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말이 없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대학출판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W.G.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제발트의 책에서 알게 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는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그런 책이 되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23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가 있어서 빌려서 읽을 수가 있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탈영병이라는 신분 덕분에, 독일 민족과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달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하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기호식품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의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한 묘사야말로 작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 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지도 모르겠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가 좀 더 전쟁 자체에 대한 고발처럼 다가왔다.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예상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라 그런지 좀 더 애착을 갖고 읽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요즘 번역과는 다른 스타일이나 표기법도 독서 진도를 원하는 대로 나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도 읽고 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책이라 그런 걸까 싶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해 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만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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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8-10-2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90년대에 안인길 교수가 뵐의 작품을 싹쓸이(?) 할 정도로 많이 번역 했죠.제가 뵐을 좋아해 거의 소장하고 있네요.밤을 새워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

레삭매냐 2018-10-29 21:35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예전 작품들을 만나려니
쉽지가 않네요.

일단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부터 하나씩
읽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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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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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북구 유럽 소설들이 인기다.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스웨덴의 프레드릭 배크만까지는 읽어 보았는데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는 또 처음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에도 그늘은 있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고령화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이 꿈꾸는 수명연장의 꿈은 실현화되었지만, 노인들이 원하는 사회가 과연 도래했을까?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체험을 한 이들이 우리들의 그것보다 욕망이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사회에서 그들을 잉여 취급하고 도태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에서는 79세 메르타 할머니가 이끄는 5인조 강도단(나중에 군나르까지 가세해서 6인조로 확대된다)은 사회의 그런 시선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털고, 장물 다이아몬드 습득하고, 은행과 국립박물관을 터는 기행을 선보인다. 물론 메르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일탈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영국의 숲 속에서 의적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운 로빈 후드와 조선의 홍길동의 후예를 자처한다. 자신들의 요양원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하지도 않는 약물과 반강제로 갇혀 지내야 했던 다른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한탕’으로 마련한 어마어마한 부를 나눠 주고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아무리 메르타 할머니의 기획력과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도구들을 직접 개발해내는 발명 천재 할아버지의 뛰어난 실력, 은행전문가 안나그레타의 해킹실력만으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곳들을 두루 터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말이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사건의 전개가 노인 강도단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해두었다. 5억 크로나(우리 돈으로 625억)를 목표로 긴장과 흥분 넘치는 한탕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노인 강도단이지만, 도중에 느닷없이 등장한 세관원에게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블롬베리 경감에게 2억 크로나를 갈취당한다. 하긴 전편에서도 한탕으로 마련한 자금을 그랜드호텔 홈통에 두는 바람에 그야말로 허탕을 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전직 선원 출신의 매력남 갈퀴 할아버지는 이웃의 점쟁이 할머니에게 빠져, 자신을 사랑하는 스티나 할머니와의 애정전선에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한다. 은행 일련번호가 매겨진 돈을 세탁하기 위해 경마장을 이용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이 양반들 이거 보통이 아닌데 그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가 구사하는 스토리 전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노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는 사회적 인식을 깨고, 그들에게 현대판 로빈 후드의 역할을 부여했다. 아무리 결단력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메르타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5인조로 구성된 노인 강도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다잡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때문에 메르타 할머니는 계속해서 “인생의 매 순간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역설적으로 국가가 모든 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사회복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게 되었노라는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 그들의 모습이 훨씬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담으로 ‘귄터 발라프 시니어 프로젝트’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지난여름 독일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잠입취재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고발했던 암행취재 전문 저널리스트 귄터 발라프의 이름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다. 노인 강도단이라는 도저히 현실에서 만나볼 수 없을 것 같은 판타지에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사회비판적 저널리스트의 이름을 매치시키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놀라운 실력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국가의 봉록을 받으면서 약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블롬베리 경감이 노인 강도단의 2억 크로나를 가로채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는 설정도 씁쓸했다. 게다가 그의 조력자가 다름 아닌 저명한 변호사라는 점도 그렇다. 정당한 법률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대행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과연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궤도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를 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는 노인 강도단이 미국에서 귀국해서 둥지를 튼 베름되 해안가 빌라의 이웃 밴드 에인절스다. 악명 높은 헬스 에인절스의 독립클럽으로 가입을 원하는 우락부락한 폭주족 톰파와 예르겐이 과시하는 미친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메르타 강도단이 보여줄 수 없는 그런 ‘피지컬’을 대신하는 행동대원이라고 해야 할까. 폭주족과 강도단의 조화도 역시 볼만하다. 사실 소설 중반에 도달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는가 싶었지만 하나하나 깔끔하게 종착점으로 인도하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혹시라도 우리의 의적들이 감옥에라도 가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나 않는지 조마조마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세관원 스벤 칼손의 집요한 추적으로 메르타 강도단의 정체가 탄로날 뻔하고, 메르타 할머니의 의협심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위기도 맞지만 능수능란하게 그야말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장면은 압도적 재미의 원천이었다. 그 이면에는 치매 걸린 할머니로 위장해서 사방에서 조여드는 감시와 포위망을 뚫는다는 노인 강도단의 의표를 찌른 역설의 미학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노인들도 젊은이들처럼 긴장과 흥분 넘치는 일단의 ‘한탕’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점을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마다의 숨은 가족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메르타 강도단, 아웃로 올디스(Outlaw oldies) 클럽의 계속될 스릴 모험의 전조를 제시한 점도 고무적이다. 메르타 할머니들의 활약을 보니, 어쩌면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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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빠! 근데 진짜 전방위적인 독서가 인정 ^^

레삭매냐 2018-10-26 13:04   좋아요 1 | URL
전방위는요... 마구잽이 독서죠 -
게다가 소설 위주의 편식쟁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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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of Beauty / Alan Hollinghurst
아름다움의 선 / 앨런 홀링허스트

드디어 창비에서 <아름다움의 선>이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올해 기다리는 네 개의 작품 중에 조지 손더스의 <링컨의 바르도>와 비슷한 시기에 나올 모양이다.

올해는 노벨문학상도 없어서 그런지 가을의 책 출간소식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아, 나머지 두 권은 은행나무에서 나올 예정이라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좀비물 <존 원> 그리고 문동의 필립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다. 후자는 작년 여름부터 나온다 나온다 하더니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지난여름에 나온다고 하더니 또 계절을 넘기고야 말았다. 해를 넘기지 말고, 이번 겨울에는 만나볼 수 있을까.

총알도 단단히 쟁여 두고 대기 중인데, 앞으로 한 열흘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새로운 책읽기도 시작하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예감.

그나저나 <아름다움의 선>은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싱글맨> 이상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홀링허스트의 신간 <스파숄트 어페어>도 조만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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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항구들 동방문학총서 1
아민 말루프 지음, 박선주 옮김 / 훗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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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달궁 모임 책으로 선정되고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작년에 사둔 책이었는데 읽다가 방치해 둔 기억이 났다. 서가의 보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오래 전에 저자 아민 말루프가 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에 읽었고, 리뷰도 남기지 않아 감상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레바논 출신으로 1976년부터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아민 말루프는 레비-스트라우스에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모국어는 아랍어인데 작품 활동은 프랑스어로 하는 아민 말루프는 터키의 마지막 술탄의 자손을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중동사를 관통하는 대하드라마를 창조해냈다.

 

소설 <동방의 항구들>1976616일 수요일, 프랑스 파리의 모처에서 화자가 과거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교과서에도 실렸던 오시안 케탑다르를 만나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설이 생기기 위해서는 항상 청자가 필요한 법이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 터키인, 그리스인, 유대인, 아랍인 그리고 아르메니아인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술탄이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던 술래이만 대제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중동의 빈사에 빠진 환자 오스만 터키는 동유럽에서 시작된 피지배 민족들의 국토회복운동으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몰락하는 중이었다. 이스탄불의 군주(술탄)는 폐위된 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군주의 딸이었던 이페트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 노박사 케탑다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이페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시안 케탑다르의 할머니였다. 귀족의 후예답게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오시안의 할아버지는 아르메니아인 친구 누바르의 딸 세실(15)과 결혼해서 둘째 오시안(1919년생)을 낳게 된다. 190946, 케탑다르 가족이 살던 터키 남부의 아다나 지방을 휩쓴 오스만 무슬림과 아르메니아 기독교계의 충돌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누바르의 가족들은 신대륙 아메리카로 떠나게 된다. 아다나 학살사건은 6년 뒤에 전 세계에 근대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알려지게 될 조직적 아르메니아 대학살(1915)에 앞선 불길한 전조였다. 케탑다르 가족도 같은 레반트 지역의 베이루트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한 때 중근동에서 패자였던 오스만 터키가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피지배민족으로 설움을 겪던 수많은 민족이 민족자결을 주장했다. 특히 터키와 종교가 다른 민족인 아르메니아인들의 독립 요구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태가 폭력적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터키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아민 말루프는 이민족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동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물론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을 도운 터키 무슬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였고, 대다수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아르메니아인들을 혹독하게 다뤘다.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데, 40년 뒤 이스라엘 독립 과정에서 벌어진 나크바(Nakba:대재앙)가 그랬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오시안은 프랑스 몽펠리에로 떠나 의학공부를 하게 된다. 1930년대 전간기의 유럽대륙은 불안 그 자체였다. 곧 이어 터진 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군의 전차부대 앞에 속수무책으로 항복하고, 이에 굴하지 않는 프랑스 국민들은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독일 점령군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외부인 오시안 케탑다르는 정의의 편에 서서, 바쿠 혹은 아바카(미래를 의미한다)라는 가명으로 레지스탕스 전사 베르트랑과 함께 활발한 저항활동을 개시한다. 프랑스 사람도 아닌 터키인 오시안이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혹한 시절에 오시안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 유대인 처녀 클라라 엠덴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유대인 절멸계획으로 모든 가족을 잃은 클라라 역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요원이었고, 오시안의 평생의 사랑이 될 전망이다. 오시안을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 친독 의용대에게 체포되는 결정적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다른 무장 레지스탕스 요원들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탈주에 성공해서 레지스탕스 잡역부의 영광스러운 활동을 이어갔다. 모두가 오시안을 칭송했지만, 영웅의 최고의 덕목이라는 겸손을 그는 직접 실천했다. 그런데 나는 왜 오시안의 이미지에서 자꾸만 포레스트 검프의 그것이 연상되는 걸까.

 

밀수업자 막내아들 살렘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오욕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오시안의 아버지와 왕녀 출신 할머니 이페트는 영웅의 귀환으로 비로소 명예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실성한 군주의 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기적적으로 미래의 이스라엘이 되는 팔레스타인으로 귀국 중이던 클라라가 오시안을 찾아오고, 둘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한 명은 아랍인(터키인)이고 다른 한 명은 유대인이라는 점이었다. 벌써부터 비극이 잉태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독립으로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기 전까지만 해도 베이루트와 하이파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케탑다르 부부가 꿈꾸던 미래의 행복은 단박에 무산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만삭의 아내 클라라를 하이파에 두고 베이루트를 찾은 오시안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다. 전쟁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자신의 자리를 노린 동생 살렘의 음모로 수십 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강제로 갇힌 정신병원에서 오시안을 버티게 해준 힘의 근원은 돌잡이 딸 나디아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존재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변질되기 쉬운 음식 같은 희망이야말로 1976620일 재회의 기쁨을 위한 연단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민 말루프는 중근동 현대사에 등장하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올라탔던 어느 남자의 거창한 일대기로 시대의 비극을 그려냈다. 아무래도 터키 출신 오시안 케탑다르가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은 소설적 핍진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 지식계를 대표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아예 이해 못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오스만 터키의 몰락, 아르메니아 대학살, 나크바, 이스라엘 독립전쟁 그리고 전화가 미친 레바논 내전에 이르는 시대의 흔적에 정면도전한 남자의 연대기는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소설의 후반에 등장하는 정신병원 시퀀스는 어쩌면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에 대한 작가의 소설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 세대 전에 그의 할머니 이페트가 폐위된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을 목도하고는 정신을 놓지 않았던가. 성인이 되어 프랑스를 거쳐 자신을 찾아온 딸을 보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은 오시안이 바깥세상을 보기 위해, 무엇보다 강제로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만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장면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레지스탕스 경력과 만능키 같이 작동하는 베르트랑과의 관계를 통해 마침내 제 2의 조국 프랑스를 찾아온 영웅의 귀환은 오디세우스의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연상시킨다.

 

오시안 케탑다르에게 레반트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근원이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을까. 아민 말루프가 자유 프랑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조금 고전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레지스탕스 신화의 완성을 위해 익명의 나레이터를 등장시키는 방법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게 된 저자의 다른 책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레반트 출신 저자의 다른 목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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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10-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자신이 레반트 출신임을 강조하던데 ‘레반트 출신‘이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말씀처럼 디아스포라와 비슷한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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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참말로 작가는 많고, 우리의 인지능력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문학도 많다는 걸 이번에 페루말 무루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에는 단 한 번 소개가 된 적이 없는 인도 타밀나두 출신 페루말 무루건 교수의 책들이 나에게는 그랬다. 간만에 들른 뉴욕타임즈 책 소개에 무루건 교수의 <마도루바간(Madhorubagan)> - 영문제목 <One Part Woman> - 이라는 영어 번역서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미국 내셔널북워드 번역서 코너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구간(2010년 발표)이 불러일으킨 화제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에 전세계 배송료 무료라는 북디파지터리(아마존 계열사다)에서 주문했다. 국내에 언제 출간될 지 모르니, 쓰담쓰담을 위해서라도 하나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어제로 만료되는 10% 할인 쿠폰이 있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자국의 문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분명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겠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만한 소재가 또 어디겠는가 말이다. 무루건 교수의 <One Part Woman>에서는 아이가 없는 부유한 카스트 계급의 여성이 아이를 갖기 위해 힌두 사원축제에서 만난 외간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루건 교수는 1세기 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힌두 극우주의자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비하한 지식인은 처단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무루건 교수에게 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협박을 시작했다.

 

무루건 교수의 고향에서는 격렬한 저항과 시위가 벌어졌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저자는 교수직 사임을 강요받았다. 급기야 2015년 1월, 자신의 독자들에게 책들을 불살라 버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저자 페루말 무루건은 죽었다”며 절필선언까지 SNS을 통해 해야 했을까. 자신이 신도 아니며, 부활에 대해 믿지도 않는다는 글도 썼다. 그냥 자신을 냅두라고 했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 걸어다니는 시체(Walking corpse)라는 표현까지 해야 했을까. 다시 한 번 문학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무래도 문학에는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갖은 협박을 받은 무루건 교수의 경우를 돌아볼 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2016년 1월, 법원은 무루건 교수의 저작들이 기소되어야 한다는 극우 힌두 그룹의 수많은 진정서들을 기각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루건 교수는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피해 있던 시기가 특히 자녀들과 부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는데, 200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지배했던 그 기간 동안, 글쓰기는 가장 깊은 레벨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과 도구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작가는 이래야 한다는 걸 무루건 교수는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페루말 무루건은 1966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티루첸고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면서 동시에 동네 극장에서 소다를 파는 부업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무루건은 어려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역방송을 타게 된 동요 가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무루건 교수는 타밀나두의 에로드에서 타밀문학을 전공했고, 타밀나두 중부에 있는 공업도시 코임바토르에서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그 뒤, 마드라스 대학에서 타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루건 교수는 1998년부터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91년 첫 번째 소설 <Rising Heat>을 발표했다.

 

박사과정 중에 무루건은 자기보다 하위 카스트 계급의 부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끝내 거부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지났지만 무루건의 친척들과 여전히 소원한 관계이며, 그의 아내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루건의 형은 가족사업인 소다업에 종사하기 위해 학교를 일찍 떠났고, 같은 병에 채워넣던 밀주에 중독됐다. 형은 42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마도루바간> 사태 이후, 무루건 교수는 자기 내부의 검열관과 치열하게 싸우게 됐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단어 하나하나에 개입해서 시험을 치른다. 물론 어떤 글도, 독자에게 오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의 검열관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무루건은 꼬마 아들과 저녁 8시에 잠에 들어다가 자정 무렵에 깨어나 가장 조용한 시간에 2~3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많은 수의 무루건 동료들은 그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어쨌던 3년 동안, 5편의 소설을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지난 시절의 혹독한 시련이 작가로서 무루건을 더욱 단련시킨 모양이다.

 


(영어로 번역된 무루건 교수가 쓴 책들)


발표된 지 3년 뒤에 영어로 번역된 <마도루바간>의 주인공은 칼리와 포나다. 십년에 걸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혹시 조상 중에 저주 받은 적이 있는지 세심하게 조사한다. 혹시 숲에서 젊은 처자를 야만적으로 다룬 조상이 있었던가? 아니면 마을 경연에서 부정을 저지른 조상이 있었나? 부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속죄 의식도 치른다. 모든 사당에 경배하고 미신에 복종한다. 하지만 인도의 그렇게 많은 신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조해진 칼리와 포나 부부에게 이웃들은 칼리가 다른 부인을 들이거나 아니면 포나가 예의 힌두사원 축제에 참가하라는 제안을 던진다. 결국 질투가 도착하고, 섹스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전개된다. 포나는 “삶을 찾으면서 우리는 우리 삶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페루말 무루건의 케이스를 살펴보면서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구나라는 점과 둘째는 인도 문화의 그것까지 삼켜 버리는 영어라는 문화권력의 실체였다. 그나저나 무루건 선생의 책의 국내번역은 요원하기만 하니 하는 수 없이 어려워도 영어책을 구해다 읽어야겠구나.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들처럼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나서서 번역하고 출간해 주면 좋겠으련만.

 

* 뉴욕타임즈 기사와 BBC 그리고 위키피디아와 인터뷰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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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아무래도 오리발, 아니 호기심이
마당발 수준이라 여기저기 기웃거리
는 분야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인도 문학이 땡기는군요.

얄리 2018-10-22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덕분에 페루말 무루건을 알게되었네요. 번역본이 나오면 참 좋으련만... 원서 주문해야겠네요. 법정까지 가게 된 작품내용이 정말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당분간 번역이 될 것 같지
않은 강렬한 예감이라 질렀습니다 -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던데...

인도 작가 중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양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8-10-22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3   좋아요 1 | URL
북디파지토리, 전세계 무료 배송이더라구요.
아마존 계열사지요.

어떤 책들은 아마존보다 비싸지만, 아무래도
무료 배송의 장점을 누릴 수 있으니깐요.

아주 드물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번역서도
다 못 읽고 있는 마당에 영어책이라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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