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말로 작가는 많고, 우리의 인지능력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문학도 많다는 걸 이번에 페루말 무루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에는 단 한 번 소개가 된 적이 없는 인도 타밀나두 출신 페루말 무루건 교수의 책들이 나에게는 그랬다. 간만에 들른 뉴욕타임즈 책 소개에 무루건 교수의 <마도루바간(Madhorubagan)> - 영문제목 <One Part Woman> - 이라는 영어 번역서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미국 내셔널북워드 번역서 코너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구간(2010년 발표)이 불러일으킨 화제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에 전세계 배송료 무료라는 북디파지터리(아마존 계열사다)에서 주문했다. 국내에 언제 출간될 지 모르니, 쓰담쓰담을 위해서라도 하나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어제로 만료되는 10% 할인 쿠폰이 있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자국의 문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분명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겠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만한 소재가 또 어디겠는가 말이다. 무루건 교수의 <One Part Woman>에서는 아이가 없는 부유한 카스트 계급의 여성이 아이를 갖기 위해 힌두 사원축제에서 만난 외간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루건 교수는 1세기 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힌두 극우주의자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비하한 지식인은 처단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무루건 교수에게 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협박을 시작했다.

 

무루건 교수의 고향에서는 격렬한 저항과 시위가 벌어졌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저자는 교수직 사임을 강요받았다. 급기야 2015년 1월, 자신의 독자들에게 책들을 불살라 버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저자 페루말 무루건은 죽었다”며 절필선언까지 SNS을 통해 해야 했을까. 자신이 신도 아니며, 부활에 대해 믿지도 않는다는 글도 썼다. 그냥 자신을 냅두라고 했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 걸어다니는 시체(Walking corpse)라는 표현까지 해야 했을까. 다시 한 번 문학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무래도 문학에는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갖은 협박을 받은 무루건 교수의 경우를 돌아볼 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2016년 1월, 법원은 무루건 교수의 저작들이 기소되어야 한다는 극우 힌두 그룹의 수많은 진정서들을 기각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루건 교수는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피해 있던 시기가 특히 자녀들과 부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는데, 200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지배했던 그 기간 동안, 글쓰기는 가장 깊은 레벨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과 도구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작가는 이래야 한다는 걸 무루건 교수는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페루말 무루건은 1966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티루첸고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면서 동시에 동네 극장에서 소다를 파는 부업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무루건은 어려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역방송을 타게 된 동요 가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무루건 교수는 타밀나두의 에로드에서 타밀문학을 전공했고, 타밀나두 중부에 있는 공업도시 코임바토르에서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그 뒤, 마드라스 대학에서 타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루건 교수는 1998년부터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91년 첫 번째 소설 <Rising Heat>을 발표했다.

 

박사과정 중에 무루건은 자기보다 하위 카스트 계급의 부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끝내 거부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지났지만 무루건의 친척들과 여전히 소원한 관계이며, 그의 아내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루건의 형은 가족사업인 소다업에 종사하기 위해 학교를 일찍 떠났고, 같은 병에 채워넣던 밀주에 중독됐다. 형은 42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마도루바간> 사태 이후, 무루건 교수는 자기 내부의 검열관과 치열하게 싸우게 됐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단어 하나하나에 개입해서 시험을 치른다. 물론 어떤 글도, 독자에게 오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의 검열관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무루건은 꼬마 아들과 저녁 8시에 잠에 들어다가 자정 무렵에 깨어나 가장 조용한 시간에 2~3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많은 수의 무루건 동료들은 그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어쨌던 3년 동안, 5편의 소설을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지난 시절의 혹독한 시련이 작가로서 무루건을 더욱 단련시킨 모양이다.

 


(영어로 번역된 무루건 교수가 쓴 책들)


발표된 지 3년 뒤에 영어로 번역된 <마도루바간>의 주인공은 칼리와 포나다. 십년에 걸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혹시 조상 중에 저주 받은 적이 있는지 세심하게 조사한다. 혹시 숲에서 젊은 처자를 야만적으로 다룬 조상이 있었던가? 아니면 마을 경연에서 부정을 저지른 조상이 있었나? 부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속죄 의식도 치른다. 모든 사당에 경배하고 미신에 복종한다. 하지만 인도의 그렇게 많은 신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조해진 칼리와 포나 부부에게 이웃들은 칼리가 다른 부인을 들이거나 아니면 포나가 예의 힌두사원 축제에 참가하라는 제안을 던진다. 결국 질투가 도착하고, 섹스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전개된다. 포나는 “삶을 찾으면서 우리는 우리 삶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페루말 무루건의 케이스를 살펴보면서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구나라는 점과 둘째는 인도 문화의 그것까지 삼켜 버리는 영어라는 문화권력의 실체였다. 그나저나 무루건 선생의 책의 국내번역은 요원하기만 하니 하는 수 없이 어려워도 영어책을 구해다 읽어야겠구나.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들처럼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나서서 번역하고 출간해 주면 좋겠으련만.

 

* 뉴욕타임즈 기사와 BBC 그리고 위키피디아와 인터뷰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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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아무래도 오리발, 아니 호기심이
마당발 수준이라 여기저기 기웃거리
는 분야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인도 문학이 땡기는군요.

얄리 2018-10-22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덕분에 페루말 무루건을 알게되었네요. 번역본이 나오면 참 좋으련만... 원서 주문해야겠네요. 법정까지 가게 된 작품내용이 정말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당분간 번역이 될 것 같지
않은 강렬한 예감이라 질렀습니다 -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던데...

인도 작가 중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양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8-10-22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3   좋아요 1 | URL
북디파지토리, 전세계 무료 배송이더라구요.
아마존 계열사지요.

어떤 책들은 아마존보다 비싸지만, 아무래도
무료 배송의 장점을 누릴 수 있으니깐요.

아주 드물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번역서도
다 못 읽고 있는 마당에 영어책이라뇨 ㅋㅋ
 
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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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건국부터 폭력으로 점철된 나라였다. 독립전쟁으로 영국제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그 이후의 역사도 서부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전개된 인디언들의 학살 그리고 남과 북으로 갈려 내전까지 치른 찬란한 역사를 자랑한다. <플라워 문>의 저자 데이비드 그랜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패자가 된 미국의 흥청거리던 1920년대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벌어진 기묘한 연쇄살인을 <플라워 문>에서 다룬다.

 

초반부터 흥을 깨기는 그렇지만, 그랜 저자의 <플라워 문>은 내 예상보다 못했다.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을 기대했는데, 검은 황금이 터진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광물자원으로 벼락부자가 된 오세이지 인디언들을 죽이고 각종 이권을 차지한 백인들의 이야기는 색다를 것도 없었다. 미국을 사실상 지배해온 백인들은 캔자스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오세이지 부족을 강제로 불모의 오클라호마로 추방하다시피 해서 내쫓지 않았던가. 훗날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가 오세이지 부족이 새롭게 뿌리를 내린 영토에서 솟아 나오자, 그들의 자원을 빼앗기 위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 것이다.

 

근 100년이 지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을 저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추적한다. 애나 브라운의 충격적 죽음에서 비롯된 연쇄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파렴치한 백인 피후견인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문제는 유력한 용의자이자 ‘오세이지 힐스의 제왕’이란 별명을 가진 윌리엄 헤일이 오클라호마의 유력자들을 포섭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의 노력을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애나 브라운의 두개골을 뚫은 총탄의 부재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이들을 뇌물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 연방정부로 사건을 가져 가려는 의로운 변호사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의 헤일이 고용한 불한당 출신 킬러들에게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연방국가 미국에서는 주 경계를 초월한 연방수사국/경찰권에 대한 공포가 존재했던 모양이다. 에드가 후버가 이끄는 수사국이 FBI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점도 흥미롭다. 그전까지만 해도 ‘카우보이’ 스타일의 치안관이나 보안관이 무법자들을 상대하는 게 서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정식 수사교육을 받고 소위 엘리트 수사관들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후버라는 인물 자체가 문제긴 했다. 어쨌든 후버는 톰 화이트라는 걸출한 수사관을 오세이지 카운티에 파견해서 사건 해결에 나선다.

 

오세이지의 진짜 악당 빌 헤일의 파렴치한 행동은 확실히 도를 넘었다. 검은 황금으로 막대한 부를 마련한 오세이지 인디언들을 상대로 살인교사, 독살 그리고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한 폭살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가 난무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면, 검은 황금은 몰리 버크하트 자매를 비롯한 오세이지 부족들에게 횡재가 아니라 재앙이 아니었던가.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원래 살던 인디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석유 시추로 막대한 재산을 얻게 된 그들이 재산권을 행사할 만한 지능과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 정부는 피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자신의 후견인들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인 그들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세이지 부족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나중에 톰 화이트 수사단은 마침내 빌 헤일이 연쇄살인사건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배심원 재판에 나설 백인 남성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디언들을 위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지문이나 사건현장 검증 같은 과학수사가 일반화되었다면 빌 헤일 무리의 사법농단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열차강도가 출몰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3부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오세이지 조상들의 신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오세이지 인디언을 상대로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빌 헤일을 비롯한 악당들은 일급살인죄를 면하고, 결국 가석방되지 않았던가. 저자는 “역사는 무자비한 판관”이라고 썼는데, 과연 그 무자비한 판관이 억울하게 죽어간 24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이 납득할 만한 재판결과를 내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와 기득권층의 편이 아니었던가.

 


개인적으로 이 논픽션에서 가장 경이로운 장면 중의 하나는 정부가 사람들에게 인디언들에게 사들인 선착순으로 땅을 나눠 준다는 말에 말과 마차를 타고 질풍노도처럼 사람들이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불상사는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그리고 오세이지 인디언들의 귀중한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배심원들을 매수하고 지역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빌 헤일을 비롯한 악당들이 저지른 사법방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레기급의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인디언 살해를 ‘동물학대’라고 표현한 선정보도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연방수사에 필요한 자금을 일부 오세이지 사람들이 부담한 점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범죄에 대한 수사를 피해자들이 부담했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정과 인권이 발전했다는 미국에서도 지난 세기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무시로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플라워 문>을 읽는 도중에 얻은 소득 중의 하나다.

 

데이비드 그랜이 쓴 <플라워 문>의 영화 판권은 5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매혹적인 폭력의 역사를 할리우드가 그냥 둘 리가 있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각색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에릭 로스가 작업 중이라고 한다. 마틴 스코시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년 봄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 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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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8-10-20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잃어버린 도시 Z‘의 작가가 쓴 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흥미 있었던 윌리엄 킹 헤일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인데 벌써 읽으셨군요^^

레삭매냐 2018-10-20 21:39   좋아요 0 | URL
기대를 좀 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습니다.
 
버려진 노동 - 유연해진 노동시장에서 전망 없이, 뼈 빠지게 일하기
귄터 발라프 지음, 이승희 옮김 / 나눔의집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일찍 죽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특히 독일에서 하르츠개혁으로 대변되는 ‘성공적’인 임금하락정책 때문에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보다 언제라도 사회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표어는 없을 것 같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동안 윤리적 소비를 하는 호모 컨슈머티쿠스라고 자부해 왔건만, 내가 하는 소비는 윤리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 좋아하는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배송 받는 과정에서도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숨어 있었다.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미 그 전에 발라프 아저씨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취재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누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글은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 양반은 자신이 직접 암행취재하지 않은 글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젊은 시절처럼 직접 현장에 잠입해서 취재하는 게 상대적으로 어려워졌고, 얼굴도 많이 팔려서 자본가들의 경계대상이 되어 더 이상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발라프의 생각에 동조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기꺼이 그를 대신해서 암행취재에 나섰다.

 

시작은 아마존과 잘란도라는 인터넷 쇼핑몰 기업이다. 유통공룡 아마존의 한국 상륙을 오매불망 기다려 왔는데, <버려진 노동>에 등장하는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악랄한 착취 방법을 보고서는 그야말로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마치 스타벅스처럼 말이다. 비용절감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아마존 역시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이 노동자들을 지독한 속도전에 내몬다. 리시버, 스토워, 피커 그리고 패커로 분류된 물류센터의 직원들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 등장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들처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상호감시와 밀고는 기본이다. 별 것도 아닌 타이틀과 수당을 얻기 위해 상호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게 기업의 모토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건강 따위는 논외의 문제다. 오로지 수익만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때마침 한겨레에 실린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쿠팡맨들의 노조 관계기사를 읽었는데, 새벽배송 서비스 도입이라는 놀라운 시도를 접하게 됐다. 도대체 누굴 잡으려고? 노동자들을 그저 도구로 인식하는 기업경영 방식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구나 싶다.

 

케인지언 스타일의 수정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애덤 스미스 시절의 자유방임주의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시장을 뒤덮은 뒤, 우리에게 닥친 것은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고용주들의 돈벌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 혹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능률과 효율 그리고 무한한 이윤의 증식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자본은 유럽 같은 선진사회 뿐 아니라 제3세계를 넘나들며 자가 증식을 추구한다. 신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소위 자본주의 3.0 시대의 맹렬한 전사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모든 규제의 철폐를 원한다. 최근 벌어진 사립유치원 비리사태만 보더라도, 2조원에 가까운 정부 보조금을 받은 이들이 왜 그렇게 그들이 감사를 받지 않으려고 갖은 방법을 써서 저항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발라프 아저씨가 사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다임러벤츠 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르츠보조금을 받는 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 세계에서 누구나 타고 싶어 하는 최고급 브랜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가까스로 연명할 수준의 하르츠보조금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말이다.

 

인터넷 경제의 활성화로 자유시장 경쟁 시스템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마당에, 고용주/자본가들이 쥐어짜낼 수 있는 이윤의 창구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 밖에는 없다. 비용절감은 세계적 주제가 된지 오래다. 트럭이나 자재비, 창고비 같이 물류산업에 있어 꼭 필요한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전력을 투구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하청에 재하청, 그리고 개인사업자를 고용한 영업방식을 그들이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법을 준수하면서 그런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법을 다 지켜 가면서 그런 놀라운 이윤을 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자영업자들을 도태시키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데, 일자리를 빼앗는 건 사회적 사망선고가 아닌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조상 끊임없이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소비는 과연 필요한 소비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셜네트워크란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장착한 자본주의는 사방에서 항상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사라는 광고를 메시지에 담아 송출한다. 최근 우리 동네 트레이더스에 품절대란을 빚은 에어프라이어기 열풍을 보니 이해가 갔다. 아니 예전에 에어프라이기가 없던 시절에는 해먹을 게 없었고,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아니다. 새로운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삶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 인간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오늘도 과다한 정신노동에 시달린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이러저러한 갑질과 갈굼에 시달리고.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상황과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한국의 기업가들이 이 책을 읽고 벤치마킹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윤추구에 대한 그네들의 공감 능력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가 보다. 폭염이 물러가지 않은 여름의 끝물에서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찬바람이 드는 계절에 다 읽게 되었다. 그만큼 독서가 쉽지 않았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귄터 발라프가 들려주는 독일의 현실을 한국의 그것과 대조해 보면서, 하나도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자. 책 택배가 좀 늦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어제 밤에 주문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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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16 13:09   좋아요 1 | URL
시간을 자본으로 만든 자본주의 생태계
교란! 적절하신 지적이십니다.

빠름이 느림을 구축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느림의 미학을 미처 알지 못하고
허걱대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
니다. 슬프네요 정말.

cyrus 2018-10-16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 시대에 누구나 안 힘든 노동자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여성 노동자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여성 노동 문제가 사회의 수면 위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어요.

레삭매냐 2018-10-16 13:10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역쉬 페미니즘을 열심으로 공부하신 싸이러스
브로다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나무 2018-10-16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노동> 다 읽으셨군요. 당일배송, 특급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배송 서비스는 점점 좋아지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떤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건 비단 유통업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몇년전 풀무원 배송기사들의 파업도 떠오르네요. 바른 먹거리를 신선하게 소비자에게 배달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누군가의 힘겨운 노동...
저부터라도 배송기사님께 더 감사한 마음, 빠른 배송을 재촉하지 않는 그런 소비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리뷰였습니다.

레삭매냐 2018-10-16 13:12   좋아요 1 | URL
당장 읽을 책도 아니면서(언제나 항상!!!)
왜 그렇게 조급증을 내는 지 모르겠습니다.

귄터 발라프의 마지막 책인데, 읽는데 석달
이나 걸렸네요. 르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2018년 한국의 상황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더더욱 그랬던 게 아닌가 싶네요.

내가 편하자고, 비용을 줄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착취하는 시스템,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호가스 출판사에 수년째 계속 중인 셰익스피어 다시쓰기 프로젝트의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에 7번째로 나온 요 네스뵈가 다시 쓴 <맥베스>를 만나게 되었다. 서구인들, 특히 영미문화권 작가들의 셰익스피어 사랑에 대해서는 더 할 말 필요가 없겠지.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는 자신의 장편소설 제목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따올 정도니 말이다. 게다가 작고한 지 수백 년이나 된 작가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도 물론 <맥베스>를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의 하나로 읽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법이지. 그래서 요 네스뵈가 1970년대 칵테일과 파워라는 마약이 판치는 파이프라는 범죄도시를 배경으로 한 신판 <맥베스>를 읽으면서 간간히 오리지널 <맥베스>에 대한 대략적이 줄거리도 살펴봤다. 왕이 될 거라는 여신 헤카테의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아내 레이디의 충동질에 따라 주군 덩컨을 죽이고 주변 인사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무자비하게 처리하면서 마침내 스코틀랜드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물론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악당이 아니었던 맥베스는 자신이 죽인 유령들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아, 내가 이 책의 분량에 대해 말했던가? 자그마치 724쪽이나 된다. 그러니 시작하시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으시길. 하지만 이미 해리 홀레 시리즈로 스릴러에 있어 일가를 일군 요 네스뵈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캐릭터와 구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소설은 고아원에서 주인공 맥베스와 함께 자란 더프가 대량의 불법 마약 거래를 시도하려던 노스 라이더 갱단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특공대 대장 맥베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노스 라이더 갱단을 제압했고, 부패한 전직 경찰청장 케네스를 대신해서 신임 경찰청장이 된 덩컨은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장으로 승진시킨다. 어느 사회에서나 계급 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파이프 시에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야심찬 덩컨 청장은 자신과 같은 엘리트 계급이 아닌 그야말로 사회 밑바닥 출신의 맥베스야말로 새로운 정의구현을 위한 사도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노스 라이더의 라이벌 헤카테가 맥베스에게 원작에서는 마녀들의 예언과 같은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약속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맥베스보다 더 냉철하고 잔혹한 캐릭터의 레이디는 맥베스에게 덩컨을 죽이고 새로운 청장의 자리에 오르라고 부추긴다. 그에 따르는 모든 계획도 그녀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진행된다. 원작자 셰익스피어/요 네스뵈는 신의와 의리 같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리를 강조하기 위해,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위해 인간관계와 배신을 서슴지 않는 인간 군상에 대한 냉정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신임 경찰청장이 된 맥베스는 정의의 사도에서 집요한 권력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파이프 시의 문제는 높은 실업률(제조업의 부재)과 심각한 환경오염 그리고 보이지 않은 손(Mr. Hand-헤카테)이 비밀리에 대량으로 제조 유통하는 마약 칵테일과 파워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이 마약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고, 두 개의 라이벌 카지노 레이디의 인버네스와 오벨리스크를 드나드는 일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나서서 무언가 해야 하지만 토텔 시장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재선에만 신경을 쏟는다. 어쩌면 요 네스뵈는 셰익스피어를 다시 쓰면서 그런 정치 경제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보야, 그러니까 문제는 경제라구!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 시대 정의는 500년 전 이미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에서 신물 나게 빼먹은 주제다. 그런데, 정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맥베스가 이끄는 특공대원들 사이에서 회자는 의리는 시중잡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라, 그러면 잠시나마 행복해질 것이니. 끝까지 맥베스와 함께 했던 특공대원 시턴과 올라프슨의 이야기다. 영원한 의리는 역시나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일까. 자신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마녀들의 예언에 현혹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파탄에 몰아넣어 버린 맥베스의 어리석은 결정이 가져온 후과를 보라.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배신이 난무하는 드라마 <맥베스>에 요 네스뵈는 맥베스와 더프의 서글픈 과거 스토리도 빼놓지 않는다. 형제와도 같았던 그들이 훗날 더프의 아내가 된 메러디스 때문에 갈라지게 된 이유, 더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맥베스가 더프에게 진 빚 그리고 더프의 스위노에 대한 원한 등 복잡다단한 변주가 살인 미스터리의 대가 요 네스뵈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알비노 레녹스 경감의 한방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온 도시 파이프에 다시 악이 고개를 드밀 것이라는 예언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요 네스뵈가 다시 쓴 <맥베스>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고전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수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분석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간단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서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제 다른 호가스 시리즈를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처럼 재밌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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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15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긴 하네요.
제가 북유럽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게 딱히 땡기는 건
아닌데 이건 웬지 읽고 싶군요.
제가 이런쪽을 좋아하거든요.
기존의 텍스트를 새롭게 재해석 해 놓은 작품.
더구나 요 네스뵈는 워낙에 유명한 작가라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대신 호흡은 크게 한번 내쉬고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0-15 20:34   좋아요 0 | URL
원체 두꺼워서 언제 이걸 다 읽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더라구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다시 쓰기 책을 읽
으면 원전을 다시 만나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호가스 시리즈, 마음에 들어서 바로 <던바>
도 구해다 읽었답니다. 다음 타자로는
오셀로 <뉴 보이>가 읽고 싶네요.

cyrus 2018-10-16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전작 읽기를 도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

레삭매냐 2018-10-16 08:27   좋아요 1 | URL
싸이러스 브로 ~

책읽기에 실패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꾸준히 읽는 것이지요.

끊어진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
하셔도 갠춘할 것 같습니다.

일단 희곡부터 시작하시는 게 어떠
실런지요.
 
굴드의 물고기 책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유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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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리처드 플래니건의 책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월에 바로 두 권의 책을 샀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굴드의 물고기 책>. 둘 다 각각 백 쪽 그리고 이백 쪽씩 읽었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10월에 나의 서가에서 집어 올린 <굴드의 물고기 책>은 단 3일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당히 재밌었다. 왜 그 때 미처 다 읽지 못했던 건지 궁금하다.

 

현재 시점에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를 찾는 부유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골동품 사기를 치는 화자 시드 해밋은 어느 날, 윌리엄 뷜로 굴드라는 영국 출신 기결수가 쓴 <물고기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책에 실린 다양하면서도 기교 넘치는 물고기 그림들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마 처음에 책을 읽을 적에 아무런 정보 없이 무턱대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9달 전의 기억들은 파편으로 존재했다. 그래서 새로 읽어야만 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중혁명으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19세기 밴디먼스랜드(오늘날의 태즈메이니아)가 공간적 배경이다. 영국 출신 윌리엄 뷜로 굴드(이하 빌리 굴드)는 지금 물고기 감방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는 간수 팝조이에게 그림을 그려 주고, 그의 묵인 아래 모종의 기록을 남긴다. 자신의 피로 때로는 갖가지 재료들을 이용해서. 우리도 현재 치열한 기억의 투쟁을 하고 있지만,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었다. 심지어 그 기록자가 사형수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본토에서 위조죄로 잡혀 1825년 7년형을 받고 태즈메이니아 세라섬에서 형을 살게 된 빌리 굴드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한 때 신대륙 미국에 건너가 조류학의 대가 장바뵈프 오듀본 아래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지 않은가. 사실 유형지에서 그림 그리는 기술이 필요할까 싶지만,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고 기록을 위한 그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미적 감상을 위해서도. 지금은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누구나 쉽게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수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문명세계를 대표하는 제국 영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문명인이었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몽주의 사조가 서구사회를 휩쓸고 있던 시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애버리진 원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순전히 과학에 근거한 인류학적 관점에서 그들의 신체를 훼손하고, 수집하는 야만에 가까운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하긴 유형수들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마당에 원주민들에게 그런 대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세라섬의 사령관 가짜 호러스 대위는 죄수들의 교화라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노바 베네치아(Nova Benezia)를 꿈꾸면서 섬의 자원들을 팔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윗대가리가 이 모양이니 수하의 부하들은 어떨지 상상에 맡기겠다. 성병을 치료하겠다고 수은에 중독된 얼굴을 가리기 위해 황금가면을 쓰고, 갖은 기행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에서 코폴라 감독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커츠 대령이 연상되기도 했다.

 

어쨌든 빌리 굴드는 섬의 또 다른 권력자 토비어스 아킬레스 렘프리어 선생에게 픽업되어 그의 하인이자 전속화가가 되어, 영국 본토의 코즈모 휠러 박사에게 제공할 물고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재밌는 건, 각장마다 등장하는 12마리의 물고기들이 제각각 등장인물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퉁퉁한 렘프리어 선생은 가시복에 비유하지 않던가. 그리고 불과 십 수 년 전에 있었던 나폴레옹 전쟁에 관련된 인물들이 무시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는데 일등공신 중의 하나였던 프로이센의 블뤼허 원수의 이름이 등장하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었던 아이티 반란의 주모자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여전히 소위 과학의 영구한 진보를 믿는다는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이 밴디먼스랜드에서 벌이는 지옥의 카니발 같은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형수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고문과 처벌은 일상적이었다. 닥터 렘프리어가 죽은 뒤, 코즈모 휠러 경에게 보내진 그의 두개골이 애버리진 원주민의 퇴화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로 채택되는 장면은 이 소설 최고의 블랙유머의 현현이었다.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과 물고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빌리 굴드의 환각인지 망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착란성 섬망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보기 좋게 물고기 감방에서 탈출해서 맷 브레이디와 호응해서 무언가 유의미한 반란의 시도를 기대해 보았지만, 소설은 나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빌리 굴드를 궁지에 몰아넣은 토비 렘프리어의 어이없는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카푸아 데스, 늙은 덴마크 서기이자 위조기록 전문가 요르겐 요르겐센과 사령관 호러스 대위까지 정말 기이한 죽음을 맞는다. 리처드 플래니건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메멘토 모리’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기록에 집착하던 빌리 굴드가 시시포스처럼 요르겐센의 비밀서고에서 발견한 기록들을 썰매에 지고 가다가 결국 모두 다 태워 버리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느낀 점이지만, 언제나 기록은 승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까.

 

<굴드의 물고기 책>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반면 소설에서 리처드 플래니건 작가가 구사하는 면면과 전개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지난 1월에 못 다한 숙제를 마친 것 같아, 기분은 후련하다. 바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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