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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지난 주말에 인천집에 갔다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발견했다. 최근에 읽은 정명섭 작가의 <살아서 가야 한다>를 읽고 나서 마르탱 게르 생각이 자꾸 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읽던 조르지 아마두의 책을 접고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다.
이미 영화와 소설로도 여러 번 소개가 돼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영화 <서머스비>라는 영화로 소개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좀 더 학문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16세기 중반 프랑스 랑그독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툴루즈 고등법원 판사 출신 장 드 코라스가 남긴 <잊을 수 없는 판결>를 일차 사료로 삼았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8년 간, 아버지 상시 게르와 불화 때문에 아내와 집을 떠났던 탕자 마르탱 게르가 귀환한 것이다. 처음에는 탕자의 귀환을 환영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주변인들이 새 마르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상시의 사망 후, 게르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던 상시의 동생 피에르가 선봉에 서서 조카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재판정에까지 가게 되었다. 자,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바스크 출신 상시 다게르가 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랑그독 지방의 아르티가로 일족을 이끌고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기와 제조업자로 부를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아르티가는 부근을 지배하는 영주가 없어서 외지인들도 비교적 쉽게 촌락공동체에 편입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게르라는 성도 랑그독 지방의 상황에 맞춰 게르로 개명하고 아들 마르탱을 지역 유지의 딸 베르트랑드 드 롤스와 혼인시키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문제는 1548년 스물네 살이 된 불만에 찬 게르 집안 미래의 가장인 마르탱이 아버지의 곡식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집을 떠나면서부터 발생한다. 마르탱 게르는 프랑스 국왕과 앙숙인 스페인 국왕의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젊은 혈기를 발산했다. 그러다 참전한 생캉탱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 살게 됐다.
그동안 아르티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8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마르탱 게르가 돌아온 것인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가짜였던 문제였다. 아르노 뒤 틸이라는 이름의 사기꾼이 어딘서가 마르탱 게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남편이 떠난 뒤 정조를 지키던 베르트랑드를 공략하고 나머지 식구들을 속여 게르 집안의 상속자의 위치를 따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새 마르탱의 욕심이 발단이 되었다.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가산을 맡아온 숙부 피에르에게 정산을 요구하면서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귀향 초기에는 모두가 새로운 마르탱을 지지했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그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증명할 신분증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 지금처럼 의학기술이 발전되어 DNA 검사를 해볼 수도 없었다. 결국 피에르 게르는 조카 며느리 베르트랑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가짜 마르탱 게르를 재판에 회부하기에 이른다. 종교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신세대 마르탱 게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신교도인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숙부 피에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구교도 가톨릭이 나뉘었다. 어떻게 보면 세대 간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잠자리를 같이 한 아내 베르트랑드는 진짜로 아르노의 정체를 몰랐을 지 궁금하다. 어쩌면 지난 8년간 정조를 지켜온 아내 베르트랑드는 새롭게 등장한 샛서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던게 아닐까?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요조숙녀 베르트랑드와 아르노의 결합을 창안된 결혼(invented marriage)라는 개념으로 도입해서 설명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에 의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조건에 따른 결혼이라는 말일까.
1심 재판이 열린 리으에서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는 완승을 거둔다. 하지만 새 마르탱은 즉시 항소에 나서고 2심 재판은 랑그독 지방의 중심지였던 툴루즈로 옮겨 계속된다. 바로 여기서 <잊을 수 없는 판결>의 주인공 장 드 코라스가 등장한다. 종교귀족과 더불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법복귀족을 대표하는 지식인 코라스는 달변가 새 마르탱/아르노의 파렴치한 거짓말에 넘어가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를 감옥에 가두고 가짜 마르탱의 승리를 선언할 뻔 했다.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아니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아닌가 말이다. 어떤 식으로 마르탱 게르의 드라마틱한 귀환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기꾼 아르노 뒤 틸은 진실을 자백하고, 사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영화 <서머스비>에서도 아마 리처드 기어가 아내 조디 포스터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교수형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에 실제 생활에서 진짜 마르탱 게르가 돌아왔다고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베르트랑드가 아르노에게 침대를 허락한 3년 동안, 그녀는 가짜 마르탱의 아이를 낳았지 않았던가. 그녀와 가짜 남편 사이에 합의된 ‘창안된 결혼’은 무산되었고, 이제 남은 진짜 남편의 냉랭한 시선 뿐이었다. 가짜 마르탱이 자신들의 오빠가 맞다고 극력 주장한 게르 집안의 누이들은 또 어떤가.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장성한 혈족의 얼굴을 몰라 본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묻게 된다.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인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고증을 통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설보다 더 재밌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역사적으로 남은 문서들을 바탕으로 빈 공간에는 자신의 상상력을 채워 넣은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년 전 재판기록에서 당대 랑그독 농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재창조해낸 발굴 작업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도 중국 사료를 통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히 기록문화를 바탕으로 한 서구인들의 내러티브 설계작업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