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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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집에 포화상태가 책들을 감당할 수도 없게 된 게 가장 큰 이유겠지. 그래도 어쩌랴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 그리하야 도서관에 한 달에 두 권씩 신청할 수 있는 희망도서 신청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이기호 작가의 신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소설집을 빌렸고 주말 동안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표제작에서 교회오빠 강민호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나 하는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아싸라한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심심한 평양냉면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관광지에서 모스크를 찾았다가 독실한 무슬림 신자로 변신해서 히잡을 쓰고 출근하고, 회식자리의 단골 메뉴인 삼겹살을 삼가는 선생님이 된 이야기. 진라면이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라면이라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됐다. 나중에라도 진라면을 할랄 푸드라고 소개해 주어야 하나.

 

나는 오히려 다른 이야기에 더 끌렸다. 항상 작가와 소설 속의 페르소나는 분리해서 읽어야 한다는 노래를 들었건만 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분명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자신의 책을 중고나라에 올려서 덤으로 팔아먹겠다는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분명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박형서는 진짜 그 소설 작가 박형서 씨가 맞는가? 왜 누구의 책은 적게라도 돈을 받고 팔고, 누구의 책은 여러권 사면 덤으로 끼어 주는 책이 되었단 말인가? 초기 단계의 윤리적 이슈들이 스물스물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작전에 투입될 뻔한 크레인 기사가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의 신산한 삶에 대한 스케치보다 열몇 시간을 운전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취재하겠다는 소설가에게 돼지숯불구이와 떡갈비 그리고 비냉까지 얻어먹고는 자기 허락 없이 녹취를 했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란. 어느 것 하나 내가 가진 도덕률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는 결심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야 할 것 같다. 과적 차량으로 지목되어 한강 다리를 건너지 못한 원인제공자 크레인 기사 아저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아도 될 용산참사가 벌어졌다는 상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오래전 예의 뉴스를 출근길에서 듣고는 잠시 멍했던 기억이 난다. 망루에 올라 생존을 외칠 뻔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일 수도 있었다는 그런 동조감 때문이었을까.

 

이중 지급된 빚 700만원 받아내기 위해 소소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국 마을 사람들은 선의로 십시일반해서 그 남자가 받아내고자 그렇게 노력하던 돈을 갹출해서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가 그 돈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절대 아닐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를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 돈을 만들어냈지만, 남자가 받은 모욕과 수치스러운 감정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그런 윤리적 문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사실 어떤 결론이 나도 모두에게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 같다. 지방대학 강사님이 대표로 나서서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은 다수 착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게 아니었을까.

 

누가 착하다는 타인에 대한 평가가 김숙희 씨만큼 적용되는 케이스는 또 어떨까. 동정과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결혼으로 해결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한다는 상황 설정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어린 아내의 고백에 무심코 막힌 하수구 구멍을 뚫어 구정물이 솟아 오르는 장면이 감정해소로 단계로 전환되는가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었다. 피곤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 아내가 원했던 남자의 리액션은 아마도 그게 아니었겠지.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면서 악다구니를 하며 쌓인 감정, 수치스럽다는 그런 감정을 거하게 쏟아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또 아무 것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여자의 고백은 공범에 가까웠던 남자를 14년 전의 해당 사건에서 당당하게 소환해낸다. 그의 이름은 정재민이었지 아마.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고기와 새우를 굽다가 느닷없이 서울의 경찰서로 임의동행해온 남자는 이제는 다 잊고 싶은 과거사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다. 자기가 현재 가진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여자가 고백한 것으로부터 최대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역시 이기호 작가가 단계마다 그런 감정들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할 것만 같다.

 

다시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는 듯한 아내의 연줄에서 딸려 나온 한정희 이야기로 소설집은 대망의 마무리르 짓는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지은 채무는 언젠가 되갚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재경 오빠의 딸 정희를 맡아 기르게 된 소설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 어느날 그에게 학폭위에 참가하라는 통지가 날아오면서, 관계는 위기로 치닫는다. 다른 가해자들의 학부모가 고용한 학폭 전문 변호사의 눈부신 활약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지만, 소설가는 정희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물론 원인제공자는 어디까지나 정희였다), 여느 때처럼 후회는 차곡차곡 적립된다.

 

그런데 진짜 내가 혹했던 이야기는 소설가가 눈길에서 낸 교통사고를 처리하게 되는 후기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다. 피해자의 부상이 전치 10주가 넘어가면서 합의금이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거론되는 와중에 나의 아이덴티티나 그동안 내가 고수해왔던 소중한 윤리 혹은 도덕률 따위들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단박에 나는 배우가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정말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모름지기 소설가, 지식인 그리고 학자라면 이러이러한 삶의 준칙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의식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확실히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재밌는 소설이다. 소재 선정이나 수치스러운 삶을 계속 감내해내야 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타전 역시 좋았다. 다만 무언가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디 다음에는 더 쎈 걸로 한 방 부탁해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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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7 08: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병원을 세 군데 돌면 점점 눈덩이
처럼 전치 몇 주가 늘 수 있는가 봅니다.

선의가 선의로 돌아오지 않은 세태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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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까지 몰아 가면서 부리나케 빌려다 읽었다. 헝가리 출신 망명자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스위스 뇌샤텔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게 아마 1956년이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난민들에 대한 서구인들의 대접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21살의 젊은 엄마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남긴 글을 보면 스위스 사람들은 헝가리 난민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쥐었다. 지금은 오로지 증오만이 보일 뿐이다. 심지어 난민 인정비율이 극도로 미미한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는 난민을 받아 들였다간 나라가 결단날 거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지고 있는 중이란다. 기가 막히는구나.

 

헝가리를 떠난 날부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적국의 언어들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야했다. 빈에서는 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얻기 위해, 뇌샤텔에 정착해서는 또 다른 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워야했다. 조국이 독일과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역시나 그 나라 말들을 배워야했다. 모국어 대신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미래의 시인 혹은 희곡작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그건 어쩌면 사형선고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1953년 스탈린이 죽었다. 그리고 동방의 나라에서는 3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이 끝났다. 아마 동구의 소국 헝가리에서도 독재자의 죽음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죽음을 강압적으로 애도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애도의 시간이 쓰레기 치우는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과 겹쳐졌던가. 역설적으로 보면 스탈린의 죽음이 쓰레기 치우는 시간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니. 진정한 해방의 시간이었으리라.

 

수년을 스위스에서 살면서 능숙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했지만, 저자는 읽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니 네 살때부터 모국어를 읽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에게 그건 모욕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 환경과의 화해와 융합은 어쩌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풀리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수모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난민 혹은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흔한 풍경일 테니 말이다.

 

조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소련군 경비대에게 언제 총을 맞아 죽을 지도 모를 그런 위협을 무릅쓰며 젖먹이 아이를 업고 국경을 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미 우리는 신문 지상과 미디어를 통해 지중해 연안에서 벌어지는 숱한 비극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점만 고려하더라도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을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세기도 전 있었던 난민사태와 현재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주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아, 그리고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20분에 아마 다 읽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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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6 11:35   좋아요 1 | URL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자본의 유무에 따라 이민과 난민으로 분류
가 되는군요.

부유한 이들의 이민은 환영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이주는 단호하게 배척하고 거부하는.

cyrus 2018-07-16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평화 모드’로 가고 있지만, 만일 북한과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목숨 걸고 다른 나라로 건너 온 난민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07-16 13:27   좋아요 0 | URL
아마 지금 당장 내가 아니니까 그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아닐까요.

배타적인 님비현상의 확장판 그리고 불안감
을 조성하기에 타겟으로 난민한 존재가 없
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8-07-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7 08:29   좋아요 0 | URL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은 처음이라
그런지 초보에게는 다 새로운 내용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비밀 노트 3부작은 사두기만 하고 못
읽고 있네요.

반복변주인 셈인가요. 아쉽네요 조금.
 

로맹 가리 전작읽기 돌입

2018년 7월 6일 이래

 

내가 지금까지 읽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책들은 다음의 네 권들이다.

1.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2010.1.19)

2. 유럽의 교육 (2010.3.5)

3. 그로 칼랭 - 에밀 아자르 (2010.7.21)

4. 별을 먹는 사람들 (2018.7.11)

 

그 외에 가지고 있는 책들도 제법 된다. 아무래도 작품도 많이 발표해서 그런지 헌책방에 갈 때마다 한 권씩 데려와서 당분간 따로 사지 않고 있는 책만 읽어도 될 법하다.

 

 

아마 내가 로맹 가리의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정혜윤PD의 어느 책 소개에서 <새벽의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였지 싶다. 물론 <새벽의 약속>과 공쿠르상에 빛나는 <하늘의 부리>는 샀다. 다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했을 뿐. 소설가 김영하의 팟캐를 듣고서도 <새벽의 약속>에 도전했건만 번번히 완독에 실패했다. 이렇게 불운한 책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완독을 못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야 완독을 성공시키고야 말리라.

 

이상한 게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책들은 국내에서 마음산책, 문학과 지성사 그리고 문학동네 세 출판사에서 따로따로 나오고 있는 중이다. 뭐 독자의 입장에서 출판만 되면 문제는 없지만. 아마 저작권 이슈 때문이겠지 싶다. 그중에서도 요즘에는 마음산책이 독보적으로 로맹 가리의 나머지 저작들을 꾸준하게 펴내고 있다. 제임스 설터의 표지 때문에 그렇게 증오하는 곳이지만, 로맹 가리 책들은 계속해서 내주고 있으니 내 맘대로 용서해 주련다. 표지는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네.

 

 

2010년에만 세 권의 로맹 가리를 읽고 나서는 아예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지난 주에 중고서점에 가서 <별을 먹는 사람들>이랑 <인간의 문제>를 사서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묵혀 두었던 로맹 가리 전작읽기 숙제에 나서게 되었다. <별을 먹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라하는 주제들인 중남미 독재, 콘키스타도르 같은 주제들이 등장해서 그나마 쉽게 완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희극 시리즈에 해당하는 <게리 쿠퍼여 안녕>도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별>만한 몰입감은 생기지 않는다.

 

 

해서 역시나 몇 번이나 표제작만 죽어라 읽었던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오늘 아침 뒷간에서 펴들었다. 아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내친 김에 두 번째 <류트>까지 내달려 읽었다. 모두 15편의 단편들이 들어 있는 책인데, 표지갈이를 하고 나온 양장본이라 더 마음에 든다. 그전에 나온 책은 사고 싶지가 않더라. 재작년에 사서 쟁여 두었던 책이다.

 

<솔로몬 왕의 고뇌>도 역시나 제법 읽고 나서, 아마 반절 정도, 결국 완독하지 못했다. 주인공 남자가 예전에 한자락하던 할머니 배우(맞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하고 관계하는 장면까지 읽고 나서 무언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끝까지 못다 읽은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다 읽지 못한 책들이 많은 건지. 유난히 로맹 가리의 책들이 나에겐 그런 책들이 많아 문제다. 아예 읽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읽다 말아서 기시감은 드는데 또 리뷰로 마무리짓지 못한 그런 느낌적 느낌이랄까.

 

뭐 어쨌든 소장하고 있는 책들부터, 그리고 오래 밀린 숙제들부터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다. 그 첫 출발은 나쁘지 않다.

 

이후 업데이트


5. 새벽의 약속 (2018.7.16)

6. 마지막 숨결 (2018.7.16)

7. 레이디 L (2018.7.18)

8.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2018.7.19)

9.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2018.7.23)

10. 흰 개 (2018.7.23)

11. 내 삶의 의미 (2018.7.23)

12. 여자의 빛 (2018.7.25)

13. 징기스 콘의 춤 (2018.7.31)

14. 솔로몬 왕의 고뇌 (2018.8.3)

 

이번에 로맹 가리 전작읽기에 도전하면서 좋았던 책 둘

 

하나, 별을 먹는 사람들 - 영어제목 탤런트 스카웃(책을 읽어 보면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드디어 로맹 가리의 책을 읽는데 성공했다. 알라딘 북플 이웃분들의 의견은 내가 무려 세 번이나 완독하는데 실패한 <새벽의 약속>이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라는 거다. 그랬구나, 적잖이 위로가 된다.

 

콘키스타도르 이래 억압과 착취 받은 쿠혼 인디언 출신 독재자 호세 알마요가 지배하는 중앙 아메리카 어느 나라에 대한 희비극적 설정이 어찌나 웃겼는지 모르겠다. 잘 나가는 TV전도사, 복화술사, 속임술사, 오토 스코르쩨니를 사칭한 가짜 군사 고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자신만의 별(마스탈라 혹은 환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들어 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알마요의 여자 친구라는 미국 여자, 그녀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만든 전화망과 도로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체제 전복에 전면에 나서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다.

 

물론 놀라운 기인들의 재능에 굶주린 알마요는 집단 최면의 대가 잭을 자신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 <엘 세뇨르>에 올리기 위해 적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역시 로맹 가리의 책답게 군데군데 책을 놓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올 하반기 로맹 가리 전작주의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그 첫발을 내딛었다.

 

둘, 레이디 L - 나의 로맹 가리 읽기 그 일곱 번 째 책

 

요즘 마구 달리고 있는 중이다. 8년 전에 세 권 밖에 안 읽의 작가의 책을 이달에만 무려 네 권이나 읽었다. 오늘 아침에 회사 컴퓨터가 안된다는 핑계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레이디 L>도 마저 읽을 수가 있었다. 진도가 쑥쑥 나가는구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만난 로맹 가리 책 중에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입문서로도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다. 영국 귀족 부인인 레이디 L이 자신의 여든번째 생일날 계관시인인 퍼기 로다이어 경에서 들려주는 지난 60년 동안 꽁꽁 숨겨 왔던 아나키스트 동조자, 테러리스트였던 자신의 과거는 쇼킹 그 자체였다.

 

아네트 부댕이라는 아가씨는 모든 인류를 위해 싸우는 혁명적 전사 아나키스트이자 이데올로그 아르망 드니의 애인이 되어 이중혁명으로 서구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부르주아지 계급에 선전을 포고한다. 실존했던 아나키스트 아르망 드니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런 멋진 이야기를 빚어낸 로맹 가리에게 다같이 박수 쨕쨕쨕.

 

너무 재밌게 읽었다. 내가 좋아라하는 19세기 말 혁명시기가 등장하는 것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에 도전한 공상적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에 대해서도 한 수 배웠다네. 나의 다음 타겟은 소설집 <새페죽>이다. [뱀다뤼] 이 소설은 정말 오래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피아 로렌, 폴 뉴먼 그리고 데이빗 니븐이 주연으로 나온다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1965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은 무려 피터 유스니노프. 한 번 구해서 보고 싶네. 소피아 로렌은 올해로 연세가 83세라고 한다. 언제까지나 나에게는 영화 <해바라기>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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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13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저는 <자기 앞의 생>은 읽었으니
<새페죽>부터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ㅋ
암튼 홧팅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3 14:53   좋아요 1 | URL
전 새페죽 오늘 아침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좋네요 캬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도록 하겠습니다.

syo 2018-07-13 15:24   좋아요 1 | URL
새페죽ㅋㅋㅋㅋㅋㅋㅋ
본죽 신메뉴 같은 느낌이네요.
삼계죽에 인삼 대추 대신 남미 향신료를 잔뜩 넣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

stella.K 2018-07-13 17:04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 스요님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습니다.
근데 스님 댓글도 만만찮게 웃겨욧!ㅋㅋㅋㅋㅋ

라로 2018-07-13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저는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지요. 저도 첨엔 진도가 안 나갔는데 어느새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ㅎㅎㅎㅎ
좋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7-13 15:48   좋아요 0 | URL
책 읽기가 생각보다 억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

이제 바야흐로 로맹 가리의 책을 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07-13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기 앞의 생>을 빌렸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 알고보니 에밀 아자르가 아니고 한국소설가의 책이더라구요 ㅎ 좀 읽다 반납했다는 ㅎ

레삭매냐 2018-07-13 15:49   좋아요 0 | URL
아하 - 한국 작가의 동명의 책도 있었군요.

한 때 우리나라 영화판에서도 외국 명작들의
제목을 베끼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쫌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나 아주 유명한 작품의 경우에는 말이죠.

물론 <자기 앞의 생>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3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좋죠. 페루에도 좋고 새벽의.. 도 좋고.... 자기앞은 물론 좋고....ㅎㅎㅎ

레삭매냐 2018-07-13 17:46   좋아요 0 | URL
지난 3월달에 시작한 <새벽의 약속>
부터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1부까지 읽었네요. 고고씽 -

shinok 2018-07-24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해요~ 완독하지 못한 일인으로... 로맹가리 책은 저도 여러권을 가지고있는데
‘자기앞의 생‘ 완독 후 여러권 구매 후 저는 아직도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에 바닷가에 여러번 가보았지요... 세번정도 초반부를 읽고 완독하지 못해 항상 바닷가에서만 머무는 신세입니다.
그래서 더욱 응원하게 됩니다.

저 또한 이번 여름에 어서 읽던걸 마무리하고 읽어봐야지!하는 생각을 합니다~

레삭매냐 2018-07-24 15:23   좋아요 0 | URL
아아 - 저도 새페죽 바닷가에서 수도 없이
회군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한 번 작정하고 읽기 시작하니 마구
달리게 되더라구요. 반환점을 돌았네요.

이제 좀 긴 호흡으로 가야지 싶습니다.
 
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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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쪽 이렇게 늙고 병들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는 곳은 여전히 그 봄밤의 태영음반사야

1971년의 봄 서군의 이미지를 사랑한 나의 스무살 고모. 45년의 기나긴 세월

 

98쪽 (여전히 불의가 횡행하는 시절에) 나만의 의식적 함몰구역이 존재한다

한나와 안수 리의 이야기

1967년 동백림 사건, 니체 철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을 출입한 한국 사람들을 밀고한 스파이 - 안수 리

 

지난 1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기 시작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이번 주말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돼서 읽어야 해서 어제(7월 10일)부터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 때 한 절반 가량 읽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일까? 반가운 기시감에 진도가 쑥쑥 나간다.

 

최근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나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에서처럼 한국 소설의 소재와 배경은 더 이상 한국적인 공간이나 주인공들이 아니구나 싶다는 트렌드가 읽혀졌다.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미국의 뉴욕으로 그리고 베를린으로 마구 뻗어 나가는 기세다. 표제작 <빛의 호위>에서도 벨기에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뉴욕을 넘나드는 그런 공간 점프를 선보이지 않던가. 친구 권은에게 전달한 카메라가 그녀의 인생을 뒤바꾸게 하리란 것을 화자는 과연 알았을까. 현재의 비극도 어쩌면 그 카메라 덕분에 발생한 게 아닌가. 쌩뚱맞게도 작가가 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빛의 호위’가 카메라 셔터 작용에 따라 필름에 감광되는 건 맞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사진의 이미지를 보게 되는 건 현상한 필름을 통해 빛이 쬐어진 인화지라는 걸 말이다. 인화액에 담겨진 인화지 속에 흐릿한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사진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무언가 묘한 이물감 내지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나같은 보통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예술가들의 잦은 등장이야 소설 제조를 위한 방법론이라 치고, 우연히 본 사진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된 재미 교포 화가의 초대를 받아 물설고 낯선 미국의 플러싱을 찾는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심장병을 앓는 동생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 만난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강도를 만나 객사한 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언니, 잘 가>도 그렇다. 그들의 절절한 사연에는 공감하겠지만 언니의 부고를 듣고 미국을 찾았다가 현지에서 만난 인도계 미국인 남자와 살게 되었더라고. 이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소위 핍진성이 결여된 게 아닌가. 우리네 삶의 팍팍한 이면에 메스를 대듯, 파고드는 내러티브에 호감을 느꼈던 독자는 뒷걸음치게 된다.

 

58쪽 망각을 거부하는 것... 안젤라의 마지막 선물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사회 생활에 지쳐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말에 덜컥 적금을 깨서 내주었다가 낭패를 당한 여자가 남자를 찾아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미국으로 떠난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돈을 못받게 되어 채권자 자격으로 그 남자의 집을 찾은 걸까. 후자라면 고소 고발이라는 절차가 있지 않나? 철저한 이방인 신세로 맥주를 벗 삼다 만난, 청소 용역직원 안젤라와 뚝뚝 끊기는 대화 속에 서로 교감할 수 있었노라는 이야기도 참.

 

122쪽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

 

개인적으로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에서 수작은 <산책자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철학 강사/교수로 활동하다가 대학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어 새로 개발된 도시 변두리의 편의점에서 카운터 직원으로 일하는 홍미영 씨의 이야기다. 당연히 벌어 놓은 돈은 없고, 병들어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운명, 비정규직으로 신산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전직 강사님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뽑아낼 수 있는 신파의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슬프다 슬퍼. 잠시 육신의 안분지족을 위해 홀아비 편의점 주인과의 로맨스를 꿈꿔 보기도 하지만, 꿈깨시오 올시다. 소설을 더 맛깔나게 만드는 건, 중국 유학생 제자 메이린이 라오슈(노스승)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독일 유학 중에 보내오는 이메일 메시지다. 한국 유학 시절 이미 꽃같은 동료 이선의 죽음을 체험한 메이린은 라오슈마저 그런 운명에 처하는 게 아닌가 하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뒤에 가서 밝혀지는 진실은 메이린이 걱정하는 건 라오슈의 안위가 아니라, 소통과 거절의 연속 가운데 라오슈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뽑아내다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자의 행복>의 광휘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다른 작품들은 죄다 이 작품의 그늘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린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머지 소설들에서는 전 세계로 퍼져 디아스포라된 한국인들의 이미지와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소멸해 가는 이야기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6살 때 철도길에서 발견되어 저 멀리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 처자 정문주 혹은 나나가 직면하게 되는 복희식당 할머니의 소멸. 유한한 존재의 당연한 소멸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소멸에 대한 현실 인식은 허무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노동현장의 크레인에서 떨어져 장이 파열되어 죽은 동료 송의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던 펄떡 거리는 욕망을 드러내는 남자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역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균은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 대신, 죽은 동료의 어머니가 해주는 뜨거운 밥상을 받고 싶다는 애정에 대한 갈망을 날것 그대로 상에 올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리뷰에 담으려고 몇몇 구절을 표시해 두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감상들이 모두 휘발되어 버려, 글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작품의 편차가 있다고 해야 하나. 어떤 작품들은 좋고 또 어떤 작품들은 그렇지가 않다. 무시로 등장하는 해외 이야기/디아스포라의 전개가 나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진 걸까. 지구촌이니 글로벌리즘이니 하는 서사구조가 내게는 생래적으로 맞지가 않는가 보다.

 

어쨌든 책은 이제 다 읽었으니 나머지는 내일 달궁 독서모임에 가서 들어 보도록 하자.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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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3 13:39   좋아요 1 | URL
에르곤이라는 특질을 가진 문학에 대한 기대
가 점점 커지는 모양입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상상을 가미한 문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네요.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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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번에는 동일본 원전사고 이래, 에너지 자원을 아끼는 차원에서 냉난방과 냉장고를 포기하는 쾌거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타깃은 먹거리다. 저자는 누구 못지 않게, 각박한 현대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보다 좋은 학교, 그리고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다니며 성공가도를 달려 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저자에게 행복을 담보했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저자는 적은 비용을 들여 사는 미니멀 라이프를 사방에 적용한다. 냉난방를 줄이는데 성공한 저자는 싸고 빠르고 맛있게라는 신념 아래, 채소절임(쯔게모노)이 풍요료운 삶을 담보할 수도 있다는 간략하지만, 피부에 와 닿은 진실을 독자에게 설파하기 시작한다.

 

요즘 방송을 보면, 한물 가긴 했지만 갖은 양념과 비법으로 무장한 셰프들이 현란한 기술을 동원해서 시청자들의 침샘과 식욕을 자극한다. 저녁 시간대를 장악한 먹방 방송은 또 어떤가. 프랑스 요릿집을 냉면가게로 착각한 어느 PD가 홍보를 전제로 부가세 포함한 770만원에 방송을 타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시대가 아닌가. 무언가 남보다 맛있고, 미각을 자극하는 플레이팅된 요리를 먹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냐, 아냐 그게 아니야라고 에미코 씨는 외친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냉장고도 없던 에도시대 스타일의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가라고 목놓아 외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아, 책을 읽는 순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과 실천은 원래 별 개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싸고 빠르고 맛있게 먹고 살자

 

역시 혼밥의 기본은 밥이다. 사흘 마다 밥을 한 번씩 한다는 이나가키 씨는 그야말로 밥 예찬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도시대로 돌아가, 그 좋다는 일제 코끼리 밥솥도 아닌 나무 밥통에 밥을 담아 둔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그렇게 주창해 마지 않는 미니멀 라이프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나가키 씨에게 요리의 재료는 그야말로 사방에 널렸다. 도심에서 나는 민들레마저 생포하다가 나물로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에서는 쫌 꺼려졌지만 말이다. 아니 배기가스에 오염된 민들레를! 아직도 난 미니멀 라이프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거의 만능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쌀겨된장으로 만든 쌀겨절임 이야기는 또 어떤가. 물론 허연 곰팡이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마치 무슨 아이 키우듯 애지중지하며 냉장고에서 내와 싱크대 밑으로 이사간 쌀겨된장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너무 좋더라는 이야기에서는 정말 웃음이 빵빵 터졌다. 이 양반 정말 자신의 삶에 애착을 느끼시는구나. 그리고 중간에 삽입된 저자의 먹거리 사진은 멋졌다. 역시 심플한 게, 좋은 걸까?

 

퇴사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어준 이기들을 떨쳐낸 이나가키 씨는 어려운 걸 독자에게 주문하는 게 아니다. 사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주[삶의 문제]에 이은 식[먹거리]이야말로 사람들의 또다른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호화로운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은 가끔 외식으로 처리하고 평소에는 저자가 구사하는 그런 간편 조리식을 먹는 게 어떨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먹다 보면 오장육부가 건강한 ‘대장여인’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고 한다.

 

기존에 우리가 요리를 위해 마련한 온갖 조미료들과 요리책 그리고 다양하지만 잘 쓸 일이 없는 요리기구들도 죄다 치우라고 한다. 물론, 모든 게 일인 가구에 맞춘 게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아이도 하나 없는 싱글 여성의 라이프가 아니던가. 가족 구성원 중에 아이 하나만 추가되더라고, 그런 미니멀 라이프의 환상은 바로 깨질 텐데 말이다.

 

어쨌건 저자의 메씨지를 확실하게 알아 들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단순명료하게 살자 뭐 그런 게 아닌가. 나의 경우를 보면, 당장 책부터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책들을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나의 미니멀 라이프 실천은 책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후반기에는 혹독한 책장 다이어트에 돌입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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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7-12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책장 다이어트 꼭 성공하셔요!
그래서 그 비결을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ㅎㅎ
전세 기간 끝나고 이사할 철이 돌아올 때마다 책 때문에 울상인 날들 이제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우째 책은 점점 늘어만 가고.....T.T
암튼 레삭매냐님의 혹독한 책장 다이어트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18-07-12 17:09   좋아요 1 | URL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북 다이어트
가 성공할 진 모르겠습니다 -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데 아유 참 ...

장마라 책들이 축축 늘어지는 걸 보니
제 맴도 답답해지는 그런 느낌적 느낌이랄까.

목나무 2018-07-12 17:13   좋아요 1 | URL
장마에 지친 책들 걱정하시는 걸 보니 역시 레삭매냐님의 책 다이어트는 당분간은 힘들 것 같네요. ^^;;
같이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