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토
앤 패칫 지음, 김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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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어느 나라 부통령 관저에서 즐거운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굴지의 기업 난세이 사의 회장 호소카와 가쓰미는 오페라광으로 자신의 사모하는 미국 출신 오페라 가수 록산 코스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말에 혹해서 그 나라에 대한 투자와는 상관 없이 파티에 참석한다. 원래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그놈의 마리아가 나온다는 드라마에 미쳐 참석을 취소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즐거운 파티가 흥을 더해갈 무렵, 무장한 18명의 게릴라들이 출현해서 그들 모두를 인질로 잡는다.

 

앤 패칫의 소설 <벨 칸토>1997년 페루의 일본대사관에 난입한 무장 게릴라들이 700며명의 인질을 잡았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우리나라 대사도 인질로 잡혔었다고 하는데, 궁금해서 동영상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페루의 대통령이었던 후지모리가 방탄조끼를 입고 구출된 인질들을 버스에 태워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보였다. 자고로 위정자들의 쑈는 알아주어야 한다니까.

 

앤 패칫이 2001년에 발표한 그녀의 네 번째 소설 <벨 칸토>는 그렇게 인질로 잡힌 39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 오페라 가수 그리고 그들을 인질로 잡은 저항군의 이야기다. 처음에 세 명의 저항군 장군과 일당이 잡은 인질수는 더 많았으나, 그들이 관리하기에 너무 많다고 판단한 게릴라들은 다수를 석방하고 감옥에 갇힌 자신들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요구 조건을 내세운다. 대통령까지 인질로 잡았다면 협상이 쉬웠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치밀하게 인질극 계획은 대통령이 드라마 관람 때문에 큰 그림에서 빠지면서 실패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앤 패칫이 그리는 그림은 인질극 자체보다 그렇게 인질로 사로잡힌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각종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정무에 바빴던 부통령 루벤 이글레시아스 아저씨는 인질극 초반에 무장 게릴라들에게 대들었다가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는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인질로 잡힌 이들이 모두 어쨌건 자신의 손님이라는 생각에 도달한 루벤 아저씨는 그들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기 시작한다. 집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다림질로 시간을 보낸다.

 

페루(아무리 봐도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페루다) 페루 인민을 사랑하는 아르게다스 신부는 자청해서 인질로 남는다고 고집을 부린다. 풋내기 신부는 인질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고 게릴라들에게 고해성사를 베풀고 무엇보다 록산 코스의 노래 연습에 필요한 노래 악보를 구하는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프랑스인 시몽 티보는 새삼스럽게 인질로 잡힌 뒤에 자신이 아내 에디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나중에 훌륭한 요리사로 변신해서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난세이 사의 중역 가토 씨는 코스의 반주자가 당뇨병으로 죽음 다음, 홀연히 등장해서 영롱한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넉 달 반 동안 진행된 인질극의 시간은 인질들에게 자신들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게릴라들이 언제 자신들을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인질들과 게릴라들 사이에 어느덧 상호신뢰가 쌓이기 시작한다.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록산 코스.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 오페라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감하고 사랑이 싹튼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감동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곧 그녀는 만인의 연인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선수는 바로 호소카와 회장의 통역인 와타나베 겐이다. 각국 언어에 정통한 청년은 사소한 인질들의 요구 사항에서부터 그들의 은밀한 요구까지 헌신적으로 받드는 그런 겸허한 자세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시작한다.

 

, 이제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빠져서는 안 되겠지. 첫 번째 로맨스는 록산 코스와 호소카와 회장이 그리고 다음 주자는 겐과 남자인 줄 알았던 게릴라 전사 카르멘이 주연을 맡는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했던가. 부통령 루벤 씨는 게릴라 이스마엘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놀라운 노래에 대한 재능을 가진 것이 드러난 세사르는 코스에게 지도를 받고, 카르멘은 연인 겐에게서 언어 공부를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인질극 대처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하나의 우연 혹은 소설적 장치라고 해야 할까.

 

게릴라들과 인질들 사이에 조성된 부드러운 해빙 무드는 정부군이 시작한 대테러 진압작전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동안의 느릿한 전개가 무색할 정도로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엔딩이었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그리고 이어지는 에필로그로 인질 드라마 대단원의 막이 조용히 내린다.

 

현실에서 벌어진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사건과 달리 소설 <벨 칸토>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 음악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관계 설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인질 모두가 사랑하게 된 록산 코스라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절박한 순간에 포코 에스페란사를 찾게 마련이니 말이다. 메신저 메스너가 예고한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와, 게릴라들과 인질들의 생사를 갈라놓았던 것이다.

 

실제 사건을 극화하고 노래와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한 편의 멋진 오페라 드라마를 창조한 앤 패칫의 솜씨에 감탄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작가에게 창작을 위한 하나의 질료로 작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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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0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낮설지 않다 했더니 예전에 나왔었네요.
문동판이 훨씬 세련됐네요. 합본으로 나온 것도 마음에 들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 근데 쓰신 제목의 뜻이 뭔가요?

레삭매냐 2019-11-01 20:06   좋아요 1 | URL
오옷 예전에 한 번 나왔던 책이로군요.
근데 그 때는 분권으로 나왔나 보네요.

좀 더 당시 역사에 대해 조사한 다음
에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특유의 게으
르니즘 플라스 귀차니즘으로 그만...

‘포코 에스페란사‘는 소설 중에 나오는
표현인데 소설에서는 희망이 없다로
번역했는데, 찾아 보니 ‘작은 희망‘라고
하는군요.
 
서머타임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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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1910월의 넷째 주는 쿳시 읽기 주간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달궁 독서모임 책이었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고 난 다음, 그동안 모아 두었던 쿳시 책들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성취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던 <서머타임>은 베일에 싸인 개인으로서의 쿳시에 대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독서모임에서 쿳시의 초상에 대한 방점을 찍을 수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쿳시가 죽었다는 전제다. 그리고 전기작가 빈센트는 쿳시의 삶과 관련된 다섯 명의 인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실체를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주자는 줄리아로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삼십대 초반의 쿳시를 무능력한 지식인으로 묘사한다. 아니 그렇게 인터뷰어가 드라이브를 걸었던가. 내가 예전에 포커스 그룹 스터디를 하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인터뷰가 어쩌면 그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의 의중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이십대 줄리아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쿳시와 바람을 피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직장도 없고 가난한 쿳시와 미래를 설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 실제 쿳시는 이 나이 즈음해서 자식도 둘이나 있었지만, 전기소설의 작가는 독신으로 묘사해서 쿳시의 찌질함을 한층 더 강조한다. 아버지 역시 변화사일을 그만 두고, 작은 상점의 부기원으로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로서 어떤 대성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을 사랑할 줄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남자가 바로 쿳시였다.

 

다음 주자인 사촌 마르곳(마기)는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로 쿳시에게 사랑을 알려준 사촌이라고 했던가. 고집쟁이 남자는 아버지를 데리고 케이프에서 땅값이 산 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 전 에피소드에서 습기를 막기 위해 직접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장면도 나왔었지. 남아프리카에서 노동이 천대받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마기와의 에피소드는 둘이서 쿳시의 고물 트럭을 타고 나갔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들판에서 발이 묶이는 컷이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걸까? 트럭이 고장나기 전에 손을 봐야한다고 말했음에도 굳이 고집을 부리다가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 말이다. 이렇다할 사건 없이 돌아온 마기는 농장주인 남편과 호텔 일을 하며 고단한 자신의 일상을 이어간다.

 

<서머타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브라질 출신 미래의 과부 아드리아나다. 그녀는 매력적인 자신의 둘째딸 마리아 헤지나의 영어 교육을 위해 개인교수를 쿳시에게 부탁한다. 문제는 그가 영국 출신도 아니고 아프리카너 출신의 교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얼마 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 캐슬>이 떠올랐다. 아 자식 교육에 극성인 부모들은 한국이나 남아프리카 혹은 브라질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개인교수 문제가 아니라 쿳시가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아드리아나의 노파심이었다. 그리고 보면 쿳시의 소설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라는 설정의 근원이기도 하지 않은가. 전기작가 빈센트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은 쿳시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건 모두 그저 문학적 설정일 따름이라는. 상황을 더 재밌게 만드는 건, 쿳시의 관심은 정작 무용수인 아드리아나 당사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무뚝뚝한 아프리카너 남자는 짝사랑에 빠진 나머지 막대기 같은 몸뚱이를 흔들며 댄스 교습소 출입을 시도한다.

 

나머지 인터뷰이 마틴과 소피는 쿳시의 대학시절 동료들이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빈센트의 도발적인 질문에 마틴이 그런 일도 없었고,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알려 줄 수 없다는 말은 동료를 지키기 위한 지원사격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똑같이 그 질문이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자기방어용 전략이었는지 말이다. 소피는 아니나 다를까 쿳시와 불륜의 상대이기도 한 프랑스 출신 교수였다. 그녀는 백인들이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아이러니를 친절하게도 설명해준다. 그리고 좀 더 쿳시 초기작들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들이 오고간다.

 

흥미로운 지점 중의 하나는 상대방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를 부려야하는 빈센트라는 캐릭터의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적 관계가 출판되거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인터뷰가 정리되어 완성되면 자신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역시나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철저한 서구적인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 전에 누가 술자리에서 나눈 사담을 글로 쓰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그런 부탁을 하더라. 문득 내가 사관이 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서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서머타임>은 어쨌든 미국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홀로되신 아버지와 살며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던 어느 지식인에 대한 세밀한 초상화로 내가 다가왔다. 이 멋진 전기소설의 어떤 질료들은 사실일 것이고 또 어떤 것은 허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작가가 쓰는 것들이 오롯하게 모두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쿳시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물론 다 믿는다는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순진한 독자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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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0-3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장깨기!!! 호이잇~격파소리가 들립니다 진짜 쿳시 도장깨기입니다 저는 한참뒤에나 따라갈듯 말 듯...ㅎㅎㅎ

레삭매냐 2019-11-01 10:49   좋아요 1 | URL
쿳시 읽기 응원합니다.

전 이제 남은 두 달 동안 읽다만 책들
그리고 그동안 숙제 같이 따라다닌
책 읽기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강철 폭풍 속에서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4
에른스트 윙거 지음, 노선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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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그렇게 고대하던 에른스트 윙거의 <강철 폭풍 속에서>가 드디어 출간되었지만 읽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다. 14년과 작년에 각각 실패하고 드디어 5년 만에 완독의 고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두 번이나 읽은 기시감 때문인지 아니면 반드시 완독하고 말겠다는 나의 의지 때문인지 진도가 쑥쑥 나갔다.

 

1920년에 발표된 <강철 폭풍 속에서>의 저자 에른스트 윙거는 1895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화학기술자였던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게오르크 윙거는 광산업으로 부를 모았다고 한다. 하노버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는 곤충학과 모험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강철 폭풍 속에서>에 보면 그가 상당히 프랑스어를 잘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프랑스 생캉탱으로 교환 학생으로 지낸 경험에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해서 알제리에 파견될 뻔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 시절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하노버의 기숙학교에 다니던 윙거는 19세의 나이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81, 지원하여 소총수로 샹파뉴 전선에 투입된다. 그 지점이 바로 <강철 폭풍 속에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이유로 사기충천한 어린 병사들은 자신과 동료들의 팔다리가 적군의 총알과 포탄에 날아가는 지옥의 문턱을 경험하고 나서 비로소 그들이 꿈꾸던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 전선에서 대치한 프랑스 영국 연합군과 대치한 독일 젊은이들은 적군의 총탄만큼이나 무서운 고역이었던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미로처럼 연결된 참호를 파기 위해 쉴 틈 없이 그들은 삽질을 해야만 했다. 윙거의 증언에 따르면 추위보다 무서운 게 바로 습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전장의 지루함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병사들에게 전투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렇게 무모한 돌격을 감행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이센 사람 특유의 기록정신을 발휘해서 여가 시간에 윙거는 그날그날의 전투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 바로 그 기록들이 위대한 전장문학 <강철 폭풍 속에서>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적의 강철 탄환으로부터 윙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154, 레제파르주 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윙거는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이송되고, 예비군대대로 편입된 가운데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관후보생에 지원하게 된다.

 

육 주 간의 교육을 마친 윙거는 초급장교로 다시 전선에 배치된다. 그전에 일반 소총수였다면 이번에는 말단의 지휘관으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전개되는 윙거는 전쟁터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블식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동료와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했지만(물론 윙거도 7번이나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숱한 격전을 치르면서도 결국 그는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놀랍지 않은가. 첫 번째 투입지였던 샹파뉴를 비롯해서 19169월의 기유몽 전투, 베르덩과 함께 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솜 전투에도 참가하고 독일군의 마지막 승리라고 할 수 있었던 1917년 말의 캉브레 전투 그리고 마지막 1918년 루덴도르프가 구상한 춘계대공세 등 최전선에서 윙거 같은 전사가 아니면 누가 전쟁영웅으로 불릴 수 있단 말인가.

 

, 그런데 소설의 표지를 보니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네. 그렇다면 <강철 폭풍 속에서>가 전쟁 르포르타주 형식의 리얼 스토리가 아니란 말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한가한 시간에 아리오스토를 읽고, <트리스트럼 샌디>를 읽는 장교 윙거의 모습이 어쩌면 소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전쟁 초반에는 중세 기사도 정신이 전장에 배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곧 기관총과 독가스 같은 대량 살상무기가 도입되면서 전투는 개인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학살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물량전 그리고 기계전으로 이어지는 전쟁사의 치열한 현장을 윙거는 기록에 남겼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소중하게 기록했던 일기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투입된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 병사들은 저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리고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영토를 지키기 위한다는 투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미증유의 전쟁은 모든 사람의 의식을 바꿔 버렸다. 전쟁이 사기충천한 병사들이 생각한 것처럼 낭만적이지도 않고, 비참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쟁 후반에 가서 서방 연합군의 압도적인 무력과 보급의 우세로 패전의 기운을 느낀 윙거가 각성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개별 전투의 승리는 병사들의 무용으로 결정될 수 있지만, 대국적인 차원에서의 전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걸까. 마지막으로 부상을 당했을 때, 기다리던 죽음이 마침내 찾아왔다는 착시에 빠진 윙거의 모습에서, 어쩌면 그것이 그가 기다리던 안식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폴레옹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훈장(독일에서는 철십자훈장) 수령이 병사들에게 최고의 명예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윙거 역시 전쟁터에서의 용맹스러운 무공으로 일급 철십자훈장을 받지 않았던가. 그에게 훈장을 건네준 장군이, 훈장이 반창고라는 유머는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소설이 독일 황제가 전쟁 기간 동안 오직 11명의 보병 중대장에게 수여한 제국 최고의 명예훈장인 푸르르메리트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에른스트 윙거는 살아남은 마지막 푸르르메리트 훈장의 서훈자이기도 했다.

 

<강철 폭풍 속에서>가 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쟁영웅으로서 자신에 대한 미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지적도 새겨 들을만하다. 역설적이지만, 무자비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생존한 어느 고지식한 프로이센 전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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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0-30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재독도 많이 하시네요 역쉬👍👍👍

레삭매냐 2019-10-30 21:33   좋아요 1 | URL
제가 문장을 모호하게 썼었군요 :>

재독을 한 것은 아니고 완독하지
못하고 초반 그리고 중반 부분울
자꾸만 읽어서 기시감이 든다는
말이었답니다.

카알벨루치 2019-10-30 22:43   좋아요 1 | URL
이 책 뿐만이 아니고 님은 재독 많이 하시니 괜찮습니다~^^
 
잘못된 만찬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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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두 번째 책이다. 1963년에 발표된 그의 데뷔작 <죽은 군대의 장군>에 이어 2008년에 발표된 소설이 바로 <잘못된 만찬>이다. 불어로는 2009년에 나온 것 같은데, 이번에 소개된 책은 이 불어판을 원전으로 삼았다. 영어 제목은 <석조 도시의 함락> 정도라고나 할까.

 

소설의 공간적 배경 그러니까 돌로 지어진 알바니아와 그리스의 국경 도시 지로카스트라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의 흔적까지 담고 있는 지로카스트라에 일단의 독일군이 진입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알바니아를 지배하던 이탈리아가 추축국 동맹에서 이탈하면서 독일군은 동맹군에서 폭압적인 지배자로 변신을 감행한다.

 

알바니아에는 새로운 지배자인 독일군에 대한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를 비롯해서 왕정주의자에, 독일군과의 평화로운 관계설정을 원하는 민족주의자까지 복잡다단한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다. 독일군 기갑연대의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이 도시로 진입하기 전, 명백한 경고장을 날리고 이에 무장 항독단체들 역시 저항에 나서라는 격문을 뿌리는 등 혼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독일군 전위부대의 오토바이 척후병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레지스탕스에게 총격을 받는다. , 이제 지로카스트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 그전에 카다레는 친절하게도 마을에는 두 명의 구라메토라는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전자는 독일 유학파 출신 그리고 후자는 이탈리아에서 선진 의술을 배워와 지로카스트라 주민들에게 봉사해왔다. 그리고 프리츠 대령이 대구라메토의 대학 동창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프리츠 대령은 알바니아 전통인 두카지니법을 배신하고 손님맞이법인 베사(신의)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을 하며, 정복자에 대한 저항을 이유로 인질을 잡아들일 것을 명령한다.

 

, 이제 가짜뉴스가 등장할 차례다. 대구라메토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그날 밤의 만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만찬에 대한 억측이 난무할 충분한 계제의 상차림이 차려진 셈이다. 최근 목격한 미디어가 연출한 마녀사냥과 광기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파렴치하게 나치와 협력했다는 전언부터 인질을 구출한 도시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등 그야말로 극과 극을 내닫는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대로 독일은 패전해서 결국 알바니아에서 조용하게 물러났다. 그전에 살짝 작가는 코소보와 차머리아까지 포함하는 대알바니아 민족주의의 부활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레이트 워 시절부터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린 발칸반도의 복잡다단한 역사성에 대한 대가의 예리한 지적이라고나 할까. 알바니아 공산주의 빨치산의 지휘관들이 세르비아 출신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쟁이 끝나고 티토의 배신과 냉전이 시작되면서 알바니아는 이웃의 독재자가 드리운 철의 장막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지로카스트라의 짧은 혼란기가 진행된 다음, 다시금 망각 속에 잠자고 있던 예의 만찬이 다시 소환되었다.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단의 젊은 판사들이 주동이 되어 기억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샤니샤 감옥으로 끌려온 대구라메토는 9년 전에 있었던 만찬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라는 판사들의 심문에 직면한다. 그 와중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그건 바로 구라메토의 대학 동창이라는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이 가짜라는 점이었다. 그는 1943916일보다 훨씬 전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아는 프리츠 대령은 누구란 말인가? 정말 초대에 응한 죽은 손님이란 말인가.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의 부상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작업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이야말로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더 놀라운 반전과 음모가 기다리고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는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에게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기록에 기반한 진실이라는 게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자백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과거사청산 과정에서 조작된 간첩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과거 진실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카다레식 유머도 책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였는데, 당국이 거리의 맹인 시인 베힙이 체포되었을 때, 구경꾼들이 그 사실을 보고서도 자기들 눈을 믿지 못했더라는. 지로카스트라에는 광인로라는 길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한 알바니아 독재자 엔베르 호자에 대한 기발한 비판이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재판관들이 새로운 공산주의 시대를 맞아 다시 기용할 기회를 노렸다가 정중하게 거절당한 사연도 신선했다.

 

발칸반도의 소국 알바니아에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알바니아 현대사를 관통하는 카다레의 저술을 읽으면서 기억 혹은 다른 표현으로 역사에 대한 전쟁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10월의 쿳시의 달이었자면, 11월은 어쩌면 카다레의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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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ola 2019-11-07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냥반 같으니라구^^ 오늘 배송되어 오는데 벌써 다 읽어 본 기분이 ㅋㅋㅋ 며칠 후에 봐욤~
 
슬로우 맨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만난 쿳시의 9번째 책이다. 이번 주에만 네 권의 쿳시 책을 읽었다. 아주 무서운 속도로 읽어대는 중이다. 오늘 읽기 시작한 자전적 소설 <섬머타임>도 절반도 넘게 읽었다. 목표 이상의 성적이라 대단히 만족스럽다.

 

남아프리카를 떠나 호주 시민권을 딴 쿳시가 호주 애들레이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로 <슬로우 맨>이다. 청년 시절 호주 배낭여행을 갔을 때. 들린 애들레이드에 대한 나의 추억은 와인 투어였다. 공짜로 제공되는 와인을 하루 종일 마셔서 그야말로 각종 와이너리에서 거의 알딸딸한 상태로 돌아다닌 기억만 남아있다.

 

사건은 주인공 폴 레이먼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마 젊은이였다면 고난의 접합 복원수술을 했겠지만, 초로의 폴에게 선택지는 절단이었다. 의사는 때로 그런 살벌한 결정을 내려야 하나 보다. 갑자기 발생한 장애로 폴은 정상적 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복지사의 조언대로 간호사 겸 도우미를 집안에 들이게 된다.

 

그의 선택을 받은 간호사는 크로아티아 난민 출신 마리야나 조키치다. 평생 불구로 살게 된 남자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여성 마리야나를 사랑하게 된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유부녀란 점이다. 아내 앙리에트와 오래 전에 이혼하고, 자식마저 없는 폴의 의식세계에 유사가족을 꾸미겠다는 망상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쿳시 작가는 흥미롭게도, 대화체 문장에서 폴이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혹은 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썼다가 정정하는 기법을 구사한다. 독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고수답다.

 

전직 사진사인 폴 역시 마리야나와 같은 이방인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폴은 6살 때, 계부를 따라 호주로 건나왔다. 의족과 재활을 거부하는 폴의 모습에서 나는 오래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연출한 <크래시>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미케닉한 에로티시즘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폴이 지향하는 욕망의 탄착점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폴은 간호사이자 도우미인 마리야나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리고 마리야나의 가정사에 폴의 개입이 시작된다. 해군사관학교 진학을 원하는 마리야나의 16세 아들 드라고에 대해 자식이 없는 폴은 비싼 사립학교 비용을 자진해서 대겠다고 제안한다. 마리야나의 남편 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제안이었다. 내가 봐도 폴의 제안은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는 드미 무어 출연의 <은밀한 유혹>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소설의 진짜 기묘한 장면 중의 하나는 72세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등장이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소설은 엘리자베스가 출현하면서 격랑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 중의 하나는 그녀가 어떻게 폴의 스토리를 알고서 나타났는가이다. 그리고 뚜쟁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마리아나를 폴에게 소개시켜준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에로티시즘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수한 호의로 드라고를 자신의 아파트에 받아들인 폴은 청소년 기의 아이들을 다루는 게 어떤 일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드라고는 자주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폴이 애지중지하는 사진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인다. 결국 폴의 인내심을 바닥이 나고, 엘리자베스의 조언대로 결판에 나서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캐릭터는 바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다. 쿳시가 <슬로우 맨>을 발표하기 전인 2003년 작의 제목이 바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쿳시는 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도대체 어떻게 주인인 폴도 몰랐던 포슈리의 사진이 드라고에 의해 날조된 것을 알았던 걸까. 그녀는 과연 자신의 소설의 소재로 써먹기 위해 폴에게 접근했던 걸까. 또 그녀는 폴의 눈에 밀가루반죽을 붙이고 만난 마리아나와의 관계를 통해 각자, 구원을 얻게 될 거라는 설득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돈도 주어야 한단다. 도대체 이 소설에서 코스텔로 여사의 정체와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을 살면서 숱한 변신 내지 탈피를 하기 마련이다. 자의에 의하든, 타의에 의하든 간에 말이다. 폴의 경우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신체의 자유를 속박 당했다. 자신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샤워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리야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건 필연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폴의 제안은 마리야나에게 거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가깝다. 그 다음에 어떤 요구가 올지 모르는. 후반에 폴은 마리야나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 내가 너무 상황에 몰입한 모양이다. 쿳시 작가가 그리는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란 질문은 각각의 단계의 상황에 처한 폴의 대처에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추론에 도달한다.

 

드라고에 대한 오해(?)는 소년이 사고로 고장난 폴의 자전거를 조키치 집안이 모두 동원되어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자전거로 개조한 장면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그렇다, 모든 것이 미아 컬파(내 잘못이다)였던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었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아 막시마 컬파 Mea Maxima Culpa.

 

[뱀다리] 드라고의 사진 훼손 사건으로 마리야나에게 따지러 간 폴에게, 빛의 사로잡아 물건이 된 이미지(사진)에 원본이 어딨냐고 따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기술목제 시대에 사진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쿳시 스타일의 항변이 절묘하지 않은가 말이다.

 

[뱀다리2] 책 표지의 왼발 석고상이 무언가 했더니만, 폴이 사고로 잃은 다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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