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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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셜리 잭슨의 단편소설집 표제작인 <제비뽑기> 말이다. 이번 주말 달궁 독서 모임책인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를 부랴부랴 읽었다. 원래 지난달에 빌렸었는데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가 지난 주말에 다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오래 전에 산 장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도 있는데 토요일 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다시 표제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느 마을에서 77년 이상 이루어져 온 제비뽑기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00명 남짓 사는 마을에서 제비를 뽑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인다는 거다. 초반에 아이들이 돌무더기를 쌓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돌이 바로 처형의 수단이라는 거다. 아마 아이들도 예외는 없는 모양이다. 다른 마을에서는 이런 야만적인 처형 방식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왜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걸까? 제비를 뽑은 테시 허친슨 부인이 돌을 맞게 된다. 더 잔인한 것은 그녀의 아이들에게 자갈을 쥐어 준다는 것이다. 셜리 잭슨은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 이런 잔혹한 행동으로 공동체에 발생하는 유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소설적 사실, 어쩌면 사실이었을 지도 모를 사건에 대한 기술을 이어간다.

 

아니 어쩌면 인류 사회에 잠재된 폭력성을 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살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12시간 동안 무제한 허용된다는 영화 <퍼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 국가에 위탁해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우한 폭력과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셜리 잭슨의 단편들은 어떤 건 그냥 뭔 말이지 하고 쉽게 넘어갈 법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긴 그거야말로 단편의 특성이 아니었던가.

 

결혼식 당일날 예비 신랑의 부재를 깨닫게 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유령 신랑>은 어떤가. 결혼식장에서 예비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유명한 영화 <졸업>의 이미지가 원체 강렬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행사가 주는 압박 때문에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도망간다는 설정에 대해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긴 <런어웨이 브라이드>라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하지만 제이미 해리스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존재가 증발되어 버렸다. 이에 예비 신부는 제이미 해리스는 찾아 나선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그녀가 그를 찾아 나설수록 그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고, 추적은 미궁에 빠진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제이미 해리스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쩌면 이런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낯섬이야말로 셜리 잭슨 작가가 소설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뉴욕에 몇 번 가봤더라. 한 여섯 번 정도 가봤던가? 나에게 뉴욕은 파리와 더불어 뮤지엄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메트와 모마, 자연사박물관, 아메리칸포크뮤지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겐하임 뮤지엄. 세계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뉴욕은 대도시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이는 마력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뉴잉글랜드를 떠나 친구가 여행을 떠나 빈 집에서 이주간 살게 된 마거릿과 브래드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금기둥>에서 바로 그 뉴욕이 주는 환상과 실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적확하게 타격한다.

 

환상이 실망으로 태세전화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거릿은 파티를 즐기던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마거릿의 말에 개의치 않고 파티를 즐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 거슬렸을까? 아니면 즐거운 뉴욕 생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걸까? 사람들이 떠난 롱아일랜드 별장에 가서는 시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뮤지엄과 뮤지컬 그리고 다양한 재즈바라는 이미지로 치장된 뉴욕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 마거릿은 횡단보도 하나 건너지 못할 정도로 심신미약 증세를 겪게 된다. 즐거움이 주는 쾌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추락하는 것도 부지불식간이라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성경에 등장하는 룻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이야기가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미련 때문이라면, 마거릿은 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걸까.

 

<꽃으로 꾸며진 정원>에서는 미국의 해묵은 갈등인 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정도 같은 인종끼리만 가능하다는 걸까? 위닝 집안의 실권자인 시어머니 위닝 부인에게 매여 사는 젊은 위닝 부인은 근처 집에 새로 이사온 매클레인 부인과 데이비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를 가지고 대하지만, 매클레인 부인이 유색인 존스 씨에게 정원일을 맡기자 멀리하기 시작한다. 1940년대 어쩔 수 없었던 인종주의의 틀에 갇혀 있던 백인들의 의식과 위선적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 르포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인들에게 신이 창조한 다른 유색인들은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은연 중에 드러나는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의식이 정말 무서웠다. 개인적으로 단편집 <제비뽑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치아>는 한밤중에 아픈 이 때문에 뉴욕으로 가는 클래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40년대 엑스레이로 아픈 이를 촬영하고,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발치 전문가가 이를 뽑는다는 설정에 사실 좀 놀랐다. 우리가 그들의 진단과 기술을 따라하는데 근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소설에서 재밌게 느낀 점은 클래라가 자신을 아픈 이를 배달하는 하나의 존재 혹은 사물로 의식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셜리 잭슨이 구사하는 하나의 유머로 받아 들여야 하나.

 

대충 오늘 아침 출근길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나머지는 돌아오는 토요일날 우리 달궁 동지들을 만나 신나게 떠들어 보도록 하자. 의식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고 말이다. 고 달궁 가이즈!

 


드디어 봄이 온 모양이다. 어제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에 핀 민들레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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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27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호러 작가죠. 스티븐 킹이 ‘호러 킹’이라면 ‘호러 퀸’은 셜리 잭슨입니다. ^^

레삭매냐 2019-03-27 13:10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에 산 책은 왜 샀는지 모르겠네요 핫하

뒷북소녀 2019-03-27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은 도서관에서 빌릴 책, 서점에서 살 책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 지으시는지.ㅋ

레삭매냐 2019-03-27 13:15   좋아요 0 | URL
뭐 기준은...
일단 애정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삽니다.
로베르토 볼라뇨, 루이스 세풀베다, 시배스천 폭스
등등...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거나 혹은 희망도서로 신청
하는 책의 경우에는 대부분 소장각이 아니거나
혹은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이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책들 정리해야 하는데 말이죠...

뭐 결론은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다~라는 거죠

페크pek0501 2019-03-30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창비에서 나오는 단편 소설집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국가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영국편, 미국편. 이런 식입니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뷔페 같이 맛있습니다. ㅋ
 


어디 보자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 네이버로 검색해 보니 자그마치 16,253,795명이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하도 여기저기서 들은 게 많아서 정작 본 영화는 기존에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뭐 그래도 철저하게 오락영화로 만들어진 영화라 그런지 재미는 있었다.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관객수가 천만이 넘으면 그건 영화가 좋다거나 그런 게 아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확실히 영화 <극한직업>은 그랬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영화를 만든다는 이병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영화라면 눈에 불을 켜고 보곤 했었는데, 어쩌면 반은 의무적으로(그건 마치 내가 요즘 책 읽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제는 철저하게 상업성 오락영화만 즐겨 본다. 그건 마치 마틴 스코시즈가 더 이상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같은 영화 대신 상업영화만 만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책 말고는 다 시큰둥한 그런 느낌.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마포서 마약반 만년반장 고상기(류승룡 분)는 항상 범인 검거에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을버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용의자를 잡았다. 그러니 서장에서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게다가 후배 반장은 보기 좋게 승진가도를 달리지 않은가. 이렇게 나가다가는 마약반에 해체될 판이다. 후배 반장의 정보로 마약 계의 거물 이무배(신하균 분) 일당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하고 잠복근무에 나서게 된다.

 

고반장 팀은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 밖에 볼 게 없는 마봉팔(진선규 분), 격투기에 능한 장연수(이하늬 분), 이동휘가 분한 김영호 그리고 막내 공명이 맡은 김재훈 형사다. 5인조는 이무배 일당의 아지트 바로 앞 <형제호프치킨> 집에서 장기간에 걸친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장사가 안되니 잠복근무에 얼마나 좋은가. 다만 주인장이 마음씨 좋게 1+1으로 치킨을 마구 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결국 장사를 접으려던 순간, 고반장과 일당은 퇴직금과 결혼자금까지 털어 치킨집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놈의 치킨집이 너무 장사가 잘된다는 거다. 가히 치킨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한 대한민국에서 대환영할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가 아니었던가. 닭도 튀겨야 하고, 범인도 잡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집 치킨으로 박스갈이를 하던 왕갈비 양념으로 범벅을 치던 <수원왕갈비통닭>으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번에는 서민음식인 치킨값을 눈딱감고 2만원 올려 3만 6천원으로 올렸는데도 이번에는 황제치킨으로 더더욱 인기다. 결국 일일 50마리 한정으로까지 갔던가. 골목식당 컨설턴트인 백종원 아저씨도 울고 갈 정도의 인기를 끄는 비결은 바로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거다. 그게 모두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병헌 감독은 오락영화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수원왕갈비통닭, 아니 <극한직업>의 양념을 잘 만들어냈고 관객들은 시간과 지갑을 열어 그의 연출에 보답했다. 영화 개봉 타이밍도 적절했던 것 같다. 비수기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경쟁작과의 라이벌전도 없이 무난하게 스크린을 지배했으며, 명절 특수까지 맞아 그야말로 대박이 난 거다. 조금 늦게 개봉해서 만약 마블의 영화들과 맞붙었다면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까? <캡틴 마블>이나 <엔드게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병헌 감독이 군데군데 심은 개그 코드나 코미디 서사보다 이무배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결국 좀비처럼 살아나 그를 깨물기 전에 고반장이 던진 대사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극한의 생존경쟁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현실 말이다. 그의 절규를 들으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반장이 되어 학급비 빵꾸도 메꾸어야 하고, 이런저런 비용을 삥 뜯는 딸에게 용돈도 넉넉하게 쥐어 주어야 하고, 구찌 종이백이 아닌 진짜 구찌백에 현금을 가득 담아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닭을 튀기고, 수백개의 테이블을 닦으며 홀서빙을 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왕갈비 통닭 양념을 제조해야 하며 또 배달의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 어찌 슬프지 않은 서사가 아닌가 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총기로 무장한 마약반 악당 이무배 일당을 상대해야 하는데 달랑 5명으로는 역부족이 아닐까 하는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어 두시라. 개떼처럼 달려드는 악당들 앞에서 고반장 5인조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어지는 최 반장의 내레이션을 들어 보라. 고반장과 장연수, 마봉팔 등등 다들 한자락씩 하는 선수들이었다. 오히려 고반장들이 아니라 이무배 일당의 안녕을 걱정해야 한다는 거다. 이무배의 보디가드로 등장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킬러에 가까운 선희(장진희 분)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도주하던 이무배와 선상에서 격투를 벌이던 고반장이 이무배의 총에 맞고 신나게 얻어터지고서도 그야말로 ‘좀비’처럼 부활한 장면은 넷플릭스 조선 좀비 드라마 <킹덤>을 연상시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써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써먹고, 패러디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패러디한다는 감독의 한방이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까지 감독은 패러디와 개그를 멈추지 않는다. 홍콩 느와르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이 부른 노래를 틀고, 연수와 얼굴 밖에 볼 게 없는 봉팔이 눈이 맞아가 주디가 빠지게 입박치기하는 장면을 본 고반장들은 총을 빌려 달라며, 쏘라고 외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본 장면이었다.

 

모두 그랬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치킨이 먹고 싶어지더라. 오늘 회식인데 고기 먹고 나서 치킨 먹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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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3-21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가심으로요.ㅎㅎㅎㅎ

뭐 웃기면 된 거죠.
출연진들이 괜찮은 것 같더군요. 게다가 류승룡을 좀 좋아하는지라...
저는 종영 드라마 챙겨 보느라 영화는 거의 못 보고 있습니돠.
봄이 돼서 그런지 잠은 왤케 쏟아지는지.ㅠㅠ

레삭매냐 2019-03-21 16:08   좋아요 1 | URL
입가심은 하이볼이나 수제 맥주로 하기
로 결의했답니다 ㅋㅋㅋ

류승룡이 예전에 <광해> 이후 한참
전성기를 구가했었는데 그놈의 <도리
화가> 이후 죽을 쑤다가 반전의 기회
를 ㅇㅇ

밤이 되면 왜 이리 잠이 오는지 책장
펼치면 바로 잠이 솔솔...

서니데이 2019-03-22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개봉초기부터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봤어요.
이제 극장에는 상영이 거의 끝났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레삭매냐님, 주말에도 차가운 날씨가 이어져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해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3-23 09:39   좋아요 0 | URL
괜히 천만 영화가 아니더군요...
재미도 있고, 뭐 또 생각할 거리도
툭툭 던져주는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주위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 중이에
요. 뭐 이미 다들 보셨겠지만요 헷 ~!

오늘 춥다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어제
보다 덜 추운 듯하네요. 그래도 역시나
추워요 아이 추워 !

즐거운 주말 되세요~~~
 
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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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한 책을 집어 들었다. 몰입도가 대단했다. 다 읽지 않고서는 다른 책을 집어들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김의 작가가 그려낸 솔희와 해아저씨, 티티 그리고 말랭이의 삶들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에게 동화에나 나올 법한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

 

분명 이 작가는 남자일 텐데 어떻게 솔희라는 32세 여성의 고단한 삶을 적확하게 꿰뚫었는지 궁금해졌다. 4년 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시냇가빌라 2층에 보금자리를 튼 솔희에 대한 이야기는 시신의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신이라면 내가 아는 그 시신인가? 아니면 누구의 이름인가. 왠지 모를 폭력의 전조가 얼핏 엿보이는 느낌이다.

 

남편도 일자리도 없는 솔희는 고양이 티티의 집사로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시냇가빌라에서 하루를 보낸다. 돈이 없다는 경제적 고통은 그녀를 옥죈다. 겨울인데 당장 춥지 않은가. 게다가 아래층 여자와 같은 층에 사는 공방여자는 그녀를 못살게 괴롭힌다. 아니 왜 허드렛일은 모두 솔희의 몫이지. 어쩌면 그런 주눅 들은 삶의 단면은 그녀의 실패한 결혼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갑던 남편은 결혼 즈음해서 변신 로보트처럼 해괴한 변신을 일삼는다. 뒤따르는 가정폭력은 기본이다. 청첩장이고 임신이고 뭐고 그 때 솔희는 결혼을 뒤엎었어야 했다. 게다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백수가 되어, 자신이 힘들게 가장으로 일하는 동안 한 시절 절친이었던 윤주와 다시 만나 바람을 피운 건 어떤 식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가 다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불행의 연속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의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해아저씨와의 썸은 이해가 갔다. 다만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솔희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오고 가는 마음 속에 싹트는 온기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가 일하는 인생국수집이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경영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알바를 뛰는 솔희가 아파서 쉬어도 8,500원 시급을 챙겨 주고, 퇴근할 때는 가게에서 직접 빚은 오색만두 봉지를 쥐어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씨라니. 게다가 술도 팔지 않고,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겨울철에는 주력 상품인 오색국수와 오색만두의 가격을 내린다. 멋지지 않은가.

 

책쟁이인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장면 중의 하나는 솔희를 폐지 줍는 여자로 착각한 해아저씨가 그녀에개 갖다 주었다는 <내 이름은 빨강> 2편이다. 지난 달에서 사서 오르한 파묵 읽기를 하겠다고 기세 좋게 나서긴 했는데 아직 100쪽만 달랑 읽고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봄이 오면, 진짜 봄이 오면 <내 이름을 빨강>을 읽을 것이다.

 

<시냇가빌라>를 읽다가 그만 너무 솔희에 감정을 이입한 모양이다. 외롭고 슬프고, 처연하다는 느낌이 막 들었으니 말이다. 해피엔딩을 기대했건만 그렇지 않은 결말은 어쩌면 예상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BTS, 아미, <Fake Love> 그렇지 소설은 디테일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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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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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8>

 

이번에는 살만 루슈디다. 재작년에는 이언 매큐언을 그리고 작년에는 로맹 가리와 제발트를 죽어라고 읽었다. 아마 올해에는 나의 애정작가가 살만 루슈디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광대 샬리마르>에 이어 1994년에 발표한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를 읽었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좋은 소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었다. 대가라고 해서 모두 균질한 작품을 양산해낼 수는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한다.

 

<뉴요커> 같은 곳에 실리는 영미권 단편을 읽으려고 해본 적이 있다. 상당히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내가 그들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예를 들어 ‘김수한무 두루미와 거북이’ 같은 고전 유머를 푸른눈의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다룬 <코터>에 등장하는 플린스톤 가족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존 굿맨 주연의 영화로 보긴 했지만, 원래 텔레비전 시리즈였는데 그건 미처 모르고 있다. <아이 러브 루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좀 이상한 방식으로 시작했는데, 어쨌든 맨 마지막에 배치된 <코터>는 potter를 잘못 발음한 서튼리-메리 아이아 혹은 아야에게서 유래한 별칭이다.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인 가족의 신산한 삶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들의 수위 메시어, 작가가 ‘믹스트-업’이라고 이도 마찬가지 신세다. 메리와 일종의 썸을 타게 되는데, 알고 보니 메시어 씨가 전직 체스 그랜드마스터였다는 사실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아파트 차단기를 빨리 올려 주지 않아 차에서 내려 경비 아저씨를 한바탕 후들겨 패고 났는데 알고 보니 그가 예전에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핵물리학자였다 정도가 될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하라자들의 비행 때문에 칼잡이들에게 대신 두들겨 맞은 메시어 씨의 기사도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고국을 떠난 서튼리-메리에게 심장병이 생긴 건 당연지사인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먹고 잘 살았다는 썰이 왜 이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그전에 등장한 <체코브와 줄루>는 커트 선장과 뾰족 귀 스폭이 등장하는 <스타 트렉>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소설이다. 아니 <스타워즈>도 아니고 <스타 트렉>이라니! 오래전 AFKN에서 주말 마다 방영되던 바로 그 텔레비전 드라마 말인가? 조국 인도를 떠나 영국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는 주인공들의 삶이 어쩌면 우주를 떠도는 외계인들의 그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시크교도에게 암살당한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구나. 그리고 보니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에도 암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었나?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을 현혹시킨 이탈리아 출신 사기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무어인들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에스파냐를 통일하는데 성공한 군주 이사벨라에게 감히 “관계”를 요구한 배짱 좋은 뱃놈 콜럼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발하기 위해 여왕에게 후원을 요청한다. 이사벨라 여왕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알안달루스의 회복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술탄 보압딜에게 무슬림의 평화로운 거주를 약속하고 그라나다의 성문을 열게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영토이자 고향이었던 알안달루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사벨라 여왕의 기사들과 전투를 치러야했을까? 어쨌든 그렇게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고, 유대인들마저 쫓아내는데 성공한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인 환영과 계시가 결국 무모한 사기꾼 콜럼버스를 후원하게 만든 모양이다. 영 가망이 없어 보이던 투자가 에스파냐 제국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그 때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단편을 연상하게 만드는 <좋은 충고는 루비보다 드물다>는 파키스탄을 떠나 영국행 비자를 받으려는 멋쟁이 아가씨 레하나의 이야기다. 아디치에 소설의 주인공이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비자를 받기 원했다면, 루슈디의 소설 주인공은 영국행 비자가 필요했다. 이런 일에는 브로커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자주적인 모습의 아가씨는 굳이 영국에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나가 남편의 시중이나 들 팔자라면 나라도 거부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시 끊임없이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에게 가장 좋다고 판단되는 걸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9편의 단편 중에서 최고는 ‘이스트’의 <예언자의 머리카락>이었다. 우연히 획득하게 된 예언자 무함마드의 머리카락 유물 때문에 고리대금업자 하심이 갑자기 열렬한 무슬림 신도로 변해 가정의 독재자로 거듭나게 되는 장면을 살만 루슈디는 유쾌하지만 비극적인 터치로 그려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광신”이야말로 가장 기피해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아들은 도둑들에게 예언자의 머리카락을 훔쳐 달라는 부탁을 하러 나섰다가 두들겨 맞아 빈사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번에는 딸 후마가 나서 예의 의뢰를 이어 받는다. 루슈디는 하심의 본업인 고리대금업이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는 무슬림 율법과 어긋난다는 점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나 할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루슈디는 한바탕 소동극을 창조해냈다. 하심이 개과천선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싶었지만, 독자의 바람과 다른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됐다. 결국에는 모두가 불행하게 되었다는 결말로 끝난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행로에 대한 소설적 편린이라고 해야 할까.

 

<광대 샬리마르>는 상당히 버거운 도전이었는데 단편소설집 <이스트, 웨스트>는 또 상대적으로 너무 쉬운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루슈디의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을 읽을 차례가 된 모양이다. 바로 옆에 있으니 집어서 펼치지만 하면 된다.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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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3-19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홀 올해는 살만 루슈디가 선택된거군요! ㅎㅎ
<한밤의 아이들> 까이것 2권짜리 금방 읽을 겁니다. ㅋㅋㅋ 화이팅! ^^

레삭매냐 2019-03-19 14:02   좋아요 0 | URL
사전에 두 권을 읽어서 워밍업이 잘된
모양입니다. 진도가 잘 나가네요 일단은~

살만 루슈디의 책들을 가지고 있는 게
제법 돼서 당분간 읽을 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더라는.

moonnight 2019-03-19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께 간택된 영광의 작가네요 ^^ 저도 하고 싶은데 서가 파먹기ㅠㅠ 어째 내도록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아서. 시무룩 ㅜㅜ

레삭매냐 2019-03-19 14:26   좋아요 1 | URL
제가 최근에 인스타로 해외 책쟁이들의
일상을 엿보니,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
습니다.

일단 사들이고,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사재기를 끊지 못하는. 물론 독서 속도
는 사재기 속도를 못따라 잡구요.

화이팅입니다!!!

페크pek0501 2019-03-19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만 루슈디의 책은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엔 왜 그리 좋은 책이 많은 겁니까?
이제 겨우 올해에 열중할 작가로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그리고 장편으로만 만났던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모조리 찾아 읽기, 를 계획해 놨습니다. 단편 소설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단편집 리뷰를 올려야지, 하고 있어요. 시간은 적고 책은 많고... 그렇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9-03-19 19:05   좋아요 2 | URL
서양 책쟁이들의 인스타에도 어김
없이 등장하는

so many books, so little time...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

저도 오르한 파묵을 읽어 보겠노라고
결심했으나 불과 한 달만에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뉴뉴

감사합니다.

카스피 2019-03-2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선 스타워즈보다 오히려 스타트렉의 열성팬이 더 많을거란 생각이 듭니다.스타워즈는 1970년대 후반에 영화로 나왔지만 스타트렉은 이미 60년대부터 TV방송을 했기에 열성팬이 더 많을 거에요^^

레삭매냐 2019-03-20 17:33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예전에 즐겨 보던 미드 <빅뱅>에 보면
정말 열혈팬들이 <스타워즈> 팬에 비해
더 많은 것 같다는.

지인 결혼식장에 가서 사진 촬영하는데
하객 중의 한 분이 스톰트루퍼 헬멧을
쓰고 계셔서 정말 깜짝 놀랐더라는.
 
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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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7> 

 

드디어 살만 루슈디와의 첫 번째 만남을 끝냈다. 다시 카슈미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낙원이라 불리는 카슈미르는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다. 지난 주말 인천집에 갔다가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란 책을 집어 들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책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읽지 않았다. 읽기 시작했는데 카슈미르가 등장하더라. 이런 놀라운 인연이 다 있나 그래.

 

600쪽이 넘는 <광대 샬리마르>를 읽으면서 제각각 다른 세 개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부터 모두 다르지 않은가. 천사들의 도시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상의 낙원이라는 카슈미르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이었던 스트라스부르가 그곳들이다.

 

시작은 천사들의 도시다. 시간적 배경은 1991년, 24세 인디아 오퓔스가 첫 번째 주자다. 사실 첫 번째 챕터는 잘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저명한 그녀의 아버지 막스 오퓔스가 어새신(암살자)에게 처참한 모습으로 암살당했다. 도대체 누가 베스트셀러 작가에, 항동 레지스탕스, 하늘을 나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도 미국 대사였던 미남자 막시밀리언 오퓔스를 죽였단 말인가. 아니 이 정도로만으로도 시작이 충분했던가.

 

살만 루슈디는 다시 시절을 되돌려 이번에는 지상의 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카슈미르로 계곡으로 이동한다. 카슈미르 파치감이라는 마을에 무슬림 청년 샬리마르 노만과 힌두소녀 부니(부미) 카울이 살았다. 자, 그들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되고 종교 때문에 격심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은 지금까지도 갈등이 지속되는 카슈미르의 숙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마라하자가 지배하는 다수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인도나 파키스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카슈미르인들을 위한 카슈미르라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세상을 원했다. 어쩌면 그런 이상이 수십 년간 계속되는 불화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파치감은 전통 예술공연과 60여 가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법한 연회 요리로 유명한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파치감에서 샬리마르는 줄타기의 달인이었고, 십대 소녀 부니는 아나르칼리를 연기하는 절세의 무희였다. 이질적 종교의 결합 사이에 자라나기 시작한 미세한 삶의 균열은 훗날 등장해서 부니를 앗아간 사악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유대인 미국 대사 막스 오퓔스로 촉발된다. 문제는 부니의 선택이었을까. 지루한 시골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부니는 막스와 자신의 육체로 거래에 나선다. 사랑 없는 육체관계가 과연 오래갈 수 있었을까?

 

당연히 오쟁이진 젊은 남편 샬리마르는 분노와 증오에 젖어 복수를 다짐한다. 부니와 막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재앙의 씨앗인 카슈미라까지 모두 없애 버리겠다는. 한편 잠무 카슈미르를 장악한 힌두 인도군은 카슈미르에 사는 무슬림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자치를 원하는 카슈미르 무슬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이에 분노한 카슈미르 청년들은 해방전선에 가입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도군의 진압에 대항한다.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한 때 지상의 낙원이었던 카슈미르는 이제 지상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다음 무대는 소설 <광대 샬리마르>의 또 다른 주인공 막스 오퓔스가 사는 유럽의 복판 스트라스부르다. 프랑스의 영토이기도 했다가 보불전쟁의 패배로 독일제국의 땅이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등 그야말로 카슈미르 버금가는 복잡한 역사를 가진 스트라스부르에 막스 오퓔스를 배치한 점도 살만 루슈디의 혜안이 번뜩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레지스탕스 영웅 막스 오퓔스가 과연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 정 만으로 목숨을 건 저항운동에 나선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에 작가는 냉철하게 분석을 제시한다. 억울하게 강제수용소에서 의학실험의 대상으로 죽어간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어쩌면 불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낭만적 요소가 더 강렬한 유인책이 아니었을까. 막스 자신이 한 때, 테러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막사의 테러와 샬리마르의 테러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모든 테러는 나쁜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테러는 옳고, 또 다른 누구의 테러는 옳지 않다는 건가? 분노와 증오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넘실거리는 시절에 테러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를 통해 미지의 세계인 카슈미르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소설적 장치로서 분열과 갈등보다 더 좋은 소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사랑과 전쟁” 그리고 복수라는 양념까지 추가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이후의 서사 전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막스의 아이를 낳은 부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 때 자매 같았던 친구들의 농간으로 그녀의 아버지 요리사이자 철학자 판디트 피아렐랄 카울마저 그녀의 죽음을 공인한다. 막스의 뚜쟁이 에드거 우드는 부니를 씹는 담배와 마약 그리고 폭식으로 길들였다. 부니가 호색한에게 제공한 쾌락의 여운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부니와의 관계가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미국 대사는 문자 그대로 추락했다. 부니의 귀향 소식을 들은 샬리마르를 바로 행동에 나서려고 하지만, 반드 파테르의 수장 아버지 압둘라 노만과 판디트 피아렐랄의 만류로 부니의 운명은 유보된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겉껍데기만 남은 샬리마르의 미래도 결정난 게 아니었을까. 산으로 들어가 해방전선의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형 아니스 노만과 합류한 샬리마르는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테러활동에 온전하게 투입하고, 뛰어난 암살자로 거듭난다.

 

지상 낙원이었던 카슈미르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보여준 작가는 마지막으로 막스 오퓔스 대사가 암살된 미국으로 다시 무대를 이동시킨다.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어중간한 태도도 세계의 화약고로 변한 카슈미르 파괴에 책임이 있다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에 발맞춰 상품과 재화의 자유로운 이동만큼이나 분노와 증오가 실린 폭력의 세계화에도 미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스를 암살한 샬리마르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미국출신 변호사가 구사한 ‘주술사 전법’이 허무맹랑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탈옥에 성공한 샬리마르가 인디아 아니 이제는 카슈미라 오퓔스가 된 자신의 의붓딸과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처음 만난 살만 루슈디는 <광대 샬리마르>로 나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지난 주말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서로 다른 세 권의 연작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지난주에 그의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 상권을 사들였다. 집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제부터 9개의 단편 소설이 실린 <이스트, 웨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훨씬 더 가벼운 느낌이다. <무어의 한 숨>도 재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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