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 그런데 재출간된 쿳시의 <소년 시절>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책을 빌렸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일이나 걸려서 다 읽었다. 사실 그동안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산 책 보다 빌린 책을 먼저 읽어야 해서 우선 순위가 좀 바뀌게 됐다. 작년에는 이언 매큐언의 책들을 섭렵했는데 올해는 존 맥스웰 쿳시와 로맹 가리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중이다. 세 작가 모두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고 국내에 소개된 책들이 제법 많아서 컬렉션하고 읽는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어서 좋다.

 

국내에 소개된 쿳시의 책들을 거의 도맡아서 번역하고 있는 왕은철 교수의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 작가의 책은 여러 작가가 돌아 가면서 번역하는 대신 이렇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역자가 맡아서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나 직접 저자와의 연으로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물어 보기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소년 시절>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저자의 십대 시절을 집중적으로 다룬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정말 생소한 남아프리카 아프리카너들이 사는 방식이 그래도 등장하고, 대도시 케이프타운에서 변호사로 잘 나가던 아버지 잭 쿳시가 시골동네 우스터로 낙향하면서 생긴 일들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욕망은 자전거 배우는 일이었다고 했던가. 저자는 유대인도 기독교도 아닌 로마 가톨릭을 종교로 삼았다가, 다른 우악스러운 아프리카너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다. 자신들과 다른 인종과 섞여 다른 말을 해야(영어) 하는 상황에서부터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던 게 아니었을까.

 

가족들과 함께 카루 혹은 펠트에 위치한 농장에 가서 지내는 게 가장 좋았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어려서부터 삭막한 시멘트 포장 위에서 자란 나에겐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름방학만 되면 한 달씩 시골 할아버지네 가서 지내다가 왔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네는 거의 같은 도시라서 내가 살던 곳과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살풍경한 곳이었다. 바닷가에 간 친구들은 불가사리며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을 채집해 왔고, 시골로 간 친구들 역시 잠자리와 풍뎅이 같은 녀석들을 핀으로 박제해서 곤충 채집 숙제로 제출하곤 했다. 그 때 난 뭘 채집했더라. 고작 흔해 빠진 매미나 잠자리였겠지. 지금도 꼬맹이에게 잡아 준다는 핑계로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 다니다 보면 가끔씩 그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 나만 즐겁다 됐냐?

변호사이자 부사관으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저자의 아버지 잭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으로서는 정말 빵점이었던 모양이다. 푸엘폰테인 시골 농장의 일상적 인종차별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교사였던 어머니의 이중적 모습은 역설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남편 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의사가 변호사 같은 먹물이 되어야 한다는 편견에 젖어 있었다. 유색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은 ‘비정한 유대인’에 대한 아프리카너들의 편견도 주목할 만하다. 편견에도 피부색에 따른 계급적 차별이 존재하는 걸까.

 

한편, 존 쿳시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러시아인을 선호했지만, 이미 그는 그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게 되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에서 공부 잘하던 소년은 수학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서 시험을 잘 치렀지만, 역사와 지리 같은 암기 과목에서 소질이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소년 시절>의 후반에서는 우스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갔지만,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하며 가세를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일을 하면서 빚을 지고 결국 파산으로 내달려 가는 아버지에 대한 비난조의 글들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그렇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할수록, 어머니는 억척 같이 저자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전력투구에 나선다. 어느날 아버지가 자살하지나 않았는지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정신줄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꼬마 존이 품은 생각을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정말 짠했다. 모든 가정마다 그 나름의 고민이 있다고 하던 톨스토이의 말대로 쿳시 집안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잦은 이주와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통과하면서, 존 쿳시는 철부지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너들이라의 삶이라는 다소 생경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결국 우리네 일반적인 삶을 관통하는 원류로 회귀하는 과정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년의 진술을 듣다 보니 어느새 소설의 결말 부분에 도착해 있더라. 그리고 아마 다음 이야기는 역자가 예고한 대로 <청년 시절>과 <섬머 타임>으로 이어질 모양인가 보다. 앞으로 절판된 쿳시의 책들이 연달아 나올 모양인데, 기대해 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8-08-22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다. 레샥매냐님 존 쿳시도 전작 중이셨죠? 최근에는 로맹가리 리뷰를 자주 봐서 깜빡했어요. ㅋㅋ
왕은철 번역가는 독서 에세이집도 2권 냈던데 전 그 산문집도 궁금하더라구요.

레삭매냐 2018-08-22 23: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존 쿳시도 전작하는 작가랍니다 ^^

이언 매큐언은 이제 다 끝났으니 로맹 가리
와 존 쿳시 그리고 토니 모리슨에 집중해야
지 싶습니다.

버뜨 다양하게 읽을 책들이 마구 생겨나서
쉽지가 않네요.

왕 교수님은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가 보네요.
어느 신문에 북칼럼도 쓰시는 것 같던데.

stella.K 2018-08-2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평점이 생각 보다 그리 높지는 않는 것 같네요.

레삭매냐 2018-08-22 23:18   좋아요 1 | URL
제가 올리는 평점은 지극히 주관적인지라...

<추락> 같은 한 방이 없다고나 할까요?
너무 평이한 느낌이었습니다.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 - 한스 폰 루크 회고록
한스 폰 루크 지음, 진중근.김진완.최두영 옮김 / 길찾기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 국방군 출신 최연소 대령이자, 조상 대대로 육군으로 조국에 봉사해온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의 한스 폰 루크의 회고록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를 읽었다. 블리츠크리크로 유명한 폴란드 전역으로 시작해서, 대 프랑스 전에서는 롬멜 휘하의 유령 사단(제7기갑사단)의 일원으로, 대소전을 비롯해서 북아프리카에서는 사막의 여우 롬멜 휘하에서 아프리카 군단으로, 노르망디에서는 영국군을 상대로 싸웠으며 마지막 베를린 포위전에서는 소련군을 상대로 무용을 자랑한 그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 전사의 기록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후에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그루지야의 굴락에 버금갈 만한 포로수용소에서 5년간 잡혀 있다가 고향인 플렌스부르크로 귀환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생부를 잃은 루크는 목사 출신이었던 양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한 프로이센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원래 루크는 법과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가문의 직업인 군인이 되라는 양부의 조언에 전후 전승국의 엄격한 감시를 받던 제국 육군의 일원으로 직업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훗날 무적의 독일 기갑부대의 모체가 되는 차량대대(그 유명한 판지로 만든 장갑차와 탱크 부대)의 사관후보생으로 프로이센식 엄격한 규율과 훈련을 받으면서 미래의 기갑부대장으로서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드레스덴 보병학교 시절 만난 교관 에르빈 롬멜 대위와의 운명적 만남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루크가 소위로 임관할 무렵 등장한 히틀러의 등장은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6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실업률, 가혹한 전쟁배상금과 영토 할양 등으로 국민적 수모를 겪던 독일 국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라인란트 진주 등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국가사회주의 나치즘의 부상은 독이 든 성배였다. 변명 같이 들리지만,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독일 군대의 특성은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고 국가수반의 자리에 오른 히틀러의 재무장과 이어지는 군부장악 와중에 대다수 제국군은 과거의 영광의 재현이라는 선전선동 아래 나치스의 도구가 되었다.

 

소위 임관 후, 한스 폰 루크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러시아 어를 배우는 기회도 갖게 되는데, 훗날 러시아에서 혹독한 포로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에는 소련과 비밀리에 맺은 협정에 따라 기갑부대 훈련을 소련에서 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에피소드(결국 무산되었다)도 흥미롭다. 아울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도 출전할 뻔 했다는 화려한 전적이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의 저술을 읽다 보면, 한스 폰 루크야말로 독일이 자랑하는 군인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충성, 엄격한 신체조건, 교양과 학식까지 모든 요건을 갖춘 엘리트 장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전장에서는 적군이었던 폴란드군과 소련군 역시 조국을 위해 자신과 같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점을 인정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시발이 된 폴란드 침공전에서 기갑수색대대 중대장으로 실전에 참가한 루크는 준비된 전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용맹을 보여준다. 야전에서 지휘관으로 병사들을 무작정 사지에 내모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진을 돌파하기 위해 궁리하고, 솔선수범해서 자신이 최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훈련과 신념으로 무장한 전사의 모습이 아니던가. 루크는 뛰어난 전략가답게 폴란드와 공수동맹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가 서부전선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히틀러의 예언대로 연합군들은 꼼짝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앉은뱅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폴란드전에서의 승리로 사기가 충천한 독일군은 예봉을 서부전선으로 돌렸다. 총통의 경호대장에서 야전 기갑사단장으로 돌아온 산악보병 출신 베테랑 롬멜이 지휘하는 제7기갑사단의 일원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빛나는 독일군의 승리를 장식한 대 프랑스전에 루크는 투입된다.

 

루크는 롬멜 이상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인츠 구데리안의 장갑부대 전술 운용의 시험장이 될 서부전선 무대가 마냥 반가웠다. 최신 무기와 효율적인 훈련, 개전에서의 혁혁한 승리로 고무된 독일 국방군은 5월 9일 개전과 동시에 프랑스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루크는 전장에서 신사도에 입각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마음껏 발휘한다. 전쟁에 미쳐 날뛰는 무장친위대와는 달리 상대방을 존중하는 진정한 군인정신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만슈타인이 제안한 아르덴숲 돌파가 성공을 거두면서 롬멜이 지휘하는 제7기갑사단은 일명 유령사단으로 불리면서, 프랑스 전장을 신출귀몰하게 누빈다. 루크는 사단의 최전방에서 맹활약을 펼친 덕분에 독일군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기도 한다. 독일 본토에서 출발해서 보르도에 있던 프랑스 임시정부를 추격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루크는 다음 번에 투입될 대소전에 앞서 휴식과 정비를 취한다. 격렬한 전투와 ㅍ평온한 휴식이 반복되는 가운데, 전쟁기계 독일 국방군이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하게 될 모스크바 공방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도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는 것이 대소전의 1차적 목표였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신속하게 모스크바를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우랄산맥까지는 자그마치 3,000KM 되는 거리였고,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코 앞에 두고 진격이 멈추어졌다. 계속되는 전투에서의 피로감과 전장에 계속해서 무한대로 투입되는 신예 부대와 전차의 행렬을 보면서 루크는 어쩌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백이십년 전 나폴레옹군의 퇴각 기록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다행히 아프리카 군단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옛 스승 롬멜이 루크에 대해 차출요청을 하면서 루크는 소령으로 승진해서 극한의 소련 전장에서 이번에는 열사의 아프리카로 무대를 옮긴다.

 

호기롭게 투입된 아프리카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루크는 본국으로 이송되어 수개월 동안 요양을 하게 된다. 부상이 회복된 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운 뒤였다. 북아프리카 전장에서 결정적이었던 엘알라메인 전투에서 보급물자와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상대적으로 보급에서 열세였던 독일군을 압도했다. 비행기와 대포, 전차, 탄약, 병사들의 식량 그리고 무엇보다 기갑부대를 운용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휘발유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독일군에게는 충분한 게 없었다. 롬멜은 너무 늦기 전에 후퇴해서 후방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려고 했지만 총통음 무조건 현지사수를 요구하고, 전략적 후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충분한 물자를 제공한 것도 아니었다. 탄약과 휘발유가 없어서 싸울 수가 없다면 이미 말다한 게 아닌가. 사실 북아프리카 전장은 히틀러에게 가장 중요한 전장이 아니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궤멸적 패배로 승리의 여신은 그동안 독일군에게 보내던 미소를 연합군쪽으로 돌린 지 오래였다.

 

루크는 어쨌든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동쪽에서는 영국군으로부터 그리고 서쪽에서는 이제 막 전쟁에 뛰어든 미군을 상대로 후위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루크가 추구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사막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그런 에피소드들이 존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멋진 이야기들이 현지에서 실전을 체험한 군인에게 전해 듣는 경험을 정말 짜릿했다. 전쟁 후에 루크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영국 첩보부대는 독일군의 모든 통신 암호를 선취해서 그들이 전장에서 어떤 전략과 계획으로 나올 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독일군들이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나섰지만,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건강이 악화된 롬멜의 뒤를 이어 아르님 대장으로부터 ‘특별 임무’를 부여 받은 현지 대대장 루크는 독수리요새에서 은거 중인 히틀러로부터 너무 늦기 전에 최정예 아프리카 군단 병력을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본토로 후퇴시켜 훗날을 도모하자는 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본국으로 향한다. 그 순간에서도 수십만의 병사들이 아프리카 열사의 땅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데, 점심식사를 하는 총통을 알현할 수 없다는 참모의 말에 루크는 울분을 터뜨린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느 시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롬멜의 충언을 따르지 않은 히틀러는 2주 뒤에 튀니지에 포위된 독일군의 유럽 본토 후퇴를 승인하게 되는데 이미 늦은 결정으로 자그마치 13만 명이나 되는 베테랑 아프리카 군단의 독일 장병들이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게 잡힌 독일 병사들은 미국 본토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독일군 포로병사가 등장하는 3년 전에 읽은 <독일병사와 함께한 여름>이란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났다. 롬멜은 동쪽의 영국군보다 신참내기 미군이 상대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카세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에게 그야말로 본때를 보여주었다. 루크는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비록 미군이 전투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역에서 전투가 거듭될수록 창의적인 방식으로 적응해 갔다는 냉철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가는 길에 야지에 집적된 미군의 엄청난 물자를 목격한 독일군 포로들이 이런 물자가 그들에게 있었다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는 외침이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역은 독일군의 패퇴로 끝이 났고, 다시 전간기의 휴식이 루크에게 주어졌다. 1943년 6월, 어느 파티에서 1/8 유대인 다그마와 만나 로맨스에 빠지기도 한다. 아마 다그마와의 연애가 이 청년 장교가 전장에서 그 숱한 위기를 뚫고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 아닐까. 루크는 다시 롬멜 휘하에 배속되어 제2전선의 개막을 맞이하게 된다. 롬멜의 전략대로 연합군의 상륙을 해안에서 저지해야 했지만, 전역을 맡은 사령관 롬멜과 사단장 포이히팅어 모두 노르망디에 부재했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주공이 파드칼레 지역일 거라는 자신의 예상을 고집하면서, 신속하게 기갑부대를 동원해서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을 요격할 절호의 기회를 상실해 버렸다. 이후 제공권을 장악한 영미 연합군은 압도적인 포병전력과 함포 사격의 후원 아래 독일군의 보급로를 강타하면서 동쪽으로 진군을 개시한다.


 



제21기갑사단의 예비대로 작전지역에 투입된 루크 연대 전투단은 탄약, 휘발유 그리고 식량 무엇 하나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캉 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효과적인 지연전술을 발휘했다. 루크 중령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서 자신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창의적인 전술을 동원해서 영국군의 진격을 막아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후에도 등장하는 페가수스 다리 전투와 빌라 보카주 전투 같이 노르망디 전역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전투를 치르면서 본토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루크는 드디어 제3제국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프랑스에 주둔 중인 독일군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팔레즈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한 루크는 연합군의 본토 진공을 앞두고 알자스의 리터스호펜과 아떵에서도 격전을 치른다. 잠시도 쉴 새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이번에는 독일 내륙을 가로 질러, 제국의 심장부인 베를린으로 진격해 오던 소련군을 상대로 치른 할베 전투를 마지막으로 루크는 포로가 되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전쟁을 끝마치게 된다. 한편 최후의 전투에 나선 루크와 그의 전우들이 독일 본토로 쳐들어오는 스탈린 적군이 사방에서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분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자신들의 뒤를 이어 진주한 게슈타포와 특수학살부대 아인자츠그루펜이 소련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에 아무 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5년간의 혹독한 포로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고향으로 귀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연인 다그마와는 너무 상이한 생활 조건 때문에 결국 이별하게 된다. 이후 루크는 호텔리어와 민간기업의 수출업자로 변신해서 생활을 영위해갔다. 그후에는 노르망디 전역에서 자신과 맞서 싸운 영국군 장교 존 하워드와 친분을 쌓고 영국 참모대학과 스웨덴 국방부의 초청으로 노르망디 행사에도 참가하고 당시 독일군의 방어전략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1991)는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즈의 도움으로 펴내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숱한 2차세계대전사에 대한 책과 회고록 중에서 가히 최고가 아닐까 싶다. 독일군 최연소 대령인 한스 폰 루크가 참가한 전역이 폴란드, 프랑스, 소련, 북아프리카, 노르망디와 독일 전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2차세계대전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장군이나 참모가 아닌 기동부대의 일원으로 최전선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히틀러 체제에서 자신이 얼마나 제국의 레벤스라움 확보라는 가짜 대의에 속아 전쟁에 나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전장에서 맞닥뜨린 적군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전사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하는 몇몇 장면들도 압권이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히틀러의 수하로서 전쟁에 나섰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리라. 그의 러시아 포로생활이 없었다면 어쩌면 루크의 회고록은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최근 출간된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였던 브룬힐데 폼젤의 일대기를 다룬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누군가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주목할 하다고 생각된다. 후자도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다.

 

[뱀다리] 제목과 달리 1944년 7월 20일 히틀러에 대한 쿠데타 기도가 실패한 뒤, 주범으로 몰려 결국 자살한 롬멜에 대한 이야기가 이후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도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한스 폰 루크는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롬멜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던 걸까. 그것이 궁금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22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22 13:26   좋아요 1 | URL
책의 저자 한스 폰 루크가 노르망디
캉 전투 당시 왜 영국군 전차부대가 기계화보병
을 달지 않고 축차적으로 마냥 전차만 전장
에 투입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석을 하더군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었던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전차의 물량도 물량이
었지만 소련군의 삽날/참호구축이 가장 유효
했다는 분석도 있더군요.

2018-08-22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온라인 기사로 우리가 현재 즐겨 먹는 바나나 캐번디시가 곧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읽었다. 사실 어려서 바나나는 정말 귀한 과일이었다. 씨도 없고, 한 입 가득 베어 먹었을 때 풍기는 과육의 느낌이란! 한 개(finger)에 한 5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당시로서는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일년 봄가을에 가는 소풍날 두 개를 사서 하나는 그 전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풍 당일날 한 개씩 소중하게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하도 흔해 빠져서 트럭에서 파는 과일장수 아저씨는 한 다발(hand)에 단돈 5천원에 파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 댄 쾨펠은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 열대 과일 바나나에 대한 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르포르타주 <바나나>에서 다룬다. 인도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바나나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성경에도 등장하는 선악과가 아니라 바나나였을 거라는 합리적 추정도 내놓는다. 물론 성경학자들이 듣는다면 이단으로 몰리겠지만. 기원전 5천년부터 파푸아 뉴기니에서 재배되었다는 흔적이 있는 바나나는 동남아에서 출발해서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거의 7천년 정도가 걸렸다. 전 세계에서 쌀, 밀, 옥수수에 이어 네 번째 생산량을 자랑하는 이 열대과일은 누구에게는 기호식품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량자원으로도 소중하게 작동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기근발생은 다반사로 알려져 있는데, 우간다를 비롯한 자신의 텃밭에서 바나나를 길러 식량으로 삼는 나라에서는 대량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편, UFC과 스탠더드 프루츠 같은 다국적 바나네로스(바나나 기업)들은 현대문명 기술발전의 세례를 톡톡히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바나나 생산을 담당한 일명 바나나 공화국(과테말라과 온두라스) 독재자들과의 단단한 정경유착도 한몫했다. 바나나를 수확해서 소비처(북미대륙)까지 운송하는 단계에서 냉장시설이 개발되기 전까지 바나나의 갈변을 막는 건 바나나 산업 초창기의 최대 고민이었다. 원래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바나나 산지는 자메이카였다고 한다. 미국의 탐욕적인 사업가들은 바나나 무역이 돈벌이가 될 거라는 점에 주목하고, 현란한 마케팅과 열대과일의 매력을 한껏 강조하면서 미국인들의 식탁에 바나나 올리기 작전을 시작했다.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이 아닌 바나나는 단일품종으로 대단위 재배에 적합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로 대변되는 중앙아메리카 일대에 엄청난 규모의 바나나 플랜테이션이 세워졌고, 바나나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바나나 생산에 나섰다. 코카콜라처럼 박리다매 전략이야말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바나나 기업의 소유주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방 정부를 압박해서 거의 헐값에 가까운 비용으로 농지를 인수하고 세금까지 절감받으면서 UFC와 스탠더드 프루츠 그리고 델몬트로 대변되는 바나나 기업들은 승승장구했다.

 

바나나 기업의 호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나나 대단위 재배를 가능하게 한 단일품종 그로 미셸을 습격한 파나마병(푸사리움 곰팡이에서 유래한 잎마름병)이 그야말로 바나나 농장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흙과 토양이 아닌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싱가토카병까지 발명하면서 기존의 그로 미셸 종은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 대신 파나마병에 상대적으로 내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캐번디시 바나나가 우리가 요즘 즐겨 먹는 바나나의 대세가 되었다. 저자는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라카탄 바나나도 역시 파나마병에 시달리는 캐번디시의 대체종으로 추천하고 있지만, 반세기 전 그로 미셸에서 캐번디시로 갈아탈 때 소비자들의 저항만큼이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는 경고장을 발부한다.

 

그런데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 파나마병이 발병하자 바나나 대기업들은 야생종 바나나와의 변종을 개발해서 파나마병이나 싱가토카병에 대한 내성을 갖춘 품종을 개발하지 않고 대신 손쉬운 방법으로 농약을 살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전자가 지리한 연구와 시간을 요구한다는 건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후자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바나나 기업들이 지불해야할 기회비용이 치솟기 시작했다. 우선 파나마병으로부터 안전한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농지를 개발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해야 했고, 바나나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농약 때문에 직접적으로 불임이나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저임금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 UFC 같은 기업은 불법적으로 과테말라나 콜롬비아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노조의 결성과 파업분쇄를 사주했다. 실제로 미국 CIA의 지원으로 합법적으로 집권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 때 과테말라에 있던 젊은 의사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을가. 5년 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고, 미국 바나나 기업들이 쿠바에서 소유하고 있던 농장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이에 대한 복수로 UFC는 다시 한 번 CIA와 결탁해서 쿠바 혁명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백색대함대’로 피그스만 침공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1929년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바나나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도 등장할 정도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댄 쾨펠은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서 소비하는 바나나라는 열대과일에 대한 리포트를 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세계를 누비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1년에 설립된 벨기에의 루뱅 연구소가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 싸우는 장소라는 점도 특이하다. 대개 표본을 구하기 쉬운 라틴 아메리카 최대 바나나 생산지인 에콰도르나 또다른 바나나 공화국인 과테말라나 온두라스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하튼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는 기업이나 국가를 초월한 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과연 저자인 댄 쾨펠이 제시하는 유전공학 바나나가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GMO 표시를 하자는 주장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마 기업들 입장에서는 GMO 표기를 하는 순간, 차례로 해당 식품(책에서는 프랑켄푸드라고 꼬집어서 말하고 있다)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제공하게 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경로로 해서 유통되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육종을 개량하고, 잎마름병에 대한 내성을 가진 품종을 개발하자는 저자의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유전자공학적으로 설계된 바나나가 정답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가 없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에서 파나마병에 내성을 가진 야생종 바나나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속히 DNA 분석에 나서고 다섯 그루 밖에 남지 않았다는 녀석을 구출해서 캐번디시 바나나를 계속해서 먹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8-20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옛날엔 금나나였죠.
근데 그땐 어려서였는지 아니면 지금은 흔해져서인지
저는 생각 보다 잘 안 먹게되더라구요.
너무 달아서인 것 같습니다. 육즙없이 퍽퍽하기도 하고.
그걸 못 먹어 한이었던 때도 있었다니
그 시절엔 먹는 게 흔하지 않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8-08-20 11:2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예전에 울나라에서 바나나
드럽게 비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은 저렴이의 대명사가 되었죠...

너무 흔해지니 예전처럼 잘 안찾게
되더라구요. 사람이 참...

목나무 2018-08-20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도 바나나 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때는 그저 드디어 우리나라도 아열대기후가 되어가는 건가... 그 생각뿐이었는데..
우리나라산 바나나는 어떤 상태의 바나나일지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18-08-20 16:3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저널리스트들도 댄 쾨펠 아저씨
처럼 한 가지에 몰두해서 깊이 있는 기사를
좀 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책을 쓸 정도로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쓰는데 말이죠.

한국의 바나나, 기후 변화와 관련되어 흥미
로운 주제 아닌가요?

목나무 2018-08-20 16: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책을 질렀습니다. ㅎㅎㅎ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원래도 관심 있던 주제인데 한 기자가 3년에 걸친 탐사 취재를 하고 직접 살아보고 오지까지 찾아가보고 했다고 하니 저자의 노력을 봐서라도 정말 이런 책은 읽어줘야하는 거 아닌가 해서 냉큼 질렀습니다. ㅋㅋ

한국의 바나나의 앞으로의 전망... 이런 것에 관심갖는 저널리스트가 있을지....음~~~

카스피 2018-08-21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글을 읽으니 바나나 공화국이란 말이 생각나네요.20세기 초에 중앙 아메리카에서 유나이티드 프루츠사 등의 미국 농업 기업이 커다란 농장을 여러 나라에 건설하여 그 자금력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데서 나온 말인데 냉전 시절 미국의 안마당처럼 휘둘리던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그레나다를 비롯하여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쓰였다고 하더군요

레삭매냐 2018-08-21 22: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에서는 바나나 공화국의 대표적인
예로 과테말라와 온두라스가 등장합니다.

UFC(유나이티드 프루츠), 스탠더드 프루츠 그리
고 델몬트를 바나네로스(바나나 기업) 혹은
엘 풀포(문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더군요.
 
나는 떠난다
장 에슈노즈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퀘벡 여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의 꿈 중의 하나는 개썰매를 타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진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육중한 몸을 개들이 끄는 썰매에 올려 달리는 건 아무래도 학대가 아닐까 싶었다. 고작 기념사진 하나 찍자고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건 아무래도 아니었지 싶다. 소설 <나는 떠난다>의 주인공이 북극의 빙원을 누비는 장면에서 문득 옛 생각이 나서 끼적여 보았다.

 

에밀 자토펙의 일대기를 그린 <달리기>로 미니멀리스트 작가 장 에슈노즈를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에슈노즈 작가가 무려 공쿠르상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19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작가라고. 나는 그를 통해 과거를 여행한 셈이었던가 그럼. 에슈노즈 작가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떠난다>를 빌려다 읽었다. 사서 읽고 싶었으나 절판된 책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새해의 두 번째 날, 50대 화랑 주인 펠릭스 페레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사랑과 전쟁을 치르던 아내 쉬잔을 곁을 영영 떠난다. 태생이 바람둥이인 페레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런 남자로 보인다. 그도 한 때는 예술가였던가 본데, 이제는 타인이 만들어낸 예술품을 거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창조라는 행위에 몰두하는 걸까. 그렇게 열정을 쏟은 창조행위가 돈으로 연결이 되면 좋겠지만 대다수의 창작가들이 돈벌이와는 별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창조 행위는 높이 평가하지만, 배고픈 삶은 동경하지 않는 모순적 감정이 불쑥 튀어 나왔다.

 

어쨌든 프랑스 화랑 경기도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복잡한 회계 문제, 신진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서 시장에 소개해야 하는 역할, 자신이 관리하는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준비, 에이전트 수수료를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니냐며 불평을 쏟아내는 예술가들과 그야말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스트레스는 페레에게 일상이 된지 오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존재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소설 <나는 떠난다>에는 정말 많은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주인공 페레를 필두로 해서, 그가 이런저런 관계를 맺는 여성들에, 심장 문제로 그에게 건강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끊이지 않고 해대는 전문의 펠드만, 화랑의 정보원으로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들라에와 그의 애인 빅투아르, 나중에 페레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쉬펭 형사 등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과 퇴장을 거듭한다.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이 과연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가의 스타일과는 좀 차이가 있는 걸.

 

프랑스 파리가 페레가 활동하는 하나의 공간이라면, 다른 장소는 북극이다. 거지발싸개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는 들라에가 1950년대 북극의 모처에서 희귀 골동품을 잔뜩 싣고 난파한 이른바 보물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우리의 주인공 페레는 위기에 몰린 사업의 타개책으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 북극행에 나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얼마 전에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솔라>와 이언 맥과이어의 <얼어붙은 바다>가 연상됐다. 북극탐험이라는 남들은 평생 해볼 수 없는 그런 모험에 나서게 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페레는 생각보다 쉽게 보물선을 찾는데 성공했다. 보물선 하니 최근에 언론매체를 통해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는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 호에 대한 스캔들 생각이 나는구나. 후자가 뜬구름을 쫓는 이들의 허상이었다면, 전자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문제는 페레가 어렵사리 구해온 희귀 골동품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바움가르트너라는 사내가 있었다는 점이다. 심심한 로맨스 타령으로 시작된 소설은 이 지점을 통과하면서 스릴 넘치는 탐정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왜 페레는 당장 보험에 들라는 감정평가사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걸까.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자신의 전리품을 모두 털린 뒤에야 후회하는 모습에서 왠지 꼬소하다는 느낌이 다 들었다.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바움가르트너는 자신의 사주를 받아 정작 절도에 나선 플레탕을 가볍게 제압하고, 남프랑스를 주유하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아니 그 자신만 그렇게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이미 국제적 공조로 바움가르트너는 추격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생 세바스티안에서 자신을 쫓아온 원래 전리품의 주인 페레와 바움가르트너는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자, 과연 바움가르트너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페레는 잃어버린 자신의 전리품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동안 접한 다른 공쿠르 수상작과 달리 장 에슈노즈의 <나는 떠난다>는 상대적으로 읽기 쉽고 흥미진진한 스타일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책을 공쿠르상을 받을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너무 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파격적일 수도 있는 그런 스타일들이 지금은 그냥 심드렁한 이야기란 말인가. 가장이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떠나는 설정도 그렇지 않은가. 하긴 페레 씨가 무작정 떠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프랑스 파리를 떠난 이유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떠난 것이었다.

 

차라리 여자라면 그야말로 사족을 못 쓰는 페레 씨가 어찌하여 자신에게 굴러 들어온 행운의 여신으로 보이는 엘렌을 그대로 놓아 버렸는지 모르겠다. 같은 해 2월 의학적 사망에 가까운 심장폐색을 경험한 탓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매력적인 엘렌에게 끌리지 못했다는 점은 페레 씨의 바람기가 마침내 잡혔다고 봐도 무방할 걸까. 꼬박 1년이 걸린 펠릭스 페레 씨(이름이 무려 ‘행운아’라니 대단하다)의 모험은 흥미진진했다. 그나저나 여전히 <나는 떠난다>가 공쿠르상을 받을 정도의 수작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18-08-17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기는 다른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니, 장 슈에노즈의 작가적인 면모를 보러면 이 책을 읽어야겠어요. 공쿠르상이라뇨!

레삭매냐 2018-08-17 17:58   좋아요 0 | URL
그렇죠 ! 타인의 일대기는 아무래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네요.

이것도 절판된 책이긴 한데 <금발의
여인들>이라는 책이 궁금하네요.
 
국수 1
김성동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는 월초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는데 무려 보름이나 걸렸다. 그런데 시작부터 프로 불편러의 모습을 보여야 하나. 고민이다.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한 외국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이유는 6권 세트로 구성된 <국수>의 마지막 권 국수사전이 이유가 돼지 않을까 싶다. 어려서는 참 모르는 말들을 찾기 위해 두터운 국어사전 찾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김성동 작가가 구사하는 구한말 단어들은 생소하고 어렵고 또 그 의미를 찾기가 귀찮았다. 프로 불편러는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편이지 그런 세세한 의미까지 눈여겨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었다는 말에 그야말로 날개 돋친 책 판매고가 뛰었다고 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마치 로또 맞은 것 같다고 했던가. 좋은 일이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책을 읽게 되는 동력을 맞는다는 건. 그런데 낱권으로는 (알라딘 지수로)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1권에 비해 나머지 책들은 1/3 토막이다. 판매의 비대칭성이라고 해야 하나.

 

조선 최고의 국수(國手)를 꿈꾸는 유가의 꼬맹이 김석균은 적적암에 기거하는 백산노장에게 기세 좋게 도전장을 던졌다가 일패도지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 불편러는 이 장면부터 벌써 불편해지는 걸까. 그러니까 작가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 사고로부터 이야기의 출발을 예고하는 걸까. 기존 질서를 뒤집어 엎을 수 없었던 동학운동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이, 꼰대정신은 빛을 발한다. 완고하게 구축된 기존 질서에 대한 석균의 도전은, 기존 자동차 업계에 일대 도전장을 던진 경세가 일론 머스크의 그것이 연상됐다. 가솔린 오토메이커들은 일론 머스크가 구상한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망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일이 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망해라를 연호하는 모습. 석균과 백산노장의 대결이 그렇게 나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해서 국수 1편만으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대원군처럼 무작정 조선의 대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고유의 시스템(그것도 중국에서 유래한 성리학적 질서에 다름 아니다)과 악랄한 신분제를 고수하겠다는 방식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애써 부인하는 위정자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없긴 매한가지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갑오농민운동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의 밑밥이 깔리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내러티브의 전개가 궁금하기도 하면서 각주가 없다면 알아먹을 수 없는 조선말 찾기가 귀찮고 버겁다. 단어들을 읽다 보면 문맥을 뚝뚝 끊어지니 말이다. 아마 그래서 분량은(285쪽) 얼마 되지 않는 읽느라 시간이 곱절은 더 걸린 느낌이다.

 

백산노장이 유가의 막둥이에게 유불이 다루는 진리가 다름이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쌩뚱맞다. 애시당초 조선 설계자들의 국시가 간단하게 말해서 숭유억불이 아니었던가. 국가적 차원에서 유교 질서의 지배자들은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하는데 전력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척점에 서 있는 노승이 말하는 대로 두 상이한 집단이 화해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김사과 댁 영재이자 석균의 아버지 김병윤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공맹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실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공정한 인재선발이라는 명목 하에 시행되어온 과거라는 시스템 자체가 중앙집권적 군주를 위한 제도가 아니었던가. 아산현감이 되어 기존의 적폐들을 일소하고, 백성들을 위한 어진 목민관이 되겠다는 김병윤의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정조의 개혁정치도 영명한 군주가 추구하는 개혁을 뒷받침할 때묻지 않은 신진 사대부들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개혁이 정상궤도에 오를 절대적 시간과 지속적 추구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었기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일개 목민관이 수세대에 걸쳐 누적된 병폐를 일소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였다.

 

아산이라는 작은 고을에서도 현실이 이럴진대, 국가적 차원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민비를 중심으로 한 외척 민씨들이 조선 팔도를 주무르면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직매매는 기본이었고, 민서들은 기껏 농사를 지어도 대동세 같은 세금과 지주 몫으로 내정된 곡식을 내고 나면 그야말로 남는 게 없었다. 어째 상황이 날이 갈수록 보수 언론에서 그렇게 목놓아 외쳐 대던 트리클 이펙트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를 게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마당에 아버지 김병윤처럼 입신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노력 대신 조선 팔도에서 제일 가는 국수 김시 씨를 이겨 보겠다는 유가의 막둥이 석균의 꿈이 한편으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면서(뭣이 중헌디 시방!) 또 한편으로는 마치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에 출전해서 세계 킹왕짱이 되어 보겠다는 21세기 소년의 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애잔해지기도 했다.

 

외세의 대결과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는 격변의 시기를 맞아 한가롭게 바둑 타령이나 할 수 없다는(석균이 지주 김사과댁 맞손주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언명령에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후속편들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난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21세기에 순수한 조선말을 지켜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도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고. 그렇다면 아예 한글이 창제된 15세기 국어 표기를 하자고 주장할 것이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8-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대가 많았는데
의외로 평은 그다지 않좋아 일단
보류중입니다.
그런데 레님은 완독은 안하실 건가요?
갈수록 좋은 느낌이라면 저도 고려는 해 보겠는데...ㅋ

레삭매냐 2018-08-16 20:00   좋아요 1 | URL
전 아무래도 완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읽어야 할 다른 책들이 너무
많구요... 시간 들여서 나머지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