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많이 들어본 작가인 리안 모리아티의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을 읽었다. 난 처음에 리안 모리아티가 남자인 줄 알았다. 책의 표지를 펼치고 나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소설은 잘나가는 회사 중역 마샤가 임사 체험을 하게 되는 극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한 구급대원 야오. 마샤의 심장이 멎었다.

 

그리고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오스트레일리아 자리봉이라는 곳에 자리 잡은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에 아홉 명의 완벽한타인들이 모이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한물간 로맨스 소설가 프랜시스 웰티는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자신의 새로운 소설에 대한 혹평을 보고 그만 충격을 먹는다. 아직도 로맨스 소설이 소비되는구나 하는 순간도 잠깐, 각각의 사연을 가진 나머지 8명의 사람들이 평온의 집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다음 주자들은 제시카와 벤 부부다. 이 젊은 부부들은 남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무려 람보르기니를 타고 나타났다. 남걱정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프랜시스는 그들이 마약거래상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데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챈들러 부부의 집에 도둑이 들었고 그것을 위로하기 위해 제시카의 어머니가 보낸 복권에 당첨되면서 그들은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어마어마한 행운이 평범한 삶을 살던 제시카와 벤에게 그들이 원하지 않는 그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평온의 집을 찾은 이유는 부부상담이다.

 

어떤 이들은 살을 빼기 위해(중년의 다이어트는 왠지 필수라는 압박감을 소설은 전달한다), 삶의 위기에 처한 이들은 치유를 위해, 인터넷 연애사기를 당한 소설가는 그저 안식이 필요해서, 한 때 오지 리그 풋볼선수로 뛰던 왕년의 스포츠 스타는 무언가 삶의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이유로 건강휴양지를 찾는다.

 

문제는 평온의 집이 일반적인 유형의 건강휴양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놀라지 마시라. 소설 초반 심장이 멎어 죽은 것으로 보인 마샤가 무려 원장이다.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으로 볼 수 있는 마샤는 자신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젊은이 야오와 한때 자신의 비서였던 딜라일라를 고용해서 새로운 방식 치유를 시도한다.

 

물론 초반에 비싼 비용을 들여 건강휴양지를 찾은 이들은 지나친 통제에 불만을 표한다.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는 물론이고 일체의 건강에 해로운 알코올과 간식들은 사전에 차단된다. 그리고 명상과 요가, 마사지 같이 딱 들어도 건강에 좋겠구나 싶은 그런 프로그램들이 제시된다. 압권은 4일 간의 침묵과 매일 이루어지는 혈액검사였다. 아니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일체의 대화를 중단하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상황인가. 하지만 9명의 타인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자랑하는 마샤의 강권과 하루가 다르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 독재자 같은 마샤의 수중에 놓인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이들은 제각각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누구는 친구들과 수다라는 방식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알코올에 의존하기도 한다. 특히 흥미로운 가족 문제를 제시하는 마르코니 부부를 살펴 보자.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내면에는 3년 전 죽은 아들 잭에 대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마샤가 고안해낸 해괴하기 짝인 없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은 그동안 꽁꽁 숨겨온 내면의 고통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완벽한 타인들과 그것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마샤의 준비한 프로그램이 일방적으로 나쁘다는 비판이 옳은 것일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작가는 강조한다. 영원한 것은 없더라. 고통도 행복도 즐거움도, 그 어떤 감정도 영원한 건 없겠지.

 

소설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서로 모르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아 가고 또 부지불식간에 닥친 위험을 돌파해 가면서, 자신들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극복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빠른 구성은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나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그러니 초반에 지지부진했던 나의 독서도 어젯밤에 새벽까지 그야말로 내쳐 달렸다. 로맨스 한 스푼, 비극적인 스토리 한 큰 술, 싸이코패스급의 스릴러 한 컵 그리고 밀실트릭 한 움큼으로 적당히 버무린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나에게 참 재미진 독서의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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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도
소날리 데라냐갈라 지음, 김소연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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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더라. 이번에 <타임>에서 발표한 지난 십년 동안 논픽션 베스트 10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작품이다. 원제는 <Wave>. 때마침 지난 9월초에 사둔 책이라 바로 읽을 수가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5년 전에 읽을 수도 있었더라.

 

그야말로 꿈같이 행복한 일상을 살던 소날리 데라냐갈라의 삶에 비극이 시작된 건 20041226일 아침이었다. 이른바 박싱데이에 스리랑카 남동부의 얄라 국립공원을 덮친 지진해일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경제학 박사 소날리의 그야말로 꿈결 같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 다시 한 번 가공할 만한 자연의 위력 앞에 선 인간의 부질없는 모습에 그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발생한 지진해일이 소날리의 사랑하는 남편 스티브 리센버그와 맏아들 비크람 그리고 둘째 아들 말리를 모두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마저도.

 

지진해일이 그들이 묵던 호텔을 덮었을 때, 소날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할 틈이 없었다. 예상했던 그대로, 나중에 수습이 되고 시간이 지난 뒤 소날리는 자신이 어쩌면 그럴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책하게 된다. 자신도 사랑하던 가족과 함께 죽었어야 했노라고 담담하게 적는다. 파도에 휩쓸려 가기 직전에 나뭇가지를 잡는데 성공해서 생존했지만, 삶은 그녀에게 지옥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병원으로 후송된 소날리는 엄청난 재해 앞에서 가족들이 무사할 거라는 기대를 접는다. 수도 콜롬보에 있는 이모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기부정 그리고 현실도피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그녀의 일상 중의 하나는 인터넷으로 자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마당에 그녀에게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주변의 걱정과 우려도 그녀는 원하지 않았다. 결국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일까.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할까봐 친척들과 친구들은 교대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담담한 어조의 글을 읽는 게 너무 힘들 지경이었다.

 

논픽션 <천 개의 파도>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소날리 데라냐갈라의 애가다. 그녀의 비극적인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는 그런 어리석은 설정은 하지 않으리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단장이 끊어지는 그런 고통을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추억이 묻은 모든 곳들이, 물건들이 그리고 추억들이 소날리에게는 고통의 근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날리는 점차 생활반경을 넓히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끝내 외면했던 얄라도 방문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생활 근거지였던 런던 집도 방문한다. 그 모든 과정들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비크와 말리의 이웃 친구들을 볼 때마다, 소날리의 가슴은 그야말로 찢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다면 저 나이였을 텐데 하는 후회가 찾아 들지 않는 순간들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새를 유난히 좋아했던 비크를 추억하게 해주는 갖가지 새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스리랑카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과 황금항문나이팅게일이며 흰배참수리 같은 동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소날리 데라냐갈라가 경제학 박사가 아니라 소설가라고 해도 믿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후반에는 런던과 스리랑카를 오가며 살았던 젊은 날의 추억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일견 무모해 보이는 스티브의 청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 낯선 영국 땅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손녀딸에게 색소 결핍증에 걸린 원숭이를 만나지 말라는 당부에서는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동부 런던의 중산층 출신 스티브는 돌아가신 장모님이 만들어 주신 새우 카레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어떤 기억들은 실제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오래 가는 법이지. 이런 추억들을 뒤로 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천 개의 파도>를 보다 값지게 만드는 것은 소날리의 진정성이다. 절망감에 휩싸여 혼자 싶어 하는 감정이나, 처음 만난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그렇다. 아마 사실 대로 말했다가는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동정 그리고 연민들까지도 보듬어야 할지 몰랐으니까. 모두에게는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현실과 자신을 부정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그런 감정까지도 소날리는 그대로 책에 담아냈다. 무엇 때문에 <천 개의 파도>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다양한 변주들로 이루어진 책, <천 개의 파도>는 나에게 올해의 발견으로 꼽을만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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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22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

레삭매냐 2019-11-29 14:05   좋아요 0 | URL
요즘 타임에서 선정한 지난 십년의 소설
과 논픽션을 골라 읽고 있는데 역시나
명불허전입니다.
 
모범소설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박수현 옮김 / 아르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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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연히 알게 된 에스파냐 출신 우나무노의 작가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에스파냐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의 전례를 따른다는 듯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이야기들이 주르르 따라 붙는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는 세르반테스의 내면에서 유익한 모범을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주목하자언젠가 미래에 자신의 글을 읽게 될 이들에게 자신의 글이 그 어느 누구도 기만하지 않을 거라고 세르반테스는 보증한다그렇다면 자신의 문학적 시조 세르반테스를 신봉하는 지식인 우나무노 역시 에스파냐식 리얼리즘을 따르겠다는 선언인가.

 

또 하나 우나무노는 자신의 소설에서 삶과 현실에 대한 모범을 제시하겠다고도 한다지극히 대중소설의 그것을 따르는 방식이 아니었을까첫 번째 소설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에 나오는 절세미인이자 레나다 지방의 공식 미인(소설에는 항상 이런 미인이 등장하기 마련이지훌리아 야녜스의 아버지 돈 빅토리노는 그야말로 장사꾼의 전형이다그가 거래하고자 하는 품목은 다른 물건이 아닌 바로 자신의 공식 미인’ 딸이다그리고 훌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다른 남자에게 팔아먹으려고 벼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아름다움이 그녀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서두의 예언이 불길하게 다가온다.

 

애인과의 야반도주는 무산되고갑자기 등장한 아메리카에서 온 벼락부자 홀아비 알레한드로 고메스가 등장하면서 예의 통속 드라마는 질주하기 시작한다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는 남자알레한드로에게 훌리아는 썩 어울리는 전리품이었다그리고 한 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에스파냐 최고의 미녀 훌리아는 점점 푸른 수염’ 전설의 주인공 같은 알레한드로에 매인 노예로 전락한다훌리아는 오로지 알레한드로가 자신을 사랑하는가 아닌가에만 관심을 집중시킨다훌리아를 전심으로 유혹하는 남자로 등장하는 보르다비에야 백작의 역할은 알레한드로에게 자신이 가진 영롱한 보석의 가치만 높여줄 뿐이다나라도 이런 식의 완전한 남자와 사는 삶이라면 지옥이 따로 없지 않을까 싶다결국 스토리는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제목을 보자마자 솔로몬 왕의 판결을 연상케 하는 <두 엄마>에는 과부 라켈과 불쌍한 남자 돈 후안이 캐스팅되었다돈 후안은 어쩌다 이런 요부에게 빠지게 되었던가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자식을 생산할 수 없었던 라켈은 돈 후안에게 베르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한다이 제안을 듣는 순간과부의 꼭두각시가 된 남자는 지옥 불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베르타의 롤모델은 바로 라켈이었다베르타는 이런 추잡한 시나리오를 알면서도 자신이 충분히 과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제안을 수락한다그녀보다 한 수 위였던 라켈은 돈 후안의 모든 재산을 자기 것으로 이전하고돈 후안을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그런 재산관리인으로 만들어 버렸다항상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그런 실수가 아니었을까결국 라켈의 계획대로 베르타는 아이를 임신했고딸을 낳았다라켈은 돈 후안과 베르타의 딸에게 자신의 이름인 라켈/켈리나를 명명한다이거 진짜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로구나결국 두 여자에서 영혼이 파탄난 돈 후안을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마녀 같이 돈 후안을 조종해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라켈은 자신과 같이 과부 신세가 된 베르타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게 된다.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룸브리아 후작>은 앞선 두 개의 이야기를 능가하는 그런 막장 스타일의 소설이다룸브리아 후작 돈 로드리고에게는 가문을 이을 아들은 없었고 카롤리나와 루이사 두 딸만 있었다둘째딸 루이사가 트리스탄 이바녜스와 결혼하게 되자언니 카롤리나는 수도원으로 갔다는 소문과 함께 결혼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데릴사위 트리스탄은 그저 미래의 룸브리아 후작의 생산을 위해 들인 망나니범죄자 혹은 하인 같은 존재일 따름이었다.

 

어쨌든 루이사는 아버지 돈 로드리고의 바람대로 아들 로드리긴을 낳았다돈 로드리고는 손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루이사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르게 된다그러자 지난 4년 동안 행적을 알 수 없었던 카롤리나가 느닷없이 등장해서 홀아비 트리스탄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그러니까 카롤리나는 로드리긴에게 이모이자 새엄마였던 것이다뭐 이래도 되나 그런 건 묻지 말자아니 이게 서문에서 우나무노 작가가 밝힌 소설에서 모름지기 다뤄야 하는 삶과 현실의 모범이란 말인가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도덕률이야 어떻든 그리스어 교수님이 구사하는 통속적인 스토리라인은 정말 흥미진진했다그리고 룸브리아 후작 가문의 숨겨진 비밀들이 잇달아 밝혀지는데...

 

철학자에 교수 출신 소설가가 겨냥하는 삶의 진실들은 사실 썩 아름답지는 않다하긴 우리네 삶이 항상 그렇게 아름다움만으로 가득했던가그것들은 단지 우리의 희망일 따름이었을 뿐이다내가 돈 후안이었다면내가 트리스탄이었다면 혹은 완전한 남자’ 알레한드로였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의 선택은 하나 같이 부도덕하고 자기파멸적이었다아니 어느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쩔 수 없었을까삶이 정상궤도에서 이탈했을 때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과연 없단 말인가아니 처음부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던 게 아닐까기로에서 그들이 하는 선택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 같이 패착으로 귀결되는 걸까어쩌면 우리네 삶은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움직이게 설계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순식간에 읽고 나서 휘발된 기억을 되살리려니 리뷰 쓰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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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땅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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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 맥스웰 쿳시의 책을 오늘 새벽에 다 읽은 <어둠의 땅>까지 해서 모두 12권이나 읽었는데도 아직 더 읽을 책이 4권이나 더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다작가라는 거겠지. 지난 십년 동안 12권의 쿳시 책을 읽었는데 올해만 6권을 읽었다. 이언 매큐언처럼 전작읽기에 도전 중이다. 그리고 보니 로맹 가리도 있었네.

 

1974년 소설가서로 존 쿳시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데뷔작 <어둠의 땅>으로. 지난봄에 읽다가 접었었는데, 지난 주말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다 말고 책장 정리 중에 발견해서 우선 이 책부터 읽자는 마음이 아마 발동하지 않았나 싶다.

 

미니멀리즘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쿳시의 책처럼 200쪽 남짓한 분량이라 주말에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어둠의 땅>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유진 돈이라는 <베트남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베트남전 심리전에 투입된 미국인 유진 돈이 서서히 정신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 <베트남 프로젝트>이고, 후자는 1760년 남아프리카 오렌지 강 탐험에 나선 <야코부스 쿳시의 이야기>.

 

유진 돈은 신화서술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이 발표되던 당시 진행 중이던 베트남전에 대한 심리전에 투입된 정부 요원이다. 런던에 살던 시절,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쿳시는 1960년대 후반 미국 텍사스로 이주한 뒤, 소설을 위한 자료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디엔비엔푸에서 패퇴한 프랑스를 대신해서,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베트남 민중과의 전쟁에 막대한 전비와 물자 그리고 인력을 투입했다. 그 결과 한 때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했던 미국은 몰락하고 말았다. B-52 전략폭격기에서 떨어뜨리는 네이팜탄으로 베트남 민중을 굴복시킬 수 없었던 미국은 좀 더 비용이 덜 들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심리전을 구사하지 않았을까.

 

압도적인 무력을 제압하는 것은 하책이다. 대신 고도로 계산된 심리전을 통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 오는 것이야말로 고대 중국의 손자가 자신의 병법에서 일찍이 설파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베트남에서 진행되는 현실을 직시한 유진 돈의 정신세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내 매럴린이 불륜을 피우는 걸 기대하며, 자신의 아내가 여전히 타인에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유진. 직장 상사 쿳시와의 불화도 그의 정신세계가 피폐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등장한다.

 

유진 돈이 베트남에 전력을 다했던 것은 불필요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싸움과 반란이 끝나면, 우리(?)는 미국과 화해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망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 적의 본질을 연구하던 유진은 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건가. 베트남 민중이 원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걸 미국은 과연 몰랐던 걸까. 결국 망상에 사로잡힌 유진은 아들 마틴을 볼모로 데리고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야코부스 쿳시의 나마콰 원정기는 좀 더 흥미롭다. 부유한 농장주 야코부스 쿳시는 케이프 총독의 허가를 받아 어느 백인도 탐험에 나서지 않았던 남아프리카 내륙으로 코끼리 사냥을 원한 원정대를 조직한다. 6명의 호텐토트 원주민들을 하인으로 삼아 야심찬 원정대를 발족시킨 야코부스 쿳시는 초반부터 호텐토트 원주민들의 내분으로 골치를 썩어야했다. , 그전에 초원의 부시먼을 상대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서구인의 시선으로 본 제국주의 아이디어가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백인들이 건설한 농장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계의 위협을 받은 부시먼들이 농장의 경계를 침범하면서 촉발된 갈등은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부시먼들은 전형적인 게릴라 전술과 독화살로 백인들의 가축을 공격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백인들은 말과 총으로 대변되는 기동력과 압도적인 화력으로 부시먼들에게 대응한다.

 

다시 나마콰 원정대 이야기로 돌아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간난신고 끝에 나마콰 부족을 만난 야코부스 일행은 소를 탄 추장에게 자신들은 단지 코끼리 사냥과 (상대적으로 백인들에게 유리한) 물물교환을 원할 뿐이라며 나마콰 족들을 현혹시킨다. 추장의 허락 아래, 나마콰 마을에 체류하게 된 야코부스 쿳시가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그동안 그의 명령에 복속해 오던 호텐토트 하인들이 반항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의 장난에서 비롯된 오해로 시작된 폭력 사태로 그야말로 흠씬 두들겨 맞은 야코부스 쿳시는 유일하게 자신을 따르는 하인 얀 클라버와 함께 원시적인 장비를 갖추고 500KM에 달하는 귀환길에 오른다. 도중에 클라버를 잃고 홀로 자신의 농장에 돌아오는데 성공한 야코부스 쿳시는 1년 뒤, 보복을 위한 원정대를 조직해서 유혈이 낭자한 학살극을 감행한다.

 

소설가로서 첫 출발을 시작한 쿳시가 왜 서로 다른 시간대의 상이한 이야기 둘을 가지고 <어둠의 땅>을 기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베트남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당시 현재진행형이었던 불의한 베트남전에 대한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쿳시는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반전 시위에 나섰던 경력으로 영주권 신청이 각하되어 고국 남아프리카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면 그런 실패가 훗날 작가로서 성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작가라면 적어도 그 정도의 스토리는 갖추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18세기 서구 열강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제국주의적 식민지 침탈이 본격화되었을 시기, 야코부스 쿠시가 단행한 그레이트 나마콰 원정의 목적은 상아 획득이었다. 원주민들에게는 담배와 브랜디 혹은 다른 허접쓰레기를 제공하고, 그들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 호텐토트 원주민들의 노동력과 그들의 자원을 착취했다. 초원에서 평화롭게 살던 부시먼과 나마콰족의 세계에 침투해서, 아이들의 장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컷 두들겨 맞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학살극을 자행하는 모습에서 과연 그것이 베트남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 지 작가는 묻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폭력적 방식의 침탈의 역사가 비극적으로 반복된다는 걸 쿳시는 자신의 데뷔작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렇게 나의 쿳시와의 열두 번 째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청년 시절>,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동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디어폴, 디어존>만 읽으면 나의 쿳시 전작읽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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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18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쿳시 12권....아!!! 할말을 잃고 갑니다....ㅋ

레삭매냐 2019-11-18 13:18   좋아요 1 | URL
올해 안으로 모두 읽었으면 싶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네요.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있어서 말이죠.

cyrus 2019-11-18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 중순에 토니 모리슨 전작 읽기를 도전했어요. 그런데 지난달에는 레삭매냐님 서재에 한트케 전작 읽기를 도전해보겠다는 식으로 제가 댓글을 남긴 것 같은데 데자뷰가 될 가능성이 99%네요... ㅎㅎㅎㅎ 일단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은 읽었고요, 이제 <술라>를 읽을 차례입니다. ^^

레삭매냐 2019-11-19 11:06   좋아요 0 | URL
오호라 그러시군요.

전 <술라>로 가장 먼저 토니 모리슨
작가를 만나지 않았나 싶네요.

<재즈>는 읽다 잠시 접어 두었는데
장난 아니더군요...

<빌러비드>는 리커버 버전으로 샀
는데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네요.

목나무 2019-11-19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레삭매냐님 엄지척!!! 입니다.
우찌 이렇게 끈기있게 읽어내시는지.,
올 한해 마무리로 존 쿳시 전작 기대해볼게요. ^^

레삭매냐 2019-11-19 17:13   좋아요 0 | URL
문제는 쿳시의 책 두 권이 모두
절판 상태라는 점이랍니다.

게다가 도서관에도 비치가 되어
있지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올해 안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coolcat329 2019-11-19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이 필요 없습니다. 레삭님의 열정독서는 늘 즐겁게 지켜보고 있네요.

레삭매냐 2019-11-19 17:5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쌈을요... 마구잡이 근본 없는 독서의 신봉자인 걸요 ㅋㅋㅋ
 
안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1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조민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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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 작가의 신간 소설을 통해 스페인 출신 지성인 작가라는 타이틀의 미겔 데 우나무노를 알게 됐다. 바로 중고서점에 달려가 그의 책을 샀다. 1914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안개>. 아 왜 진작 나는 이런 작가를 알지 못했을까. 그리스어 교수, 소설가, 시인 그리고 철학자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조금 겁을 집어 먹었다. 책을 펴보니 전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극히 대중적이 소설이었다. 게다가 막장적인 요소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내 입맛에 딱 들어맞는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참고로 그의 다른 작품들인 <모범소설><사랑과 교육>도 사들였다. 일단 어느 작가에 빠지게 되면 컬렉션부터 하는 나의 습성이 발동된 것이다.

 

왠지 모르게 에라스무스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우나무노 작가는 처음부터 주인공 아우구스토 페레스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선빵을 날린다. 그렇다, 주인공은 죽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죽었을까?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에 법대 출신의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 아우구스토는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피아노 선생 에우헤니아 도밍고 데 아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그렇게 가는 거지.

 

문제는 에우헤니아에게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마우리시오란 놈팽이가 있다는 것이다. 고아 처녀 에우헤니아를 데리고 있는 그녀의 고모는 당연히 예의 놈팽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인 고모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에우헤니아의 당연한 선택은 바로 아우구스토다. 정해진 정답이 있는데, 왜 굳이 인생의 가시밭을 가려는 것인가. 칡과 등나무가 얽힌 갈등구조의 기원은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에우헤니아의 선택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에우헤니아의 집은 부채 때문에 저당이 잡혀 빚쟁이들에게 넘어갈 판이다. 짜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부잣집 도련님 아우구스토가 사랑하는 에우헤니아의 빚을 다 갚아준다. 1910년 전투적 페미니스트 같은 에우헤니아는 나쁜 남자의 매력이 듬뿍 빠져 자신에게 행복을 보장해 줄 것처럼 보이는 남자 아우구스토 대신 상건달 마우리시오를 선택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후견인들이 자신을 아우구스토에게 팔아먹으려 한다며 폭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고모나 고모부 역시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세탁소 19세 처녀 로사리오에 대한 아우구스토의 불같은 연정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슨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정복할 수 없는 에우헤니아 대신 순박한 로사리오에게 눈을 돌린 아우구스토의 행위는 참 비겁해 보인다. 심지어 짝을 맞추기 위해 충직한 하인의 아내에까지 흑심을 품는 아우구스토. 너란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아우구스토는 에우헤니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을 부풀려서 고통의 불구덩이 속으로 따려드는 주인공의 모습은 참 애처롭다. 결국 아우구스토는 마녀 같은 에우헤니아와 그녀의 놈팽이 마우리시오가 준비한 덫에 걸려 세간의 조롱거리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끝이냐고? 절대 아니다. 이미 카지노에서 절친 빅토르와의 대화를 통해 벨에포크 시대 끝판에 등장하는 숱한 스페인식 막장 드라마의 전형들이 무대에 올랐다가 내려가길 반복한다. 그리고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라는 우나무노가 전개하는 스타일에 그만 반해 버렸다. 주로 대화를 통해 구사되는 서사의 속도감 넘치는 진행은 일품이다. 이게 진정 철학자 출신 소설가의 작법이란 말인가하고 자신에게 되물을 정도의 재미가 넘쳐흐른다.

 

제목으로 저자가 점지한 <안개>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는 남녀관계의 오묘함에 대한 미스터리로도, 궁극적으로 작가가 창조한 황망한 허구와 지독한 현실을 오가는 서사의 고갱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비록 한 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우나무노가 두 번째로 발표한 <모범소설>을 바로 뒤이어 읽기 시작했다) 이런 작가야말로 나의 문학 세계의 전당에 오를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 소설가는 고상한 철학적 용어나 개념으로 독자의 두개골에 심한 압박을 주는 대신,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아니 일견 통속적으로 보이는 삶을 관통하는 본질에 천착하는 깨달음이 바로 저기에 있지 않느냐고 지그시 알려준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러니 내가 어찌 우나무노의 작품을 애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그런 작품이자 작가다.


[뱀다리] 마구 흥분해서 지껄이다 보니, 진짜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직접 읽어 보시라. 놀랄 만큼 뻔뻔한 작가의 노골적

개입에 두 손 두 발 모두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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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15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함 읽어보고싶네요 레삭매냐님 두 손 두 발 다 든 이 작품 ㅋㅋㅋ

레삭매냐 2019-11-19 11:02   좋아요 2 | URL
두번째로 읽은 <모범소설>도 정말
에스파냐식 막장 소설이더라구요...

대중소설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