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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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둔 책인데(무려 3년 전에!) 나의 서가에서 읽히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에야 비로소 책장에서 빛을 보게 됐다. 마리오 베네데띠, 처음 들어보는 우루과이 출신 작가라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퇴직 7개월을 남긴 49세의 홀아비 마르틴 산토메가 일년 남짓 기록한 퇴직 일기로 우리는 그의 삶과 대면하게 된다.

 

자칭 허름한 자동차 부품 수입회사에 다니는 마르틴은 아내 이사벨과 사별하고, 남은 세 명의 자녀들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과의 불통은 일상이다. 언제나 그렇듯. 왜 소설에서 자녀들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도 등장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마르틴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직장과 사회에서 고군분투해 왔지만, 자신에 행복에 도움이 되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마 대답할 자신이 없지 않을까. 심지어 강압적이었노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은퇴를 목전에 둔 마르틴 부장님에게 회사의 경영상태를 나타내는 수치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부분을 읽는데, 왜 그렇게 절절하게 공감이 되던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의 꼰대 부장님은 자신에게 배당된 신입 직원들의 성향과 외모로 엉큼하게 판단하기도 하고, 근무 시간에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평가하기도 한다. 선을 지키는 홀아비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 지 몰라 섣불리 평가하기도 그렇다.

 

난 살아오면서 도대체 뭘 한 걸까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 수록 재밌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마르틴 산토메의 일기를 통해 독자는 그의 삶을 반추해 보게 되는 것이다. 21년 전에 요절한 아내 이사벨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는 다 자란 아이들의 심정에 대한 묘사, 느닷없이 등장해서 마르틴의 삶 속에 뛰어든 어린 시절 친구라는 아도낀 비그날레를 사랑하는 처남댁 이야기 등등. 몇 푼 안되는 회계 장부의 오차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부하직원들에게 야근을 지명했다가 곤경에 처하는 장면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서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신인 보조직원 아베야네다 양과의 관계가 전면으로 부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치정이 빠지면 소설이 재미가 있나 그래. 자신의 딸인 블랑카와 비슷한 또래에 대해 연정을 품다니 양심도 없는 중년 같으니라구.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마르틴 아저씨가 엄청 어린 연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고, 위기로 치닫던 가족 관계 역시 일대 전환을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 놀라운 전개로군.

 

62쪽에서 사무실 직원 산티니 보고 “왜 여태 사무실에 호모가 없나 했어”라며 자조하던 마르틴의 가족 역시 성적 정체성의 위기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죽은 아내 이사벨을 가장 닮은 막내 아들 하이메가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닌가. 1950년대 말을 살던 어머니 역할마저 감당한 가부장적 이미지의 아버지 마르틴은 당연히 커밍아웃을 한 아들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용서할 수도 없다. 무신론자이기에 아마 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겠지. 물론 이런 일종의 사적 포석들은 훗날 그가 진짜 대면하게 되는 비극의 전조였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기 보다 시에 주력했던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은 좀 이른 은퇴를 목전에 둔 중년 남자의 삶의 위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내는 임신중독증으로 오래 전에 죽었고, 아들 놈 하나는 커밍아웃을 하고 집을 나갔으며, 마초 큰아들과의 불화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젊은 여직원과의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어가는 관계 역시 문제다. 되돌릴 수 없는 젊음에 대한 미련은 라우라 아베야네다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거라는 전망에서부터 비롯된다. 젊은 연인을 위해 그 어떤 약속을 해줄 수도 없다는 현실적 문제. 그나마 블랑카는 사랑에 빠진 아버지를 이해해 주지만, 어머니의 부재 가운데 게이가 된 막내아들 하이메는 아버지가 ‘호린’ 젊은 새엄마 후보를 비난하면서 가출해 버리지 않았던가. 자자,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과연 마리오 씨가 어떤 결말로 우리들을 인도할 지 궁금해질 것이다. 충격적인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부디 읽어 보시길. 소설이 클리셰이로 접어들 무렵, 작가가 준비한 거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한테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이에요. (145쪽)

 

진짜 멋진 고백이 아니던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청춘을 회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경험 많은 남자에게 이런 고백만한 게 있을까 싶다. 우리의 염세주의적 몽상가 마르틴 아저씨는 어떤 비극을 맞이한 후, 더 이상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원제 <La Tregua>는 “휴전”이라기 보다 다른 뜻인 관계의 중지 혹은 은퇴를 상징하는 휴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굉장히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진짜 멋진 소설이다, 주위에 권해 주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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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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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퍼붓던 비가 멈추고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모양이다. 아침 출근길에 어찌나 덥던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어쨌든 여름이 왔고,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좀 부진했었는데 이달에는 출발부터 산뜻하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어 대고 있으니까.

 

문제적 독일 작가 크라흐트의 <파저란트>를 3일 만에 읽었다. 1995년에 발표된 <파저란트>의 주인공 나는 쥘트 섬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해서, 그 망할 놈의 바버 재킷을 걸치고 함부르크, 뮌헨, 하이델베르크, 린다우와 스위스 취리히에 커버하는 숱한 곳을 여행한다. 그렇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었지. 알코올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술을 들이키면서.

 

소설 <파저란트>의 화자가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뭐랄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풍류를 아는 한량이라고 해야 할까. 쓰임새와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이 아닐까. 특정한 일자리에 매어 사는 사람이 주인공처럼 시간에 대한 제약 없이 독일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가는 곳마다 알렉산더니 나이젤 그리고 롤로 같은 아는 사람들이 있어 잠자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쥘트 섬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다니는 유사 여자친구 카린과 고티에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기차를 잡아타고 함부르크로 떠나질 않나. 그야말로 보헤미안 라이프의 전형을 주인공은 제시한다. 물론 가는 곳마다 알코올이 빠지지 않는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지 약물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신, 어린 시절 첫사랑 여자친구 집에 갔다가 지나친 환대에 그만 실수를 하고 내뺀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갖은 공상 속에서 주인공은 부유한다. 한 마디로 말해 도무지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둥둥 떠다닌다고나 할까.

 

커피도 마시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단다. 대신 음악에는 좀 조예가 있는 듯 싶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모던 토킹에서부터 시작해서 클래시 등등. 그가 가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룬의 야운데니 다카, 포트모르즈비 같은 지명은 또 어떤가. 그는 글로벌화된 패션세계의 진화처럼 다양한 소비재로 포위된 21세기 호모 컨슈머티쿠스의 전형처럼 다가온다. 지난 세기에는 내가 읽은 것이 나를 규정했다면, 이번 세기에는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규정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긴 그리고 보니 책도 일종의 소비재가 아니었던가.

 

카를스루에로 가는 기차간에서 만난 재수 없는 놈 때문에 느닷없이 하이델베르크에 내리는 충동적 경험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거기서 난생 처음 만난 오이겐 일행과 합류해서 자신을 환대해주는 그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을 동성애 대상으로 생각한 오이겐에게 질겁을 해서 당장 달아나기도 한다. 아, 그전에는 지하실에서 조우한 마약쟁이 나이젤의 주삿바늘 때문에 공포에 떨기도 했던가.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 가는거지. 아무래도 데카당스한 것이 독일 통일 이후, 한 세대를 휩쓸었던 니힐리즘의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리드리히하펜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린다우인가 하는 곳에서 만난 막대한 유산상속자 롤로는 옴므 파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장을 잘 빼 입고 물 흘러가듯 유려하게 진행되는 파티에서 주인공은 역시나 파티원들과 융화되지 못한다. 그는 파티를 연 롤로 역시 마찬가지라고 정확하게 파악해 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 파티원들이 사랑하는 것은 롤로가 가진 물질이지, 그가 가진 인품이나 성격 같은 캐릭터는 아니란 것이다. 피상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파티라는 모임이 주는 위선의 쇼라고나 할까. 아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

 

롤로의 포르쉐를 훔쳐서 타고 마지막으로 달아난 곳은 바로 취리히다. 주인공이 결국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곳들은 바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독일어권이 고작이란 말인가. 과연 주인공에게 ‘파저란트’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싶다. 토마스 만의 묘지를 찾겠다고 나선 그의 모습에서는 오래전에 갔던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납골당을 찾아 헤매던 나의 모습에 연상됐다. 그리고 아마 헌화는 짐 모리슨에게 했었지. 바로 옆에서 발자크에게 헌화하던 미국 아줌마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만 그런 좋은 기억 대신, 뜨거운 똥을 싸질러 대는 멍멍이가 자신의 용변 장소로 고른 곳이 어쩌면 토마스 만의 묘자리가 아닌가 하는 상상에 그만 빵 터져 버렸다. 크라흐트 이 친구, 유머감이 아주 없진 않구만 그래.

 

이제 내가 읽어야 하는 크라흐트 작가의 책은 <제국> 하나가 남았다. 출간 당시, 인종주의 문제가 이슈가 되었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서구인들이 제3세계를 기술한 작품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주인공의 여정을 소설에서 뒤쫓다 보니 문득 독일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다시 가게 되면 처음 못지않게 맥주를 마실 수 있으려나. 기본이 1,000CC라니 그건 좀 버겁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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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리커버 에디션)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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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아버지 창피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정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얼마든지,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었던 아버지는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자비를 들여 장만한 어릿광대 분장 도구와 교통비를 들여가며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걸까.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 소설은 프랑스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된 모리스 파퐁 심판정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어릿광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릿광대는 바로 주인공 나였다. 어릿광대를 아버지를 그토록 수치스러워 하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어찌해서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대중 앞에 서게 되었나.

 

그 이유를 독일 군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러 갔던 날, 가스통 삼촌이 들려준다. 나치가 프랑스 전역을 점령했던 1942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레지스탕스 소속이었던 스무살난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통은 전기공으로 변장하고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장 물랭이나 로맹 가리처럼 불타는 애국심으로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이 아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레지스탕스 활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쿨한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나치들에게는 테러행위로 보이는 변압기 폭파사건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몰랐다는 점이다.

 

얼마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요격하기 위해 동부전선에서 악명을 떨친 기계화친위사단 다스 라이히가 프랑스 북부로 향하던 중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오라루드 쉬르 글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자신들의 지휘관이 레지스탕스에게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된 다스 라이히 부대원들은 무려 천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했다. 인질로 잡은 프랑스 시민들을 거리의 가로등에 매달아 죽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앙드레와 가스통의 운명도 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축구 경기에서 자신들의 팀에 진 프랑스 헌병대원의 무고로 잡혀 변압기를 폭파한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신 죽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들이 진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실을 독일군에게 말하지 않으면 애꿎은 인질 앙리와 에밀 역시 죽게 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비통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들을 감시하는 엉성한 독일 병사 베르나르 비키와 만나게 된다. 생과 사의 기가 막힌 갈림길에서 비키의 엉뚱한 행동 덕분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한껏 웃음을 만끽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라니.

 

진흙구덩이에서 죽음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진범이 잡혀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한다. 구덩이 속의 인물들은 이송 도중에 탈출해서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엔딩 부분에서 드러 진실은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뺨치는 반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 짧은 소설이 그렇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전후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신화를 그리던 모리스 파퐁은 전쟁 중에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 범죄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파리 경찰국장, 하원의원 그리고 예산장관도 지냈으며, 1962년에는 드골이 수여한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보르도 치안부국장으로 재직하던 파퐁은 어린이들 223명을 포함한 1,69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강제이송한 파렴치한 꼴라보였다. 나치 치하를 경험한 서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다며 국가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파퐁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심대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후세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미래로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난망한 문제다. 어릿광대로 살던 아버지 앙드레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들은 진정한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알게 됐다. 과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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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3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중학생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겉모습은 가벼워 보여도 내용은 묵직했던 책이었습니다. 중학교 독서 기록장을 열심히 썼을 때 이 책 독후감을 쓴 적 있어요. ^^

레삭매냐 2018-07-03 14:18   좋아요 1 | URL
뒤늦게 읽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
역시나 명불허전이라고나 할까요.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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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주말 저녁, 서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제목도 엄청나게 긴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신작인 <제국>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는 역시 읽다만 책들을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파저란트>로 독일 문단에서 엄청난 논란을 빚은 작가라고 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나 여기 있으리>200쪽이 채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의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1917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독일 점령지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간 게 아니라 스위스에 남아 스위스 소비에트 공화국(Swiss Soviet Republics)를 건설하고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과 영국을 상대로 96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는 가상역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지도원 동지는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말라위 치체와 말을 사용하는 장교다. 아니 스위스 공산당 장교가 말라위 흑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레닌의 소비에트 이념에 충실하게 모든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파시스트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스위스인들은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끝없는 전쟁에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미래의 병사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니안자 족들은 미처 몰랐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는 노예들이었던 것이다. 소비에트 국가에 충성할 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스위스 당국은 조직적으로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배격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뭐 배경 설명은 그 정도로 해두고, 뉴베른을 최근에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 SSR의 지도원 동지 나는 혁명위원회로부터 유대계 폴란드인 브라친스키 대령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전달받는다. 그를 추격하는 과정 중에 나와 접촉한 파브르 소장과 우리엘이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말라위의 군사 아카데미와 킬리만자로 등반을 거쳐 알프스 전장에 투입된 전사인 나는 어쩌면 북방의 전장터에서 역병과도 존재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처럼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죽음의 연무가 짙게 피어 오른다.

 

마침내 요사화된 알프스 산속에서 군의관이자 치유사로 활동하던 브라친스키 대령을 만나게 된 나는 가공할 만한 전력을 동원해서 요새를 폭격한 독일공군의 화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브라친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온 미사일 개발계획은 가공의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결국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심장이 있는 나는, 갈색 눈의 홍채에서 아쿠아마린 블루 빛깔의 홍채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리고 SSR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적 모험에 나서게 된다.

 

대체역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을 아직 읽지 않아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크라흐트 작가의 <나 여기 있으리> 역시 만만찮은 내공을 과시한다. 서구적 인종주의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프리카 출신 공산주의자 지도원 동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위기는 스릴러 못지 않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백년전쟁을 끝낼 절호를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허구와 공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느낀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소품적인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말라위로 대변되는 검은대륙 아프리카는 여전히 서구의 착취대상이었을 뿐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SSR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들이 자신들이 노예 상태인 줄 모르고,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빼어난 정치기술이 아니었던가. 물론 개개의 연결점들이 빈약하긴 했지만, 크라흐트 작가가 구사하는 압축적인 문장들의 행간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이 절실하게 요구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절대 쉬운 독법으로 작가가 의도한 지점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뭐 그런 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 저녁에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의 문제적 데뷔작이라는 <파저란트>를 읽기 시작했다. 21세기 인간의 정체성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역시 여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견이 필요없을 것 같다.

 

[뱀다리] 인도와 북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저널리스트 경험이 이 책에 다분히 녹아 있다는 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정말 말라위 니안자 사람들이나 힌두스탄 혹은 동방의 제국으로 등장하는 한국에 대한 서술들은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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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원.명 - 곤경에 빠진 제국 하버드 중국사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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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에 산 하버드 중국사 원나라 명나라 편을 이제서야 읽었다. 부제는 <곤경에 빠진 제국> 그리고 저자는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티모시 브룩 교수다. 문득 왜 서구인들이 왜 그렇게 자기네 나라 역사도 아닌 중국 역사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언어도 낯선 한자문화권의 중국어가 아닌가. 그들은 어떻게 1차 사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거지? 교수 정도 되는 식자층은 우리만큼 한자에 익숙한 걸까? 그런 질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접한 대부분의 중국사는 거시사가 주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담당하는 제왕들 중심의 역사 서술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그런 거시사에서 벗어나 미시사를 다루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라고 생각한다. 한편, 티모시 브룩 교수는 특이하게도 중국 역사를 6등분한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원명편에서 특이하게도 기후결정론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거시사와 미시사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백년 남짓 중원을 제패한 원나라보다는 중국의 마지막 한족 정권이었던 명나라에 대한 비중이 많은 점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는 늪(slough)이라는 표현으로 원명시기에 중국 전역을 강타한 기후에 의한 재난을 구분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대 기록에 남은 용의 출현이 홍수, 가뭄, 기근 그리고 역병 같은 재난이었을 거라는 추정에 도달한다. 세계제국이었던 원 시절에는 모두 3번의 그리고 쇄국정책으로 농업제국의 길을 걸었던 명나라 시절에는 모두 6번이 있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원나라의 실질적인 설계자였던 세조 쿠빌라이칸이 세계제국을 꿈꾸며 민족차별정책을 도입했다면, 명나라의 시조 홍무제 주원장은 일통 중화민족의 제국의 부흥을 도모했다. 다행히 명나라 건국 후, 100여년 동안 특이할 만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 제국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달랐지만, 그들의 이상은 거의 동일했다. 황제 전제정치의 구축은 제국 건설자들의 공통적 관심사였다. 제국 통치의 기반은 무력이었다. 몽골족의 원은 말할 것도 없고, 원말기 전국에서 할거하는 군벌 중의 하나였던 주원장 역시 무력으로 한족의 명나라를 건설했다. 물론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유가적 질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태조가 모를 리가 없었다. 유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 질서의 확대야말로 홍무제가 꿈꾸었던 이상향이었다.

 

정치 질서의 안정은 경제성장을 불러왔다. 경작할 수 없는 토지들은 모두 경작의 대상이었고, 그렇게 생산된 잉여물자를 바탕으로 상업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지나친 경작의 영향과 산림벌목으로 홍수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당대에도 이미 과도한 벌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관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환경문제는 이미 500년 전에도 심각한 문제였나 보다. 사농공상으로 분류된 명대의 신분제에서 상인들은 가장 계급제도의 가장 밑바닥이었지만, 실제 그들의 소비력은 과거제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가 된 이들의 경제력을 훨씬 능가했다. 며칠 전, 이마트에 들렀다가 그전부터 탐내던 코드제로라는 무선 청소기를 하나 사왔는데, 명나라 시절 죽어라고 노동한 댓가로 세간살이을 바꾸었던 농민들과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인들의 주거래품목이었던 곡물은 마침 개통된 운하 뱃길을 따라 중원을 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명조정에서는 기존의 현물징세보다 은(銀)을 이용한 재정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농민들이 담당하던 요역 역시 은으로 대납하는 게 정부 차원에서도 그리고 민간에서도 효율적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한편, 과거시험을 통해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년간 과거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가문의 유력한 자제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원천적으로 과거는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던 모양이다. 과거를 통해 일단 입신양명하게 되면 중앙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지만,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슷한 꿈을 가지고 관료로 선발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한 때 고시폐인이라는 말처럼 현대판 과거에 응시해서 입신을 꿈꾸던 후예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민간 상업의 발달은 당연히 대다수 인구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여유가 있는 부유한 상인들은 물론이고, 농민들도 얼마 전에 코드제도 무선청소기를 무이자 6개월 할부로 산 나처럼 이런저런 세간들을 사들였다. 경덕진에서 대량생산되는 도자기는 물론이고, 의자로 대표되는 목젝가구들 그리고 서적들이 대표적인 민간 상품들이었다. 그 중에서 역시나 책쟁이의 관심을 자극하는 물품은 바로 서적이었다. <수호전>, <서유기> 그리고 <금병매> 같은 대중소설들이 대중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적유통을 촉진시켰다. 과거에 필요한 서적들은 식자층에게나 필요한 것이었고, 문자를 깨우친 이들에게 삽화가 포함된 <금병매> 같이 흥미진진한 대중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통속소설이라며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티모시 브룩이 점지한 감식안을 갖춘 신사계급의 대표선수는 바로 이일화였다. 빼어난 감식안을 가진 이일화는 자신이 찾는 원명기를 대표하는 문인과 화가들의 가품과 진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판정을 의뢰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점을 흥미롭게 여기면서 상대적으로 진품이 비해 가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은 그런 싸구려 작품을 위한 시장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동시에 명 말기에 저명한 화가가 그린 <나한>에서는 서양 르네상스 화가들이 발명해낸 명암법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을 들어, 일정한 교류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티모시 브룩의 저서 <베르메르의 모자>를 한 번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한 스페인이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에서 대량으로 채굴한 은과 일본에서 명나라와 무역을 위해 개발한 막대한 양의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상업화의 가속도를 붙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카 건문제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한 영락제는 남경성이 불타면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건문제를 추적하기 위해 정화 원정대를 남양으로 파견했다는 일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명대 초기 활발했던 해양활동은 본토개발에 치중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정화의 원정대가 기존의 알려진 인도양과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전통적 조공무역을 확대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필요한 쇄국정책으로 훗날 해양세력에게 침탈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부분 중에 흥미로운 점은 원나라는 물론이고 명나라 역시 부지불식 간에 페르낭 브로델이 발명한 세계경제(global economy)에 명백하게 편입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의 네이벌 오렌지가 한국 이마트에서 팔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은광이 태평양을 가로 질러 마닐라를 거쳐 중국에서 화폐로 유통되었다는 점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레이 황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명나라 황제 가장 오랫동안 제위를 지킨 만력제야말로 망국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었다고 지목하고 있는데, 사실 명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만주족의 청나라가 아니라 이자성과 장헌충의 반란군이 아니었던가. 만력 연간 초기에 뛰어난 정치지도자였던 내각대학사 수보 장거정의 재정정책으로 첫 번째 만력 연간의 늪은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황위 계승 문제로 정치를 외면한 만력제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위기는 임진왜란 조선파병으로 막대한 전비 지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이끄는 만주족과의 끝없는 전쟁, 각종 재난으로 국가운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입이 줄어들면서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명제국의 멸망이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무능한 위정자가 이미 정상궤도에서 탈선한 국가의 방향성을 바로 잡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으로 작동하긴 했지만 말이다.

 

<곤경에 빠진 제국>은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중에 두 번째로 내가 읽은 책이다. 앞으로 4권이 더 남아 있고, 그 중에 두 권은 소장하고 있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이었던 청나라에 대한 책도 그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미처 완독하지 못했지 아마. 나의 세 번째 하버드 중국사 도전은 그 책으로부터 시작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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