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 건국 잔혹사 - 설계자 이방원의 냉혹하고 외로운 선택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7월
평점 :
조선이 어떻게 세워졌더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배운 바에 따르면, 40여년에 걸친 몽골의 침략과 그후 친원 세력에 의해 장악된 고려 조정은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권문세족의 토지겸병으로 일반대중들에 대한 착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도 몰락하는 국가에 역시 한몫했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으로 조정이 위태로운 가운데 친원세력으로부터 자주독립을 꾀하는 공민왕이 등장해서 잠시 개혁의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민왕의 아내 노국대장공주가 해산 중에 사망하면서 공민왕과 고려의 운명을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성계로 대표되는 신흥군벌 무장세력과 대표선수 정도전이 직접 나선 신진사대부들이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판갈이를 해야겠다며 나선 끝에 조선이 세워지게되었다. 이상이 조선 건국에 대한 기본적인 개략일 것이다.
배상열 저자는 조선 건국에 얽힌 이야기 중에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몽주 암살사건과 왕자의 난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참신한 주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조선 건국 잔혹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는 책의 내용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가 깔려 있으니, 유념해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우선 스러져 가는 고려의 마지막 기둥이었던 정몽주 암살사건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로 알려진 만고의 충신 정몽주의 최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26세의 혈기 방장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전우였던 정몽주를 죽여야만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울 수 있다는 취지 아래 행동에 돌입했다고 역사에서 혹은 각종 사극 드라마에서 배워왔다. 그런데 저자는 당시만 하더라도, 이방원의 역할은 극히 미미했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사건 당시 이방원은 개경에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정몽주 암살을 주도한 주범은 누구란 말인가.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바로 이성계의 차남 이방과(정종 혹은 공정왕)이었다는 것이다. 한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원보다 장성한 이방과는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베테랑 선수였다. 발톱을 숨기고 있던 정몽주의 마지막 기회였던 이성계 낙마사건을 전후해서, 얼마 남지 않은 고려 충신들을 규합해서 이성계의 심복들을 일거에 제압하려던 정몽주의 기획 아래 돌아가는 정국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이방원보다는 이방과에게 있었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추정이다. 게다가 언제나 역사 공부에서 나오는 표현이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려사> 혹은 <고려사절요> 등의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자들이 누구인가. 조선의 녹을 먹는 조선 사관들이 아니었던가. 있는 진실만을 기록한다는 것이 사관의 임무라고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들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일 따름이다. 공민왕이 황음무도했다는 썰이나, 우왕과 창왕이 요승 신돈의 자제였다는 그야말로 확인되지 않은 그야말로 저잣거리에서나 들을 법한 요설들을 그대로 실록에 기록하는 승부수를 던지지 않았던가. 분명 훗날 태종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이방원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 만들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기는 동아시아에서도 몽골의 원나라가 북방으로 축출되고 주원장의 한족 중심의 명나라가 세워지는 시기와 절묘하게 겹쳤다. 고려가 백여 년을 섬김 북원과 명나라 사이에서 등거리외교 전략을 구사했다면 국익에 최고의 이익이 되었겠지만, 고려조 훗날 조선의 집권세력이 되는 신진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상국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올인해 버리는 악수를 두고 만다. 이에 잔혹한 독재자 주원장은 그야말로 조선을 동맹국이 아닌 하청업체 수준에서 모욕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대주의에 대한 책의 어떤 부분에서도 보다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야말로 가장 충성적인 동맹국을 공깃돌 가지고 놀듯 하며, 공식 사신 이염에게 몽둥이질을 해서 거의 죽일 뻔하기도 하였다.
더 웃기는 건, 우왕 시절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소국이 대국을 정벌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사불가론을 들어 쿠데타에 성공한 이성계와 정도전이 주원장의 무리한 요구에 요동정벌을 계획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사실 조선의 개국 공신들이라는 위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백성을 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기 좋으라고 내세운 선전선동일 따름이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철저하게 도모한 엘리트 이익집단의 역성혁명이었다. 경기도 전지의 1/3에 달하는 토지를 공신전으로 하사받고, 자자손손 누릴 면책특권까지 요구한 이들에게 신국에 대한 기대는 그야말로 요원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군벌과 엘리트 계급의 연합? 그로부터 한 587년 정도 지나 비슷한 케이스를 우리 현대사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저자의 다음 타겟은 첫 번째 왕자의 난이다. 어찌어찌 해서 결국 조선이 세워졌다. 비록 홍무제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해 반편이 스타일로 구겨지긴 했지만, 어쨌든 신국이 건설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바로 국본 바로 세우기, 세자 책봉이었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정몽주 암살로 건국의 지대한 공훈을 세운 이방원이 세자가 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선의 진짜 설계자 정도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술은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 강력한 왕권주창자인 이방원은 맞지도 않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 위에 올랐다. 다음 후계자 자리가 엉뚱한 형제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한 나머지 형제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특히나 야심찬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다음 순서는 몽골족의 원나라에 붙었다 다시 고려에 투항했다를 번복한 배신자 집안 이성계 집단의 근원이 사병혁파였다. 그리고 보니 이성계 집안에서 반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안 내력이었던 모양이다. 이성계의 선조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족에게 붙었고, 군벌 출신 이성계 자신 역시 고려를 뒤집어엎고 신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그런 선수의 아들 이방원 무리 역시 아버지에게 어퍼컷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배신자 집안에게 ‘해동 육룡이 나라샤’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를 쓴 조선의 어용 지식인들에겐 아마 공맹의 가르침 중의 하나인 수오지심 따위는 없었나 보다.
이방원에게 봉화백 정도전이 계획한 대로 배다른 막내아우 이방석이 이성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순간, 자신의 운명은 끝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를 쳐야만 했다. 아주 절박했을 것이다. 조선 최고 천재 정도전의 정보망이 가동되어, 이방원과 그의 책사 하륜 그리고 행동대장 이숙번이 모여 역적모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이마 사병혁파는 척척 진행되어, 병장기까지 반납된 마당에 가장 우수한 병사들로 구성된 왕실경호대가 포진한 경복궁을 상대로 무력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그야말로 자폭행위였을 것이다.
다만 정몽주 암살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이성계의 건강이 문제였다. 이방원 일당에겐 그야말로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말도 안도는 상황에서 급조된 반란은 순전히 운빨로 성공에 이르게 된다. 실제 전장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역전의 용사이자 상승장군 출신 노장 이성계가 반란진압에 나섰다면, 역도의 무리라는 오명은 정도전과 이방석이 아니라 감히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이방원 일당에게 뒤집어 씌워졌을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이번 가사의 진짜 주범은 이방원이 아니라, 이성계의 심복이었지만 거사를 앞두고 말을 갈아탄 조영무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이성계 휘하에서 수많은 전장을 누빈 전사답게, 가히 동물적 감각으로 정국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판돈을 이방원에게 올인한 것이다. 한 사람의 선택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첫 번째 왕자의 난에서 조영무의 선택이 조선 왕조의 큰 물줄기를 바뀌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조선 건국 잔혹사>를 읽으면서 느낌 점을 하나로 집약한다면, 모든 역사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는 점이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 아는 기본은 누구라도 다 알듯이 바로 <실록>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실록이 진실만을 다루고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아닐 것이다. 왕조에 불리한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순진한 게 아닐까. 그러니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 바로읽기에도 세심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많이 읽어야 하고, 읽고 느낀 점들이 서로 융합을 이루어 최종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를 걷어낸, 단백한 역사의 크레바스에 빠져 버린 사건을 부검하고 새로운 사실 혹은 결론을 적출해낸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보낸다. 다만, 수나라를 창건한 사람이 양제이고, 고구려가 당태종 이세민 대에 멸망했다는 오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유 때문에 별점 두 개를 제외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자유지만, 틀린 역사에 대한 기록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