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숨님이 2020 달궁 첫 독서모임 책으로 골라 주셨다네. 20분이면 읽을 수 있다는 나의 구박을 철회하고 결국 당당하게 테드 창의 책과 함께 당첨!!! 사실 20분은 더 걸렸다. 아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들은 그러리라는 나의 착각 때문이었겠지.

 

사실 오래 전 친구가 선물해준 <향수>를 읽고 나서 뻑이 가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얍삽하게도 책이 얇아 읽기 쉬웠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을 것이다. <비둘기>도 아마 그 때 읽었지 싶다. 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 씨는 올해(1984) 53살의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다. 1931년에 태어난 조나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누이와 함께 시골 마을 아저씨네 농가에서 숨어 살았다.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아니던가. 결혼한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렸다지. 그전에는 프랑스의 불의한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비극으로 얼룩진 프랑스 현대사의 증인이 아닐 수 없다. 파렴치하게도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이송에 협력한 1942716일 벨로드롬 디베르 사건은 아마 오랜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미처 몰랐을 사건일 곳이다.

 

파리는 조나단 노엘에게 안락의 공간이었다. 은행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24호실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민 그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인 일상을 영위한다. 그놈의 비둘기란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어느 금요일 아침 마주친 비둘기와 그 비둘기가 복도에 싸지른 똥 때문에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의 안락한 거주지 대신 호텔 방은 전전하게 되다니 말이다. 당시 프랑화의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55프랑하는 저렴한 숙소를 전전하다 보면 파산하게 될 거라는 조나단의 고민이 얼마나 실존적인가.

 

우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주지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월세가 폭등하는 현상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노숙자들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조나단이 공원에서 마주친 거지 아저씨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다.

 

조나단 노엘은 타인에게 혐오를 주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그의 성격이 나와 비슷해서인지 몰라도 격렬하게 공감이 됐다. 그래서 그는 공원의 벤치에 두고 온 우유팩을 가지러 갔다가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만 자신의 바지가 찢어진 것이다! 오 맙소사. 도대체 왜 신은 그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모든 걸 비둘기 탓으로 돌려야 하는 걸까. 비둘기의 날갯짓 하나가 조나단에게 이런 큰 시련으로 돌아오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바지 수선을 부탁하러 갔다가 3주 후에나 찾으러 오라는 말에 조나단은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아니 그놈의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쥐스킨트 작가는 <비둘기>에서 우리 현대인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없이 경비원으로 은퇴한 다음, 조용하게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서 살고 싶어 했던 조나단 노엘의 시련은 비둘기 한 마리가 던져준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어이없는 사건에서 비롯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조나단의 의식을 잠식해 버리고, 결국에 죽음에 이르는 궤도에 그를 올려놓는다. 아마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게 뭐였지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거리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비둘기 군단을 보고 길을 돌아가던 행인 사람이 불쑥 났다. 조나단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조나단의 체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던가. 빈 틈 하나 없이 견고하게 구축된 조나단의 일상에서 근무복 바지가 찢어진 게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스카치 테이프로 일단 급한 불은 끄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가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자신의 태도였을까.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한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 빡빡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에 대한 내 생각은 이 정도다. 나머지는 동지들의 생각을 들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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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27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세히 보니 엠블렘 5개가 모두 연속선에 있네요^^ 2020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19-12-28 12:40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알라딘 개미지옥에 빠
지게 되었답니다 ㅋㅋㅋ

새해에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또 달려 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입니다. <비둘기> 다시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0-02-07 22:35   좋아요 0 | URL
<깊이에의 강요>도 다시 읽어 보고 싶네요.
 


 

리딩데이트 : 20191223~ 25

 

그래 명절엔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이 최고지.

그래서 읽던 <성서>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서가에 있던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을 집어 들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랄까.

 

조지는 현재, 케니는 미래 그리고 샬럿은 과거라고.

영화 <싱글맨>에 나오는 콜린 퍼스의 연기는 최고였다.

 

파트너 짐의 죽음 이제 홀로 살아야 하는 남자 대학 영문과 교수 조지의 이야기.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를 질주해서 자신이 영문학 강의를 맡은 대학으로 가는 조지.

때는 196212. 세계의 종말을 초래할 뻔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지나간 다음이다.

 

강의 시간에 조지는 헉슬리의 소설을 분석하는데... 그 소설 제목이 뭔지 궁금하다.

다음은 같은 영국 출신 네이버 샬럿의 초대.

순간순간 드러나는 감정에 이렇게 충실할 수가 있을까.

나는 조지가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속물이 아니었던가.

 

자신이 자주 들르는 바에서 만난 케니 포터와의 에피소드.

여튼 그놈의 술이 문제다. 너무 취하게 되면 발생하게 되는 후회들.

이제 노년으로 넘어갈 조지는 너무 에피쿠로스 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걸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중고서점에서 라떼 한 잔 값도 안하는 2,900원에 데려온 책인데 본전 이상의 가치를 하고 있다. 이번으로 세 번째 읽는 <싱글맨>.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다가서게 된다. 그래서 더 좋은 지도.

읽는 데 부담도 없고. 그나저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도 읽어야 하는데.

리뷰는 이 정도로 가볍게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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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
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요하네스 잘츠베델 엮음, 이승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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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눈은 며칠 전에 왔고, 캐럴송에 나오는 것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눈 오면 귀찮고 그렇지 뭘. 이런 걸 보면 어릴 적 낭만 따위는 이제 모두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현실적이다.

 

몇 년 전에 읽은 슈피겔 시리즈 가운데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은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을 읽었다. 엉뚱하게도 기독교를 믿지도 않는 나라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광화문에 등장해서 그것 참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엘(아마 엘로힘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의 전사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을 엮은 독일의 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신앙적인 측면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성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요약하자면 기존의 신화와 전승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라는 주장이다.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서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점유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는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슈퍼스타 아브라함 역시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라는 점을 모르고 그러는 건지 그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2천년 동안이나 유랑하던 민족이 열강의 국경선 긋기로 신생국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야말로 고래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개하는 성서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특히 다윗 왕조의 두 왕들인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는 야훼/여호와에 대한 충성만 맹세한다면 이민족에 대한 학살이나 바람둥이 같이 군주로 적절하지 못한 행실도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목동에서 출발한 다윗은 연주자, 장군, 고위 관료 그리고 기존의 왕이었던 사울의 박해를 받아 광야에서 게릴라 부대 지휘관으로 떠돌다 결국 왕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의 전형이 아니던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전을 세운 왕 중의 왕으로 성서에서는 묘사되지만, 실제로 당대 유대 왕국은 초라했을 거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한다. 실제 유대 왕국의 전성기는 1~2세기 뒤에 찾아 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 번역인 70인역으로 알려진 셉투아진타를 비롯해서 불가타 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언어에서 언어로 번역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역은 또 어떤가. 그래서 위대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 상은 빛나는 빛이 아니라 뿔을 대신 달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되지 않았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담은 공관복음서와 신비로운 성격의 요한복음에 대해서 <성서>는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지금은 유실된 Q복음과 마가복음을 전범으로 삼아 다른 복음서들이 쓰인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는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그리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건 복음서에 담긴 여호와의 역사하심으로 봐야 하는 걸까. 신앙인들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아무래도 버겁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세 사제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을 독점했다. 아니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 성서를 읽고 토론하고 것도 일체 금지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이 권력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인 사랑과 평등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제들이 앞장서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정통 해석에 어긋나는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가.

 

그런 중세의 어둠을 끝장낸 게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믿음보다 선한 행위를 방점을 찍고 천국에 가는 티켓(면죄부)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팔던 중세 교회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성서의 독일어 번역이었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로 비로소 독일 민족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당시 번창하던 인쇄술은 대중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컨텐츠인 성서를 대량으로 인쇄해서 전파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루터는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을까.

 

20세기 들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로 된 성서의 발견과 더불어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에 대해서도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은 빼놓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원천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고고학적 성과는 가장 오래된 성서 필사본에 대한 갈급함을 달래기 위해 탐험에 나선 선구자들을 무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받는 정전 외에도 수많은 외경과 다양한 종류의 문서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마 시대 세계 종교가 된 기독교의 정전 채택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다루지 않아 좀 아쉬웠다.

 

마지막에 다시 성서의 슈퍼맨이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의 시조격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종교 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질시 대신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것이 과연 종교적 관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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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레삭매냐 2019-12-25 14:32   좋아요 1 | URL
방문해 주셔서 축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 부흐하임
발터 뫼어스 지음, 플로리안 비게 그림,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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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래픽 노블로.

 

수년전 발터 뫼어스 작가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만났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다른 소재도 아니고, 책을 가지고 이렇게 멋진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누군가 이 판타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마 그 전 단계인 그래픽 노블 작업으로 차모니아의 린트부름 요새 출신 미텐메츠를 재소환해냈다. 다음 단계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가 죽으면서 남긴 미스터리한 원고가 미텐메츠가 겪게 되는 모든 모험의 시원이다. 미발표 원고는 오름(신비한 창의력)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발터 뫼어스 저자는 모든 것의 시발점을 호기심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으로 향한 것도, 저 바다 너머 무언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전한 것도 그리고 우주로 나간 것도 모두 호기심이라는 강력한 원동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 시 한 수조차 발표하지 않은 린트부름 출신 문청이 영원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을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온갖 모험의 유혹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부흐하임에서 소위 <황금 목록>에 오른 고서들은 우리네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강남 부동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속칭 아파트 부동산 공화국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가치가 부동산이라면,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책>, <12,000가지 규칙>, <악마의 저주>, <위험한 손짓 안내서> 같이 휘귀한 책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책들이다. 문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지식인의 도시에서는 역시 고서(古書)가 그리고 투기공화국에서는 한 조각의 땅이 더 소중한 법이라는 뫼어스 식 비유가 아닐까.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다. 한편, 잔혹한 책사냥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서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흐하임 아래 지하묘지로 책사냥을 떠난다.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고서들의 가치는 자연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은 자고로 단가가 치솟기 마련이 아니던가. 황금 목록에 오른 전설적이 책들을 찾기 위한 경쟁은 죽음도 불사할 판이다. 역사상 최고의 책사냥꾼으로 알려진 콜로포니우스 레겐샤임의 <부흐하임 지하묘지>란 책을 얻게 된 미텐메츠의 운명은 결국 지하묘지행이다.

 

물론 서사구조에 빠질 수 없는 악당도 빠질 수가 없다. 실제로 부흐하임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악당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서적상)와 에이전트 클라우디오 하르펜슈톡(멧돼지)의 술수에 빠져 미텐메츠는 독살 위기에 내몰렸다가 결국 지하묘지로 추락하게 된다. 제천대성 손오공 일행이 서역에 가는 동안 81난을 겪었던 것처럼 미래의 영웅에게 고난이 도래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영웅서사의 전범을 따른단 말인가.

 

지하묘지의 바닥에 해당하는 운하임으로 추락한 미텐메츠는 각종 괴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사협집행인으로 알려진 호그노의 저녁거리가 될 뻔 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눈박이 부흐링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 위대한 그래픽 노블의 첫 번째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는 차모니아 문학 역사상 최고라는 익명의 저자가 남긴 원고를 대자에게 남긴다. 영웅서사의 발단이다. 독자는 이 미션을 받은 미텐메츠에게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들이 들이닥칠 거라는 걸 직감한다. 아마 단첼로트 대부는 미지의 원고를 연구해서 린트부름의 뛰어난 시인이 되라는 유언이 남겼지. 그렇다, 모두가 원하는 오름을 직접 경험한 선수는 비로소 지상 최강의 시인이 되어 명예와 부를 손에 거머쥘 것이라는 그런 놀라운 예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능력과 기회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냐, 절대 아니다. 숱한 난관과 장애물들이 미텐메츠 앞에서 대기 중이다. 그건 두 번째 이야기인 <지하묘지>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평범하지만, 수년 동안 단첼로트 대부 아래서 문학적 소양을 키운 훌륭한 문청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 뛰어난 스승 밑에서 수년 동안 밥 짓고 물 긷고 빨래하는 중노동을 거쳐 인내의 진수에 도달하게 되면 비로소 강호에 나갈 준비가 된 것이리라. 그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자만이 진정한 고수로 인정받게 된다는 전통 서사를 발터 뫼어스는 판타지 소설에도 그대로 인용한다. 비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게 무슨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인가. 스토리텔링을 가진 사람이 성공해야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 마련이다.

 

이런 두터운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기상천외하지만, 책쟁이들이라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장치들로 발터 뫼어스는 우리를 유혹한다. 파닥파닥, 난 그의 밑밥에 단디 걸려 버렸네 증맬루.

 

이제 1부가 끝났을 뿐이다. 미텐메츠의 모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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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12-23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두기만 하고 안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꺼내어 읽어야 할까봐요.
어쩐지... 안 읽긴 했는데, 안 팔고 싶더라니.

레삭매냐 2019-12-23 15:00   좋아요 0 | URL
아마 가지고 계신 책은 소설인 것으로
추정되네요.

이번에 제가 만난 책은 그래픽노블이
랍니다. 금세 휘리릭 읽을 수가 있었죠.

다 읽고 나니 다시 소설을 찾아 읽어
보고 싶더라구요. 안 파시길 잘했다
뭐 그렇습니다.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에 대한 두 건의 탄핵소추안 모두 하원에서 과반수 표결로 가결되었다.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대통령 탄핵재판이 치러진 것은 모두 세 번이라고 한다.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에 이어 트럼프가 세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21년 전의 경우와는 반대로 상원을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이 자당 대통령을 지원사격할 게 뻔하기 때문에 최종 탄핵에 이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주도한 탄핵이 오히려 트럼프의 재선 가도를 도와주는 꼴이라는 분석기사를 보았는데,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나라가 아닌 미국의 정치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닉슨도 탄핵의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사임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의 후임자들인 클린턴과 트럼프는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지금처럼 반목하고 불화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2019년 미국의 모습은 품의와 격조를 지키던 선배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당장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부터 거리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증오의 정치를 부추기니 말이다. 하긴 그런 현상이 어디 천조국만의 일이던가.

 

난장판이 된 우리 국회 모습을 보라. 예전 같으면 떼법 타령을 하면서 당장 공권력을 동원해서 폭력 시위를 벌인 이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할 어느 정당이 앞장서서 불법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자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사태를 좌시하는 언론도 한 패다. 허구한 날 법과 원칙 타령을 하더니만, 국회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옳은 소리긴 하지만 제 논에 물대기식 주장에 어안이 벙벙하다. 같은 논리로 다른 시민도 국회의 주인들이니 부디 그들에게도 국회 출입을 허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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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19 15: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원에서 최종 탄핵되지는 않겠지만 트럼프가 좀 움찔할것 같기는 해요. 하긴 뭐... 워낙 제멋대로여서...ㅠㅠ

난장판 국회의 마이크는 제1 야당 대표가 애용하시더라구요. 그 당은 반공 다음으로 준법이 제일 중요한 가치같던데 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

레삭매냐 2019-12-19 21: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기고만장해서 또다른 4년을 이어갈
생각을 하면 참 답이 없어 보이네요.

하긴 부시 시절도 겪었는 걸요.

법치주의 운운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예외라는 생각하는 쉬르레알리스틱한
현실이 괴랄해 보입니다.

psyche 2019-12-20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상원에서는 통과 안될텐데요. ㅜㅜ
트럼프가 날리는 뻔뻔한 트윗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트럼프를 예수에 비교한 공화당 의원, 공화당에서는 이탈자가 한명도 없었다는 것 정말 화나고 답답하네요.

레삭매냐 2019-12-20 10:50   좋아요 2 | URL
뇌수술 받고 의회에서 메디케어 표결
시 ˝나이˝라고 외치던 존 매케인 의원
이 생각납니다.

그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
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공화당은 어느나라 자유당
하고 유사하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