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 -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6
오스카르 판토하 지음, 유 아가다 옮김, 미겔 부스토스 외 그림 / 푸른지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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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만 가비토 마르케스의 책을 5권 읽었다. 이제 작가의 역작 <백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만을 남겨 두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만난 오스카르 판토하의 가비토에 대한 그래픽 노블 평전 <마르케스>는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 어로 쓰인 작품 중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버금가는 영예를 누린 <백년 동안의 고독>을 만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마르케스 사후, 망명지였던 멕시코와 조국 콜롬비아 사이에서 그의 유해 안치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좌파 지식인 마르케스를 거의 쫓아내듯 조국에서 몰아낸 콜롬비아보다는 그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준 멕시코의 손을 들어 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그래픽 노블은 아카풀코 해변으로 가는 1965년 마르케스 가족 여행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르케스는 어려서부터 이별과 고독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아버지 돈 가브리엘 엘리히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할아버지 마르케스 대령의 휘하에서 자라나면서, 콜롬비아 역사의 한 획을 장식한 천일전쟁에 대해 조숙한 가비토는 익숙해졌다. 훗날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는 고향 아라카타카의 다른 모습이었다. 오랜 시골집에 출몰하는 유령과 여자 가족들에 둘러 싸여 자란 가비토에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위한 모든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다만 실마리를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소설이든 첫 출발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1965년의 아카풀코에서 가비토는 위대한 출발을 시작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곁에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위대한 작가를 보필하는 평생의 사랑 메체(메르세데스)가 있었다. 작가를 남편으로 둔 아내는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남편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아카풀코에서의 가족여행도 남편의 역작 구성을 위해 이만 충분하다며 돌아가자고 먼저 제안하지 않았던가. 약간의 윤색도 없진 않겠지만, 언제나 위대한 스토리에는 MSG도 필요한 법이니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방식이 과연 마르케스 평전을 다룬 그래픽 노블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버지 엘리히오는 장남 가비토가 대학을 졸업하기를 바랐지만, 전업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나선 가비토의 꿈은 달랐다.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통해 가비토는 주술적 리얼리즘으로 훗날 알려지게 될 붐 문학을 영도한 문학적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의 작품을 통해 도저히 현상을 타파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주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로 포용하는 기법도 이 시기에 마련된 게 아닐까.

 

마침 가비토의 초기작들을 연달아 읽어서 그런지 데뷔작 <썩은 잎>과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비롯해서 최근에 재출간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 관한 내용이 그래픽 노블에 등장할 때는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미 일가를 이룬 작가면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작가적 고민은 인상적이었다.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카스트로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한 좌파 지식인으로 부평초 같은 망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는 점도 그리고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생활고로 시달려야 했던 생생한 삶의 리포트가 이어진다. 망명길에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만난 카를로스 푸엔테스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푸엔테스의 작품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나의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쇄반응인가 보다.

 

그래픽 노블의 대미는 스웨덴에서 새벽녘에 걸려온 전화로 마무리된다.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1982년에 가비토가 선정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가비토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이후의 행적이 없다는 점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집필을 위한 기나긴 여정과 걸작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그래픽 노블 <마르케스>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비블리오그래피를 추적해 보니, 확실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작품 활동이 뜸해지긴 했다. 아무래도 노벨문학상이라는 하나의 성취가 작가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쓰도록 추동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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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 보니 11월에도 열심히 읽었구나.

총 22권의 책들을 읽었다. 동화책들도 숱하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읽었지만 그건 패스...

뭐 그래도 <그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한 권 정도는 리뷰를 해도 좋을 듯 싶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의 하나 골라서 리뷰할 생각이다.

 

이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구나.

앞으로 14권만 더 읽으면 200권 읽을 듯. 얍삽하게도 200권 채우려고 어제 도서관에 가서 오스카르 판토하의 <마르케스>와 마르얀 사트라피의 <바느질 수다>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앞으로 12권만 더 읽으면 된다.

 

읽다만 책들도 있고 해서 무난하게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냥 읽는 대로 갈 것.

 

지난 달에는 우연히 만나게 된 가비토 마르케스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어댔다. 22권 중에서 가비토의 책이 5권이나 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구입해 두었으니 내년이 되면 <백년 동안의 고독>과 더불어 찬찬히 읽어 볼란다.

 

11월의 발견은 역시나 절판돼서 이제 구할 수도 없게 된 유디트 헤르만의 책들 그리고 막판에 읽은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이다. 전자는 읽는 중이라 이렇다할 평가를 하기 좀 그렇고, 후자는 정말 대단했다. 67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 역시나 부담스럽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이렇게 쏙이 다 시원하고, 성취감은 그 이상이었다. 그렇지 모름지기 책쟁이라면 이런 책을 읽어야지 싶었다.

 

창비에서 홀링허스트 선생의 다른 책들도 어여, 신속하게 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잘 팔릴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순수 문학 독자층이 국내에 한 천 명 정도 있다고 하던데, 그들이 죄다 책 사고 도서관에 신청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슬슬 내가 읽은 올해 최고의 책들을 좀 골라 봐야 하나.

 

<< 후보작 >>

 

1. 아름다움의 선 - 앨런 홀링허스트 (창비)

2. 석류나무 그늘 아래 - 타리크 알리 (미래인)

3. 솔라 -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4. 모스크바의 신사 - 에이모 토울스 (현대문학)

5.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 귄터 발라프 (알마)

 

월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피곤하구나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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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2-03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올해의 책 후보들 무지 궁금합니다. 공식 발표 기다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2-03 11:42   좋아요 0 | URL
5개의 후보작 중에서 3개로 퉁치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북프리쿠키 2018-12-03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177번 한권 겹치네요...^^;

레삭매냐 2018-12-03 17:21   좋아요 1 | URL
177번은 지난 달 독서모임 책이라
8년만에 다시 읽었답니다... 역시나 재밌었습니다.

coolcat329 2018-12-04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의 신사...읽다 재미가 없어 중단했는데 저한테 문제가 있는건지 자괴감이 드네요. 1번은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레삭매냐 2018-12-04 13:35   좋아요 0 | URL
전 그놈의 출판사 사전 읽기를 시작해서
축약된 지도 모르고 따라 읽다가 흥미를
잃었다가...

나중에 다시 읽어 보니 흥미진진해져서 빠지
게 되더라구요.

홀링허스트 선생의 책은 최고입니다 강추해
드립니다.

얄리 2018-12-0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평을 읽고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습니다. 여태까지 이 책을 몰랐던게 아쉽더군요. 이제 술탄 살라딘을 읽을겁니다. 두 책 모두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 있어 다행입니다^^

레삭매냐 2018-12-04 16:37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역시 글 쓰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다른 분들이 좋은
책을 읽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이 <술탄
살라딘> 이후로 출간되지 않은 것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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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21세 닉 게스트는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 출신 수재다. 노샘프턴셔 바윅 출신으로 골동품상을 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니컬러스는 전형적은 중산층 자녀다. 그는 순전히 옥스퍼드라는 학연을 바탕으로 상류층 언저리에 기생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점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불편했다. 돈이 없다면, 공부라도 잘해서 사립학교 출신 귀족 자제들과 연분을 타고 신분상승을 해야 하는 신분의 불안정성. 한국 드라마의 질리게 등장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게다가 닉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동성애 기질을 리오 찰스라는 자마이카 출신 흑인 청년과 만나면서 자각하고 개발하게 된다. 노팅힐에 위치한 페든 가 켄징턴파크 가든스의 안주인 레이철에게 한 달에 20파운드를 주고 기생하면서, 닉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인 상류사회 속 ‘가상’의 일원이 될 수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책에서 구사하는 런던 상류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은 모두 위선의 태양에 가린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닉은 자신의 연애 상대로 누구보다 더 페든 가의 장남 토비를 꿈꾸지만, 완벽한 이성애자인 토비에게 그건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깜둥이’ 리오는 그저 닉이 추구하는 헛된 욕망의 대체재였을 뿐이란 말인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은 대처가 몰고온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던 1980년대 대학(UCL)에서 헨리 제임스의 문체를 연구하던 약관의 청년이 경험한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돈으로 환산되는 세속의 욕망을 파헤친 신랄한 보고서다.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과 다른 차원의 노골적 묘사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동안 앨런 홀링허스트의 소설들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 닉은 켄징턴파크 가든스라는 주위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 이상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결코 페든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이방인 닉 게스트는 그야말로 ‘게스트’ 같은 존재였다. 오만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페든 집안이지만, 아무래도 하숙인이 사귀는 흑인 남성애인을 초대를 환영할 만한 배짱은 없었으리라. 2018년이라면 몰라도, 1983년은 아무래도 너무 이르지 않았을까. 이 닉이라는 녀석은 리오와의 첫 만남에서 억누를 수 없는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노상에서 첫 경험을 하게 이른다. 그 뒤에 따르는 무수한 감정들, 시기 질투 욕망 실망 같은 자잘한 것들의 연쇄행진이 이어진다. 작가의 성적 취향이 그대로 소설에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이성애자라면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미세한 점들까지도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성적 소수자들이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원동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편, 닉이 자신의 성적 자아를 확립해 가는 동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닉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은 리오에서 레바논 출신 영화사업가 앙투안(와니) 우라디로 대체가 되었다. 왜 항상 닉은 그렇게 자신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상류사회 근처에서 배회하는 걸까? 젊은 지식인은 이번에는 와니가 건네주는 파운드화 수표의 매혹과 코카인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하긴 닉의 애인 와니 역시 가부장 시스템의 화신이자 성공한 이민자 아버지 베르트랑에게 영혼을 팔고 언젠가 그의 후계자가 되는 조건으로 이성애자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말하는 상류계급 사회에서 위선과 가식은 불가피한 생존 요소라는 것을 저자는 지적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청년들이 추구해야 하는 ‘순수의 시대’는 이미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 버린 그들의 성적 방종과 약물 남용(약물도 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계급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실종된 지 오래다.

 

그들이 향유하는 회화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적 대화는 오로지 과시를 위한 것이다. 예술적 감성이 부재한 졸부들은 키치 스타일의 그림들로 거실을 장식하고, 지인들을 부른 파티에서는 누가 더 유명한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한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을 부르고, 키리 테 카나와를 초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바로 그 틈새를 예술비평가 닉 게스트가 파고드는 것이다. 닉에게 그들과 어울리면서 성취한 문화적 소양과 탁월한 안목 같은 비정형의 물적 토대야말로 그가 상류계급 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 유용한 무기였던 것이다.

 

앨런 홀링허스트가 시전하는 켄징턴파크 가든스를 비롯한 여러 곳의 파티 장면 묘사는 소설의 백미였다. 가식과 위선으로 치장한 선수들이 등장해서 평소에는 에이랍(Arab) 사람이라고 경멸조를 부르는 이들과 동석해서 정치 현안과 후원금에 대해 논하고, 마약에 취한 젊은치들은 자신들이 대학에서 배운 알량한 지식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지 않는가 말이다. 와니의 아버지 베르트랑을 "레반트의 채소장수"라고 부르는 장면은 최고였다. 지배계급의 위선적인 가식과 인종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같이 어울려 살 수는 있겠지만, 심정적으로 동화될 수는 없다는 태초부터 상류계급이었던 이들의 의지의 강력한 표명으로 다가왔다. 홀링허스트는 마치 독자의 눈앞에서 화려한 조명 불빛 아래 돌아가는 장면들을 실황중계 하듯 전개시킨다.

 

상대적으로 나른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중후반으로 넘어 가면서 내달리기 시작한다. 페든가의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던 닉은 사업가이자 정치인 제럴드가 비서 페니와 불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캐서린의 대부이자 동성애자인 팻 그레이슨 삼촌이 에이즈로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프랑스의 휴가지에 전해 듣는다.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국경 없는 자본의 천국 자유주의가 도래한 순간, 빅뱅(규제완화)과 신의 형벌로 알려진 역병이 쾌락주의자들을 습격한 것이다. 은혼식을 맞은 제럴드와 레이철 부부의 켄징턴파크에 마침내 고대하던 수상이 방문한다. 수상이 온다고 해서 청년들의 쾌락 추구가 멈추는 법은 없다. 코카인 흡입과 섹스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리고 닉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부유하는 시대의 상징이라고 해야 할까.

 

닉이 기생하던 쾌락의 제국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에이즈(AIDS)라는 역병이 도래한 것이다. 캐서린의 대부 팻을 필두로 해서 리오 그리고 와니가 희생자가 되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제럴드는 1987년 총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상처 뿐인 승리였다. 비서 페니와의 스캔들이 터지고,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면서 페든 집안은 그야말로 콩가루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하숙생 닉의 성적 정체성과 백만장자 와니가 걸린 병의 정체가 대중에 공개되면서 사태는 수습 불능 상태로 접어든다. 사실 그 중심에는 아버지 제럴드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캐서린이 있었지만, 문제는 그 야옹이는 페든 가 사람이었지만 닉은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집사이자 다루기 쉬운 예술비평가 같은 허깨비 같은 존재였던 닉은 믿었던 친구 토비와 레이철에게 차례로 퇴출 통보를 받는다. 물론 결정타는 추락한 가장 제럴드가 날리긴 했지만 말이다. 닉 자신부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HIV 양성반응자인지 걱정할 처지가 아닌가.

 

사실 소설의 초반에는 다소 장황해 보이는 닉의 켄징턴파크 체류기와 연이어지는 파티 주유기가 지루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장 앨런 홀링허스트는 천의무봉 같은 결말을 위해 그런 사전 준비를 해둔 것이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승리로 고무된 영국 상류계급의 타락한 도덕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이 만든 부자들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 다수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대해 옥스퍼드 출신 엘리트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부귀와 쾌락이 지속되길 바랄 뿐이었다. 블랙 먼데이라는 정글 자본주의 병폐가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파고가 몰아 닥쳐도 그들에겐 언젠가 다시 원상회복하리라는 경험에 의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에도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라며 ‘지금 이대로’를 외치며 샴페인을 터뜨리던 이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한다.

 

아무리 위선과 가식으로 분장해도, 언젠가 냉혹한 현실은 엄정한 청구서를 날리는 법이다. 닉과 리오 그리고 와니 같은 쾌락주의자들에게 에이즈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전대미문의 스캔들 속에 침몰하는 가운데, 닉이야말로 페든 가 사람들의 제단에 주어진 최상품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가족의 “일부”로 때로는 집사처럼, 때로는 모두가 꺼려하는 야옹이 캐서린를 보살피는 역할로 봉사해온 닉에게 토비와 레이철 그리고 제럴드가 난생 처음 보는 타인처럼 대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닉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고,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는 소거하고 닉의 동성애 스캔들이야말로 페든 가 몰락의 주역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장면은 정말 역겨웠다.

 

앨런 홀링허스트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고른 닉 게스트의 캐릭터는 정말 대단했다. 최고 학부 출신으로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의 문체를 연구하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상류층 대저택에 거주한다는 특권의식으로 무장된 성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직접 목격한다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다소 주변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의 득세와 에이즈 발병으로 인한 죽음의 연대기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다. 역병에 대한 심판자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시대의 불안과 고뇌를 감싸 안은 주역으로서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670쪽이나 되는 거대한 분량 때문에 독서 중에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독서를 마치고 났을 때의 성취감과 보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앨런 홀링허스트에 대만족한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당연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속히 홀링허스트 선생의 다른 작품도 출간해 주시길 바란다. 어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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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1-30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간된지 얼마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아니 벌써 완독하고 이렇게 리뷰까지...
레삭매냐님 같은 애정 독자가 있으면 홀링허스트 선생의 다른 작품도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레삭매냐 2018-11-30 16:13   좋아요 0 | URL
작년에 홀링허스트 샘의 <스파숄트 어페어>
출간되고 나서, 제발 출간해 달라고 했는데
1년이 걸렸네요 :>

앞으로 나올 책은 좀 더 출간 일정이 단축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보렵니다.

책은 정말 대단합니다, 올해 최고의 책입니다.

페크pek0501 2018-12-02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70쪽을 완독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두껍겠군요.

레삭매냐 2018-12-03 09:10   좋아요 0 | URL
다 읽고 나면, 성취감이 대단하게 다가온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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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디즈니 제작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저작권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야코프와 빌헬름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호주 서부의 시골 아저씨 숀 탠은 저자들 생전에 리뉴얼이 자그마치 7번이나 이루어진 <그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석조 조각과 토우 느낌이 나게 종이 반죽과 공기 건조 점토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재창조해냈다. 사실 나도 하나 가지고 싶은 생각이 살짝 들 정도로. 저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자신이 만든 작품(!)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 아티스트라면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겠지.

 

그림 형제가 1807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해서 1812년에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는 86편의 수집된 민화 혹은 민담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그리고 백설공주 등의 이야기의 원래 서사는 정말 잔혹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디즈니나 다른 편집자들이 아이들 용으로 순화한 이미지라고나 할까. 반면 숀 탠 작가는 아무래도 원작에 가깝게 다시 창조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야 어른이니까 괜찮지만, 백설공주의 계모가 사실은 친모고 사냥꾼에게 자기 딸을 죽이고 허파와 간을 가져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위기 서사를 겪은 공주는 자신의 결혼식날 어머니를 초대해서 공개처형에 준바하는 처벌을 내렸다. 디즈니식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신데렐라 역시 살벌하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그림 형제들도 어린이와 가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에 실렸던 이야기들 가운데 선별해서 18개 정도는 빼는 편집능력을 선보여 주기도 했다.

 

다시 <뼈들이 노래한다>로 돌아가 보자. 숀 탠은 그림 동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컷을 선택해서 입체화시킨다. 이미지를 우측에 배열하고, 좌측에는 축약된 이야기를 배치한다. 사실 나도 200개에 달하는 원작 그림 동화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어느 신문사에서 잔혹동화 시리즈를 다루고 있어서 몇 편 읽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들은 우리 동양 사회에서도 들어본 것 같은 유사성이 보인다. 가령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음식물을 흘리는 할아버지에게 나무로 만든 그릇을 주고, 부모가 구박하자 아이가 나중에 자기가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여물통을 준다는 말은 우리네 어느 동화랑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위치는 소녀>의 이야기는 원래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사악한 방법으로 차지한 시녀에 대한 처벌 서사가 등장한다. 작가가 만든 대문에 걸린 말하는 말 ‘팔라다’ 밑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무심하게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64번째 <새하얀 새>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화, 전설 그리고 민화에 등장하는 터부(taboo)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경고가 주어진다, 무엇무엇은 반드시 하면 안된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에게 그것은 하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로 탈바꿈되어 전달된다. 보지 말라는 것은 보고 싶고, 하지 말라는 행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뒤 따르는 그에 응징을 가하는 처벌 서사가 완성되니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서사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Spirit Shakers : https://www.youtube.com/watch?v=So109Xuzv28

 

아무런 재주가 없는 곰손이지만, 문득 숀 탠 작가의 작업 내용을 보다 보니 나도 종이반죽과 공기 건조 점토만 있다면 작가처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잠시 빠져 보았다. 작가가 달래 작가더냐 하고, 어설픈 창조에 나서려는 자신을 말린다. 아, 그리고 보니 집 어딘가에 오래 전에 사둔 스피릿 셰이커가 네 개 있을 텐데. 매스 아트 칼리지 출신 존 베어링굴드란 아티스트가 13년 전부터 만든 거였구나. 유튜브의 세상, 참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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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어제 신문기사를 통해 유디트 헤르만이라는 독일 출신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아쉽게도 민음사에서 모클 시리즈로 나온 작가 책 세 권 중에 두 권이 절판되었다. 오늘부터 패밀리 세일 들어간다고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목록을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나 없다. 일단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단지 유령일 뿐>은 주문했다. 대한통운이 파업 중이라던데, 당일배송이 가능할까부터 걱정이 되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걱정이 아니라. 그렇게 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냉큼 도서관으로 달려가 절판된 책 <알리스>와 <여름 별장, 그 후>를 빌려서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마르케스의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처럼 죽음의, 사신의 그림자가 소설 시작에서부터 등장한다. 주인공은 베를린에서 죽어가는 옛 연인 미햐를 간호하기 위해, 아니 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츠바이브뤼켄으로 달려온 알리스다. 그런데 미햐에게는 아내 마야도 아이도 있다. 굳이 알리스가 이곳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암으로 죽어가는 옛 사랑 앞에서 알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이를 데리고, 마야와 알리스가 잠시 묵을 집을 찾아다니는 장면도 처량하기 그지없다. 기묘한 것은 미햐와 알리스의 관계가 종언을 고했을 때, 바로 마야와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달라질 건 없겠지만. 결국 미햐는 죽었고, 마야와 아이 그리고 알리스는 베를린으로 되돌아간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나니 모든 일이 가능했다(42P).

 

두 번째 <콘라트> 편에서는 루마니아 남자 그리고 안나와 함께 이탈리아 몬테발도 산이 보이는 가르다 호수 부근에 사는 지인 콘라트와 로테 부부를 찾은 알리스의 이야기다. 사람 좋아 보이는 콘라트 씨는 고열로 곧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70세의 콘라트 부부에 비하면 젊은이인 45세의 알리스는 친구들과 누오보 폰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살인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그런데 알리스와 콘라트는 도대체 무슨 사이지? 어떤 사이길래 다른 친구들까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걸까? 그 질문에 대해 알기도 전에 콘라트에게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실컷 술파티를 벌인 알리스 일행이 콘라트가 입원한 병원으로 로테를 데리고 차를 몰고 갔다가 그 유명한 가르다 호수에서 수영을 즐긴다.

 

누군가는 죽어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축복을 한껏 즐기는 모양이다. 그것이 삶의 피할 수 없는 모습일까. 일행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넣고, 돌로미티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콘라트는 영면에 든다. 정원사가 이탈리아 말로 그들에게 콘라트 씨의 죽음을 알린다. 비타 브루다, 그렇지 인생은 끔찍한 거지. 콘라트는 관에 실려 알프스를 넘어 독일로 갔다. 남은 이들은 타인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삶의 순간들을 영위한다.

 

다음 주자는 리하르트다. 어느 토요일 오후, 마르가레테가 전화해서 알리스가 담배와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곁에서 죽어가고 있는 리하르트를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틈을 낼 수가 없었던 걸까. 알리스는 두말 하지 않고, 독서삼매에 빠진 라이몬트에게 알리고 집을 나선다. 리하르트와 마르가레테에게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담배 두 갑과 생수 두 병을 사서 주황색 봉투에 담아 배달한다. 그런데 또 알리스는 리하르트 부부와 어떤 관계지? 전편에서 콘라트 씨는 전염성 질환으로 돌아가신 것 같은데, 리하르트의 병명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왜 그가 자리에서 죽어 가고 있는지. 집으로 돌아온 알리스는 라이몬트는 얼음처럼 차고 달콤한 맥주를 마시고,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호수를 찾아 수영을 한다. 그전 이야기들에서 부겐빌레아와 협죽도가 등장했었는데 이번에는 이름 모를 푸른 꽃이 등장한다(네번째 말테 삼촌 이야기에서는 11월 개나리다). 물론 꽃 이름은 모르겠고. 마르가레테는 리하르트가 죽기도 전에 햄버거 스테이크와 맥주를 제공하는 장례식 준비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죽지도 않은 사람의 장례식 타령이라니, 아무래도 우리네 문화와는 달라서인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그렇지 않은가. 리하르트가 죽었다는 소식은 결국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삶에서 죽음이 이렇게 가까울 수가 있는 걸까? 알리스는 사신인가? 그녀가 가는 곳마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알리스가 앞으로 임종을 맞을 이들과의 관계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너무 죽음과 담을 쌓고 살아와서 죽음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유디트 헤르만는 기묘하게도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게이 삼촌 말테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프리드리히 씨의 만남도 좀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삼촌의 죽음에 대해 아는 프리드리히 씨와 만나 무엇을 하겠다는 거지? 사실 자신도 잘 모른다.

 

마지막 망자 라이몬트의 경우는 예전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자신과 함께 살던 남자가 아니었던가. 살아남은 자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알리스는 주변 정리에 나선다. 망자가 남긴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온갖 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과의 인연도 같이 정리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전 이야기에 등장했던 신원 불명의 루마니아 남자도 등장해서 사실 좀 반가웠다. 알리스 말고는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유디트 헤르만은 그런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이, 그런 캐릭터들에 대한 전언을 남긴다. 그런데 라이몬트는 왜 죽었지, 궁금한데 작가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것도 명백한 하나의 전략이겠지만.

 

처음으로 만난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의 곳곳에서는 창백한 고독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세상 무심한 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이런가 싶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 위태롭게 매달린 어느 실존의 모습을 엿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기대했던 강렬한 서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쩌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우리네 삶의 단면을 관조하고 변주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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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1-23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여름 별장, 그 후> 있어요!!! 근데 저걸 언제 왜 샀는지는 도통 기억에 없어요! ㅋㅋ
<알리스>는 중고서점에서 구해봐야겠어요! ^^
왠지 이 겨울에 어울리는 작가가 아닌가 싶네요~

레삭매냐 2018-11-23 15:38   좋아요 0 | URL
<여름 별장, 그 후>는 어제 <알리스>랑
같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답니다.

어째 책 좀 사서 볼라치면 죄다 품절/절판인지.

<단지 유령일 뿐>은 영화로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서가를 찾다 보면 정말 벼라별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책들이 다 있더군요. 우수수한 계절에 딱
맞는 작가라는 의견에 격렬하게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