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주 들르는 동네 카페에 외국인들에게 선거권을 주면 안된다며 청원을 올린 게시물을 읽었다. 가뜩이나 제주도에 입도한 예멘 난민 문제로 제노포비아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등장한 글이라 유심히 읽어 보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식 귀화하지 않은 이상,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합법적으로 거주한 지 3년 이상이 되고, 외국인 명부에 등록한 사람들에 한해서 지방선거권은 부여한다는 합리적인 법안이었다. 물론 그들은 세금도 낸다.
가짜 뉴스에 속은 분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외국인은 다 싫어(으응, 과연 백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하며 특히 무슬림과 아랍 출신 사람들에 대한 제노포비아를 폭발시킨 것이었다. 정확한 정보로 팩트폭행을 하니, 해당 게시물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경험을 통해 경제불황이라는 미명 아래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는 제노포비아와 인종주의의 그늘을 보았다. The Depression이라는 고유명사로 알려진 192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세계를 휩쓸었다. 흥청거리던 20년대, 생산과잉으로 촉발된 공황이 무역전쟁을 동반한 세계적인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을까. 그나마 미국은 루즈벨트가 케인즈식 수정주의에 입각한 뉴딜 정책 그리고 2차세계대전으로 완전고용 신화를 창출해 내면서 장기간에 걸친 불황을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그러지 못하고 파시즘이 득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독일에서는 1차세계대전에서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는 기묘한 결과를 대다수 국민들이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전투력에 의한 패배라면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발생한 수병들의 반란 그리고 사회주의 세력의 준동으로 전쟁에 지게 되었다는 극우 보수세력의 선동에 의해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하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여기에서 히틀러와 나치당이 주목한 것이 바로 독일내 유대인들이었다. 엄연한 독일 국민들이었지만 태생적으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소수세력 유대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가 시작되었고(크리스탈나흐트), 독일의 법기술자들은 그 유능한 능력을 발휘해서 인종법으로 인종차별을 위한 사회제도적 기반을 다졌으며, 그 결과 전 유럽을 통해 자그마치 600만의 유대인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편 무슬림 난민들을 받아들이면 나라가 결딴난다는 듯이 부화뇌동해서 가짜 뉴스 제조와 확대 재생산에 집착하는 국내 보수 언론(이라고 쓰고 조중동이라고 부른다)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를 상대로 한 교역에서는 글로벌리즘을 외치면서, 정치적 난민 수용률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점을 왜 굳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세계 10권 경제국가 진입을 그렇게 외쳐 대면서, 그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제노포비아만큼 우려되는 것이 특정 인종에 대한 인종주의다. 우리나라에서 백인 노동자가 불법이민자로 간주되어 폭행을 당하거나, 고용주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두들겨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던가. 오늘 아침에 본 외국인 폭행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타겟이 되었다고 한다. 어제 인스타그램에서는 안성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남성에게 지나가는 행인이 폭언한 뉴스를 봤다. 무슨 피해의식이 있어서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 그런 폭언을 내뱉는단 말인가.
외국인 노동자가 140만 명이나 되는 시절에, 창원출입국외국인사무소 5명이 합법 비자를 가지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을 집단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게다가 5일 동안이나 불법 구금까지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느 누가 그들에게 외국인을 상대로 폭력을 상대한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단속 중이던 자신들의 요청을 거부했다면, 경찰을 불러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닌가.
서구 사회의 백인들에게는 끽소리 한 번 하지 못하면서, 우리보다 약한 나라 출신 시민들을 상대로는 폭력행사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나는 무섭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혹은 유학생들이 만약 다른 나라에 가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무마할 것인가. 그 누군가는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9-11 발생 후,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아랍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와 폭언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9-11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인도 출신 시크 교도들을 아랍인들이라고 생각하고 거리에서 때려눕히고(종교와 인종도 구별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무식함의 발현이었다), 심지어 핵무기로 그들을 공격하라는 범퍼 스티커(Nuke 'em)를 자랑스럽게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게 진정한 애국자라며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들이 인종차별을 심각한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종류의 인종차별도 그리고 인종적 편견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