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백씨다. 이번에도 독자를 위한다며 구체적인 실례를 대지 못하고 독자를 위한 정가제타령을 한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뭐가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한 것인지 칼럼에서 아무런 말도 없다. 입으로만 독자를 위한다는 것이다.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러면서 총선 전에 법 개정을 요구한다. 사실 지금 그따위 도서정가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거법 개혁, 공수처 설치 그리고 검경조정안 같은 사안들도 해결이 안되는 마당에, 도서정가제에 대한 개정안 타령을 하는 것도 우습다.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주는 10% 할인과 5% 포인트가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 생각이지만 백씨는 항상 출판사와 중소서점 편이다. 독자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면서 독자를 위한다고 한다. 할인을 적용받는 독자에게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독자들에게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지 그는 칼럼에서 밝혀야 한다.

 

그리고 책이 공공재라는 신박한 주장은 또 어떤가.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산 책이 공공재라고? 거시적 차원에서는 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개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어떻게 해서 내가 산 책이 공공재라는 것인가. 공공이 함께 쓰는 물건을 개인의 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있나. 내가 산 책은 나에게는 소비재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1980년대처럼 전국에 서점이 많아질 거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 이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으니 동네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서 읽자이럴 거라고?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40년 전에 모바일폰이 없었고, 지금처럼 다양한 채널이 있었던가. 어떤 이들에게는 책보다 재밌는 것들이 널려 있는데 왜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책의 경쟁자는 도서정가제다.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가 아닌가. 지금도 책값이 비싸다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면 전국의 책읽는 인구들이 불길처럼 늘어날 것이다? 이런 해괴한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이런 허튼 소리보다 차라리 전국민 책읽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던 안되던 책읽는 훈련이 안된,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도서정가제는 그런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도 조금이라도 싼 책을 사기 위해 온라인 서점에서 발행하는 할인쿠폰, 출석체크, 카드포인트, 카드할인 등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하는 기존 독서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100% 완전한 도서정가제 시행이 아니라면, 도서정가제 타령은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책사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할인에 익숙해진 우리 현실에서 100% 완전한 도서정가제 시행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제발 독자들을 위한다는 핑계는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서정가제는 업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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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새 2019-04-27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독서율이나 확 끌어올리고 가격 따졌으면 좋겠습니다ㅜㅜ 1년에 책이 4~5만 권 찍혀도 제자리걸음인데. 책과사회연구소가 아니라 책‘값‘사회연구소인가봐요...

레삭매냐 2019-04-27 21:48   좋아요 2 | URL
제 말이 바로 그 말이랍니다...

독서율 향상을 위한 제언 같은 의견
대시 오로지 법률 제정으로 무언가
를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업자 편이라서 씁쓰름하네요.

AgalmA 2019-04-28 0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온지 몇 년 안 된 책이 절판되는 상황인데, 도서정가제도 굵직한 출판사에게나 도움되지 소규모 출판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게다가 굿즈로 돌아가는 온라인 서점 판도를 생각하면 영세한 출판사는 더 사면초가죠. 저도 굿즈쟁이이긴 합니다만; 사람들이 잘 안 찾아보는 책들 골라 보는 노력이라도 하는데, 책 취향이 별로 없고 가끔 기분 내키면 책 사는 사람들은 눈에 띄는 책만 겨우 살피겠죠.
에효.

레삭매냐 2019-04-29 11:14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초판 5,000부가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2,500부 정도 찍는 모양입니다...

언급해 주신 대로 메이저 출판사 외에는
도서정가제 시행이 그다지 의미 없어
보입니다.

굿즈 개발은 인터넷 서점의 불황 탈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04-28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9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8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9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스카니오 2019-05-01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벌써 백씨 아녀도 장은수 같은 사람들도 벼르고 있는 중이던데요
여기저기 완전도서정가제로 동네 서점을 살려보자 이런 학생기자단 뉴스 나오는 것 보면 뭐..ㅎㅎ
한가지 더 재미난건
저 분들
누가 감히 도서정가제 반대하는 글을 쓰는지 아이디도 꼼꼼히 체크하시는것 같더군요
매번 똑 같은 아이디가 도서정가제 반대하는 글 쓴다면서 예의주시하시는 듯.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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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답사기는 이제 한국과 일본을 거쳐 중국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수년 전, 부여답사에 참가하면서 그 소문난 유홍준 선생의 답사를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선생의 말에 다 동의하는 바는 아니었지만(특히 박물관 입장 유료 정책에는!), 역시나 고수를 따라하는 진정한 답사는 학창 시설 이래 얼마 만이었던가. 얼치기나마 답사를 기획하기도 해서 그런지 선생의 답사기는 한 때 경전처럼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다른 곳도 아니고 오래전 NHK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를 걷는 길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도저히 안보고는 배길 재간이 없더라. 당장 주문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흑백 도판에 평범한 지질이었던 것 같은데 단가가 제법 올라가긴 했다만 칼라 채색에 종이질도 아주 우수해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역시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선생의 답사기가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선생은 중국 답사 일번지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서회랑과 돈황을 꼽았다. 출발점은 관중평원이었다. 일찍이 초한지의 주인공이었던 유방과 항우가 쟁패를 벌였던 중국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관중 지방 말이다. 지금도 수도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장안은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로 군림해 왔다. 당나라 이후, 수도가 된 적은 없지만 지금은 시안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중국 일대일로의 거점 도시가 아닌가 싶다. 선생은 서론에서 광활한 중국 전역을 답사할 수는 없으니, 고도 위주의 답사 프로젝트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언급하셨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답사란 모름지기 발로 해야 제 맛이다, 그런데 그 넓은 땅덩이를 어찌 다 발로 밟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때로는 문명의 이기도 이용해야 하는 법이지.

 

그렇게 예술가 도반들과 함께 나선 하서회랑과 돈황에 대한 선생의 썰들이 중국답사기의 전반을 장식한다. 중국 문명사는 자고로 흉노로 대변되는 유목민족과 한족 정주민족 간의 투쟁의 역사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의 재물을 빼앗기 위해 장성을 넘어야 했다. 중원의 강력한 통일국가가 존재할 적에는 유목민족은 장성을 넘을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분열의 시절만큼 그들에게 좋은 시절은 없었다. 한무제는 우리나라의 한사군을 필두로 해서, 베트남의 한구군 그리고 서역 경영에도 적극적이어서 무위, 장액, 주천 그리고 돈황에 이르는 하서사군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하서사군과 돈황의 막고굴이 바로 이번 유홍준 선생이 다루는 답사기의 핵심이다.

 

그동안 꾸준하게 중국 관계 서적들을 읽어서 선생이 들려주는 중국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담이 없었다. 다만 아무래도 미술사학 쪽에는 문외한이다 보니 그저 선생이 이끄는 대로 달려갈 뿐이었다. 선생도 나처럼 최근 얼치기 방식의 복원에 대해 혐오한다는 점에 공감이 갔다. 아무런 미적 의식도 없이 그저 사적지에 테마파크식의 조각상을 만들고, 돌덩이에 붉은 글씨를 써 내리는 게 과연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런 점에서 문화재 복원을 할 때는 아무리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는다고는 하지만,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런 복원 작업도 시절이 흘러 새로운 창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또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도 동이족이라고 중국으로부터 오랑캐 취급을 받았으면서, 또 다른 오랑캐들인 흉노족을 무시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선생은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우리 역시 중화민족이 아닌 변방민족이 아니었던가. 중국 역사에 등장하던 수많은 민족들이 한족문화에 동화되었지만 숱한 침략을 당하면서도 근린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문화적으로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고 선생은 새삼 강조한다.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시원을 이루는 운강석굴 유적을 필두로 해서 다양한 석굴 유적이 성행한 것에 대해서도, 그 나라의 상황과 조건에 맞춰 문화가 이루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중국에는 사암질의 석굴이 있어 석굴에 감실을 비롯해서, 석태니소(石苔泥塑) 기법으로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에 맞는 산사가 있지 않은가. 물론 석굴암 같인 인공석굴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서역 간다라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중국인들의 모습과 달라 보이는 불상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통일신라시대 괘릉에 우리의 그것과는 얼굴의 조각상이 있지 않은가. 나름 중국 석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맥적산석굴은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좀 더 문화적으로 세련되진 성당시대의 육덕진 불상보다 나는 북위 시대 고졸하고 소박해 보이는 불상이 더 마음에 들더라.

 

선생은 단순하게 문화 유적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다양한 조건에 대해서도 치밀한 자료 조사와 인과관계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독서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아마 나라면 이백이나 두보 타령을 하면서 유람선에 올라 술잔을 거침없이 입 안으로 털어 넣었겠지만, 선생은 그 시간에도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학생의 심정을 자료를 파셨다고 했던가.

 

중화제국에서는 흉노족과 대결하기 위해 마필이 반드시 필요했다. 현재의 전차에 해당하는 흉노족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한무제는 한혈마를 애타게 원했다. 무위 인근에서 발굴된 뇌대한묘의 청동제 마답비연상의 기상은 정말 웅대했다. 정말 이런 모조품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돈황 답사팀은 하서주랑을 따라 북상하면서 하서사군을 섭렵한다. 개인적으로 답사의 묘미는 추가가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안보고 가느냐는 말에는 정말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기껏 답사 코스를 짰지만, 막상 가지 못하게 될 적에는 과감하게 패스할 줄 아는 미덕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답사는 나만 혼자 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상황이 되지 않는데 억지로 꼭 가야 하는 곳은 없다. 훗날을 도모하면서 미련을 버리는 괴로움은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내게는 영월 수주면의 흥령선원지가 그런 곳이었다.

 

유홍준 선생의 중국답사기 1편은 돈황 막고굴을 목전에 두고 명사산 월아천 오아시스에서 막을 내린다. 당장에라도 2권을 읽고 싶지만 아쉽게도 어제 집에 두고 와서 이따가 집에 가서 읽어야할 것 같다. 이런 기세라면 이달 내에 모두 다 읽지 않을까 싶다. 선생이 소개한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돈황>은 9년 전에 읽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리뷰를 찾아 봐야할 것 같다. 기록은 이래서 중요하다. 2권을 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아쉽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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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살던 곳에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줄창 러브송만 들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어느 이방인의 마음을 달래 주던 디제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데이빗 앨런 부쉐.

 

어제 라디오로 야구 중계나 들어 볼까 하고 수많은 라디오 앱들을 검색해 보았으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 시절 즐겨 듣던 라디오 디제이의 근황을 엿볼 수가 있었다.

 

유튜브가 있어 숱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이 양반이 자신의 정체를 엄청 숨기는 모양이다. 인터뷰 진행하는 동안, 페도라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시청자들에게는 뒤통수만 보여 준다. 아니 그럼 그동안 아무도 이 사람의 정체를 몰랐단 말인가.

 

1982년부터 방송을 베드타임 뮤직을 진행해 오셨다고 하는데, 자그마치 37년이나 진행해 오셨네 그래. 어제 마침 시간이 맞아 데이빗 앨런 부쉐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가 있었다. 그전에는 참 목소리가 쎅시 그 자체였었는데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는지 예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역시 흐르는 세월, 그 누가 막으리오.

 

그러니까 대부분의 라디오 청취자들은 이 디제이의 진짜 얼굴을 모르는 것이다. 혹시 일상 생활에서 누가 목소리를 듣고 알아 보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인터뷰어의 말에, 데이빗 앨런 부쉐는 자기 삼촌이 자기 목소리와 같다며 눙친다고 했다. 역시 고수다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는 질문에도 인터뷰어가 원하는 대답 대신, 모든 러브송을 좋아하노라고 말하고 피해 나가더라. 대단하구만 그래.

 

라디오시대가 곧 죽을 거라는 지난 세기말의 예언은 정확하게 틀렸다.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전파를 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이제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그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텔레비전은 눈과 귀를 다 필요로 하지만, 라디오는 듣는 귀만 필요하지 않은가. 무언가 들으면서 일도 할 수 있으니, 요즘 같이 멀티플레이가 필요한 시절에 어쩌면 딱 들어맞는 매체가 아닌가 싶다.

 

미지의 디제이 아저씨가 과연 언제까지 방송을 하실 지 궁금해졌다. 모쪼록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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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28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독서모임 멤버가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어요. 방송 프로그램 이름은 ‘페미니스트의 책장’입니다. 방송하고 있는 멤버가 제게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라고 제안을 했는데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저의 정체를 숨기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면 많이 긴장할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19-04-30 10:30   좋아요 0 | URL
데이빗 앨런 부쉐처럼 페도라 모자를
쓰고 출연하시는 건 어떨지요 ㅋㅋ

신비주의 컨셉이네요.

맞습니다, 일단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
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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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어둠컴컴한 어느 시데마떼끄에서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 블루> 무삭제판을 자막도 없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 베티의 삶이 화려하고 좋았을 적에는 오렌지색이었다가, 그녀의 광기가 폭발하는 후반으로 갈수록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노란 세계>로 출발한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푸른 세계>를 읽으면서 그 영화 <베티 블루>의 기억들이 그렇게 소환되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이름은 없지만, 편의상 나중에 붙게 되는 이름은 소로야로 부르자. 순전히 얼치기 독자의 편의적 발상이니 이해해 주시길. 어려서 입양된 소로야는 아버지가 죽은 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선고를 받는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다만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니면 애써 외면하면서 살고 있을 뿐.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잊지 않는다면 일상의 생활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두 죽을 텐데하고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로야만큼이나 저자 에스피노사의 삶도 그랬던 모양이다. 오래 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는데,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아마 그 소설에서도 죽음이 주제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푸른 세계>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죽음이 사나흘 밖에 남지 않은 소로야는 망자들의 휴식처로 알려진 ‘그랜드호텔’로 향한다.

 

비행기를 타고, 자신을 그랜드호텔로 안내해줄 소년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 차가 퍼져서 단봉낙타를 타기도 한다. 작가는 죽음이 어쩌면 그런 경로를 통해 도달하게 된다는 걸 문학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걸까. 우매한 독자는 이게 판타지인지 아니면 리얼리티의 재현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구상하는 바를 읽지 못한 어쩌면 실패한 독서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밝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말이다.

 

낙타몰이는 하나의 신고식이었던 모양이다. 사지가 없는 몸통소년을 비롯해서 소로야와 비슷한 상황, 그러니까 죽음을 기다리는 열 명의 이들이 있는 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들 얼마 살지 않은 이들이지만, 그곳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충분히 삶에 대한 의지를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숙명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죽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는 동안, 소로야는 그들의 리더가 된다.

 

임신한 여자와 춤을 추기도 하고, 어쩌면 춤이라는 행위 자체가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두가 추정이다. 에스피노사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는 모호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열심히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왜냐구? 나 역시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꾸만 죽음 그리고 소멸에 대해 생각해서 무엇하리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자유로운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면 대부분 돌+아이를 떠올린다. 일탈을 배격하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은 질서와 안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앞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여력을 쏟을 여유가 없겠지. 그런 점에서 그랜드호텔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잉여일 따름이다. 지금은 그런 대로 유용하겠지만, 어느 순간 나도 잉여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혼돈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니 불과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읽은 내용들인데도 벌써부터 콘텐츠에 대한 기억들이 휘발해 버리고 있다. 아마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내가 의도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억들을 지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두꺼운 책보다도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무지몽매한 독자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중한 접근 대신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말이다. 생존율 3%의 기적을 이겨내고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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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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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기대를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 앨리스 먼로와 토바이어스 울프의 책들을 연달아 읽으면서 문학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으로 만나는 알리 스미스가 소설 <가을>에서 구사하는 내용에 대한 무지 탓일까? 유튜브에서 원어민 리뷰어들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댔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나는 알리 스미스의 사계절 시리즈의 시작에 시작하는 <가을>에 연착륙을 실패한 모양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많은 비밀을 가진 101세의 대니얼 글럭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소설이 시작되었던가. 광고에서 그렇게 떠들어 댔듯이 소설 <가을>은 3년 국민투표로 결정이 난 브렉시트라는 희대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니 이 소설은 브렉시트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십년 전부터 야심차게 기획된 유럽연합이라는 이상은 영국의 브렉시트 탈출로 위기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직까지도 노딜이니 딜이니, 국민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진행 중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로 통합이 궁극적으로 독일 경제의 유럽 제패라는 근간이 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신구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체적으로 젊은 세대는 EU 잔류를 그리고 노년 세대는 브렉시트를 선택했다고 하던데...

 

대니얼 글럭 씨와 엘리자베스 디맨드 양의 69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 넘은 우정의 발단은 이야기였다. 알리 스미스는 대가다운 실력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 이야기를 필두로 해서 골디락스 스토리까지 도입해서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의 희망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물론 그에 대한 강력한 걸림돌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무섭다는 걸 말해 주고 싶은 걸까. 왜 동성애자 노인이 자신의 딸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고, 자신에게도 하지 않는 오만 이야기를 다 하는지 그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방송을 통해 만나게 된 조이와 야릇한 관계로 빠지지 않았던가. 그래서 세상사, 알 수 없다는 거겠지만.

 

알리 스미스는 영국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나같은 이방인 독자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당최 알 수 없는 그런 인물들을 무시로 등장시킨다. 나는 당혹스럽다. 이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파악하고 읽기를 해야 하는 건가하고 말이다. 귀찮다, 그냥 읽자로 귀결이 된다. 그런데 1963년 영국 내각을 붕괴시킨 크리스틴 킬러의 재판 이야기를 비롯해서, 미술사학도로 영국 팝 아트의 시조새 같은 여인 폴린 보티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냥 넘어갈 수가 있을까. 결국 리뷰를 쓰기 전에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급하게 찾아보았다.

 

엘리자베스의 꼰대 지도교수는 폴린 보티로 자신의 논문 주제를 변경하겠다는 발칙한 제자의 의견을 극력 저지한다. 사료가 없다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뿌리 깊은 편견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브렉시트 이후, 급격하게 달라진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보통 사람들이 극우주의자들의 선동에 넘어가 그야말로 혐오와 분노가 넘실거린다. 하긴 우리는 또 그렇지 않은가. 알리 스미스는 브렉시트를 콕 짚어서 말하지 않는 정도의 여유를 보여 주지만, 나는 왠지 많이 불안해졌다.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의 모습에서,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일들이 연상되었다.

 



28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폴린 보티에서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녀가 활동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단한 미녀가 똑똑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영국에서 여성 팝 아트의 시조라 불릴 만한 경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삶을 살다가 갔다. 무시, 소실 그리고 재현을 거듭할 거라는 엘리자베스 엄마의 새로운 친구 조이의 지적이야말로 당대 여성 예술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특히 엉덩이를 형상화한 <BUM>의 아우라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예술에 문외한이다 보니 좀 더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영국 보수주의자들이 그야말로 아이돌처럼 떠받드는 마거릿 대처는 영국병을 치료하겠다고 민영화에 나섰다. 과연 정부가 추진한 민영화가 경쟁을 촉진하고, 시민들의 삶에 공언했던가? 대처가 죽었을 때, 국장을 치르면서 경쟁 발주 입찰을 하라는 시민들의 비아냥거림이 난무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처가 말하던 영국병은 과연 치유되었을까? 엘리자베스가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신속서비스를 신청하는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속이 터질 지경이다.

 

만연한 관료주의는 시민들의 소중한 시간을 마구 잡아먹는다. 나도 예전에 외국에서 여권 갱신을 하면서 사진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영사관 직원의 지적을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오롯하게 나 자신을 엘리자베스의 상황에 대입해 볼 수가 있었다. 하긴 서구에서 그런 엄격한 관료주의의 적용이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니었으니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서구 사회가 그렇게 자랑하는 법률과 시스템이 시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이 만든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내가 언제 깨달았던가. 그래서 관료들은 그런 작은 오류 하나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거대한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라는 걸 수 차례의 혁명을 통해 깨달아서일까 어쩔까.

 

리뷰를 쓰기 전에 알리 스미스의 <가을>이 나랑 맞지 않는 책이라고 판단하고 팔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해놓은 메모를 살펴 보니 일단 나머지 다른 계절들을 읽어 보고 나서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알리 스미스의 책을 읽어 보고 나서 하던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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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4-22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계절에 대한 시리즈라 사실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하던 중이었는데....
음~~~~ 일단 레삭매냐님의 나머지 계절들에 대한 리뷰를 보고서 결정하겠습니다! ^^

레삭매냐 2019-04-22 11:44   좋아요 0 | URL
그냥 단순한 책인 줄 알고 달려 들었다가
낭패를 보았습니다.

제가 리뷰에 담지 못하 이야기들이 더 많
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ㅠㅠ 역량 부족과 게으름이 -

집에도 알리 스미스의 다른 책도 두 권인가
더 있는데, 어쩌면 그 책들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계절 시리즈가 팍팍 나오지 않으면 아마
읽지 않게 될 지도.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