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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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신간 <비바, 제인>에 앞서 개브리얼 제인 작가의 <섬에 있는 서점>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수년째 지속되고 달궁 독서모임을 뜨겁게 달군 <섬에 있는 서점>은 재밌으면서도 또 핍진성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도출한 그런 책이 아니었던가.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탐 드루리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미국의 대도시가 아니라 어쩌면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미국적인 이야기들을 직조해내는 소설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의 출발점은 올해 64세의 레이철 셔피로의 온라인 데이트다. 제빈 작가의 소설적 장치 배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그것은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구성의 전개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 자락 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주목 하시라. 심장전문의 닥터 마이크 그로스먼과 이혼한 전직 유대인 학교 교장 선생님은 노년의 싱글 라이프를 아주 여유롭게 즐기고 계신 중이다. 절친 로즈 호로위츠의 유리남 남편이 껄떡일 때도 있지만, 지혜롭게 넘기는 능력도 발휘해 주신다. 그녀의 어머니와 미미 이모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어머니는 평생 독일에서 만든 제품은 사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저항한다.

 

여기서 문제 돌발, 그녀의 딸 아비바 그로스먼이 출현할 차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이애리 출신 멋쟁이 하원의원 에런 레빈과 바람이 난 것이다. 미래의 정치인 지망생인 아비바는 예전 이웃인 레빈 의원실의 무보수 인턴으로 지원했다가 그만 그런 사단이 나고 말았다. 그냥 조용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 불행은 항상 홀로 오는 법이 없다는 식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전도유망하고 미남 하원의원의 섹스 스캔들은 전국적 이슈가 되었고, 아비바가 재미로 쓰던 블로그는 성지가 되고 그야말로 스티그마타가 되어 버린다.

 

소설 <비바, 제인>에는 모두 5개의 시선이 등장하는데 눈치 빠른 독자라면 원제 <Young Jane Young>에서 언급하는 제인 영이 과연 누구일지 벌써 알아챘을 지도 모르겠다. 싱글맘으로 플로리다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멀어 보이는 메인 주의 앨리슨 스프링스에서 랍스터 롤을 즐기는 제인 영과 그의 딸 루비가 등판할 순서다. 행사 기획자이자 웨딩 플래너로 활동 중인 제인 영이 바로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세탁하고 새롭게 거듭난 아비바 그로스먼이었다. 어쩌면 개브리얼 제빈 작가는 가장 페미니스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페미니즘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아비바의 할머니, 커리어 우먼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엄마 레이철 셔피로와 아비바/제인 영 그리고 루비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세상을 향한 투쟁은 그야말로 부단하기 그지없다. 제인 영이 한 때 자신의 손님이었던 전형적 꼰대 웨스 웨스트의 시장 선출을 저지하고자 지역 유지 모건 부인의 지원 아래 어쩌면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날 지도 모를 그런 위험한 시장 선거에 뛰어드는 결정은 참으로 담대했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어서, 십대 소녀 루비가 구글링을 통해 자기 엄마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생부라고 믿는 레빈 의원을 찾아가는 장면은 일종의 클리셰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철부지 인턴의 불장난 혹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잘 나가는 하원의원을 파멸시키려는 꽃뱀으로 모는 시선도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위 말하는 슬럿 셰이밍이라는 비겁한 방식으로 가족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아비바 편에 서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정치학을 전공한 여성의 커리어는 산산조각이 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멀리 메인에서 할머니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야 했다. 그것도 싱글맘이라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제인 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만든 아비바는 세상의 모든 편견과 맞서 싸워야했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진행형이다.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시선과 캐릭터는 바로 에런 레빈의 아내이자 여걸 변호사 엠베스였다. 그녀는 여느 정치인의 아내처럼, 남편의 바람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펼쳐야만 했다. 그 결과 정치인 레빈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20년 동안 10선 의원이라는 정치적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남편 에런 레빈은 인간적으로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 인턴과 바람난 그로스먼같은 인간이지만, 정치적으로 탁월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노라고 엠베스는 고백한다. 문제는 그런 어마무시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않는 앵무새 엘 메테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것이다. 엠베스 여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레빈 의원의 선거를 한 방에 날려버릴 지도 모를 루비의 출현에 대처하는 장면은 확실히 지난 미국 대선에 나섰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연상시켰다. 아니 어쩌면 엠베스 여사의 모델이 바로 그 이가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실이 어쩌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게 아닐까.

 

원래 <비바, 제인>은 추석 때 읽을 계획이었는데 읽다 보니 추석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뭐 프리-추석용 독서로도 제격이었지 싶다. 그렇게 시간을 번 나는 추석 때는 다른 책을 읽게 됐다. 우리가 언제 읽을 책이 없어서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읽은 시간이 없어서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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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2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 어디십니까? ㅋ 명절 잘 쇠시고 책 보신다고 밤 새지 마시공 ^________^*

레삭매냐 2018-09-23 10:51   좋아요 0 | URL
집에서 얌전히 쉬고 있습니다...

책도 안 땡기고, 그냥 저냥이네요.

이번 추석에는 줄리언 반스의 신작
정도 읽고, 9월의 작가라고 공언하고
한 권도 읽지 못한 아리엘 도르프만
의 책 정도 있으면 만족할 듯 합니다.
 

 

인류 / 로베르 앙텔므

 

오래전부터 중고서점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로베르 앙텔므의 <인류>.

 

3년 전에 나온 책이었는데, 기다린 끝에 마침내 수중에 넣을 수가 있었다.

 


1937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독일 내 최대 강제수용소였던 튀링겐 주 바이마르 시 외곽에 위치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로베르 앙텔므의 기록이 바로 그의 유일한 저작 <인류>다.

 

2차세계대전 말엽,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앙텔므는 체포되어 부헨발트로 이송되었다. 다행인지 부헨발트는 폴란드 땅에 있던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수용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용소 내의 인권 상황은 아우슈비츠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치 친위대는 정치범인 로베르 앙텔므와 동료들을 독일 형사범들과 함께 수용했다. 수용소내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그들에게 친위대원은 가히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생사여탈을 마음 대로 정할 수 있는.

 

부헨발트 수용소를 검색하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는데,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이 전쟁 기간 동안 나치 독일이 절멸수용소에서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영화로 보여 주니, 대다수 독일 사람들이 연합군의 조작이라며 관람을 거부했다고 했던가. 결국 부헨발트 수용소로 도보로 걷게 해서 현장을 보여준 뒤에야 비로소 진실을 접할 수가 있었다는 장면에서는 가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로베르 앙텔므는 <인류> 한 권으로 프리모 레비의 그것과 더불어 증언문학의 기념비적인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부터 거북이걸음으로 읽어 볼 계획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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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9-18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을 기다리신건가요? 대단!! ^^ 제노사이드, 수용소 관련 책들은 두께와 상관없이 정말 느리게 느리게 읽히더라구요.ㅜ.ㅜ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요 책은 몰랐는데 보관함에 넣어둬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9-19 09:22   좋아요 0 | URL
아니 나온 다음에 3년이나 기다린 것은 아니구요...
한 몇 개월된 것 같아요. 기다리고 있었죠 !

네 말씀대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네요. 사실 그렇게
술술 읽히는 책도 아니구요. 그래도 오래 기다린 책
이라 꾸준히 읽어 보려고 합니다.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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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중국 역사 서술을 좋아한다. 국내에 소개된 저작들을 하나씩 차례로 읽고 있는 중이다. 서구인의 시선으로 본 중국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같은 동양인이 보는 것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중국 혁명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오쩌둥에 대한 평전을 읽었다.

 

이미 프랑크 디쾨터가 저술한 중국혁명 삼부작 중 첫 번째 권과 에드거 스노우의 저작을 읽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 중국 혁명에 대한 개관 정도는 익히 알고 있어 진도가 쉽게 나갔다. 청조 말엽 후난성에서 중농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마오쩌둥은 예전 같으면 왕조교체기라 불릴 만한 격변의 시대를 살아야했다. 예전 같으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의 이행기였겠지만, 이번에는 성격이 좀 달랐다. 수천년 동안 맥을 이어온 전제군주정치 대신 쑨원이 이끄는 혁명세력에 의해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설 차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교체는 쉽지 않았다. 위안스카이로 대변되는 막강한 군벌들이 쉽게 민주세력에게 기득권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청년 시절 마오쩌둥은 혁명의 깃발을 보기 좋게 올렸다가 반동 세력에게 동지들이 참수당하는 허무한 결과를 목도하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너선 스펜스는 책에서 마오쩌둥이 결코 지식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적고 있다. 글을 읽고 쓸 줄은 알았지만, 기존의 사대부들처럼 과거를 위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다른 혁명 동지들처럼(저우언라이, 덩샤오핑) 해외로 나가 견문을 쌓지도 못했다. 대신 마오쩌둥은 후난성의 중심지 창사에서 중국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민들의 참담한 일상을 보면서, 소련의 볼셰비키들이 교조로 받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노동자 중심의 혁명이 중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다.

 

1920년 중국공산당 창당 과정에서도 마오쩌둥이 한 일이 전혀 없다는 것도 훗날 그의 약점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사실상 중국 공산당 창당의 주역은 천두슈와 리다자오 같은 이데올로그들이었다. 그들은 레닌 코민테른의 지시에 충실했다. 사실상 공산당의 자금줄은 러시아 레닌의 볼셰비키들이 도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전에 마오쩌둥은 고향을 떠나 스승이 재직 중인 베이징으로 가서 신문물을 접하기도 했는데 사서 보조원이라는 한직에 종사하기도 했다. 수도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미래의 불세출의 공산주의 지도자는 낙향해서 서점을 내고, 지역 교육에 매진했다. 그의 꿈이 한 때는 기자와 교육자였다고 했던가.

 

제국주의 외침과 쑨원의 뒤를 이어 국부군의 지도자가 된 장제스와 대결은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와도 같은 투쟁의 시발점이었다. 코민테른은 공산당 창당 초기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공산당원들에게 국민당에 가입해서 통일전선 전술을 시행하라는 교시를 내린다. 이렇게 이루어진 1차 국공합작으로 장제스의 국민당은 중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이 때부터 장제스는 공산당을 정치 파트너가 아닌 숙명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토사구팽이라고 중원통일이라는 목적을 이루고 나자, 장제스는 다음의 적으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아니라 공산당을 지목하고 토벌전에 나선다. 그렇게 국부군의 토벌을 피해 시작된 대장정은 중국 공산당에게 일대 기회가 되었다. 사실상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부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당해 내지 못해 중국 남부 도처에 산재해 있던 장시 소비에트, 루이진 소비에트 등으로부터 퇴출된 공산당들은 옌안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고, 토굴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국부군과 공산당이 합작해서 외세(일본의 침략)에 대항해야 한다는 민족해방 이슈가 급부상 중이었다. 둥베이 군벌 출신 장쉐량이 일으킨 시안사건으로 억류된 장제스는 마침내 공산당과 손을 잡고 항일전에 나서게 된다. 이 사건이야말로 중국 혁명에서 결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내용은 에드가 스노우가 자신의 저작 <중국의 붉은 별>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가. 일개 지방 공산당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대장정 중에 있었던 쭌이회의에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게릴라전이 중국 혁명에 가장 알맞은 방식이라는 자신의 종래 주장을 관철시키고 마침내 권력의 중앙부에 진압하게 된다.

 

문제는 그전까지만 해도 나름 개혁적 성향을 가진 혁명가였지만, 옌안 시절을 거치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캉성이 이끄는 보안 조직은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 세력을 가차 없이 숙청했다. 소련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유학파들 역시 더 이상 마오쩌둥의 정적이 될 수 없었다. 십수년에 걸친 전란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공산당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데 성공했고, 극동에 개입한 소련군은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면서 노획한 무기와 전략물자들을 홍군에게 전달했다. 무주공산이 된 만주 지역을 중국 공산당이 선점한 마오쩌둥의 결정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이후의 사태는 모두가 알다시피 승승장구하는 홍군을 막지 못한 장제스 국부군의 참담한 타이완 패퇴였다.

 

그러나 중국 혁명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마오쩌둥은 성공한 혁명가이긴 했지만, 통치에서는 실패한 정치가였다. 류사오치나 덩샤오핑, 팽더화이 같이 유능한 참모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이용한 개혁에는 실패했다. 독재군주의 자리에 오른 독재자는 일절의 비판과 반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1950년대 대약진운동과 1960년대 문화대혁명은 중국 역사에서 오점이었다. 농촌의 잉여를 도시노동자에게 제공해서 서방 세계를 따라 잡겠다는 마오쩌둥의 정책은 판타지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에 스탈린의 사주를 받아 개입하면서 세계 패권국가 미국을 상대로 대등하게 전쟁을 치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소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카피한 경제정책의 시행에 나선다. 문제는 혁명 시절과 달리 중국 인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구상한 인민공사의 효율성은 지극히 낮았고, 연달아 중국 대륙을 덮인 기근과 홍수로 농업생산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중국 인민들은 대재앙을 맞게 되었다.

 

전제군주 시절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혁명가는 노회한 정치가가 되어, 오로지 권력투쟁에만 관심을 쏟았다. 자신에게 반기를 든 혁명 동지 펑더화이는 물론이고, 인민일보 편집장이었던 덩퉈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충성했던 덩샤오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서파관과 조반유리라는 엉성한 이유로 홍위병들에 의한 친위쿠데타가 시작되면서,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미 스탈린의 죽음으로 시작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스탈린 격하운동은 주석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마오숭배가 중국 인민들에게는 먹혀들지 몰라도 서구의 경제 문화 파트너들에게는 조롱거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선전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수의 인민들이 기아로 죽고, 십대소년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이 기존의 가치들과 질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폭력적인 현실을 서구인들이 어떻게 보았을까.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던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로 하방되어 있던 덩샤오핑을 중앙으로 복귀시키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혁명 지도자로서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았던 사생활에 대해서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은 채 진행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국지전을 치르기도 했던 마오쩌둥은 데탕트를 맞이해서 미국과의 수교를 진행한다. 세계 정치무대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맹방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노회한 혁명가를 방문한 닉슨과 키신저가 마오의 저작을 인용하며 최대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닉슨과 키신저 같은 배포가 과연 있을까? 상대방이 가진 유일한 카드를 무조건 포기하고, 과거에 대해 사과하라는 압박이 최고의 방법이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르고 있는 걸까.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을 읽는 동안,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준비한 행간이 너무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중국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중점을 맞추다 보니, 상세한 디테일은 제외하고 진행했다고 해야 할까. 미시적인 역사 서술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한 거장의 거시적 접근도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마오쩌둥이 경제개발 정책을 수립하면서 치명적인 실패를 하지 않고 순탄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문화대혁명 같이 중국의 발전을 한 세대 이상 역진시킨 어처구니없는 반동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또 다른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봐온 지도자의 모습과는 달리 어쩌면 마오쩌둥을 점점 닮아가는 새로운 지도자의 부상이 미래의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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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16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품절이어서 다시 출간될 수도 있겠지만, 2003년의 책이라서 새로 출간되기 전에는 만나기 어려운 책이 될 수도 있겠네요.
레삭매냐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일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8-09-16 21:55   좋아요 1 | URL
주말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려 꿀꿀한
저녁이네요...

<무질서의 지배자>는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라 한동안 찾아 헤맸네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볼 수도 있지만 왠지 소장각이라.

부담 없이 보기 좋은 개론서 같습니다.
 
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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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말만 들어도 설레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를 봤든 보지 않았든 말이다. <파리, 텍사스> 그리고 <베를린 천사의 시>. 전자는 아무래도 보지 않은 것 같고, 후자는 오래 전 하바드 스퀘어의 브래틀 시어터에서 봤다. 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우리말도 아닌 영어 자막으로 봐서 그래서였을까, 그냥 고단하고 피로한 일상에 젖어서였을까.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렇게 영화를 찾아 보러 다니곤 했던 것 같다. 아마 어쩌면 나의 예술영화 순례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로 종말을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투항했다.

 

빔 벤더스는 이미 나이 40세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 중에는 내가 한 때 좋아하던 마틴 스코시지와 이사벨라 로셀리니, 구로사와 아키라 그리고 레드삭스와 양키즈를 보러 간 니콜라스 레이 감독이 등장한다. 그들과 친분이 없다면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덤비는 벰더스에게 기꺼이 피사체가 되려고 했을까. 가뜩이나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인들에게는 아마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벤더스에게는 그런 셀럽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그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벤더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런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다. 오래 전 랑콤 화장품 모델이었던 이사벨라 로셀리니만한 품격과 고혹한 아우라를 보여준 모델이 또 있었던가.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미국 영화의 전설들이 차례로 그의 카메라에 제물이 되어 등장한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데니스 호퍼는 또 어떤가. 니콜라스 레이 감독과 뉴욕에서 당구를 치는 장면도 멋지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 시절의 일이겠지. 디지털 사진에는 왜 그렇게 정감이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천상 구닥다리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올드스쿨 스타일인가 보다. 베니스 극장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와 마이클 포웰의 뒷모습을 찍으면서 그들의 머리에는 그들이 만든 영화보다 더 많은 이미지와 아이디어들로 가득할 거라고 추측했던가. 긴 글보다 순착을 포착해낸 사진에 붙이는 이런 아포리즘 같은 글들이 때로는 더 인상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울림도 상대적으로 길다.

 

뉴욕에서는 자신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각본을 맡은 친구 페터 한트케를 만났다지. 몬태나 주 뷰트에서는 절망에 가득차서 자신들의 집에 불을 지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읽었다. 어느 소설에선가 뷰트라는 도시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정말 천국보다 낯선 도시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 옆에 있는 도시의 이름은 아나콘다라고 한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나도 가봤던 호주의 에어즈락과 울룰루에 대한 사진들을 보니 반가웠다. 그래 그 때 에어즈락에 오를 적에는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길을 따라 올라갔더랬지.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는 평생 소원이었던 에어즈락에 오르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지. 슬프면서도 이야기였었는데, 이십대의 한창 팔팔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시면 산에 오르시지 마시지... 어쩌면 그 어르신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을 지도. 아, 내가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가장 흥미로운 사진도 호주에서 벤더스 감독이 찍은 사진이었다. 나무에 맥주병을 잔뜩 걸어 놓은. 그야말로 행위예술의 극치가 아니던가. 인생과 술을 소비하고 남은 잔재로 만든 행위예술의 정수,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나.

 

서퍼들의 천국이 된 발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발리의 중심이라는 덴파사르에서 그가 연작처럼 찍은 비 내리는 동안의 소녀에 대한 사진은 왠지 모를 서구인의 시선으로 본 신비롭고 영험한 오리엔탈리즘의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확실히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같은 피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다르게 포착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커스 구경을 하고 싶지만, 500루피 750루피가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쇠철판으로 두른 틈새로 구경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벤더스는 추적한다. 또 어떨 때는 피사체를 사로잡는 사진가를 찍기도, 그리고 그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잡으려고 했던 피사체를 그대로 따라 찍기도 한다.

 

 

<한번은>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진 찍기 포인트는 아무래도 텍사스가 아닐까. 뉴욕 한복판에서 만난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해리 딘 스탠턴은 여전히 영화 속 텍사스의 황무지를 방황하는 주인공 트래비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장과 리무진으로 무장했어도, 떠돌이 역할을 맡은 트래비스의 이미지가 그대로 시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짐 자무시의 시네마틱 페르소나 존 루리의 격정적인 키쓰 씬은 또 어떤가. 이제는 공룡처럼 멸종해 가는 나이든 카우보이 모자를 쓴 텍사스 노인장에 대한 벤더스의 묘사도 일품이다. 그리고 슬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어려서 본 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는 홍길동 같은 의적에 가까웠는데, 나이 들고 다시 보니 불한당이나 깡패의 그것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론 코빅이라는 작가가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7월 4일생>의 원작자라는 사실도 벤더스의 사진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영화 속의 탐 크루즈처럼 베트남전에서 부상당한 해병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도. 그런데 당구 실력은 사지가 멀쩡한 벤더스보다 훨씬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들은 내기 당구를 쳤고, 벤더스 감독은 많은 돈을 잃었단다. 뭐 세상은 그렇게 가는 거지.

 

 

광활한 호주땅에서 로드킬한 왈라비의 사진은 48시간 이상을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달려 애들레이드에서 에어즈락을 가던 길에 익숙하게 본 모습이었지. 그 시절이 좀 그립군.

 

[뱀다리] 이번 주말에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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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9-15 0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연당하고.. 소극장에서(멀티플렉스가 들어오기 전 제가 사는 도시엔 재개봉 혹은 예술영화를 상영해주는 소극장들이 몇 있었어요) 혼자 봤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 말로 정말 힐링되었던 영화였어요. 아이가 아이였을 때.. 그 뒤가 기억이 안나니 저도 한번 더 봐야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09-15 14:42   좋아요 1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는 영화였군요...

전 보기는 했는데(확실히!!!) 흑백영화
라는 점 그리고 두 명의 천사 +
형사 콜롬보 아저씨가 나온다는 것
밖에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네요.

나중에 할리우드에서 시티 오브 에인절
인가하는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는데
희대의 망작이 되었노라는.
 

감상일 :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스타워즈 팬이다. 나온 시리즈들을 망작이라는 <라스트 제다이> 빼고는 모두 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리지널 만한 작품이 없는 것 같다. 나머지 외전들까지 포함해서 봐도. 조지 루카스의 마법이 40년이 흘러 기존 팬들 외에 새로운 팬들을 영입하지 못하는 걸가. 블로그에 올라온 리뷰들을 검색해 보니, 그저그런 SF영화로 보는 시선들이 다수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시간은 흘렀고, 스타워즈 새가에 대해 생소한 이들은 오리지널 시리즈부터 다 봐야 하는지 묻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런 것 같다.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처럼, 스타워즈 새가의 팬들도 영화가 발표되면서 성장하고 진화하게 된 게 아닐까. 아무래도 앞으로의 전망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이 다루던 시절과 지금은 너무도 달라졌으니 말이다.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디즈니에서는 어쨌든 과거의 영광을 발판 삼아 향수에 젖은 팬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찍어내고 있는 중이다. 스핀오프 <로그 원>에 이어 이번에는 스타워즈 새가 최고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헌 솔로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로그 원>에서 막판 깡패 다스 베이더의 등장으로 모든 게 한 방에 해결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오래 전 해리슨 포드가 맡았던 헌 솔로 솔로로 영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스핀오프에서는 왜 스타워즈 새가 갤럭시 화 화 어웨이~ 흐르는 자막이 등장하지 않는 거지. 오리지널에 대한 예우일까? 궁금했다. 임페리얼 아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 젊은 날의 헌이 주인공이다.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하이퍼퓨엘의 원료 코악시움이 중요한 시대다. 돈 대신 크레딧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근데 난 왜 갑자기 뜬금없이 가상화폐와 유러가 생각나는 거지. 전 세계를 아우르는 화폐라는 개념에서는 크레딧, 그리고 통합화폐라는 점에서는 유러화가 생각났다.

 

코렐리아 행성에 살면서 미래의 파일럿의 꿈을 꾸며 사는 헌과 여자친구 키라(그렇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애인 레이아 공주 이전에 첫사랑 키라가 있었다!)는 소년 갱단의 일원으로 코악시움을 탈취해서 지긋지긋한 행성을 떠날 궁리를 한다. 헌은 가까스로 손에 넣은 코악시움을 가지고 키라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추격자들에게 키라가 잡히고 자신만 떠나게 된다. 추격을 피하기 위해 제국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 때 솔로라는 성을 얻게 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떠돌이 모험가의 일생이 시작된 것이다.

 

원래 제국군 해군 비행사를 지행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고 땅개로 전쟁에 참전해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언젠가 제국군에서 탈출해서 코렐리아의 키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혹독한 전장을 전전한다. 우연히 만난 미래의 멘터이자 우주불한당 토비아스 베킷단의 일원으로 전장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먹잇감으로 던져진 우리에서 친구이자 전우 우키족 츄바카(츄이)를 만난다. 그러니까 이 스핀오프에서는 헌 솔로의 기원과 그가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베킷 일당은 드라이덴 보스의 명령으로 밴더원 행성에서 코악시움을 수송하는 열차를 습격할 계획을 세운다. 어때? 예전에 미국의 대서부를 가로 지르는 금괴수송 열차를 탈취하려는 무장강도단이 연상되지 않나. 미국 문화의 이런 단면에서는 기존 문화의 복제와 재생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단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하지만 이때 보안관도 아닌 엔피스 네스트라는 그룹이 등장해서 베킷 일당의 코악시움 탈취는 실패한다. 크루 리오 듀란트와 여전사 밸이 습격 중에 장렬하게 죽는다.

 

우주악당 드라이덴 보스(폴 베타니 분)를 찾아간 베킷과 헌 그리고 츄이는 새로운 제안을 제시한다. 아, 그전에 헌이 꿈에 그리던 애인 키라를 드라이덴 보스의 기지에서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장면도 있었지.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데, 결국 영화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헌 솔로의 행적보다도 더 궁금한 게 그녀의 지난 3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혹시 이 이야기도 나중에 스핀오프로 써먹으려고 준비해 두었나.

 

드라이덴 보스에게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코악시움을 만들어서라도 보스에게 진상해야 했다. 케셀 행성에서 채굴 중인 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코악시움을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전에 베킷과 헌, 키라 그리고 츄이는 새로운 건달 랜도 칼리시언을 만나 미래에 헌 솔로의 애마가 될 밀레니엄 팰콘을 타고 케셀 행성으로 출발한다. 그전에 랜도 수하의 안드로이드 L3로 크루에 합류하는데, 랜도와 모종의 썸을 타는 관계라고 해야 하나. 갤럭시 최고의 내비게이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아울러 “Equal rights"를 주장하며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안드로이드 해방을 꿈꾼다.

 

케셀 행성에서 코악시움을 캐내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반노예 상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외계종족들의 모습이 왜 그리 익숙한 거지. 자본주의 경제를 돌리기 위해 꼭 필요한 노동력의 원천이 결국 인간이라는 점을 디즈니가 꼭 집어서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천하의 디즈니가 그럴 리가 없겠지 싶다. 아니 그렇게 기술이 발전한 미래라고 한다면 힘센 안드로이드들을 잔뜩 만들어서 광산에 투입하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될 게 아닌가. 아마 미래에도 그건 불가능한 모양이다.

 

11개의 코악시움 캐니스터를 싣고 케셀 행성을 탈출하던 제국군 모함을 만난 솔로 일행은 자신들의 뒤를 쫓는 타이 파이터와 괴물 그리고 중력장을 피해 이제 실전을 통해 유능한 파일럿으로 변신한 솔로의 진두지휘 아래 도주에 성공한다. 만신창이가 된 팰콘을 타고 도착한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엔피스 네스트와 무장한 클라우드 라이더들이었다. 자,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날 것인가. 배신의 드라마가 반복되는 가운데, 시퀄을 위한 떡밥들이 다량 투척되고 무엇보다 베일에 쌓인 신디케이트 크림슨 돈의 두목이 그 유명한 다스 몰이라는 점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정작 에피소드 원에서는 그냥 그렇지 않았던가. 검 스타일의 라이트세이버가 아니라, 창 같이 양쪽에서 광선검이 나오는 아이디어는 정말 멋졌었는데.

 


헌 솔로는 엔피스 네스트로부터 반란군과 함께 제국에 싸우자는 제안을 받는다. 헌은 처음부터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결국 시스라는 거악과 싸우기 위해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반군에 합류하기는 하지만. 헌 솔로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This is America>로 이름을 날린 도널드 글로버/차일디시 갬비노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새가 시리즈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제국의 역습>에서 친구이자 경쟁자인 헌을 제국군에게 팔아 넘기는 랜도 칼리시언 연기를 도널드 글로버는 매력적으로 해냈다. 도박 일차전에서 랜도의 속임수에 헌이 넘어갔다면, 2차전에서는 그의 속임수를 간파한 헌의 승리로 결국 팰콘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갤럭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고(희대의 깡패 토비아스 베킷의 충고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걸어야 한다. 한 마디로 판돈이 클수록, 얻는 것도 크다는 말인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면서 헌은 그렇게 멋진 우주 건달로 커가는 모양이다.

 

어쩌면 <헌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에피소드 4로 이어지는 오리지널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크림슨 돈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키라의 미스터리, 베킷의 말을 믿고 태투인 행성(루크 스카이워커의 고향!)으로 향하는 헌 솔로와 츄이에게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시퀄에서 부디 기대하시라. 일단 <헌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결정적이 한 방은 없었지만, 무언가 기대를 하는 떡밥들을 사방에 투척해 두었으니 론 하워드 감독이 어떤 식으로 시퀄에서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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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9-14 11:40   좋아요 0 | URL
무언가 강력한 MSG가 필요한데
론 하워드가 너무 약하게 친 모양입니다 :>

아님...
각본을 맡은 로렌스 캐스단이 문제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