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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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이 있고, 읽어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며 또 읽고 싶은 책이 있다. 그 중에서 오늘 내가 읽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읽어야 할 그런 책이었다. 왜냐고? 돌아오는 주말 달궁 독서모임 책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이 책을 이미 8년 전에 한 번 읽었다. 재독의 경험은 이미 가본 길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새기는 그런 체험이기도 하지 않은가. 부담 없이 읽는 재미로는 최고였다.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한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시인이자 정치인 그리고 공산주의자 파블로 네루다에게 옛 연인들에 대한 사연을 캐내는 역할을 맡은 구식 기레기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자신의 소설의 서문을 써달라는 뻔뻔함도 지녔다. 그렇지 미래의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둘 다 실패했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네루다가 실제로 살았던 이슬라 네그라다. 그리고 화자는 실패한 전직 어부이자 마을의 유일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네루다에게 편지배달 업무를 맡은 17세의 마리오 히메네스다. 그저 수도 산티아고의 아가씨들이나 꾀어 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대시인에게 접근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시인의 시집을 사서 헌사를 받는 장면에서는 대가를 존경하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리오의 인생에서 결정적 장면은 네루다와의 만남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동네 주막집 아가씨 베아트리스 곤잘레스와의 만남이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이 사랑에 빠져야 시인이 되는 법이지. 그동안 네루다를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서, 그러니까 메타포를 통해 마리오는 단박에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열렬하게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마을의 어부들과 마리오와 달리 빨갱이시인과 아옌데 후보를 격렬하게 싫어하는 기독교민주당 지지자인 로사 곤잘레스 여사는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사이를 막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 여기서 바로 비유와 상징이 등장할 차례인가. 민중연합으로 대변되는 정치세력의 민중에 대한 구애가 엇나가기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해야 할까.

 

당 중앙으로부터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네루다는 폭풍 같은 선거 전야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후보로의 단일화에 합의하고 이슬라 네그라로 귀환한다. 그리고 마침내 칠레 인민연합은 평화로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역사상 최초의 거사를 성공시킨다. 물론 반대편 진영의 멀끔하고 신사인 척하는 랍베 하원의원이 등장해서 호르헤 알레산드리 후보를 지지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선거 승리의 열광에서 침울한 나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결말 부분에 등장해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민중연합의 선거 승리로 칠레 인민들에게 과연 행복한 나날들이 주어졌을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가톨릭, 언론 그리고 기득권 계층은 선거가 끝난 뒤 3개월부터 아옌데 정권의 전복과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반정부 세력의 카르텔이 보여주는 위력은 대단했다. 아옌데 정권을 라틴아메리카에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데 눈엣가시로 생각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사보타주 및 경제 금수조치와 우파들의 매점매석으로 칠레 경제를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을 현혹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먹고사니즘을 동원한 공격이 아니겠는가. 예전보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지금 우리가 바로 목격하고 있는 장면들이라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언제부터 지들이 그렇게 자영업자들을 걱정했나 그래. 국가주도 경제성장이야말로 신자유주의 경제의 금과옥조가 아니었나?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 피해일 수밖에 없다고 외치던 이들이 틈새를 보고 파고드는 장면에 정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마리오는 베아트리스와의 결혼에 성공하고, 호랑이 같은 장모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연인에서 먹고사니즘의 열혈전사로 변신한 아내와 파블로 네프탈리를 부양하기 위해 파리 대사로 떠난 네루다 씨에게 편지배달을 하는 대신, 장모가 경영하는 주막집 주방장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연달아 전해진 네루다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를 맞이하면서 소설을 절정으로 치닫는다. 군부와 미국 CIA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군사쿠데타의 물밑작업을 과연 그들이 알 수 있었을까? 좌파연합의 선거 승리와 네루다의 노벨문학상으로 마리오로 대변되는 민중들이 고무되어 있는 동안, 반동 세력들의 조직적 규합 역시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가던 칠레 경제의 추락은 마리오와 장모가 경영하던 숙박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독교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장미와 닭고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닭고기를 고를 유물론자였던 마리오의 장모는 소고기 품귀 현상으로 야채수프로 대체하면서도 가격을 고수하는 이대로 전진하자는 좌파의 구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긴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가 과연 쿠데타 기도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군부세력을 막을 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었는 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소설의 전반이 사랑에 빠진 마리오가 거장에게 배운 실력으로 메타포를 구사하면서 연인 베아트리스에게 구애를 하는 자못 유쾌한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면, 중후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상당히 정치적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상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공허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바로 현실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니까. 아옌데 정부의 파리 대사가 되어 프랑스로 떠난 네루다 씨를 만나겠다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마리오는 돈을 모으고 프랑스어를 배우며 꿈을 놓치지 않는다. 문제는 마리오 2세 파블로 네프탈리의 잦은 병치레 때문에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점. 그리하여 파리에서 네루다가 보낸 편지와 추신 역할의 현대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카세트 레코더에 담긴 네루다의 육성이 도착하게 되면서 마리오는 비로소 네루다의 진정한 친구이자 동지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절정에까지 도달했으니 그 다음은 추락의 시작이려나. 1973911일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는 전복되었다. 그리고 네루다는 중병에 걸려 이슬라 네그라로 돌아온다. 군인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아옌데 사후 좌파 세력의 구심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네루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된 네루다를 위해 우리의 주인공 마리오는 그에게 보내진 전보와 편지들을 암기해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바로 그 장면에서 이런 게 정말 진정한 우정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루다는 결국 쿠데타 발발 이후 12일 뒤인 923일 세상을 뜨게 된다. 그 뒤 마리오를 찾아온 운명은 어쩌면 비극의 연장선일 지도 모르겠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이슬라 네그라 출신 우편배달부와의 있을 법한 이야기에 많은 것을 담아냈다. 프롤레타리아 마리오가 어떻게 해서 칠레 최고의 지식인과 우정을 쌓아 나가게 되는 건지 계급을 초월한 진정한 우정의 본질을 타격한다. 사랑에 눈먼 발칙한 청년은 네루다의 시를 인용해 가면서, ‘뚜쟁이로 자신의 연애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마리오의 패기는 젊은 시절 기자로서 네루다를 찾아 스캔들에 가까운 이야기를 캐내려고 한 자신의 임무와 쓰지도 않은 소설의 서문을 써달라고 했던 본인의 실제 경험담과 묘한 동조를 이룬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사랑하지만, 정치인으로 네루다의 의견이나 주장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는 로사 곤잘레스의 의견은 또 어떠한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칠레 부유층 여성들이 냄비를 들고 나서서 시위하는 장면도 역설적이다. 어쩌면 저자는 그만큼 아옌데 정부가 구사하던 사회주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진 민중들도 다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시작은 유쾌발랄했지만, 결론부로 갈수록 불편한 마음이 지배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우리네 삶은 정치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로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어쨌든 8년 만에 다시 읽어도 한 없이 재밌고, 또 한편으로는 슬픈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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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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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기 시작했다. 나의 두 번째 책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로, 콜롬비아 어느 마을에서 명예살인 당한 21세 청년 산띠아고 나사르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누구지? 소설에서 도대체 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아랍계 아버지 이브라임을 잃고 졸지에 대농장주가 된 청년 산띠아고의 절친이라는 점 밖에는. 게다가 이야기는 그가 죽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화자의 노력으로 재구성된 점이라는 사실도 독특하게 다가왔다.

 

사건은 마을에서 떠들썩한 결혼식이 벌어진 일요일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에 발생했다. 외지에서 온 바야르도 산 로만과 마을처녀 앙헬라 비까리오의 성대한 결혼식의 후유증으로 마을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취해 있을 때, 신부의 오빠인 쌍둥이 빠블로와 뻬드로는 여동생 앙헬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도살업자 칼을 들고 복수에 나섰다. 이유는 앙헬라가 초야에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원인제공자가 새매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남자 산띠아고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한 가지 그 즈음해서 주교가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축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결혼식과 주교의 방문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더 충격적인 산띠아고 나사르 살해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칼로 무장한 비까리오 형제들이 산띠아고를 죽이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네의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착했다는 형제들의 품성 때문에 설마하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자기가 아니더라도 산띠아고에게 누군가 그런 위험이 있다는 걸 알려 주겠지하는 방심이 더 큰 문제였다.

 

산띠아고의 피앙세 플로라 미겔은 앙헬라의 처녀성을 훼손한 남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약혼자라는 사실에 차라리 누군가에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설상가상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산띠아고 절친 의대생 크리스토 베도야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경고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장이자 전직 대령인 알폰테는 쌍둥이 형제의 무모한 행동에 앞서, 그들을 무장해제시키지 않았던가. 물론 그들은 곧바로 다른 무기를 취합하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사실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말리기만 했어도, 충분히 비까리오 가족의 명예를 수호되었을 것이고 그들 역시 살인까지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고된 죽음은 집단적 무관심과 우연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20번이나 칼에 난자당해 죽은 산띠아고야 그렇다 치더라도, 연루된 이들은 모두 비극을 맞지 않았던가. 마을에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의 주인공이었던 앙헬라의 가족은 아랍계 주민의 보복을 피해 이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외딴 곳에 정주한 그녀는 23년 간 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며, 남편 바야르도 산 로만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던가. 결국 그녀가 쓴 모든 편지를 들고 그녀 앞에 등장하는 신랑의 모습에서 난 현대판 주술적 리얼리즘의 한 단면을 얼핏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주술적 리얼리즘의 현현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긴 엄청난 돈을 들여, 호화로운 결혼식을 추구했던 바야르도 산 로만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미래의 아내에게 적극적이다 못해 무대포 스타일로 구애하는 장면도 그렇고, 아내가 원하는 집을 상처한 노인장에게 거의 빼앗다시피 강매했지만 그 집은 결국 폐허가 되어 버렸다. 입심 좋은 이들은 곧 죽은 노인장의 원한 때문이라는 주석을 달았고, 집에 구비된 세간들을 알뜰하게 빼내가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읽는 동안 구로사와 아키라의 명작 <라쇼몽>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말이다. 이미 소설의 초반에 죽은 산띠아고 나사르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지만(구로사와라면 영매를 동원해서 죽은 산띠아고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더더욱 주술적 리얼리즘에 가까워졌을 텐데 말이다), 살아 남은 이들의 진술은 언제나 그렇듯 제각각이다. 먼저 쌍둥이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해야 했을 뿐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소설에서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쌍둥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면을 받았는가라는 점이다. 살인죄는 분명 중형일 텐데 고작 3년을 살고 풀려났다?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마치스모(남성 우월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전직 의대생 출신 카르멘 아마도르 신부가 법적 효용도 없는 산띠아고의 부검에 나서게 된 장면 역시나 희극적이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는 부재 중이었고, 현직 의대생 크리스토 베도야는 고인의 친구였기 때문에 끔찍한 임무로부터 자동적으로 배제되었다. 어쨌든 예의 부검으로 산띠아고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쌍둥이들의 칼에 의한 자상이었다는 점이 밝혀지긴 했지만 소설의 묘사 중에서 가장 리얼했지만 동시에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서 등장하는 숱한 상징과 비유들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인류의 역사 속을 고고하게 항해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아닐까 싶다. 오는 건 순서가 있지만, 가는 건 차례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풍족한 재산과 젊음 그리고 잘생기고 피앙세까지 둔 자신만만한 21세 청년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조건도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는 죽음을 구축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에 역설적인 여백을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예고였다. 수많은 이들이 산띠아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죽음이라는 이름의 숙명은 그 틈새들을 파고들어 목표물을 적확하게 타격했고, 그 결과는 문자 그대로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고.

 

내가 읽을 다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은 어떤 책이 될까나. 신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제목 때문에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아니면 초기작 <썩은 잎>? 모두 적은 분량이라 도전에 부담이 없어 좋다. <백년 동안의 고독><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근데 언제 읽으려나.

 

[뱀다리] <백년 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적수 뻬뜨로니오 산 로만 장군이 바야르도의 아버지로 나온다. 결국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르케스 작품을 관통하는 만능 키 같은 의미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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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8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 키가 아닐까 그의 작품의 분수령이 아닐까 싶네요~

레삭매냐 2018-11-18 10:5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단언컨대
<백년 동안의 고독>부터 읽어야 하나요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18 12:38   좋아요 1 | URL
23년 구상하고 18개월동안 집필한 <백년동안의 고백>이니 아무래도 남다르겠죠! <콜레라시대의 사랑>이 더 늦게 출판되었으니 아무래도~작가읽기는 순서도 중요한가봐요 로맹가리의 <내 삶의 의미>읽고나니 그냥 맥이 좀 풀려서 로맹가리 책만 사놓고 ㅋㅋ다 핑계이지만~ㅋㅋ즐독 열독 광독가 레삭매냐님 홧팅!

레삭매냐 2018-11-18 13:04   좋아요 1 | URL
대작들은 아무래도 분량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저도 로맹 가리 책들 수년 동안 묵혀 두었다가 읽은 걸요. 심지어 두 번 산 책, 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도 있답니다.
일단 사두시면 언제고 읽게 되시리라 믿슙니다~

Forgettable. 2018-11-18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다른 악마들도 좋습니다. 콜레라는 길지만 제일 쉽게 읽혀요.
* 아 이미 읽으셨군요 ㅎㅎ 그렇다면 콜레라시대 추천이요. 백년고독보다는 가볍게 읽혀요!

레삭매냐 2018-11-18 19:1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콜레라>는 소장각이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에 읽은 중국 소설 <책물고기>에도
그 책이 등장하던데, 결국 연쇄독서로 읽
어야 할 책이 늘어났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11-1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콜레라시대의 사랑 읽어보고 싶네요. 책은 도끼다 에서 언급했는데 꼭 읽어보고 싶었지만,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겁이 나서 그만 ㅎㅎ
로만 장군이 나오면 발자크의 인간희극 같은 계열로 보면 되나요?ㅎ

레삭매냐 2018-11-18 19:13   좋아요 0 | URL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발자크의 루공
마카르 총서가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
습니다. 아무래도 안되겠죠?

전 이미 한 번 실패한 기억 때문인지,
일단 <콜레라>부터 읽어야지 싶습니다.
 
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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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을 읽었던가? 아주 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때 난 책을 다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볼라뇨와 세풀베다 같은 칠레 작가들의 책은 흥미롭게 읽었는데, 당최 붐문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마르케스의 책들은 나랑 좀 맞지 않는다는 느낌에 의도적으로 멀리 했던 것 같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마르케스가 살아 계셨는데 지금은 영면하셨다.

 

최근 새롭게 마르케스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뒤늦게 하나씩 컬렉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1994년에 발표된 <사랑과 다른 악마들>이었다. 지난주에 사서 읽기 시작했고,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서두에 마르케스 자신이 신문 기자로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산타클라라 수녀원 묘지의 유해를 발굴하던 중, 머리카락이 2미터도 넘게 자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는 자신의 할머님이 카리브 해 일대에서 많은 기적을 행해 숭배를 받았다는 카살두에로 후작 딸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 물론 시작부터 그럴싸한 소설의 전개를 위한 설정이다.

 

스페인 제국이 효율적인 원격 식민통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를 네 개의 부왕령으로 분할했다. 그 가운데, 세 번째로 세워진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에 포함된 항구도시 카르타헤나는 신대륙에서 채굴된 은이 구대륙의 문물과 교환되는 중요한 장소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구대륙에서 들여온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디오들이 몰살당하면서 신대륙 개발을 위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결과 노예무역은 수지가 맞는 신수종 사업이었다. 소설의 초반에도 고혹적인 아비시니아 여인을 몸무게 만큼의 금으로 사들이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던가.

 

어쨌든 소설의 발단은 카살두에로의 외동딸 시에르바 마리아가 미친개에게 살짝 물리는 장면이었다. 아버지 한량 카살두에로 후작과 당밀과 카카오에 취한 어머니 베르나르다의 무관심 가운데, 시에르바 마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노예들 품속에서 자라면서 크리오요 귀족의 품성 대신 자연스럽게 그들의 주술적 관습과 언어에 젖어 들었다. 타고난 거짓말하는 능력까지 익히면서, 광견병에 걸린 악마 소녀가 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로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1811년까지 카르타헤나에 존재했다는 종교 재판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뒤늦게 자신의 딸 시에르바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카살두에로 후작은 백방으로 수를 써 보지만, 딸의 증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대계 포르투갈 출신 의사 아브레눈시우는 후작 영애의 증세를 대수롭게 보지 않고, 행복이라는 처방전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긴다. 아브레눈시우의 경험을 믿는 대신, 돌팔이 의사들의 처방을 따랐다가 시에르바 마리아의 증세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의학이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거의 주술의 수준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 여기에서 시에르바 마리아 사건에 개입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인물이 당시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 비르투데스다. 카르타헤나 종교 당국의 최고 권위자로 카살두에로 후작의 위임을 받아 미치광이 소녀를 산타클라라 수녀원에 유폐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살라망카에서부터 자신이 데려온 애제자이자 신뢰하는 신부 카예타노 델라우라에게 엑소시즘을 거행할 것을 명령한다.

 

한편 봉쇄수녀원에 갇힌 시에르바 마리아는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안좋은 모든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숱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녀원은 역설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시설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증세를 광증으로 더 악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니 멀쩡한 사람도 그런 곳에 갇혀 있다가는 미치지 않을까 싶을까 정도다. 퇴마사 경험도 일천한 델라우라 신부는 스승의 명령에 따라 엑소시즘에 나섰다가 12세 소녀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나이 차이는 물론이고 나중에 왜 그렇게 사랑하는 소녀를 데리고 신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탈출하지 않았을까.

 

주교와 신부의 지휘 아래 신대륙에서 진행되는 퇴마의식은 원주민 인디오나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요루바족들의 주술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인간의 의심과 불안이 만들어낸 환영을 쫓아내기 위해 벌이는 푸닥거리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서구식 관습을 전파하기 위해 사제와 수녀들이 겉으로 보여주는 희생과 봉사정신은 더욱 더 위선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수탈의 역사를 반성하고 회개해야 했던 게 아닐까.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이 종교와 군대 그리고 상인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 카르텔로 라틴아메리카 정복에 나섰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종교로 인디오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자 했으며, 군대로 대변되는 무력행사로 그들로부터 강제 노동을 강요했다. 마지막으로 자본축적을 위한 중상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상인들이 나서서 신대륙의 자원을 착취하고 수탈했다. 그 중에서 마르케스의 소설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첫 번째 요소인 종교를 냉정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아무리 고도로 훈련받고 신앙으로 무장한 델라우라 신부도 결국 인간적 정념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을 마르케스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신부와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 같이 이미 스페인 정복 초기부터 원주민들의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창한 이들도 있었다. 반대편에서 인디오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면서 스페인의 군사적 정복의 정당성을 주장한 세풀베다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지난 겨울에 산 <바야돌리드 논쟁>을 읽어야지 싶다.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독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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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6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틴아메리카가 묘하게 매력적인데가 있나봅니다 ㅎ

레삭매냐 2018-11-16 14:0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라틴 문학을 애정합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와 로베르토 볼라뇨를
특히 좋아한답니다.

뭐랄까 주술적 리얼리즘도 좋고 작가들
이 추구하는 가치전복적인 도전이 매력
적이라고나 할까요.

이번에는 마르케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뒷북소녀 2018-11-16 18:15   좋아요 1 | URL
저도 대댓글 쓰고 싶었는데 안돼서요. 마르케스 만화라면 어떤 책인가요?

카알벨루치 2018-11-16 18:27   좋아요 0 | URL
마르케스 인생을 만화로 만든건데 백년의 고독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알수있는 귀한 자료집이라고 볼 수 있어요 ...

2018-11-1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4:04   좋아요 0 | URL
아, 예전에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그 시절에는 책 읽을 생각은 안하고
만날 놀 궁리만 했는지 ㅋㅋ

뒷북소녀 2018-11-16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라틴문학... 전문가처럼 보이는걸요.
그리고 희한하게 라틴문학은... 연쇄독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11-16 14:05   좋아요 1 | URL
전문가라니오...

고저 얼치기 독서꾼인 것을요 ~

라틴문학 연쇄독서에는 절대공감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6 14:13   좋아요 2 | URL
마르케스 만화 읽었는데 가슴이 뭉클....

대장물방울 2018-11-16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읽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백년동안, 콜레라시대 읽었는데 크크 읽기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뭔가 매력이 있더라구요. 거꾸로 되긴 했는데 이것도 찜해둬야겠네요 ㅋㅋ

레삭매냐 2018-11-16 16:10   좋아요 0 | URL
마르케스는 일단 단편부터 읽고 나서
그 다음에 장편에 다시 도전해 보려고...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제목 때
문에 그동안 구매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당장 가서 사야겠네 그래 :>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중고 주문
했는데 신간하고 같이 오느라 다음 주
에 발송예정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
기 시작했네 그래.

어그러져 버린 나의 독서 새끼줄이여 ~

목나무 2018-11-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었군요. 마르케스의 소설 중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10년 전에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짧은 소설이 참 무거운 걸 이야기하고 있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
간만에 저도 다시 마르케스의 소설 읽어봐야겠어요. 이번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마르케스 소설 축하 기념으로다..ㅋㅋ

레삭매냐 2018-11-16 18:00   좋아요 0 | URL
전 오늘 도서관에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빌려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역시나 특이한 스타일이네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저도
주문장 날렸는데, 마르케스가 가장 잘
쓴 단편이라고 하는군요. 기대가 큽니다.
 
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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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도를 민주주의 국가로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이었다. 누가 뭐래도 인도 국가 발전의 장애 요소는 바로 카스트 제도다. 그 카스트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80%에 달하는 달리트 계급의 이익은 그런데 도대체 누가 보장해 주는가? 한국에서도 소득의 양극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말이 많지만, 인도의 경우는 스케일이 다르다.

 

인도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의 카르텔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재 없이 살 수 있을까? 재벌이 만든 휴대폰과 통신망으로 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그들이 만든 영화를 그들의 상영관에서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영화값을 능가하는 팝콘과 음료수는 물론이고. 모든 소비재의 영역에서 우리는 재벌의 세밀하게 엮어 놓은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룬다티 로이가 지적하는 인도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재벌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물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촘촘하고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인도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핑계로, 공공재를 재벌 그룹에게 넘겨주고 정권 연장을 획책한다. 뭐 그런 방식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어디서고 유효하다. 문제는 사람이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물, 전기 에너지 그리고 거주까지도 모두 통째로 사회 기득권층의 손아귀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25만 명에 달하는 인도 농부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떠들어낸 마이크로 금융의 덫에 사로 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본이란 큰 돈이건 작은 돈이건, 빌리는 순간부터 채무노예를 양산해 낸다는 걸 그들은 미처 몰랐을까. 댐을 만들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홍보전을 위해,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비영리재단 혹은 비정부기구라는 해괴한 단체들(주로 거대기업의 후원 아래 조직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철저하게 비밀에 쌓여 있다)이 앞장서서 특정한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냉혹하게 지적한다. 그들이 정말 일반 대중의 복리증진을 위해 그런 선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룬다티 로이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바로 소비와 전쟁이다. 자본주의 3.0이라는 해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구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멀쩡한 휴대폰을 2년 약정 주기에 맞춰 노예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쿨한 것이고, 자동차 역시 장기 할부기간이 끝나기 전에 번쩍이는 광택을 내는 새 자동차로 바꾸라고 텔레비전 CF를 통해 세뇌한다. 고화질 소니 텔레비전이 가장 좋았던 시절은 구석기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다. HD 텔레비전은 물렀거라, 새로운 UHD 텔레비전이 나왔으니 어서 돈을 털어 새로운 모델을 집에 설치할지라. 그런데 그렇게 감당도 되지 않는 고화질 텔레비전을 구입해서 고작 해봐야 먹방이나 걸그룹의 군무를 보는 것으로 내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될지 나는 궁금하다.

 

그나마 자본주의 한 축인 소비는 이해해 줄만하다. 그런데 다른 하나인 전쟁은? 냉전시대 구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국은 전략 파트너로 파키스탄을 점지했다. 물론 치열한 냉전이 끝나자마자 소용이 다한 파키스탄은 미국에게 버림받았고, 지금은 아프간 게릴라들의 전초기지가 되어 온갖 풍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번 대중국 봉쇄작전의 첨병으로는 인도가 간택을 받았다. 미국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상대였던가? 바로 옆의 숙적 파키스탄과 핵전쟁의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인도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미국산 무기를 다량으로 구매하는 고객으로 변신했다.

 

인도의 아픈 손가락인 카슈미르의 경우를 보자.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인구의 분포도를 볼 때, 카슈미르는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인도가 아니라 파키스탄으로 귀속을 되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 정치적 현실이 그러하던가. 인도 군인들의 대다수가 배치되어 돌멩이 투석전을 벌이는 카슈미르 주민들과 대치 상태는 어쩌면 인도 정부가 원하는 그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게 상시적 적대국인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 인도에게는 항상 불안정한 상태의 카슈미르와 이웃한 무슬림 적국 파키스탄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적대적 공생관계가 연상되지 않는가.

 

대규모 학살 사태를 불러일으킨 구자라트 사건의 배후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후원하는 파키스탄 정부가 있다며 인도 정부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과거 자신들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벵골 테러리스트를 지원했던 일이나,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TTE)들을 지원했던 일에 대해서는 망각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카슈미르 사태에 대해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룬다티 로이에 대한 협박과 위협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위조절이 가능한 일상적 불안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히트 상품이라는 저자의 일침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룬다티 로이 역시 대형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받아 먹고사는 생활인이라고 작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하지만 작가들의 그런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는 대신, 당당하게 잘못된 일은 잘못 되었다고 그리고 민중의 연대야말로 그런 카르텔에 저항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질문의 시간이다. 이게 나라냐? 그렇다면 우리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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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8-11-16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가슴 절절하게 읽었어요.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지만 소설은 딱 1개 더라구요... 서평 읽고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4:0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이 작년엔가
나왔다고 하던데 국내에서 출간 소식은
아직 요원해 보이네요.

번역이 늦는 걸까요?

coolcat329 2018-11-16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소설이 나왔군요 ~ 기다려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5:35   좋아요 1 | URL
번역서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물방울 2018-11-1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이 정도일 수가 있나 했어요. 정말 크으.

레삭매냐 2018-11-16 16:1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가 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라는 책도 있다고 하던데...

<자본주의>, <생존의 비용> 이렇게 해서
3부작이 아닌가 싶네 그래.
 

 


빠뜨리스 에머리 루뭄바 (1925년 7월 2일 ~ 1961년 1월 17일)

 

루뭄바는 콩고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 벨기에의 학정으로부터 독립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초대 수상이었다. 그의 수상 재임 기간은 1960년 6월부터 9월까지였다. 루뭄바는 벨기에의 식민지 콩고로부터 독립공화국 콩고로 이행하는 기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암살 당할 때까지, 이상적인 아프리카 민족주의자였고, 범아프리카 운동을 지지하는 정치인이었다.

 

콩고가 독립하자마자 남동부 카탕가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콩고 위기가 촉발되었다. 루뭄바는 벨기에의 지원을 받는 카탕가 분리주의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과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래서 루뭄바는 소련에 원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통령 조셉 캏사부부 및 참모총장 조셉-데지레 모부투 뿐 아니라 소련에 대항해서 냉정을 수행하던 미국과 벨기에와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루붐바는 모부투 지휘 아래 있던 국가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고, 카탕가 당국의 명령을 받은 총살대에 의해 처형되었다. 암살 후, 루뭄바는 범아프리카 운동의 순교자로 간주되었다.

 

... ... ...

 

이상은 위키피디아에 나온 빠뜨리스 루뭄바 항목의 서문을 날림으로 번역한 것임.

 

삼천리에서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그리고 부제는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아주 오래 전 중학교 시절엔가, 미국 우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출간된 20세기 세계사를 통해 처음으로 루뭄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물론 두 페이지에 걸쳐 콩고 위기로 대변되는 식민제국주의로부터 아프리카 독립을 간략하게 다룬 글이어서 루뭄바의 실체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루뭄바의 실체를 알려줄 리도 없었겠지만.

 

콩고가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다지 많을 것이다. 예전에 어느 여행 작가는 “벨기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는 나라”라는 내용을 담은 책을 냈다가 내가 지적해서 재개정판을 낸 적도 있었지.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이 콩고에서 저지른 악행은 이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흑인 노예들을 벌주기 위해 자른 그들의 무수한 손목들, 처형당한 원주민들의 두개골로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생지옥이 따로 없는 식민지배였다.

 

세계사에서 식민지모국의 배상은 언제나 같은 방식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콩고에 대한 배상과 사과는 없었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콩고에서 수탈한 재산은 현재 가치로 11억 달러(1조 1천억원, 1998년 기준)이라고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악랄한 벨기에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콩고가 구리를 비롯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잘 나갔으면 좋겠으련만, 모부투라는 희대의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 30년 동안 또다른 방식의 착취와 억압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그 빠진 고리에 해당하는 인물이 빠뜨리스 루뭄바인 것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신생국의 지도자들이 식민 모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엘리트 계급 출신이었다면, 루뭄바는 자생적 지도자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특성을 가졌다. 우편국 직원이라는 식민지 공무원으로 출발한 루뭄바는 벨기에가 획책한 30년 계획에 대항해서 조속한 조국의 독립을 추구했다. 그 결과, 콩고는 1960년 6월 30일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 후였다. 콩고에서 다수 종족을 구성하는 바콩고 출신 카사부부에게 대통령직을 그리고 의회에서 선출된 수상의 자리를 차지한 루뭄바의 불완전한 연립정부는 태생에서부터 불안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연방제를 주장하는 남동부 카탕가 주의 모이세 촘베라는 강력한 정적은 결국 분리독립을 주창하면서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구리와 우라늄, 라듐 그리고 다이아먼드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카탕가 주를 벨기에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지원하면서 콩고 위기는 그야말로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쿠바혁명으로 공산주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지 않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미국 CIA는 루뭄바가 과연 공산주의자인가 아닌가 감별에 나서게 된다. 자주적 민족주의를 주장해오던 루뭄바는 외세의 도움이 아닌 자생적 조국 근대화의 꿈을 꾸었지만, 치열하게 맞붙던 냉전 시대에 중립은 존재할 틈이 조금도 없었다. 미국과 유엔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소련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소련 역시 분리주의자들에게 맞서 싸울 물질적 원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모부투는 루뭄바와 그의 동료들을 카탕가의 정적 촘베에게 보내는 이이제이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민족주의자를 자신이 직접 처형하는 어리석은 행동 대신 교묘하게 차도살인 플랜을 가동시킨 것이었다. 여기에는 미국 CIA, 영국의 MI6 그리고 벨기에까지 개입한 것으로 훗날 드러나게 되는데, 아마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 좀 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시간이 된다면 절판된 <레오폴드왕의 유령>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싶었는데 인천집에 갔다가 펴보지도 않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래서 책은 당장 읽지 않아도 사두어야 한다는 책구매의 합리화라고나 할까.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콩고 출신 정치인에 대한 책이 그의 사후 57년 만에 출간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설레발일 지도 모르겠지만, 귄터 발라프의 책에 이어 올해의 발견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 번 삼천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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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물방울 2018-11-15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강추하시는 거지요? 훅 당깁니다.

레삭매냐 2018-11-15 14:16   좋아요 0 | URL
나도 출간 소식만 들은 지라...
그래도 상당한 기대작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려.

목나무 2018-11-15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라요. 몰랐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되었고 그래서 우선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11-15 14:18   좋아요 1 | URL
이런 책들은 사주어야 책내는 분들이
기운 내서 더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슙니다 넵 !

전 사전구매할 계획입니다.

2018-11-15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1-15 15:35   좋아요 2 | URL
어딘가에서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대학살극이 20세기 초에 이미 벨기에 당국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하는군요.

300만에서 1,000만명에 달하는 콩고 사람들이
희생당했다고 하네요...

2002년에 벨기에 정부가 콩고에 사과하고
브뤼셀에 루뭄바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너무 늦은 사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cyrus 2018-11-15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오폴드 2세의 악행 중 하나는 콩고 원주민을 자신의 친위 부대로 만든 일입니다. 벨기에 식민 통치자들은 이 친위 부대를 이용해 콩고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통제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친위 부대가 강간을 저질렀는데 눈 감았어요.

레삭매냐 2018-11-15 17:53   좋아요 1 | URL
마치 예전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
정복한 가톨릭 국가의 청소년들을 잡아
다가 자신의 근위대인 예니체리 부대를
만든 것하고 비슷하네요.

어쩌면 술탄이 예전에 했던 방식을
벤치마킹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카알벨루치 2018-11-15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위대한 발견! 역쉬 레샥매냐님, 그리고 그 옆에 Sㅣ루스 박사님, 짝짝짝~

레삭매냐 2018-11-16 10:36   좋아요 2 | URL
이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카스피 2018-11-16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책이 있었군요.오늘날 아프리카가 항상 내전으로 분열되는 것은 민족간 구성을 염두해 두지않고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 맘대로 지도상에서 선을 긋고 식민지를 만든것 때문이라고 하지요.하지만 서구 유럽은 벨기에서 알수 있듯이 모두 아프리카의 참상에 대해 입을 싹 닫고 있지요.

레삭매냐 2018-11-16 14:01   좋아요 1 | URL
식민 제국주의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의 분열
이 더 조장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가난에서의 탈피와 자주적 근대화는 요원해
보이는 게 현실이네요.

식민지배국의 반성은 말할 것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