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레드삭스 팬으로 어제 무키 베츠가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뭐 예상하고 있던 바라 크게 놀라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데 레드삭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이던가? 아니다.


시간을 16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2004년 7월 31일,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충격적인 뉴스가 빈타운을 뒤흔들었다.

레드삭스의 주전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컵스로 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그가 누구였던가. 보스턴의 암울했던 시절을 함께 한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던가. 신인왕 그리고 우타자로 2연속 타격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노마를 트레이드하다니!


새로 부임한 냉철한 젊은 단장 테오 엡스타인은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책을 밀어 붙였다. 그것은 바로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것이었다.

그 저주를 깰 수만 있다면 프랜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는 그에게 금기가 아니었다.


노마가 보스턴에서 지낸 9년과 무키 베츠의 6년은 비교 불가다.

사실 노마는 숙명의 라이벌 양키즈의 데릭 지터에 비해 전혀 딸리는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키즈는 데릭 지터에게 10년 2억 달러에 달하는 화려한 금액을 선사했고, 보스턴은 냉정하게 노마에게 5년 6천만 달러라는 초라한 연장 계약을 스프링캠프에서 제시했다. 다시 한 번 야구가 냉정한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해야할 것 같다.



잦은 부상으로 많은 필드 레인지를 커버해야 하는 주전 유격수에게 수비 부담은 크게 다가왔다. 더불어 강점을 가진 타격에서도 빛을 발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결국 노마는 레드삭스와 비슷한 처지의 컵스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그 다음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2004년 가을, 노마 대신 올란도 카브레라를 주전 유격수로 삼은 레드삭스는 양키즈를 상대로 모든 프로리그에서 전무후무한 리버스 스윕을 완성하고, 월드시리즈에서 1946년과 1967년 두 번이나 물먹은 카디널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86년 묵은 저주를 뽀갰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모두가 노마를 잊어 버렸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와 보자. 보스턴 수뇌부는 이미 올해가 끝나면 프리 에이전트가 되는 무키 베츠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지난 스토브 리그에서 선수들의 몸값 폭등을 목격한 베츠는 연장계약 대신 프리 에이전트 시장에 나갈 것을 공언했다. 전언에 따르면 연장계약에서 보스턴은 10년 3억 달러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츠는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마이크 트라웃 수준의 연장 계약을 원했던 모양이다. 12년에 4억 2천만 달러. 바이 바이 무키.


한 선수에게 그런 돈을 주는 건 정말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팀의 총 연봉을 2억 달러라고 간주했을 때, 선수 한 명이 팀 연봉의 20%를 가져 가는게 정상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레드삭스가 올릴 수 있는 최대 승수를 100승으로 잡았을 때, 그러면 베츠에게 기대하는 WAR가 20.0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팀에 마음에 떠난 선수는 그나마 값어치가 있을 때 트레이듷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아도 망한 계약인 데이빗 프라이스의 계약을 털어 내고 사치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보스턴 경영진이 짝수해와 홀수해를 오락가락하는 선수에게 그런 계약을 내줄 리가 없었다. 결국 고육책으로 베츠와 프라이스를 묶어 다저스와 극딜에 나선다. 더 이상 팀에 머무를 생각이 없는 선수와 망한 계약을 상징하는 선수 대신 베츠의 자리를 대신할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건강에 물음표가 달린) 알렉스 버두고와 미네소타와의 삼각 딜로 유망주 한 명을 얻었다.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데이브 돔브로우스키가 보여준 팜을 털어 먹고 돈을 잔뜩 들여 우승한 2018년 우승 모델(게다가 사인 스틸링까지!)보다는 괜찮은 준척 선수들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응집력으로 우승한 2013년의 우승 모델이 2020년 레드삭스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보스턴은 이번 트레이드에서 다저스의 개빈 럭스나 더스틴 메이 둘 중의 하나는 꼭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 점이 좀 아쉽다. 아마 베츠 트레이드만으로는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는데, 프라이스를 덤으로 끼워 넣는 바람에 아쉬운 딜이 된 것 같다. 버두고가 부디 건강해서 베츠의 몫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No one is bigger than the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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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MLB를 뜨겁게 달구었던 배추 트레이드 건은 루키 단장의 탬파베이 스타일의 트레이드 결과를 손에 쥐고 현타한 보스턴 수뇌부의 결정으로 막판에 엎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오죽했으면 보스턴 팬들이 팀의 이름은 보스턴 레이 삭스라며 놀려댔을까.

 

그러니까 팀의 가장 강력한 타자인 배추와 썩어도 준치라는 1억 달러 연봉이 남은 사나이 프라이스에 연봉보조 5천만달러까지 해서 손에 쥔게 메이크업’(선수의 생활방식 혹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알렉스 버두고와 아직 실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 투수 그라테롤이라니! 믿어지는가.

 

그러니 당연히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다저스와 보스턴의 딜을 주축으로 미네스타에 에인절스까지 낀 빅 딜은 난항에 부딪혔다. 딜이 무한정 길어지자 성질이 솟구친 에인절수 구단주 모레노는 결구 나가리를 선언했고 에인절스로 가게 되었던 우완투수 후두러 패기작 피더슨(우투수 상대 홈런 36, 좌투수 상대 홈런 0)과 로스 스트리플링은 그대로 다저스에 주저 앉게 되었다. 프리 에이전트가 1년 남은 피더슨은 팀을 상대로 한 연봉조정 분쟁에서 패하면서 사단을 냈지만... 뭐 그렇게 가는 거지.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배추가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기 전,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끝내 배추는 프리 에이전트 시장에서 자신의 가격을 알아볼 심산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원하는 1042천만 달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설마 이미 3번의 MVP에 빛나는 트라웃과 비교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배추의 실력은 이제 정점에 달하고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그런 선수에게 장기계약은 절대 안된다. 길어야 1-2년이 배추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일 것이다.

 

어쨌든 딜은 성사되었고, 부디 보스턴이 받은 버두고 외에 지터 다운스와 코너 웡이 팜에서 무럭무럭 자라 피디와 캡틴 베리텍의 왕년의 모습을 재현해 주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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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2-0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장동료들과 점심먹으면서 이 트레이드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레삭매냐님의 깔끔한 요약정리 감사합니다^^ 사인훔치기의 가장 큰 피해자 다저스-_-;;;;

레삭매냐 2020-02-07 22:32   좋아요 0 | URL
보스톤 팬으로
이번에는 다저스에게 당한 딜로 보이네요 ㅠㅠ
 
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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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술라>를 읽고 나서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작년엔가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꼭 읽고 싶어서. 어느 순간, 토니 모리슨의 스타일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써둔 문장이다. 달궁 독서모임에서 <술라>를 다시 만났었는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재즈><빌러비드>로 독서모임을 했다면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전자는 너무 비극적인 서사 때문에 그리고 후자는 삼 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쉽지 않았으리라.

 

계속 미루고 있던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를 다 읽고 나서, 완독하지 못하고 있던 <재즈>를 마저 읽었다. 그전에 읽은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영문 서머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5장 분량의 서머리를 읽다 보니 주인공 조 트레이스와 바이올렛/바이올런트 그리고 도카스 맨프레드 등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망각 속에서 소환되었다.

 

신나는 파티장에서 늙은 연인의 총에 맞아 죽은 18세 소녀 도카스 맨프레드의 장례식에 등장한 미용사 바이올렛 트레이스가 벌인 난투극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소설의 초반을 장식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하나의 미스터리로 작용한다. 어떻게 50살 먹은 조가 도카스와 희대의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조는 왜 처벌받지 않았지? 이런 사건들이 줄지어 벌어지는 데도 조와 바이올렛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그런 점에서 보면 남녀간의 결혼은 우리의 상상 저 너머에 고고하게 버틴 그 무엇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2611일이다. 정확하게 역사에 재즈 에이지(jazz age)’란 이름으로 기록된 광란의 20년대를 관통하는 시점이다. 6년 전에 통과된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하는 경제 활황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하는 흥겨운 재즈 리듬에 맞춰 소설은 전개된다. 그런데 조와 도카스의 불륜은 고작 3개월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남녀 관계에 있어 핑퐁게임 같은 비결을 터득한 도카스는 늙은 조와의 관계를 손절하고, 젊고 새로운 애인 액튼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비극의 원인이었을까.

 

토니 모리슨은 현재에서 출발해서 노예제도가 성행하던 19세기 중반까지 바이올렛과 조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예언하는가 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 작가의 소설 속에서 과거라는 시점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 오늘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는 과거를 먼저 구성하고 거기에서부터 현재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바이올렛의 할머니 트루벨은 부잣집 규수 베라 루이스 아씨 밑에서 일하는 노예다. 베라 루이스는 흑인 노예와 불장난 끝에 집안에 커다란 수치를 안겨 준다. 수치의 결과가 바로 골든 그레이였다. 자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끝장내기 위해 길을 나선 골든 그레이는 길에서 만난 야생의 흑인 처녀/임신부의 출산을 돕는다. 그레이가 우여곡절 끝에 만난 헨리 레스토리는 헌터스 헌터라 불리는 유능한 사냥꾼이다. 와일드가 낳은 아이가 바로 도카스에게 총탄을 날린 조 트레이스였다. 뜨내기 생활을 하던 조가 버지니아의 팔레스타인 목화밭에서 만난 배필이 바로 트루벨의 손녀 바이올렛이다.

 

장례식 사건 이후 이웃에게 바이올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바이올렛 삼대에 걸친 서사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절묘한 전개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어울리는 관계의 연속성에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적 도라스의 정체를 알게 된 바이올런트는 이제는 죽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카스 맨프레드의 실체를 찾아 나선다.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도카스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 앨리스가 사는 할렘으로 삶의 공간을 옮긴다.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조나 바이올런트와는 달리, 화려한 도시의 삶에 완벽하게 매료된 도카스. 그런 도카스에게 아버지 뻘인 조와의 관계는 그저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결말 부분에서 도카스의 친구 펠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와 바이올렛에게 안식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나는 여전히 재즈에 대해 잘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몇 개의 재즈 넘버들이 있긴 하지만, 무질서해 보이는 애드립 연주의 참맛을 모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하고 흥청거리는 미국 젊은이들이 몸을 맡긴 분위기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기성세대들은 그런 난잡해 보이는 음악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재즈 에이지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등장한 로큰롤에 대해서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적대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마이너 장르가 되어 소수의 지지자들이나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재즈>를 읽으면서 지난 가을에 멈춘 지점이 바로 조의 어머니 와일드와 골든 그레이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바이올런트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와일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무래도 소화하기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 지점을 꾸역꾸역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고 결국 몇 달 동안 포기하고 있다가 서머리의 도움으로 원점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실을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는 화자가 누구일까러눈 점에 대해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역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와 도카스의 관계가 그랬고, 죽은 소녀를 이해하기 위해 앨리스를 찾아 어린 소녀 생전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수고하는 바이올런트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인 조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언제 삶이 그리고 사랑이 만만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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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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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작고한 대가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의 서사는 정말 암울했다. 켄터키 스위트홈 농장 출신 도망 노예 세서가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단순하게 서사의 고갱이만 놓고 본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토니 모리슨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야기를 다 읽어 보면 마지막에 가서는 수긍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1856, 그러니까 미합중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남북전쟁이 시작되기 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실제로 있었던 마거릿 가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바로 <빌러비드>. 개인적으로 왜 흑인 노예를 소재로 한 문학은 흑인들의 전유물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백인들이 그 서사를 맡는다면 니들이 뭘 아냐는 흑인들의 비아냥거림이 뒤따르지 않을까라는 노파심 때문이 아닐까.

 

토니 모리슨이 야만과 폭력이 지배하던 19세기 중반의 미국이란 낯선 공간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노예제도가 성행하고 있었다. 1793년 엘리 휘트니라는 청년이 발명한 목화 솜에서 씨를 제거하는 조면기의 도입으로 남부 플랜테이션은 활황을 맞이했고, 노예제도는 백인들에게 필요악이 되어 버렸다. 흑인들은 동물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매주일 교회에 나가는 백인 지주들은 흑인 노예들의 노동을 착취했고, 가혹한 매질을 아까지 않았으며 도망친 노예들을 나무에 매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달궁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strange fruits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그런 상황에서 노예주와 자유주의 대립은 결국 무력 충돌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내전 혹은 남북전쟁(1861~65)으로 알려진 전쟁 이후가 아마 소설의 배경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베이비 석스와 세서 그리고 덴버가 사는 124번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씨줄과 날줄을 쉴 새 없이 교차시킨다. 덴버의 아버지 핼리는 켄터키 메이플우드 플랜테이션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어머니 베이비 석스를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나마 주인인 가너 씨의 호의에 의해 그나마 베이비 석스의 해방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다른 농장에 비해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메이플우드 농장에서의 삶은 학교 선생과 그의 조카들이 등장하면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농장에 있던 네 명의 남자 중에서 핼리를 선택했던 세서는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도주를 계획한다. 이 때 등장하는 게 바로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무시무시한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이 도망친 노예들을 연방법인 <도망노예법>을 적용해서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에서 노예들에게 안전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만삭의 세서는 발이 망가진 채, 백인 에이미 덴버의 도움으로 강(코스 히어로의 따르면, 물은 탈출을 의미한다고 한다)을 건너 마침내 미리 와 있던 자녀들과 함께 베이비 석스의 품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해방된 노예 베이비 석스는 신발 고치는 기술을 가지고 들판에서 회중에게 설교하는 그야말로 성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아직 막내 아들 핼리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성대한 음식을 준비해서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떠들썩한 잔치를 준비한다. 물론 그 잔치에 끝에 도사린 비극의 전조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세서가 저지른 비극 뒤에 메이플우드 출신 폴 디 가너가 124번지에 도착한다. 이미 성녀 베이비 석스는 세상을 떠났고, 지난 18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던 폴 디는 세상의 온갖 비극을 경험한 사나이다. 그는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로이 배티의 최후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124번지는 세서의 아기 유령이 출몰하는 귀신 들린 집으로 모든 이들을 환영하던 곳에서 배척을 받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폴 디는 한판 푸닥거리로 아기 유령을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뒤에 빌러비드라는 보다 강력한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면서 서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서의 유일한 자녀로 124번지에 남은 덴버는 빌러비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동시에 토니 모리슨 작가가 준비한 서사의 소용돌이는 정말 매섭고 힘차게 돌아간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서에게 현재를 규정하는 과거는 추악하고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다. 자신은 모든 수모를 견디고 살아남는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그런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보고 싶은 생각도 차마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세서나 폴 디 모두 그렇게 염원하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주체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 없이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망연자실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참혹한 노예제도 아래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가족의 연속성에 대한 설명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흑인 여성들은 백인 주인님의 성적 착취의 대상이고, 재생산을 위한 브리딩 머신(breeding machine)이었다. 남부의 천박하고 지독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흑인 노예들이 낳은 아이들을 그저 증식된 재산의 일부로 간주했다. 이런 가혹한 상황 아래서 마침내 자유를 얻은 세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알베르토 망겔이 책은 질문하기 위해 읽는다라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빌러비드> 만큼 그에 적합한 책이 또 없을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행하는 행동들에 대해 끝없이 물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토니 모리슨은 마거릿 가너 실화의 빈 공간에 자신이 창조해낸 고통스러운 문학적 상상력을 채워 넣었다. 세서의 존재를 잡아먹는 성장한 아기 유령 빌러비드를 몰아내기 위해 모인 30명의 마을 여성들이 벌이는 엑소시즘은 이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희생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서사야말로 소설 <빌러비드>의 지향점이 아니었을까.

 

비록 고통과 눈물의 서사이긴 했지만 결국 모두 읽어내면서 왜 <빌러비드>가 토니 모리슨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작품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 부르리라 <로마서 9:25>

 

As he saith also in Osee, I will call them my people, which were not my people;

and her beloved, which was not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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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2-0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 멤버 한 분이 이 소설의 결론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봤는데,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레삭매냐 2020-02-05 08:53   좋아요 0 | URL
오독까지 포함한 독서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듯, 책의 저술 또한
작가의 몫이 아닐까요...

저도 결말이 좀 그렇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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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빌려다 봐야지 하던 책을 어제 발자크의 <사촌 퐁스>를 빌리러 간 길에 빌렸다. 그리고 원래 보려고 했던 책들에 앞서 보게 됐다. 아무래도 만화라는 생각이 앞선 게 아닐까.

 

박시백 저자가 그려내는 일제강점기 35년 역사의 무게는 내 생각처럼 가볍지 않았다. 요즘에도 토착 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시절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반역과 부역의 역사였다. 대한제국의 녹봉을 먹던 관리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배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꼬맹이가 즐겨 부르는 한국을 빛낸 위인들 100에도 나오는 매국이완용(그 노래에 그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을 필두로 한 부역자들의 명단을 보면서 기가 찼다.

 

페리 제독의 강제 개항 이래, 일본 제국주의는 부국강병을 국가적 슬로건으로 삼아 해외진출을 도모했다. 이웃의 조선/대한제국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첫 번째 목표였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정국을 장악한 정한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의 후예들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제국 사무라이들은 무력을 앞세운 병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동학운동과 국권상실에 반대한 전국 각지의 의병활동에도 불구하고 서양 식민지 모국들을 다년간 연구한 조선은 결국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은 조선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군부의 실권자들을 총독으로 파견해서 무단통치에 나선다. 일제는 가장 먼저 척식 다시 말해 식민지 개척과 수탈을 목적으로 다년간의 토지 조사를 실시했다. 산업발전이 전무하다시피 한 농업국가 조선에서 경제개발의 기본이 되는 것이 토지라는 점을 명확하게 꿰뚫은 정책이었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철도와 도로(신작로)를 내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도시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도시들을 거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는 서구의 박람회 스타일이긴 했지만, 전시를 위해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건물들을 훼손하는 등 부작용도 심했다고 한다.

 

내가 <35> 1편에서 주목한 점 중의 하나는 일제 강점 초기, 일제에 대항하던 지식인 그룹 중에서 일제의 통치가 계속될 거라는 판단을 내리고 항일에서 친일로 돌아선 부역자들의 존재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재산과 생명을 포함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 조국의 독립에 진력했지만, 친일이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 추구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한 이들은 가랑비에 옷 적듯이 변신을 거듭했다. 그런 기득권층의 모습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달라진 게 없다.

 

일제는 이완용과 송병준, 박영효 같은 매국에 앞장 선 인사들에게는 귀족 작위를 내리는 당근을 주고, 격렬하게 투쟁하는 항일지사들에게는 체포와 고문 그리고 사형이라는 채찍을 가하는 방식의 무단통치를 이어나간다. 일제는 군대 조직을 동원한 경찰 조직과 밀정을 활용해서 국내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분쇄하는데 성공했고, 무장투쟁 단체들은 만주와 간도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로 무대를 옮기게 됐다.

 

어제 모두 세 권의 <35> 시리즈를 빌려 왔는데, 어제 바로 1권을 읽고 지금은 2권을 읽는 중이다. 2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해외 독립운동과 3·1혁명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을 통해 1920년대 연해주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알렉산드라 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마침 다음에서 웹툰 <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이어서 몇 편을 읽게 됐다.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그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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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라서 저도 얼른 읽어보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더 잘 알게 될 거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2-07 22:33   좋아요 0 | URL
오늘 2권 끝냈습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연해주 한인들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과정도 알게 되었
네요.
 
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쇼킹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진 필립스 작가의 <우물과 탄광>을 만났다. 어느 여인이 앨버트와 리타리 그리고 버지와 테스, 잭이 사는 무어 씨네 집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도망간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때 충격적이지?


그런데 소설은 누가 그리고 왜라는 영아 유기 사건의 핵심 주제보다 무어 씨네가 살고 있는 앨라배마 카본힐이라는 동네의 고단한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때는 1931년. 대공황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탄광촌 마을 카본힐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갤러웨이 탄광의 감독관으로 가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도 막장에 내려가 탄을 캐는 앨버트의 사지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미래의 진폐증에 대한 기미도 보였던가. 순수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스케치가 반가웠다.


테스와 버지가 누가 아기를 버렸는지를 추적하는 동안 전개되는 카본힐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한 시절에 대한 향수 혹은 추억으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어머니 리타리는 빵 만들기 선수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빨래와 식사 준비, 병조림 만들기 등의 가사노동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어떤 경제학 박사는 세탁기가 현대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킨 최고의 현대 물물로 꼽은 것 같은데 석탄 채광 도중에 찌든 앨버트의 빨래감을 삶고 헹구고 너는 리타리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 소녀 탐정 테스와 버지의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진 필립스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카본힐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체험한다. 아이들은 수 차례에 걸친 결혼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엄마 리타리의 옛 친구기도 한 롤라 아줌마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롤라 아줌마네를 방문한 뒤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벌써부터 아름다운 숙녀 티를 내기 시작한 버지에게 달려드는 숱한 소년들의 구애 과정에서, 교회에서 집에 오는 동안 에스코트하기 위해 아빠 앨버트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1930년대 보수적인 남부 지방의 특색을 엿볼 수도 있었다. 소녀는 훗날, 동생 잭이 트럭에 치는 교통사고로 대도시 버밍행의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알게 된 간호사들을 지켜 보면서 자신도 결국에는 대처에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은 그렇게 성숙해져 가는 법이지.


우물 영아유기 사건이 소설의 하나의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남부 지방의 극심한 인종차별이다. “경건한 사람”의 대표 주자인 앨버트는 탄광 동료인 흑인 조나에게서 자기집 우물 사건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듣게 되면서, 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흑인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행동에 나서진 않았지만(아직 흑인 민권운동이 시작되려면 한 참 더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나를 자신의 동료로 인식하고 저녁 초대를 하는 작은 행동을 시작한다. 물론 언제나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었던 아내 리타리의 반대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앨버트. 아들 잭의 교통사고로 75달러에 달하는 병원비를 갚기 위해, 추가 노동을 하는 장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의 고단한 삶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리타리 역시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그야말로 무릎이 닿도록 가사에 전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물과 탄광>은 버지와 테스 그리고 잭 삼남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시골 마을  카본힐에서 자란 삼남매가 어떻게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게 되는지 진 필립스는 느린 속도로 차분하게 관조한다. 당시의 판단 기준으로 아버지 앨버트는 딸들을 단도리하고, 아들 잭의 교통사고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자녀 교육에 있어 그게 옳은지 아닌 지에 대한 판단은 아마 부모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말에 등장하는 작은 구원의 메시지 그리고 아이들이 지닌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도 좋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내가 <우물과 탄광>을 읽으면서 퍼 올린 메시지는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는 언제나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일 뿐. 진 필립스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한 <우물과 탄광>에서 우물 영아유기 사건에 대한 결말은 좀 싱거웠다. 아무래도 초보 작가가 두 세대에 걸친 방대하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전개 설정에 있어 성급하게 결말을 낸 게 아닐까 싶다. 진 필립스의 이전에 나온 <밤의 동물원>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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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1-31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아요. ^^ 리뷰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0-01-31 08:44   좋아요 0 | URL
책은 아주 재밌답니다. 스릴러와 193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의 조합이라고나
할까요.

동시에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구원에 대한
메시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