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톈 중국사 5 : 춘추에서 전국까지 ㅣ 이중톈 중국사 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월
평점 :
이달에는 이 책까지 해서 모두 12권으로 나의 독서편력을 마무리할 것 같다. 주말에 도서관에 빌려서 못다 읽은 책들을 반납하러 갔다가 빌려 왔다. 존 톨런드의 한국전쟁을 먼저 시작했는데, 가독성이 좋은 이중톈 선생의 중국사 춘추전국편을 먼저 읽었다.
장장 500여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시절을 250쪽 남짓한 책에 담으려는 저자의 노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길게 늘여 쓰는 것보다, 축약해서 간략하게 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리뷰를 쓰다 보니 절실하게 느끼겠더라. 취사선택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지 싶다.
선생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사건으로 전자는 제환공의 패주 등극과 후자는 진나라 효공시절 상앙의 변법을 꼽는다. 서주의 동천 이래, 정나라 장공이 패주 행세를 했다. 자그마치 22년 동안 동생과 생모의 반역을 기다린 정장공이야말로 희대의 군주가 아닐까 싶다. 견융족의 침입으로 호경(함양)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 주식회사 시스템의 주나라의 위세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전히 존왕양이 시스템을 방국제도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지만 시절은 이제 더 이상 도의정치가 먹혀들지 않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변모해 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제환공을 보필해서 패주에 자리에 오르게 만든 관중이야말로 오늘날의 중국을 설계한 명재상이 아닐까 싶다. 근본적으로 재상 관중이 만든 나라는 훗날 군국주의 국가 모델로 봐도 무방하지 싶다. 군대야말로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나아가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관중은 3만의 정예병을 양성해서 천하제패에 나서게 된다. 제나라를 필두로 한 주나라가 책봉한 제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추구하면서 소국들과 연합해서 회맹을 갖고 패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무실해진 주나라를 대신해서 천하의 도를 행하게 되었다.
이중톈 선생은 중원에 자리잡은 진(晋)나라야말로 화하(華夏), 그러니까 중국의 실제를 있게 만든 나라였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망명생활을 마치고, 이웃 진목공의 도움으로 귀국해서 나라의 군주가 된 공자 중이 그러니까 진문공은 남방의 초나라를 한 번의 전쟁으로 제압하고 명실상부한 천하맹주의 자리에 오른다. 남방의 강자 초나라는 처음부터 제왕을 칭하면서 만이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어쩌면 초나라-오나라-월나라로 이어지는 패권국가가 중원의 예악을 따르지 않는 실리적인 방식으로 패권을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제나라의 전진 일가가 주왕실로부터 제후로 인정되고 삼진의 분리로 전국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서양 중세시대 기사도 정신이 후퇴하고, 근대화된 보병이 출현하면서 전쟁의 방식이 달라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한편 중원의 패자 진나라와 남방의 강국 초나라 사이에 낀 소국들인 정나라, 송나라 그리고 노나라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신세였다. 진나라가 강성할 때는 진나라 편에 붙고, 또 초나라가 국운이 하늘을 찌를 적에는 초나라 편에 붙은 이 세 개의 소국들을 현대의 시점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초나라에 포위된 송나라를 구할 의향도 없으면서 사지에 파견된 진나라 장군 해양과 조국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포로를 자처한 대부 화원의 고사는 정말 눈물겨울 정도다.
한편 주나라의 동천 이후, 제후로 임명되어 서방의 견융족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진(秦)나라는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한 상앙을 받아 들여 훗날 전국통일의 기초를 닦는데 성공한다. 춘추대의라는 표현이 있듯이 도의와 예악을 중시했던 춘추시대와 달리 전국시대는 오로지 실력이 말해주는 시대였다. 전국의 수많은 사인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사주는 이가 있다면 나라와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기존의 춘추시대가 귀족 중심의 기존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한 시대였다면, 전국시대는 실력이 모든 걸 증명하는 시대였다. 전쟁에서도 패하고 복종을 맹세하면 국가로 삼아 남을 수 있었지만,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에서 보듯이 상대방을 최종적으로 섬멸하는 것이 전쟁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전쟁에 패한 병사들과 성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학살극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상앙의 변법으로 돌아가 진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진나라는 중원의 제후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나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진목공을 저자는 준패주로 간주했던 것일까. 진나라 고유의 장례 풍습인 순장 때 수많은 사람들을 제후와 같이 묻었다는 이유로 패주의 자리에 올리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방인 상앙은 군주의 총애를 받으면서 엄격한 법가주의에 기초한 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기존 세습귀족들의 특권을 모두 폐지하고, 전자에서 능력을 발휘한 신귀족들을 등용하면서 모든 권한을 군주에게로 돌리는 군현제로 나라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법치주의의 기본인 엄격한 처벌 정책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효공과 상앙은 아예 나라를 통째로 미래의 통일전쟁에 적합한 군국주의 국가로 개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상앙의 최후가 수많은 개혁가들의 그것처럼 불운했다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는 예측했지만, 진효공 사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거라는 예측은 왜 하지 못했을까.
맹상군의 식객으로 등장하는 풍환의 고사도 흥미진진하다. 제왕의 권위를 능가할 정도의 명성을 지닌 공족 맹상군 휘하에는 자그마치 3,000명의 식객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주군인 맹상군의 식사와 같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식객들에게 자신의 밥상을 보여주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야사도 첨가되긴 했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재주를 지닌 사인들이 맹상군의 휘하에서 활동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던 공자 이인의 미래에 거금을 투자한 상인 여불위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시절인연처럼 의기투합한 여불위와 공자 이인의 운명은 던지는 족족 맞아 떨어졌지만, 결국 문신후 여불위는 편안한 노후를 맞지 못하고 진왕 정, 훗날 진시황에 의해 자결 명령을 받지 않았던가.
춘추전국시대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전국시대 초기 가장 융성했던 국력을 자랑했던 위나라가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서방의 진나라에게 복속당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춘추시대 초반의 정나라의 그것과 유사하다. 결국 후발주자에게 잡혀 먹힌 셈이 아닌가.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려면 죽이라는 공손좌의 충언을 듣지 않은 위혜왕은 결국 통한의 패전을 겪게 된다. 결국 진나라의 공격 앞에 하서지역의 영토를 할양하고 수도마저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기는 수모를 경험한다. 군주의 잘못된 선택이 나라를 거의 망국에까지 몰아넣은 것이다.
저자는 합종연횡으로 한 시절을 호령했던 소진과 장의에 대해서도 도박꾼과 사기꾼이라는 표현으로 일갈한다. 자객에게 암살당한 소진은 사후 자신의 복수를 위해 군주에게 범인을 잡을 묘책을 알려준다. 도둑으로 몰려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장의는 자신의 혀가 온존하지 않느냐는 말로 미래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도박꾼과 사기꾼에게 올바른 국가관이나 주군에 대한 충성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명성 그리고 치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박할 수밖에.
이중톈 선생의 중국사는 읽을수록 재밌다. 그냥 설렁설렁 읽기 시작했는데 이러다가 팬이 될 기세다.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