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핑팡퐁
이고 지음 / 송송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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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하기 전에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터넷으로 <어떤 핑팡퐁>을 몇 편 읽었다. 다음이었던가, 네이버였던가. 연재는 이미 끝나 있었다. 오늘 책이 도착해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역시나 알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재밌었고, 내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과 주인공들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아, 만화 핑팡퐁에는 동물 가면을 쓴 이들이 등장하는데 저자 이고 씨에 의하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뭐 그런 뜻인가 보다.

 

아마도 3년 전, 고양이 핑이 씨와 사자 레드 씨의 연애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어던 핑팡퐁>도 같이 출발하지 않았나 싶다. 핑이 팡이 그리고 퐁이 씨가 테드 할배에게 두 장(설마 이억?)을 뜯어내어 카페를 시작했다. 핑팡퐁은 카페 피파포를 아지트로 삼은 바리스타 게릴라들이다. 그냥 저냥 우리네 일상에서 볼 듯한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렇다, <핑팡퐁>의 이야기들에는 극적인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편안하다. 자극적인 조미료 스타일의 내러티브에 중독된 어떤 이들은 싱겁다고 할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팟캐며 방송 그리고 소설에 이르기까지 지천이지 않은가. 이고 작가는 어쩌면 이런 담백한 이야기로 승부수를 띄운 건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달리.

 

혼밥이 어느새 시대의 대세가 된 지도 오래지만, 주변에는 의외로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아는 어떤 형도 그랬다. 아니 보통 점심은 혼자서 먹어야 할 텐데 그럼 매 끼니 굶었단 말인가. 난 그 시절부터 이미 홀러 부가킹 햄버거 먹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혼밥이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그럴 때 내가 그 형의 밥친구라도 되어 주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 그리고 이고 작가는 타인의 시선이 매우,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특히나 상대방이 나를 판단하려고 든다면 더더욱. 퐁이의 시선에서 제발 나를 판단해 주지 마세요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걸 목격하더라도 제발 참견하지 마시고 못 본 척하고 가주셨으면 참 고맙겠다. 그런데 나라면 같이 먹자고 하는데 매몰차게 내 시간이니 넘어 주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하겠지.

 

나의 주장을 강력하게 펴지 못하는 장면도 공감이 갔다. 딱히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그건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 점심 때, 회사에서 단체로 나가 밥을 먹게 됐다. 사실 어제 먹고 싶었던 순댓국을 먹어서 오늘은 아무거나 먹어도 문제가 없었지. 오늘은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고 하대. 그래서 쭐래쭐래 선두를 따라갔다. 13명이나 되다 보니 주문이 밀려서 가장 늦게 주문한 우리 테이블에 음식이 늦게 나왔다. 아유 정말, 해물 누룽지 파스타 먹다가 입을 델 뻔 했네. 이미 다 먹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냥 먼저 가실 것이지 뭘 참. 상대방을 배려해 준다는 게 항상 미덕은 아니지 싶었다.

 

자신보다 먼저 입사한 후미고 씨를 제치고 남성 발렌타인 씨가 먼저 승진하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랄까 뭐 그런 점에 대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핑팡퐁 친구들이 모여 눈 내리는 가운데 망년회에 참석한 후미고 씨에게 재규어 사장 소키 씨가 카드인지 연하장으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 주려고 하지만, 난 마음에 들지 않더라. 그러니까 승진과 그에 따른 봉급인상 등등의 혜택 대신에 연하장 하나로 그냥 때우려는 거였나 싶기도 하고. 누구처럼 프로 불편러까지는 아니겠지만 마음에 쫌 불편했다고 말하고 싶다.

 



엔딩에서는 연애의 끝은 이별 아니면 결혼이더라는 오래 전부터 결혼하지 않겠다고 떠들어 대던 선배의 애인(지금은 그의 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애도 둘이나 있다)이 말해주던 명언이 생각났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듣자 하니 기존에 발표된 에피소들 중에서 선택해서 책으로 나왔다고 하던데, 그럼 책에 없는 에피소드들도 웹툰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일까. 그나저나 핑팡퐁들의 삶을 관통하는 고고한 유영은 계속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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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블루 컬렉션
장 에슈노즈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뜻하지 않던 문화상품권이 넉넉하게 생겼다, 그래서 바로 중고서점에 달려가 세 권의 책들을 집어왔다.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공쿠르 상에 빛나는 미니멀리스트 작가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였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블루 시리즈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전에 나온 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올디 벗 구디(olide but goodie란 말인가.

 

 

프랑스에서 한 자락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생소한 작가다. 역시나 세상은 넓고 읽을 책들은 하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장 에슈노즈는 소설 <달리기>의 주인공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의 일대기를 쓰려고 한 걸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도 그의 이름을 어느 올림픽 육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선가 슬쩍 본 적이 있었다. 핀란드의 국민영웅 파보 누르미에 뒤를 이어 육상 중장거리에서 한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보유자였다는 점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작가가 소개하는 자토펙의 이야기는 보다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1922년생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출신이었던 소년 에밀은 원래 화학자가 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십대에 이미 공장에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즐린이라는 곳에서 신발을 만드는 바타 공장에서 일하게 된 에밀은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지만, 어느 날 달리기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참, 소설의 시작은 체코에 진주한 독일군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어느 시절에 점령군이 원주민들의 호감을 산 적이 있었던가. 독일계 주민이 다수 사는 주데텐란트 병합과 체코 합병은 차원이 달랐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동안 공업이 발달한 체코는 나치 독일의 병기공장으로 작동했다.

 

연합군의 압도적인 공격 앞에 무너져 내려가던 독일군은 체코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단발마적인 저항을 계속한다. 독일군을 추격하는 소련군을 돕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삽을 들고 나선 청년 에밀의 모습에서 훗날 프라하의 봄에 이제는 해방군에서 점령군으로 변한 소련군에 저항하던 위대한 스포츠 영웅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전쟁 말기, 징병된 에밀은 장교로 임관되어 자신의 주특기인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은 미래의 국민적 영웅에게 제대로 된 유니폼은 물론이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차편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한다. 요즘 같으면 트레이너며, 코치 그리고 컨디션 조절을 위한 담당 요리사까지 딸려서 그야말로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텐데 전후 체코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나 보다. 그럼에도 에밀 자토펙은 국내 대회를 비롯해서 국제대회 특히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중장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특히나 체력 조절과 효과적인 신체 기관의 활동을 최소화하는 달리기 방식을 통한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하지만 에밀 자토펙 아저씨는 그런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웃으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 육상계를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손발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괴한 스타일을 처음 본 이들은 어디 모라비아 시골구석에서 올라온 선수의 촌극인가 싶었겠지만, 체코의 국민영웅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특히 지금까지도 마라톤 종목 우승자가 다른 육상 경기에서 우승한 기록은 없다고 하는데, 에밀 자토펙은 헬싱키 올림픽에서 마라톤과 5000m 그리고 10,000m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참고로 그의 투창선수 아내 다나도 같은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면서 올림픽 역사상 부부가 한 대회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그의 빛나는 모습 뒤에는 그림자도 존재했다. 체코 공산당 간부들은 그들의 국민적 영웅 자토펙이 행여나 서방으로 망명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1950년대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인재들의 서방 이탈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체제경쟁이 이루어지던 가운데, 체코의 위대한 스포츠 영웅이 혹시라도 서방 망명을 하지 않을까 싶어 체코 정보부는 에밀 자토펙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지원은 해주지 못할망정, 불의에 앞서 싸운 조국의 영웅에게 조국이 해준 고작 사찰이라니. 하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영화 <공작>의 흑금성 박채서 씨도 비슷한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를 갖은 핑계를 대면서 막으려는 체코 정보부의 공작은 귀여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에밀의 말을 왜곡해서 자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서방 언론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들 덕분에 에밀의 프랑스와 브라질 비자 신청이 거부되지 않았던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 왜곡을 장 에슈노즈는 유머스럽게 꼬집는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영웅 에밀 자토펙의 진가는 그가 정상에서 기량이 쇠퇴하여 은퇴한 뒤에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멜버른 올림픽 마라톤이 열리기 2주 전에 탈장 수술을 하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출전해서 6위에 그친 모습, 후진 양성을 위해 기꺼이 연습 상대가 되어 주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1968년 체코의 국경에서 대기하던 50만 바르샤바 조약군이 프라하에 기갑부대를 앞세워 진주했을 당시 소신발언을 했다가 모든 명예를 박탈당하고 우라늄 광산에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점은 에밀 자토펙이 과연 무엇을 위해 달렸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자유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체코 민중들을 공수부대와 탱크를 동원해서 무자비하게 진압한 공산주의 독재자들의 편에서 자신의 안위를 구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에밀 자토펙은 청년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절대 불의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가 선이라고 믿었던 소련군이 불의의 동조자로 바뀌자 가차 없이 자신들을 나치 독일에게서 해방시켜 준 소련군에 저항했다.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정치를 배제시켜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상 올림픽만큼 스포츠를 가장한 정치적 행사가 또 있을까 싶다. 치열한 경쟁으로 순위를 매기고, 다시 그렇게 획득한 메달 색깔로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으로 우리 조국이 다른 나라보다 낫다는 선정의 장이 올림픽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에밀 자토펙도 순수하게 달리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올림픽과 각종 국제경기에 참가해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고 우수한 성적을 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프랑스 출신 작가 장 에슈노즈도 그런 점을 파악하고, 달리는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의 일대기를 소설화한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작가답게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는 내 취향에 맞으면서도 다양한 사유들을 하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갑자기 에슈노즈의 다른 작품들이 더 읽어 보고 싶어졌다. 문제는 거의 다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다는 게 맹점이다. 천상 도서관을 이용해야지 싶다. 이런 책은 그야말로 연필로 밑줄 좍좍 그어 가면서 읽어야 제 맛인데 말이다. 고게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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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필로 밑줄 좍좍~너무 좋아요 표현이 살아있어요 홍홍

레삭매냐 2018-08-16 11:05   좋아요 1 | URL
아마 이래서 책은 사서 읽어야 하는게
아닌가 스스로 위로한답니다 :>

카알벨루치 2018-08-16 11:06   좋아요 1 | URL
작가들은 책쓴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ㅎ금전적인 여유가 되면 다 사주고 싶다는 ㅎ

카알벨루치 2018-08-16 11:41   좋아요 1 | URL
근데 무선제본은 읽기가 훨씬 편한가요? 양장보다?

레삭매냐 2018-08-16 11:46   좋아요 1 | URL
전 무조건 양장팬이라 양장을 샀겠지만
무선은 초이스가 없으니...

뭐 원체 페이지 수가 적어서 아주 부담
이 없더라구요(본문 146쪽).

카알벨루치 2018-08-16 12:00   좋아요 1 | URL
책은 무조건 양장!!!!

목나무 2018-08-16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 하시니 저도 우선 찜부터...ㅎㅎㅎ
절판된 책들 꼭 구하시길 바랄게요! :)

레삭매냐 2018-08-16 11:47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날로 먹은 느낌입니다 :>

다른 책들은 오늘 도서관으로 빌리러
가려구요. 그놈의 공쿠르 상 수상작도
재밌을 지 궁금하네요.

뒷북소녀 2018-08-16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표지로 읽었었는데 또 리커버 됐네요^^

레삭매냐 2018-08-16 11:48   좋아요 1 | URL
그리고 보니 표지가 자그마치 세 종류
나 되는 것 같아요.

자토펙 아저씨가 나오는 것 하나
신발짝 그림 하나 그리고 이번에 무선
제본으로 나온 것.

아주 열책에서 징하게 우려 드시는 듯.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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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모름지기 강력한 동기가 필요한 법이다. 나의 이번 <랩 걸> 도전의 강력한 동기는 알라딘 라로님의 독촉(!)이 주효했다. 다행히 <랩 걸>은 이미 작년 가을에 사서 잘 묵혀 두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책상에서 바로 멀지 않은 곳에 한 눈에 찾을 수 있는 곳에 떡하니 꽂혀 있어 독서를 시작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 음란마귀가 씌운 탓인지 <랩 걸>이 랩댄스를 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일까하는 엉뚱한 공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자 그럼 우리의 주인공 ‘랩 걸’ 호프 자런에 대해 한 번 알아 볼까.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1969년 더럽게 춥기로 유명한(겨울 학기에 눈이 와서 교통이 두절되면 이틀씩이나 쉬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터널로 강의실 이동을 한다는 말도 있다) 미네소타 오스틴 출신이다. 아, 참고로 미네소타는 미국에서 가장 표준적인 영어를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자그마치 42년 동안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물리학과 지구과학을 가르쳐온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덕분에 아버지의 실험실은 저자의 좋은 놀이공간이 되었다. 어쩌면 고식물학자로서 호프 자런의 커리어는 이미 그 실험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다가, 곧 지질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7세에 부모에게서 독립한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학과 커리큘럼과 일자리 시간조정에 목을 매다시피 하며 살았다. 호프 자런의 젊은날의 생존기는 훗날 종신교수가 되고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기 전까지, 식물에게는 물보다도 더 귀한 연구 자금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묘하게 겹쳐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죽음의 실체에 대해 누구보다 더 빨리 깨닫게 되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미네소타에서 출발한 호프 자런의 여정은 캘리포니아(토양과학 박사학위)의 버클리, 애틀란타에 있는 조지아텍 그리고 볼티모어에 소재한 존스홉킨스를 위시한 그야말로 미국에서 난다하는 공대들을 섭렵하기에 이른다.

 



버클리에서 땅을 파다가 만난 평생 지기이자 자신이 가족으로 생각하는 빌과 함께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리고, 보수적인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과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호프 자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때 즐겨 보던 미드 <빅뱅이론>이 떠올랐다. 조금 희화화된 설정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고식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최근 우리의 관심이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변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한편 미연방정부의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는 형편없기 때문에, 특히나 군수물자나 전장에서 쓸모 있는 획기적인 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순수과학에 대한 연구 자금 확보는 자런에게 주어진 지상과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과학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연구 자금의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기자재들은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자런 교수의 학문적 멘터 에드 학과장 같은 이들의 후원/기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박사 학위가 없는 연구 파트너 빌의 월급 확보를 위해 자런 교수가 오랜 기간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는 점은 특히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느 것도 쓸모없는 연구는 없다. 사유와 실험을 통해 세운 가설을 실존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빅뱅이론>에 등장하는 괴짜 과학자들의 모습이 완전 왜곡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에서 빌린 밴을 이용해서 로드 트립에 나서는 장면은 또 어떤가. 미국 최고의 MIT에서는 학부 시절 무엇보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호프 자런 역시 그런 교육의 세례를 충실하게 수행한 덕분인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위대한 식물의 삶에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는 글쓰기의 전범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자동차 여행이라는 미국 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문학적 전통을 그대로 수행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거리를 줄이겠다고 나섰다가 현지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아 밴이 전복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전에 등장한 ‘원숭이 정글’ 방문기는 이 사건에 비하면 그야말로 워밍업 정도였다.

 

박사학위 논문 과제였던 팽나무 씨앗 연구 도중에 발견한 오팔의 비밀에 대한 발견한 장면에 대한 묘사는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호프 자런은 무한대로 확대되어 가는 우주에서 창조주의 어떤 오묘한 진리를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존재론적 희열의 정수를 맛보았다. 그 때의 힘으로 업계의 성차별과 싸우며 영양실조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는 자기확신을 재창조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때와 비슷한 체험은 훗날 남편 클린트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할 때의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성 과학자의 신산한 삶에 대한 저자의 냉소적인 유머 섞인 조화로운 글쓰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저자의 삶과 과학적 성취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나? 최근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솔라>에도 등장하는 인공광합성의 주인공 마이클 비어드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에게는 식량, 의약품 그리고 목재라는 기대치를 주고 있는 식물이 뿌리가 빨아들인 물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산화탄소 그리고 이파리가 흡수한 햇빛으로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에너지원을 만들어내는 광합성에 대한 설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 호모 사피언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인 포도당/설탕물을 제공하는 게 바로 식물이라는 상식을 이제야 깨닫게 된 기분이었다.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유기화학물이야말로 산화와 환원이라는 자연계의 법칙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도 가지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 자신과 똑같은 DNA를 가진 후손을 만들어낸다는 버드나무 이야기,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대기를 통해 강력한 천적 텐트나방 애벌레의 등장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대기 중에 휘발성 유기 화합물에 실어 보낸 알래스카 시트카 버드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하나의 동일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동물을 능가하는 식물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필요 없어진 개체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냉정하게 영양분 공급을 차단해서 고사시키는 방식에 대한 소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조금 원시적인 방식의 외떡잎 풀인 밀과 쌀 그리고 옥수수에 전 세계 70억 인구가 식량자원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만한 사실이었다.

 

호프 자런의 식물 연구와 그에 투영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자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무정한 과학자의 면모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동료 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사랑하는 이를 잃고 끝모를 상실감에 빠진 빌을 설득해서 아일랜드로 필드 트립을 떠나 이끼를 채집하자고 꼬시기도 하지 않았던가. 호프 자런과 빌 같은 일벌레들에게는 고통 탈출도 일로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끝으로 호프 자런은 <랩 걸>을 읽은 독자들에게 제안을 하나 던진다. 우리 인류가 이런 식으로 자연을 마구 개발하다가는 600년 정도 지나 나무들이 사라져 버리고 그루터기만 남을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미국 같으면 비용 문제가 안될 거라고 하지만, 우리하고는 아마 상황이 다르겠지. 빨리 자라고 무언가 효용을 기대할 수 있는 과실수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관리가 쉽지 않고 금세 죽을 수도 있다며 대신 떡갈나무나 참나무를 작가는 추천한다. 지구별의 에코시스템에 공헌하면서도, 생로병사라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자연의 신비를 맛보게 해줄 수 있는 나무심기야말로 가장 간단한 자연사랑의 방법이 아닐까. 어제 교회에서 꼬맹이가 환경지킴이라는 뱃지를 하나 달고 왔던데, 때마침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자연친화적인 주제들로 이루어진 <랩 걸>을 읽게 돼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호프 자런 교수의 다른 글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더욱 열심히 글쓰기와 자신의 고유 영역인 식물연구에 정진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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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13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창 올림픽을 위해 오래된 숲을 망가뜨리는 걸 서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나무 나아가 자연을 위할지는..ㅡㅡ;;

저는 갈아입은 표지판으로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저도 곧 읽을 것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08-13 13:47   좋아요 0 | URL
언젠가 들었었는데,
미국 웰즐리라는 동네에서는 자기네 집
앞마당에 있는 나무를 한 그루 베려고 해도
시청에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하더
라구요.

올림픽한답시고 수백년된 숲을 통째로
베어 버리는 우리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작년에 사둔 책이었는데 이제사 읽게 됐네요.

뒷북소녀 2018-08-1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표지가 더 좋아서 리커버 됐을 때 일부러 안 샀어요.

라로 2018-08-13 13:27   좋아요 2 | URL
저도 이 표지가 더 좋아요. 고급스럽고. 미국판이나 새로 나온 건 성의가 없는 듯 보여요. 이것과 비교하면. 홉 자런에게 저정도 성의는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죠~~^^;;

레삭매냐 2018-08-13 13:48   좋아요 1 | URL
참나무겨울살이, 그림 너무 멋졌어요.

속 표지는 ‘그린‘으로 호프 자런 교수의
그린 그린한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나
할까요.

라로 2018-08-13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광입니다. 레삭매냐 님의 페이퍼에 제가 등장하다니!!^^;;
님의 글을 읽다가 줄거리가 나오는 것 같아서 읽다 말았어요. 다 읽고 읽으려고요. 제목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고 하셨는데 내일 당장 알아볼까봐요. 저도 분발해서 열심히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레삭매냐 2018-08-13 13:50   좋아요 0 | URL
라로님 덕분에 그동안 여기저기서 좋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 주말에 부지런히
읽어서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답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나무심기 너무 멋진 것 같아요 !~

라로 2018-08-14 13:51   좋아요 1 | URL
책을 다 읽고 님의 글을 마저 읽었어요! 레삭매냐 님 덕분에
하루라도 빨리 읽게 되었어요!!
나무는 참나무를 심기로 했어요. ^^;
 
그리스의 끝, 마니 -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세상에 이렇게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가 있는 건가? 무려 1년 반이나 걸리다니. 물론 내내 읽은 건 아니고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앞에 읽은 내용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스의 끝 마니>는 어느 신문에 실린 황현산 선생의 추천으로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나마 책 앞에 읽기 시작한 날짜를 적어 두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조차 몰랐으리라.

 

전쟁영웅의 마니 여행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동안 안다고 생각해왔던 그리스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영국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힌다는 패트릭 리 퍼머는 이번 여행기의 목적은 코카콜라와 철의장막이 한창 씨름을 벌이던 냉전시기에 모든 장소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그리스의 오지 마니를 찾아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명예 크레타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정도로 그리스애호가인 작가가 그리스인들의 삶의 터전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서구 문명의 원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이해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부재했다면 펠로폰네소스 남부 특히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패트릭 리 퍼머의 마니 지방 여행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늘날 그리스는 유로 위기를 촉발시킨 주범으로 몰려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냉전 시대에는 서방세계와 철의장막으로 대변되는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이 첨예하게 맞붙은 곳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 후반에도 이미 마니 지역 고유의 문화들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상황은 또 어떤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수세기에 걸친 터키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에 대항해서 유구한 민족성을 지켜낸 유럽문화의 사실상 최남단에 위치한 마니 지방에 대한 작가의 찬가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리 퍼머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명한 유적지 등은 애써 피해 다니고 있는 듯 싶을 정도로 카이크와 노새의 힘을 빌어 에게 해와 마니 지방의 곳곳을 누빈다. 만가와 혈수(血讐) 그리고 이방인과 나그네를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환대하는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스케치는 정말 일품이다. 아울러 그네들의 삶을 근거리에서 관찰해서 기록으로 옮긴 실력은 최고의 여행작가라는 표현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정말 한 나라 문화와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언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크레타 군정장관 하인리히 크라이페를 사로잡는 쾌거를 올릴 정도로 크레타의 평범한 양치기로 위장하고 원주민 행세를 하며 익힌 자신의 언어 실력을 자신의 마니 여행기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리 퍼머는 역사에 기록된 정사 외에도 1696년 크레타의 마지막 거점 칸디아가 투르크 손에 떨어지자 비틸로 지방의 유력한 두 가문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 토스카나 볼테라 지방과 코르시카 카제스에 정주하게 된 일단의 사건들도 세심하게 다루면서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단상도 전해준다. 종교적 색채가 다른 적대적 지역 주민들과의 통혼 그리고 그리스 정교도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역사 속에서 소멸해 버렸다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전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행기의 후반에 저자가 공들여 전해주는 서방 세계에 전파된 기독교 정신과 그리스 철학의 만남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들여다 보면 한결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인들의 세속적 삶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원래 다신교의 나라였던 그리스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기독교에 무리 없이 편입되었는지 빼어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입증한다. 어쩌면 그리스 철학의 개입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보편 종교로서 서방 세계를 대표하는 종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성삼위일체를 비롯한 핵심 기독교 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정교회 성인전에도 없는 기상천외한 포용력을 발휘해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과 이교도 종교관습들이 그리스인들의 신앙체계에 침투했다는 지적도 흥미로웠다. 그리스 문화를 계승한 비잔티움 제국의 교부와 사제들이 추구한 추상적 개념의 교리추구 그리고 서방교회에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 필리오케 같은 개념을 동원해서 르네상스로 접어들고 있던 인간을 신의 영역으로 이끈 서방 라틴세계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고 작가는 설파한다.

 

개인적으로 <그리스의 끝 마니>의 핵심은 <성상> 챕터라고 생각한다. 라이아의 어느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 쇠락한 프레스코화를 대면한 작가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마니 사람들과 불가분에 있는 정교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스 정교회 세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콘스탄티노플(리 퍼머는 이스탄불이라는 이름보다 고대의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명칭을 고집한다)이 정복욕에 불타는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학문 발전은 중단되었고, 교회의 생존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그 결과, 가뜩이나 보수적이었던 정교회는 르네상스 발흥기의 서방과 비교해서 문화, 예술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오랜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심오한 내공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서방 가톨릭 세계가 오랜 불화를 이겨내고 이교도보다도 더 증오하게 된 동방 정교회를 도와 오스만의 침공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수호할 수 있었다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가정까지 하는 걸 보면서 현대판 로미오이의 한 단면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칼라마타 부근에서 출발해서 타이게토스 산맥을 넘어, 남쪽 끝의 마타판 곳을 지나 마침내 기티오에서 리 퍼머의 마니 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950년대에 나온 <그리스의 끝 마니>를 읽으면서 과연 패트릭 리 퍼머가 지난 세기 최고의 여행작가라는 표현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됐다. 느릿느릿 해안선을 따라 운행하는 증기선이나 노새의 힘을 빌어 도보로 마니에 산재한 크고 작은 마을들을 섭렵하며 마니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체험을 총동원해서 그들의 삶에 대한 단상을 풀어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했다. 단기 여행으로 피상적 체험기를 풀어내는 근래 유행하는 부박한 여행기와는 질적으로 차원으로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니와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리 퍼머는 심지어 마니 지방에 사는 동식물에까지도 무한한 사랑을 보여 주지 않았던가. 현대판 오디세우스 패트릭 리 퍼머의 마니 주유기는 비록 기티오에서 끝났지만, 또 다른 그리스 여행기인 <루멜리>를 기대해 본다. <그리스의 끝 마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여행기였다. 읽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그런 독서의 시간들이었다. 대단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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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2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서양미술사>를 10년째 읽고있습니다 ㅜㅜㅎ

레삭매냐 2018-08-12 09:12   좋아요 1 | URL
책의 분량이 두툼하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출판사에서 <루멜리>도 내주었
으면 좋겠는데 아마 난망해 보이네요.

카알벨루치 2018-08-12 09:18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은 제가 모르는 책만 일부러 골라 읽으시는거 아니죠? ^^너무 좋아요! 모르는게 천지라는게...즐독 열독!!!
 
구스타프 소나타
로즈 트레마인 지음, 우진하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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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트레마인,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필력이 오래 되셨는지 비블리오그래피에 작품들이 상당하다. 국내에는 아마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보인다. 여름에 읽기 좋은 책 추천을 어디선가 보고 도서관에서 일단 빌렸는데, 왠지 사서 읽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8월의 첫날 주문장을 날렸다. 그리고 이틀 묵혀서 오늘(8월 3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구나. 예전에는 책에 메모나 밑줄긋기 이런 건 절대 하지 않았는데 산 책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관대해지기로 했다. 포스트잇도 붙이고, 메모도 달고 밑줄도 쫙쫙 그으면서 말이다.

 

소설 <구스타프 소나타>의 주인공은 당연히(응?) 구스타프 펠러다. 전후 스위스의 가상도시 마츨링헨에서 에멘탈 치즈 공장에서 일하는 싱글맘 에밀리에와 같이 산다. 아버지 에리히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말로는 유대인들을 돕다가 돌아 가셨다고 하는데,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는 에밀리에는 뒤에 등장할 우리의 조숙한 구스타프의 절친 안톤 츠비벨(독일어로 양파)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반유대주의의 가정적 실천이라고 해야 할까.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에서 이미 그려진 가난과 궁상에 대한 이미지가 세련되게 재현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스위스적인 모습으로 살라는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시는 막스 호들러 선생님에서 보충수업비를 내지 않는 장면, 꽃가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려는 안톤의 어머니에게 거지들이 무슨 선택이 있겠냐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한 마디로 가장의 부재와 가사의 궁핍을 초래한 원인제공자에 대한 증오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 에밀리에가 폐렴에 걸려 구급차에 실려 가자, 홀로서기를 위해 준비하는 구스타프의 모습은 정말 슬펐다.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피아노 영재 안톤의 무대 공포증 징크스도 그만큼 안타까웠고. 그러니까 구스타프에게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다준 가난이 불행의 근원이었다면,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의 안톤에게는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무대공포증이 문제였던 셈이다.

 

로즈 트레마인은 그렇게 구스타프와 안톤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한 뒤, 과거로 독자들의 시선을 돌린다. 그러니까 구스타프의 엄마 에밀리에가 어떻게 에리히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는지 말이다. 바젤 출신의 에밀리에는 그저 소박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구스타프 같은 아이를 낳아 기를 꿈에 젖어 살았지만, 에리히가 시시각각 전쟁 국면으로 돌입하는 유럽의 정치상황을 고민하고 있었다. 임신 중이던 에밀리에를 밀었다가 아이가 사산되는 비극이 벌어지면서, 부부 사이는 영원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부서장 에리히가 서장 로거 씨가 부재 중인 동안,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유대인들에게 불법서류를 발급해 준 것이 들통나 해고되면서, 펠러네 집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니까 에밀리에의 반유대주의는 그녀로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다시 점프를 해서 현재로 이동한다. 한 시절 피아노 영재를 꿈꾸던 안톤은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그리고 어린 시절 꿈도 없이 자란 구스타프는 펠러 호텔의 주인이 되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강조한 대로, 절제와 겸손 그리고 균형을 중요시하는 스위스인이 되어 객실 12개 짜리 자신의 호텔을 찾는 손님들에게 그야말로 가족같은 분위기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멋진 호텔리어가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갔으면 좋았으련만, 로즈 트레마인은 한 차례 평지풍파를 준비한다. 먼저 펠러 호텔에 찾아온 영국 대령 출신 애슐리 노튼 씨가 있었다. 그는 전쟁 당시, 영국군으로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키는 가운데 사진사로 현장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당시의 비극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게, 그의 망막과 기억 속에 사진 같은 영상들을 현상시켰다. 구스타프 역시 유대인 구조에 나섰다가 비명횡사(?)한 아버지 에리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령으로부터 더 늦기 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찾아 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그 와중에 구스타프는 독자들은 2부를 통해 알고 있던,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에리히가 스위스 연방정부의 방침에 위배되는 위조서류를 발급한 사실에 대해 스위스 법무부에 누설을 했는지도. 어쩌면 이 미스터리야말로 정말 궁금한 점이 아니었을까.

 

다음 중년의 위기는 제네바의 한스 히르슈라는 음반업자의 꼬임에 넘어가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떠난 안톤에게 들이닥친다. 자신이 가르친 영재가 세계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본 50대의 안톤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 취입을 미끼로 자신에게 접근한 한스의 부추김에 지난 세월을 후회하면서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난다. 자기파멸적 삶으로 치닫는 안톤에게 구스타프는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구스타프 소나타>는 1938년 스위스의 장크트갈렌의 경찰 서장파울 그뤼닝거(1891~1972)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은 소설이다. 소설에서처럼 파울 그뤼닝거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불법적으로 구조했다는 혐의로, 경찰서장에서 직위해제되고 해고되었다. 물론 연금지급도 없었고,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려움 가운데 평생을 살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에서처럼 전쟁 중에 죽은 건 아니었다. 물론 로거 씨의 부인 로티와의 로맨스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유대인을 돕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한 그뤼닝거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위스 연방정부의 방침대로 행동했다면, 그뤼닝거에게 어떤 피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고, 그가 감수해야 할 고통은 심대했다.

 

한편 소설에서 에밀리에가 안톤과 츠비벨 가족에 보이는 적대감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유대인 난민협회에서 어느 정도 도움을 제공했자면 그녀의 반유대주의 감정은 훗날 그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핑계거리가 너무 좋지 않은가.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히틀러의 막강한 전차부대가 중립국 스위스를 언제 짓밟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유용한 방패막이도 있지 않았던가. 솔직히 스위스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많은 수의 유대인들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밀려온 동포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 게 사실이 아니었던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다투기에 앞서,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떤 양심의 호소에 따를 것인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평생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어머니 에밀리에에게 구스타프는 보답 없는 사랑의 실체를 알려 주고 싶었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구스타프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준 이들이 바로 유대인 츠비벨 가족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왜 에밀리에는 그들의 도움을 선의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어쩌면 에리히의 선행이 다른 방식으로 펠러 가족에게 보답해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던 걸까. 마지막에 평생 친구 안톤을 돕기 위해 구원의 길에 나서는 구스타프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에리히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스타프 소나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실제 의인이었던 파울 그뤼닝거의 삶에 로티와의 불륜이라는 코드가 적합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들었다. 소설적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과연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싶다. 결말 부분에 가서 김이 좀 빠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정과 보답 없는 사랑에 대한 <구스타프 소나타>는 나에게 참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뱀다리] 소설에 등장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이 궁금해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연주한 음반을 구해서 들으면서 리뷰를 썼다. 건반 위에서 그야말로 한 마리 송어가 통통 튀는 듯한, 격정이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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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0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찾아내고 꼼꼼하게 짚어주시는 레삭매냐님 사랑합니다....

레삭매냐 2018-08-06 11:28   좋아요 1 | URL
국립 중앙도서관 여름 추천 도서로 읽은 걸요...

고수들이 즐비한 독서강호에서 그저 다른
이들의 초식을 흉내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