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도르의 여인
시배스천 폭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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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로운 작가의 소설은 하나의 도전이다. 전혀 새로운 문체, 그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무엇인가 따위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의 책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기해년에는 그렇게 시배스천 폭스의 책을 만나게 됐다. 아마 <새의 노래>라는 책으로 작가를 알게 되었고, 당장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살 수 있는 책을 골랐다. 그게 바로 1989년에 발표된 폭스의 두 번째 작품인 <리옹 도르의 여인>이었다. 데뷔작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관계로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라고 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날, 바닷가 기차역에 갈색 머리 소녀가 도착한다. 안 마리 테레즈라는 이름만으로 그녀는 자신의 신원을 숨긴다. 처음부터 안은 비밀을 안고 있는 설정이다. 호텔 리옹 도르에 웨이트리스로 취직하게 된 그녀를 대하는 주변 환경은 적대적이다. 그녀를 기차역에서 픽업한 롤랑은 욕실 타일을 뜯어내고 목욕 중인 그녀를 훔쳐본다. 호텔의 지배인 부앵 부인은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서 안을 괴롭힌다. 음식재료로 돼지죽을 만드는 주방장 브루노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수석 웨이터 피에르만이 그나마 좀 낫다고나 할까.

 

루베 씨로부터 도망친 소녀 안은 시골 마을에 둥지를 튼 대도시 출신 변호사 샤를 아르트만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 할아버지는 빈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무신론자였다고 한다. 유산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내 크리스틴이 있다. 잠깐 아트르만이 유부남이라고? 대충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재될지 감이 잡힌다. 아, 그리고 아르트만은 1차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언론담당 장교였다.

 

아트르만에게 호감을 느낀 안은 루셀 씨가 공사 중인 아트르만 씨네 집 먼지 청소를 위한 하인으로 자청해서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한다. 모두 3부로 구성된 <리옹 도르의 여인>의 1부의 말미에서 안은 아르트만이 설정한 심리적 안전장치를 뚫어 버린다. 14년 동안이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시배스천 폭스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주인공인 안과 아르트만 그리고 그의 아내 크리스틴에 이르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들쭉날쭉한 감정선이 그야말로 펄떡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무엇일까? 호텔 손님에게 거의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받은 안을 위해 아르트만은 적극적인 변호에 나선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가여운 웨이트리스 아가씨는 일자리를 잃었을 지도 모르겠다. 위선으로 가득한 부르주아 계급의 사나이의 호의는 직업 구제에 그치지 않고, 안에게 그럴싸한 숙소를 얻어 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당연히 그의 아내 크리스틴은 조금씩 이야기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그녀 역시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하는 남편의 변화를 감지한다.

 

부르주아 위선자의 욕망은 멈출 줄 몰랐다. 아르트만은 결국 아내 대신 안을 대동하고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야 만다. 처음부터 그 시점이 언제일지 궁금해 하던 독자는 마침내 이루어진 결론에 안도한다. 그리고 안은 자신이 가진 비밀을 털어 놓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시배스천 폭스의 장기인 포스트워 문학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른과 베르됭에서 싸운 안의 아버지가 장교를 죽인 혐의로 처형되었고, 고향에서 남편의 귀향을 기다리던 안의 어머니는 남편이 남긴 엽총으로 모든 굴욕을 끝내고 말았다. 홀로 남은 안은 스스로 서야만 했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안의 고백과 함께 그렇게 2부가 끝난다.

 

결국 소설은 이런 험난한 세파를 모두 헤치고 살아남아야 하는 안의 용기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하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어린 여성의 홀로서기란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안은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아르트만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호감에서 비롯된 감정은 곧 넘어서는 안될 선을 가뿐하게 뛰어 넘고 안-아르트만-크리스틴 사이의 긴장을 촉발시키는 매개로 작동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장빌리에의 호젓한 분위기 속에 시배스천 폭스가 고안한 감정들이 부유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르트만이 경험한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는 공감이 갔다. 안과 아르트만의 스캔들은 악덕이 언제 어디서고 번식할 기회를 노리고, 승리를 쟁취할 거라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랑하는 남편을 안이라는 유력한 경쟁자에게 잃을 위기에 처한 크리스틴의 놀라운 자제력은 또 어떤가. 감정을 모두 감추고 조용하게 집안일에 매진하던 안을 불러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각인시키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르트만의 부르주아적인 양심을 간파하고,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최종 승리는 크리스틴의 것이었다.노동자들의 주 40시간 근무제를 비판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결단난다고 외쳐 대는 유사언론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좌파 출신 정치인의 스캔들로 파시즘에 유리한 정국을 조성하는 장면도 그렇고.

 

안이 맞이한 1936년의 봄은 곧 다가올 대전쟁의 전주곡처럼 보인다. 첫 번째 세계대전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숙한 상처를 남겼다. 안이 겪어야 하는 숙명의 원인은 아버지의 처형과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트만은 자신이 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르트만은 과연 시대를 대표하는 양심이었을까? 1차 세계대전에서 한 세대를 상실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 사람들은 3년 뒤 시작될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결국 불길한 예상은 현실이 되고 안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렇게 내가 처음 만난 시배스천 폭스의 소설 <리옹 도르의 여인>은 매력적이었다. 폭스의 프랑스 3부작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새의 노래>는 나와 있지만(역시 절판이다) <샬럿 그레이>는 아예 출간조차 되지 않았다. 다음에 읽을 폭스 작가의 책은 제목도 멋진 <초록 돌고래의 거리>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리옹 도르의 여인>을 다 마무리짓기도 전에 말이다. 두툼한 사이즈의 <새의 노래>도 읽어야 하는데, 일단 구하기부터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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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2-0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네요...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됐는데... 절판 됐다고 하면 정말 아쉬운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 연휴 잘 보내세용^^

레삭매냐 2019-02-01 18:48   좋아요 0 | URL
저도 지난 달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랍니다 :>
그나저나 좀 읽을 법한 작가들의 책은 죄다
절판의 운명인지,,, 그게 아쉽습니다.

2019-02-01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1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왔는데 다시 왔시요 레삭매냐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늘 새롭게 읽고 쓰시는 열정을 배웁니다 ^^

레삭매냐 2019-02-04 20:41   좋아요 1 | URL
격려 감사합니다.

책쟁이의 숙명,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라. 열심히 읽는 건 거들 뿐.
 
전족 - 10cm 발에 갇힌 여자의 운명 더봄 중국문학 전집 3
펑지차이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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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시행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국일보가 주관하던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의 후광은 대단했다. 한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한다는 취지 아래, 전국 각지의 미인들이 한 자리에 미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행사였다. 공중파에서도 중계를 했었다. 미스 코리아 출신들이 연예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아름다움을 상품화하고 선발에 있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면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펑지차이 작가의 <전족>에 등장하는 전족 경연대회를 보고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가 생각났다.

 

소설 <전족>의 원제는 <삼촌금련>이다. 금련은 전족한 발을 의미하는 것이고, 3촌은 바로 그 발의 사이즈다. 9.9cm 아기의 발도 아니고 이게 가능한 것인가? 중국 오대십국 남당 후주 이욱 이래 중국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하나의 미적 기준이 된 전족을 펑지차이는 소설로 옮겼다. 고래도 중국에서는 발이 작은 것을 미인의 척도로 삼았던 모양이다.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마치 발 페티시에라도 빠진 듯이 하나 같이 발을 칭송하고 애무한다. 그리하여 전족은 폭력적이며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의 발을 무참하게 꺾고 성장을 막기 위해 억지로 칭칭 감아 매는 야만적인 방식도 숨겨져 있다. 오로지 전족으로 훗날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폭력을 시행하는 것이다.

 

7세 소녀이자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과향련의 할머니는 손녀딸의 미래를 위해 무자비한 전족을 실행에 옮겼다. 그 과정은 정말 끔찍해서 읽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인물이 청말 천진에 살던 골동품점 양고재의 주인장 동인안이다. 자신의 직업인 골동품 감별에도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인이지만 그의 진짜 관심사는 전족이다. 네 아들을 낳고 사별한 아내도 그렇지만, 며느리들을 들이는 기준도 역시 훌륭한 발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그렇게 17세에 동가의 맏며느리로 점지된 과향련에게 운수가 트이는가 싶었지만, 신랑은 반푼이에다가 집안 전족 경연대회에서 둘째 며느리 백금보에에게 패하는 통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발로 흥한 자, 발로 망한다는 말인가.

 

하녀 보다 못한 신세로 추락한 향련은 반푼이 남편을 잃고 그렇게 원하던 아들 대신 딸을 낳게 되자 상심하고 비상을 풀어 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이 때 짜잔 하고 등장한 인물이 바로 검은 전족의 주인공 반 이모였다. 반 이모의 지도 아래 향련은 신기의 전족에 도전하게 된다. 그전의 전족 경연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천진의 한다하는 한량들은(동인안을 포함해서) 전족에 대한 자신의 심안을 자랑하기 위해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학문적 지식 뽐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천진사절입네 하면서 천진 갑부가 팔순을 맞는 노모의 불구경을 위해 백여 채의 집을 사서 불을 지르고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수회 요원들이 수기자(소방 도구)를 작동하는 모습에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꼽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부자들의 기행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모습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끊이지 않으니 그네들의 기행은 끝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하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설의 스포일러 들어간다. 과연 전족을 무기로 동가네 집에 들어간 과향련은 행복했을까? 청말 민국 초기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전통 질서가 붕괴되고 신문물이 기존의 모든 것을 대체하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온 전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양고재의 주인장 동인안이 결국 사망했다. 시대를 풍미한 골동품상이었지만 아들 동소화와 믿었던 모작 장인 활수가 전 재산을 들고 튄 것이다. 열강의 침략과 국내 반란으로 휘청거리던 청제국의 멸망처럼 동인안의 몰락 역시 같은 궤를 달린다. 동인안이 죽고 맏며느리 향련이 대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아버지는 손녀들에게 전족을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와중에 향련의 딸 연심이 실종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가.

 

아름다움은 유행이다. 전족이 미적 기준이 되던 제국은 가고 이제 천족, 왕발의 시대가 왔다. 아름다움도 하나의 자산이 된 자본 제국주의 시대에 펑지차이 작가가 들려주는 전족에 대한 이야기는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전족의 유래로부터 시작해서, 동가네 전족 경연대회에 참여한 전족광들의 불꽃 튀는 신기에 가까운 대결은 천박한 자본주의 미인대회와는 그 결을 달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준영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여성 천족회와 구세대 여성의 대표주자 보련여사 과향련이 이끄는 복전회의 대결도 볼만하다. 언제나 그렇듯 격변의 시대에는 가치관의 대결이 이데올로기의 그것을 압도하지 않았던가. 어느 것도 좋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없다. 천족회와 복전회 모두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것만 좋고 옳다는 일방적 주장은 폭력일 따름이다. 펑지차이 작가는 전족에 얽힌 비사를 들려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전족 시행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가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향련이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전족을 하는 장면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풍습이라고 하지만 문학을 통해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해낸 펑지차이 작가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히 과향련 전족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사와 인민들의 의식구조를 명민하게 탐구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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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30 13:08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 그리고 욕망에 대해서도 쓴다
하고서는 잊어 버렸네요 ㅋㅋㅋ

구구절절히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도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뒷북소녀 2019-01-30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아직 있어요... 이제 지상파에서 중계를 안하니까... 완전 상업화되어서요...

레삭매냐 2019-01-30 16:17   좋아요 0 | URL
테레비에서 못 봐서 없어진 줄 알았네요.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 더더욱
인기가 없어진 듯.

stella.K 2019-01-30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로 흥한 자, 발로 망한다 ㅋㅋ
전족도 전족이지만 미얀마 옛 여인들 목에 링을 철철히
매고 있는 거 보면 안타깝죠. 그때문에 쇄골이 내려앉기도 한다는데.
요즘 여성들은 안 한다더군요.
옛 여인들도 안 할 수도 있는데 그냥 하더군요.
평생을 그러고 살았으니 안하면 허전한가 봐요.
그러면서 자기 딸은 절대로 못하게 한다고.
그래서 사람의 인식이 무서운 거죠.

레삭매냐 2019-01-30 16:23   좋아요 2 | URL
그렇지 않아도 저도 목에 링 건 여인
네들 생각이 났었는데, 미얀마 분들이셨
군요...

소설에서도 어머니들이 그리고 할머니
들이 자식들을 위한 거라고 딸들을 세뇌
하면서 발을 꺾고 헝겊으로 싸매는 장면
이 나오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

인식의 전환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과커피 2019-01-31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도서로 전족에 대한 이야기인 ‘ 큰발 중국 아가씨‘를 읽으며 전족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는데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1 10:23   좋아요 0 | URL
제목이 멋지네요, 큰발 중국 아가씨 ~

이 책을 통해 전족이라는 풍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인근 도토리중고서적으로 헌책 사냥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니 금방 가더라.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책 4권도 팔러 갔다. 그전에 알라딘에서 곰팡이 피었다고 뻰지 먹은 책들이며 기타 등등이다.



제법 상태가 좋은 녀석인데도 4권해서 5천원 받았다. 일단 킵하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검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4권이 있었는데 하나는 다른 시인의 책이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지고 있는 책이라 가비압게 패스 ~ <어제의 세계>와 <정신의 탐험가>들을 집어 들고 책 스캔에 나섰다.

 

점심도 안 먹고 정성껏 스캔을 했다. 제법 갠춘한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버뜨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읽지 않은 그런 책들이 많았다. 난 왜 그런 책들을 신간으로 사서 구간으로 묵히고 있단 말인가.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오래된 버전의 <늦어도 11월에는>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혹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들도? 그래서 검색을 부탁했는데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책들이었다. 원하는 책은 없구나.

 


너무 책들이 많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시간도 턱없이 부족해서 대충 보고 나와야 해서 더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밥도 먹지 않아서 배는 고프고... 그러다가 열린책들에서 나온 전설의 도끼 전집을 발견했다. 그래 이건 사야지. 어느 중고서점에서도 만나 보지 못한 푸른색 도끼 전집이 아니던가. 도끼 선생의 책이라고는 꼴랑 <죄와 벌> 읽은 게 전부인데. 그것도 그전에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보고서 꾸역꾸역 읽은 결과였다. 아쉽게도 리뷰를 쓰지 않아 어떤 갬성으로 책을 읽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시간 내에 그렇게 헌책사냥을 끝내고 계산대 앞에 섰다. 두둥~ 드디어 결단의 시간이 왔다. 그런데 책값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일단 내가 집어든 도끼 선생의 책 두 권은 각각 5,000원이었다. 그리고 츠바이크의 책들은 만원 그리고 7천원이라고 한다. 아니 이건 거의 알라딘 중고가격에 준하는 게 아닌가. 아쉽다 아쉬어. 4권 판 5천원 제하고 22,000원 내고 나왔다. 차를 가지고 왔어야 하나. 책이 무겁게 느껴진다.

 

자, 이제 밥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 초행길이라 어디에 무어가 있는지 알아야지. 뜨듯한 해장국이나 한 사발 먹었으면 좋겠는데. 해서 들어간 곳이 24시간 순댓국집이었다. 신발 벗으면서 바로 순댓국 한그릇을 주문했다. 그런데 돼지국밥이 나왔다. 순대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고. 원래 그런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냥 아무 소리 안하고 먹고 나왔다. 내가 다시 이 가게 올 일이 없으니...

 

버스 타면서 로또가게에서 미리 찍어둔 번호로 로또 한 장을 샀다. 주인장 아저씨가 대박 맞으라고 하시더라. 기분이 좋았다. 버스 안에서 도끼 선생의 <노름꾼>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어제 읽기 시작한 에드윈 H. 포터의 <리지>부터 마저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그렇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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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24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책따라 순례하는 레삭매냐님~배에선 꼬르륵 거리고! 그래도 흐뭇하시겠어요!!!

레삭매냐 2019-01-24 17:04   좋아요 1 | URL
무엇보다 도끼 선생 전집을 일부 득템해서
기분 째졌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24 17:10   좋아요 2 | URL
순댓국 주문했는데 돼지국밥 나왔는데 아무 말 안하고 먹는건 나하고 비숫하네요 ㅋㅋ

레삭매냐 2019-01-24 17:13   좋아요 1 | URL
그런 사소한 문제로 싸우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요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24 17:17   좋아요 0 | URL
그건 패쑤할 사안이죠 ㅎ

2019-01-24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24 17:04   좋아요 1 | URL
시간이 넉넉했으면 느긋하게 스캔
했을 텐데, 너무 부족해서 아쉬웠답니다...

북깨비 2019-01-24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주문 받으시는 분이 주문 받으시면서 딴 생각 하셨나보네요. 순대국~😚🎶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돼지국밥이 나오면.. 😨😨😨 저는 정말이지 너무 슬플거 같아요.. 돼지국밥이 맛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ㅠㅠ

레삭매냐 2019-01-24 17:05   좋아요 1 | URL
뭐 배가 고파서리 그냥
흡입했습니다...

두 분이서 수다에 집중하시느라
아마 주문을 실수하신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cyrus 2019-01-24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서울 헌책방에는 애서가들이 탐낼만한 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이 산 츠바이크의 책 두 권이 대구 헌책방에 있었다면 한 권당 5천원 가격으로 매겨졌을 것입니다. 온라인 중고서점 시장을 훤히 알고 있는 헌책방 주인이라면 <정신의 탐험가들>의 가격을 더 높게 매겼을 거예요. ^^

레삭매냐 2019-01-24 17:10   좋아요 0 | URL
아, 저의 패착인가요 ㅋㅋ
전 무조건 중고책은 정가 보다 낮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귀한 책이라면 더 비싸게 부를 수도 있
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네요 ㅋㅋㅋ

그나저나 츠바이크 전작에 도전 중이니
바가지 썼어도 그러려니 해야겠죠 :>

목나무 2019-01-24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점심시간 짬내서 하는 책쇼핑이라니... 느므 부럽잖아요. ㅋㅋ
게다가 득템도 하시고~ 아마 로또도 당첨될 것 같은데요! ㅎㅎ

레삭매냐 2019-01-24 18:02   좋아요 1 | URL
그놈의 순댓국 아니 돼지국밥은 그냥
후루룩 들이키고 사무실로 튀어왔답니다...

로또 맞으면 션하게 넓다란 책장과
책을 한트럭 살려구요 ㅋㅋㅋ

저의 소확행 같은 드림입니다, 드림 !!!

붕붕툐툐 2019-01-24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레삭매냐님! 저희 동네 오셨으면 말씀을 하셨어야죠~ 그럼 순대국같은 돼지국밥을 같이 먹어드렸을텐데!! 그나저나 저도 저길 가봐야겠네용!! 좋은 정보 감사합니당

레삭매냐 2019-01-24 20:40   좋아요 1 | URL
붕붕님은 안양에 사시나 봅니다 :>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들러봤답니다.
예전 자주 들르던 오래된 책방 스타일이라
마음에 들긴 했으나 가격이 착하지 않아
쫌 그랬답니다...

또 새로운 돼지국밥의 추억이 되겠네요.

AgalmA 2019-02-04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프로이트 전집 반값 전자책 구매하지 않은 걸 연신 후회하고 있어요^^; 소장책이 많아 틈틈이 하나씩 채울 생각이었는데 전자책으로 한 권 읽어보니 전집 완독은 전자책이 더 쉽겠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니체 전집도 전자책 읽기가 훨씬 편하고요! 하여 요즘은 전자책 읽기 바빠 중고책 사기에 좀 게을러졌어요ㅎ;;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이난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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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4>

 

작년 광복절에 이 책을 샀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라이프 에펜디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까지 읽다가 그만뒀나 보다. 그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는데 그 때도 실패했었다. 이번 주말 달궁 독서 모임을 앞두고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다. 요즘 읽을 책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가 한편으로는 마구 사들이고 바람에 좀 위기다. 터키 작가라고는 오르한 파묵(아직까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과 아지즈 네신 정도인데, 소설 잘 내지 않기로 유명한 학고재에서 나온 ‘터키 작가’의 책이라 더더욱 관심이 갔다. 사바하틴 알리, 아마 한국에는 처음 소개된 모양이다. 터키 번역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난아 씨가 번역을 맡아 주었다.

 

처음 두 번에 실패는 진입 장벽이 쉽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소설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의 초반 주인공은 라이프 에펜디가 아니라 나레이터 라심이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짤린 라심은 친구 함디의 배려로 그가 일하는 직장에서 독일어 번역가로 일하는 라이프 에펜디를 만나게 된다. 라이프 에펜디는 직장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그다지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다. 소설이 연재된 1940-41년 터키는 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 아마.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이었던 터키는 독일 편에 섰다가 쪽박을 차고 말았다.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던 제국은 연합국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다.

 

세계사가 재편되는 동안, 우리의 주인공 라심과 라이프 에펜디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모처에서 근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비밀을 한가득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라이프 에펜디의 삶에 라심은 조금씩 호의를 가지고 침투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폐렴으로 병석에 누워 하루하루 죽어가던 라이프 에펜디의 비망록을 입수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시공간으로 훌쩍 이동한다. 라심의 비망록 입수가 결정적 전환의 계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고대해 마지않던 모피 코트를 걸친 화가이자 카바레 가수 그리고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팜므 파탈 마돈나를 만나게 된다.

 

아니 진작에 이 스토리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사바하틴 알리는 초반에 너무 느슨한 구성으로 독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1차 세계대전 말기, 징집되어 전쟁에 투입될 뻔했던 라이프 에펜디는 훈련소에서 휴전/종전을 맞는다. 라이프 에펜디는 하우란(어디인지 구글맵을 이용해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출신의 청년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이스탄불로 유학길에 오른다. 라이프 에펜디는 처음부터 가업인 비누 공장 일보다 예술학교 입학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수줍어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주인공은 예술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빠르게 포기해 버린다. 이에 아버지는 그는 정치 문화적으로 유대감이 있었던 독일 베를린으로 보내 비누 제조에 관한 선진 기술을 배워 오라고 아들에게 주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데카당스한 분위기가 넘실거리던 전후 패전국의 수도 베를린에 도착한 라이프 에펜디는 우선적으로 언어 습득에 전념한다. 이십대 청년은 하숙집에 기거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하면서 독일어를 배운다. 이 점은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데, 첫 번째로는 뒤에 이어지는 환상의 마돈나와의 관계에서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장치이고, 두 번째로는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혼란하기 그지없던 베를린의 시대상을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배움이 즐거움이 되는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게 아니었던가. 독일 문학은 물론이고, 러시아 문학에 빠져 투르게네프를 비롯한 작품들을 라이프 에펜디는 섭렵한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처럼 마돈나와의 첫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의 삶에 대한 전조라고나 할까.

 

라이프 에펜디가 처음으로 만난 유럽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비누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장에 소개로 취업했지만, 원래 관심이 없었기에 일도 대도시의 화려한 삶도 그저 지루할 따름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라이프 에펜디는 베를린을 유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전시회에서 운명적 만난을 갖게 된다. 운명을 말고 이런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그림 앞에서 수일 동안 넋을 잃고 있는 그에게 어느 여성이 말을 건다. 그 여성이 바로 그림의 모델이자 창조자 그리고 라이프 에펜디의 영원한 사랑이 되는 유대인 여성 마리아 푸데르였다.

 

이전까지 사랑이라곤 해보지 못한 순결한 청년은 천상의 여신이 현현한 마리아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의 전개는 고전적 방식을 따른다. 다만 모델이자 화가 그리고 카바레 가수로 변신을 거듭하는 마돈나 앞에서 라이프 에펜디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마돈나는 사랑 대신 우정을 요구했다. 사랑은 고사하고 우정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24세 청년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마리아 푸데르가 시전하는 마돈나와 팜므 파탈 사이를 오가는 중첩적이고 이중적인 이미지들은 라이프 에펜디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짝사랑에 옴팡지게 빠진 청년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을 사바하틴 알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라이프 에펜디와 마리아의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는 순간, 청년에게 비보가 전해진다. 터키에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였다. 그러니 모든 것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는 약간의 신파조의 비극으로 흐른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매형으로 농간으로 유산을 강탈당하고 올리브 농사꾼으로 변신한 라이프 에펜디는 오지 않을 마돈나를 기다리고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살아간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마돈나에게 배신당한 남자는 이제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염세주의자가 되어 버린 라이프 에펜디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터키와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판타지 그리고 죽음의 드라마는 시공간을 압도한다. 소설 초반에 라심이 지적하는 대로 모든 이야기는 우연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욕망이 개입해서 그것을 필연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걷잡을 수 없이 들끓던 사랑이 잠잠해지면 남는 것은 회의 뿐인 것을. 사랑이 인도하는 대로 이끌려 가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홀로 뎅그러니 남아 있는 라이프 에펜디의 모습이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더라.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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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1-24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덕분에 알게 된 작가이고 책인데 이렇게 또 리뷰로 만나니 음~~~ 왠지 꼭 읽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ㅎㅎㅎ
에펜디가 10년 후에나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뭔지 궁금해서라도 빨리 만나봐야겠어요. ㅋㅋ

레삭매냐 2019-01-24 11:34   좋아요 1 | URL
사바하틴 알리의 다른 책들도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케말 파샤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결국 불가리아 국경을 넘다가 살해당했다고
하네요. 어째 장준하 선생의 운명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슬픈 소설이었습니다...
주말 독서모임에 가서 신나게 털어 보려구요.

책은 산 지 163일 만에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1-24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63일 만에 읽으신 것 축하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1-24 13:43   좋아요 0 | URL
왜 사서 바로 읽지 않고
묵혔다가 읽게 되는 걸까요? ㅋㅋㅋ

잠자냥 2019-01-24 13:57   좋아요 1 | URL
장도 묵혔다 먹어야 제맛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19-01-24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가 파먹기 프로젝트..... 아주 재미난 발상입니다.
전 안 읽은 책들은 따로 모아 놓아서 파먹을 게 없어 따라할 수가 없는 게 아쉽네요.
파묵을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글쎄, 제 주제에 추천이란 걸 해도 좋은 지 모르겠습니다만, 첫 작품으로 <내 이름은 빨강>이 어떨지, 말입니다. --;;

레삭매냐 2019-01-24 13:44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

제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제법 많이 정리
를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선가 막 튀
어 나오는 책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
습니다...

파묵은 아직입니다. 도전하게 되면 추천
해 주신 책을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2019-01-24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24 13:44   좋아요 1 | URL
예전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다
보니 그런 욕망들도 이제는 모두
시들해진 것 같습니다.

은거하면서 책이나 보는 것이 제
팔자인 것 같습니다.
 
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십자군원정의 발단은 동방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소스의 긴급한 요청을 받아들인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10951127일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말로 성지회복을 위해 서방 기사들을 선동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크로드 세계사>로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시선의 역사서술을 보여준 옥스퍼드대학 피터 프랭코판 교수는 비잔티움 역사의 전문가로 종래의 서방 라틴 세계의 관점이 아니라 동방의 관점에서 새로운 십자군 이야기를 선사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 출신 황제 알렉시오스가 통치하던 1090년대 초반 비잔티움 제국은 사방에서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침략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제국의 서방에서는 노르만인들이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했고, 북서쪽에서는 페체네그족의 끊임없는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진짜 위기는 제국의 동부로부터 왔는데 투르크족이 아나톨리아와 소아시아 일대를 휩쓸었다. 군인 황제답게 군사적 대응을 하다 보니, 재정위기까지 겹치게 되었다. 젊은 장정들을 죄다 현역 로 징집해서 제국을 침입하는 이민족들과 상대하다 보니 정작 농사를 지을 인원이 부족했고 그것은 바로 곡물 가격폭등으로 연결되었다.

 

알렉시오스 황제는 계속도는 원정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해 정교 사원과 수도원에까지 세금을 과세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을 떠받드는 하나의 축인 종교계와도 대결하게 되었다. 제위를 찬탈하면서 성당을 약탈하고, 수도사들을 학살한 전과도 한몫했다. 게다가 과세를 위해 관리들이 날조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니, 제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중해의 중요한 거점인 크레타와 키프러스에서는 반란의 기미까지 보였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알렉시오스는 서방에 SOS를 날렸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한편 서방의 라틴 세계 역시 교권과 황제권의 대결로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초반에는 중세를 장악한 교황의 우세로 판세가 기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무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교황을 제압하고 대립교황을 내세워 교황권의 약화를 도모했다. 즉위 초기 클레멘트 3세에 비해 세가 약했던 우르바누스 2세는 필리오케와 발효된 빵을 성찬식에 사용할 것인가로 촉발된 교리 논쟁으로 서방교회에서 대분열로 떨어져 나간 동방교회를 끌어안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전략거점인 니케아와 타르수스 그리고 안티오크를 투르크족으로부터 수복하기 위해 서방 세계에 요청한 기사들을 용병으로 쓸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사실 동방의 정보는 비잔티움 제국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도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교묘하게 비튼 선전과 선동은 서방 기독교 세계 전사들을 자극하는데 주효했다. 교황 우르바누스가 알렉시오스가 요구하는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라틴 기사들을 효과적으로 모집하기 위해 성도 예루살렘의 회복을 모토로 삼은 종교적 프로파간다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로 분열한 교회의 통합이라는 대의도 한몫했다.

 

십자군전쟁을 기록한 서방 연대기 저자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알렉시오스를 평가절하고 매도했다. 하지만 8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세 최대의 원정이 진행되는 동안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원정군을 위해 다채로운 방식의 외교술과 군수물자의 보급을 진행했다는 점을 볼 때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모든 것이 황제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황이 계획한 성지 회복이라는 거대한 목적 아래 기사들의 참전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군사계획은 사실 전무했다. 그 점에 대해 저자는 일단 십자군 부대가 황제의 영토에 들어오면 자신의 지휘 아래 움직일 거라는 판단 아래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가정한다. 가장 유력한 부대를 구성한 툴루즈 레몽을 필두로 부용의 고드프루아 그리고 알렉시오스의 숙적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보에몽 같은 역전의 용사들에게 충성 맹세를 요구하며 자신의 봉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황제에게 기사들은 제각각 다른 의도에서 때로는 수용하기도 하고, 레몽처럼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서로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기사단 부대를 통솔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은자 피에르가 지휘한 민중 십자군 부대였다. 순수한 의도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민중 십자군은 알렉시오스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알렉시오스의 동방 탈환 작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짐이 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로 민중 십자군 부대가 지나가는 각처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학살이 벌어졌고, 비잔티움 제국 내의 같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제국의 신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약탈을 감행했다. 이런 오합지졸 같은 부대의 존재로 이미 십자군전쟁의 대의는 이미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소아시아 전투에서 일시적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예 투르크군과 상대하면서 초전에 박살이 나고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극의 재현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한 정예 십자군부대는 투르크와의 전투에 나서게 된다. 첫 번째 목표는 바로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니케아였다. 방어에 나선 투르크인들은 오랜 준비로 농성에 자신이 있었지만, 십자군 가운데 보에몽으로 대표되는 노르만인들이 그동안 개발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공성 능력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 십자군의 분투와 알렉시오스의 화전양면 전략으로 결국 투르크 수비부대는 항복한다. 뒤이은 도릴라이온 전투에서 보에몽이 이끄는 부대의 활약으로 초반의 열세를 딛고 대승리를 거두면서 소아시아 전역에 십자군의 위명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십자군 전사들은 투르크 전사들이 자신들만큼이나 전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됐다. 이런 강력한 적을 상대로 이후 전개된 안티오크 공략전의 성패는 십자군전쟁의 분수령이었다.

 

한편, 알렉시오스는 내부 반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소아시아 깊숙이 진격하는 십자군 부대의 원정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대로 소아시아 수복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에몽과 그의 조차 탕크레디와 달리 자신에게 한 충성맹세를 성실하게 이행하던 고드프루아의 조카 보두앵이라는 천상의 파트너를 대리인으로 삼게 된다. 영악한 비잔티움 제국의 관리들은 십자군 부대를 성도 예루살렘으로 바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필요한 전략거점들을 하나씩 수복하면서 남하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전략이 비잔티움 제국과 십자군부대 쌍방에 유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도 탈환이라는 십자군전쟁의 대의가 계속 변질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니케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방어시설과 준비를 자랑하던 안티오크는 결국 10986월 함락되었다. 십자군 정예부대들은 안티오크 공략전에서 엄청난 병력 손실과 물자 보급의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성을 함락시키고 곧바로 당도한 모술의 지사 카르부가와의 압도적인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여타 다른 도시들과 달리 황제의 관리들이 배치되지 않았고, 본국에서 이복동생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보에몽은 비잔티움 제국 동방의 최대 도시 안티오크를 바탕으로 독립을 획책했다. 안티오크 정복 후, 자신감에 찬 십자군에게 성도 예루살렘의 함락은 시간 문제였다.

 

비잔티움 전문가 피터 프랭코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십자군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알렉시오스 황제였다. 그의 딸인 안나 콤니니가 기술한 <알렉시아드>를 온전하게 믿을 수 없지만, 황제에 대한 매도와 악의로 가득한 <프랑크인의 행적> 같은 연대기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십자군 원정의 실패 후 희생양을 찾는 서방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폄하되었지만, 알렉시오스 황제야말로 십자군전쟁의 숨은 공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황제의 의도는 붕괴 직전까지 몰린 자신의 제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서방의 기사들을 동방으로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보에몽과 탕크레디 같은 전사들을 이용해서 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한 마디로 황제의 십자군전쟁 흥행은 대성공이었다는 결론이다. 피터 프랭코판이 다룬 1차 십자군전쟁에 대한 서사시인 <동방의 부름>은 알렉시오스 1세 콤네소스를 위한 21세기 신원이다.

 

*** 그나저나 왠 놈의 오탈자가 이리도 많은가. 출판사는 좀 각성하라. 그 이유로 별 하나는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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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9-01-22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좋은 책 번역에 오탈자가 출판사가 대충 검토 했나봐요

십자군 원정 쩐의 전쟁 분열된 교회의 영역 다툼
저자 피터 프랭코판 관점이 새롭네요. ^.^

레삭매냐 2019-01-23 10:08   좋아요 1 | URL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비잔티움 제국의 사료
를 바탕으로 전개한 서사가 마음에 들었습
니다.

아마추어가 봐도 티나는 실수를 출판사에서
는 못보았는지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