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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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동안 십자군원정의 발단은 동방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소스의 긴급한 요청을 받아들인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10951127일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말로 성지회복을 위해 서방 기사들을 선동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크로드 세계사>로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시선의 역사서술을 보여준 옥스퍼드대학 피터 프랭코판 교수는 비잔티움 역사의 전문가로 종래의 서방 라틴 세계의 관점이 아니라 동방의 관점에서 새로운 십자군 이야기를 선사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 출신 황제 알렉시오스가 통치하던 1090년대 초반 비잔티움 제국은 사방에서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침략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제국의 서방에서는 노르만인들이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했고, 북서쪽에서는 페체네그족의 끊임없는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진짜 위기는 제국의 동부로부터 왔는데 투르크족이 아나톨리아와 소아시아 일대를 휩쓸었다. 군인 황제답게 군사적 대응을 하다 보니, 재정위기까지 겹치게 되었다. 젊은 장정들을 죄다 현역 로 징집해서 제국을 침입하는 이민족들과 상대하다 보니 정작 농사를 지을 인원이 부족했고 그것은 바로 곡물 가격폭등으로 연결되었다.

 

알렉시오스 황제는 계속도는 원정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해 정교 사원과 수도원에까지 세금을 과세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을 떠받드는 하나의 축인 종교계와도 대결하게 되었다. 제위를 찬탈하면서 성당을 약탈하고, 수도사들을 학살한 전과도 한몫했다. 게다가 과세를 위해 관리들이 날조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니, 제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중해의 중요한 거점인 크레타와 키프러스에서는 반란의 기미까지 보였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알렉시오스는 서방에 SOS를 날렸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한편 서방의 라틴 세계 역시 교권과 황제권의 대결로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초반에는 중세를 장악한 교황의 우세로 판세가 기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무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교황을 제압하고 대립교황을 내세워 교황권의 약화를 도모했다. 즉위 초기 클레멘트 3세에 비해 세가 약했던 우르바누스 2세는 필리오케와 발효된 빵을 성찬식에 사용할 것인가로 촉발된 교리 논쟁으로 서방교회에서 대분열로 떨어져 나간 동방교회를 끌어안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전략거점인 니케아와 타르수스 그리고 안티오크를 투르크족으로부터 수복하기 위해 서방 세계에 요청한 기사들을 용병으로 쓸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사실 동방의 정보는 비잔티움 제국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도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교묘하게 비튼 선전과 선동은 서방 기독교 세계 전사들을 자극하는데 주효했다. 교황 우르바누스가 알렉시오스가 요구하는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라틴 기사들을 효과적으로 모집하기 위해 성도 예루살렘의 회복을 모토로 삼은 종교적 프로파간다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로 분열한 교회의 통합이라는 대의도 한몫했다.

 

십자군전쟁을 기록한 서방 연대기 저자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알렉시오스를 평가절하고 매도했다. 하지만 8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세 최대의 원정이 진행되는 동안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원정군을 위해 다채로운 방식의 외교술과 군수물자의 보급을 진행했다는 점을 볼 때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모든 것이 황제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황이 계획한 성지 회복이라는 거대한 목적 아래 기사들의 참전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군사계획은 사실 전무했다. 그 점에 대해 저자는 일단 십자군 부대가 황제의 영토에 들어오면 자신의 지휘 아래 움직일 거라는 판단 아래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가정한다. 가장 유력한 부대를 구성한 툴루즈 레몽을 필두로 부용의 고드프루아 그리고 알렉시오스의 숙적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보에몽 같은 역전의 용사들에게 충성 맹세를 요구하며 자신의 봉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황제에게 기사들은 제각각 다른 의도에서 때로는 수용하기도 하고, 레몽처럼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서로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기사단 부대를 통솔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은자 피에르가 지휘한 민중 십자군 부대였다. 순수한 의도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민중 십자군은 알렉시오스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알렉시오스의 동방 탈환 작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짐이 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로 민중 십자군 부대가 지나가는 각처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학살이 벌어졌고, 비잔티움 제국 내의 같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제국의 신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약탈을 감행했다. 이런 오합지졸 같은 부대의 존재로 이미 십자군전쟁의 대의는 이미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소아시아 전투에서 일시적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예 투르크군과 상대하면서 초전에 박살이 나고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극의 재현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한 정예 십자군부대는 투르크와의 전투에 나서게 된다. 첫 번째 목표는 바로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니케아였다. 방어에 나선 투르크인들은 오랜 준비로 농성에 자신이 있었지만, 십자군 가운데 보에몽으로 대표되는 노르만인들이 그동안 개발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공성 능력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 십자군의 분투와 알렉시오스의 화전양면 전략으로 결국 투르크 수비부대는 항복한다. 뒤이은 도릴라이온 전투에서 보에몽이 이끄는 부대의 활약으로 초반의 열세를 딛고 대승리를 거두면서 소아시아 전역에 십자군의 위명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십자군 전사들은 투르크 전사들이 자신들만큼이나 전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됐다. 이런 강력한 적을 상대로 이후 전개된 안티오크 공략전의 성패는 십자군전쟁의 분수령이었다.

 

한편, 알렉시오스는 내부 반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소아시아 깊숙이 진격하는 십자군 부대의 원정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대로 소아시아 수복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에몽과 그의 조차 탕크레디와 달리 자신에게 한 충성맹세를 성실하게 이행하던 고드프루아의 조카 보두앵이라는 천상의 파트너를 대리인으로 삼게 된다. 영악한 비잔티움 제국의 관리들은 십자군 부대를 성도 예루살렘으로 바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필요한 전략거점들을 하나씩 수복하면서 남하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전략이 비잔티움 제국과 십자군부대 쌍방에 유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도 탈환이라는 십자군전쟁의 대의가 계속 변질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니케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방어시설과 준비를 자랑하던 안티오크는 결국 10986월 함락되었다. 십자군 정예부대들은 안티오크 공략전에서 엄청난 병력 손실과 물자 보급의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성을 함락시키고 곧바로 당도한 모술의 지사 카르부가와의 압도적인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여타 다른 도시들과 달리 황제의 관리들이 배치되지 않았고, 본국에서 이복동생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보에몽은 비잔티움 제국 동방의 최대 도시 안티오크를 바탕으로 독립을 획책했다. 안티오크 정복 후, 자신감에 찬 십자군에게 성도 예루살렘의 함락은 시간 문제였다.

 

비잔티움 전문가 피터 프랭코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십자군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알렉시오스 황제였다. 그의 딸인 안나 콤니니가 기술한 <알렉시아드>를 온전하게 믿을 수 없지만, 황제에 대한 매도와 악의로 가득한 <프랑크인의 행적> 같은 연대기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십자군 원정의 실패 후 희생양을 찾는 서방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폄하되었지만, 알렉시오스 황제야말로 십자군전쟁의 숨은 공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황제의 의도는 붕괴 직전까지 몰린 자신의 제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서방의 기사들을 동방으로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보에몽과 탕크레디 같은 전사들을 이용해서 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한 마디로 황제의 십자군전쟁 흥행은 대성공이었다는 결론이다. 피터 프랭코판이 다룬 1차 십자군전쟁에 대한 서사시인 <동방의 부름>은 알렉시오스 1세 콤네소스를 위한 21세기 신원이다.

 

*** 그나저나 왠 놈의 오탈자가 이리도 많은가. 출판사는 좀 각성하라. 그 이유로 별 하나는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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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9-01-22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좋은 책 번역에 오탈자가 출판사가 대충 검토 했나봐요

십자군 원정 쩐의 전쟁 분열된 교회의 영역 다툼
저자 피터 프랭코판 관점이 새롭네요. ^.^

레삭매냐 2019-01-23 10:08   좋아요 1 | URL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비잔티움 제국의 사료
를 바탕으로 전개한 서사가 마음에 들었습
니다.

아마추어가 봐도 티나는 실수를 출판사에서
는 못보았는지 거 참...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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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임신 중이다. 임신 33,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려면 한 달 반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중태에 빠졌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폐렴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혈액검사를 해 보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초짜 아빠 톰은 패닉에 빠진다.

 

병원은 정말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최후의 선택지라는 생각이다. 병원에서의 무력감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메르스가 창궐하시던 시절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의 경우에도 그랬고, 꼬맹이가 신생아 시절에 20여일이나 입원했던 경험을 보면 정말 내가 무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모습을 보여 주는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구세주 같아 보였다.

 

어라? 그런데 이게 뭐지. 카린의 남편 톰은 급성 백혈병에 걸린 아내의 증상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자기가 먼저 듣겠다고 나선다. 그러니까 환자의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겠다는 거다. 왜 이러지? 카린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앞서 누군가의 딸이지 않았나. 나는 도대체 그런 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면, 카린의 부모님에게도 역시나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설사 카린과 사전에 그런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의사가 카린의 증상을 설명해 주는 자리에 부모님과 형제를 제외시킨 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책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느낌이 좋지 않군 그래.

 

톰파는 왜 간호사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알아야 한다는 건가? 나하고 정말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느낌에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미숙아로 태어난 딸 리비아도 그의 허락이 있어야 리비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볼 수 있다니... 할 말이 없어진다. 문득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결국 아내가 죽었다. 법적으로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결혼할 계획이었다. 톰 말름퀴스트는 이야기의 시간을 꼬기 시작한다. 카린의 심장맥박이 0이 된 뒤, 리비아를 가졌을 당시로 돌아간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신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톰파는 아무리 봐도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임신해서 예민한 카린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서사의 시작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시간꼬기와 톰파의 삶에 대한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카린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편 톰파의 아버지 말멘 역시 10년 전에 암진단을 받고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아비에 한부모가 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까지 건사할 상황이 될까.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복지사는 카린이 자신에게 남긴 딸 리비아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아라는 판정을 내린다. DNA가 같다는 의사의 진단이 법적으로 친자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상황이 한숨을 자아낸다. 의사들도 리비아가 톰파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행정절차는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구나 그래.

 

장인 장모인 스벤과 릴리메르와의 관계도 카롤린스카 병원에서 톰파가 병상에서 죽어가는 카린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서먹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전에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부모님 때문에 카린이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톰파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카린은 뇌수술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병실에서 생일을 맞이할 카린을 위해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생일축하 카네이션을 준비했지만,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카린에게 꽃을 전달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던 간호사 덕분에 꽃다발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했다. 물론 그런 톰파의 무심함을 먼저 지적해야겠지만. 바로 이게 남자 작가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의 죽음을 4개월 상관으로 맞이해야 했던 남자 톰파의 이야기는 리비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돈을 벌어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남자의 숙명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죽음 앞에 선, 나로서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특이한 감정에 대한 내러티브는 복잡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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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21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첫 문장 내용을 보는 순간 레삭매냐님이 겪은 일인 줄 알았어요... ^^;;

레삭매냐 2019-01-21 21:40   좋아요 0 | URL
너무 자극적인 시작이었나요?

제가 싸이러스 브로를 지대 낚은
모양입니다 ㅋㅋㅋ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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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 전작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먼저 그의 책들부터 사서 모으고 있는 중이다. 20세기 가장 탁월한 전기 작가로 명성을 날린 츠바이크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일단 <에라스무스 평전>을 읽었고, 다음 주자는 16세기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일주에 나선 모험가 마젤란의 일대기를 그린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츠바이크는 서론에서 향료가 대항해시대의 출발점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성지회복이라는 모토를 앞세운 십자군원정 역시 향료 수입이라는 경제적 이유도 한몫했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유럽은 동방의 인도에서 오는 후추 수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집트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확보하는데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유럽의 후추를 비롯한 향료 수요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유럽의 모든 부가 동방으로 흘러들어갈 심각한 무역적자 이슈가 대두되었다. 후추는 당시에 부르는 게 값이었다. 12단계나 거쳐야 하는 유통 상의 문제로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유럽 사람들은 향료 무역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의 패권을 쳐부수기 위해 다른 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항해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이 이 대모험의 선두 주자로 나서게 된다. 포르투갈의 엔리크 황태자(항해자 앙리)는 대항해를 위해 준비하는 데만 한 세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준비에 착수한다. 기존 우주론의 창시자였던 프톨레메우스의 지리 정보 대신 실제 항해에 나선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원양항해를 위한 새로운 선박 제조 기술개발에 나섰다. 결국 항해자 앙리의 적극적 후원 아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도착했고 뒤이어 바스코 다 가마가 대망의 인도에 상륙하는 개가를 올리게 됐다. 포르투갈은 비로소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말래카에 이르는 세계정복을 시작했다.

 

전기의 주인공 마젤란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은 대체로 이러했다고 츠바이크는 쓰고 있다. 4계급 귀족 출신의 24세 청년은 포르투갈 인도 원정대의 일원으로 역사 무대에 등판한다. 인도와 모로코에서 7년 동안 조국을 위해 싸운 영예로운 기사에게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는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마젤란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었을까? 절대군주 시대에 일개 군인의 무례한 태도에 국왕은 마젤란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를 제멋대로 분할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미지의 세계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이 이미 아프리카 해안과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항해로를 개발하자, 스페인도 몸이 달았던 모양이다.

 

이 때 포르투갈 국왕의 마수에서 벗어난 마젤란은 세계일주라는 중세적 아이디어를 일거에 쳐부수는 대원정을 스페인의 젊은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서 허락받는데 성공한다. 이방인에게 그런 행운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조국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마젤란은 사방의 반대와 견제를 무릅쓰고 강철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그리고 미지의 동방의 세계로 가는 위대한 탐험에 나서게 된다. 265명 그리고 다섯 척의 함대로 구성된 마젤란 원정대는 세비야를 출발해서 대양을 향해 나선다. 그의 목적은 동방무역을 장악한 포르투갈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돌아 태평양을 횡단하겠다는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계획이었다.

 

아무리 치밀한 성격의 마젤란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주로 스페인인들로 구성된 선상 반란의 불길은 막을 수가 없었다. 스페인 귀족 출신 장교들은 사사건건 함대 사령관에게 반기를 들었고,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지 못해 사령관마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공개적으로 반란을 도모한다. 타협을 모르는 사나이는 수하의 충성을 다하는 인원들을 동원해서 신속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처형시켰다. 마젤란의 독재적인 리더십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이상을 가지고 불멸의 신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그의 부하들은 지도자의 이상과는 다른 속세의 욕망만을 추구했다. 막탄 섬에서 마젤란이 어이없게 전사한 뒤, 지리멸혈한 그들의 모습을 츠바이크는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부하들을 달랠 길이 없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젤란은 태평양으로 가는,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소문난 그곳을 난파되고 반란을 일으켜 본국으로 돌아간 배를 제외한 세 척의 배로 통과한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젤란 원정대의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잔잔한 태평양 바다를 지나면서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대원들이 기아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필리핀 제도를 발견한 마젤란은 세계일주 완성이라는 신화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신중하기로 유명한 사령관은 연이은 성공으로 자만했던 걸까? 성공은 부주의를 낳는 법인가 보다. 막탄 섬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작은 무력과시에 나섰던 사령관은 원주민들과의 소규모 전투에서 어이 없이 전사하고 만다. 성공과 신화를 창조하기란 어렵지만,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지도자를 잃은 원정대는 지리멸렬했다. 포르투갈의 방해공작과 난관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본국 스페인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고작 18명 뿐이었다. 바스크 출신 배신자 세바스티안 델 카노와 그의 동조자들이 세계일주의 모든 영예를 독점한 것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영광의 마지막 순간에 마젤란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인류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해 왔던 세계일주를 통해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이것은 중세적 세계관을 허무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훗날 파나마 운하가 개발되면서 굳이 위험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든 마젤란의 위대한 업적이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서 읽은 마젤란 전기를 보면서 세계일주하는 꿈을 꿨었는데, 위대한 전기작가 츠바이크는 마젤란이 원정에 나서던 시절에 대한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유와 원인을 파악하고 원정의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냈다. 이 책을 통해 왜 특별한 기록자가 위대한 사업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아킬레우스에게는 호메로스가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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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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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에서 폴스태프님의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 대한 리뷰를 읽고 나서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치누아 아체베의 데뷔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읽어 보니 과연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한다는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누아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이보 족 출신으로, 방송국 PD 경력을 필두로 해서 시인, 소설가 그리고 대학 영문과 교수에 이르는 다채로운 편력을 쌓았다. 그가 28세에 발표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백인들이 출몰하지 않던 조상들의 시대를 살았던 우무오피아 마을 출신 씨름 챔피언 오콩코를 주인공으로 삼아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이십대 아체베가 저술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니제르 강 하류의 인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19세기말 제국주의 시대 비극의 명백한 재구성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에 따라 그들만의 삶을 영유해왔다. 대표선수로 등장한 오콩코는 우무오피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씨름꾼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베짱이 스탈일의 삶을 산 아버지 우노카와는 달리 근면과 성실로 일군의 부를 이루어냈다. 그는 최고의 전사이자 농사꾼으로, 전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부족을 위해 싸웠고 일상으로 돌아오서는 남자들의 작물인 얌농사에 전념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특성대로 오콩코는 자기 자식들을 비롯해서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자신의 장남 은워예의 유약한 성격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의 위력을 과시해서 이웃 부족 출신 소년 이케메푸나를 포로로 잡아 자신의 집에서 3년 동안이나 데리고 있었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던 소년을 마을 회의 결과 처형해야 하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아버지 우노카로부터 아무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오콩코는 특유의 담대함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빌린 얌을 밑천 삼아 재산을 일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언젠가 부족의 족장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일상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일구고 모으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마을 어르신의 장례식에서 실수로 오콩코가 쏜 총에 맞아 부족 소년이 죽으면서 오콩코는 재산을 압류당하고 우무오피아에서 7년 동안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부족의 리더가 되겠다는 오콩코의 꿈은 사라져 버렸지만, 와신상담해서 우무오피아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드디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종교로 시작해서, 정부와 교육으로 백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거의 하나의 방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들 고유의 전통을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고, 종교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백인들의 내습에 오콩코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백인들을 죽인 아바메 부족이 몰살당했다는 소문은 끔찍했다. 우무오피아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우선 오콩코의 아들 은워예가 개종하고 이름마저 이삭으로 바꿔 버렸다. 전사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아버지 오콩코의 마음이 어땠을까.

 

한편 백인들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무오피아 사람들도 다른 이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했으면 좋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광신이 문제였다. 종교 지도자 브라운 신부는 그나마 우무오피아 마을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지만, 그가 병들고 귀환하고 제임스 스미스라는 신부가 오면서부터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무당의 아들 에노치는 광신도로 변신해서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비단뱀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에 격분한 오콩코를 비롯한 마을 대표 6명이 백인 치안판사를 찾아갔다가 얼떨결에 수갑이 채워지고, 교회를 파괴한 죄로 조가비 200자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 더 이상 백인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다른 마을 출신 전령들에 분노한 오콩코는 복수에 나선다. 예상한 대로 결론은 비극으로 끝난다.

 

과연 아체베 5부작의 시작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침탈하는 서구의 제국주의에 맞선 오콩코의 투쟁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윗돌을 치는 격이었다. 오콩코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부족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힘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가진 어떤 방식의 무력으로도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칼과 도끼 같은 강경한 태도로 백인들을 대해도 그들은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무오피아 마을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유화적인 태도로 백인들을 대했어도 백인들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치안판사의 에피소드는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아프리카 민중에 대한 시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니제르 강 하류의 흑인들에게 벌어지는 매일이 그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존엄과 생사가 달린 문제들이 이방인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즐거움이었다니 입맛이 다 씁쓸하다.

 

내가 처음 만난 아체베의 작품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다만 왠지 이제 막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끝나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체베의 다른 책들도 속히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다음에 읽으려고 고른 책은 <사바나의 개미 언덕>으로 아체베 5부작의 마지막 권이라고 하던데, 흠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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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1-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극찬이라니. 당장 읽어봐야겠어요... 읽고 나신 다음에 다시 얘기해 주세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지요.

레삭매냐 2019-01-16 17:54   좋아요 0 | URL
아체베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걸까요?
저도 아리까리하네요 ~~~
 

 


그동안 책쟁이들의 염원이었던 도서구입비 공제가 드디어 작년 하반기부터 실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해서, 바로 접속해서 결과를 살펴봤다.

 

영화도 공연비에 넣어 주면 좋을 텐데 아마 영화는 공연으로 간주하지 않는 모양이다.

 

11월 12월 책구입을 많이 자제한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 잡히는 합계는 216,993원이었다. 이걸 6개월로 나누면 월간 3만 6천원 정도네. 새책으로 치면 한달에 신간 3권 정도 아닌가. 그런데 내가 작년에 산 책들의 90%가 중고서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권수는 좀 늘지 않을까.

 

가만 보면 정말 책을 많이 사시는 책쟁이가 아니라면 소득공제가 도움이 되나 싶다.

 

그나저나,

폴스태프님의 치누아 아체베 읽기에 자극을 받아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원래 중고서점에 아체베 작가의 책이 있다면 바로 샀을 텐데 아쉽게도 한 권도 없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도서관에 가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와 <사바나의 개미 언덕> 두 권을 빌렸다.

 

먼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재밌어서 단박에 50쪽이나 읽었다. 점심시간만 잘 활용해도 책 제법 읽겠는데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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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16 08:1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한 두 배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

문화공연은 간 적이 없으니 순전히
책으로다가.

cyrus 2019-01-15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5만 원 정도 나왔어요. 헌책방에서 산 책들의 비용을 합하면 20만 원 조금 넘었을 거예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어요. 아무래도 독서모임 활동을 하게 되면서 도서 지출비가 줄어들었거든요. ^^

레삭매냐 2019-01-16 08:13   좋아요 1 | URL
도서관을 자주 이용해야지 싶습니다.

어제도 아체베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답니다.

헌책방에 저도 가보고 싶으나 가차운
데는 없더라구요...

scott 2019-01-22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 읽고더이상 종이책 쌓아두지않으려고요껌값보다 싸게 매입해간 알라딘 껌공장보다 부자 ㅎㅎ

레삭매냐 2019-01-23 10:0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뻰찌 먹은 책들은 과감하게
누구나 가져 가라고 저희 동네 책장에
기부해 버립니다.

알라딘에게 헐값에 넘겨주긴 싫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