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케치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자크 상페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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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소설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재개정되어 나온 상페 작가의 책을 두권 빌려 왔다. 어제 읽은 책들을 반납했으면 오늘 더 빌릴 수 있었는데, 망했다. 상페의 책 두 권, 아시아 제바르의 책 하나 그리고 하인리히 뵐의 <아일랜드 일기>를 빌렸다. <아일랜드 일기>는 벌써 품절이구나. 천상 중고책으로 구해야 하나.

 

뉴욕은 모두가 알다시피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의 경제 문화의 수도 같은 메가시티다. <뉴요커>에 카툰을 기고하던 상페가 자신의 글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뉴욕은 항상 공사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이 자본주의 성공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공간이다. 종교 문화적 차이 따위는 물신 앞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저자는 자전거에 자물쇠에 걸어 놓았다가 바퀴를 풀었다가 어쩌구를 반복하는 장면으로 만화를 시작하지 않던가. 한동안 어떤 절단기도 자르지 못한다는 유락(U-lock)이라는 자전거 자물쇠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국고사 모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날카로운 창으로 뚫지 못하는 방패가 어디 있을까.

 

상페의 대선배 알렉시스 토크빌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시작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지난 세기에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분석을 했던 그 사람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정치판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한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미국 정치판을 달구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 피츠버그 시나고그에서 벌어진 유대인 총격사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사는 공간이 바로 미합중국이 아니었던가. 상대방에 대한 격려한 증오를 더 이상의 공존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폭탄테러와 증오범죄가 들끓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도래한 게 아닌가. 아마 상페가 그린 뉴욕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뉴욕 스케치>를 읽으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던 점 중의 하나는 미국의 문인들이 상당히 많은 각종 재단의 후원 아래 문학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모두가 전업작가로 성공하기란 난망할 것이다. 내가 만난 어느 작가도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친구의 적잖은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어서 오롯하게 글밥으로 먹고 사느냐 하면 아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놈의 호구지책이 무언지. 그렇게 재정적 후원 아래 탄생한 미국 문학이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미국 문학이 가진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상페의 그림책 이야기를 하라고 했더니만 또 내 생각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구나. 상페가 짚은 뉴욕 라이프의 또다른 단면의 핵심은 바로 파티다. 작가는 어설프게 배운 영어 탓을 하지만, 사실 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본토박이 지식인들 앞에서 이방인이 그들의 어휘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은 임무였으리라.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들은 정보만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각종 파티에 참석하는 그런 재미가 아닐까. 스리슬쩍 파티에 참가한 이들의 위선적인 면면을 드러내는 것도 고수의 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출판사를 떠나겠다는 편집자를 두고 벌어지는 험담에 대해, 사실 그 편집자도 해당 출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거리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문학판도 몇몇 출판사들의 독과점 형태라 찍히면 죽는다라는 법칙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몇 통의 레퍼런스 콜 첵만으로도 충분히 해당 편집자의 전력에 대해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어떻게 보면 인간적 관계라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른 만남이 누구에게는 반가울까. “계속 연락하자”는 말처럼 허망한 언어가 또 있을까 싶다. 나도 예전에 ‘나중에 같이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된 적이 또 없었다. 정말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이 있다면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나서 밥을 한 번 먹으면 될 텐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런 말을 남발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모름지기 관계란 관리의 확장일 터인데, 게으름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보잘 것 없는 나의 관계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뉴욕 스케치>의 주인공 장폴 마르티노도 친구들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판이 커지고 자꾸만 장소가 바뀌다가 결국엔 파토가 나지 않았던가. 다른 약속이나 파티가 있어서 또 그리로 장소를 옮겨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만, 그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답게 뉴욕의 서점들은 사이즈도 크고, 개성도 확실하다. 언제 또 뉴욕에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꼭 스트랜드 서점에 들러 그 유명한 토트백을 하나 사리라. 하루키가 즐겨 찾았다는(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니면 말구) “빌리지 뱅가드”에서 시원한 IPA  한 잔은 또 어떨까. 시간 여유와 풍부한 재정이 있다면 무엇은 못하겠는가.

 

 

건강검진으로 후유증으로 속을 부글거리고, 머리는 어지러운 가운데도 책을 읽고 리뷰도 날림으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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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0-30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진정 날림으로 쓴 거 맞습니까? 혹시 건강검진을 날림으로 받으신 게 아닌지...^^;;
뉴욕 스트랜드 서점.. 저도 언제 갈지 모르겠지만 꼭 기억해둬야겠어요! ^^
오늘은 아무 생각마시고 저녁에 가족들과 맛난 거 드시며 긴장했던 몸과 마음 푸시기를요.~

레삭매냐 2018-10-30 17:37   좋아요 1 | URL
디테일을 알려 드리자면,,,
수면내시경 중에 그만 의식이 돌아오는 바람에
두 번 했답니다 카오 ~~~

스트랜드 서점은 예전에 자주 갈 수 있는 찬스
때 갔었어야 했는데...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가 없군요 ㅋㅋㅋ 도저히

저녁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나 싶습니다 헷 !

아, 지난 주 독서모임에 가서 멤버 중에 한 분
에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 했더니만 오래 살면서
읽고 싶은 책 맘껏 읽고 싶다는 말에 그만 빵!
터졌습니다 지쟈쓰.

목나무 2018-10-30 17:49   좋아요 1 | URL
아니.... 수면내시경 중 의식이 돌아올 수도 있나요?
아무튼 고생 많으셨어요. 내시경을 하셨으니 오늘 저녁은 부드러운 유동식을 드셔야겠네요. 가족들과 꼬기 먹는 건 다음에...^^

그 멤버분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더도 말고 오래 살아서 읽고 싶은 책 아니 사 놓은 책만이라도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세상틈에 2018-10-30 21:35   좋아요 1 | URL
저도 수면내시경 하다가 깼는데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담부턴 그냥 내시경 받습니다.ㅎ

독서모임의 그 분 말마따나 읽고 싶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삽시다.ㅋㅋ
 
천사는 말이 없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대학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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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W.G.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제발트의 책에서 알게 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는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그런 책이 되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23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가 있어서 빌려서 읽을 수가 있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탈영병이라는 신분 덕분에, 독일 민족과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달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하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기호식품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의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한 묘사야말로 작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 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지도 모르겠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가 좀 더 전쟁 자체에 대한 고발처럼 다가왔다.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예상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라 그런지 좀 더 애착을 갖고 읽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요즘 번역과는 다른 스타일이나 표기법도 독서 진도를 원하는 대로 나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도 읽고 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책이라 그런 걸까 싶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해 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만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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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8-10-2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90년대에 안인길 교수가 뵐의 작품을 싹쓸이(?) 할 정도로 많이 번역 했죠.제가 뵐을 좋아해 거의 소장하고 있네요.밤을 새워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

레삭매냐 2018-10-29 21:35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예전 작품들을 만나려니
쉽지가 않네요.

일단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부터 하나씩
읽고 있답니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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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구 유럽 소설들이 인기다.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스웨덴의 프레드릭 배크만까지는 읽어 보았는데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는 또 처음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에도 그늘은 있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고령화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이 꿈꾸는 수명연장의 꿈은 실현화되었지만, 노인들이 원하는 사회가 과연 도래했을까?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체험을 한 이들이 우리들의 그것보다 욕망이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사회에서 그들을 잉여 취급하고 도태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에서는 79세 메르타 할머니가 이끄는 5인조 강도단(나중에 군나르까지 가세해서 6인조로 확대된다)은 사회의 그런 시선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털고, 장물 다이아몬드 습득하고, 은행과 국립박물관을 터는 기행을 선보인다. 물론 메르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일탈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영국의 숲 속에서 의적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운 로빈 후드와 조선의 홍길동의 후예를 자처한다. 자신들의 요양원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하지도 않는 약물과 반강제로 갇혀 지내야 했던 다른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한탕’으로 마련한 어마어마한 부를 나눠 주고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아무리 메르타 할머니의 기획력과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도구들을 직접 개발해내는 발명 천재 할아버지의 뛰어난 실력, 은행전문가 안나그레타의 해킹실력만으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곳들을 두루 터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말이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사건의 전개가 노인 강도단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해두었다. 5억 크로나(우리 돈으로 625억)를 목표로 긴장과 흥분 넘치는 한탕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노인 강도단이지만, 도중에 느닷없이 등장한 세관원에게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블롬베리 경감에게 2억 크로나를 갈취당한다. 하긴 전편에서도 한탕으로 마련한 자금을 그랜드호텔 홈통에 두는 바람에 그야말로 허탕을 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전직 선원 출신의 매력남 갈퀴 할아버지는 이웃의 점쟁이 할머니에게 빠져, 자신을 사랑하는 스티나 할머니와의 애정전선에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한다. 은행 일련번호가 매겨진 돈을 세탁하기 위해 경마장을 이용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이 양반들 이거 보통이 아닌데 그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가 구사하는 스토리 전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노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는 사회적 인식을 깨고, 그들에게 현대판 로빈 후드의 역할을 부여했다. 아무리 결단력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메르타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5인조로 구성된 노인 강도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다잡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때문에 메르타 할머니는 계속해서 “인생의 매 순간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역설적으로 국가가 모든 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사회복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게 되었노라는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 그들의 모습이 훨씬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담으로 ‘귄터 발라프 시니어 프로젝트’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지난여름 독일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잠입취재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고발했던 암행취재 전문 저널리스트 귄터 발라프의 이름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다. 노인 강도단이라는 도저히 현실에서 만나볼 수 없을 것 같은 판타지에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사회비판적 저널리스트의 이름을 매치시키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놀라운 실력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국가의 봉록을 받으면서 약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블롬베리 경감이 노인 강도단의 2억 크로나를 가로채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는 설정도 씁쓸했다. 게다가 그의 조력자가 다름 아닌 저명한 변호사라는 점도 그렇다. 정당한 법률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대행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과연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궤도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를 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는 노인 강도단이 미국에서 귀국해서 둥지를 튼 베름되 해안가 빌라의 이웃 밴드 에인절스다. 악명 높은 헬스 에인절스의 독립클럽으로 가입을 원하는 우락부락한 폭주족 톰파와 예르겐이 과시하는 미친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메르타 강도단이 보여줄 수 없는 그런 ‘피지컬’을 대신하는 행동대원이라고 해야 할까. 폭주족과 강도단의 조화도 역시 볼만하다. 사실 소설 중반에 도달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는가 싶었지만 하나하나 깔끔하게 종착점으로 인도하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혹시라도 우리의 의적들이 감옥에라도 가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나 않는지 조마조마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세관원 스벤 칼손의 집요한 추적으로 메르타 강도단의 정체가 탄로날 뻔하고, 메르타 할머니의 의협심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위기도 맞지만 능수능란하게 그야말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장면은 압도적 재미의 원천이었다. 그 이면에는 치매 걸린 할머니로 위장해서 사방에서 조여드는 감시와 포위망을 뚫는다는 노인 강도단의 의표를 찌른 역설의 미학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노인들도 젊은이들처럼 긴장과 흥분 넘치는 일단의 ‘한탕’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점을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마다의 숨은 가족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메르타 강도단, 아웃로 올디스(Outlaw oldies) 클럽의 계속될 스릴 모험의 전조를 제시한 점도 고무적이다. 메르타 할머니들의 활약을 보니, 어쩌면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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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빠! 근데 진짜 전방위적인 독서가 인정 ^^

레삭매냐 2018-10-26 13:04   좋아요 1 | URL
전방위는요... 마구잽이 독서죠 -
게다가 소설 위주의 편식쟁이 ㅋㅋㅋ
 


The Line of Beauty / Alan Hollinghurst
아름다움의 선 / 앨런 홀링허스트

드디어 창비에서 <아름다움의 선>이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올해 기다리는 네 개의 작품 중에 조지 손더스의 <링컨의 바르도>와 비슷한 시기에 나올 모양이다.

올해는 노벨문학상도 없어서 그런지 가을의 책 출간소식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아, 나머지 두 권은 은행나무에서 나올 예정이라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좀비물 <존 원> 그리고 문동의 필립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다. 후자는 작년 여름부터 나온다 나온다 하더니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지난여름에 나온다고 하더니 또 계절을 넘기고야 말았다. 해를 넘기지 말고, 이번 겨울에는 만나볼 수 있을까.

총알도 단단히 쟁여 두고 대기 중인데, 앞으로 한 열흘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새로운 책읽기도 시작하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예감.

그나저나 <아름다움의 선>은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싱글맨> 이상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홀링허스트의 신간 <스파숄트 어페어>도 조만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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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항구들 동방문학총서 1
아민 말루프 지음, 박선주 옮김 / 훗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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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달궁 모임 책으로 선정되고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작년에 사둔 책이었는데 읽다가 방치해 둔 기억이 났다. 서가의 보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오래 전에 저자 아민 말루프가 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에 읽었고, 리뷰도 남기지 않아 감상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레바논 출신으로 1976년부터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아민 말루프는 레비-스트라우스에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모국어는 아랍어인데 작품 활동은 프랑스어로 하는 아민 말루프는 터키의 마지막 술탄의 자손을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중동사를 관통하는 대하드라마를 창조해냈다.

 

소설 <동방의 항구들>1976616일 수요일, 프랑스 파리의 모처에서 화자가 과거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교과서에도 실렸던 오시안 케탑다르를 만나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설이 생기기 위해서는 항상 청자가 필요한 법이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 터키인, 그리스인, 유대인, 아랍인 그리고 아르메니아인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술탄이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던 술래이만 대제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중동의 빈사에 빠진 환자 오스만 터키는 동유럽에서 시작된 피지배 민족들의 국토회복운동으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몰락하는 중이었다. 이스탄불의 군주(술탄)는 폐위된 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군주의 딸이었던 이페트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 노박사 케탑다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이페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시안 케탑다르의 할머니였다. 귀족의 후예답게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오시안의 할아버지는 아르메니아인 친구 누바르의 딸 세실(15)과 결혼해서 둘째 오시안(1919년생)을 낳게 된다. 190946, 케탑다르 가족이 살던 터키 남부의 아다나 지방을 휩쓴 오스만 무슬림과 아르메니아 기독교계의 충돌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누바르의 가족들은 신대륙 아메리카로 떠나게 된다. 아다나 학살사건은 6년 뒤에 전 세계에 근대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알려지게 될 조직적 아르메니아 대학살(1915)에 앞선 불길한 전조였다. 케탑다르 가족도 같은 레반트 지역의 베이루트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한 때 중근동에서 패자였던 오스만 터키가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피지배민족으로 설움을 겪던 수많은 민족이 민족자결을 주장했다. 특히 터키와 종교가 다른 민족인 아르메니아인들의 독립 요구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태가 폭력적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터키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아민 말루프는 이민족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동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물론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을 도운 터키 무슬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였고, 대다수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아르메니아인들을 혹독하게 다뤘다.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데, 40년 뒤 이스라엘 독립 과정에서 벌어진 나크바(Nakba:대재앙)가 그랬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오시안은 프랑스 몽펠리에로 떠나 의학공부를 하게 된다. 1930년대 전간기의 유럽대륙은 불안 그 자체였다. 곧 이어 터진 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군의 전차부대 앞에 속수무책으로 항복하고, 이에 굴하지 않는 프랑스 국민들은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독일 점령군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외부인 오시안 케탑다르는 정의의 편에 서서, 바쿠 혹은 아바카(미래를 의미한다)라는 가명으로 레지스탕스 전사 베르트랑과 함께 활발한 저항활동을 개시한다. 프랑스 사람도 아닌 터키인 오시안이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혹한 시절에 오시안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 유대인 처녀 클라라 엠덴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유대인 절멸계획으로 모든 가족을 잃은 클라라 역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요원이었고, 오시안의 평생의 사랑이 될 전망이다. 오시안을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 친독 의용대에게 체포되는 결정적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다른 무장 레지스탕스 요원들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탈주에 성공해서 레지스탕스 잡역부의 영광스러운 활동을 이어갔다. 모두가 오시안을 칭송했지만, 영웅의 최고의 덕목이라는 겸손을 그는 직접 실천했다. 그런데 나는 왜 오시안의 이미지에서 자꾸만 포레스트 검프의 그것이 연상되는 걸까.

 

밀수업자 막내아들 살렘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오욕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오시안의 아버지와 왕녀 출신 할머니 이페트는 영웅의 귀환으로 비로소 명예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실성한 군주의 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기적적으로 미래의 이스라엘이 되는 팔레스타인으로 귀국 중이던 클라라가 오시안을 찾아오고, 둘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한 명은 아랍인(터키인)이고 다른 한 명은 유대인이라는 점이었다. 벌써부터 비극이 잉태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독립으로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기 전까지만 해도 베이루트와 하이파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케탑다르 부부가 꿈꾸던 미래의 행복은 단박에 무산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만삭의 아내 클라라를 하이파에 두고 베이루트를 찾은 오시안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다. 전쟁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자신의 자리를 노린 동생 살렘의 음모로 수십 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강제로 갇힌 정신병원에서 오시안을 버티게 해준 힘의 근원은 돌잡이 딸 나디아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존재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변질되기 쉬운 음식 같은 희망이야말로 1976620일 재회의 기쁨을 위한 연단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민 말루프는 중근동 현대사에 등장하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올라탔던 어느 남자의 거창한 일대기로 시대의 비극을 그려냈다. 아무래도 터키 출신 오시안 케탑다르가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은 소설적 핍진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 지식계를 대표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아예 이해 못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오스만 터키의 몰락, 아르메니아 대학살, 나크바, 이스라엘 독립전쟁 그리고 전화가 미친 레바논 내전에 이르는 시대의 흔적에 정면도전한 남자의 연대기는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소설의 후반에 등장하는 정신병원 시퀀스는 어쩌면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에 대한 작가의 소설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 세대 전에 그의 할머니 이페트가 폐위된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을 목도하고는 정신을 놓지 않았던가. 성인이 되어 프랑스를 거쳐 자신을 찾아온 딸을 보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은 오시안이 바깥세상을 보기 위해, 무엇보다 강제로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만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장면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레지스탕스 경력과 만능키 같이 작동하는 베르트랑과의 관계를 통해 마침내 제 2의 조국 프랑스를 찾아온 영웅의 귀환은 오디세우스의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연상시킨다.

 

오시안 케탑다르에게 레반트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근원이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을까. 아민 말루프가 자유 프랑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조금 고전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레지스탕스 신화의 완성을 위해 익명의 나레이터를 등장시키는 방법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게 된 저자의 다른 책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레반트 출신 저자의 다른 목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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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10-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자신이 레반트 출신임을 강조하던데 ‘레반트 출신‘이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말씀처럼 디아스포라와 비슷한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