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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어떻게 로맹 가리의 저작들은 제대로 다 읽은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수차례 완독에 실패한 <새벽의 약속>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리고 <솔로몬왕의 고뇌>도 그렇고. 지난주에 산 <별을 먹는 사람들>을 기점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로맹 가리 책들 읽기에 나서야 되는 게 아닐까.
소설 <별을 먹는 사람들>의 배경은 라틴아메리카의 흔한 독재국가다. 물론 정확한 나라 이름은 소개되지 않았다. 쿠혼 인디언 출신의 악랄한 독재자 호세 알마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내 맘대로 그 나라 이름을 ‘쿠호니아’라고 명명하겠다. 내 마음이다. 이 희대의 독재자 알마요는 미국 출신 젊은 TV전도사이자 사탄의 무리와 싸우는 현대판 십자군에 가까운 호와트 박사(진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언제나 어깨에 자신의 분신인 인형을 달고 다니는(어, 고양이를 한동안 어깨에 달고 다니던 연예인이 떠오르는데) 덴마크 출신 복화술사, 미국으로 망명한 연예흥행사 찰리 쿤, 물구나무 서서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루마니아 집시 스타일의 바이얼리니스트 그리고 미국 변호사를 초대해서 자신이 운영하는 쿠호니 아에서 제일 가는 나이트클럽 <엘 세뇨르>에서 성대한 쇼를 기획한다.
진짜 문제는 이 서커스단의 흥행이 아니라 알마요의 지독한 독재에 반대한 반란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악한 지도자는 특수 보안부대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약혼자까지 포함한 일행을 모두 총살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의 책임을 반란군 지도자 라파엘 고메스에게 지워 지금까지 공산주의자와 열렬하게 싸워온 자신을 후원해온 ‘빅 브라더’ 미국의 도움을 받기를 희망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목 중의 하나는 수치를 몰라야 한다고 했건만, 우리의 호세 알마요 씨는 좀 해도 너무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 외교관 출신으로 볼리비아에서도 근무했던 로맹 가리도 소설에서 자신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과 자신의 자랑스러운 조국 프랑스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은 굳이 외면하는 것 같다. 알제리전쟁과 코친차이나에서 프랑스의 잔혹한 지배 역사를 잊었던 걸까. 미국이 구사한 라틴아메리카 앞마당 정책과 프랑스의 식민지배 정책이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일단 소설의 서두에서 사건으로 충격을 가한 뒤, 로맹 가리는 희대의 독재자 호세 알마요의 유년 시절을 추적하는 플래시백 기법을 동원한다. 어쩌면 성직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쿠혼 인디언의 후예는 자신의 스승에게 ‘보호’를 갈구하지만, 편견을 품은 사제가 자신의 사악한 제자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는 천편일률적인 훈계에 지나지 않았다. 쿠혼 인디언의 후예로 수백년 전 스페인인들이 대포와 종교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조상들의 땅을 정복하고, 스페인 사제들의 주장에 따라 수많은 인디언들을 영혼이 없는 짐승이라며 무차별 학살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사제가 되었을 지도 모를 꼬마 인디언은 투우사로 대처에 나갔다가, 자신의 능력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재능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그런 위인이었던 알마요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사제에게 악마가 가장 선호하는 최악의 악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사제는 알마요의 첫 번째 희생번제가 되었다. 쿠혼 인디언 과거에 등장하는 인신공희의 변주라고나 할까.
냉혹한 악당으로 거듭나게 된 알마요는 마약 거래를 통해, 권력의 사다리에 오르기 시작한다. 경찰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기동타격대를 만들고, 나약함 대신 잔혹함으로 무장한 인디언 전사는 반미주의를 천명하면서 민중들의 환심을 사기에 이른다. 물론 그가 진정한 독재가가 된 다음에는 가면을 벗고, 후진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친미주의자로 180도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일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앞부분에 빠뜨린 그의 약혼자를 지칭하는 평화 봉사단 출신 미국 여자가 등장하는데,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쿠호니아에 최신 전화망과 도로 그리고 공공도서관과 대학을 비롯한 문화시설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관철시키기에 이른다. 악마와 거래한 알마요에게 성당에 가서 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라며, 미신에 사로잡힌 알마요를 협박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는 바로 미국 여자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통신시설과 도로망의 완비는 평화롭게 지내던 지방 인디언들에 대한 통제와 속박, 세금징수 같은 그들이 절대 원하지 않는 문제들을 양산해 냈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학에서 교육 받은 엘리트들은 알마요 독재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어, 독재자 추출을 위한 해방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역설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독재자가 구사한 선의의 정책이 별(마스탈라)을 즐기는 이들을 자극하고 각성시켜서 자신의 축출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의 완성이라, 좀 놀랍군.
한편 알마요는 악마건 미국이라는 대부건 간에 ‘보호’를 요청한다. 내세를 부인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는 알마요는 현실의 지배자는 인간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 중심에는 어린 시절, 투우사로 성공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한 자신의 성공욕에 대한 보상심리가 심어져 있지 않았을까. 무대 전문가 찰리 쿤 씨를 동원해서, 사상 최대의 마술사이자 집단 최면의 대가 잭을 찾아오라며 닦달한다. 의자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고, 마술사 자신이 직접 사라지는 건 대가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알마요의 선배 독재자 히틀러가 독일 민족을 집단적 환각에 몰아넣어 희대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로맹 가리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에 대한 갈구야말로 악마적 욕망의 희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해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아메리칸 희극’ <별을 먹는 사람들>은 확실히 기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카스트로의 쿠바혁명과 체 게바라의 무장 게릴라 활동의 여파로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공산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당시 서구사회의 불안감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막판에 정변으로 마침내 권력을 잃게 된 알마요가 프랑스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장면에서 읽히는 자기비판의 정도는 생각보다 예리하지 않더라.
어쨌든 지난 주에 산 로맹 가리의 <별을 먹는 사람들>은 무난하게 완독하는데 성공했다. 하반기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계속된다. 다음 주자는 ‘아메리칸 희극’ 두 번째 <게리 쿠퍼여 안녕>이다.
[뱀다리] 소설에서 자신에 대한 반란이 불길이 치솟자, 자신이 고용한 무대 전문가 찰리 쿤이 미국은 전통적으로 가난한 사람 그러니까 약자인 언더독( underdog)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알마요는 자신도 그 말을 안다며 이렇게 대꾸한다. “알아, 찰리. 나도 안다고. 개만도 못한 인간. 정확히 그렇지.”내가 이 소설을 읽다가 가장 크게 웃은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