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꼭 읽고 싶어서 어제 자기 전에 주문할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바로 일어나자 마자 주문했다.

 

99%의 확률로 오늘 배송이 된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만날 속으면서도 또!

 

1%의 확률로 나가리가 되었다.

집에 가야지.

 

당일배송의 신화는 이제 믿지 말아야지. 다시는.

그러면서도 또 속겠지만.

 

[뱀다리] 하도 궁금해서 배송추적을 해보니 어디에 고이 머물러 있구나.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해당 택배사는 동아시아 핵폐기물같은 택배사라는 글이 떠억하니 뜬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주 당당한 구라 당일배송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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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12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일배송한다고 하고서 당일배송을 안하디니 알라딘도 구라가 넘 심하네요^^;;;

레삭매냐 2019-03-13 08:55   좋아요 0 | URL
그런데 반전은 밤 11시 1분에 도착했더라는...

카스피 2019-03-14 08:39   좋아요 1 | URL
헉 한밤중에 배달하네요@.@

moonnight 2019-03-14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한밤중에@_@;;; 저는 사기만 하고 안 읽어서 너무 빨리 배송되면 뭔가 죄책감이-_- 당일배송은 레삭매냐님같은 분들을 위한 정책 ^^

레삭매냐 2019-03-15 09:36   좋아요 0 | URL
일종의 자발적 압박이라고나 할까요?

그만큼 책이 빨리 왔으니 속히 읽어라는.
 


 

지난주에 김재환 감독이 연출한 <칠곡가시나들> 상영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영화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제작과 상영을 한 회사가 하게 되면 벌어지게 되는 작극의 한국 영화판 문제는 일찍이 미국도 경험했었다.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독과점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특단의 규제책을 내놓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제작과 상영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방안이었다.

 

한국의 상황을 보라. 씨제이와 롯데시네마가 제작한 영화가 그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영화상영관에 걸리는 상황을. 입으로는 관객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극장에 가서 보면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로 상영시간을 오롯하게 채우고 있지 않은가. 그건 관객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선택을 강요하는 천박한 시스템적인 발상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장사가 되는 건 아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이고, 스크린까지 몰아 준다고 해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금방 읽은 신문기사에서 말하고 있듯이, 영화인들조차 자본의 논리에 순치되어 자신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위력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지만, 소위 예술인 흉내를 내는 몇몇 감독들조차 자신들의 올챙이 시절을 잊고 메이저 영화감독이 되어 제작사들의 일순위 캐스팅이 되어 정당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을 김재환 감독을 냉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일전에 문성근 배우가 말했듯이, 만들어진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지 못한다면 그건 필름이 든 깡통에 불과하다. 물론 예전과 달리 제작 시스템에 많이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상영관이 필요하다. 수준과 질이 떨어지는 블록버스터 영화 상영으로 그리고 동시에 팝콘과 음료수를 관객들에게 팔아 수익을 내기 위해 정말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제국의 이데올로기 첨병들이 등장하는 천편일률적인 히어로물들이나 우리는 봐야 하는가. 좋은 아이디어로 무장한 영화들이 등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위한 상영관 확보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포식자들로만 구성된 영화 생태계가 과연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한창 잘 나가던 한국영화가 왜 요즘 죽을 쑤는지에 대해 고민이나 해봤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경우를 참조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제작과 상영이 분리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한국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나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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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꼭 대구 지역방송국(TBC)에 일 년에 한 번 정도쯤 방영되었으면 좋겠어요. ^^

레삭매냐 2019-03-11 13:08   좋아요 0 | URL
이런 영화는 진짜 극장에 가서
봐야 하는데 상영관이 없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요.
 


 

자그마치 한 달 만에 쓰는 독서일기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야구나 국내 소설 그리고 웹툰을 집중적으로 검색하고 저장해 두었더니만 둘러보기 할 때도 비슷한 성향의 포스팅을 검색해 주더라. 이걸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 전에 영어책을 내는 출판사들을 찾아 팔로우를 했더니만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놀랍다! 그러니까 원서 책들에 대한 정보가 우수수 쏟아지더라는 거다. 어차피 국내 출판시장이야 코딱지 만하니 그닥 흥미로운 정보가 없더라.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다 보니 그렇게 흥미가 돋지 않았는데 펭귄 클래식이니 리버헤드, 크노프, 파버북스, 피카도르 등등 유명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간 소식에 그야말로 회가 동했다고 해야 할까.

 

부차적으로 엉뚱한 사람들이 팔로우를 하기도 하더라. 난 영어로 글을 올리지도 않는데 말이다. 한글을 영어로 번역해 주기도 하나. 정식으로 쓰는 문장들이 아니라 영어 번역이 어떻게 되어서 그들에게 전달되는 지도 좀 궁금했다.

 

우리나라 출판사처럼 외국에서도 기버웨이라고 해서 도서관련 이벵이 많은 모양이다. 가령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상 지역이 하와이와 알라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 전역을 커버한다. 나이는 18세 이상이어야 되고.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기버웨이는 드물겠지.

 

지난 주에는 북디파지토리에서 10% 쿠폰이 날아와서 책 세권을 주문했다. 하나는 시배스천 폭스의 <파리 에코>, 다른 두 권은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이다. 올해 처음 만난 시배스천 폭스의 책을 읽고 나서 완전 팬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열린책들에서 아마 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새로운 책을 내지 않는다는 거다. 신간은 아예 감감무소식이다. 그래서 결국 원서로 사게 됐다. 타리크 알리의 책들도 마찬가지다. 절판된 <석류나무 그날 아래><술탄 알라딘>은 구해서 읽었는데 나머지는 아예 출간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이 책 또한 원서로 살 수밖에. 물론 언제 다 읽게 될 진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 참에 원서 읽기에 나서야 하나. 한 십년 정도 읽으면 한글 만큼 읽을 수준이 되려나. 그냥 잠깐 상상해봤다. 시간이 오래 전처럼 널럴했다면 가능했을 지도 모를 텐데. 시간이 많을 적에는 그럴 생각도 못했지 하긴.

 

주초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까지만 해도 날이 따뜻했었는데 오늘은 날이 춥다.

오후에 <캡틴 마블> 보러 간다. 재밌을라나. 다음 달에 <엔드 게임>이 개봉한다던데. 우린 그렇게 마블의 노예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뱀다리] 궁금해서 펭귄 그룹 산하 크노프 출판사 홈피에 들어가 보니 요즘 인스타에서 종종 눈에 띄이는 <로스트 췰드런 아카이브>란 책이 대문에 걸려 있더라. 지난 달에 나온 책으로 출판사에서 미는 모양이다.

 

발레리아 루이셀리는 멕시코 출신 작가로 현재 멕시코 시티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웃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잠시 살았던 모양이다. 신기한 인연이로고. 국내에는 현대문학에서 재작년에 <무중력의 사람들>(2011)이라는 제목으로 데뷔 소설이 소개가 되었다. 확실히 인스타그램이 최신 정보를 전달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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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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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체사레 파베세의 유작 <달과 불>을 읽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아니면 며칠 전에 읽은 시바타 쇼의 소설처럼 나에게는 늦게 도착한 탓인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 <달과 불>의 배경은 작가의 실제 고향인 피에몬테/쿠네오 지방의 산토스테파노벨보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화자는 20년 간 고향을 떠났다가 성모축제에 즈음해서 고향에 돌아온 안귈라(뱀장어)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벌써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의미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의 과거 행적을 돌아볼수록 안귈라가 고향에 어떤 미련을 두었을까 싶다. 사생아로 태어난 안귈라는 어려서는 오 리라를 받으며 가난과 싸우며 이부누이들과 파드리노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좀 자라서는 모라 농장의 하인이 되어 그저 먹고 자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안귈라가 군입대를 시작으로 해서 인근 대도시 제노바를 거쳐 미국의 태평양 바다 끝까지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자수성가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안귈라는 자신이 부재한 시간 동안 엄청나게 바뀐 현실을 목도한다.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지주들은 몰락했다. 다만 종교계를 대표한 주임신부는 건재해서 파시스트 스파이로 처형된 이들의 죽음을 위로한다. 물론 그가 빨치산 투쟁을 했던 이들에게 똑같은 대우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시인으로 출발해서 소설가, 문학비평가 그리고 공산주의 반파시스트 혁명가였던 체사레 파세베가 그리는 현대 이탈리아의 역동적인 역사의 흐름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독자의 그런 기대와 달리 <달과 불>은 이탈리아의 시골마을과 미국을 부유하는 한 오디세우스의 유랑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토리노, 산토스테파노벨보, 카넬리, 알레산드리아 그리고 제노바 같이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낯선 지명들이 주는 이물감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성공을 구가하며 떠난 미국에서 이방인이었듯이, 고향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와서는 안귈라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부재한 동안 고향을 지켰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유쾌한 음악가 그리고 목수인 누토를 통해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의 궤적을 안귈라는 추적한다. 모라 농장의 하인이던 시절, 자신의 갈라테아였던 눈부신 이레네와 실비아에 대한 회상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급한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레네 자매 역시 백작 부인의 저택에 초대받지 못해 안달하는 장면에서는 욕망의 본질은 결국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안귈라와 누토에게는 가미넬라 언덕이라는 공간이 그들의 전부였지만, 안귈라는 그 너머 카넬리와 제노바를 거쳐 미국이라는 미지의 세계까지 탐험하고 결국 성공해서 지주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이런 금의환향이야말로 그네들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고향에 남아 소작을 부쳐 먹던 발리노 삶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발리노의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 살아남은 절름발이 소년 친토가 상징하는 건 어쩌면 세계대전의 전화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탈리아 국가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호모 폴리티쿠스 독자는 자꾸만 정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전후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공산주의 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나라였다. 파시스트 두체 무솔리니와 독일군에 맞서 조국해방을 위해 싸운 빨치산 그룹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당장 총선을 치르면 공산당이 승리할 판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빅 브라더 역할을 하던 미국이 이것을 용인할 리가 없다. 그리스에서는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고, 이탈리아를 철의 장막에 내줄 수 없었던 미국이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가톨릭을 포섭해 우익 정부의 탄생을 도왔다. 그 결과,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살던 사람들의 운명은 전쟁 전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모라 농장의 막내 산티나의 운명적 삶이야말로 이런 혼란이 정점에 달한 시절을 묵직하게 타격하는 결말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산티나는 이상한 놈팡이들과 꼬여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언니들과는 달리 자주적인 신여성의 모습에 도전한다. 그녀는 파시스트 본부에 일하는 동시에 빨치산에도 협력하는 이중적인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그리는 동시에,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산티나는 과연 부역자였을까? 아니면 명예로운 빨치산 전사였을까?

 

내가 과연 체사레 파베세의 <달과 불>을 세세하게 이해했을까? 아마 그건 아닐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도 의지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글가는 대로 읽고 싶었는데 역시나 나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의 문학적 시원을 이룬다는 시집 <피곤한 노동>이 읽고 싶어졌다. 아쉽게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그의 시집이 없더라.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방증이겠지. 언제고 헌책방에서라도 다시 만나게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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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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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신형철 씨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이다. 언제나 출간이 되는지 기다리다가 결국 망각해 버렸다. 그리고 작년 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 팟캐에서 들었을 때만큼 땡기지가 않아서 그냥 말았다. 아마 그 때라면 사서 읽었겠지만. 도서관에 입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게으르게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55년 만에 만나게 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주인공은 도쿄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미오 군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도쿄여대 출신의 세쓰코와 약혼하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의 삶은 지루하고 나른하게 진행된다. 불같은 사랑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처럼 들린다.

 

후미오가 헌책방 순례 중에 한 질의 H전집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 같은 책쟁이를 위한 책인가 싶다. 헌책방에서 나도 이미 많은 사연을 만나지 않았던가. 콜롬비아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르케스의 책을 샀다고 했던가. 지인에게 애써 선물한 책이 헌책방을 부유하는 것도 목격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설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헌책방에서 산 전집의 원래 주인이 사노라는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면제를 먹고 죽은 사노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한 때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혁명을 꿈꾸던 청년은 시위 도중에 동지들을 배신했다는 사실로 괴로워했다. 육전협의 평화주의 노선 채택으로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청년은 일체의 운동을 접고 기득권층이 원하는 올바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간부인 부사장의 눈에 들어 데릴사위 후보가 되기도 하고, 전도유망한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미래의 간부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본질은 ‘배신자’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지점은 바로 사노의 생각이었다. 그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걸 몰랐던 걸까?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이데올로기와 동지들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을 마냥 사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방법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후미오의 주변에는 그런 허무주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후미오가 아는 고지식한 미래의 교수 후보는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곧 결혼하게 될 여자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소설이 배경이 되는 시절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같아서는 참 거지같은 발상의 소유자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게다가 그 아가씨는 자신의 지도교수님과 불륜에 빠지지 않았던가. 과연 그들의 비밀은 지켜질 것인가.

 

후미오 주변에는 왜 그리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세쓰코조차 지하철역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중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후미오와의 결혼을 서두르던 세쓰코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고 난 뒤 지독한 고독감에 빠지기도 하고, 결국 무사안일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시골 마을로 가 자신의 알량한 영어 지식을 바탕으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의 진행에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편지들이, 그것도 속달이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낯설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메일이나 카톡 같은 메시지와는 다른 결이겠지. 젊은 날의 후미오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라며 육체의 향연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안정을 찾아 세쓰코를 찾지 않았던가. 우리의 젊음은 모든 방종을 용인하게 만들어주는 만능 치트키 같은 것일까 과연.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기도 한다. 소멸 뒤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심각한 고민을 해봤을까? 인생의 가장 절정기에 죽음을 두고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시바타 쇼 작가의 데뷔작 <록탈관 이야기>에 나오는 발칙한 라디오 마니아 중학생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왜 이 단편이 뜬금없이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작가의 시원을 밝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록이지 않았나 싶다. “코리안 워”니 “레드 차이나” 같이 소년이 조립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에 먼저 눈이 간다. 왜 이 소년들은 그렇게 라디오의 세계에 열광했을까? 라디오 조립이라는 새로운 세계, 회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신세계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나의 해방구로 작동한 게 아닐까.

 

패전 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 기업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극적인 부활에 나서게 된다. 배터리만 하더라도, 미군들이 엄청난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전쟁특수를 맞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나건 말건 그렇게 애타게 가지고 싶어 하던 진공관의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소년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내 버린다. 아니 트랜지스터도 아닌 진공관에 대한 이야기라니 놀랍다 놀라워. 한편, 전쟁 투입을 앞둔 미군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몰래 빼돌린 진공관을 간다 거리의 암시장에 내놓기도 했단다. 주인공 소년은 우연히 얻어 걸린 고가의 록탈관을 200엔에 사들여 희희낙락한다. 문제는 나중에 그가 발견한 미세한 균열이었다. 그렇게 희망은 록탈관의 균열과 사라져 버리고...

 

아마 내가 청년이었을 때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읽었다면 다른 감성으로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만난 청춘 소설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말해 심드렁했다. 나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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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3-05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책은 언제 어떤 상황에 읽느냐가 중요한가 봐요.
청춘일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는 달리 말하면 이 소설이 전 세대를 아우를만한 명작은 아니란 생각도 들구요.
운명같은 소설과의 만남을 꿈꿔봅니다 저는 오늘도..^^

레삭매냐 2019-03-05 17:18   좋아요 1 | URL
이제 더 이상 청춘이 아님을 슬퍼해야
하는 걸까요 ㅋㅋㅋ 뭐 그렇게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청춘일 적에는 술 퍼먹고 사느라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쪼록 운명 같은 책들을 연달아 만나
게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

카알벨루치 2019-03-05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아디가 여기 떡 나오니 기분이 새롭네요 ㅎㅎ 전 이 소설 넘 좋아요! 시기상조인 것도 있지만~사람이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까이있어도 외롭게 한다는 것을 보곤 마음이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3-05 17:2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후미오 군이랑 세쓰코 양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외롭고 고독
하고 그런 감정을 느꼈다니 쫌 안타
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혁명
을 꿈꾸던 이들이 사회에 적응해서
이제는 꼰대가 된 시절이 지금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갑해집니다.

syo 2019-03-05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포에는 요놈이 서가에 꽂혔군요. 대구(중 제가 다니는 몇 군데 도서관)에서는 요놈이 대출과 예약과 예약과 예약의 연속으로 도무지 서가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읽으신 분들 평이 너무 떡떡 갈려서 차마 사보기는 그렇고 빌려서 보려 했는데 저는 아직도....ㅠ

레삭매냐 2019-03-06 10:33   좋아요 0 | URL
사실은... 저도 저희 동네 외딴 곳에
있는 도서관에 예약도서로 신청을 헷 -

서가에서 데려온 녀석은 아니랍니다.

제 스탈의 책은 아닌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