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 거짓일지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말
박광수 지음 / 메이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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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궁금했다. 이십여 년 전, C일보엔가 연재하던 <광수생각>을 즐겨 봐서 그랬던가. 당시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친구가 <광수생각>의 광수와 실제 광수와 차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연재읽기를 접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사랑타령은 이혼으로 빛이 바랬고, 불우이웃 돕기 역시나 자기만족적이라는 비판 때문이었을까. 환호가 냉담으로 바뀌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광수생각>의 광수는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는 힐링과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는 문구가, 특히나 인스타그램에는 넘쳐흐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에 상처를 그렇게 입고 살아가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건,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란다. 그것도 사회생활 초년기에나 가능한 일이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부양할 가족이 생기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선택지가 된다. 어제 읽은 줄리언 반스의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몰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놈의 돈 벌다 세월이 갈 판이다.

 

반세기를 살아오며 이런 저런 세상풍파를 체험한 광수 씨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졌을 때, 그에게 야구가 탈출구였던 것처럼 마음껏 자신을 소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야구가 스포츠 중에서 제법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건 알고 있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고 해도 돈이 필요한 법이라는 것이다. 아이 또 돈 타령이네...

 

야구하면 나도 한 타령할 수 있는데. 예전에 엠엘비의 보스톤 레드삭스를 열렬하게 응원했었다. 물론 지금도 팬이다. 2004년 우승의 저주를 풀기 전까지 얼마나 혹독한 시련들이 있었던가. 바로 전해인 2003 ALCS 7차전에서 영원한 숙적 양키즈의 애런 분에게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역전패당하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2018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오클랜드를 꺾은 양키즈와 다시 ALDS에서 숙명의 라이벌전을 치르게 된다고 한다. 부디 초전에 박살내 주길! 웃기는 건, 예전에 돈키스라며 돈으로 우승을 산다던 보스톤이 엠엘비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블 엠파이어(evile empire)란 별명은 이제 양키스보다 레드삭스에게 더 어울리는 별명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 보면, 상황이 역전되는 법이긴 하지.

 

자존감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에세이집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는 바로 파타야 코끼리 투어가 아니었을까. 까만 마음으로 푸켓 대신, 여성들이 득시글거릴 것으로 추정되는 파타야로 갔다가 졸지에 아이들 보모 신세로 전락하고 코끼리 트래킹에서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친구와 함께 코끼리들을 힘들게 했던 전과자들의 이야기에서 정말 빵빵 터져 버렸다. 그들을 태우기 위해 맘모스급 코끼리들이 등장하고, 가뿐하게 일어나는 동시에 엉덩이에서 볼링공만한 끙아들이 나왔다는 이야기, 흥겨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별점 이야기도 흥미롭다. 요즘 어디서고, 가성비가 최고라는 맛집투어를 하고 올라오는 사진들이 인기다. 왠지 그런 곳의 사진을 보거나, 텔레비전 방송 혹은 입소문을 들으면 가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곳들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 실망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말해 초심을 잃게 된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아무래도 줄서기와 불친절한 서비스는 기본이다. 내 돈 주고 가서 그런 곳에 가서 대접을 받는다니, 믿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나는 그런 곳은 가지 않으련다. 예전에 추운 가을바람을 맞아 가며 군산 짬뽕맛을 보겠다며 기다린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할 따름이다.

 

광수 씨와 더불어 세월을 헤쳐 오다 보니, 그 옛날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그런 기분은 들지 않더라. 한 컷의 만화로도 오랜 여운이 가는 그런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세월과 함께 다 휘발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사는지 몰랐었는데 여전히 그림 그리고 책내고 그리고 강연회도 다니는가 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제발 2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느니 하는 광고는 자제해 주시길. 사골도 고만 우려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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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05 09:19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입니다.

특히나 일관성은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장물방울 2018-10-0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의외다 했더니 역시나로.

레삭매냐 2018-10-05 09:20   좋아요 0 | URL
the class does not change, though.
 
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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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란다. 대가 줄리언 반스의 말씀이다. 근데 나는 줄리언 반스의 팬도 아니라고 하면서 꾸역꾸역 그의 작품을 읽는다. 작년에는 <시대의 소음>을 읽었었지 아마. 이것 또한 기묘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올해로 만 72세 노익장을 과시하듯 줄리언 반스는 그야말로 무르익은 필력으로 빚은 글밥을 독자에게 선사하듯 내던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19세 서식스 대학에 다니는 폴 ‘케이시’ 로버츠다.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서리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수많은 휴고들과 캐럴라인들 사이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기만과 냉소로 무장한 보수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폴은 자신의 엄마 뻘인 48세 수전 매클라우드 여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수전에게는 남편도 있고, 폴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딸들도 있다고 한다. 그 둘에게 이번 사랑은 모두 두 번째 사랑이라고 한다.

 

29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할 것인가? 줄리언 반스는 바로 그런 나이라는 위계질서가 주는 위압감에 당당하게 맞서라는 주문을 하는 게 아닐까.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 때 서로를 사랑했음을 기억하라는 대가의 조언은 정말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느낌이다. 그렇지,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순간이 없었다면 그들이 기만과 냉소적인 결혼생활에 뛰어들진 않았겠지. 당연한 말씀이다.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그놈의 시간이 사랑과 결혼에 동록이 슬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물론 때로는 치유의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도대체 수전 매클라우드가 19세 소년을 사로잡은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케이시 폴의 자전적 고백을 통해, 비슷한 또래 아가씨들을 사귀는 친구들보다 더 깊숙한 위반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 사랑에 대한 절대주의적 자신감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예상한 대로, 그들의 사랑의 전사에 암운이 끼기 시작하면서 세상경험에 일천한 케이시 폴은 수전의 친구 조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다. 입이 걸고, 에두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 조운은 사랑의 멘토로서 딱딱 떨어지는 충고를 들려준다. 그런데 진정한 충고를 하려면 자신이 먼저 상처를 입어야 한다고 했던가. 아마 조운에게도 쉽지 않은 일들이었을 것이리라.

 

케이시 폴은 결국 수전이 남편 E.P. 고든 매클라우드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사랑의 도주에 나서게 된다. 물론 그전에 테니스 클럽으로부터 석연치 않은 이유로 퇴출당하는 수모도 겪게 된다. 줄리언 반스는 영국 중산층 계급의 가정이 도처에 가지고 있는 모호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일상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 점잖아 보이는 신사 고든이 항시적으로 술에 취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케이시 폴과 수전의 관계만큼이나 사람들이 위선적인 영국의 중산층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쉽지 않은 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결국 케이시 폴과 수전은 사랑의 도주에 나선다. 수중에 일전 한 푼 없었던 케이시 폴은 수전의 도주 자금에 의존해야 했는데, 조운의 말대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밥벌이의 지겨움이 그를 전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소설 <연애의 기억>은 주인공 케이시 폴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 공부를 하는 동안, 수전은 그를 집에서 기다리면서 그렇게 혐오하던 술 다시 말해 알코올을 탐닉하게 된다. 수전의 알코올 중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케이시 폴은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로 거듭나게 된다. 자신은 항상 사랑에 진실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돌이켜 보면 케이시 폴은 처음부터 수전과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사방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가. 진실한 사랑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그네들의 상황이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소설 같지 않은 소설 <연애의 기억>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천편일률적인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정할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주변에서 모두가 만류하는 사랑을 선택한 동생이 있었다. 한 때 같이 살기도 한 동생이라,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는 오랜 고심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말이다. 아마 케이시 폴과 수전의 도주도 그와 같았던 게 아닐까.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노숙하게 된 케이시 폴이 과거의 사랑에 대해 회고하며 느낀 감정들이야말로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는 <연애의 기억>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모든 사랑에는 그들만의 사랑의 이야기가 있고, 실패한 사랑이든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도 못한 짝사랑의 경험이든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untold story)의 사연들이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반세기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슴 아린 첫사랑이 정해 버린 삶의 포로가 된 케이시 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혹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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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8-10-04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굉장히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3분의 1쯤 읽다가 그냥 덮어버렸는데요... 꾸역꾸역 읽었다는 말에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10-04 11:49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

저는 요상하게도 대부분의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더라구요.

<시대의 소음>도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참
흥미진진한 도입부와 달리 어느 새 주제가 실종
되었다고나 할까요.

<연애의 기억>도 케이시 폴과 수전의 도주까
지는 흥미로웠는데, 그 다음 순간부터는...

cyrus 2018-10-0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스의 첫 번째 소설 《메트로랜드》를 읽었을 때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재미없었다는.. ㅎㅎㅎ

레삭매냐 2018-10-04 13:13   좋아요 0 | URL
저의 감상도 그렇긴 한데,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혹시
제가 책을 읽으면서 낚아 채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게 아닌지 뭐 그런 생각
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되면
집에 모아둔 반스 씨의 책을 하나씩 읽
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Falstaff 2018-10-04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줄리언 반스 좋아하는데요, 그이 책 속에 들어있는.....이라고 오해하시는 건, 대강 반스가 작 중에서 잘난 척을 좀 많이 하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전적으로 개인 취향입지요. 지가 기껏해야 소설가밖에 더 됩니까?
이 책도 내년에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0-04 14:09   좋아요 0 | URL
확실히 그런 게 있는 것 같긴 합니다 -
잘난 척 -
아무래도 원서를 보지 않는 이상 그런 것
에 접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전사˝라는 표현이 소설에 다수 등장하는
데 영어로는 어떤 말인지 궁금하더라구요.

개인 취향,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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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연일 판을 치고 있다. 드디어 총리가 나서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할 지경이 되었다. 가짜뉴스의 해악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웃 천조국에서는 이런 가짜뉴스를 잘 활용해 대권을 거머쥔 사람도 있단다. 이름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역사상 어떠한 공직도 경험하지 못한 민간인이 최고 권력자가 된 적이 있었던가? 더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들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만든 독재자 리트머스 시험지 평가에서 트럼프는 4점 만점을 받았다는 점이다. 아니 그것만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미국은 현재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로 나뉘어져 있다. 전자는 주로 기독교 백인들이 그리고 후자는 유색인종과 이민자 그리고 진보 그룹이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정치 당파의 색깔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별 차이가 없다 보니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게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혹독한 정치보복 수준의 막말이 오가지도 않았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나라를 세운이래, 보이지 않는 규범이 올바르게 작동해온 결과다. 문제는 공화당 티파티 인사들이 대거 하원에 진출하면서부터 암묵적으로 지켜져온 미국 정치 전통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도 처음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의 친인척들의 등용도 알아서 자제해온 전통을 자랑한다. 대통령 행정명령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의 45대 대통령은 그런 전통과 규범을 가볍게 무시했다. 워터게이트로 임기 도중에 사임한 닉슨 같은 대통령도 자신에게 적대적 언론을 상대하는데 있어 금도를 지켰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들과 전쟁을 선포했다. 물론 그의 의중에는 어차피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는 중도나 진보세력 대신 집토끼만을 상대하겠다는 전략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미국이 분열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남북전쟁을 치른 후, 남부의 민주당은 대거 선거권을 얻게 된 흑인들을 선거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1965년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으로 다시금은 온전한 투표권이 그들에게 부여된 뒤에는 공화당이 백 년 전 수법을 그대로 이식해서 따라하고 있는 중이다. 교묘한 선거구 조정으로 다수 흑인들을 밀집시키는 전형적인 게리맨더링 전술로 민주당 당선이 유력한 선거구를 빼앗는데 성공했다. 선거를 위한 신분확인을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백인들에 비해 운전면허증 같은 신분증이 없는 유색인종의 표를 잠식하고 있다. 트럼프의 가짜뉴스 전략을 본떠서 지난 대선 당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는 근거 없는 소식들을 유포시켜, 공화당 지지자들을 강력하게 응집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책은 분명히 병들어 가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가 아니라 미국식 민주주의의 종언에 대한 분석이다. 세계 민주주의의 롤모델이라고 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불만은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부에 대해 미국 주류 지식인의 비판적 시각이다. 어느 정권도 모든 정책을 성공시킬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미국의 정책들이 모두 성공했던가? 지엽적인 이슈들로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를 포퓰리스트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조지 W. 부시가 열정적인 민주주의자였다는 주장만큼이나 우습게 들렸다. 믿을 수가 없다, 부시가 열정적 민주주의자였다니.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대통령 간접선거 제도의 병폐가 부시와 앨 고어 그리고 지난 번 대선에서처럼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개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민의의 왜곡이 아니던가. 직접선거제였다면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어야 할 텐데 지금 백악관의 주인은 누구인가 말이다.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엘리트 정당인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 앞장 서야 한다고 하지만, 작금의 공화당 인사들이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악마와도 손을 잡을 형국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문제점이 있는 인사가 집권자가 되었을 때, 견제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얼마 전 작고한 공화당의 존 매케인 의원이 암투병 중에도 먼 거리를 날아와 트럼프가 야심차게 추진한 오바마케어 무산을 위한 법안에 반대한 장면 하나가 기억났다. 여론에 떠밀려 대통령의 거수기가 된 공화당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저자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게 강조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 같은 선의에 의한 규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문제는 그런 제도들은 전혀 물리적 강제성을 지니고 않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게리맨더링 같이 악랄하고 비열한 전술로 민주당의 손발을 묶는데, 그들과 같은 전술로 되받아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물론 강경투쟁으로 맞상대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아무리 자당에서 선출된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판단이 든다면 1940년대 연방대법원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던 FDR에게 저항했던 민주당 의원들 같은 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미국 중간선거(11월 6일)가 다음 달로 다가왔다. 명백하게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지니는 이번 선거에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지난 대선 당시 동시에 치러진 의원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은 상원은 유지하겠지만, 하원에서는 민주당에게 다수 의석을 빼앗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다고 해서 민주당이 섣불리 러시아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를 탄핵하는 어리석은 수를 쓰지 말 것을 저자들은 주문한다. 상대 진영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경제호황 중에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대신 다민족 민주주의 역량 강화와 경제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개발의 위대한 전진이야말로 시대적 요청이라고 결말을 짓는다. 과연 미국 공화당이 티파티 극우세력과 결별하고 종래의 정치적 건강성을 회복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보루로 거듭나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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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책읽는 계절, 여름이 지나고 독서 페이스가 떨어져 버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중구난방 책읽기는 계속된다. 일단 수년 전에 사두었지만 읽지 않고 끝까지 버티었던,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두 권을 읽었다. 그런데 왜 그 시절에 그 책을 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니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간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아주 재밌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더 바랄 게 없었더라는.

 

KSA의 가상현실도시 같은 진짜 도시에서의 삶을 그린 데이브 에거스의 소설도 인상적이었다.

 

빔 벤더스의 사진집 <한번은>을 읽고 나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기 시작했는데 딱 절반 가량 보고 나서 아직 마저 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언제나 다 보게 될런지.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마오쩌둥 평전은 너무 평이해서 기대만 못했다. 절판된 책이라 오래 찾아 헤맸건만 기대만 못하더라.

 

어쩌구 저쩌구 해도 역시 9월에 내가 만난 최고의 작가는 바로 아리엘 도르프만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45주기를 맞이하야, 지근거리에서 대통령과 칠레혁명을 직접 체험한 도르프만의 육성 증언은 정말 값진 발견이었다.

 

희극 <죽음과 소녀>도 인상적이었지만, 자신의 회고록 <남을 향하고 북을 바라보다>는 정말 최고였다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지경이다.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거의 다 읽었는데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아, 줄리언 반스의 신간도 빨랑 읽어야 하는데...

 

이달에는 레이철 카슨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으려고 지난주에 무려 3권이나 사들였다. 대표작 <침묵의 봄>은 이미 읽기 시작했다.

 

이달의 독서모임책 아민 말루프의 <동방의 항구들>(예전에 사서 65쪽까지 읽다 말았다)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단박에 100쪽 그러니까 1/3을 돌파했다. 역시 책은 완독하게 되는 시기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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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0-01 1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독서의 계절이 되면... 책 읽는 시간이 적어지고 자꾸 밖으로 나가게 되더라구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18-10-01 17:58   좋아요 0 | URL
네 정답입니다 !~

그동안의 패턴을 보면 전 여름에 가장
책을 많이 읽더라구요. 날 좋으면 밖
으로 고고씽 !

cyrus 2018-10-01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소설을 읽어야겠어요. 딱딱한 내용의 책만 계속 읽으니까 리딩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10-01 20:07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 브로의 인문지식의 편람은 대단
합니다 ~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라고나 할
까요.

저같은 편식쟁이로스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달에는 그래서 레이철 카슨을 좀 읽어
볼까 합니다.

2018-10-01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02 08:12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요... 그저 읽는 대로 읽고
있는 걸요 :>
 
신의 대리인, 메슈바
권무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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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성교회 세습 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예장합동 교단측 장자라고 할 수 있는 메가처치에서 세습불가 교단 헌법을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행히 총회에서 재심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웠다. 500년 전 루터가 타락한 중세교회에 대한 작심하고 비판을 시작한 이래, 작금의 한국 교회처럼 영적으로 타락한 교계가 존재했을까 싶을 정도다. 권무언 작가는 소설 <신의 대리인 메슈바>로 이건 자신들만 모르는 인지부조화의 단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대신 성장일변도와 물신주의로 무장한 한국 교계에 대한 ‘비판 종합선물세트’를 제시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여느 목회자처럼 메가처치 대성교회의 명수창 목사 역시 개척교회 당시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보듬은 그런 선한 목자였다. 미국인 목사 스미스의 설교에서 어느날 영감을 얻은 명수창은 기괴한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의 확산에 나선다. 메가처치의 첫 단계인 대성전 건축이 그 시발이었다. 그의 옆에서 수석 재무장로 김일국이 충실하게 조력을 다했다. 문제는 SO(Special Offering)라는 방식의 어림짐작으로 천억대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말씀의 전파 대신 재물에 눈이 먼 목사와 일단의 장로들은 교인들로부터 갖은 항목의 헌금으로 은퇴 후를 위한 막대한 비자금 조성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김일국 장로가 섣부른 투자에 나섰다가 원금까지 까먹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교회의 최고권력자 명수창이 이를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결국 김일국 장로를 ‘횡령’이라는 죄목으로 옭아매고 압박한 결과, 그는 “새벽의 아들 메슈바”라는 알쏭달쏭한 메모를 남기고 투신하기에 이른다.

 

사건을 파헤치는 민완기자 역에 우종건을 배치한 작가는 미래의 목사 양성을 담당하는 신학대 교수이자 루터신학의 권위자 이건호를 배치한다. 사회부 기자 우종건이 제보를 바탕으로 김일국 장로사건을 파고 들어오자, 대성교회는 정말 세속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우선 사실을 부인하고, 세속법에 따라 우 기자를 고소 고발한다. 이 때만 해도 늦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투명한 재정시스템 대신 담임목사의 명예실추만은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교회 재판계 불패를 기록 중인 전담 법무법인 로직스를 동원해서 어처구니없는 ‘영적 전쟁’에 나선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회장에서 집중되는 교회 내의 권력의 비정상적인 행사와 감시의 부재가 결국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파국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건호 교수가 지적하는 대로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는 대신, 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청빈과 검약 대신 물신 맘몬을 추구하는 영악하고 교묘하게 설계된 설교를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후과가 작금의 사태의 단초가 되었던 게 아닐까. 물론 자신의 열정과 노고를 바친 교회가 성장한 뒤에 미련 없이 새로운 사역을 위해 떠나는 정직한 목사들도 있지만, 극히 일부일 따름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피를 키워 건강한 영혼의 추수보다 재물의 추수에만 급급한 다수 목사와 그들의 공동 정범들이 한국 기독계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라는 사실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소설에서 새벽의 아들이자 메슈바로 등장하는 명수창이 처음부터 그런 악당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골마을 출신의 변변치 않은 학력과 배경을 가진 그에게도 한 때는 모세와 요셉의 시간이 있지 않았던가. 개척교회를 하던 초기 시절만 해도, 그야말로 영성 넘치던 훌륭한 사역자로 칭송받던 그는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점점 더 루시퍼의 유혹에 빠져 들었고, 어느 순간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을 한국 기독교의 원죄에 대입한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라는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한 후과가 지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교계 지도자였던 김현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공허한 주장을 거듭한다. 물론, 신사참배는 기독교의 제1계명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절대 굴하지 않고 옥살이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이건호 교수의 부친 이원준 목사 같은 이도 있었다. 물론 소수였기 때문에, 다수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말이다.

 

교인들이 갹출한 헌금에서 명분 없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부자세습을 시도하는 메가처치 지도자들에게서 기독교 정신이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대성전 건축을 통한 몸피 불리기가 신의 축복이라는 주장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나마 명수창의 세습에 끝까지 반대하는 박세운 목사와 파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건호 교수 같은 이들의 모습에서 중세 엄혹한 시절에 교황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비텐베르크의 수도사 루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룡이 왜 멸종되었느냐고 묻는 손자 득세의 질문에 대답하는 새벽의 아들 메슈바의 대답에 어쩌면 역설의 진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려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라 무조건 직진만 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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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02 08:13   좋아요 0 | URL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모습
으로 사람들에게 따르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교인감소에 대한 원인을 모르니 앞으
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될 거라고 생
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