴수록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될 것이다. 볼라뇨처럼 요절한 작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도대체 볼라뇨는 생전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써놓았기에 사후에도 계속해서 미발표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단 말인가. 어떤 점에서 본다면 자신이 바로 방대한 메타픽션 <2666>의 샘플일 지도 모르겠다. 각각 국적을 달리하지만 아르킴볼디를 사랑하는 장클로드 펠티에, 피에르 모리니, 마누엘 에스피노사 그리고 리즈 노턴이 빚어내는 서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의 세계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들에게 언어 따위는 전혀 장벽이 아니다. 독자는 아르킴볼디의 문학 세계에 대해 네 명의 비평가들이 나누는 대화와 사유를 바탕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가 작품들이 유니크한 무언가를 유지하면서 연구자들을 꼬이게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 또한 볼라뇨가 정밀하게 설계한 소설적 장치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중심에 미지의 아르킴볼디라는 기둥이 서 있다면, 서브텍스트로는 예상한 대로 영국 출신 리즈 노턴을 두고 세 명의 지식인들이 벌이는 연애 경쟁이 존재한다. 그들은 지식인들답게 거리의 사나이들처럼 거칠게 애인을 쟁취하기 위해 주먹질을 하지는 않는다. 리즈 노턴을 존중하면서 충분한 거리와 시간을 두고 나름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고 보니 다발성 경화 증세로 휠체어를 탄 모리니는 육체적인 이유 때문에 초반 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학회에서 아르킴볼디에 대한 연구와 수많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독자는 과연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독자는 볼라뇨의 설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펠티에와 에스피노사는 함께 런던을 찾았다가 자신들의 유사 애인이자 동료, 친구를 모욕하는 파키스탄 택시 운전사를 흠씬 두들겨 패기도 한다. 모두에게 숨어 있는 야성과 폭력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에드윈 존스라는 이름의 자신의 오른손을 스스로 자른 행위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도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진도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등장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어디선가 아르킴볼디가 멕시코 소노라 인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펠티에와 에스피노사 그리고 리즈는 산타테레사를 찾게 된다. EU 출신 네 명의 지식인들이 문학의 세계사를 대표한다면, 산타테레사라는 공간은 NAFTA라는 조건 아래 멀지만 가까운 이웃이 되어 버린 미국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는 자본과 노동을 유추하게 만든다. 수십 수백명의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산타테레사였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국경 부근의 오지에서 아르킴볼디가 출현했다고? 너무 부족한 단서와 정보 때문에 비평사 삼총사들은 자신들이 어쩌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볼라뇨 작가는 감으로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는 아르킴볼디가 그곳에 분명 있었노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준다. 물론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말이다. 어쨌든 볼라뇨가 악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탐구하게 되는 공간인 산타테레사를 찾은 비평가들은 제각각의 시간을 보낸다. 리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미 없어 보이는 산타테레사를 떠나 모리니를 찾아가고, 펠티에는 계속해서 아르킴볼디의 책들을 읽어댄다. 그리고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에스피노사는 거리에서 카펫과 잡동사니를 파는 레베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지의 칠레 출신 아르킴볼디 전문가 오스카르 아말피타노 교수가 다음 이야기의 주자로 등장한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볼라뇨의 메타픽션 <2666>의 첫 번째 이야기는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판타지일 지도 모르겠다. 네 명의 비평가들은 실존이 계속해서 의심되는 프로이센 출신 작가의 환영을 쫓는다. 그들은 미지의 작가에 대한 책사냥꾼들인 동시에, 판타지를 자신들만의 사유로 풀어내는 몽상가들이다. 게다가 절대 선을 넘지 않은 러브 라인까지 끌어 들이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낸다.

 

베노 폰 아르킴볼디의 책을 읽기 위해서 그들은 우선 독일어로 된 문장을 독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가 아닌 독일어라니!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는 영문학 관련 학회가 열리겠지만 지역어일 수밖에 없는 독일어 문학에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쏟는 이들을 쉽게 만나거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문학 자체가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방망이를 깎던 노인의 마음이 그럴까.

 

문학이 가져다 줄 상업적 성공을 예견하는 사람이라면 노벨상 후보로까지 언급되는 아르킴볼디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을 위인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세속의 맘몬에게 포로가 된 문인들에 대한 볼라뇨식 저격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볼라뇨는 슬며시 소설의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질 멕시코 소노라 산타테레사로 비평가들이 아르킴볼디를 추적한다는 핑계를 대고 독자를 유인한다. 다음 장의 화자/이야기꾼은 칠레 출신 철학 교수 오스카르 아말피타노다. 두 번째 인스톨도 거의 다 읽었다. 이제 막 첫 번째 시도를 넘어설 태세다. 나의 <2666> 읽기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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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인생은 하잘 것 없다네




예전에 볼라뇨의 메타픽션 <2666>2권까지 모두 읽었지만 결국 세 번째 권에서 완독에서 실패한 이유를 곰곰이 복기해봤다. 우선 왜 출판사는 각권의 페이지수를 연달아 붙인 걸까. 단권으로 차근차근 공략했다면 난 이 책을 수년 전에 읽었으리라. 갈수록 페이지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며 어느 순간 질려 버린 게 아닐까.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하나는 읽을 때마다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점도 짚어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읽는 대로 족족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아니 책을 읽는 중에도 쓰리라.

 

그렇다 모든 목적지는 멕시코 소노라의 산타테레사로 귀결된다. 그리고 두 번째 권의 주인공은 1권 말미에 등장했던 산타테레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칠레 출신 오스카르 아말피타노 교수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 화자의 시점을 계속해서 바뀌고, 누구의 목소리를 따라 가야 하는지 종종 잊어버릴 때가 많다.

 

우리의 아르킴볼디 삼총사는 1권에서 그가 우울한 성향을 지닌 동성애자일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아마 했었지. 홀로 딸 로사를 키우며 지내는 아말피타노 교수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스케치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학의 세계화 혹은 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볼라뇨의 대장정에서 갓난쟁이 딸을 버리고 자유연애를 찾아 유사애인 임마와 떠난 롤라가 그리는 삶의 궤적을 그리는데 작가는 왜 그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지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롤라가 몬드라곤 정신병원에 갇힌 시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정말 기이했다. 그 와중에 만난 남자들은 하나 같이 롤라를 탐한다. 대학교수 남편과 보장된 평안한 삶의 터전이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롤라는 정신병원 부근에서 만난 운전사 라라사발과의 풋사랑을 뒤로 하고 배가본드의 삶을 계속한다. 그 와중에도 남편 아말피타노에게 편지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채기에 덧나라고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거주와 노동의 자유가 보장된 하나의 연합체 EU는 방랑자 롤라에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 준다. 프랑스 국경을 넘은 롤라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돕는 이타적인 모습에 나는 놀랐다. 빛의 도시 파리에 자리잡고 브누아라는 아들을 낳은 롤라는 결국 딸 로사와 남편 아말피타노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말피타노는 페레스 교수의 가족과 함께 로사를 데리고 짧은 여행길에 나선다. 불타는 석양을 보면서 새빨간 고추가 끓고 있는 가마솥 같다고 했던가. 아말피타노를 밤마다 찾아오는 아버지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산타테레사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라도 등장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멕시코 오지의 지식인 사회는 산타테레사 대학 교수들 사이에 모습에서도 슬쩍 내비친다. 여자들이 계속해서 실종되고 시체로 발견되는 와중에서도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는 외면하고 야회를 즐긴다. 어쩌면 아말피타노도 예외는 아니리라. 디에스테의 기묘한 책을 뒤샹 스타일로 카피해서 빨랫줄에 늘어놓는 장면, 아라우코 인디오의 기묘한 텔레파시에 대한 소개 그리고 멕시코에서 가장 좋은 메스칼(로스 수이시다스)을 소개해 주겠다는 총장 아들 마르코 안토니오 게라의 등장까지 도대체 서로 무슨 연관성을 가졌는지 좀처럼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는 볼라뇨가 나는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 이래서 수년 전에도 완독을 못하고 실패했던가.

 

날건달 같아 보이는 게라가 게이 행세를 하며 시야말로 오염되지 않은 무엇이라고 항변하고, 최후의 공산주의 철학자로 보리스 옐친이 등장하는 엔딩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제 앞으로 세 권이 남았다. 부디 모두 다 읽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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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비평가와 철학 교수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비극의 현장인 멕시코 소노라의 산타테레사로 독자를 인도한다. 뭐가 좀 빠진 것 같지 않나? 그렇다 우리는 사건의 실체를 추적할 저널리스트가 필요하다. 구원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서 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의 이름은 오스카 페이트다. 뉴욕의 흑인들을 위한 잡지사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던 페이트는 자신의 이름(Fate)답게 볼라뇨가 소설의 주 무대로 삼은 산타테레사로 향할 운명이다. 멕시코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권투 경기 중계를 위해, 갑자기 사망한 잡지사 동료를 대신해서 애리조나 투산을 거쳐 산타테레사에 투입된다.

 

조금 장황하게 진행되는 배리 시먼의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 연설까지 읽었던가. 나머지는 이제부터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전에 아마 그 부분까지 읽었던가. 기억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거침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블랙 팬서 단원이자, 감옥에서 다양한 돼지 갈비 레시피를 소개하는 요리 비법을 개발했다고 했던가. 흑인 형제들을 상대로 한 연설과 강연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잇는 남자 배리 시먼의 이야기가 소설 <2666>에서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좀 위험하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읽어라. 잘못하면 또 중간에서 중단하는 수가 있으니.

 

어쨌든 결론에 가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력한 유용성에 대한 강의를 마무리지었던가. 그가 옥중에서 볼테르를 읽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정말 빵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 또한 볼라뇨가 독자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한 블랙 유머의 한 단락이란 말인가. 독자들이여, 감옥에서 유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부디 책을 읽으시라. 물론 숙련된 책쟁이로서 공감하는 바이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몽환적인 그런 드라이브 끝에 페이트는 카운트 피케트의 라이트 헤비급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산타테레사에 도착한다. 그리고 페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카운트 피케트의 경기 취재보다 산타테레사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연쇄살인당하고 있다는 비극적 뉴스를 접하게 되고, 해당 사건을 르포르타주 형식의 기사로 써보겠다고 뉴욕의 부장에게 연락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동시에 예전에 그가 취재했던 브롱크스에 남은 마지막 미치광이 공산주의자에 대한 기사처럼 말이다. 뉴욕의 부장은 오로지 인종적 차원에서 사건이 잡지에 게재할 만한 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뉴욕의 부장에게 거는 전화를 우연히 듣게 된 현지 기자 과달루페 론칼은 페이트에게 자신의 해당 사건의 담당 기자로 배치되었으며, 자신이 그의 취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을 흘린다. 동시에 유력한 용의자가 산타테레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그는 그링고(미국 놈)이라나. 그전에 만난 영화광 찰리 크루스와 대화에 등장하는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이야기에서는 무려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시절이 떠올랐다. 영화 제작비가 없어서 자신의 피를 팔아 전설의 <엘 마리아치>를 만들었다는 썰이 있었지 아마. 한 때 좋아하던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기이하게도 흑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새롭게 깨닫게 됐다. 유대인 KKK 음모론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의 채록이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자 그리고 드디어 2부와의 연결점이 이루어질 시간이 되었다. 카운트 피케트의 권투 시합에서 페이트는 역시나 운명적으로 지상에 현현한 여신 로사 아말피타노와 만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권투 경기에서 누가 이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철저하게 준비한 선수가 그러지 못한 선수를 링 위에서 싱겁게 때려 눕혔노라고 페이트는 기술한다.

 

아름다운 로사에 대한 페이트의 감정이 뒤섞인 매우 폭력적인 밤이 지나간다. 유사 애인 추초 플로레스의 손아귀에서 로사를 구해낸 페이트는 아말피타노 교수의 조력을 받아 로사를 데리고 미국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도중에 과달루페 론칼을 다시 만나 산타테레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연쇄살인 용의자이자 미지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볼라뇨는 미국 출신 흑인 저널리스트를 등장시켜 독자에게 과연 산타테레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문학적 르포르타주를 시도한다. 한 때, 세계화는 인류에게 새로운 복음이자 소비의 신천지를 제공해 줄 거라는 신화가 존재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설계한 세계화는 자본에게는 국경 없는 무한한 자유를 선사했지만, 정작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주역인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과 장시간에 걸친 노동을 강요했다. 특히 멕시코같이 약탈적 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버린 제3세계 시민들의 경우에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NAFTA의 도입으로 활성화된 마킬라도라(보세임가공) 산업이 미래의 신성장 산업이라는 일부 주장들은 공허한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NAFTA의 과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에게 모조리 돌아갔고, 멕시코는 사회적 양극화와 공공 서비스의 붕괴라는 참혹한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했다. 멕시코 농민들이 희생양이었는데, 볼라뇨는 그 중에서도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현재의 지옥 산타테레사에서 연쇄적으로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본격적인 무대에 올린다.

 

디킨즈 스타일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고난의 첫 세 토막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고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단아는 어쩌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까지 철조망으로 둘러친 드높은 진입장벽을 그렇게 세워놓은 게 아닐까 싶다. ‘그래, 뭐 이 정도의 끈기라면 나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이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들의 두 배 정도 되는 4권과 5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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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29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거 읽기 시작하셨군요. 저도 늘 벼르고만 있는데... ㅎㅎ
계속 순항하시길 바랄게요~

레삭매냐 2020-02-29 12:04   좋아요 0 | URL
책이 나오자 마자 팬이라고
사서 1-2권 읽고 나서 3권에서
멈추었더랬답니다.

이번에는 반다시 완독의 영광을~
순항 응원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0-02-29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적지에 도달하길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0-02-29 12:05   좋아요 1 | URL
초반보다 후반이 더 걱정이네요.

갈수록 두터워지니 말이죠 :>
오늘 2권 읽고 나서 바로 3권
돌입합니다.

moonnight 2020-02-2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존경합니다. 저는 나오자마자 샀지만 아직도 쳐다보기만 하고 있습니다만^^; 곧 완독하시겠군요. 훌륭^^

레삭매냐 2020-02-29 13:56   좋아요 0 | URL
수년 전부터 책장에서 저를 노려 보며
도대체 언제 읽을 거지? 라는 시선을
느끼며 죄책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2/5를 넘어
섰네요.

초록별 2020-03-03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지세요...꼭 완독하시길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20-03-04 07:01   좋아요 0 | URL
3권까지 신나게 내달렸는데
두터운 4권부터 지체되는 느낌입니다.

응원에 힘입어 완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0-03-03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완독하시길! 제 가슴이 막 두근거리네요 *^^*

레삭매냐 2020-03-04 07:09   좋아요 0 | URL
좀 지지부진했었는데 응원 버프를
받아 다시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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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당하게 최애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작가 중의 하나가 바로 로베르토 볼라뇨다. 고작 반세기를 살고 지구별을 떠난 볼라뇨는 천재작가가 그렇듯, 살아서보다 사후에 더 평가를 받았다고나 할까.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작품은 바로 11년 전에 나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이었다. 그후 꾸준하게 그의 책들을 읽었고, 사 모았다.

 

얍삽하게도 단편 소설이나 소설집들은 섭렵했지만 정작 대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 <2666>은 아직 읽지 못했다. 전자는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후자는 1권과 2권까지는 읽었지만 3권에서 멈춰서 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하나. 비슷한 궤도로 <3제국>89쪽까지 읽었더라. 샀지만 읽지는 않았다는 죄책감에 어젯밤에 책을 집어 들었고 가뿐하게 전에 읽었던 부분을 돌파했다. 이거 왜 이렇게 재밌지. 역시나 책은 읽을 때가 있는가 보다.

 

전략 게임 <3제국>의 챔피언 게이머 우도 베르거는 애인이자 자기 행복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잉게보르크와 함께 유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즐겨 찾던 스페인의 바닷가 휴양지 코스타 브라바를 찾는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25세 청년 우도는 아름다운 애인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샘을 즐기며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델 마르 호텔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긴다. 다만, 잉게는 우도의 게임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흠이라고나 할까.

 

떠오르는 전략 게임의 스타 우도는 다양한 잡지에 게임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데, 쾰른의 어느 출판사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글쓰기를 가다듬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소설 <3제국>의 내레이터인 동시에 주인공인 셈이다. 휴가지에서 만난 찰리와 한나 커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외톨이 같은 성격의 우도는 그들과 어울려 술집과 디스코텍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게임판에서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걸 더 선호한다.

 

전쟁마니아가 아니라면 전혀 들어 보지 못했을 제프 디트리히나, 파울 하우저, 하인쯔 구데리안 그리고 폰 만슈타인 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기갑군을 이끌었던 맹장들의 이름을 보니 왜 이리 친근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세계에 블리츠크리크로 알려진 세계대전 개전을 알린 폴란드 전역의 백색작전, 바로바로사 작전, 튀니스와 비제르테에서의 소모전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니 나름 마니아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들이 어쩌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3제국>의 매력 포인트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볼라뇨의 끝없는 관심의 끝이 어디였을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도와 찰리 커플의 잔잔한 세계에 스페인 현지의 로보와 코르데로 그리고 화상으로 괴물 같은 얼굴의 페달 보트 업자 케마도가 서사에 참여하면서 서스펜스와 스릴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로보와 코르데로 듀엣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지중해의 태양을 상징한다면, 독일에서 온 두 커플은 그들이 발산하는 태양 이미지를 열심히 소비하는 구매자 같다고나 할까.

 

찰리의 실종으로 소설은 변곡점을 그리면서 하이라이트로 치닫기 시작한다. 우도가 머무는 호텔 델 마르의 여주인 프라우 엘제와의 미묘한 관계 역시 문제다. 어려서부터 품어온 연상녀에 대한 동정에서 비롯된 감정을 청년 우도는 다스리지 못하는 걸까. 화상 때문에 괴물 같은 얼굴의 케마도를 전략 게임 <3제국>의 제자로 삼은 독일 챔피언 우도는 그와의 대결에 몰입한다. 그리고 실제 제3제국의 몰락처럼, 우도의 삶도 침몰하기 시작한다.

 

보드게임 마니아이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박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망상에 가까운 판타지를 볼라뇨는 생산해낸다.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로 무시로 넘나들며, 다양한 사건에 연루된 주인공은 일상을 잊고 오롯하게 태양과 바다를 즐겨야 하는 휴가지에서 악몽의 포로가 되고 만다. 우리는 왜 자신에게 주어진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전 세계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기세로 연전연승하던 나치 독일의 베허마흐트는 영국을 굴복시키지도, 스탈린이 지배하는 적도 모스크바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의 제3제국의 영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전략 게임 <3제국>이 나치 독일의 패망의 길을 따르리라는 것을 우도는 결국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게르만 민족의 영도자를 자처했던 히틀러는 복수에 불타는 무시무시한 적군(赤軍)에게 포위되어 베를린 벙커에서 결국 죽지 않았던가. 추락하는 챔피언 우도의 모습은 그렇게 제3제국의 지도자의 길을 따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2주나 되는 휴가를 즐기는 우도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만 같은 일이니 말이다. 그게 벌써 20년 전 보통의 독일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천재 볼라뇨 덕분에 전쟁작가 스벤 하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던 미군들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은 352사단의 리더 디트리히 크라이스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나의 11번째 볼라뇨 읽기는 예상 외로 수월하게 마쳤다. 이제 내친 김에 메타픽션 <2666>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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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2-25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호기심이 급 땡깁니다. ^^

레삭매냐 2020-02-26 10:45   좋아요 1 | URL
<제3제국> 마치고 나서 드디어
<2666>에 도전 중입니다.

과연 완독에 성공할 지 저 자신
도 궁금하네요.
 
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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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축약본으로 된 알렉상드르 뒤마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었다. 아마 영화로는 <여왕 마고>로 알려졌었지 싶다. 영화도 봤다. 뒤마의 <삼총사><몬테크리스토 백작> 그리고 <여왕 마고>1844년 그리고 6년 뒤에 <검은 튤립>이 발표되었다. 나폴레옹 시대 혼혈 장군으로 무용을 떨쳤던 부친을 둔 뒤마는 통속소설 작가로 그동안 저평가 되어 오다가 2002년 팡테옹으로 묘를 이전하면서 비로소 프랑스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속소설이 어째서?

 

<여왕 마고>에서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는 낭만주의 역사소설의 대가다운 솜씨를 <검은 튤립>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무협지 같은 그런 재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실제 있었던 1672820일 헤이그에서 있었던 드 비트 형제의 끔찍한 살육에서 시작해서 꽃을 사랑하는 홀란트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던 검은 튤립을 얻게 되는 일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인 탐욕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홀란트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오라녜 가문의 빌렘 3(영어식으로는 윌리엄)은 약관의 나이로 순수한 공화정을 주장해오던 코르넬리스와 얀 드 비트 형제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이웃의 강적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을 도모한다. 지난 세기 해양강국으로 군림했던 홀란트의 미래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을 상대로 한 경쟁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르주아 시민들은 경쟁국들을 제압할 수 있어 보이는 강력한 군주정을 원했고 22세의 빌렘 3세는 순수한 공화주의자 드 비트 형제를 제물삼아 권력 강화에 나선다. 드 비트 형제들의 죽음은 왠지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그라쿠스 형제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소설의 1/3 가량을 당시 정국과 상황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진짜 주인공인 코르넬리우스 판 바에를르가 등장한다.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의 코르넬리우스는 의사(첫번째 직업)이자 박사로 신실한 기독교도(신교도)의 모범과도 같은 사나이다. 코르넬리우스의 부친은 돌아가시면서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지. 그가 가진 유산과 지적 재산은 그럴 수 있을 만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작자가 그렇게 우리의 주인공 코르넬리우스를 행복하게 둘 리가 있나 그래.

 

신문연재를 하면서 다져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일일드라마의 영속성을 뒤마는 일찍이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신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신속한 전재와 피와 살이 튀는 그런 유혈극을 필두로 해서 소설 <검은 튤립>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뒤마에게는 이건 뭐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독자에게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지 않나하는 도발적인 유머까지 곁들이며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막장 드라마에 악당이 빠지면 안될 것이다. 코르넬리우스의 이웃에 사는 이작 복스텔(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유대인으로 추정된다)이라는 희대의 악당을 배치해서 주인공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역할을 맡긴다. 이 시샘과 질투의 화신은 당시 홀란트를 열광 속에 몰아넣은 취미 활동이었던 튤립 재배자로,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처럼 코르넬리우스의 중대한 도전을 철저하게 방해한다. 그렇다면 그의 도전이란 무엇이냐? 바로 하를럼의 원예협회장이 제시한 희귀한 검은 튤립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금 10만 플로린이라는 거금까지 걸렸으니, 홀란트의 모든 튤립 재배자들이 도전에 나섰다.

 

, 이제 모든 준비가 완성되었다. 한편,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의 대부 코르넬리스가 남긴 비밀편지를 맡아 두었다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복스텔의 무고로 반역자로 몰려 투옥되고 재판과정을 거쳐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관대한 청년 군주 빌렘 3(혹은 오렌지공)의 사면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미래의 검은 튤립이 될 세 개의 소구근을 간수 흐리푸스의 딸 로자의 도움으로 구하게 된다. 아하, 로자와의 로맨스가 이어지리란 것을 명민한 독자들은 예측했으리라. , 이제 중대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수감한 뢰베슈타인으로 이송된 코르넬리우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뒤마가 구사한 낭만주의 역사소설 <검은 튤립>은 요즘 쓰인 소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서스펜스와 재미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백미다. 전작 <여왕 마고>에서처럼 자신이 특정 인물에 대해 설정한 소설 전개상의 드라이브가 어쩌면 약점으로 지적될 지도 모르겠다. <여왕 마고>에서 카트린느 메디치가 그랬던 것처럼, 이중적 속성을 지닌 청년 오렌지공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초반의 묘사처럼 오렌지공이 권력의 화신이라면, 굳이 코르넬리우스를 사면하고 신원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 영명한 군주는 비교적 공정하고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창조한 게 아닌 타인의 것(검은 튤립)을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악의 화신 복스텔의 집요한 음모와 탈취 계획은 또 어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르넬리우스가 죽건 말건 상관없고 오로지 타인이 누릴 명예와 부를 가로채기에 혈안이 된 한 부르주아의 초상은, 소설 초반 등장해서 드 비트 형제를 도륙한 부르주아 군중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소설 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19세기 대가는 코르넬리우스와 로자 그리고 검은 튤립 사이에 세밀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삼각관계에서도 대단한 심리묘사를 보여준다. 간수의 딸이자 문맹인 처녀 로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드 비트 형제와 코르넬리우스를 돕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코르넬리우스의 아바타처럼 자유인으로 검은 튤립을 창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물론, 자신보다 검은 튤립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코르넬리우스에게 때때로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게 바로 이렇게 쪼는 연애소설의 핵심이 아니던가.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을 적에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가 역시나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팡테옹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의 무덤에 헌화라도 했을 텐데 뭐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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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뒤마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시작해보렵니다.

레삭매냐 2020-02-23 21:51   좋아요 0 | URL
<여왕 마고> 작년에 소개된 <카트린 메디
치의 딸>을 추천해 드리고 싶으나 축약본
이라 어떨실 지 모르겠습니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백작> 말고는
국내에 출간된 책이 거의 없네요.
 
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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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PKD(필립 K. )가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그리고 정확하게 29년 뒤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연출과 키애누 리브스로다쥬우디 해럴슨 그리고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영화는 특이하게도 실사 영화를 애니메이트화한 그런 스타일의 영화였다.

 

소설과 영화를 투트랙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진기한 경험이었다우선 영화를 조금 보고 나서 소설의 진도를 뽑았다그랬더니만 조금은 낯선 소설의 줄거리들이 쏙쏙 뇌리에 와서 박히는 게 아닌가 말이다물론 영화가 소설만한 디테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꼭 말해 주고 싶다.

 

프레드라는 암호명의 언더커버 폴리스는 밥 아크터라는 이름으로 물질 D를 취급하는 약쟁이들 사이에서 암약하면서 일망타진을 도모한다프레드는 스크램블 수트라는 기묘한 복장으로 자신의 상사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는 특이한 설정이다그의 상사 행크 역시 그놈의 스크램블 수트를 입고 있어서 서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다경찰 조직에서는 짐 배리스어니 럭맨 그리고 마약 딜러 도나 호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장비로 합법과 위법을 오가며 약쟁이 일당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맨 처음에 등장해서 물질 D(느린 죽음:slow death)에 중독된 찰스 프렉이 온몸에서 나오는 진딧물 환각에 시달리는 장면도 꽤나 충격적이었다사실 영화로 보면 더 자극적이다어쨌든 프레드는 밥 아크터로 신분을 위장해서 약쟁이들 사이에서 암약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나는 누구이고도대체 여기서 나는 무얼 하는 거지프레드는 멀쩡한 생활인으로 두 명의 딸들과 부인을 가진 정상적인 직장인이었는데 순전히 직업 때문에 약쟁이 행세를 하다가 진짜 약쟁이가 될 판이다약쟁이 친구들이 주는 약을 거부하면 의심을 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건네주는 느린 죽음을 덥썩덥썩 받아먹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상당 부분이 PKD의 실제 체험이라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반네 번째 아내와 이혼한 작가는 실제로 거리의 정키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어쩐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짐 배리스찰스 프렉어니 럭맨 그리고 도나 호슨 같은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리얼하다 싶었는데 아마 그 시절의 동거인들을 스케치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잡입 수사관인 프레드는 약쟁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물질 D에 중독되고 만다이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당연히 문제가 된다소설/영화에서 프레드는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만 지속적인 약물 중독으로 심신이 파괴된 그의 판단은 흐릿할 수밖에 없다결국 자신의 상관인 행크로부터 자신이 원하지 않을 그런 결과를 통보받는 프레드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 너무 디테일하게 풀어 놓는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미 스포일은 충분히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PKD의 또 다른 걸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 버전인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작가가 준비한 반전은 기대 이상이었다아 내가 왜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엉뚱한 코끼리 다리를 더듬고 있지 않았던가. 1970년대에 이미 이런 설정을 구상했다는 점이 놀랍다과연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실질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아니 그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던가.

 

소설과 영화를 교차하면서 읽고 보는 재미는 대단했다영화는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더 디테일에서 풍부했고프레드/밥 아크터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가 치밀했다물론 영화에서 보여준 형상화는 소설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PKD의 다른 소설들을 다시 읽어야 싶다오늘 눈이 엄청나게 내렸지만 대부분 녹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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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7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0-02-1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vd를 가지고 있는데 보지는 않았어요. PKD원작인지도 몰랐네요@_@;;;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소설도 영화도 꼭 봐야겠어요. 불끈!

레삭매냐 2020-02-17 09:0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실사로 찍은 다음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만족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소설을 읽었더니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 번 보시길...
 

 


지금 막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4개 본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각색상) 중에 각본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침 출근길에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나온 씨네21 편집장인가 하는 양반의 예상이 적중했다.

 

사실 아카데미상은 국제영화상이 아닌 미국의 로컬상이다. 게다가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상이라는 점을 편집장은 강조를 하더라.

 

그런 점에서 본상에 해당하는 각본상을 점쳤지 아마.

작품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는 샘 멘데스의 <1917>을 꼽았는데, 전쟁서사와 휴머니즘 그리고 볼거리마저 풍부한 해당 작품이 작품상을 받으리라는 보수적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아카데미나 그래미가 보수적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지 않은가.

아카데미 꼰대들이 외국어로 만들어진 외국 영화에 본상을 주지 않을 거라는 점에 수긍이 갔다. 8-9,000명 정도 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고 하는데, 원체 보수적인 아카데미다 보니 자국산 영화에 표를 주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편집장은 라이벌 쿠엔틴 타란티노가 두 번이나 이미 각본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니 이번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상을 받지 않을까라는 그야말로 점쟁이 뺨치는 예지를 시전해 주시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기생충>의 빛나는 칸느 영화제 대상이라는 후광으로 국내에서도 이미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과 작품성마저 일군 보기 드문 영화라는 점을 편집장을 높게 평가했다. 참고로 나는 아직 <기생충>을 보지 않아서 그저 후문으로만 영화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참에 영화를 봐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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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Oscar goes to...

you kno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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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10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자리, 어느 인터뷰에서든지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잘한다는 의미의 자유자재가 아니라, 정말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봉감독을 보면서 저런 자신감이 있어야 세계에 우뚝 설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봉감독.
저도 아직 영화 안 본 1인이라서... 봐야겠어요, 이젠^^

레삭매냐 2020-02-10 13:10   좋아요 1 | URL
지금 보니 감독상도 받았다고 하네요.
작품상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수하면 결국
이런 성과를 얻게 되는가 봅니다.

페넬로페 2020-02-10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품상까지 받았어요, 와우~~

레삭매냐 2020-02-10 15:01   좋아요 2 | URL
대박이네요.

각본상과 감독상 정도는 예상했는데.

카스피 2020-02-10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기생충 4관왕 했어요.만세 ^3^

레삭매냐 2020-02-10 15:01   좋아요 1 | URL
본상 3개를 쓸었으니 <기생충>
의 해라고 해도 될 듯 하네요.

캐모마일 2020-02-10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기생충은 진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네요.

레삭매냐 2020-02-11 09:10   좋아요 0 | URL
아직도 안 보고 버팅기고 있는
저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