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재판 - 가리옷 유다의 시복재판에 관한 보고서
발터 옌스 지음, 박상화 옮김 / 아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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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복음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76년 발견된 <유다 복음서>는 기독교 기준에서 보면 이단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구속사 다시 말해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 <유다 복음서>의 핵심이다. 독일 출신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고전문헌학 학자인 발터 옌스는 바로 그 <유다 복음서>의 핵심 내용에 입각해서 이스카리옷 유다에 대한 시성 재판이라는 도발적인 설정 아래 재해석을 시도한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듣는다면 바로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전 서른 닢에 대사제장들의 수하들에게 “넘긴” 희대의 배신자가 바로 시카리(열심당원, 젤럿) 출신 유다라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실이 아니던가. 그런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사를 이루는데 꼭 필요했던 신의 도구라는 주장은 재해석의 영역을 넘어, 그야말로 열띤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주장은 고대 그노시스파들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사건의 시발은 1960년 예루살렘 교구의 베르톨트 신부(독일 출신 프란시스코회 소속)가 유다를 시복 심의에 공식적으로 회부하면서 시작된다. 가톨릭에서 기적에 준하는 것을 기준으로 엄격한 심의를 거쳐야 복자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발터 옌스 교수는 먼저읽기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유다에게 시복 심의가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정통 기독교 성서해석에 따르면 열두 명의 사도 중에 재정을 맡았던 유다는 순전히 개인적 탐욕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리사이인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베르톨트 신부의 핵심 주장인 유다의 회심과 은전 서른 닢의 성전 반납 그리고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에 대한 키스 등은 죄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는 순교자가 아니라 베엘제불의 자식이라는 주장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양측의 첨예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상이한 해석을 도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은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해서 유다가 마땅히 순교자라는 입장을 취한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신자들의 청원은 반드시 심사 혹은 재판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전례에 따라 베르톨트 신부의 청원은 이른바 사도재판에 회부된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은 묘하게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자들의 주장대로 유다가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 싸운 투사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신앙검찰관들은 베르톨트 신부가 제시한 사안들을 조목조목 부정한다. 그들은 성서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처음부터 고수한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대로 유다가 순교자가 되어 복자가 된다면, 사탄이나 루시퍼도 다음 순서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는 논리도 등장한다. 다시 한 번 성서해석이 얼마나 어려운 임무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었다. 베르톨트 신부는 행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행간에 무엇을 채우는지에 따라 정통과 이단으로 나뉘게 되는지 신앙검찰관들은 정말 몰랐던 걸까. 재판은 무한정 길어지고 특별한 판결도 나지 않은 채 시간만 허송세월한다. 과연 현대의 시각으로 2천년에 있었던 일대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반전은 예심에 참가했던 예부성성의 전권대리인 에토레가 베르톨트 신부의 후계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단적인 주장을 펼친 베르톨트 신부는 결국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병까지 걸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베르톨트 신부가 주장한 대의는 에토레에게 전수되고, 에토레는 장장 12년을 끈 재판의 조속한 진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유다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는 발터 옌스 교수가 이 책을 발표했던 1975년에는 신선했을 지 몰라도, <유다 복음서>의 내용과 그노시스파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진 지금에는 색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다 같은 배신자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순교자로 시복하자는 설정은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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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21 14:36   좋아요 1 | URL
발터 옌스 교수의 소설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설명하더군요.

신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거부하지 않
고 받아들인 진정한 영웅이라는...

정말 영지주의적인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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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는 아마 <베아트리스와 버질>이었지. 삶에는 모름지기 안내자가 필요한 법, 연옥과 지옥에는 버질, 베르길리우스가 그리고 천국의 안내자는 베아트리스가. 그런데 왜 제목은 <20세기의 셔츠>지? 다 이유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스패니시 캐나다 출신으로 트렌트 대학을 졸업한 얀 마텔의 <20세기의 셔츠>를 읽었다. 표지를 보면 줄무늬 셔츠가 등장한다. 그리고 당나귀 베아트리스 등 위에 올라탄 붉은고함원숭이 버질도 보인다. 그 둘은 셔츠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 안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과연.

 

저자 마텔이 말하듯, 소설 <20세기의 셔츠>는 누가 봐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마텔은 유대인도 그리고 독일인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접한 홀로코스트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주로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기록이었다. 빅터 프랭클, 로베르 앙텔므 그리고 프리모 레비까지 모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대재앙에 대한 기록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들이 전하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고 무겁다. 하지만 얀 마텔은 홀로코스트에 상상력을 얹으라고 주문한다. 인류의 비극에 상상력을 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이지?

 

우선 얀 마텔은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로 헨리 로트라는 작가를 등장시킨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평론과 소설 두 편을 동시에 발표하는 헨리. 책이 출간된 뒤, 런던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헨리는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는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드러내야 하는 법이지. 글을 쓰는 이들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 사건이 있은 뒤, 헨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어느 대도시에 이방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소설로 성공한 작가로 간주되던 그에게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한다. 그 중에서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헨리라는 이름의 사나이의 편지가 그의 눈에 들기 시작한다. 희곡을 쓴다는 그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헨리와 만나야 이야기가 더 전개가 되겠지. 점점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소설가 헨리 로트가 만난 헨리는 오카피 박제상회의 솜씨 좋은 박제사다. 그가 평생을 걸쳐 쓴 희곡이 바로 <20세기의 셔츠>다. 이제 왜 제목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아니라 <20세기의 셔츠>인지 알겠지. 홀로코스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소설가 헨리는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역시 그의 일환으로 보인다.

 

희곡 <20세기의 셔츠>에서 근면 성실을 대표하는 선수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영리한 고함원숭이 버질은 배에 대해 신랄한 대화를 나눈다. 버질이 배를 몰랐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실존하는 사물을 보지 않은 이들은 배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는 어떨까? 이단적인 수정주의자들은 아예 나치의 대학살극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동물들의 우화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대입하는 순간, 소름이 쭉 끼칠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수십 년간에 쌓인 적폐청산을 위한 역사투쟁의 순간을 살고 있지 않은가. 통제받지 않는 사법 권력의 부역자들이 재판 결과를 가지고 최고권력자와 거래를 한 사실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암담한 순간 말이다.

 

박제사 헨리는 자신이 행하는 박제 행위를 옹호한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박제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그의 설득이 나에게는 적어도 유효하지 않았다. 박제사 헨리의 주장 덕분에 남아프리카에 살다가 멸종된 사바나얼룩말 쿠아가에 대해 알게 된 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싶다. 우리는 현재 대멸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지구별에 번성해온 다양한 생물종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다가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도 언젠가 멸종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열심히 읽다가 만나게 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살쾡이>(우리나라에는 <표범>으로 소개되었다)를 만난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마침 서가에 비치해 둔 책이라 잠시 살펴보기도 했다.

 

소설 초반에는 작품 속의 또다른 작품 희곡과 뒤섞이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20세기의 셔츠>에는 어떤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가 이어질 따름이다. 박제사 헨리가 소설가 헨리에게 전달한 쪽지에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에는 줄거리도 없으며, 살인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점만 적시되어 있을 뿐이다. 박제사 헨리를 황급하게 찾아간 소설가 헨리는 전직 나치 부역자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다. 전번제(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나치 부역자의 소멸은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내가 처음 만난 얀 마텔의 작품은 대단히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전개로 이어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전혀 홀로코스트 문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한국 작가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게 된다면 어떨지 살짝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얀 마텔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까 했지만 지난 가을에 산 <유보트 비밀일기>가 조금 더 궁금해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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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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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인천집에 갔다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발견했다. 최근에 읽은 정명섭 작가의 <살아서 가야 한다>를 읽고 나서 마르탱 게르 생각이 자꾸 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읽던 조르지 아마두의 책을 접고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다.

 

이미 영화와 소설로도 여러 번 소개가 돼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영화 <서머스비>라는 영화로 소개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좀 더 학문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16세기 중반 프랑스 랑그독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툴루즈 고등법원 판사 출신 장 드 코라스가 남긴 <잊을 수 없는 판결>를 일차 사료로 삼았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8년 간, 아버지 상시 게르와 불화 때문에 아내와 집을 떠났던 탕자 마르탱 게르가 귀환한 것이다. 처음에는 탕자의 귀환을 환영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주변인들이 새 마르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상시의 사망 후, 게르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던 상시의 동생 피에르가 선봉에 서서 조카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재판정에까지 가게 되었다. 자,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바스크 출신 상시 다게르가 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랑그독 지방의 아르티가로 일족을 이끌고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기와 제조업자로 부를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아르티가는 부근을 지배하는 영주가 없어서 외지인들도 비교적 쉽게 촌락공동체에 편입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게르라는 성도 랑그독 지방의 상황에 맞춰 게르로 개명하고 아들 마르탱을 지역 유지의 딸 베르트랑드 드 롤스와 혼인시키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문제는 1548년 스물네 살이 된 불만에 찬 게르 집안 미래의 가장인 마르탱이 아버지의 곡식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집을 떠나면서부터 발생한다. 마르탱 게르는 프랑스 국왕과 앙숙인 스페인 국왕의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젊은 혈기를 발산했다. 그러다 참전한 생캉탱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 살게 됐다.

 

그동안 아르티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8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마르탱 게르가 돌아온 것인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가짜였던 문제였다. 아르노 뒤 틸이라는 이름의 사기꾼이 어딘서가 마르탱 게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남편이 떠난 뒤 정조를 지키던 베르트랑드를 공략하고 나머지 식구들을 속여 게르 집안의 상속자의 위치를 따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새 마르탱의 욕심이 발단이 되었다.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가산을 맡아온 숙부 피에르에게 정산을 요구하면서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귀향 초기에는 모두가 새로운 마르탱을 지지했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그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증명할 신분증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 지금처럼 의학기술이 발전되어 DNA 검사를 해볼 수도 없었다. 결국 피에르 게르는 조카 며느리 베르트랑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가짜 마르탱 게르를 재판에 회부하기에 이른다. 종교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신세대 마르탱 게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신교도인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숙부 피에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구교도 가톨릭이 나뉘었다. 어떻게 보면 세대 간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잠자리를 같이 한 아내 베르트랑드는 진짜로 아르노의 정체를 몰랐을 지 궁금하다. 어쩌면 지난 8년간 정조를 지켜온 아내 베르트랑드는 새롭게 등장한 샛서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던게 아닐까?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요조숙녀 베르트랑드와 아르노의 결합을 창안된 결혼(invented marriage)라는 개념으로 도입해서 설명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에 의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조건에 따른 결혼이라는 말일까.

 

1심 재판이 열린 리으에서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는 완승을 거둔다. 하지만 새 마르탱은 즉시 항소에 나서고 2심 재판은 랑그독 지방의 중심지였던 툴루즈로 옮겨 계속된다. 바로 여기서 <잊을 수 없는 판결>의 주인공 장 드 코라스가 등장한다. 종교귀족과 더불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법복귀족을 대표하는 지식인 코라스는 달변가 새 마르탱/아르노의 파렴치한 거짓말에 넘어가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를 감옥에 가두고 가짜 마르탱의 승리를 선언할 뻔 했다.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아니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아닌가 말이다. 어떤 식으로 마르탱 게르의 드라마틱한 귀환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기꾼 아르노 뒤 틸은 진실을 자백하고, 사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영화 <서머스비>에서도 아마 리처드 기어가 아내 조디 포스터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교수형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에 실제 생활에서 진짜 마르탱 게르가 돌아왔다고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베르트랑드가 아르노에게 침대를 허락한 3년 동안, 그녀는 가짜 마르탱의 아이를 낳았지 않았던가. 그녀와 가짜 남편 사이에 합의된 ‘창안된 결혼’은 무산되었고, 이제 남은 진짜 남편의 냉랭한 시선 뿐이었다. 가짜 마르탱이 자신들의 오빠가 맞다고 극력 주장한 게르 집안의 누이들은 또 어떤가.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장성한 혈족의 얼굴을 몰라 본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묻게 된다.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인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고증을 통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설보다 더 재밌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역사적으로 남은 문서들을 바탕으로 빈 공간에는 자신의 상상력을 채워 넣은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년 전 재판기록에서 당대 랑그독 농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재창조해낸 발굴 작업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도 중국 사료를 통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히 기록문화를 바탕으로 한 서구인들의 내러티브 설계작업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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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8-12-20 08: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저보다 훨씬 잘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부끄럽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묵향 2018-12-19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함께 축하드립니다^^ 좋은 연말 보내십시오~

레삭매냐 2018-12-20 08:14   좋아요 2 | URL
네 감사합니다 ~

묵향님도 즐거운 연말연시 되시길
기원합니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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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좋아하는 주제인데다 서스펜스적인 요소가지 겸비해서 읽는 데 제격이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에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문제작 <로즈메리의 아기>를 발표한 아이라 레빈은 히틀러의 충실한 후계자 요세프 멩겔레가 제4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대안역사를 가정에서 놀라운 소설을 시작한다.

 

1974년 가을, 브라질의 상파울루 일식집에 백색 양복을 입은 노신사와 함께 6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집결한다. 이른바 나치 친위대 잔당들의 비밀조직인 “카메라덴베르크”의 요원들이었다. 백색 양복의 리더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악명을 날린 친위대 장교 요세프 멩겔레였다. 실제 역사에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의 끈질긴 추격으로 브라질의 밀림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멩겔레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멩겔레 박사는 6명의 전직 친위대 요원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린다. 미국와 캐나다를 비롯해서 영국, 서독,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9개국에 산재한 94명의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책에서 은퇴한 65세 가량의 남성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일절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밀조직의 명령이란 그런 게 아닌가. 요세프 멩겔레는 오로지 아리안족의 영광과 죽은 총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만 간략하게 덧붙인다. 사명을 받은 킬러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이들의 회동에 대한 기록이 비밀리에 소형 녹음기에 녹음된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출신 유대계 청년인 배리 쾰러가 저명한 나치 사냥꾼 야코프 리베르만(시몬 비젠탈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는 순간, 나치 킬러들이 등장해서 청년을 죽이고 은폐를 시도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야코프 리베르만이 그렇게 등장한다. 나치의 음모를 캐려는 청년 쾰러의 시도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쾰러가 전달해준 메시지를 추적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카메라덴베르크의 충실한 킬러들은 멩겔레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10월 16일부터 다음해 4월 23일까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한다. 나치의 살인기계들은 그야말로 톱니바퀴 돌아가듯 그렇게 성실하게 암살 임무를 수행한다.

 

리베르만은 연쇄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고를 추적하던 중, 희생자들이 모두 13~4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을 불법적으로 입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놀랍게도 서로 닮았다는 점도.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멩겔레가 수용소에 억류된 유대인들에게 시도하던 실험이 쌍둥이와 우생학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른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는 마침내 멩겔레가 인간 복제, 다시 말해 당시만 하더라도 충격적인 클로닝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복제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걸 누설하면 안되기에 그 부분은 패스하도록 하자.

 

역시 나치 전범이었다가 사실이 드러나 독일로 송환된 프리다 말로니를 통해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입양아를 불법적으로 공급했다는 점도 소설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다. 리베르만의 끈질긴 추격으로 카메라덴베르크 작전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이베르트 대령을 필두로 한 지휘 그룹은 작전 취소를 명령하고 요원들을 소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멩겔레는 자신이 직접 나치 사냥꾼 리베르만을 제거하고, 남은 암살 명단에 오른 인원들을 처치하겠다며 변장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 아이라 레빈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은 대안역사를 창조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많은 나치의 잔당들이 독일 국내에 숨어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연루된 책임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연합군의 의중을 파악한 이들은, 오데사 프로젝트 아래 조국 독일을 떠나 남미에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았다. 가장 유명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은 모사드와 협력해서 아이히만과 슈탕글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길 노력에도 불구하고 멩겔레와 그의 하수인이었던 알로이스 브루너 같은 이들은 끝내 역사의 재판정에 세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치 잔당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서 제 4제국을 만들겠다는 허황된 계획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부상도 처음에는 절대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라 레빈 소설의 핵심은 독자로 하여금 히틀러와 나치들이 부상하게 된 세계적 위기 상황의 재연과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 심리에 대한 하나의 경고장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 있지 않은가. 이런 수상한 시절이야말로 히틀러 같은 엉터리 지도자들이 득세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나치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93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그 어느 누구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정당이 독일 국가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2018년에 보면 좀 억지스러워 보이는 나치 음모설에 입각한 클로닝도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발표된 42년 전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이 발표되고 2년 뒤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 시리즈의 말썽쟁이 마호니가 미국 청년 배리 쾰러 역을 맡은 트레일러를 유투브를 통해 봤는데, 상당히 소설에 부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고전영화로도 만나 보고 싶다. 다시 영화화가 된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아직 현실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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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보헤미안 랩소디 / 브라이언 싱어


감상일 : 2018년 12월 15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입소문이 자자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모두 아시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이 1975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오페라의 밤>에 수록된 곡으로 퀸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서 내가 보기 시작한 부분은 퀸이 밴드로 결성되어 소규모 클럽을 전전하며 틀린 가사로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대학생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 집안 출신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는데, 파르시라 특이하지 않은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그의 성적 정체성 만큼이나 복잡한 연대기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만난 메리 오스틴은 프레디의 평생의 연인이었다. 나중에 밴드가 뜨고 나서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하는데,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고, 시대의 명곡이 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내가 처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적에는 그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어디선가 튀어나온 빽판의 첫 번째 곡으로 실린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그 때 이미 헤비메틀에 심취해 있어서 어지간한 로큰롤은 취급도 안했었는데 퀸의 노래는 확실히 클라스가 틀렸다. 그리고 바로 퀸의 팬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까탈스러운 여왕(hysterical queen)을 뒷받침하는 re-write의 대가였다. 사사건건 프레디 머큐리와 부딪히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과 의사가 될 지도 모를 청년이었고, 조용하지만 팀에서 개그맨 역할을 맡은 베이스주자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프레디가 엘튼 존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미래의 자신들의 매니저와 만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 거라고 했던가. 투어에 꼭 필요한 밴을 팔아 만든 데모 앨범이 EMI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그들은 비로소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초창기 퀸의 음악적 특성은 실험(experimental)이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워 가며 갖가지 실험성 짙은 창조성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브라이언 싱어는 기가 막힌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다. 자, 다음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등장할 차례다. 당시 디스코가 판을 치던 음악계의 히트 공식(formula)은 3분 이내의 짧고 강렬한 노래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퀸의 멤버들이 제시한 오페라적 요소를 가미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두 배나 되는 6분에 달라는 음악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음악을 고집하겠다는 퀸의 멤버들과 EMI 관계자들의 사투는 결국 퀸의 승리로 끝이 났고, 희대의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 파트는 목이 찢어라 하이톤을 반복하는 로저 테일러의 작품이었다는 걸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느 밴드가 그렇듯, 완성작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박터지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밴드의 엄청난 성공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우선 평생의 사랑이라던 메리와의 관계는 프레디가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계속되는 앨범과 투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속적 부를 거머 쥐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주변에 그가 원하는 진정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폴 같은 날파리(fruitflies)들만 들끓을 뿐. 설상가상으로 밴드 내의 불화도 한 몫했다. 자신이 밴드를 대표한다는 프레디의 생각에 다른 밴드 멤버들은 질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관중들을 음악에 참여 시켜 보자는 브라이언 메이의 ‘꿍꿍따’ 아이디어로 시작된 "We Will Rock You"나 존 디컨의 환상적인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같은 명곡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마약을 의미하는 "the dust"를 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정말 웃겼다.


어쨌든 그렇게 정상에서 선 프레디 머큐리의 추락은 시작된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티를 열고 화려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훗날 그를 배신하게 되는 폴의 말마따나 그는 그저 외로운 파키스탄 소년(Paki boy)였을 따름이다. 파티 서버로 일하던 짐 허튼이라는 아저씨에게 집적거렸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와의 파트너 관계는 프레디가 에이즈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지 아마. 록 허드슨에 이어 치명적인 에이즈로 죽은 유명인사로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밴드와 거의 해체 수준까지 이르렀던 솔로 앨범 제작을 하면서 프레디의 무분별한 성관계에 대한 폭로는 비열한 폴이 방송 인터뷰로 다 까발렸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영국의 한다하는 기레기들이 총출동해서 퀸의 새로운 앨범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도 최고였다. 브라이언 메이가 거듭해서 앨범에 대해서 질문해 달라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추문에만 열중하는 기레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언론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기능도 있겠지만, 본질보다 가십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1985년 7월 13일, 밥 겔도프가 기획한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자는 라이드 에이드 공연이었다.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 두 곳에서 열린 세계의 공연에 퀸도 당연히 초대 되었지만, 폴이란 놈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메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회심한 프레디가 그동안 소원했던 멤버들에게 사과하고(초장부터 쎄게 나간다), 자선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합주 연습을 하던 중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물론 이건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영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끝낸 건 정말 탁월한 엔딩이었다. 그 이후는 추락의 연속이니 가장 강렬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밴드에 대한 에피타를 마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에 “I don't wanna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가 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뱀다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디 말렉의 키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키와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라이브 에이드> 실황 가운데, 프레디가 연주하던 피아노 위의 펩시 콜라(처음에는 단순한 PPL인 줄 알았다)와 피아노 연주를 마친 프레디에게 스탭에 무선 마이크를 건네 주는 장면 같은 디테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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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18-12-1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곡 제목이 빠져 있네요.

레삭매냐 2018-12-17 19:43   좋아요 0 | URL
제가 불초한 탓입니다...

2018-12-1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5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의 경우를
보면 또 꼭 그런 게 아닌 듯 합니다.

퀸도 전성기를 지나면서는 좋은 곡들이 예전
같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감이 마구 솟아나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cyrus 2018-12-17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와 심장을 즐겁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몇 년 후에 보랩처럼 어떤 팝스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대박날 수 있을까요? 보랩의 성공이 대단해서 아무리 뛰어난 팝의 전설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6   좋아요 0 | URL
다음 주자는 비틀즈나 혹은 롤링 스톤즈가
되지 않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스톤즈를 더 좋아하지만
믹 재거를 주인공으로 한 롤링 스톤즈 영화
가 개봉한다면 아마 보랩 정도의 인기는 끌
지 못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시대정신 혹은 타이밍의 문제가 아
닐까 싶네요.

stella.K 2018-12-1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까지 만해도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샵에 팔았다는 거 아닙니까?
영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이끌어낸 마당에
제가 그런 시대착오를 범했습니다.ㅠㅠ
빨리 봐야할 텐데 시간 끌다 나중에 VOD로 보는
시대착오를 또 범할지도 모릅니다.ㅠㅋㅋ

레삭매냐 2018-12-17 19:47   좋아요 2 | URL
오호 통재라 ~~~

보랩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

제가 관람한 곳은 떼창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다들 조용하게 관람하더군요.

마마~! 하면서 막 따라 부르고 그러면
정말 라이브 콘서트를 방불케 하지 않았
을까 싶네요 ㅋㅋ

stella.K 2018-12-18 12:33   좋아요 0 | URL
마마~! ㅋㅋㅋㅋ
그거하고 갈릴레오 하면 완전 흥분의 도가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