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노동 - 유연해진 노동시장에서 전망 없이, 뼈 빠지게 일하기
귄터 발라프 지음, 이승희 옮김 / 나눔의집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일찍 죽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특히 독일에서 하르츠개혁으로 대변되는 ‘성공적’인 임금하락정책 때문에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보다 언제라도 사회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표어는 없을 것 같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동안 윤리적 소비를 하는 호모 컨슈머티쿠스라고 자부해 왔건만, 내가 하는 소비는 윤리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 좋아하는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배송 받는 과정에서도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숨어 있었다.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미 그 전에 발라프 아저씨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취재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누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글은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 양반은 자신이 직접 암행취재하지 않은 글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젊은 시절처럼 직접 현장에 잠입해서 취재하는 게 상대적으로 어려워졌고, 얼굴도 많이 팔려서 자본가들의 경계대상이 되어 더 이상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발라프의 생각에 동조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기꺼이 그를 대신해서 암행취재에 나섰다.

 

시작은 아마존과 잘란도라는 인터넷 쇼핑몰 기업이다. 유통공룡 아마존의 한국 상륙을 오매불망 기다려 왔는데, <버려진 노동>에 등장하는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악랄한 착취 방법을 보고서는 그야말로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마치 스타벅스처럼 말이다. 비용절감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아마존 역시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이 노동자들을 지독한 속도전에 내몬다. 리시버, 스토워, 피커 그리고 패커로 분류된 물류센터의 직원들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 등장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들처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상호감시와 밀고는 기본이다. 별 것도 아닌 타이틀과 수당을 얻기 위해 상호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게 기업의 모토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건강 따위는 논외의 문제다. 오로지 수익만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때마침 한겨레에 실린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쿠팡맨들의 노조 관계기사를 읽었는데, 새벽배송 서비스 도입이라는 놀라운 시도를 접하게 됐다. 도대체 누굴 잡으려고? 노동자들을 그저 도구로 인식하는 기업경영 방식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구나 싶다.

 

케인지언 스타일의 수정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애덤 스미스 시절의 자유방임주의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시장을 뒤덮은 뒤, 우리에게 닥친 것은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고용주들의 돈벌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 혹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능률과 효율 그리고 무한한 이윤의 증식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자본은 유럽 같은 선진사회 뿐 아니라 제3세계를 넘나들며 자가 증식을 추구한다. 신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소위 자본주의 3.0 시대의 맹렬한 전사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모든 규제의 철폐를 원한다. 최근 벌어진 사립유치원 비리사태만 보더라도, 2조원에 가까운 정부 보조금을 받은 이들이 왜 그렇게 그들이 감사를 받지 않으려고 갖은 방법을 써서 저항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발라프 아저씨가 사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다임러벤츠 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르츠보조금을 받는 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 세계에서 누구나 타고 싶어 하는 최고급 브랜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가까스로 연명할 수준의 하르츠보조금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말이다.

 

인터넷 경제의 활성화로 자유시장 경쟁 시스템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마당에, 고용주/자본가들이 쥐어짜낼 수 있는 이윤의 창구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 밖에는 없다. 비용절감은 세계적 주제가 된지 오래다. 트럭이나 자재비, 창고비 같이 물류산업에 있어 꼭 필요한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전력을 투구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하청에 재하청, 그리고 개인사업자를 고용한 영업방식을 그들이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법을 준수하면서 그런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법을 다 지켜 가면서 그런 놀라운 이윤을 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자영업자들을 도태시키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데, 일자리를 빼앗는 건 사회적 사망선고가 아닌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조상 끊임없이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소비는 과연 필요한 소비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셜네트워크란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장착한 자본주의는 사방에서 항상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사라는 광고를 메시지에 담아 송출한다. 최근 우리 동네 트레이더스에 품절대란을 빚은 에어프라이어기 열풍을 보니 이해가 갔다. 아니 예전에 에어프라이기가 없던 시절에는 해먹을 게 없었고,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아니다. 새로운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삶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 인간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오늘도 과다한 정신노동에 시달린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이러저러한 갑질과 갈굼에 시달리고.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상황과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한국의 기업가들이 이 책을 읽고 벤치마킹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윤추구에 대한 그네들의 공감 능력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가 보다. 폭염이 물러가지 않은 여름의 끝물에서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찬바람이 드는 계절에 다 읽게 되었다. 그만큼 독서가 쉽지 않았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귄터 발라프가 들려주는 독일의 현실을 한국의 그것과 대조해 보면서, 하나도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자. 책 택배가 좀 늦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어제 밤에 주문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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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16 13:09   좋아요 1 | URL
시간을 자본으로 만든 자본주의 생태계
교란! 적절하신 지적이십니다.

빠름이 느림을 구축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느림의 미학을 미처 알지 못하고
허걱대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
니다. 슬프네요 정말.

cyrus 2018-10-16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 시대에 누구나 안 힘든 노동자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여성 노동자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여성 노동 문제가 사회의 수면 위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어요.

레삭매냐 2018-10-16 13:10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역쉬 페미니즘을 열심으로 공부하신 싸이러스
브로다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나무 2018-10-16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노동> 다 읽으셨군요. 당일배송, 특급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배송 서비스는 점점 좋아지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떤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건 비단 유통업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몇년전 풀무원 배송기사들의 파업도 떠오르네요. 바른 먹거리를 신선하게 소비자에게 배달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누군가의 힘겨운 노동...
저부터라도 배송기사님께 더 감사한 마음, 빠른 배송을 재촉하지 않는 그런 소비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리뷰였습니다.

레삭매냐 2018-10-16 13:12   좋아요 1 | URL
당장 읽을 책도 아니면서(언제나 항상!!!)
왜 그렇게 조급증을 내는 지 모르겠습니다.

귄터 발라프의 마지막 책인데, 읽는데 석달
이나 걸렸네요. 르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2018년 한국의 상황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더더욱 그랬던 게 아닌가 싶네요.

내가 편하자고, 비용을 줄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착취하는 시스템,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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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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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가스 출판사에 수년째 계속 중인 셰익스피어 다시쓰기 프로젝트의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에 7번째로 나온 요 네스뵈가 다시 쓴 <맥베스>를 만나게 되었다. 서구인들, 특히 영미문화권 작가들의 셰익스피어 사랑에 대해서는 더 할 말 필요가 없겠지.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는 자신의 장편소설 제목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따올 정도니 말이다. 게다가 작고한 지 수백 년이나 된 작가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도 물론 <맥베스>를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의 하나로 읽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법이지. 그래서 요 네스뵈가 1970년대 칵테일과 파워라는 마약이 판치는 파이프라는 범죄도시를 배경으로 한 신판 <맥베스>를 읽으면서 간간히 오리지널 <맥베스>에 대한 대략적이 줄거리도 살펴봤다. 왕이 될 거라는 여신 헤카테의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아내 레이디의 충동질에 따라 주군 덩컨을 죽이고 주변 인사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무자비하게 처리하면서 마침내 스코틀랜드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물론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악당이 아니었던 맥베스는 자신이 죽인 유령들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아, 내가 이 책의 분량에 대해 말했던가? 자그마치 724쪽이나 된다. 그러니 시작하시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으시길. 하지만 이미 해리 홀레 시리즈로 스릴러에 있어 일가를 일군 요 네스뵈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캐릭터와 구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소설은 고아원에서 주인공 맥베스와 함께 자란 더프가 대량의 불법 마약 거래를 시도하려던 노스 라이더 갱단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특공대 대장 맥베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노스 라이더 갱단을 제압했고, 부패한 전직 경찰청장 케네스를 대신해서 신임 경찰청장이 된 덩컨은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장으로 승진시킨다. 어느 사회에서나 계급 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파이프 시에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야심찬 덩컨 청장은 자신과 같은 엘리트 계급이 아닌 그야말로 사회 밑바닥 출신의 맥베스야말로 새로운 정의구현을 위한 사도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노스 라이더의 라이벌 헤카테가 맥베스에게 원작에서는 마녀들의 예언과 같은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약속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맥베스보다 더 냉철하고 잔혹한 캐릭터의 레이디는 맥베스에게 덩컨을 죽이고 새로운 청장의 자리에 오르라고 부추긴다. 그에 따르는 모든 계획도 그녀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진행된다. 원작자 셰익스피어/요 네스뵈는 신의와 의리 같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리를 강조하기 위해,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위해 인간관계와 배신을 서슴지 않는 인간 군상에 대한 냉정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신임 경찰청장이 된 맥베스는 정의의 사도에서 집요한 권력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파이프 시의 문제는 높은 실업률(제조업의 부재)과 심각한 환경오염 그리고 보이지 않은 손(Mr. Hand-헤카테)이 비밀리에 대량으로 제조 유통하는 마약 칵테일과 파워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이 마약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고, 두 개의 라이벌 카지노 레이디의 인버네스와 오벨리스크를 드나드는 일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나서서 무언가 해야 하지만 토텔 시장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재선에만 신경을 쏟는다. 어쩌면 요 네스뵈는 셰익스피어를 다시 쓰면서 그런 정치 경제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보야, 그러니까 문제는 경제라구!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 시대 정의는 500년 전 이미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에서 신물 나게 빼먹은 주제다. 그런데, 정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맥베스가 이끄는 특공대원들 사이에서 회자는 의리는 시중잡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라, 그러면 잠시나마 행복해질 것이니. 끝까지 맥베스와 함께 했던 특공대원 시턴과 올라프슨의 이야기다. 영원한 의리는 역시나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일까. 자신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마녀들의 예언에 현혹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파탄에 몰아넣어 버린 맥베스의 어리석은 결정이 가져온 후과를 보라.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배신이 난무하는 드라마 <맥베스>에 요 네스뵈는 맥베스와 더프의 서글픈 과거 스토리도 빼놓지 않는다. 형제와도 같았던 그들이 훗날 더프의 아내가 된 메러디스 때문에 갈라지게 된 이유, 더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맥베스가 더프에게 진 빚 그리고 더프의 스위노에 대한 원한 등 복잡다단한 변주가 살인 미스터리의 대가 요 네스뵈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알비노 레녹스 경감의 한방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온 도시 파이프에 다시 악이 고개를 드밀 것이라는 예언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요 네스뵈가 다시 쓴 <맥베스>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고전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수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분석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간단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서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제 다른 호가스 시리즈를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처럼 재밌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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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15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긴 하네요.
제가 북유럽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게 딱히 땡기는 건
아닌데 이건 웬지 읽고 싶군요.
제가 이런쪽을 좋아하거든요.
기존의 텍스트를 새롭게 재해석 해 놓은 작품.
더구나 요 네스뵈는 워낙에 유명한 작가라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대신 호흡은 크게 한번 내쉬고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0-15 20:34   좋아요 0 | URL
원체 두꺼워서 언제 이걸 다 읽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더라구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다시 쓰기 책을 읽
으면 원전을 다시 만나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호가스 시리즈, 마음에 들어서 바로 <던바>
도 구해다 읽었답니다. 다음 타자로는
오셀로 <뉴 보이>가 읽고 싶네요.

cyrus 2018-10-16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전작 읽기를 도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

레삭매냐 2018-10-16 08:27   좋아요 1 | URL
싸이러스 브로 ~

책읽기에 실패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꾸준히 읽는 것이지요.

끊어진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
하셔도 갠춘할 것 같습니다.

일단 희곡부터 시작하시는 게 어떠
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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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의 물고기 책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유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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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리처드 플래니건의 책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월에 바로 두 권의 책을 샀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굴드의 물고기 책>. 둘 다 각각 백 쪽 그리고 이백 쪽씩 읽었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10월에 나의 서가에서 집어 올린 <굴드의 물고기 책>은 단 3일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당히 재밌었다. 왜 그 때 미처 다 읽지 못했던 건지 궁금하다.

 

현재 시점에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를 찾는 부유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골동품 사기를 치는 화자 시드 해밋은 어느 날, 윌리엄 뷜로 굴드라는 영국 출신 기결수가 쓴 <물고기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책에 실린 다양하면서도 기교 넘치는 물고기 그림들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마 처음에 책을 읽을 적에 아무런 정보 없이 무턱대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9달 전의 기억들은 파편으로 존재했다. 그래서 새로 읽어야만 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중혁명으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19세기 밴디먼스랜드(오늘날의 태즈메이니아)가 공간적 배경이다. 영국 출신 윌리엄 뷜로 굴드(이하 빌리 굴드)는 지금 물고기 감방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는 간수 팝조이에게 그림을 그려 주고, 그의 묵인 아래 모종의 기록을 남긴다. 자신의 피로 때로는 갖가지 재료들을 이용해서. 우리도 현재 치열한 기억의 투쟁을 하고 있지만,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었다. 심지어 그 기록자가 사형수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본토에서 위조죄로 잡혀 1825년 7년형을 받고 태즈메이니아 세라섬에서 형을 살게 된 빌리 굴드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한 때 신대륙 미국에 건너가 조류학의 대가 장바뵈프 오듀본 아래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지 않은가. 사실 유형지에서 그림 그리는 기술이 필요할까 싶지만,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고 기록을 위한 그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미적 감상을 위해서도. 지금은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누구나 쉽게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수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문명세계를 대표하는 제국 영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문명인이었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몽주의 사조가 서구사회를 휩쓸고 있던 시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애버리진 원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순전히 과학에 근거한 인류학적 관점에서 그들의 신체를 훼손하고, 수집하는 야만에 가까운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하긴 유형수들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마당에 원주민들에게 그런 대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세라섬의 사령관 가짜 호러스 대위는 죄수들의 교화라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노바 베네치아(Nova Benezia)를 꿈꾸면서 섬의 자원들을 팔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윗대가리가 이 모양이니 수하의 부하들은 어떨지 상상에 맡기겠다. 성병을 치료하겠다고 수은에 중독된 얼굴을 가리기 위해 황금가면을 쓰고, 갖은 기행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에서 코폴라 감독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커츠 대령이 연상되기도 했다.

 

어쨌든 빌리 굴드는 섬의 또 다른 권력자 토비어스 아킬레스 렘프리어 선생에게 픽업되어 그의 하인이자 전속화가가 되어, 영국 본토의 코즈모 휠러 박사에게 제공할 물고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재밌는 건, 각장마다 등장하는 12마리의 물고기들이 제각각 등장인물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퉁퉁한 렘프리어 선생은 가시복에 비유하지 않던가. 그리고 불과 십 수 년 전에 있었던 나폴레옹 전쟁에 관련된 인물들이 무시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는데 일등공신 중의 하나였던 프로이센의 블뤼허 원수의 이름이 등장하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었던 아이티 반란의 주모자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여전히 소위 과학의 영구한 진보를 믿는다는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이 밴디먼스랜드에서 벌이는 지옥의 카니발 같은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형수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고문과 처벌은 일상적이었다. 닥터 렘프리어가 죽은 뒤, 코즈모 휠러 경에게 보내진 그의 두개골이 애버리진 원주민의 퇴화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로 채택되는 장면은 이 소설 최고의 블랙유머의 현현이었다.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과 물고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빌리 굴드의 환각인지 망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착란성 섬망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보기 좋게 물고기 감방에서 탈출해서 맷 브레이디와 호응해서 무언가 유의미한 반란의 시도를 기대해 보았지만, 소설은 나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빌리 굴드를 궁지에 몰아넣은 토비 렘프리어의 어이없는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카푸아 데스, 늙은 덴마크 서기이자 위조기록 전문가 요르겐 요르겐센과 사령관 호러스 대위까지 정말 기이한 죽음을 맞는다. 리처드 플래니건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메멘토 모리’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기록에 집착하던 빌리 굴드가 시시포스처럼 요르겐센의 비밀서고에서 발견한 기록들을 썰매에 지고 가다가 결국 모두 다 태워 버리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느낀 점이지만, 언제나 기록은 승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까.

 

<굴드의 물고기 책>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반면 소설에서 리처드 플래니건 작가가 구사하는 면면과 전개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지난 1월에 못 다한 숙제를 마친 것 같아, 기분은 후련하다. 바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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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 실종자
레알 고부 지음, 양혜진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이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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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별러 오던 카프카의 <아메리카> 그래픽노블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시 쉬면서 읽을 만한 정도의 적당한 분량이었다. 아무래도 만화다 보니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미국에 가보지 않고서도 <도그빌>이라는 미국 문화를 비판하는 걸작을 만들었는데, 1920년대의 프란프 카프카 역시 비슷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왜곡도 있고 오류도 보이는 것 같다. 그래픽노블 <아메리카>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16세의 보헤미아 출신 독일 소년이다. 고향에서 하녀의 유혹으로 스캔들이 발생하자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나 자수성가한 외삼촌 에드워드 제이컵에게 도움을 청하라며 아들을 먼 이국으로 보낸다.

 

배에서 내리다 짐을 잊은 카를은 대서양 횡단선의 화부로부터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말에 선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성공한 자신의 외삼촌 에드워드 제이컵 상원의원을 만나 초년운이 대박 터진다. 기업가 삼촌은 당장 카를에게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고, 사교계 데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호사다마라고, 삼촌을 찾은 지인 폴런더 씨의 별장 초청을 아무 생각 없이 승낙했다가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삼촌에게 퇴출명령을 받는다. 폴런더 씨의 별장에서는 그의 딸 클라라의 유혹을 받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아무런 학위도 기술도 없는 청년 카를은 이제 미지의 신대륙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떠돌이 생활 중에 만난 자칭 아일랜드인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은 카를 삶에서 두고두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요인들로 작동하게 된다. 우연히 찾은 옥시덴탈 호텔의 주방장이자 동향인 그레테 미첼바흐 여사의 도움으로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게 되면서 카를은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적절하게 맞춰 등장한 로빈슨 덕분에 호텔에서 해고된다. 경찰에 쫓기기도 한 카를은 하는 수 없이 들라마르슈가 모시는 오페라 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이 되는 수모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은 브루넬다의 귀중품과 돈을 훔쳐 달아나고 가구나 세간 따위를 팔며 근근히 지내던 카를은 브루넬다를 ‘25상사’라는 곳에 데려다 주고 새출발에 나선다. 오클라호마 자연 대극장에서 아무나 고용한다는 말을 듣고는, 까다로운 심사 끝에 서부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난다.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소개하지만 이름에서 보듯 유대인 청년 카를 로스만의 신대륙 정착기는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처음에 뉴욕의 유력한 기업가이자 정치가 삼촌 에드워드 제이컵을 만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그의 전력이 말해주듯 가족들과 인연을 끊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그런 냉혈한이었다. 조카를 그렇게 내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폴런더 씨의 초대를 반대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런 내용을 타인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를은 청년답게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도 훗날 다시 삼촌에게 의탁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부랑아 친구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이 삼촌의 회사 제이컵 주식회사를 욕할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다.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제이컵 주식회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악덕기업으로 보인다. 카를의 삶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두 친구와의 관계도 그렇다. 카를은 그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에 그들과 연을 끊었어야 하지 않을까. 카를의 선의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걸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신대륙에 이주해서 성공한 대다수의 이민자들처럼, 카를 역시 고된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 생활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상업통신문 공부를 하는 등 미래를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그를 둘러싼 주위환경이 적대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뉴욕 엘리스 섬의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이 아니라 검을 들고 있다는 장면이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외국에서 온 이주민에 대한 생래적 공포의 반영이라고 할까? 카를을 ‘검둥이(Negro)’라고 거리낌 없이 부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난 세기에 이미 고정화된 편견과 인종차별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다시 한 번 알 수가 있었다.

 

소설 <아메리카>는 원래 <실종자>라는 제목으로 1911년에서 1914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카프카 사후인 1927년에 발표되었다. <소송>, <성>과 함께 카프카 소설 삼부작 중의 한 편이다. 카프카는 수많은 많은 단편들을 썼지만, 정작 소설은 이렇게 세 편 뿐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신대륙에 도전하는 당찬 청년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반에 브루넬라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의 감시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안주했는지 모르겠다. 카프카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결말이 미완성이라 과연 카를 로스만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할 따름이다. 캐나다 출신 만화작가 레알 고부가 2013년에 그래픽노블로 제작한 것이 바로 이 책 <아메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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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12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보스턴 디비전 승리에 춤추시겠네요~^^

레삭매냐 2018-10-12 14:50   좋아요 1 | URL
영원한 숙적 양키즈를 ALDS에서 꺾어서
좋긴 한데, 영 불펜이 미덥지 않네요.

DP의 선발 투구력과 킴브럴이 아무래도
ALCS에서 대형 사고를 치지 않을까 염려
가 됩니다...

카알벨루치 2018-10-12 14:51   좋아요 1 | URL
킴브럴이 멘탈강화되서 나올지도 모르죠~ㅋㅋ보스턴 넘 쎕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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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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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리어 왕>이다. 지난 주말에 요 네스뵈가 쓴 <맥베스>로 호가스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시리즈를 접하고 삘이 온 모양이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번에는 <던바>를 빌려서 읽었다. 얼마나 재밌는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아무래도 이 시리즈의 팬이 될 모양이다.

 

요즘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이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작가지만, 영국에서는 한 자락하는 작가라고 한다. 구구절절하게 던바 트러스트라는 미디어 제국을 세운 헨리 던바가 어떻게 해서 자신의 딸인 애비게일과 메건에게 밀려났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정신 병원에서 출발한다. 올해 여든 살의 노익장을 자랑하는 캐나라 출신 헨리 던바는 야심찬 딸들에게 강제로 제국의 수장 자리에서 퇴위되어 유폐된 운명이다. 유산상속에서 내쳐진 막내딸 플로렌스만이 자신을 찾아 나선다.

 

맨체스터의 고립된 요양원에서 희극 배우 피터 워커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자신의 제국을 회복하려고 하지만, 딸들의 추적은 집요하다.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들로 구성된 추적대가 폭풍우와 폭설이 몰아치는 영국의 황무지를 누빈다. 형편 없이 추락한 처지에서 보니, 돈의 노예가 되어 성공만을 추종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만, 절망에 빠지고 요양원에서 피해망상 때문에 주입된 다량의 약물 탓인지 가끔씩 착란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에 헨리 던바는 좌절을 겪는다. 오로지 자신의 딸들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이 공들인 던바 트러스트를 인수하지 못하는 게 막는데 전력을 다한다. 플로렌스는 사랑으로 아버지를 쫓지만, 애비게일과 메건은 아버지를 다시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기 위해 추적한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진실이란 말인가.

 

양쪽 모두 충실한 조력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전자는 오랫동안 측근 변호사로 제국 건설에 일조한 윌슨과 그의 아들 크리스가 버티고 있다. 후자는 던바의 주치의이자, 두 딸의 노예 같은 존재 닥터 밥이다. 전자가 세상의 미덕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라면, 후자는 악덕의 화신이다. 닥터 밥은 두 딸이 요구하는 기괴한 성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헨리 던바를 정신 이상으로 요양원에 가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막대한 보너스와 상당한 양의 스톡옵션도 덤으로 얻었다. 문제는 던바 트러스트를 합병하려는 라이벌 유니컴에게도 정보를 흘려 양쪽을 배신했다는 점이다. 이런 악당에겐 신의나 양심 따위는 전혀 필요없다, 오로지 자신의 계좌에 찍히는 숫자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헨리 던바는 정신을 되찾은 뒤 플로렌스를 유산 상속에서 제외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게 봉사해온 윌슨을 해고한 사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왕좌를 찾기 위해 도전에 나선다. 정신 병원을 탈출했을 때, 그를 유지해준 것이 분노와 복수심이었던 것처럼 애비게일과 메건을 응징할 차례다. 문제는 이제 간신히 화해한 플로렌스를 기다리고 있는 비극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이 대가는 희극보다 비극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는 느낌이다. 왜 우리 인간들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걸까? 나이가 여든이 되어서도 손에 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속세에 미련을 둔 헨리 던바의 모습이 어찌나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수십억 달라의 재산 그리고 40만 명이나 되는 직원을 거느렸던 권력자의 말년이 얼마나 초라하게 무너졌던가. 그들이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추악한 권력 투쟁은 던바 가문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켜 버렸다. 그런데 그 원인제공자 역시 헨리 던바였다.

 

애비게일과 메건을 혹독하게 교육한다며, 계승 과정에서 제외시켰던 사건은 그대로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전 세계에 화려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면서 자신의 불륜을 합리화시켰고, 자녀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애비게일과 메건이 패륜적 악녀들로 거듭나게 된 것에 대해 그의 책임은 없었던가? 플로렌스의 진심을 몰라주고 자신이 건설한 제국에서 쫓아난 것도 결국 자신의 오판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가 던바에게 돈을 요구했던가?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천박한 자본가의 모습이 얼마나 처연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셰익스피어가 500년 전에 구성한 영국식 막장드라마의 주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온다.

 

<던바>의 말미에서 역자가 요약한 원작은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천신만고 끝에 제국을 되찾는데 성공한 던바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개인적 비극과 직면하면서 끝을 맺는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어쩌면 그렇게 현대극에 걸맞는 상황에 <리어 왕>을 집어넣었는지 경탄할 지경이다. 정신 병원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한겨울의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으로 독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기도 하고, 주인공 던바의 치명적 실수와 판단착오에 대한 회한으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에서도 그랬지만, 이 시리즈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2편을 읽었지만,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위해 호가스 관계자들이 선택한 작가들의 역량은 기대이상이었다. 다음 주자는 어떤 책으로 정할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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