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제발트는 나를 뵐의 <천사는 침묵했다>로 인도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침묵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독일 민족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적어도 한스에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바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욕망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 자체가 제공한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이런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게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야말로 당시를 체험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을 훔친다. 생존 앞에 수치심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것이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 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들이었다.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나온 <천사는 침묵했다>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24년 전에 나온 판본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해 보자.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침묵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생생한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스는 전쟁 기간 중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에게, 독일 민족에게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표현일까? 과거와 폐허를 딛고, 생존과 번영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완수해야 하나라는 현실적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명징하지 않고 모호한 전개에 대해서는 대가가 되기 전인, 아직 삼십대 초반에 쓴 글(1949년/1950년으로 추정)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다. 그가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1949년이니 거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천사는 침묵했다>는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1992년에 발표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시 바턴이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읽은 루시 바턴의 이야기가 뭐였더라. 시골 소녀가 대도시 뉴욕으로 가 작가로 성공한다는 이야기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데뷔한 이래 지난 이십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었다. 모두 9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서로 유기적인 상호연관 작용을 하면서 그야말로 감칠맛 나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는 시카고가 자리한 일리노이주 앰개시 타운을 바탕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우리는 모든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절대적 가정은 시작부터 글러 먹었다. 일찍이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그런 가정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행복하고 평안한 가정의 지속을 위해 우리 모두는 무대에 선 마리오네트 배우처럼 우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지 못할 땐, 그러니까 감정과잉이나 결핍으로 시달리게 되면 배우가 아닌 본연의 모습이 튀어 나와 격렬하게 싸우게 되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 앰개시 타운은 전형적인 쇠락해 가는 중서부 지방의 표본이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도티 블레인에 따르면, 중서부 사람들은 동부 사람들처럼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걸 싫어한단다. 예의가 아니라는 말일까? 그녀의 민박집을 찾아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셸리 스몰 부인은 끝도 없는 수다로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게 투사하다가 그만 수치심을 느낀다. 그 다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적대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다. 올리브 키터리지 못지않은 투사형 인간 도티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모름지기 어떤 외부의 충격으로 발화된 감정을 삭이지 못하면 병이 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닥터 스몰 부인에게 대거리하는 도티의 모습에서 뒤틀린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앰개시 타운 사람들에게 가난은 과연 형벌일까? 도티와 에이블 남매는 어려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음직한 케이크를 찾아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블레인 가족에게 가난과 궁핍 속의 삶을 제공했다. 에어컨 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에이블은 가족 연례행사인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 후, 공연장에 두고 온 플라스틱 조랑말 스노볼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스크루지 배우 링크 매켄지와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을 체험하기도 한다. 타인들이 보기에 거의 인질로 잡혀 고문 같은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60대 중반의 에이블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자신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걸 타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이런 경험이 일상이지 않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모든 에피소드에 어떤 식으로든 언급되는 루시 바턴은 6번째 에피소드에 비로소 등장한다. 기다렸어요, 루시 바턴. 가족을 향한 나의 시선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같이 자란 형제나 자매들이 있다면, 아마 그들의 시선이 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는 피트 오빠와 냉소주의자 언니 비키는 서로에게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어떻게 감정을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의 흔한 모습이 아닌가. 인격적으로 좀 더 성숙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입장이라면 아마 이런 다툼은 불필요했겠지.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응어리진 감정의 적절한 해소를 위해 어느 정도의 치열한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촉발은 루시 바턴의 고향 방문이었고, 세 남매는 나름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라고 말하고 싶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무엇이든 가능하다>의 진짜 재미는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가 결국엔 상호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 예전에 그래서 이런 관계가 생긴 거였어’라는 깨달음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야말로 스트라우트 작가가 <올리브 키터리지> 이래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 아닌가.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을 후들겨 패는 작가의 실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 같다. 거창한 이야기 대신, 평범한 삶을 거치면서 부대끼고 생채기난 상처들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는 장면들에 대한 묘사는 압도적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니까. 그러나 저러나 이제 곧 다시 올리브가 돌아올 모양이다. 그런 멋진 캐릭터를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고 내가 말했었지!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어느 동지가 자신의 모습을 타자에게 모두 보여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타자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란 말이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나의 연기 점수는 과연 몇 점이나 될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7-03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레삭매냐님 리뷰를 봤으니 곧 데려와야겠어요. ^^
이거 읽기 전에 저자의 <루시 바턴>을 먼저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야말로 연작소설에 탁월한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나의 연기 점수는 얼마나 될까...오늘은 곰곰 그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19-07-03 10:45   좋아요 1 | URL
일단~ 책은 아주 재밌답니다 -

그리고 이 책 보시기 전에 <루시 바턴>
을 읽어 보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 2년 전
에 쓴 리뷰를 다시 읽어 봤네요.

귀찮으시다면 제 리뷰로 퉁을 ㅋㅋㅋ

전작이 루시 바턴 본인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했다면, 이번 책은 루시 바턴의 주변
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coolcat329 2019-07-05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읽어야지...했는데, 루시 바턴을 먼저 읽어야 겠군요ㅠ

레삭매냐 2019-07-05 11:17   좋아요 0 | URL
두 권 모두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책은 타이트하지 않은 느슨한
이음새가 특히 좋더군요.
 

 

드디어 대망의 7월 1일이 되었다.

그나저나 올해가 알라딘 20주년이라고? 일단 축하해 마지 않습네다.

도대체 그동안 알라딘이 빼어 먹은 나의 머니는 얼마일 지 문득 궁금해졌다. 고런 건 알려주지 않나.

 

작년에 산 럭키백은 하도 중고책들을 사대느라 이미 오래 전에 소진되어 오늘을 고대했다.

 

어제 사무실에 잔뜩 쌓여 있던 책들을 모조리 이사했다. 땀이 줄줄 나고 아주 죽을 뻔했다. 예전부터 책 치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시했었는데, 스톰이 몰아 치게 된지라 잔소리 듣기 싫어서 싹 옮겼다.

 

그중에 발라낸 한 상자는 이번에 공주에서 책방을 낸다는 달궁 책모임 동생에게 보냈다. 말이 그렇지, 책 보내기가 쉽지가 않구나. 일단 책들은 모두 집으로 피신을 시켰는데 그중에서 또 발라내서 공주로 보내야겠다. 어디론가 가서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게 된다면 그 또한 책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다만 10킬로그램 이상은 보내지 말라는 동생의 말을 무시해서 택배 기사님에게 조금 미안할 따름이다.



지난 토요일 달궁 모임을 가졌는데, 지난 상반기를 통틀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입에서 단내가 나게 털었고, 그동안 못보던 멤버들이 거의 모두 자리를 함께 해서 더더욱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2차로 간 빈대떡집의 빈대떡의 맛이 냄새에 비해 맛이 덜한 게 좀 흠이긴 했지만 뭐 좋았다. 그날 비라도 죽죽 내렸다며 더더욱 좋았을 텐데.

 

원래 같았으면 당근으로 쉽게 읽을 줄 알았던 늑대처녀의 <자기만의 방>은 결국 못 다 읽었다. 이럴 수가! 그나마 첫 장과 마지막 장은 읽어서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왜 우리는 소설을 읽어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홀로 하는 독서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털어 보았다. 역시 달궁 동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그 무슨 재미에도 견줄 수가 없지 싶다. 결론은 재밌었다라는 거이다.

 

90년 전인 늑대처녀 시절에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공간과 연간 500파운드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금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오롯하게 전업작가로 21세기 한국을 사는 건 여전히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문학이 경쟁해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모바일 게임, 소셜 미디어, 웹툰과 유투브 등 재미진 게 너무나 많다. 소설/문학이 승부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상대들이다. 한 시간 짜리 예능 프로그램도 다 볼 인내심이 부족해서 짤로 미디엄을 소화하는 마당에 천쪽 짜리 소설을 누가 소비할까. 더 슬픈 건 그런 작품들은 출판시장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바로 스러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뭐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니 시간 가는 줄 모르지.



마욤님과 함께 찾은 종로책방은 알바생들이 부족해서 그런지 영업을 조기에 종료해서 결국 책을 사지 못했다. 다음 번에는 꼭 같이 가는 것으로. 오늘 길에 영등포점에 들러서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 2부와 몇 권의 책을 샀다. 헌책방에 오래 있어봐야 엉뚱한 책들만 잔뜩 사니 오래 있는 것도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 세 권인가와 심슨 책갈피를 샀다. 책갈피 가격이 없어서 일단 집어서 계산대 직원분에게 물어 보니 오천원인가 오천오백원인가라고 한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패스하려다가 가오가 살지 않아서 그냥 사버렸다. 예스24에서 산 고흐 책갈피는 정말 마음에 들던데. 암튼 심슨 책갈피도 못지 않게 마음에 들긴 했지만 수량이 달랑 9개 뿐이라, 또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겠지. 읽다만 책들이 그렇게 많다는 거다. 반성해야겠다.

 

나는 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을, 모르는 작가의 책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도 없었던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욥코의 <발칸의 전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래 책의 주인장은 불가리아 말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는지 단편의 제목마다 연필로 불가리어(?)로 보이는 요상한 글자들을 적어 놓았다. 평소 같으면 지우개로 박박 지워 버렸을 텐데, 그냥 놔뒀다. 산적 두목 시빌이 등장하는 첫 이야기부터 범상치 않다. 사랑에 눈먼 산적이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만다는 설정.

 

어쨌든 책을 좀 더 팔아서 럭키백 값을 만들어야겠다. 두 권은 더 팔아야할 것 같다.

나의 삶에서 무언가 덜어내는 게 이렇게 쉽지 않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상 끝.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식쟁이 2019-07-01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빼어먹은 나의 머니는 불라블라입니다 하고 알려줍니다. 덧붙여 매달 얼마를 더 빼주신다면 당신은 상위 1%에 진입하십니다 라는 꼬임이 이어지니 알아서 잘 빠져 나오시길 바랍니다. ㅋ

레삭매냐 2019-07-01 21:45   좋아요 0 | URL
그동안 사제낀 액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네요... 흠 -

그렇게 책을 많이 샀나 싶네요.
이제는 금서를 해야 쿨럭...

bookholic 2019-07-02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럭키백은 최대 할인이 5만원뿐이라고 하네요..ㅠㅠ

레삭매냐 2019-07-02 09:29   좋아요 1 | URL
악 그럼 작년보다 혜택이 절반으로 줄어든
게 아닙니까 그래... 그래도 럭키백 사야
하나요, 앞으로는 책을 살 때 보다 신중하게
사야할 것 같네요 증말 !

cyrus 2019-07-02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부터 중고 책을 덜 사서 그런지 작년 럭키백 할인 금액 많이 남았는데, 그거 다 써보지 못하고 소멸되었어요.. ^^;;

레삭매냐 2019-07-02 12:21   좋아요 0 | URL
전 새책은 이제 도서관을 거의 이용하고,
주로 헌책을 사기 때문에 럭키백 할인을
애진작에 다 써 버려서 당장 사려고 했는
데 올해부터는 5만원 제한이라고 해서 고
민 중입니다.

뭐 그래도 아마 사게 되겠죠...

AgalmA 2019-07-07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프라인 중고매장 가면 저는 당최 살 책이 안 보여요^^;; 온라인 중고서점도 최근엔 살만한 책이 자주 안 올라오는 느낌적인 느낌이ㅎ;;
굿즈 때문에 부리나케 신간 사는 속도를 좀 줄여야 중고도서 사는 기쁨도 있겠지요ㅜㅜ

레삭매냐 2019-07-09 11:31   좋아요 1 | URL
아니 도대체 새 책들이 얼마나
많으시길래 ㅋㅋㅋ

아 굿즈의 유혹도 대단하긴 하지요 :>

온라인 서점보다 중고서점에 치중해서
그리로 다 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
을 해봅니다.
 
세상 종말 전쟁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우파로 경도된 한 때 좌파 지식인이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 1권을 읽었다. 19세기말, 브라질 바이아 지방의 카누도스라는 곳에서 벌어진 민중 봉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것은 역사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소설의 기본 골조는 역사적 사실을 따르면서, 디테일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놀랍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지. 선지자 안토니오를 따르는 일단의 가난하고 착취받는 민중들을 브라질 정부와 지주들은 광신자 무리라고 폄하한다. 선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일명 야군소의 카누도스는 프루동이나 바쿠닌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서구 사회에서 주창한 이상적 사회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혁명가들을 매혹시킨다. 그 땅의 주인인 지주들에게는 당연히 원수 같은 존재일 테고. 공화주의, 공상적 이상주의, 광신적인 종교 추종자들을 비롯해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대한 축소판으로 읽을 수가 있을 것 같다. 500페이지나 되는 소설의 전반부를 읽어 내렸다.

1896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벌어진 카누도스 전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오랜 가뭄과 재앙이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 지방을 휩쓸었다. 노예제와 쿠데타에 이은 공화국 수립도 브라질 민중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새로운 도량형의 도입, 혼인신고제와 세금 부과 등 근대 국가를 향한 브라질 중앙정부의 정책은 지방자치를 원하는 지주들과 대다수 농민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훗날 카누도스 3차 토벌대 보병 제7연대의 지휘를 맡은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은 공화국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살인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국이 이렇게 어수선하면 반드시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일명 선지자라 불리는 안토니오는 카톨릭 사제를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거두어 주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 받은 이들 심지어 강도와 살인자 무리까지 ‘선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화시킨다. 그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지주 계급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그들을 광신자 무리로 부르면서 공화국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해, 카냐브라바 남작의 카누도스 농장에 자리 잡은 야군소들에 대한 토벌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원하는 연방주의자들과 지방자치를 원하는 세력 간의 충돌을 비롯한 다양한 군상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에파미논다스 곤살베스라는 정치가는 스코틀랜드 출신 골상학자이자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무정부주의 혁명가로 활동한 갈릴레오 갈에게 카누도스 야군소들에게 서구에서 들여온 최첨단 무기를 공급하라는 밀명을 내리고, 다른 부하들을 시켜 외세(영국)가 개입했다는 조작을 꾸민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정치협잡꾼과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 같은 광신적 애국주의로 무장한 이상주의자가 토벌대 측에 서 있다면, 반대측에는 선지자 안토니오를 필두로 해서 브라질 민중계급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백인 지주를 죽이고 야군소 무리에 들어온 사탄 조앙을 필두로 해서, 외곽에서는 전혀 카톨릭 사제 같지 않은 형상으로 카누도스를 지원하는 조아킴 신부, 온갖 불행과 역경을 딛고 물자관리와 조직에 능수능란한 솜씨를 발휘하는 안토니오 빌라노바 형제, 만인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되는 마리아 쿠아드라도, 서커스단에 팔릴 정도로 기구한 운명이지만 특별한 재능으로 선지자의 서기가 되는 나투바의 레온 그리고 카누도스 방어사령관으로 활동하는 조앙 아바데가 바로 그들이다. 이런 허접한 광신자 무리가 대포와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정부군을 상대로 무려 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는 낫과 활 그리고 조잡한 엽총 정도가 전부가 아니었던가.

카누도스 민중 봉기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정부군을 대표하는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은 야군소 뒤에는 브라질의 값싼 사탕수수를 원하는 영국을 대표로 하는 군국주의자들이 버티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의 정세 판단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야군소들은 자생적 반군들이었다. 물론 바이아의 지주 계급을 대표하는 카냐브라바 남작 같은 경우,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구체제의 귀족 칭호를 사용하는 남작은 바이아 지방분권주의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카누도스 반군을 이용하려는 중앙정부의 획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모두가 반대하는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에게 적극 협력하자는 의견을 밀어 붙인다. 하지만 1권의 말미에서 자신의 칼룸비 농장이 야군소들에게 의해 파괴되고 불타자, 우선 직면한 적인 카누도스의 반군을 일소하기 위해 세사르 대령이 지휘하는 토벌의 성공을 바란다. 과거의 적이 이제는 동지로 변하는 기묘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스코틀랜드 출신 골상학자 갈릴레오 갈은 소설 <세상 종말 전쟁>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871년 파리 코뮌에도 참가하고, 에스파냐에서도 혁명운동에 나섰다가 부르주아들에게 부상을 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이번에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자신이 평생 꿈꿔온 이상적 공동체가 카누도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도중에 에파미논다스가 파견한 자객에게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기기도 한다. 그 와중에 길잡이 루피노의 아내를 범했다가, 원한은 산 최고의 추격자에게 추격을 당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혁명가의 말에 전율이 일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구사하는 차원이 다른 다층적인 이야기의 근원에는 속죄와 구원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믿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사한다. 믿음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한다. 그렇게 카누도스의 야군소들은 선한 예수님의 보살핌과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압도적인 적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초개 같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칼룸비를 파괴하기 전에 카냐브라바 남작에게 떠나라고 말하는 조앙 아바데의 부관 파헤우에게 전에는 살인자이자 약탈자가 아니었냐는 남작에 말에 다 지나간 일이라며 게릴라 전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자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주의자들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갈과 남작의 대화는 또 어떤가. 우리 주변에 그런 이상주의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나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자본의 위력에 순치된 겁먹은 어린양들만 보일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광신적 쇼비니스트인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 역시 마찬가지다. 조국 근대화라는 이상주의를 앞세운 대령은 공화국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일소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항복한 포로에게도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로지 독재공화국만이 선일 뿐이다. 선지자 안토니오처럼 그 역시 가난한 민중에게 뜨거운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모든 종류의 광신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자신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를 뿐.

장장 519쪽에 달하는 <세상 종말 전쟁> 1편은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의 3차 토벌을 앞두고 아쉽게도 끝이 난다. 위키피디아와 구글 검색으로 통해 조사한 카누도스 전쟁사에 따르면 세사르 대령의 위풍당당한 3차 토벌 역시 야군소들의 승리로 끝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 안토니오는 이미 네 차례의 토벌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했고, 첫 세 번은 무사히 넘길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오로지 신의 뜻에 달렸다고 했던가. 역사는 마지막 토벌에 나선 정부군이 최종 승리를 거두고 3만 명에 달하는 카누도스 민중들의 절반에 달하는 15,000명 가량을 학살했다고 전한다. 모든 전쟁 중에 종교전쟁이 가장 잔혹한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전쟁에 참가한 정부군이나 야군소들 모두 어떠한 태도를 가졌을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서 2편도 읽어야겠다.


[뱀다리] 그나저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신간은 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도 요사가 책을 세 권이나 더 썼는데도 말이다. 아마 한국 출판시장에서 요사가 그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19-06-2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깊히 공감하게 되네요. ^^

레삭매냐 2019-06-28 21:15   좋아요 0 | URL
다해서 천쪽이나 되는 대작이라
수년 전부터 미루다가 드디어 도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명불허전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2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맹목적인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으면서 거의 같은 시기의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릅니다...

레삭매냐 2019-06-28 21:1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일찍이 에라스무스가 모든 종류
의 맹신에 대한 경고를 했더랬죠.

겨울호랑이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동시대
의 동학혁명도 있었네요. 문득 외국인이
우리 동학혁명에 대한 글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 지 궁금해졌습니다.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6월은 나에게 독서 슬럼프의 달인 모양이다. 읽기 시작한 책들은 부지기수인데 마무리를 짓지 못한 너무 많다. 제시 볼의 <센서스>를 필두로 해서, <그해, 여름 손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술꾼>, <악어와 레슬링하기> 그리고 <아일린>까지. 하지만 19세기판 막장 소설의 대가라는 알렉상드르 뒤마 선생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으면서 슬럼프 탈출을 선언하게 되었다.

 

뒤마가 1845년에 발표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은 1572년 뜨거웠던 8월의 프랑스를 시공의 무대로 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파트리스 쉐로 감독이 1994년에 연출한 <여왕 마고>도 같이 보게 되었는데, 영화는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상당히 디테일까지도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9세 이자벨 아자니가 20대 초반의 마고 역할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다. 대니얼 오떼이유를 필두로 해서, 장 위그 앙글라드 그리고 벵상 페레 등 당대 한다하는 프랑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16세기 대하 드라마를 연출해냈다는 점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영화의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다. 소설의 리뷰인지 아니면 영화 리뷰인지 나도 헷갈릴 정도다.

 

루터의 신교개혁이 시작되고 카톨릭의 나라 프랑스도 종교개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발루아 왕조의 여명이 다해 가던 가운데, 선대 앙리 2세는 스페인 국왕의 왕비로 자신의 딸을 보내며 마상창시합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눈을 찔려 황망하게 사망했다. 프랑스 궁정에서는 참 별 일이 다 있구나 싶을 정도다.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검은 왕비’로 알려진 카트린느는 발루아 왕조의 영속을 추구하는 권력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네이버 파워라이터 주경철 선생에 의하면 뒤마가 지나치게 카트린느 메치디에게 악녀 이미지를 뒤집어 씌운 것 같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카트린느 메디치는 구교도와 신교도의 평화를 도모했지만, 상 바틀레미의 학살로 알려진 신교도 위그노 학살에 국왕 샤를 9세와 카트린느 메디치의 책임은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앙리 2세의 뒤를 이은 장남 프랑수아 2세마저 요절하고 차남 샤를 9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 카트린느 메디치가 섭정직을 맡게 되었다. 카트린느는 나바르의 왕 앙리(신교도)와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마고)를 결혼시켜 신교와 구교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파리로 찾아온 신교도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뒤마는 구교도 대표로 카트린느와 전쟁영웅이자 그녀가 총애하는 세 번째 아들 앙주공 앙리 그리고 기즈 공작들을 배치하고, 다른 편에는 가스파르 드 꼴리니 제독과 나바르의 앙리 그리고 마고의 애인 라몰 공작을 차례로 등장시킨다.

 

상 바틀레미의 밤, 압도적 다수인 카톨릭 교도들은 국왕 샤를 9세의 묵인 하에 신교도 학살을 시작한다. 화승총과 검 그리고 창 같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들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신교도들을 학살한다. 이미 카트린느가 고용한 자객 모르벨의 총에 맞은 꼴리니 제독은 창 밖으로 내던져지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즈 공작이 그를 죽인다. 한편, 나바르의 앙리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이 살해당하는 동안 샤를 9세를 비롯한 발루아 앙굴렘 집안의 유력자들에게 호소해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그는 카톨릭으로 개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적 동맹자가 되기로 결심한 마고는 가족들을 간신히 설득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제부터 훗날 살리카 법에 따라 앙리 3세(앙주공 앙리)의 뒤를 이어 부르봉 왕조의 시조가 되는 앙리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여느 기독교도와 달리 흑마술이나 주술에 집착하는 카트린느는 자기 가문의 최대 숙적이 나바르의 앙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사위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앙리의 애인 샤를로트의 입술에 독이 묻은 제제를 발라 죽이려는 시도부터 시작해서, 라몰의 이름이 적힌 매사냥 책까지 동원해서 앙리를 죽이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아들 샤를이 희생양이 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뒤마는 상 바틀레미 학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왕비 마고>라는 걸작 소설을 창조해냈다. 소설이 프랑스 궁정에서 벌어지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 그리고 신구교의 갈등이라는 정치적인 면모에 중점을 두었다면 영화는 라몰 백작과 마고의 로맨스에 비중을 두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치른 마고가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가 하룻밤을 지낼 남자를 찾는 장면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난 운명적 연인들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지 않던가.

 

영화에서 샤를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냥에서 멧돼지에게 물려 죽을 지도 모를 상황에, 앙리가 등장해서 단검으로 멧돼지의 숨통을 끊고 샤를을 구해내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소설에서는 카트린느가 매사냥 책에 바른 독 때문에 죽어가는 샤를이 자신의 사후 프랑스 섭정권을 앙리에게 넘기겠다는 결정을 카트린느에게 들려주며 갈등하는 장면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라몰과 코코나의 우정에 대한 개연성이 영화에서는 좀 빈약하다고 생각되는데, 소설에서는 좀 더 진중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교도 코코나와 신교도 라몰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죽음까지도 함께 한다는 우정에 대한 뒤마식 해석이 구시대적이긴 하지만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이번에 출간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이 완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축약본이다 보니,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는 일품이었지만 디테일에서는 좀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나바르 공화국이란 번역을 보고 식겁하기도 했다. 아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려면 200년도 더 있어야 하는데 왠 공화국?

 

뒤마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은 상 바틀레미 학살이라는 당대 첨예하게 맞붙었던 신구교의 갈등은 물론이고,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제국가로 변화해 가던 프랑스 시대상을 보여준다. 인간이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설/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권력에 눈이 먼 발루아 가문의 남자들과 카트린느 메디치는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매부이자 사위인 앙리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신교도의 수장 앙리 역시 살기 위해 종교를 바꾸고, 나바르로 탈출해서는 다시 원래 신교로 그리고 다시 프랑스 국왕이 돼서는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카톨릭이 되는 팔색조 같은 변신을 거듭한다. 이렇게 다양한 군상들이 빚어내는 희비극의 드라마가 재미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레인보우퍼블릭스에서 출간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의 가격은 매우 착하다. 책의 판형이나 디자인도 나쁘지 않다. 다만 번역에 대한 의구심과 판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나중에라도 완역이 나오게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6-24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 <마고 왕비>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 번역본이 나왔어요. 헌책방에서 산 책인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번역본도 완역인지 아닌지 의심이 드네요.. ^^;;

레삭매냐 2019-06-25 10:16   좋아요 0 | URL
아마 그 책은 완역으로 보입니다.
분량이 적잖으니 말이죠...

초역으로 생각했었는데 그전에 한 번
나온 책이었군요. 역시 싸이러스 브로
파워!!!

2019-06-24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6-25 10:17   좋아요 0 | URL
날도 덥고 하여서 그냥 이번 달에는
무리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읽기로
했답니다.

권수가 늘어날수록 헛된 욕심을 부
리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