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기해년도 이제 꼴랑 이틀 남았다.
그리고 나면 다시 해가 돌아 경자년 쥐띠해가 밝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참으로 빨리 돌아가는 구나 싶다.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문득 궁금해 지기도 한다.
그런 상념에 빠질 시간이 없다.
글쟁이들은 지금 세계의 어디선가에서 열심히 글을 제작 중이고, 그렇게 출판사로 넘어진 책들은 인쇄기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원서를 넘겨 받은 이들도 번역으로 바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대하던 몇몇 책들이 나왔고, 나올 전망이다.
그리고 나온다고 구라를 치고는 나오지 않는 책들도 두 권 꼬집어 볼테다. 출판사들은 반성하라.
눈알이 빠져라 기다리던 책은 바로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시녀 이야기> 속편인 <증언들>이다. 지난 가을에 본토에서 출간된 것을 고려해 본다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출간된 게 아닌가 싶다. 해를 넘기지 않고 올해 나왔더라면 부커상 수상을 덤으로 얹어 마케팅에 열불을 내었을 텐데 고게 좀 아쉽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부커상 수상작이 그닥 선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어찌되었던 부커상 수상이 아니더라도, 30년 만에 나온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증언들>은 꽤나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 그렇다고 해서 책이 당장 나온 것은 아니고 내년 1월 10일 경에 나온다고 한다.
훌루 드라마에서 열연을 보여준 오프레드를 대신한 다른 몇몇의 캐릭터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그후의 이야기. 책이 나온다면 당장 사서 읽어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영국 출신 거장 이언 매큐런의 작품 <차일드 인 타임>이 한겨레출판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것도 <증언들>과 같은 날인 1월 10일이 아마 디데이지. 다만 아쉽게도 이 책은 이언 매큐언이 올해 발표한 신작은 아니라는 것이 맹점이다.
자그마치 30년도 더 된 구작이다. 1987년에 발표된 이언 매큐언의 세 번째 소설이다. 올해 나온 책의 제목은 <Machines Like Me> 로 15번째 작품이 되겠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언 매큐언의 전작 읽기를 하게 되었는데 마땅히 <차일드 인 타임>도 읽을 계획이다. 전작에 흠을 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 루이스는 딸 케이트를 데리고 슈퍼마켓에 갔다가 딸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를 항상 감시해야 하는 법인데. 그후의 그의 삶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스카치 위스키와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는 텔레비전의 주사선. 당연히 그에 실망한 아내 줄리마저 그를 떠나기에 이른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에 해당하니 적당한 선에서 끊도록 하자. 나의 두 번째 타겟이다.
동명의 영화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고 한다. 책의 출간보다 하루 이른 내년 1월 9일 영화가 개봉한다고. 그전에 영화 <칠드런 액트>가 25,256명 그리고 <세실 비치에서>가 30,389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걸 보면 <차일드 인 타임>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영화가 선전해서 원작자인 이언 매큐언의 책도 팔리면 좋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난망한 바람일 뿐.
어쨌든 영화 트레일러를 찾아보았는데 영화는 괜찮아 보인다. 딸을 잃은 후의 충격을 부모인 동화작가 스티븐과 줄리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의 푸른색 색조가 아주 오래전 시네마떼끄에서 자막도 없이 원어로 본 <베티 블루>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밝은 빛의 컬러가 담을 수 없는 그런 슬픔들을 카메라가 포착해 낸 걸까. 영화도 문득 기회가 된다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멀티플렉스 시네마에서 상영할 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냐고 물어 보면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커트 보네거트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뭐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네거트 선생에 대한 나의 들끓는 애정은 여전하다고 고백하고 싶다.
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은 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제5도살장>과 <마더 나이트> 그리고 <타이탄의 미녀> 정도 읽지 않았나. 오래 전이라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의 책들이 죄다 절판이 되었다. 그러다가 아마 판권 문제가 해결되고 그의 책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오는 족족 읽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를 보세요>는 2009년 커트 보네거트 사후 발표된 그의 두 번째 유고모음집이다. 첫 번째는 이미 출간된 <아마겟돈을 회상하며>(2008)다. 1951년 월터 밀러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모두 14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오늘 받았는데 바로 읽기 모드에 돌입할 계획이다. 아니 바로 지금부터 읽어야지 뒷간에 가서.
서문, 밀러 해리스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 <비밀돌이>를 읽었다.
과연 SF의 대가다운 서사가 빛을 발한다. Confido 라는 이름의 비밀돌이를 개발한 엔지니어는 곧 억만장자가 될 거라는 희망을 꿈꾼다. 퇴사를 만류하는 아내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헨리 바워스. 정말 못 말리겠다. 그건 마치 로또에 당첨되어 지긋지긋한 직장을 탈출하겠다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도 비슷한 선택을 하려나.

순식간에 160쪽 네 개의 이야기들을 달렸다. 뭐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으로 다 읽을 수 있을 지도. 오랜 만에 커트 보네거트 선생의 빛나는 블랙유머와 조우한 그런 기분이다. 맞다 내가 이런 선생 특유의 블랙유머 때문에 그의 책들을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었지. 그 어느 때보다 불의가 득세하고, 거짓뉴스가 범람하며 미국 사회의 가치들이 위협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예언처럼 보네거트의 글들을 내게 다가왔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 <카메라를 보세요>는 2020 경자년 기대작이라고 하고는 작년말에 다 읽어 버렸다. 블랙유머의 끝판왕 다운 저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너무 흥미진진했고, 그만큼 재밌었다.
다음에는 원래 올해 나온다고 선전해 놓고선 나오지 않은 두 권의 책에 대해 썰을 풀 것이다.

[1] 워라이트 – 마이클 온다치
작년초 민○○ 인스타에선가 작년말에 나온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 구라였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나올 지도 모르겠구나. 더불어 워싱턴 블랙의 책도 기대 중인데. 아마 올가 토가르축 여사 때문에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는 지도. 그냥 나의 합리적 추정이다.
그렇다면 이 참에 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나.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먼저 만났었는데 불륜을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도 재주지 싶었다. 그것은 아마 전쟁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위치를 알 수 없는 동굴 같은 매력적인 요소들의 총합이 아닐까.
이번에 나온 <워라이트>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귀차니즘 덕분에 찾아 보거나 그럴 생각은... 없다. 귀찮다! 암튼 작년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증언들>에 당당하게 맞서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하니 보증된 수작은 분명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저러나 빨리 내주시길. 그리고 보니 올가 토가르축의 다른 소설도 출간이 안됐구나. 뭐 그렇게 가는 거지.

[2] 까떼드랄에서의 대화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루이스 세풀베다와 볼라뇨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틴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샘의 <까떼드랄에서의 대화>(제목이 맞나?) 역시 구라만 무성하고 결국 나오지 않은 그런 책이다. 에잇!
출간만 되었더라면 내가 만사 제치고 사서 읽었을 텐데. 아 그리고 보니 못 다 읽은 요사샘의 <세상 종말 전쟁> 두 번째 권이 눈을 부라리며 머리맡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구나. 언제 다 나를 읽을 건데 하고 말이다.
물론 <까떼드랄에서의 대화>이 신간은 아니다. 찬란히 빛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도 요사샘의 신간은 그후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 판권 문제 때문인가? <켈트의 드림>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도대체 언제 나온단 말인가. 아마 판매가 저조해서 출판사에서 마냥 번역과 출간을 미루고 있는 건가. 어느 출판사에서 <녹색의 집>도 다시 번역해서 낼 거라는 글을 읽은 것 같은데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이쯤 되면 포기해야 하는 거지. 결국 도서서비스로 빌리긴 했지만 못 다 읽고 눈물을 머금고 반납했다. 판형이니 지질이 너무 구려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라고 난 변명하고 싶다.
<까떼드랄에서의 대화>는 1969년에 발표된 작품이니 작년에 딱 50주년 어쩌구 해서 나왔다면 킬링 포인트로 마케팅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다 아쉽네. 이제는 51주년이라고 광고를 해야 하나. 페루의 악명 높은 독재자 마누엘 오드리아에 대한 썰을 젊은 요사샘이 풀어 준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스페인어 원서가 자그마치 676쪽인데 그럼 번역서는 도대체 몇 페이지나 되는 거지.
어쨌든 둘 다 기대만빵이니 부디 출간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