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 아가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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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이었다. 먼저 샤일록 다시 쓰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하워드 제이컵슨과 나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의 다른 책도 아마 읽기 시작은 했는데 좀 읽다 말았던 것 같다. 같이 산 책인 앤 타일러의 <식초 아가씨>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현대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닥터 버티스타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이런 책이라면 대환영이다. 다만 내가 원작을 읽지 않았다는 데 흠이라면 흠일까나.

 

개인적으로 앤 타일러의 작품은 <파란 실타래> 밖에 읽어 보지 못해서 그녀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식초 아가씨>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탁월했다. 우선 29세의 여주 케이트를 보자. 어머니를 여의고 괴짜 박사인 아버지 루이스 버티스타를 지난 수년 동안 보필해 오지 않았던가. 원작에서는 파도바의 말괄량이 아가씨 카타리나가 현대 미국의 볼티모어에서는 자립성 강하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바로 여동생 버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십대 소녀다. 스페인 어 가정교사로 채용된 건달 같은 이웃집 청년 에드워드 민츠와 썸을 타는데, 이것이 뒤에 화근이 된다.

 

다음 주자는 그녀들의 아버지로 자가면역질환에 삶을 올인한 루이스 버티스트 박사가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자신의 조교로 러시아에서 온 고아 청년 표트르(피요더) 체르바코프의 미국 체류를 위해 자신의 딸인 케이트와의 결혼을 추진하면서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앤 타일러의 기량이 빛나는 순간이다. 버티스타 패밀리는 그러니까 이민국 관리들의 깐깐한 조사를 속이기 위해, 이런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식물학을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중단한 케이트 역시 “인신매매”라며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결국 노련한 버티스타 박사에게 설득되어 표트르와 결혼에 동의한다.

 

사랑을 전제로 한 진짜 결혼이 아니다 보니 매리지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삐걱댄다. 닥터 버티스타는 케이트와 표트르와의 우연한 만남을 주선하고, 두 남녀 사이에 무언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전형적인 괴짜 연구자의 발상이 아닌가, 발칙하기 짝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는 케이트는 애인도 없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다. 그저 자신에 삶에 충실할 따름인데 이런 고난이 닥치다니. 어디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이 순탄하게 이어질 리가 있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건을 자처하는 버니의 유사 남친 에디가 닥터 버티스타의 연구실에서 표트르가 애지중지하며 공들인 일단의 생쥐들을 하필이면 결혼식 당일날 탈취하면서 결혼식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간다. 그렇지 이 정도는 돼야 셰익스피어 원작의 아우라를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지. 얼토당토않은 결혼을 계획한 닥터 버티스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앤 타일러의 셰익스피어 쓰기에 호감이 갔다. 고전의 내러티브를 현재에 안착시키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앤 타일러는 국제결혼, 목적지향적인 괴짜 연구자, 진실한 사랑 그리고 ‘그린 카드’ 획득 같은 어떻게 보면 클리셰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빼닮은 스토리들을 훌륭하게 재창조해내는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식날, 팔려 가는 언니 케이트에게 당돌하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한 버니의 직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어린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제 할 말은 다하고 또 상당 부분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쉴새없이 돌아가는 결혼이라는 과정과 아버지에 대한 희생 가운데 자아를 상실한 케이트의 갈등이야말로 앤 타일러가 다시 쓴 <식초 아가씨>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 장의 셀마 이모가 준비한 결혼 피로연에서 모든 사실이 드러난 다음, 케이트가 하는 선언이야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진실된 외침이 아닐까.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를 지닌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살 맛 나지 않을까.

 

역자가 말한 대로 ‘앤 타일러의 마법’에 빠져 보시라. 기대 이상으로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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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
카란 마하잔 지음, 나동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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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타가 또 나를 이 책으로 인도했다. 최근에 나온 제시 볼의 <센서스>를 읽기도 전에 나는 4년 전 문학동네 창고털이 이벤트에서 업어온 카란 마하잔의 <가족계획>이 떠올랐다. 분명 가져온 기억은 나는데 읽은 기억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책을 골랐을까? 이틀 전 서가를 뒤져서 책을 찾아냈고 바로 읽기에 돌입했다. 너무 재밌어서 줄리언 반스의 요리 에세이 그리고 제시 볼의 신간은 뒷전으로 밀렸다.

 

내일은 우리 달궁 독서모임이 있는 날로 토바이어스 울프의 <올드 스쿨>을 안주로 삼을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카란 마하잔이 울프 샘을 스승으로 모신다나. 나는 울프 샘이 타블로의 샘으로만 알았는데 대단하구만 그래. 여담이었다.

 

<가족계획>은 미국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자라고 다시 미국에 돌아와 스탠포드에서 울프 샘에게 배운 카란 마하잔이 2008년 그러니까 저자가 24살 때 발표한 데뷔 소설이다. 그리고 후속작은 무려 8년 만인 2016년에 나왔다. 이 친구도 과작을 하는 모양이다. 영국 문학잡지 그랜타가 2017년 미국 소설 유망주로 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게 됐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인도 델리다. 소설의 주인공은 집권당 소속 정치인 도시개발부 장관 라케시 아후자와 그의 맏아들(16세 소년) 아르준이다. 라케시는 사랑하는 첫 번째 아내 라시미와 사별 뒤 아들 아르준을 데리고 지금의 아내 산기타와 결혼해서 무려 12명의 자녀들을 생산했다. 아르준의 학교 친구들은 아르준의 동생들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모르고 그를 “찢어진 콘돔”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부른다. 아마 동생이 12명이고 조만간 한 명이 더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상해 보이는 정치인 라케시의 비밀은 임신한 아내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어젯밤에도 아내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장남 아르준에게 그 장면이 딱 걸렸다. 세상에나. 이거야말로 발칙한 이십대 청년이나 쓸 수 있는 서사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독자로서는 너무 재밌는 설정이다. 미치겠구만.

 

한편 아르준은 아침마다 스쿨버스를 같이 타는 아르티라는 소녀에게 흠뻑 빠졌다. 그녀를 꼬시기 위해 아버지가 건설 중인(총체적 실패로 귀결됐다) 고가도로의 아이들인지 뭔지 하는 하드 록 그룹을 결성해서 “록 스타” 행세를 하며 아르티에게 매력발산을 시도한다. 십대들이란. 저자도 잘 모를 시절에 나온 본 조비의 “Living on a Prayer"를 마구잡이로 불러 대고, 메탈리카의 명반 <Master of puppets>를 언급하다니, 고작 저자가 두 살 때 그들이 이룬 위업을 과연 알고나 하는 말일지 나는 그 점이 참으로 궁금했다. 역시나 발칙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아후자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죽은 라시미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신부바꿔치기로 원래 자신이 재혼 상대로 점찍은 아샤가 아닌 산기타와 결혼하게 된 비운의 운명 등에 대한 내러티브가 차례 대로 등장한다. 어라, 그런데 이런 설정들이 21세기 미국인들에게는 참신하게 다가왔을 진 모르겠지만 이미 오르한 파묵이니 하는 작가들이 써먹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내게는 좀 클리셰이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아후자가 깽판을 치고 바로 결혼을 파토냈다면 이야기가 전개될까? 물론 아닐 것이다. 우선 섹스나 하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 라케시는 그후로 줄줄이 아이들을 생산해냈다. 맙소사!

 

<가족계획> 표지에 보면 무드 아홉 개의 낱말들이 부화 중인 달걀처럼 보이는 물체 위에 적시되어 있다. 결혼, 엄마, 집, 아기, 가족, 인도, 정치, 아빠 그리고 비밀. 어때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탁월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바로 저자 카란 마하잔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바로 이 아홉 단어들 속에 구축해 놓은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원하지 않는 결혼에서 파생된 자그마치 12명이나 되는 아기들, 인구팽창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인구대국이 된 인도의 현실을 빗댄 서사는 압도적이다. 아 그리고 보니 인도를 다룬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카스트 제도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역시 스탠포드에서 배운 이는 그런 클리셰이를 타파할 줄 알았단 말인가.

 

인도판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가 라케시가 숭배하는 여성 총리에게 발탁되어 신임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설정도 코믹 그 자체다. 하긴 어느 나라에서는 대통령 역을 연기하던 코미디언이 대통령이 돼서 의회해산을 선포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는 막무가내식 정치를 선도하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현실이 픽션의 세계를 능가한다는 점이 초현실적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 의원을 음해하고, 자신의 사퇴를 발판으로 삼아 총리를 협박하는 정치인 라케시의 뻔뻔함은 우리네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기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카란 마하잔은 로힌턴 미스트리나 아룬다티 로이 혹은 줌파 라히리와는 다른 결의 인도에 대한 스토리를 전개한다. 인도계 선배들이 좀 더 진중한 스토리를 다룬다면, 카란 마하잔은 블랙코미디를 바탕으로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쏘아 붙인다. 물론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정은 아니지만, 대가족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를 비롯해서 세대간의 소통 문제, 출생의 비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밑밥으로 깔고 풍성한 정찬을 준비한다.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올랐다는 카란 마하잔의 두 번째 소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아니면 원서를 중고로 사볼까나, 물론 가독 능력은 안되겠지만 소장용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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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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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줄리안 반스다. 난 이제 아무리 줄리언 반스의 팬이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줄리언 반스의 책을 꾸역꾸역 읽고 있는데 어찌 그의 팬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부엌의 현학자(pedant)가 이번에 도전장을 들이민 분야는 바로 요리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 보자, 요리는 과학인가? 아니면 예술인가? 부엌에서 나의 주임무는 설거지다. 요리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지난 이십년 동안 꾸준하게 설거지를 해와서 이제는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제는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는 꼴을 도저히 참고 넘길 수가 없다. 예전에 아는 동생이 룸메이트와의 불화로 설거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하던데 진짜 개수대에서 징그럽게 생긴 그런 벌레들이 출몰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일찍이 유시민 선생은 가사 중에서 요리만이 유일하게 창조적인 일이라고 하셨었다. 요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엌의 현학자는 글쟁이답게 책에 등장한 레시피의 도움을 받은 모양이다. 문제는 책에 나온 레시피 대로 만든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는 점이다. 600개나 되는 토마토를 반으로 가르고 씨를 빼는 짓을 나는 도저히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양파의 사이즈도 천양지차가 아니던가. 서커스단의 거인의 한 주먹과 나의 한 주먹이 어찌 같을 수가 있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가장 어려운 미션은 바로 ‘적당히’가 아닐까. 요리에 맞는 적당히란 용어는 최소한 가스레인지 앞에 이십년 정도는 서 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 이 장면에서는 왜 나는 최현석 솁의 허세 소금치기 신공이 떠오르는 걸까.

 

에두아르 드 포미안이라는 프랑스 이단아이자 선동가적인 요소를 다분히 가진 요리사를 인용하는 줄리안 반스를 만나 보자.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프랑스 코스 요리가 사실은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비밀을 밝혀낸 사람이라고? 이렇게 혹할 수가 있나 그래. 여러분 그런 대가들이 소개하는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니, 가볍게 무시하고 저항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줄리언 반스가 이 요리 에세이에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 그리고 에세이에는 진짜 띵언들도 넘쳐흐른다. 자고로 업소용 요리도구와 집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요리도구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중국집에서 활활 타오르는 직화를 집에서 어찌 마련한단 말인가. 그러니 당연히 예의 ‘불맛’이 날 리가 없지. 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어떤 음식의 경우에는 집에서 요리해 먹지 말고, 식당에 가서 먹을 것을 정중하게 권한다.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디저트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아니 밀푀유 같이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디저트를 아무리 친절한 레시피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아, 예전에 용산의 세탁소 2층 디저트 전문점에서 만난 밀푀유를 다시 맛보고 싶다. 가격은 그날 네 명이서 먹은 저녁값에 아마 육박했다지. 뭐 그땐 그랬지.

 

솔직히 말하자. 나는 줄리언 반스의 이번 요리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어떤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흠뻑 매료되었다. 문학을 인용해 가면서 부엌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현학자가 마음에 들었단 말이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이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종의 편견이 잘못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일거에 교정이 되진 않겠지만.

 

“요리는 있는 것을 가지고 때우는 것”이라는 주장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 주방부터 혁식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요리 도구들이 도대체 왜 필요하지? 사실 지난 이사를 감행하면서 부엌 정리를 남모르게 하면서 안 쓰는 도구들을 상당 부분 처치해 버렸다. 줄리언 반스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답게! 그런데도 여전히 쓰지 않는 도구들이 넘쳐흐른다. 부엌에 미니멀리즘이라도 도입해야 하는 걸까. 언젠가 쓰게 될 거라는 헛된 망상에 젖어 버리지 못하니... 대나무 젓가락(상당히 유용하다)을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나무젓가락들이 서랍장을 채우고 있다. 말을 말자.

 

지인들에게 네 코스 요리를 대접하면서 가정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사다가 공급하는 건 속임수가 아니라고 했겠다. 그런데 이 부엌의 현학자는 대범하게도 메인 요리를 인근 이탈리안 델리에서 공수했다. 포르치니 라자냐를 통째로 델리에서 자신의 식기에 담아낸 것이다. 요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살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대화와 소통 그리고 나눔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 속임수 정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맛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이런 속임수는 나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다. 부엌의 동지들이여, 줄리언 반스의 요리 에세이를 읽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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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24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반스에 대한 편견 비스므리한 것이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신간을 만나도 반갑지가 않던데... 음~~~ 이번 에세이는 뭔가 좀 다른 것 같네요. 제목부터가 수상해서 쳐다도 안봤는데 리뷰보고 급 궁금해졌어요~ ㅋㅋㅋ
저도 간만에 주말에 주방 정리좀 해야겠어요. 제 서랍장도 한 칸엔 나무젓가락만 한가득...ㅋㅋ

레삭매냐 2019-05-24 16:45   좋아요 0 | URL
어찌어찌 하여 줄리언 반스의 책을 꾸준하게
만나게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연세가 드시매, 좀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부엌의 현학자>는 2003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진 몰라도 빛나는 유머가 돋보이네요.

뒷북소녀 2019-06-03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조리도구들은... 없으면 또 아쉽단 말이죠.

레삭매냐 2019-06-03 13:10   좋아요 0 | URL
있으면 안 쓰구, 없으면 아쉬운 ^^

제가 요리에는 젬병인지라...
 
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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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김재훈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리는 그림을 좋아해서, 아마 네이버에서인가 친구 신청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는 받아 주지 않았다. 그 트라우마로 나는 지금까지도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누군가에게 먼저 친구 신청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고. 그리고 오늘 그가 그리고 쓴 <더 디자인> 첫 번째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생각이 떠올랐다.

 

본문도 좋았지만 말미에 그가 쓴 프랑스혁명 이래,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법복귀족 혹은 부르주아 계급의 디자인 소비 습성에 대한 분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대검귀족들이 그렇게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궁정 예절은 특권의식의 발로이자, 회원제 클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귀족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입장권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혈통귀족의 자리를 대신한 자본귀족이 자본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아방가르드 스타일의 전위적 디자인에 대해서도 저자는 상식과 보편을 엄수하라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어쩌면 상식과 보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 혹은 브랜드는 엄밀하게 말해서 커스터머의 주문에 의한 주문제 생산양식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스티브 잡스 같은 괴짜 천재는 실용성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을 고집해서 결국 대중을 설득하는 마성으로 시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런 성공담이 모든 케이스에 적용되는 건 아니니 염두에 두도록.

 

덜어낼수록 풍부해진다는 뜻의 “Less is more”라는 명언을 남긴 루트비히 비스 반 데어 로에의 아이디어도 마음에 든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 기능주의야말로 디자이너들을 압박하는 하나의 구호가 아니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기술 복제가 용이해지고, 대중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겸하게 된 시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일은 쉽지가 않게 되었다. 아니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만들 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일까? 절대 아니다. 그는 현존하는 요소들을 이용해서 기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싶다.

 

한 때 자유와 해방 그리고 섹시의 상징이었던 청바지가 어느새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하나의 패션으로 인정받게 된 점도 아이러니하다. 리바이스 청바지만 해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디자이너 청바지 가격이 10만원을 훌쩍 뛰어 넘게 된 점을 단순하게 산업적 관점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데님이라는 말도 프랑스 님 지방의 원단에서 왔다고 했던가. 청바지에 리벳을 박아 넣자는 아이디어도 당시로서는 참으로 신박한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아이팟의 경우처럼,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상품화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적 사업가에게나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모르는 정보에 대한 습득이다. 추파 춥스 포장지의 디자인을 현대 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가 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현대 산업 디자인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는 또 어떤가. 자동차 산업은 아무래도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와 기능성이 더 우선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기용해서 디자인을 뽑아도, 정작 자동차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은 디자인이 갖는 힘의 한계에 대한 방증인가 아니면 자동차 제조 기술이 일류 회사들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자동차 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포르쉐의 개발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군수지원 차량을 제작하면서 부역했다는 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며칠 전 다이소에서 전범기업으로 알려진 모리나가 제과에서 만든 밀크카라멜을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는데, 삶 가운데 앎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나의 작은 소신을 지킨 것 같아 조금은 뿌듯해졌다.

 


1편도 흥미로웠는데 <더 디자인> 2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지 궁금하다. 아,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미로가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다시 제주도에 가게 되면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 진짜 가보고 싶은 곳은 오사카의 <빛의 교회>라는 곳이지만 당장 갈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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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8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요런 책이!! 소장욕구 뿜뿜이네요 ㅠ0ㅠ (오늘도 장바구니..)

레삭매냐 2019-05-28 22:02   좋아요 1 | URL
아마 예전에 나왔던 책인데 개정판
으로 나온...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 리뷰를 뒤져보니
9년 전에 <디자인 캐리커처>라는 제목
으로 나왔던 책이네요.

그 때도 리뷰를 썼었구요 ^^

chika 2019-05-30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밀크캬라멜 먹지 말아야겠네요. 반가운 마음에 저도 먹어볼까, 했었는데.

저도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를 보고 싶지만. 유일하게 본태박물관에는 가봤습니다. 좋더라고요 기회되시면 가보길 추천합니다 ^^

레삭매냐 2019-05-30 11:47   좋아요 0 | URL
전범기업 제품은 자발적으로 패스하는
것으로 ㅋㅋㅋ

일본 뭐시기 맥쥬도 먹지 말라던데...

본태박물관은 제주에 있는 것인가요.
당장에라도 가보고 싶네요 :>
 
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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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언 매큐언의 읽지 않은 책은 3권이 남았다. 항상 그런 법이지. 전작 읽기를 시작하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은 다 구해서 읽게 되는 법. 이언 매큐언의 신작 소설도 올해 출간 예정이라고 하던데, 구간과 신간을 기대하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이번에 새로 나온 <검은 개>는 내가 읽은 이언 매큐언의 12번째 책이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준과 버나드 트리메인 부부의 사위 제러미다. 8살의 나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제러미는 삼십대 중반에 만난 아내 제니와 가정을 꾸리면서 유년의 상처를 치유하고 비로소 삶의 구원을 얻었다고 했던가. 남들과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트리메인 부부에게서 유사 부모라는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세계대전에서 영국 첩보대의 일원으로 일한 버나드와 통역사로 복무한 준은 전쟁의 폐허에서 새로운 유럽의 재건을 꿈꾸며 공산당에 가입한다. 원래부터 합목적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던 버나드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준은 1946년 직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떠난 신혼여행 중, 랑그도크 지방에서 “검은 개”를 만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채를 만나 신비주의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준과 버나드 부부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출판사 사장이었던 제러미는 장모 준이 병에 걸려 프랑스에서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와 요양원에 지내는 동안, 죽음을 대면하게 된 준의 회고록 작성에 돌입한다. 자신의 부모처럼 생각했던 준과 버나드의 삶에 대한 추적은 어쩌면 제러미가 추구했던 구원의 완성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노련한 저자 이언 매큐언은 한 때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젊은 공산주의자 청춘들의 삶에서 실패한 것으로 귀결된 사회 변혁에 대한 이상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준이 요양하던 영국 윌트셔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현장으로 달려간 장인 버나드와 제러미의 일탈적 모험으로 이어진다. 준은 아마추어 곤충학자로 활동하던 버나드는 아름다운 심페트룸 상귀네움(Sympetrum sanguineum: 고추잠자리의 학명)을 잡아 살충병에 포획하는 젊은 신랑에 모습에 경악을 감추지 않는다. 이 젊은 두 부부의 간극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메울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물론 베르주리 인근에서 준이 경험하게 되는 ‘검은 개’와의 조우에 비하면 고추잠자리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자신을 다른 새의 둥지를 차지하려는 “뻐꾸기”라고 생각하는 제러미에게 준과 버나드 부부의 미스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 소재가 아니었을까. 제러미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장인 장모 부부의 결혼생활에 개입하면 할수록, 미스터리가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사적 관계인 부부 사이의 간극과 갈등도 해소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물질 조건들을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거대한 사회적 변혁을 이루겠냐는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은 또 어떠한가.

 

장모 준이 살던 랑그도크 베르주리 인근을 하이킹하던 제러미가 대면하게 된 식탁에서의 느닷없는 가정 폭력에 현장은 유럽 대륙에서 행해진 숱한 폭력의 재현이 아니었을까.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대항하는 마키단의 활약과 폴란드 마이다네크 수용소에서 싹튼 제러미와 제니의 사랑, 1956년 헝가리 사태를 계기로 결국 공산당에 환멸을 느낀 노동당 정치인 버나드 트리메인의 결정 등이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역사적 현실 앞에 귀결되는 장면을 통해 이언 매큐언은 우리 인간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검은 개>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정치적 색깔을 지닌 책이 아닐까.

 

물론 트리메인 부부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배경에는 그놈의 ‘검은 개’가 있었다. 어쩌면 트리메인 가족에게 검은 개는 금기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 제러미가 준과 버나드의 회고록을 쓰겠다고 나섰을 때, 괜한 짓을 한다며 트리메인 자녀들이 반대하지 않았던가. 마키단을 수색하기 위해 독일 게슈타포가 마을에 투입한 수색견이라는 시장 엑토르의 추론 앞에서 저자가 구사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하고, 얼마나 멀리 나갈 것인지 궁금해졌다.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 역사 앞에 선 개인의 책임에 대해 그리고 도도하게 진행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우리가 보고 느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은 좀 버겁기까지 했다. 과연 미래의 거장다운 풍모가 느껴지는 서사가 아닐 수 없다.

 

대단히 정치적 서사에 개인의 삶과 갈등 그리고 구원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를 녹여낸 이언 매큐언의 내러티브는 그 어느 작품보다도 강렬하게 나를 타격했다. 아마 그 후유증은 적잖이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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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5-21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언 매큐언...우아 12번째라니!!!! 근데 <여행의 이유>읽으면서 레삭매냐님 생각 났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05-21 16:35   좋아요 1 | URL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와 더불어
제가 자신 있게 모든 작품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이한 작가 중의 하나랍니다.

그나저마 <캄포 산토>는 다시 읽고 리뷰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목나무 2019-05-21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넛셀>에 실망하고 나서 이후 나온 <솔라>도 안 읽고 이건 한번 읽어볼까 말까 고민만 하던 중인데... 음~~~ 딱히 빨리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안드네요. ㅎㅎㅎ;;;;
그래도 자칭 이언 매큐언 빠순이니 언젠가는 읽겠지요. ㅋㅋㅋ

레삭매냐 2019-05-21 17:35   좋아요 1 | URL
<넛셸>은 말씀해 주신 대로 좀 실망
이었지요. 아무래도 연세가 드셔서
패기 혹은 총기가 쩜... ㅋㅋ

그런데 <솔라>는 무척 재밌게 읽었죠.

요 책은 한참 때 나온 책이라 재치와
이언 매큐언 특유의 블랙 유머가 많이
첨가되어 있답니다.

syo 2019-05-21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레삭매냐님 발이 빠르시다....

이 책 최초의 알라딘 리뷰가 레삭매냐님 리뷰가 된 것은, 이 책 입장에서도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9-05-21 21:53   좋아요 0 | URL
지나친 상찬이시지만...

너무 기분이 좋삽니다, 감사합니다 시오님.

뒷북소녀 2019-05-23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글 읽으면 스포 당한건가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