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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ㅣ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평점 :

예전에 일기를 자주 썼었다. 물론 나도 서민 교수님의 말쌈대로 어릴 적에는 그렇게 일기 쓰기가 싫었다. 특히나 단골 방학 숙제인 그림일기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그 당시에는 일기 쓸 꺼리가, 껀덕지가 전혀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아니 으응? 그건 요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특히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것은 바로 날씨 쓰기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오만가지 정보를 다 제공하지만 그 시절에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신문의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신문까지 찾아 가면서 그림일기를 그릴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으므로.
그러다 어떤 일로 회심해서인지는 몰라도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하지만 엄마가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보신다는 걸 알고서는 다 모아다가 불 질러 버렸다. 아쉬운 기록들이긴 하지만 어쩌랴 이미 다 불타 없어진 것을.
서민 교수님의 글을 좋아한다. 암울했던 시절 경향신문 칼럼으로 사이다 같은 시니시즘의 정수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의 흑역사라는 <마태우스>란 책도 한 번 구해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다. 얼마나 허접하길래 절대 감추고 싶어하시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 처음부터 글을 지금처럼 잘 쓰신 건 아니란다. 그렇지, 모름지기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전율할 만큼의 글을 선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선생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일기 쓰기란다. 반성과 성찰 이런 진부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지. 인간의 기억이란 유한한 법이다. 뭐 요즘 유행하는 태블릿 피씨에 전자 펜으로 쓰는 것도 좋지만, 선생은 그런 디지털 글쓰기보다 노트와 펜으로 무장한 아날로그 방식의 글쓰기를 추천한다.
참 그리고 역시나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핑계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라. 한국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소비하는 시간이 평균 2시간은 된다고 하니 말이다. 하긴 나도 이런 말 자격이 있기는 한가 싶다. 며칠 전에 인스타 구경하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하는 후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마구잡이로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호평을 받고 심지어 팔리는 글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글을 좀 쓰려면 일기쓰기라는 자기객관화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고유의 글을 방식을 선생은 친절하게도 예문을 들어가며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그러니까 일종의 빨간펜 선생님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나는 워낙 악필이어서 디지털 글쓰기가 너무나 편하다. 게다가 어지간한 맞춤법도 알아서 척척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말이다. 물론 컴퓨터를 절대 맹신하면 안된다는 조언도 해주고 싶다. 일상에서 소재 픽업과 단상들이 떠오를 때마다 얼개를 구상하고, 노트에 잽싸게 메모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나도 책 읽기를 할 때, 메모를 해두면 리뷰의 질이 그나마 나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휘발되어 버리기가 부지기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독후감의 질이 획기적으로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쓴 글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건 사이월드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사이월드의 조회수와 댓글에 목매달았지만 모든 건 한 때 뿐이다. 최근에 다시 사이월드가 부활하긴 했지만 예전의 영화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최근 선수들은 모두 얼굴책과 인스타로 갈아탔으니 말이다. 사실 이제 블로그도 한물 간 미디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전적으로 나의 독서일기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채 10념 남짓 도토리 장사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사이월드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수천년 전 로제타 스톤은 아직도 영원한 아우라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같이 날림으로 글을 쓰는 아마추어들이 과연 글쓰기를 통한 표현력의 확장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할 문제겠지만, 일기쓰기가 표현력을 발달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근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일기를 써야 하는 거지? 한 마디로 말해 글쓰기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다는 것이다. 카톡을 보내는 것도 일종의 글쓰기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자기소설을 써야 하고, 취업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누군가 대신 써줄 수도 있고, 비용을 내고 자기소설을 살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자기만의 고유한 아우라를 가진 글이 필요한 순간을 인생에서 반드시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예언이다. 그런데 왜 공부는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사는 건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었던가... 책을 읽다 보니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시 사유의 힘이던가.
선생은 술일기도 쓰셨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이 양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술을 마신 와중에도 일기를 쓸 정도의 자제력이라면 존경해 마지 않을 수가 없을 듯 싶다. 냉면을 안주 삼아 쏘주를 마신 이야기와 후원금 삥땅을 빙자해서 방문한 학생들과 3차까지 내달리는 모습은 정말 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우리 독서모임 달궁의 삽하나님도 기레기 시절에 서민 교수님에게 밥을 얻어 드신 적이 있단다. 멋진 양반 재인증!
<밥보다 일기>를 읽는 동안, 그렇다면 나도 독서일기라도 매일 같이 써볼까 우짤까 하는 망상에 젖어 보았다. 특유의 귀차니즘과 게으르니즘 때문에 그게 잘될 턱이 있나 그래. 그냥 내 페이스대로 살아야지.
200권 채우기 나의 얍삽 프로젝트 첫 번째인 <밥보다 일기>는 수월하게 마무리지었다. 두 번째인 로베르토 볼라뇨의 <낭만적인 개들>도 읽었다. 다음 주자는 9개의 단편 중에서 한 편만을 남겨 두고 있는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 후>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블라드>를 빌려야겠다. 앞으로 8권만 더 읽으면 대망의 200권 읽기 프로젝트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