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보헤미안 랩소디 / 브라이언 싱어


감상일 : 2018년 12월 15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입소문이 자자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모두 아시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이 1975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오페라의 밤>에 수록된 곡으로 퀸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서 내가 보기 시작한 부분은 퀸이 밴드로 결성되어 소규모 클럽을 전전하며 틀린 가사로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대학생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 집안 출신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는데, 파르시라 특이하지 않은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그의 성적 정체성 만큼이나 복잡한 연대기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만난 메리 오스틴은 프레디의 평생의 연인이었다. 나중에 밴드가 뜨고 나서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하는데,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고, 시대의 명곡이 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내가 처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적에는 그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어디선가 튀어나온 빽판의 첫 번째 곡으로 실린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그 때 이미 헤비메틀에 심취해 있어서 어지간한 로큰롤은 취급도 안했었는데 퀸의 노래는 확실히 클라스가 틀렸다. 그리고 바로 퀸의 팬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까탈스러운 여왕(hysterical queen)을 뒷받침하는 re-write의 대가였다. 사사건건 프레디 머큐리와 부딪히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과 의사가 될 지도 모를 청년이었고, 조용하지만 팀에서 개그맨 역할을 맡은 베이스주자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프레디가 엘튼 존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미래의 자신들의 매니저와 만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 거라고 했던가. 투어에 꼭 필요한 밴을 팔아 만든 데모 앨범이 EMI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그들은 비로소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초창기 퀸의 음악적 특성은 실험(experimental)이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워 가며 갖가지 실험성 짙은 창조성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브라이언 싱어는 기가 막힌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다. 자, 다음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등장할 차례다. 당시 디스코가 판을 치던 음악계의 히트 공식(formula)은 3분 이내의 짧고 강렬한 노래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퀸의 멤버들이 제시한 오페라적 요소를 가미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두 배나 되는 6분에 달라는 음악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음악을 고집하겠다는 퀸의 멤버들과 EMI 관계자들의 사투는 결국 퀸의 승리로 끝이 났고, 희대의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 파트는 목이 찢어라 하이톤을 반복하는 로저 테일러의 작품이었다는 걸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느 밴드가 그렇듯, 완성작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박터지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밴드의 엄청난 성공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우선 평생의 사랑이라던 메리와의 관계는 프레디가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계속되는 앨범과 투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속적 부를 거머 쥐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주변에 그가 원하는 진정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폴 같은 날파리(fruitflies)들만 들끓을 뿐. 설상가상으로 밴드 내의 불화도 한 몫했다. 자신이 밴드를 대표한다는 프레디의 생각에 다른 밴드 멤버들은 질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관중들을 음악에 참여 시켜 보자는 브라이언 메이의 ‘꿍꿍따’ 아이디어로 시작된 "We Will Rock You"나 존 디컨의 환상적인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같은 명곡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마약을 의미하는 "the dust"를 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정말 웃겼다.


어쨌든 그렇게 정상에서 선 프레디 머큐리의 추락은 시작된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티를 열고 화려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훗날 그를 배신하게 되는 폴의 말마따나 그는 그저 외로운 파키스탄 소년(Paki boy)였을 따름이다. 파티 서버로 일하던 짐 허튼이라는 아저씨에게 집적거렸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와의 파트너 관계는 프레디가 에이즈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지 아마. 록 허드슨에 이어 치명적인 에이즈로 죽은 유명인사로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밴드와 거의 해체 수준까지 이르렀던 솔로 앨범 제작을 하면서 프레디의 무분별한 성관계에 대한 폭로는 비열한 폴이 방송 인터뷰로 다 까발렸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영국의 한다하는 기레기들이 총출동해서 퀸의 새로운 앨범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도 최고였다. 브라이언 메이가 거듭해서 앨범에 대해서 질문해 달라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추문에만 열중하는 기레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언론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기능도 있겠지만, 본질보다 가십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1985년 7월 13일, 밥 겔도프가 기획한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자는 라이드 에이드 공연이었다.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 두 곳에서 열린 세계의 공연에 퀸도 당연히 초대 되었지만, 폴이란 놈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메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회심한 프레디가 그동안 소원했던 멤버들에게 사과하고(초장부터 쎄게 나간다), 자선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합주 연습을 하던 중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물론 이건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영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끝낸 건 정말 탁월한 엔딩이었다. 그 이후는 추락의 연속이니 가장 강렬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밴드에 대한 에피타를 마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에 “I don't wanna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가 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뱀다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디 말렉의 키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키와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라이브 에이드> 실황 가운데, 프레디가 연주하던 피아노 위의 펩시 콜라(처음에는 단순한 PPL인 줄 알았다)와 피아노 연주를 마친 프레디에게 스탭에 무선 마이크를 건네 주는 장면 같은 디테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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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18-12-1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곡 제목이 빠져 있네요.

레삭매냐 2018-12-17 19:43   좋아요 0 | URL
제가 불초한 탓입니다...

2018-12-1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5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의 경우를
보면 또 꼭 그런 게 아닌 듯 합니다.

퀸도 전성기를 지나면서는 좋은 곡들이 예전
같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감이 마구 솟아나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cyrus 2018-12-17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와 심장을 즐겁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몇 년 후에 보랩처럼 어떤 팝스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대박날 수 있을까요? 보랩의 성공이 대단해서 아무리 뛰어난 팝의 전설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6   좋아요 0 | URL
다음 주자는 비틀즈나 혹은 롤링 스톤즈가
되지 않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스톤즈를 더 좋아하지만
믹 재거를 주인공으로 한 롤링 스톤즈 영화
가 개봉한다면 아마 보랩 정도의 인기는 끌
지 못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시대정신 혹은 타이밍의 문제가 아
닐까 싶네요.

stella.K 2018-12-1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까지 만해도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샵에 팔았다는 거 아닙니까?
영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이끌어낸 마당에
제가 그런 시대착오를 범했습니다.ㅠㅠ
빨리 봐야할 텐데 시간 끌다 나중에 VOD로 보는
시대착오를 또 범할지도 모릅니다.ㅠㅋㅋ

레삭매냐 2018-12-17 19:47   좋아요 2 | URL
오호 통재라 ~~~

보랩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

제가 관람한 곳은 떼창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다들 조용하게 관람하더군요.

마마~! 하면서 막 따라 부르고 그러면
정말 라이브 콘서트를 방불케 하지 않았
을까 싶네요 ㅋㅋ

stella.K 2018-12-18 12:33   좋아요 0 | URL
마마~! ㅋㅋㅋㅋ
그거하고 갈릴레오 하면 완전 흥분의 도가니...ㅎㅎㅎ
 
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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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 달 앞두고 책 정리에 들어갔다. 아쉽게도 그림소설 <푸른 알약>은 처분 대상이 되었다. 그전에 읽고 나서 기록을 남기려고 아침에 부리나케 읽고 리뷰를 쓴다.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만화가 프레드다. 그의 여자친구 카티는 에이즈 양성보균자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더라. 친구를 따라간 파티에서 그녀를 만났던가. 풀장에서 거침 없는 행동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 그리고 우연이 이끄는 대로 파티와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 프레드. 카티는 프레드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에이즈 환자라고.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역시 에이즈 환자라는 걸.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관계는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프레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러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관계를 계속한다는 거지. 일단 놀랍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다가올 운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 프레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운명’이라고 했지 아마.

 

아이에게 프레드는 아빠가 아니다. 아이가 없는 여느 청년처럼, 프레드 역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가족이 되어, 병든 몸의 아이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카티가 깊은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인 아이에 대해서도 동정, 아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워 나가지 시작한다. 그렇지 이런 상황이라면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동정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카티와의 스토리가 프레드에겐 하나의 소재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세상에서 너무 닳은 모양이다. 세상 탓을 해야 하나.

 

갑자기 바이러스 수치가 급상승해서 아이에게 시멘트 맛이 나는 독한 약을 먹이는 과정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이 부분이야말로 그림소설의 강점이 아닐까. 좀 더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를 것 같다. 그런 고통의 순간들의 총합이 결국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게 아닌가.

 

 

어쨌든 프레드는 에이즈에 걸린 카티와 아이를 돌보면서 일상을 영위해 간다. 관계하던 중에 얇은 막으로 만들어진 콘돔이 찢어지면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일화도 인상적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닌가. 에이즈 환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좀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엄청난 걱정, 아니 당장 눈 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고민을 들고 의사를 찾은 프레드에게 의사 선생님인 에이즈라는 질환에 무지한 이들에게 프레드가 감염될 확률은 진료실 밖으로 나갔을 때, 흰 코뿔소를 만날 정도라고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문 앞에서는 흰 코뿔소를 만나는 유사체험을 한다.

 

그렇게 프레드는 카티와 아이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셋이서 방콕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그림소설 <푸른 알약>은 끝을 맺는다. 그런데 나는 좀 더 궁금하다. 그들의 운명이. 과연 카티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레드는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는 것 같던데. 수년 동안 나의 서가의 한 구석을 차지해 온 그림소설 <푸른 알약>과 헤어질 순간이 되었구나. 이젠 안녕 친구.


*** 책 판매는 실패했다. 처음에는 상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직원 분이 더 자세히 살펴 보더니 책 옆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매입불가 판정을 내려 주셨다는. 할 수 없이 쿨하게 기증이나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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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4 20: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서구인들과 우리들의 성풍속
이 달라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림소설의 소재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무심 2018-12-21 0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렵기만 한 에이즈 환자들을 소재로 작품이 나오다니, 기막힐 뿐입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연명치료가 된다지만 글쎄 회의적입니다. 여하튼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이 죽지 않고 발동한다니 여운이 쉬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8-12-21 14:33   좋아요 0 | URL
문득 유명한 농구선수 매직 존슨이 아직
도 살아 있는지 궁금하네요.
예전만 하더라도 에이즈에 걸리면 바로
죽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 삼천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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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올해의 놀라운 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삼천리에서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 콩고의 젊은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의 죽음에 대한 책을 내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세계화(globalization)이라는 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낯설게 되지 않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서는 일어나는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1960년 8월, “자그마한 한국”이 걱정거리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석 부분을 구글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찾아보니 정락현 북한군 소위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고(8월 3일), 같은 달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식민지에 자주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콩고가 독립한 1960년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17개의 나라가 독립했다. 벨기에 레오폴드 왕의 개인 식민지였던 콩고는 80년간의 벨기에의 악랄한 식민통치를 끝내고 독립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청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가 있었다. 식민 종주국 벨기에는 콩고가 독립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독립을 추진하다 보니 갖가지 문제들이 돌출했다.

 

아프리카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콩고는 큰 덩치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수많은 부족이 난립해 있었고, 남부 카탕가의 분리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분출하는 수많은 정치적 요구를 건국 초기에 해결하기란 난망했다. 정당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루뭄바는 바콩고족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카사부부와 연립형태의 정부를 출범시킨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은 카사부부가 그리고 실질적 권리를 행사하는 총리는 루뭄바가 맡게 되었다. 열렬 민족주의자였던 루뭄바는 독립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식민 종주국 벨기에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노선을 추구했다.

 

문제는 콩고에서 막대한 이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던 벨기에의 군주 보두앵과 충돌이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보두앵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에스켄스 내각을 뒤흔들면서 콩고에 대한 노골적입 개입을 시도했다. 벨기에 국왕은 카탕가의 지도자 모이스 촘베를 후원하면서 루뭄바가 주장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대신 느슨한 연방제 형태의 콩고 국가를 선호했다.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전형적인 식민지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80년간 콩고를 폭압적으로 통치해온 제국주의자들은 반성할 줄 몰랐다.

 

일단 벨기에라는 루뭄바의 강력한 적이 형성되었다. 그 다음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목줄을 겨눈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하자, 임기 말 아이젠하워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부에서도 루뭄바가 이끄는 민족 자결주의가 성공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루뭄바가 미국에 요청한 지원 요청을 무시하자, 루뭄바는 당연히 냉전 시대 미국의 라이벌 소련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었다. 독립 후, 카탕가와 카사이를 비롯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하기 위해 소련이 지원하는 수송기와 트럭이 레오폴드빌에 도착하게 되었다. 루뭄바를 활용할 줄 몰랐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는 루뭄바에 대한 추가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 독립 초기 루뭄바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판단을 유보하던 미국은 마침내 루뭄바가 세계 평화의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판단하고 제거 작전에 나서게 된다. 여기에는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8월에 내린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루뭄바를 암살하려는 <마법사 프로젝트(Project Wizard)>를 가동시키면서 ‘죽음의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독극물학자 시드니 고틀리브를 동원하기도 했다.

 

한편, 콩고 사태에 개입된 또 하나의 키플레이어로는 스웨덴 관료 출신 다그 함마르셸드 UN 사무총장이 있었다. 그는 미국 출신 위험한 수석보좌관 앤드루 코디어의 코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보좌관은 루뭄바를 “작은 히틀러” 그리고 가나의 대통령 은크루마를 “무솔리니”라고 부르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콩고 위기 초기, 루뭄바는 블루 헬멧을 쓴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콩고의 치안과 질서를 잡아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콩고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들이 독립 후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서구인들의 시선을 일소시킬 만큼 루뭄바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자들은 열의만 있었지 실력은 없었다. 그 점이 바로 루뭄바의 실각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대안으로 유엔에 의한 신탁통치도 있었지만, 콩고 사람들의 민족 자결주의 의지는 더 이상의 외세 개입은 원하지 않았으리라. 콩고에서 자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토 동맹을 깨겠다고 나서는 벨기에의 왕정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루뭄바의 정치 성향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는 미국, 자력갱생의 실력이 없다고 판단한 유엔의 고위 관리들에게 루뭄바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벨기에와 미국 그리고 유엔 서구 삼각동맹은 카사부부를 조종해서 콩고의 합법정부 총리인 루뭄바를 9월 5일 실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여전히 루뭄바가 콩고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루뭄바가 다시 권좌로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쿠데타 성공으로 희대의 독재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조제프 모부투가 루뭄바가 발탁한 인사라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카사부부-모부투 동맹은 실각해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인 루뭄바를 체포해서 그의 최대 정적 카탕가의 모이스 촘베에게 보내는 차도살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사실상 콩고를 장악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루뭄바가 카탕가에서 비극적으로 살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콩고 사태에 개입된 모든 정파들은 루뭄바의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루뭄바는 죽었고,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아프리카 최고의 영웅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그가 계속해서 살아 콩고의 지도자로 남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독립투사로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합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친 독재를 하다가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가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 두 저자는 루뭄바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대해 가감 없는 서술을 이어간다. 서방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콩고의 지도자의 운명을 좌우할 권리는 없다. 아울러 유엔을 비롯한 서구 제국들도 빈번하게 콩고 내정 개입에 반대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실제로 반대로 행동했다. 앨런 덜레스가 이끄는 미국 CIA는 1950년대 과테말라 아르벤스 정권과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을 무너뜨린 성공신화를 밑천 삼아 콩고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어쩌면 주적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하나의 시험장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루뭄바 암살 시도가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루뭄바의 패기와 능력을 제대로 평가했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표지에 실린 파트리스 루뭄바의 사진을 보면, 사로 잡힌 맹수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서구 열강들에게 루뭄바의 이미지가 그랬던 건 아닐까.

 

파트리스 루뭄바는 냉전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나오는 설정대로 콩고 사태에 연루된 모든 이들이 루뭄바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루뭄바는 벨기에가 말하는 과거 식민 지배를 위장한 ‘협력과 연대’를 과감하게 거부했다. 서구 열강의 보호와 감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국가운영을 위해 유엔과 미국의 원조를 기대했다. 어쩌면 자력으로 신생국 콩고를 운영할 수 없었다는 점이 루뭄바가 가졌던 절대적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할 수송 장비도 부족했고, 그들에게 지급할 돈도 없었다. 화폐를 찍어내는 능력까지도 벨기에에 의존해야 하지 않았던가. 내부의 심각한 분열과 끊이지 않는 외세의 개입을 저지할 수 없었던 한 민족주의자의 죽음은 결국 조국 콩고에 조제프 모부투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를 읽기 전에 애덤 호크쉴드가 저술한 <레오폴드왕의 유령>을 읽고 싶었지만 미처 그러지 못했다. 1960년 콩고 사태의 원류가 되었던 콩고 자유국의 식민화 과정에 대한 호크쉴드의 책을 읽어 보면 우리에겐 여전히 머나먼 나라 콩고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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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조르를 찾아서 1
호르헤 볼피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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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의 연속이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라는 양대산맥이 구축한 현대 과학을 관통하는 멕시코 출신 작가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과학 교양과 심리 스릴러에 기반한 오락적 요소까지 아우르는 일대 역작이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대륙으로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단연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였다.

 

소설은 1944년 7월 20일,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모반에 연루된 수많은 인사들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기록필름에 담아 계속해서 그것을 지켜보는 히틀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당대 최고 석학 중의 한 명이었던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 교수 역시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당할 위기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42년 만에 과거를 회상한다.

 

유럽 대륙의 주인공 구스타프 링스 교수가 있었다면 대서양 건너 미국에는 프랜시스 P. 베이컨 박사가 있었다. 원자와 전자를 추적하며 우주의 비밀의 밝히려는 양자물리학자들의 노력과 경쟁이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 독일식 표현에 따르자면 분더킨트 다운 베이컨은 프린스턴에서 출발점을 찍는다. 총통의 압제 견디지 못한 유럽의 석학들은 앞다투어 신대륙으로 건너가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우주 생성과 소립자, 우리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는 역설적으로 인류 자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대량살상무기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히틀러의 전쟁기계는 동방의 대적 스탈린을 상대하면서 공격의 날이 무디어졌고, 1944년 미영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독일 제국의 패배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총통에 충성하는 일단의 무리들은 끝까지 패전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바탕에는 전세를 한 번에 역전할 수 있는 핵폭탄 프로젝트가 있었다. 거의 독일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원된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익명의 학술고문이 있었다. 그의 코드명은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등장하는 악당 기사 “클링조르”였다.

 

멕시코 출신 호르헤 볼피가 전후 원자폭탄 개발에 이렇게 정통할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베이컨 중위와 구스타프 링스 모두 과학자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출발한, 젊고 촉망받는 물리학도였던 베이컨 중위는 고등연구소에서 존 폰 노이만의 제자로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 한 자락하는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당시만 하더라도 새로운 영역이었던 양자역학 연구를 계속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흑인 애인 비비안과 상류층 출신 약혼녀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게임에 돌입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운명의 여신은 물리학자를 인간사냥꾼으로 변모시켰다.

 

독일 출신 구스타프 링스는 1차 세계대전의 기묘한 패배 이후, 혼란으로 가득했던 독일에서 수학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집합론의 창시자 게오르크 루드비히 필리프 칸토어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무한에 대한 영역이었다. 호르헤 볼피 작가는 독자에게 유려한 필치로 무한의 세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다만 수의 신비에 이끌린 학자들이 우주창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유년 시절 뜨거운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던 하인리히와 함께 구스타프는 전후 세계 문화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쾌락적 삶을 누렸다. 물론 이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하면서 베를린의 활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결혼까지 해서 평안한 시절이 계속될 것 같았던 시절은 총통의 집권으로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어느 날 하이니가 철학자의 꿈을 추구하는 대신, 총통의 군대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구스타프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독일 과학자 집단을 소개해둔 괴팅겐에서 클링조르에 대한 실낱같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베이컨은 추적에 나선다. 한편, 구스타프 링스가 베이컨 중위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베이컨의 스승 존 폰 노이만은 모든 것은 게임의 법칙에 준거해서 진행된다는 가설 아래, 애제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제3제국 출신 과학자들이 모두 클링조르 후보자라는 가설을 세우고, 유력한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이 베이컨과 링스 교수는 합의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 만큼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료가 필요한 걸까.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외교관 생활을 경험한 호르헤 볼피가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저술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현대 양자물리학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신들의 논리와 가설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나같은 과학 문외한이 들어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초반부터 소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실제 전쟁 말기,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써 가며 베이컨 중위는 알소스 특명 팀의 일원으로 고향 우르펠트에 칩거해 있던 하이젠베르크를 체포해서 호송하지 않았던가. 많은 과학자들이 조국 독일을 떠나 학문적 자유를 구가했지만, 열렬한 애국자였던 하이젠베르크는 고향을 등지지 않고 남아 히틀러에게 협력했다. 철저하게 이론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약점 중의 하나였던 실험에 충실해서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했다면 과연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호르헤 볼피는 철저하게 하이젠베르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는데,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대량생산무기 개발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결국 정치과 관계없는 과학연구에만 열중했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일단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동서 양쪽 전선에서 절대적인 수세에 몰린 히틀러가 사용하지 않았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을 숭배하는 과학도 베이컨 박사가 그의 산책길을 따라 다니는 장면, 막스 플랑크와 슈뢰딩거(현대 물리학계의 돈 후안이다) 그리고 닐스 보어를 찾아다니며 클링조르에 대해 탐문하는 장면들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 대한 한 편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내러티브의 한 축에 베이컨의 수치스러운 스캔들이 있다면, 링스 교수 역시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그런 처지였다. 아내 마리안네와 절친이지만 히틀러를 추종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교선언을 한 하인리히(하이니)와 그의 아내 나탈리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관계는 치명적이었다. 우주의 비밀을 품은 양자물리학의 세계 만큼이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음모로 점철된 인간관계 역시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실성의 원리에 버금가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베이컨 곁에 느닷없이 등장해서, 지나치게 클링조르 추적에 개입하는 이레네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게 전혀 없는데 왜 그녀는 그렇게 클링조르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걸까.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구스타프 링스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추적하는 클링조르가 등장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베이컨에게 들려준다. 어쩌면 호르헤 볼피는 <파르지팔>의 스토리라인에 깊은 감명을 받아 현대 물리학이라는 요소에 우라늄 프로젝트를 결합한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를 재조립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링조르는 그 누구도 될 수 있었고, 또 반대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그를 추적하는 가운데 들었던 경고처럼, 전자처럼 빨리 움직이면서 자신을 쫓는 인간사냥꾼들을 비웃었고 또 한 편으로는 처절한 복수를 도모하기도 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현대 과학에서 추구해온 양자역학의 비밀만큼이나 복잡한 애증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아우르는 하나의 서사시였다. 내가 읽은 호르헤 볼피의 첫 작품이었지만, 이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볼피 작가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에게 쏟아진 대가들의 성찬이 단순히 겉치레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닫게 됐다. 역사적 사실을 근본 삼아 빈 공간을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와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차용한 코드들로 채우는 작가의 문학적 시도들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시작에서 결말까지 그야말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대망의 2018년 200권 읽기 프로젝트의 200번째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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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2-12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에 대해서는 일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런 리뷰보면 저도 모르게 책을 장바구니에 담게 됩니다. ㅎㅎㅎㅎ
다양한 분야의 요소들이 잘 조합된 소설 같은데... 읽기에는 겁나지만 우선은 기억해 두려요. ^^

레삭매냐 2018-12-12 11:54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과학과는 담을 쌓고서 사는지라...

그래도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파동
역할까지 아우르는 현대 과학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놀랍게 포착하고, 그 위에 원자탄 프
로젝트를 책임진 클링조르라는 익명의 인물
을 쫓는다는 설정이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은 완벽한 토핑
이었구요.

단연 올해의 책이라 부를 만합니다.

Falstaff 2018-12-12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어봐야겠는데요.
제가 <파르지팔>의 등장인물 클링조르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그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라니, 구미가 확 당깁니다.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8-12-12 11:56   좋아요 1 | URL
저도 어제 헌책방에 가서 문지에서 나
온 <파르지팔>을 사 보려다가 나중에
빌려서 읽어야지 하고 참았습니다.

독일 고전 전승에 등장하는 성배를 찾
아 헤매는 기사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성배(그랄?)는 원자를 지배하는 자라는
유추가 탁월했습니다.

아울러 악의 대변인 클링조르를 추적한
다는 설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매혹시키는 쿤드리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독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2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은 도대체 이런 엄청난 기운이 솟아오르시는지...이분은 이 블로그의 쥔장을 말함!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님 추천한 <칠레의 밤>도 빌려서 읽는중인데 ....자꾸 추천해주시면 우리 정말.........
......
.......
.......
더 감사할께요 ㅎ

레삭매냐 2018-12-12 13:21   좋아요 1 | URL
저도 <칠레의 밤> 재독하면서 볼라뇨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더랬답니다.

참고로 장정일 선생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리뷰를 읽어 보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
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이 있다면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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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참을 수 없는 가우초>를 사서 허겁지겁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만 쏙 골라 읽었다. 어느 소년이 눈밭을 맨발로 고행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존경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수도사는 방금 수도사와 아이를 살해한 흉악범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 붙은 것을 눈치채고는 그마저도 클린할 생각이었지 아마. 볼라뇨는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에 담긴 서로 교차되는 성속의 내러티브를 즐기는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라뇨를 읽는 이유는 많다. 그 중의 하나는 아마도 니힐리즘의 정수가 아닐까. 내가 절대 가볼 수 없는 팜파스의 광활한 대지를 누비는 전직 판사 아저씨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팜파스에 더 이상 말을 볼 수가 없다. 소 대신 팜파스의 주인이 된 토끼를 덫으로 잡는 이야기는 생경하게 다가온다. 경제난과 인플레이션으로 그동안 애써 모은 자산이 종잇조각이 되자 판사는 쇠락한 시골 농장을 찾아 가우초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귀촌 정도 되려나. 아니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싶지만, 삶의 단면은 언제나 이해할 수도 그리고 설명도 불가할 순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도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부러 찾아온 문인 아들과 지인들에게 육즙이 풍성한 소고기 대신 토끼 고기를 대접하는 늙수그레한 가우초들의 이미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가우초의 삶을 사는 주인공의 꿈은 인디오 여자와의 합방으로 확정지어진다.

 

<경찰 쥐> 페페는 자꾸만 메가 픽션 <2666>을 연상시켰다. 쥐들은 동족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수도에 거주하는 유능한 형사 쥐 페페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 해결에 나선다. 페페의 목적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재갈에 물린 채 아사되었다고 했던가. 그 다음에도 쥐들의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에게 날카로운 자상을 입고 연달아 죽은 일련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페페 경찰 쥐는 범죄의 패턴을 연구하면서 아무래도 같은 쥐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굳혀 간다. 그리고 결국 범인으로 지목된 녀석과 대결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 역시 동족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의 당사자가 된다. 이런 역설이 있을 수가 있나 그래. 어쨌든 페페 형사는 족제비라는 강력한 포식자의 위협에 직면한 동족의 S.O.S. 요청을 무시하지 않고 구조하기 위해 달려간다.

 

자신의 작품을 한 없이 베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프랑스 감독 모리니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알바로 루셀로트의 기묘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원작자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은 표절행위를 문학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냐고 볼라뇨는 독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처럼 원전의 영화화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루셀로트는 표절감독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팬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같은 상황이 소설가 볼라뇨 씨에게도 벌어진다면 그는 통 크게 자신의 팬의 행동을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 있을까. 나라면 아마 그러지 못하고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분연하게 나서지 않을까 싶다만.

 

나머지 두 편은 간부전으로 죽어가던 볼라뇨의 묘비명 같은 글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작가 본인의 과도한 섹스에 대한 직접 체험도 궁극의 깨달음에 대해 한몫 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추론도 해보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섹스에 집착하는 장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도 본 션 펜 주연의 <데드맨 워킹>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지 미처 몰랐다.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인용해서 그리하여 마지막 단계로 작가는 여행을 추천했지 아마도. 하지만 여행 역시 쁘띠 부르주아에게나 해당한 일이 아닐까? 여행을 하기 위한 금전적 여유와 시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려서 여행할 적에는 돈이 없었고, 지금은 돈도 시간도 없다는 말이 왜 이렇게 실감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연에 도달해서 ‘해독제’를 찾기 위해 우리는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한다는 볼라뇨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를 겨냥한 신랄한 비판인 <크툴루 신화>는 작가 스스로 지독한 문학 소비자였던 시절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 문화권의 한다하는 작가들을 총망라한다. 노벨상 수상자로 공통분모를 형성한 만델라와 가비토 그리고 바르가스 요사에 대한 저격은 붐 세대를 끝장내려는 인프라레알리스모의 일원다운 패기를 보여준다. 볼라뇨는 현존하는 최고의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 알란 파울스를 꼽고 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된 그의 작품이 하나도 없구나.

 

내가 볼라뇨를 꾸준하게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는 하나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로드리고 프레산과 지금 한창 빠져 있는 호르헤 볼피(<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당연 올해의 발견이다!!!)를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숱한 작가들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는 책을 쓰기 위해 문학가는 모름지기 산더미 같은 책과 씨름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게 아닐까. 그렇다, 책은 소장하는 게 아니라 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책의 창조자인 문학가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존경 받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볼라뇨의 주장인데, 그럴려면 정신적 창녀가 되는 것도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걸까? 죽음을 앞둔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진격의 작가지만 볼라뇨도 그 선까지는 넘지 않은 것 같다. 베스트셀러를 경멸하면서도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라도 읽으라는 권면은 정말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볼라뇨가 부린 주술대로 한국의 어느 독자는 좀비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책쟁이라면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반드시 읽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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