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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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전쟁, 내전 그리고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리비아에서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난민들이 위험천만한 지중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난민들의 주 목적지는 독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난민들을 환영할까? 천만의 말씀, 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작금의 상황은 1938119일 그 악명높은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로 국가사회주의 나치에게 가공할 탄압을 받게 된 유대인들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은 상황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와 무지, 정치적 무관심, 포스트팍티시(postfaktisch:사실에서 벗어난, 탈사실적인) 선전으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과정은 1930년대 나치의 부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 나는 두렵다. 우리는 과연 과거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웠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7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1930년대 나치의 부상과 몰락을 지근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브룬힐데 폼젤의 <어느 독일인의 삶>이 주는 교훈은 명징하다. 다시금 야만이 득세하는 걸 그대로 용인할 것인가?

 

거의 한 세기를 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이자 뛰어난 능력의 속기사였다. 이 책은 그녀가 죽기 전인 2013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 촬영분을 문자로 옮긴 것이다. 폼젤의 아버지는 1차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베를린의 유복한 인테리어 업자였다. 프로이센식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폼젤은 복종과 성실함의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타자수로 직업전선에 나선 폼젤은 반복적으로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 민족의 중흥을 약속하고 나선 친애하는 최고 지도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낮에는 유대인 상사의 밑에서 일하고, 밤에는 나치 당원의 회고록을 쓰는 일을 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폼젤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리고 1933년이 되었다. 바로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한 해 말이다. 바로 직전인 1932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를 통해 알게 된 불프 블라이는 그녀가 제국 방송국에 취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이제 마침내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탄 폼젤의 화려한 시절이 시작된다. 비록 취업을 위한 방편이긴 했지만, 나치당에도 가입했다.

 

본인은 히틀러나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괴벨스의 계몽과 선전이 광란극이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패전으로 엄청난 자괴감과 대공황으로 비롯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문제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거에 해결해준 최고 지도자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부역한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2차세계대전 발발로 제3제국의 짧은 영광의 시대가 왔다고 착각했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괴멸적인 패배와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이 일상화되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 폼젤. 하지만 전쟁과 상관 없이 그녀는 제국 선전부로 자리를 옮겨 더 나은 월급과 대우를 받게 된다. 자신이 선택받은 인재라는 자부심과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배급과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부역자의 특권이 아니었을까. 칼럼니스트였던 유대인 친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 친구는 결국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폼젤의 프로이센식 복종과 성실은 소련군에게 제3제국의 심장인 베를린이 함락될 때까지 계속됐다. 가족이 피신했던 포츠담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폼젤은 친애하는 최고 지도자를 배신하지 않았다. 34살이나 된 여성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말은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던 선전선동의 대가 괴벨스 일가는 집단자살하고, 총통마저 벙커에서 최후를 맞은 뒤 진격해온 소련군에게 폼젤은 전쟁포로로 사로잡힌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처형당한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되는데, 한 때 죽음의 샤워실로 불렸던 곳에서 샤워를 했다는 전언은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가장 쇼킹한 장면이었다.

 

결국 브룬힐데 폼젤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다. 비록 간간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후에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쟁 중에 선전상의 비서이자 속기사로 수많은 정보들을 다룬 그녀가 과연 백장미단 사건이나 히틀러 암살사건 그리고 잔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랐다는 진술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생존을 위해 제국에 부역한 부역자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만약 있다면 독일 민족 전체가 뒤집어 써야 한다는 논리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다.

 

후기를 다룬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토레 한젠은 깨인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현재 유럽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난민정서의 유래에 대해 집요하게 강조한다. 독일 대안당(AfD)가 결국 지난 총선에서 독일의회에 진출한 점,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거의 극우세력이 집권할 뻔한 위기, 브렉시트, 터키의 술탄이라 불리는 에르도안의 집권 등 다양한 이슈들이 겹치면서 난민 문제는 더 이상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인종주의자 히틀러는 1930년대 유대인을 국가의 적으로 상정하면서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토레 한젠은 유럽과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난민이야말로 현대판 유대인과 같은 존재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한젠은 우리에게 절대로 브룬힐데 폼젤과 같은 이기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지난 9년 동안 어리석은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역진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가. 정의와 연대 대신 자신의 안위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던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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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폭염이 사상 최고의 기세로 달려 들던 8월에도 지난달만큼 많은 책을 만났다. 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더 읽었다고 해야 하나.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주 종목은 소설읽기다. 소설이 제일 재밌다. 다른 분야의 책도 간간히 읽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책사랑의 타겟은 소설이지. 그런데 가만 보니 가끔 인문 사회책도 읽지만 과학 분야 책들은 아예 읽을 시도도 하지 않는구나. 그래 난 책편식쟁이다. 아, 소설만큼 좋아하는 분야가 역사다. 역사책은 소설보다도 더 빨리 읽는다.

 

아 참, 얼마 전에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했다. 그런데 까였다. 이유는 희망도서가 만화책이어서 거절당했다. 놀랍군. 부커상 후보작으로 그래픽노블이 오르는 마당에,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가부를 결정하시는 분은 그야말로 공무원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하신 모양이다. 만화는 도서관에서 회람되면 안된다는 고루하고 진부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래리 고닉의 미국역사 만화는 또 사주지 않았던가. 암튼 일관성도 문학적 감성도 전혀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그 책은 티부이라는 작가가 그린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이라는 책이다. 베트남 회고록이라고 하는데, 천상 사서 봐야할 모양이다.

 

또 내 전문인 삼천포로 빠졌다. 8월 책읽기 결산하다 말고 또 그러네. 이 달에 만난 책 중에는 라로님의 격려로 근 일년 만에 읽게 된 호프 자런의 <랩 걸>, 한스 폰 루크의 생생한 2차세계대전 회고록 그리고 귄터 발라프의 암행취재를 바탕으로 쓴 책들이 최고였다. 어제부터 귄터 발라프의 신간 <버려진 노동>을 읽기 시작했다. 과연 노동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놀기 위해 일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까. 그전에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석학의 글을 읽긴 했지만 좀 의무감에 읽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감상의 잔향은 남아 있지 않다.

 


 

 

 

 

 

 

 

 

 

 

 

 

 

자본주의 3.0 시대에도 여전히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 고유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역설의 상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쉬운 비용절감 정책은 바로 노동 착취다. 기본 재료와 설비 투자 같이 꼭 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노동은 다르다. 노동 유연화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정규직 대신 고용이 불안한 임시직 계약직을 창출해 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해고장을 발부하고 새로운 노동력으로 대체하는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딱 맞는 시스템이라고 그 누가 주장한단 말인가.

 

기존의 유통질서가 붕괴되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시대가 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쇼핑과 택배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성장의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다만, 그 가운데 누군가는 원치 않은 희생은 강요당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소비자로서는 싸고 품질 좋은 물건, 빠른 배송을 원하지만 그 과정을 가만 살펴 보자. 아마존이 하루라도 빨리 국내에 진출하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행태를 강요하는 기업정서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다. 뭐 발라프 아저씨가 <버려진 노동>에서 고발하는 아마존이나 잘란도 같은 온라인쇼핑의 실상이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침부터 불필요하게 흥분했구만 그래. 어쨌든 다음달에는 발라프 아저씨의 책도 다 읽게 되겠지. 허망하다.

 

 


 

 

 

 

 

 

 

 

 

 

 

 

 

바로 옆에 지난달에 산 독일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얌전히 놓여 있다. 책 살 때 받은 플라스틱 책갈피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정작 책은 안 읽고 있다. 어떻게 오늘부터라도 읽기 시작해야 하나. 어제는 발라프 아저씨의 책과 <경애의 마음>도 읽기 시작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보니 에르펜베크의 책들은 그전에 몇 개 쟁여 두었는데 읽다 말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 가을이 되면 읽다만 책들부터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그리고 책도 정리해야 하고. 참 오늘부터 우리 동네 책잔치한다고 하던데. 장마당에 나가서 읽지 않거나 쌓아둔 책들 다 정리하고 싶어라. 그것도 사전신청을 해야 하는 거라 쉽지 않다. 요즘에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맹점이다.

 


 

 

 

 

 

 

 

 

 

 

 

 

다음 달에는 도리스 레싱의 책들을 읽어 볼까 한다. 문예출판사에서 오래 전에 절판된 단편소설집을 두 권으로 낸 모양이다. <19호실로 가다>가 볼륨 1과 볼륨 2가 있는 모양이지. 프로파일 사진을 보면 정말 할머니로 나오던데. 이번에 나온 <사랑하는 습관> 주문하려고 지금 대기 중이다. 램프의 요정에서 새달에 할인쿠폰 뿌리면 박박 긁어모아서 사야지. 근데 먼저 나온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어야 하나 어쩌나. 지금 대출 한도가 꽉 차서 더 이상 빌릴 수도 없다. 먼저 빌린 책들을 반납하지 않는 이상.

 

지난 한 달도 책 읽느라 수고했다, 새달에도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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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1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이팅!!
전 레삭매냐님 글을 읽고 <버려진 노동>을 빌려왔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18-08-31 09:59   좋아요 1 | URL
<버려진 노동> 읽고 있다 보니 어쩌면
한국의 실정과 유사한지, 국경을 넘나
드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역시나 어디서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귄터 발라프 아저씨의 다른 책들도 추천해
드립니다. 열독 !

목나무 2018-08-31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점점 선선해질테니 좀 덜 달리셔요. 느므 달리시다가 책에 걸려 넘어질까 걱정입니다. ㅋㅋ

레삭매냐 2018-08-31 13:09   좋아요 0 | URL
그러고 싶습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오늘 또 도서관에 신청한 희망도서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사왔습니다.

바로 읽기 시작했네요.

9월에도 달립니다 ~ 카오

2018-08-31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31 13:1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더워서 잠을 자지 못하다
보니 더 내달린 것 같습니다 :>

가을이 되면 쉬엄쉬엄 가려구요.

세상틈에 2018-08-31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작가님이 띵언을 남기셨죠. 내 취향에 맞는 책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ㅋ 참고로 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ㅎ

레삭매냐 2018-08-31 13:10   좋아요 0 | URL
네 맞는 말씀입니다 -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읽는 데만도
버겁습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8-08-31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 글 읽고 <버려진 노동>이 제일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갑니다. 대출하러요^^

저도 희망도서 부결될 때가 많은데요. 저희 구의 도서관들은 한 곳에서 신청한 책이면 다른 곳에서는 그 곳 책을 상호대차 하시오~~ 하면서 부결합니다.
그래서, 저희 구에서 제일 큰 도서관만 엄청 바빠요.
8월에도 부지런히 읽으신 레삭메냐님 결산 보고나서
저도 소박하게 결심하고 갑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8-08-31 13:14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도서관도 있군요. 저희는 그러진
않는 것 같아요. 상호대차 시간이 너무 걸리
는 것 같더라구요.

저희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 빌리러 다른
동네 도서관 대출증도 만든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론 안가게 되더라구요. 너무 멀어서리.

그동안 몇 번 희망도서 신청했었는데 이렇게
보기 좋게 물먹은 건 처음이라서 쫌 당황스
럽네요.

귄터 발라프 아저씨 책 후회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엄청 재밌고, 분노하게 됩니다.

페크pek0501 2018-08-3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록을 보니 문학동네 책이 많고 외국 작가가 많네요.
저에겐 6개월치의 양인 듯합니다.(너무 비교된다는... ㅋ)

저도 오늘 <사랑하는 습관>이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필립 로스의 자서전 <사실들>과 함께요. 작가의 삶을 엿보는 게 흥미로워서요.

저를 위해 파이팅. 님을 위해 파이팅.



레삭매냐 2018-08-31 16:02   좋아요 1 | URL
적어 주신 내용을 보니 정말 그렇네요.

제가 원체 두서 없이 마구잡이로 독서
를 해서 그런가 봅니다. 아무래도 마음
에 꽂히는 작가들의 전작을 하다 보니
특정 출판사에 집중이 되는 현상이 ㅋ

이번에 존 쿳시 작가의 책 판권이 문동
으로 넘어간 것 같더라구요. 한동안
문동책들을 더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트 2018-08-31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삭메냐님처럼 독서 결산을 매달 해봐야겠어요 ^^ 읽으신 책 중에 제가 읽고 싶은 책도 보이네요..!! 매달 대단하세요 😸

레삭매냐 2018-08-31 17:27   좋아요 1 | URL
이제 겨우 두달한 건데요...

예전에는 매일 같이 싸이월드에 기록을 했었는데
기록장이 없어져 버리는 바람에 끊었다가 아주
오랜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유나리 님도 빠이팅 !

아트 2018-08-31 18:17   좋아요 1 | URL
싸이월드 오랜만이네요..!!! 서비스 없어져서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같이 파이팅 해요 ^^

카알벨루치 2018-08-31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이 얼마나 좋은데 넘 하시네요! 햐~참! 전 오늘 희망도서로 <십팔사략>(10권) 들고왔네요! 기대감 백배입니다! 근데 고우영씨가 고인이 되셨네요.....

레삭매냐 2018-09-01 07:55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만화라고 해서 안된다는 건 너무 고리타분
한 결정이네요.

정말 오래전에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그리
고 열국지며 초한지 시리즈를 재밌게 읽
었습니다. 말씀 대로 고인이 되셨더군요...

북프리쿠키 2018-09-19 17:51   좋아요 1 | URL
제가 최애하는 소장템중 하나입니다ㅋ

카알벨루치 2018-09-19 18:09   좋아요 1 | URL
근데 그게 다 품절이라는 ㅜㅜ이현세 <삼국지>는 있어요
 
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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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가 기쁘게 살면서 배우며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세상을 현명한 영혼과 어리석은 영혼들로 채우셨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였던가. 세상은 곧 어리석은 영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신은 천사를 파견하여 세상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천사의 실수로 바보들의 영혼이 가득 든 자루를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에 풀어 놓게 되었다. 그런데 바보들 가운데에도 현자는 있는 법, 바로 그 헤움이라는 은행도, 도서관도 그리고 관공서도 하나 없는 마을이 꾸려져 가는 모양새를 류시화 작가는 우화라는 스타일로 풀어냈다.

 

이디시/아슈케나지로 보이는 유대인들이 등장하는 헤움 마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때 즐겨 읽던 에프라임 키숀의 <닭장 속의 여우>가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죽어라고 토론하고, 신의 계시를 기다리지만 정작 해결책은 단순하다. 어느 농부가 잃어버린 쇠스랑을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생각하는 성물 메노라 촛대라고 우기질 않나, 왜 우리 마을에는 시인이 없을까 싶어서 갖은 궁리 끝에 시낭송 밤 행사를 준비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는 장면이 그렇다.

 

우화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어리석은 상황을 전개하고, 그 안에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려 주는 방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우리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다. 바보마을 헤움에서 벌어지는 엉터리 같은 일들이 현대문명 세계에서도 버젓이 재현되지 않았던가. 9-11 당시 미국에서 알카에다 같은 테러집단의 미국 본토에 대한 화학물질 공격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그 대책으로 덕테이프(검정 테이프)로 창문을 밀봉하라며 시연해 주는 장면들이 방송국 카메라로 전국에 송출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는 이제 녹조라떼라는 이름의 재앙이 되어 버린 4대강 사업은 그저 헛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인생 우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며, 행복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 가운데 그렇게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 나가 버리는 모래알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비교할 때도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연달아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런 간단한 진리를 들려준다.

 

마치 탈무드의 변주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류시화 저자는 우리 삶의 근원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유심론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점이 재밌다.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줄 거라며 랍비가 봉투에 넣어 건네준 50즈워티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신에게 원래 부탁대로 100즈워티를 달라는 구두 수선공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복작거리는 집안에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생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집에서 기르는 다양한 닭이나 염소 그리고 양 같은 동물들을 들여 놓아 보라는 랍비의 조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다가온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왠 놈의 물욕이 그리 많은지(대개가 책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도대체 버리질 못하는 어느 중생의 모습과 왜 이리도 닮았는지 모르겠다. ‘책장 정리를 해야 되는데’라는 타령은 그야말로 나같은 책쟁이가 평생 숙제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헤움의 친구들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에게 이런 주제가 주어진다면 또 서넛의 현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돌입할 것이다. 그들이 가진 지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고자 외주를 주겠지.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결론은 대개 비합리적이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것도 수용하는 포용력과 아량을 과시한다. 어쩌면 행복은 현재에 대한 안분지족하는 나의 마음자세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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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30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류시화 시인 사인받은거 예약해서 구매해놨는데 우화라기에 손이 잘 안가는데 레샥매냐님은 언제 또 이렇게 재바르게 읽으셔서 리뷰를 올리시공~대단하십니다 전 오늘 두통땜에 컴터앞에 가기가 힘드네요~오늘도 행복하십시오^^

레삭매냐 2018-08-30 21:59   좋아요 1 | URL
저도 수중에 넣은 지는 제법 되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보름 만에 다 읽었습니다.

자꾸만 에프라임 키숀의 책 생각이 나더
라구요. 아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2018-08-30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30 22:00   좋아요 0 | URL
여전히 인지부조화에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부분들만 열심으로 보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왜 반성을 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녹차 라떼 한사발~
 
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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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실패를 규정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나의 성공과 실패가 판정된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행복도? 질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점이 너무 슬펐다. 내가 느끼는 사소한 감정들조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런 점이 말이다.

 

딸 홍유나(31세)가 죽었다.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깨져 버린 가정의 가장인 정근은 전라도 출신의 공군 기무부대 예비역 대령이다. 정근과 그의 처 지숙은 황망한 가운데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는다. 그 중에 딸 유나의 절친 윤철용과 강주한이 눈에 띈다. 우락부락한 영어샘 철용은 전혀 조문객답지 않은 복장으로 정근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반면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주한은 차분하게 장례식 절차를 돕는다. 유나는 차를 몰고 그대로 저수지로 들어갔고, 사인은 익사라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에 앞서 우리는 왜 젊디젊은 유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죽기 전 아빠에게 남긴 메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고향을 떠나 사회에 만연한 지역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동향 출신을 비난하던 홍 대령은 방산 비리로 불명예제대를 했고, 경비로 나머지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교대 출신 유나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대신 항공사 승무원으로 변신해서 사회인으로 출발했다. 홍 대령은 자신이 모르던 딸의 삶의 흔적들을 그녀가 죽은 뒤에 하나씩 찾아 가기 시작한다. 학생 시절, 자기 때문에 동료 윤 대령이 죽었다는 딸을 모질게 폭행하고 그 과정을 지켜 보던 지숙이 기절하는 과정 등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슈퍼리얼리티였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홍 대령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승무원 5년차 유나는 자신을 밀고한 동료에게 환멸을 느낀다. 예의 밀고는 부기장 김영훈(그는 예전에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다)과 불륜이라는 모함이었던가. 반성문과 따귀는 정말 모욕적인 처사가 아닌가. 어쩌면 그 모든 출발은 노조간부로 활동하던 영훈과의 친분이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훈네와 유나네는 서로 얽히고설킨 악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영훈의 아내 혜진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지난 2년간 코마 상태에 빠져 있다. 아마 소설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설 속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희미한 이미지들 정도.

 

소설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등장하는데, 왠지 모르게 따로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나가 승무원으로 근무한 항공사의 천태만상 비리는 최근 언론지면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피고용인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어느덧 오너리스크의 상징이 되어 버린 갑질은 이제 일상이지 않은가. 우리들이 아무 생각이 없이 비행기 안에서 구매하는 면세품 팔기가 승무원들의 실적으로 둔갑하는 불편한 상황은 또 어떤가. 심지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자신이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버린 일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감정이 놀랄 지경이다.

 

방산비리의 일각과 군부대 내 계급의 고하로 무시로 동원되는 사모들의 노동력 착취는 또 어떤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책임을 외면하는 풍토에 대한 고발도 심상하게 다가온다.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이 항공대를 졸업하고 부기장이 되어 승무원이 된 유나와 만나는 장면은 참 어색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런 빽도 금전적 여유도 없는 영훈이 부기장의 자리에 올라, 노조활동을 하다가 회사에게 찍혀 정직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좀 무리지 싶다.

 

사실 소설은 유나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한 아버지 홍 대령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런 구체적 진실보다 유나의 지난 십년의 삶에 더 방점이 찍혔다고나 할까. 요지경 한국사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나열도 좋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왜 유나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를 밝혀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반성문과 따귀, 불륜 의혹 정도로 승무원 5년차 베테랑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철용이나 주한 같이 좋은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과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점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게 탈바꿈하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슬프다.

 

책을 읽는 동안 몰입도는 상당했지만, 결론에 가서는 허무해졌다. 어쩌면 이것도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이려나. 도보순례에 나선 유나와 친구들의 명랑쾌활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나의 친구들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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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기자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 - 세계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탐험
귄터 발라프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유명한 저가형 할인매장 리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지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리들이라는 회사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봤다.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가 된 PB브랜드로 무장하고, 동종 업계에서 최저가격으로 승부를 거는 그런 업체였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리들이 어떻게 그런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은 부재했다. 얼마나 깊이가 없는 기사인지 바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한국의 기자들은 하나의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참으로 노력을 하지 않는구나 싶기도 했다.

 

전통적 그리고 기본적 우리의 삶을 모조리 파괴하는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힘은 상상도 국경도 초월한다. 1960년대부터 그런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들에 대한 진실을 캐기 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암행취재라는 방식을 선보인 귄터 발라프가 이번에는 모두 7개의 종목에 도전한다. 처음에는 문명과 민주주의라는 꽃장식을 단 선진국 중의 선진국 독일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이 직접 흑인으로 분장하고 차별의 최전선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피부를 검게 만드는 약을 복용하고 취재를 하다가 죽기까지 했다고 하던가. 발라프 아저씨, 제발 건강까지 해쳐 가면서 취재는 하지 말아 주세요, 걱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점잖은 독일 신사들이 발라프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람선에서 당연히 맥주 서비스를 하는 웨이터로 판단하는 장면은 정말 불편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사회 곳곳에서 아예 대놓고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독자는 생생하게 목격한다. 애견동호회에서도 그저 등산을 즐기기 위해 참여한 모임에서도, 바비큐를 즐기기 위해 참여한 캠핑장에서도 ‘흑인’ 발라프는 환영받지 못한다. 소위 문명세계에 산다는 1세계 사람들의 위선을 그대로 까발리는 대머리 아저씨의 한 방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의 두 번째 미션은 노숙자 체험이었다. 답답하고 꽉 막힌 독일식 관료주의는 엄동설한에 일단 사람부터 살리자는 발라프의 충언에 귀를 막고 눈감아 버린다. 어쩌면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심지어 멀쩡한 사람이 마약중독자 행세를 해서, 마약중독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수용시설에 입장해야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역시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이 갱생할 수 없는 시스템은 독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 정글자본주의 시대에 그 누구도 바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예 무시하려는 태도가 사실은 개인적으로 더 무서웠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렇게 칭송해 마지 않는 하르츠4 개혁에 대해서도 독일 사람들마저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귄터 발라프의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됐다.

 

다음 타겟은 신자유주의 시대 그야말로 노다지 같은 자본의 광산인 텔레마케팅 시장 잠입이었다.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해서,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무차별 전화 테러에 가까운 방식으로 콜센터에 채용된 직원들은 자신의 양심까지 팔아 가면서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린다. 문제는 그게 전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도 당장에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보험판매 전화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 그전에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개인정보 판매를 허용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주지의 사실이다. 마트 할인카드, 카드포인트 그리고 이벤트 응모 등등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누출된 나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콜센서 전사들은 영업에 나선다.

 

귄터 발라프는 이번에도 멋지게 변장을 하고서, 콜센터 사기 판매의 세계에 뛰어든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취재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던 복권 판매였는데 저자는 무엇보다도 콜온 같은 전화판매 회사도 문제지만,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콜온 같은 대기업의 구조를 갖춘 회사들은 쾰른투름(한국으로 치자면 코엑스 정도 비즈니스 센터) 같이 휘황찬란한 장소를 많은 비용을 들여 임대해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는 작전을 구사한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연방 및 지방정부에서는 그런 전화 판매회사들의 구직을 장려한다. 사실 복권 판매로 단위 정부에 재정이 증대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대머리 아저씨는 기술한다. 바로 앞에서 실적을 강조하는 상사의 감시 아래, 정확한 정보 제공도 없이 거의 위협적이거나 혹은 유혹적인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소비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다. 콜센터 직원들 역시 양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의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계약에 따른 실적 보너스를 받기 위해 내 양심을 지키는 대신 사기를 치는 것이란다. 그놈의 돈이 항상 말썽이지. 그런 독일의 모습과 우리네 그것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서두에서 언급한 리들에 독일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바게뜨 같은 브뢰첸 빵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라인란트 팔츠 지역 훈스브뤼크에 소재한 바인츠하이머 형제 제빵 주식 회사의 추악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언급할 차례다. 일단 유통 공룡인 리들은 최저가 경쟁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빵 하청업체인 바인츠하이머를 악랄하게 쥐어짠다.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에서 뜨거운 철판에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말거나 리들의 관심을 오로지 저가로 제조한 브뢰첸 뿐이다. 자본의 세례를 듬뿍 받은 금수저 사장 바인츠하이머의 베스터호르스트만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자사의 노동자들을 엄중하게 감시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바인츠하이머 같은 회사들은 독일 헌법이 규정하는 노동자 보호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자비한 생산속도와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리들과의 계약 위반으로 물게 될 위약금이 그리고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할 비용이 아까워서 일자리가 궁한 노동자들을 사납게 몰아붙인다. 아니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브뢰첸이 목으로 넘어갈까 싶다. 이런 악질 기업은 망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현장에서의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도대체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있는지 그 잘난 입으로 떠들어 대는 국회의원에게 묻고 싶다. 리들에 대한 다른 기사에서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서 최저가 경쟁신화를 이루어냈다고 기자가 쓰고 있는데, 리들 같은 유통공룡 기업들이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에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비용마저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대머리 아저씨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바로 스타벅스다. 그런데 이번부터 나머지 세 꼭지는 자신이 직접 암행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부 식민지인들’의 내부고발, 제보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고객친화적인 업체라는 모토를 가지고 고객을 응대하는 스타벅스는 커피/에스프레소를 파는 곳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고급화된 커피전문점이라는 이미지를 파는 곳으로 변신했다.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세계 커피 제국으로 성장한 스타벅스는 공정무역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제국의 수장 슐츠 회장과 주주들의 수익을 위해 일하는 일개미들을 원할 분이다. 하워드 슐츠 제국은 세분화된 다양한 직군으로, 부유한 도심 주변에 잇달아 같은 스타벅스 매장을 내면서 무시무시한 카니벌리제이션(자기시장잠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교육시간에는 당연히 임금이나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노동착취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은 이제 기본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커피재배 농민들과 브랜드 전쟁을 한 것은 철저하게 숨기고, 달랑 5% 가량 공정무역 거래를 하면서 양심적인 기업이라는 선전에 나서는 게 바로 스타벅스의 오늘이다. 이래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겠는가.

 

독일철도주식회사(DB)의 민영화 과정에서 드러는 천태만상에서는 지난 MB정부 시절 보고 들은 한국의 철도민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정부의 핵심기간 산업이기도 한 철도사업을 오로지 민영화했다가 낭패를 본 나라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나 수익이 나는 구간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곳에 지원해야 하는 게 철도사업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KTX 사업을 민영화하는데 그토록 공을 들인 지난 정권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였다. 일시적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철도운영에 있어 중요한 안정을 위한 기본 정비도 무시하면서까지 비용절감에 의한 수익추구가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 진정 몰랐단 말인가. 대형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열악한 상황으로 치달은 독일철도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6번째 이야기까지 독일 국내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노동착취에 대한 리포트라고 한다면 마지막 장은 탐욕스러운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를 구축한 노조 혹은 경영협의회를 파괴하는데 고용주의 입장에서 부역한 유능한 변호사들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헬무트 나우요크스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기업의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인사로, 자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기업경영에 눈엣가시 같은 인사들을(그들을 기생충이나 쥐로 부른다) 모빙(직장 내 따돌림)으로 솎아내는 최신 기술을 천유로씩이나 받는 유료 세미나(부가세는 별도다)를 통해 고객들에게 전파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인사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으며, 오로지 6자리 숫자의 성공보수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절대 해고할 수 없는 이들을 해고하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어때 듣기만 해도 솔깃하지 않은가.

 

일단의 변호사들은 경영협의회의 리더들을 타겟으로 해서 갖자기 공작과 음해를 마다하지 않는다. 감시의 상시화는 물론이고, 해당 직원 동물 포르노그래피를 업무 시간에 중에 보았는 소문을 퍼뜨려 평판을 떨어뜨리는 작업시작해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사찰까지도 감행한다. 그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도 나우요크스 같은 변호사 무리를 고용해서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사실 이런 송사들의 목적은 금전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신적 쇼크와 육체적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사들의 공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귄터 발라프는 이 책에서 정말 가감 없이 그대로 고발한다.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읽다가 자주 만나게 되는 하르츠4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롤모델로 항상 입버릇처럼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독일의 위대한 노사정 대타협이라며 선전하던 하르츠4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정부와 자본(기업)은 항상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독일식 하르츠4 개혁에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폐기하고, 해당 개혁을 주도했던 사민당(SPD) 내부에서도 50만원 남짓한 실업급여가 아닌 15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우리의 헤르메스님이 주창한 기본소득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선구자는 역시 다르구만 그래.

 

하르츠4를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정작 하르츠개혁의 본질을 모른 채, 규제완화와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해내고 실질적 복지축소를 가져온 피상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하르츠개혁으로 만성적 실업율을 획기적으로 축소시킨 건 사실이지만, 반대급부로 고용안정과 복지확대가 역진하고 있는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 생산된 다수의 미니잡이 안정적 일자리가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기업가와 정치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닌가 말이다. 독일 경제회생의 비밀은 유로통합으로 유럽경제를 사실 좌지우지하게 된 독일의 통화 가치 절하였다. 경쟁국들에 비해 고품질의 기술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독일의 강소기업들이 유럽경제를 제패하게 되었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내 보수언론들에게는 하르츠개혁의 실체보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발생한 노동 유연성이 쓸모없는 일자리를 늘렸다는 가시적인 수치와 구호만이 중요하니 말이다.

 

책의 뒷꼭지에 실린 강수돌 교수의 글은 이미 책을 읽다가 독일 내 이주노동자 문제와 하르츠개혁에 대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만났던 글들인지라 반가웠다. 인권선진국이라는 독일에서도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한국의 경우는 어떤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그의 주장대로 한국에서도 노동전문법원이 생겨서, 항상 강자가 이기는 진부한 장면 대신 연대한 다수의 약자들이 부당한 대우과 편견을 깨고 이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아울러 발라프 같은 책임감 있고 용감한 저널리스트의 등장도 기대해 본다. 그가 지난 40년 동안 신념을 가지고 보여준 그동안의 노고에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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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29 20:08   좋아요 1 | URL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국에도 기자학교가 있어서 저널리즘
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에 대해
교육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