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한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연말 연휴를 보내다 보니 출근한 뒤의 후유증이 어마무시했다. 이런 된장 맞을...

노는 건 좋으나, 업무 복귀해서 정상보다 더 빡시게 뛰려니 죽갔더라.

뭐 그래도 시간을 흐르고 흘러 주말이 됐고, 내일 또 다시 출근이다.

쓰고 보니 무간지옥이로구나.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서 새해 기대작이니 어쩌구를 열심으로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책쟁이다 보니 궁금해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데, 기성 신문들의 논조는 대동소이하다. 아무래도 서로 동업자 마인드로 우라까이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엇비슷하다. 하긴 국내 문학시장은 좁아 터져서, 옆 동네에서 방귀뀌는 소리가 죄다 들리니 그 바닥에 엎어져서 생업으로 삼는 이들의 글발도 뭐 색다를 게 없겠지 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닌 듯 싶다. 뭐 다른 게 있어야 다른 썰을 풀지!

 

작년에 드디어 충격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책보다 이웃 섬나라 작가들의 책이 더 많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출처는 모르겠다. 특유의 귀차니즘 덕분에 검색을 하면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냥 패스하도록 하자.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가뜩이나 국내 문학시장이 위축된다고 하는 마당에 국내 문학이 추월당하는 수준에까지 왔단 말인가.

 

그냥 내 느낌으로 적어 보겠다. 전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그냥 한낱 책쟁이의 넋두리로 보아 주시면 될 듯 싶다. 하나의 날적이 정도로 봐도 전혀 무방하다.

 

예전에 섬나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나온다 하면 줄을 서서 책을 사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맛탱이가 가 버려서, 읽다만 마지막 책은 아직도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나. 이 양반이 드디어 판타지의 세계에 입문하셨구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국내 작가 중에서 그만큼 구매력을 촉진할 만한 작가나 작품이 있었던가?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썰은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노라.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최근에 나온 황정은 작가의 책도 심드렁하다. 정유정, 장강명, 권여선 등등의 작가들이 신작이 예고되었는데 전혀 무관심하다. 오히려 점점 더 오른쪽으로 치닫고 있는 우엘벡의 신간 <세로토닌>이 궁금할 따름이다. 신문기사를 따르면 거의 극우 또라이 작가로 보인다. 어쨌건 이 정도 화제를 불러올 정도의 작가가 없다는 게 우리 문학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아무래도 전자에 무게추가 기우는 것 같다) 이슈 파이팅이 되어야 문단 전체가 좀 들썩이고 그럴 텐데, 아예 그런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글쓰기는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된 모양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아니면 블랙리스트 시절 정권 차원의 갈굼에 대한 반대급부일까. 한없이 개인의 문제만 파고드는 침잠의 서사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수박겉핡기식의 라이트노벨의 유행도 한몫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느 신문의 신춘문예에서는 타인의 블로그 글을 베껴서 투고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표절을 표절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판 불호부호형 개그빅리그가 목전에서 진행 중이다.

 

독자들의 지갑을 화끈하게 열게 할 만한 깊이 있으면서도 매력적인 서사물의 부족도 하나의 문제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의 다양성이 아닐까. 그동안 국내문학계는 오로지 순문학만이 장땡이다라는 순혈주의를 고수해 오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신예작가들이 유일하게 등단할 수 등용문의 요지를 지키는 수문장들 역시 줄기차게 순문학만을 애정해 왔다. 그러니 좀 더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 문학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물론 순문학의 순기능에 대해 태클을 걸자는 게 아니다. 순문학은 순문학 대로, 그리고 장르물을 비롯한 기타 장르들도 숨쉴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날 읽어봐야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인의 성공담과 자기개발서는 무엇하러 시간과 돈을 들여 읽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들처럼 개발이 덜 되어서 이 모양 이 꼴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태극기부대에 가까운 우리 사쪼까지 나서서 인문학 타령을 해대는 판이 되었다. 인간과 그들이 빚어내는 문학에 대한 사랑 없이 오로지 인문학으로 포장된 신상이 주는 달콤한 과실만 챙기겠다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서 속이 좀 좋지 않았다. 어떤 감언이설이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매출증대로 귀결되는 결말이 너무 클리셰이스럽지 않은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다. 한국 사람들은 왜 점점 더 책을 읽지 않게 되는가? 역설적으로 램프의 요정 북플이나 인스타에 등장하는 수많은 강호의 책쟁이 고수들은 연간 수백권의 책을 섭렵했다며 자랑질을 일삼는다(돌이켜 보면 나도 그런 닝겡 중의 하나처럼 보인다). 그 어떤 즐거움보다 강력한 독서가 제공하는 극강의 쾌락을 모르는 이들에게, 책읽기의 훈련이 되지 않고 랜선에 떠다니는 짤의 즐거움만이 유일한 쾌락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고민해 볼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가다간 정말 기해년은 한국 문학 몰락의 원년으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1-0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7 09:03   좋아요 1 | URL
독서량이 많은 분들은 많은 분들대로,
그리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그런 분들대
로의 고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리뷰 쓰기는 정말 쉽지 않은
미션인 것 같습니다.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2019-01-06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7 09:05   좋아요 3 | URL
다른 나라들은 대개 문학이 베스트셀러
의 8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힐링이니 치유니 하는 주제를 다룬 책들
이 너무 범람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세상살이가 팍팍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네요 -

어쨌든
그렇게 시류를 타는 책들은 그 시절이
가면 다시 읽지 않게 될테니 말입니다.

물감 2019-01-07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성공담이나 자기계발서는 저도 잘 안 읽게됩니다. 오히려 문학위주로 읽어요. 그런데 알라딘 포함 제 주변의 독서가들은 문학만 안 읽어서 별로 대화할 게 없어요. 반대로 문학만 읽는 제가 시대에 뒤쳐지는 느낌만 받아요. 근데 레삭매냐님 말씀대로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그럴수도 있으니 이해해야죠... 아쉬운 맘에 그냥 끄적여봤어요.

카알벨루치 2019-01-07 10:29   좋아요 2 | URL
문학 갑입니다~진짜 문학을 많이 읽어야 뷰파인더가 커지는 건데 말입니다 ^^

레삭매냐 2019-01-07 10:36   좋아요 2 | URL
그런 점에서 다음 웹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을 추천해 드립니다.

독서모임 자기소개 시간에 자기도 자기개발서
를 열독한다고 커밍아웃했다가 그 자리에서
강퇴당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습니다...

문학을 읽는 독서모임에 나가 보시면 그런 고민
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07 10:39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그 책 만화책이죠? 읽고싶네요 레삭매냐님 제가 만화 좋아하는줄 또 아시고 ㅎㅎ

2019-01-07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7 15:08   좋아요 0 | URL
문학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종의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블로그 이웃분의 집에서 독서 결과를 엑셀로 정리하는 파일을 하나 퍼왔다. 예전에는 싸이월드에서 주로 했었는데, 옛 생각이 나서 간만에 한 번 해봤다. 세상 편해졌다 정말. 엑셀로 이런 작업도 다하고.

 

지난 달에는 모두 27권의 책을 읽었다. 11월까지 186권을 읽어서 대망의 200권을 채우기 위해 월초에 엄청 달렸다. 그래서 얍삽하게도 주로 얇아서 금방금방 읽을 수 있는 책들로 읽다가 목표 달성이 눈앞에 이르자 그 다음부터는 주로 서가 책파먹기를 실시했다.

 

새해에도 그렇지만 서가에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을 좀 읽어 보련다. 당장, 반다시 읽어야 하는 신간이 없는 이상(그리고 도서관 희망도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간은 한 달에 두 권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좀 여유로운 독서를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으나 그게 내 뜻대로 될 리가 없지. 어쨌든 조바심 내지 말고, 되는 대로 독서의 미학을 실천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나의 월간 베스트>


1. 클링조르를 찾아서 / 호르헤 볼피


2.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


3. 반역의 책 / 조너선 스펜스


역시 지난 달에 읽은 책 중에 최고는 메히코 출신 작가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였다. 분량도 대박이지만 내용도 최고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해서 원자의 비밀 그리고 미래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핵폭탄 개발에 나선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의 경쟁에 얽힌 이야기들이 종횡무진하게 전개되는 과정에 그만 매료되어 버렸다. 나같은 과학에 문외한도 쉽게 빠져들 만한 이야기였다. 로베르토 볼라뇨 덕분에 알게 된 메히코 작가 호르헤 볼피의 다른 책인 <세계 아닌 세계>는 내가 올해 처음으로 산 책이다. 절판되어 온라인 중고서점의 개인판매하시는 분에게 구입했다. 어제 도착했는데 일단 집에 고이 모셔 두었다. 이게 또 분량이 적지 않은 지라 주변 정리를 좀 하고 시작해야지 싶다.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이 저술한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도 만족할 만한 역작이었다. 아프리카 중앙의 콩고에서 식민지 탈출을 선언하면서 자주독립의 기수였던 젊은 정치인이 세계열강의 무관심 속에 어떻게 죽어갔는가는 정말 슬프고 비참한 스토리였다. 또 한편으로는 짐바브웨의 독립투사 로버트 무가베가 타락하는 걸 보고, 과연 파트리스 루뭄바가 살아서 국가권력을 행사했어도 무가베처럼 타락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책인 <블라드>와 <아우라>도 읽었다. <아우라>는 결국 리뷰를 쓰지 못하고 반납하게 됐다. 나중에라도 리뷰를 쓰기 위해서라도 재독해야지 싶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반역의 책>은 결국 8년 만에 읽고야 말았다. 언젠가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읽게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지상 최대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황제라도 하더라도, 민중의 뜻에 반하는 언론 통제에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 주는 실질적인 예라고 해야 할까. 옹정제 황위 계승에 있어 소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황제가 술고래에 황음무도하다는 이야기를 제압하기 위해 옹정제는 유언비어 제조와 역모를 주모했던 시골 출신 쩡징을 주벌하지 않고 오히려 황은을 칭송하기 위한 선전 도구로 판단하고 <대의각미록>을 대대적으로 출판해서 전국에 유통시킨다. 그의 뒤를 이은 건륭제는 반대로 철저한 사상통제에 나서게 되는, 역설적으로 <대의각미록>의 내용이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역사란 언제나 그렇듯 위정자들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새해에는 의무와 강박적 책읽기에서 탈피해서 좀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읽고 싶다. 문제는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흘러가는 독서 편력이 문제겠지만. 이상 끝.



뽀너스, 최근 회사 근처에 생긴 카페 레이크 라떼...

누가 한 겨울에 아이스 커피를 마시나 싶었는데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돌아이였고나.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1-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4 16:59   좋아요 0 | URL
그림으로 올리는 방법도 있고,
엑셀 파일 정리하는 것도 있더군요.

전자가 비주얼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내용을 강조하는 느낌이랄까요?

목나무 2019-01-04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깔끔한 정리! 저도 따라해보고 싶네요.
올해는 레삭매냐님 또 어떤 독서편력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ㅋㅋ

레삭매냐 2019-01-04 17:02   좋아요 1 | URL
제가 정한 저의 독서 (편력) 결씸은...

1. 서가 파먹기

2. 벽돌책 격파

요 두 가지입니다.

<모비딕>은... 지금이라도 조금씩 읽어야
하나 싶습니다. 하루 열쪽씩?

목나무 2019-01-04 17:04   좋아요 2 | URL
올해는 같이 <모비 딕> 완독해봐요. ^^

뒷북소녀 2019-01-04 19:38   좋아요 1 | URL
다시 읽으면 재미있을까요?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재미가 없었던 기억이ㅠ

붕붕툐툐 2019-01-04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박!! 회사에 다니시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시다닛!! 대단하심다~~
그리고 원래 냉면이 겨울 음식이듯이 아이스커피도 겨울이 제맛 아니겠습니까? 맛나 보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4 17:5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냉면은 원래 겨울철 음식이라고
하더라구요.

책은 짬짬이 그리고 주로 집에서 자기 전
에 읽는답니다 :>

뒷북소녀 2019-01-04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얍삽하게, 서가 책파먹기, 표현 넘 웃겨요.ㅋ
저도 요즘 서가 책파먹기를 하고 있죠.

레삭매냐 2019-01-04 21:42   좋아요 1 | URL
집에 있는 책만 다 읽어도 수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

소유욕을 버려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책파먹기...

뒷북소녀 2019-01-0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은퇴 후 제 노후를 위해, 연금처럼 사모으고 있었드랬죠.ㅋㅋ 나름 큰그림...이었다...고...

레삭매냐 2019-01-05 09:42   좋아요 0 | URL
쟁여 놓는 책들이 계속해서 출간되는
책들의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지 않을
까요...

듣고 보니, 그렇다면 저도? ㅋㅋㅋ

카스피 2019-01-07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년에 200권 독서라니 넘 대단하십니다^^

레삭매냐 2019-01-08 14:06   좋아요 0 | URL
강박적 독서의 소산인 것 같습니다 -

새해에는 쉬엄 쉬엄 읽어 보렵니다.
 

 

 

어라, 오늘 램프의 요정에서 무언가 도착한다는 택배 문자를 받았다.

오후 느즈막하게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점심 먹고 나서 바로 도착했다.

 

직원분이 램프의 요정 상자를 안겨 주셔서 뜯어보니, 서재의 달인/북플 마니아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우선 구성은 편지와 머그컵(무려 귀여운 월든 머그컵이었다), 2019년 피너츠 일력 그리고 동짜몽 다이어리가 들어 있었다.

 

선물은 언제나 그렇지만 항상 기분 좋은 것 같다. 새해에도 열심히 달리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읽고 써야지.

 

오늘 회사에서는 오늘 서강대 철학교수님인 최진석 교수의 경계인에 서라는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무식을 대신했는데,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 제법 있었다. 절대 타인에게 충고하지도 말고, 남의 충고도 듣지 말아라. 내가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잔소리 듣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게 아주 딱 좋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강의의 핵심은 아는 것을 현실에서 추동하라였는데, 실천의 문제는 확실히 내가 아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것은 언젠가 책을 쓰기 위함이다라는 말도 와 닿더군. 책을 쓴다는 것이 꼭 유형의 책이라는 게 아니라, 읽은 것을 글쓰기로 나를 표현하라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성인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장자 천도편에 나오는 제환공과 윤편(수레바퀴 깎는 장인)의 고사가 인상적이었다.

 

읽기와 쓰기에 거의 강박적으로 몰입하는 나같은 닝겡에게 아주 필요한 강의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들만 쏙쏙 빼먹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D.M. 풀리의 데뷔작 <데드키>도 도착했다. 기해년 새해의 기분 좋은 출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9-01-0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 4~6시에 택배가 온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아마도 그 택배 물품이 ‘서재의 달인’ 선물인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9-01-02 15:51   좋아요 0 | URL
램프의 요정이 참 센스있게 선물을 발송해 주었네요 ㅇㅇ

2019-01-02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2 15:51   좋아요 0 | URL
네 돼지해에도 열심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01-02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걸이 달력 기대했는데 메모겸 일력이 왔더군요.
이런 건 또 안 써 봐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일단 보내준 성의를 생각해서 잘 써 보려구요.
압권은 다이어리 같습니다. 대따 커요.ㅋ

레삭매냐 2019-01-02 15:52   좋아요 1 | URL
저도 일력이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바로 비닐 걷어내고 팍팍 뜯어야 할까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다이어리랑 머그컵이 젤루 마음에 듭니다.

플러스 중고서점 할인은 어떨까 싶습니다만.

서니데이 2019-01-02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선물 받으셨군요. 매년 오는 것과 올해는 조금 다른 선물이 오는 것 같은데요.
동짜몽이 뭐지? 하다가 다이어리 보고 도라에몽인 걸 알았어요.
예쁜 선물 도착해서 좋으시겠어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1-02 15:54   좋아요 1 | URL
작년에 선물이 뭐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

저희가 어렸을 때는 도라에몽이 아니라
동짜몽이었답니다. 언젠가 이름이 바뀌
어 버렸더라구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syo 2019-01-02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억의 동짜몽 ㅎㅎㅎㅎㅎ
도라에몽보다 훨씬 동그랗고 귀여울 것 같잖아요. 잘 바꾼 이름인 것 같아요. 왜 다시 도라에몽으로 돌아갔을까요.....

레삭매냐 2019-01-02 18:01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원래 도라에몽이
맞는가 봅니다. 동짜몽은 국내 번안 작품
이라는 썰이... ...

일본 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면서 제 이름
을 찾게 된 게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syo 2019-01-02 18:11   좋아요 0 | URL
아마 동그랗고 짜리몽땅하게 생겨서 붙인 이름 같은데요 ㅎㅎㅎ 훨씬 정감가고 잘 지은 이름인데 왜 되돌려야 했을까요.... 이슬이 퉁퉁이 이런 애들은 여전히 이슬이 퉁퉁이로 뒀으면서.....ㅎㅎㅎ

메오 2019-01-02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19-01-02 18:01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01-0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일본 메이지시절, 막부파와 존왕파의 대결구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쩌면 한 때 내가 즐겨 보던 만화 <바람의 검심>의 영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만화가 없었다면 보신전쟁이니 도바후시미전투 그리고 하코다테 전쟁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중의 하나인 신센구미 출신 후지타 고로에 대한 이야기도 현대일본을 설계한 막부의 신하이자, 신정부 관료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가로도 유명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반생을 다룬 자서전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사이타마현 농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려서부터 글을 가까인 한 소년이었다. 아마 그 시절 일본 소년들처럼 <대학><중용>도 배운 모양이다. 한학은 동아시아 제국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적 소양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소설 읽기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중국고사를 다룬 소설들과 패관야승 부류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가업을 도와 쪽을 매입하는 일을 하면서 상업의 세계에 투신하기도 했다. 그의 이재 기술은 훗날 입신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분상으로 햐쿠쇼(농민)인 시부사와는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내항하면서 강제개국을 하게 되고,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도쿠가와 막부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막부 타도를 목표로 폭거를 기획하기도 한다. 역시 청년 지사다운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막부 타도를 인생의 목표로 조정했던 청년이 막부에 들어가 가신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막부 조정의 인정을 받은 시부사와는 어엿한 사무라이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주특기인 회계와 재정 분야의 역량을 인정받아 막부의 역인으로 출중한 실력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히토츠바시가의 가신으로 교토수어총독으로 내정된 주군을 위해 영지에 내려가 병력을 소집하고, 식산흥업을 장려한다. 시부사와는 어쩌면 상업이야말로 미래 일본국가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왜 우리는 시부사와같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인재가 없었나 싶다. 아니 그런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위정자들을 탓해야 하는 걸까? 시부사와가 가신 그룹에 등용되기 전, 몰래 주군을 만나 담판을 짓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주군이 가신을 고를 수도 있지만, 가신이 주군을 골라 충성을 맹세할 수도 있다는 건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리라. 물론 신분 간의 위계질서가 엄정한 일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흑선의 내항과 제국의 식민지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국가적 위기감이 그런 사고의 발상을 가져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 14대 쇼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히토츠바시공이 막신 그룹에 의해 다음 쇼군으로 내정이 되자 당시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시부사와는 쇼군 계승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도쿠가와 막부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런데 시부사와의 이런 주장들이 모두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쓰인 글이 아닌 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오래 시간이 나서야 비로소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며 회상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슬쩍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시절에 이렇게 주장했다고 말이다. 어쨌든 시부사와의 주장대로 막부의 15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훗날 삿초동맹으로 알려진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공격 아래 결국 대정봉환을 하고 700년간 이어진 무신정치를 마감하게 된다.

 

시부사와는 이런 망국의 소식을 본국 일본이 아니라, 도쿠가와의 민부공자를 모시고 프랑스 유학길에서 듣게 된다. 그는 미래 벌어질 서구 열강과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개화된 사고를 가진 인사였다. 소년 도쿠가와 아키다케를 호종한 다른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장기간에 걸친 유학준비에도 시부사와는 철두철미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시부사와는 원래 신정부에 출사할 생각 없이, 미토의 후계자가 된 민부공자를 모시거나 아니면 시즈오카번으로 삭번(400만석->70만석)된 과거 주군 요시노부공을 종사할 생각이었다. 귀국 후 자신과 한 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쇠락한 막부파에 서서 차례차례 죽어가는 모습에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천하의 대세가 메이지 유신파로 돌아섰다는 것을 깨달은 시부사와는 코너에 몰린 막부파들이 장기전 대신 하코다테에 집결한 해군력을 동원해서 경천동지할 신묘한 방식으로 천하를 뒤흔들어야 살 길이 생기리라는 냉철한 분석도 내놓는다. 결국 그들은 똘똘 뭉친 토막파에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시대는 천하의 인재를 시골에서 썩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신정부의 대장성을 맡은 대보 오쿠마 시게노부는 그를 설득해서 등용하는데 성공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행적에 다시 한 번 의혹을 품게 되는데, 대장성 상관인 소보가 바로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였던 이토 히로부미라는 점이다. 과연 신정부의 관료이자 미래의 기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한론의 주창자이자 제국주의자 이토 히로부미의 영향을 단 1도 받지 않았을까.

 

어쨌든 대장성을 통해 입신한 시부사와에게 주어진 임무는 차고 넘쳤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으며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일이 바로 그가 맡은 바였다. 폐번치현이라는 수백년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상의 대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조세 징수 화폐개혁과 철도부설 그야말로 한 때 청년지사가 꿈꾼 나라의 기틀을 만드는 일들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특히 메이지 시대 근대적 세입세출의 근거한 재정개혁은 꼭 필요한 과제였다. 그때 이미 정부 내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군부(육군과 해군)는 정액론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타이완정벌을 반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내가 보기에 자신은 군부독재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변명으로 보인다) 결국 대장성을 사퇴하는 것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 삶의 전반기를 마친다.

 

요시다 쇼인 같은 자가 메이지 유신의 이데올로그였다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앞선 사상가들이 만든 부국강병(나라가 강해지면 반드시 침략전쟁이 뒤따르기 마련이다)의 실제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데 앞장 선 경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의 내셔널뱅크를 모델로 삼은 제일국립은행을 만들어, 번찰의 태환과 화폐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했고 상공업 식산을 위해 수많은 기업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 문제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이룬 일련의 행동들이 훗날 군국주의 일본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도구가 불의하게 사용된다면 그것을 좋게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인민의 생활개선을 위해 자신의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군국주의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연이은 승전에 고무되어 한반도를 병탄하고 만주를 침공했으며, 결국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펼치며 태평양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 전쟁에 필요한 전쟁물자를 만들어낸 곳이 바로 내로라하는 일본의 기업들이라는 것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던가. 과연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타이완정벌에 반대했다는 것 정도로 군국주의 일본국가 융성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의책장 2019-01-01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19-01-02 09: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해피 뉴 이얼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술년이 가고 이제 기해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무술년에도 역시나 책과 함께 보낸 그런 시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다가, 청소년기에는 그놈의 왬으로부터 비롯된 팝송에 미쳐 허송세월을 하면서 자연스레 책과 거리가 멀어졌다. 후발주자 동생은 청소년기에 책을 엄청나게 읽었는데 나는 어느 시절부터인가 책과 아주 멀어져 버렸다. 그런 시절에도 책을 놓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사람 취급하지 않는 시오노 나나미의 게스타이 로마니를 읽고 나서 로마도 찾았더랬다. 그렇게 찾은 로마는 개똥 천지였다. 차라리 파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진정한 의미에서 독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소설만 파는 닝겡인지라, 다방면에 걸친 독서가 아닌 편식쟁이 독서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 그리고 보니 역사도 아주 좋아라하는 주제라 자주 파는 편이다. 연년에 구한 오함 선생의 <주원장전>이 바로 옆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군 그래. 언제 나를 읽어줄 것인가 군은? 기해년에는 꼭 읽도록 하겠습니다.

 

기해년은 벽돌서적 격파의 해로 삼아야 하나 싶다. 대표적인 벽돌 도서로 레비-스트라우스의 <슬픈 열대>가 서가 어디에 쳐박혀 있을 테지. 에릭 홉스봄의 시대 3부작도... 홍대에서 달궁 독서모임을 가진 뒤, 마욤님과 들른 합정에서 산 <모비딕>도 당당하게 벽돌책 대열에 들 수 있으리라. 도서정가제 시행에 즈음해서 사들인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또 어떤가. 사서 고히 쟁여준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도끼 선생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려나.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도 산 지가 언제인데... 대미는 아무래도 볼라뇨의 <2666>이 아닐까 싶다. 다섯 권으로 분권된 메가픽션 중에 2권까지는 읽었는데 나머지 3권을 미처 다 읽지 못했다.

 

서가에 읽지 않고 마냥 사두기만 한 책들이 너무 많다. 새해 나의 목표는 서가에서 안읽은 책들 파먹기로소이다. 아마 새해에는 책을 단 한 권도 사지 않아도 일년 동안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무술년 나의 베스트 3를 선정한다 하고선 또 새해의 결단 기타 등등 헛소리가 길어져 버렸다. 간략하게 정리하고 나서 디비 자야겠다.

 

1. 아름다움의 선 / 앨런 홀링허스트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최초의 게이 작가 부커상에 빛나는 <아름다움의 선>이 드이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동안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이 최고의 게이 작품이라고 떠들어 댔는데 아니었다. 불초소생은 앨런 홀링허스트를 미처 모르고 그저 우물 안 개구리마냥 지가 아는 게 전부인 양 아는 척을 한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두께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할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정신을 추구하는 닉 게스트가 구사하는 그만의 세계에 침잠하게 된다면, 소설의 분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가속이 붙어, 후반으로 갈수록 아쉬움이 짙어진다. 1983년 시작된 소설은 대처의 재집권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물결 가운데, 영국 상류사회의 속살을 그대로 까발리는 고발에 가까운 면면으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같은 해에 의학계에 발표되어 전세계를 강타한 에이즈의 심각성을 있는 그대로 다룬 점도 충격적이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아름다움의 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올해의 최고의 책이었다. 창비는 속히 앨런 홀링허스트의 다른 책들도 출간해 주시길 바란다.

 

2. 석류나무 그늘 아래 / 타리크 알리

 

좋은 책들은 언제나 절판의 운명에 처한다. 독서인들이 그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책은 조용히 절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타리크 알리의 무슬림 5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인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그런 운명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구입했는지도 모른 채 나의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질이 바래져 가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다시 펴는 순간(레콩키스타 이후 책의 벽이 불타는 장면은 그전에 이미 읽었었다), 타리크 알리가 펼치는 마술 같은 이야기 속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팩션의 모범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알안달루스를 자신들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이베리아 반도 무슬림의 최후에 대한 아름다운 서사는 상상과 기대를 초월해 버렸다. 타리크 알리의 나머지 무슬림 3부작도 이제라도 출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3.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 귄터 발라프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어느덧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이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어 버렸다. 무자비한 자본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모든 가치를 이윤의 재생산이라는 구호로 압도해 버렸다. 잔혹한 산업현장에서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법을 준수하지 않은 원청업체의 관리감독 때문에 죽어 나가도, 기업이 결딴난다고 악을 쓰며 자칭 민의의 대변자라는 국회의원들 때문에 산안법 개정은 원안과 다른 괴물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자본주의 선배이자 재벌그룹의 롤모델들인 독일의 기업들 역시 산업현장에 뛰어 들어 진실을 알린 르포전문 작가 귄터 발라프 같은 진짜 저널리스트가 없었다면 한국의 재벌 같은 괴물이 되어 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귄터 발라프와 그의 동료들이 취재한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내가 누리는 저렴한 택배와 온갖 배달음식을 운반하는 라이더들의 노동을 나도 부지불식간에 착취 알레고리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쉽사리 포기하기 쉽지 않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가 아닌가 싶다. 나만을 위해 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한.

 

이상이 내가 올해 만난 최고의 3권이었다. 앞으로도 200권을 읽는 시절이 또 올지 모르겠다.

 

기해년에는 또 어떤 미지의 책들과 조우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모두들 새해에도 열심히 읽어 봅시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8-12-31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글과 책소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이 시작됩니다.
새해에는 항상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19-01-01 15:54   좋아요 1 | URL
새해인사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님도 부디 기분 좋은
무술년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12-31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1 15:55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들에 답글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길
기원합니다.

카스피 2018-12-31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레삭매냐 2019-01-01 15:5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

카스피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cyrus 2019-01-01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욤님. 정말 반가운 이름이네요. 역시 여전하시네요. 그 분을 만나서 콜린 윌슨의 책을 모으게 됐어요. ^^

레삭매냐 2019-01-01 15:58   좋아요 0 | URL
징하게 가는 달궁 독서모임입니다.
이제 9년 차로 달려 가나 봅니다.

얼마 전에도 마욤님이 콜린 윌슨의 책을
강추하셔서 하마터면 읽지도 못할 책들
을 땡길 뻔 했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19-01-01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이 뽑으신 올해의 책이라니 꼭 읽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레삭매냐님의 좋은 책 소개, 좋은 글들 많이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19-01-01 20:52   좋아요 0 | URL
독특한 개인의 취향인지라 다른 분들도
좋아하실 지는 ... 보장 못할 것 같습니다만 :>

기해년에도 열심으로 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얄리 2019-01-0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서평덕분에 타리크 알리와 귄터 발라프를 만났습니다. 아주 값진 만남이었습니다. 이제 아름다움의 선을 만나야겠네요. 레삭매냐님의 서평들 덕분에 2018년 저의 책읽기가 풍요로웠답니다. 2019년에는 서평도 써보려는데 100자 넘기 쉽지 않네요.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레삭매냐 2019-01-01 20:53   좋아요 1 | URL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지금이라도
다시 내주면 안될까 싶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절판의 운명이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기해년에도 열심
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AgalmA 2019-01-01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혀 예상밖의 3권이라 더욱 빛나는 베스트네요. 레삭매냐님 격찬이면 더욱 신뢰가서 저도 기회되면 꼭 보고 싶군요!

레삭매냐 2019-01-02 09:15   좋아요 1 | URL
한 권만 신간이고 나머지 두 책은 다
절판책이네요...

요즘 너무 적게 책을 찍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장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으면
바로 아웃 -

그러니 책을 안 살 수가 없지요...
또 책사는 핑계를 대는 걸까요?

개인의 취향이 담뿍 담긴 베스트인지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게 약점입니다.

AgalmA 2019-01-02 16:03   좋아요 1 | URL
요즘은 뭐 좀 보려고 하면 품절, 절판이 뭐이리 많은지ㅎㅎ;;; 있는 책은 리커버로 풍년 잔치고...거 참 쩝;
레삭매냐님 취향이 있어도 중상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