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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블루레이] 포레스트 검프 (2disc: 4K UHD + BD)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8년 6월
평점 :
어느 비가 내리는 주말, 우연히 포레스트 검프를 보게 됐다. 물론 정주행한 건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돌려봤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참 보고 싶어했었지 아마. 어떤 이들에게는 천조국으로 떠받치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 철부지 시절, 어쩌면 미국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던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때라 그랬을까나 어쨌을까나 싶다.

이야기의 시작은 1981년.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버스정거장 벤치에 앉아 그놈의 지긋지긋한 초콜릿 타령을 하면서 낯선이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공짜 이바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게다가 그 이야기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검프의 고향 알라바마 그린보로 1956년으로 플래시백은 관객을 인도한다. 다리가 불편하고, 지능도 조금 모자란 친구 검프는 학교에 등교하자 당연히 또래 꼬마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오로지 그의 편에 서준 친구는 바로 평생의 연인이 된 제니였다. 운명적 사랑의 시작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검프의 제니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미국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괴롭히는 꼬마 악당들로부터 달려서 도망치라는 그 유명한 대사, “Run, Forrest, Run!"이 등장한다. 검프의 현대사 개입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검프의 희한한 다리 동작을 보고 그걸 춤으로 승화시킨 프레슬리가 ‘펠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미국 록음악계를 장악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달리는 재주 하나만으로 1963년 알라바마 대학 풋볼팀의 러닝백이 되어 대학 학사증도 검프는 획득한다. 이 자식, 진짜 운이 하늘을 찌르는군. 전설적인 대통령 JFK과 만나는 행운도 얻게 되고. 우연은 검프를 1967년 베트남전으로 인도한다. 이역만리 전장에서 만난 흑인 전우 버바는 만날 새우산업 타령만 해댄다. 동시에 자신의 상관으로 조상 대대로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장에서 전사자를 낸 테일러 집안의 댄 중위님도 만났지 아마. 베트콩의 매복에 걸려 중대원들이 몰살할 위기에서 자신의 달리기 재주를 발휘해서 동료들을 구해낸 검프는 엉덩이에 총알을 맞는 상이용사가 되고, 그 공로로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상이용사 시절 배운 핑퐁으로 전국을 돌며 자신의 신기에 가까운 탁구 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대표팀의 일원으로 막 수교한 중국에 파견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아 그전에 LJB 면전에서 부상당한 부위인 엉덩이를 까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에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제니와 수차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1960년대 전형적인 히피 생활을 즐기던 제니에게 검프는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런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 틈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목격한 검프의 제보로 결국 거짓말쟁이 닉슨은 사임하기에 이른다. 전역한 뒤에는 버바와 약속한 대로, 탁구 광고로 번 돈을 밑천 삼아 새우산업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새우잡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두 다리를 잃은 댄 중위가 합세하고 허리케인 카멘이 다른 새우잡이 배들을 부수면서, 버바 검프 새우 회사는 그야말로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버바와 약속을 지키고, 버바 가족에게도 버바 몫의 배당을 해주면서 그야말로 백만장자가 된 검프는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그린보로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임종을 마친 검프는 제니도 곁에 없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버스정거장에서 검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사는 그런 허풍은 처음이라는 말을 하며 그의 곁을 떠난다. 나중에 온 레이디에게는 포천 지에 실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말이 절대 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댄 중위님이 무슨 과일회사에 투자를 해서 평생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도 따라 붙는다. 그가 과일회사라고 생각하는 회사는 그 유명한 “애플” 컴퓨터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만 그래.

그 뒤 제니와 다시 만난 검프. 하룻밤을 지내고 제니는 다시 검프의 곁을 떠난다.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 검프는 미대륙을 달리는 기행을 시작한다. 도중에 그에게 영감을 위해 따라 붙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달리는 가운데 그에게 영감을 얻은 이들이 광고문구 “Shit Happens"와 스마일리 캐릭터로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정말 미국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기회는 사방에 널려 있으니 딴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거두기나 하라는.
그리고 오늘 검프는 제니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 버스정거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평생 사랑 제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프는 단 걸음에 그녀에게 달려가고 자신의 아들 포레스트 주니어(Haley Joel Osment, 식스 센스의 그 영민한 소년이 바로 포레스트 검프 주니어였다니 놀랍다!)와 만난다. 그리고 아마도 에이즈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제니는 검프와 결혼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다. 검프와 주니어의 삶은 그리고 계속된다, 바람에 정처없이 흩날리는 깃털을 타고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세계대전 후, 미국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검프와 제니의 사랑이라는 줄거리에 녹여냈다. 로큰롤은 전전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를 가르는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몸이 불편한 친구 검프에게 ‘불링’을 해대는 꼬마 악당들의 이미지는 동남아시아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미국와 베트남전쟁에 앞선 프리뷰 같은 이미지였다고나 할까. 검프가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의 괴롭힘을 자력으로 이겨낸 것처럼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 들었던 미국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에 지고 말았다.
1960년대 세계평화를 주창하는 히피세대의 등장, 반전시위 등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한 때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미국 경제는 세계 각지에 치러야 하는 전쟁을 위한 막대한 전비 조달 문제와 서독이나 일본처럼 전후에 부흥한 신흥경제국들과의 치열한 무역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그런 세계적 흐름을 짚어내면서 그들이 그렇게 신봉해 마지 않는 미국적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검프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말이다. 지금 들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그런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는 닉슨의 워터게이트로 모두 과거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 전 국민을 상대로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고, 탄핵과 사법적 처리대상이 되는 위기에 처하자 권력을 이용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리지 않았던가. 수십 년 뒤, 미국 시민들이 접한 클린턴의 거짓말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미국 사회는 워터게이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어떤 교수님을 말씀하셨었지. 그나마 부정한 권력의 개입에 맞서 싸운 용감한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미국적 가치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트럼프와 진정한 저널리스트라, 어쩐지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내 눈에는 보인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이나 NYT를 찌라시로 매도하는 모습은 거의 개그에 가까워 보인다.
한편 전장에서 새우사업에 미친 버바의 사업구상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제대한 뒤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또 어떤가. 검프라는 개인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신화창조를 위한 일종의 주작질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식언을 밥 먹듯이 하고, NATO와 터키 처럼 수십년된 동맹을 단기간의 국가 이익 때문에 뒤흔드는 외교의 이단아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국제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죽어 버린 사업 파트너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검프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그런 약속 따윌랑은 댕댕이에게나 줘버려라고 외치는 매드맨이 있으니, 참으로 오락가락하구나.
무엇보다 모든 성공은 금전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나는 불만이다. 검프는 탁구를 치면서, 탁구채 광고로 사업 밑천을 장만했다. 2만 달러 정도 되는 돈으로 새우잡이 배를 사고, 급습한 허리케인 덕분에 제니 호를 12척이나 장만해서 버바 검프 쉬림프를 동종 업계 최고의 회사로 키우는데 성공한다. 한 때 자신의 상사였던 댄 중위님은 사업에는 문외한인 검프 대신 전문경영인이자 투자자로 변신해서 이번에는 IT 산업계의 리딩컴퍼니가 될 애플에 투자를 시작한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린 셈이 아닌가.
달달하면서도 감동적인 제니와의 러브스토리를 밑바탕으로 깔고, 신자유주의 시대 미국적 질서와 역사를 공공연하게 전달하는 <포레스트 검프>를 보자니 그야말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역시나 재밌긴 하지만 비판적 시선과 감상이 필요한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