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리커버 에디션)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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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아버지 창피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정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얼마든지,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었던 아버지는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자비를 들여 장만한 어릿광대 분장 도구와 교통비를 들여가며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걸까.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 소설은 프랑스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된 모리스 파퐁 심판정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어릿광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릿광대는 바로 주인공 나였다. 어릿광대를 아버지를 그토록 수치스러워 하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어찌해서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대중 앞에 서게 되었나.

 

그 이유를 독일 군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러 갔던 날, 가스통 삼촌이 들려준다. 나치가 프랑스 전역을 점령했던 1942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레지스탕스 소속이었던 스무살난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통은 전기공으로 변장하고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장 물랭이나 로맹 가리처럼 불타는 애국심으로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이 아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레지스탕스 활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쿨한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나치들에게는 테러행위로 보이는 변압기 폭파사건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몰랐다는 점이다.

 

얼마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요격하기 위해 동부전선에서 악명을 떨친 기계화친위사단 다스 라이히가 프랑스 북부로 향하던 중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오라루드 쉬르 글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자신들의 지휘관이 레지스탕스에게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된 다스 라이히 부대원들은 무려 천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했다. 인질로 잡은 프랑스 시민들을 거리의 가로등에 매달아 죽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앙드레와 가스통의 운명도 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축구 경기에서 자신들의 팀에 진 프랑스 헌병대원의 무고로 잡혀 변압기를 폭파한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신 죽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들이 진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실을 독일군에게 말하지 않으면 애꿎은 인질 앙리와 에밀 역시 죽게 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비통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들을 감시하는 엉성한 독일 병사 베르나르 비키와 만나게 된다. 생과 사의 기가 막힌 갈림길에서 비키의 엉뚱한 행동 덕분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한껏 웃음을 만끽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라니.

 

진흙구덩이에서 죽음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진범이 잡혀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한다. 구덩이 속의 인물들은 이송 도중에 탈출해서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엔딩 부분에서 드러 진실은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뺨치는 반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 짧은 소설이 그렇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전후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신화를 그리던 모리스 파퐁은 전쟁 중에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 범죄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파리 경찰국장, 하원의원 그리고 예산장관도 지냈으며, 1962년에는 드골이 수여한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보르도 치안부국장으로 재직하던 파퐁은 어린이들 223명을 포함한 1,69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강제이송한 파렴치한 꼴라보였다. 나치 치하를 경험한 서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다며 국가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파퐁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심대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후세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미래로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난망한 문제다. 어릿광대로 살던 아버지 앙드레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들은 진정한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알게 됐다. 과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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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3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중학생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겉모습은 가벼워 보여도 내용은 묵직했던 책이었습니다. 중학교 독서 기록장을 열심히 썼을 때 이 책 독후감을 쓴 적 있어요. ^^

레삭매냐 2018-07-03 14:18   좋아요 1 | URL
뒤늦게 읽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
역시나 명불허전이라고나 할까요.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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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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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주말 저녁, 서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제목도 엄청나게 긴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신작인 <제국>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는 역시 읽다만 책들을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파저란트>로 독일 문단에서 엄청난 논란을 빚은 작가라고 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나 여기 있으리>200쪽이 채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의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1917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독일 점령지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간 게 아니라 스위스에 남아 스위스 소비에트 공화국(Swiss Soviet Republics)를 건설하고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과 영국을 상대로 96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는 가상역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지도원 동지는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말라위 치체와 말을 사용하는 장교다. 아니 스위스 공산당 장교가 말라위 흑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레닌의 소비에트 이념에 충실하게 모든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파시스트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스위스인들은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끝없는 전쟁에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미래의 병사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니안자 족들은 미처 몰랐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는 노예들이었던 것이다. 소비에트 국가에 충성할 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스위스 당국은 조직적으로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배격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뭐 배경 설명은 그 정도로 해두고, 뉴베른을 최근에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 SSR의 지도원 동지 나는 혁명위원회로부터 유대계 폴란드인 브라친스키 대령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전달받는다. 그를 추격하는 과정 중에 나와 접촉한 파브르 소장과 우리엘이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말라위의 군사 아카데미와 킬리만자로 등반을 거쳐 알프스 전장에 투입된 전사인 나는 어쩌면 북방의 전장터에서 역병과도 존재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처럼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죽음의 연무가 짙게 피어 오른다.

 

마침내 요사화된 알프스 산속에서 군의관이자 치유사로 활동하던 브라친스키 대령을 만나게 된 나는 가공할 만한 전력을 동원해서 요새를 폭격한 독일공군의 화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브라친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온 미사일 개발계획은 가공의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결국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심장이 있는 나는, 갈색 눈의 홍채에서 아쿠아마린 블루 빛깔의 홍채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리고 SSR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적 모험에 나서게 된다.

 

대체역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을 아직 읽지 않아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크라흐트 작가의 <나 여기 있으리> 역시 만만찮은 내공을 과시한다. 서구적 인종주의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프리카 출신 공산주의자 지도원 동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위기는 스릴러 못지 않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백년전쟁을 끝낼 절호를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허구와 공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느낀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소품적인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말라위로 대변되는 검은대륙 아프리카는 여전히 서구의 착취대상이었을 뿐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SSR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들이 자신들이 노예 상태인 줄 모르고,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빼어난 정치기술이 아니었던가. 물론 개개의 연결점들이 빈약하긴 했지만, 크라흐트 작가가 구사하는 압축적인 문장들의 행간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이 절실하게 요구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절대 쉬운 독법으로 작가가 의도한 지점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뭐 그런 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 저녁에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의 문제적 데뷔작이라는 <파저란트>를 읽기 시작했다. 21세기 인간의 정체성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역시 여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견이 필요없을 것 같다.

 

[뱀다리] 인도와 북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저널리스트 경험이 이 책에 다분히 녹아 있다는 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정말 말라위 니안자 사람들이나 힌두스탄 혹은 동방의 제국으로 등장하는 한국에 대한 서술들은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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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원.명 - 곤경에 빠진 제국 하버드 중국사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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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에 산 하버드 중국사 원나라 명나라 편을 이제서야 읽었다. 부제는 <곤경에 빠진 제국> 그리고 저자는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티모시 브룩 교수다. 문득 왜 서구인들이 왜 그렇게 자기네 나라 역사도 아닌 중국 역사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언어도 낯선 한자문화권의 중국어가 아닌가. 그들은 어떻게 1차 사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거지? 교수 정도 되는 식자층은 우리만큼 한자에 익숙한 걸까? 그런 질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접한 대부분의 중국사는 거시사가 주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담당하는 제왕들 중심의 역사 서술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그런 거시사에서 벗어나 미시사를 다루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라고 생각한다. 한편, 티모시 브룩 교수는 특이하게도 중국 역사를 6등분한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원명편에서 특이하게도 기후결정론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거시사와 미시사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백년 남짓 중원을 제패한 원나라보다는 중국의 마지막 한족 정권이었던 명나라에 대한 비중이 많은 점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는 늪(slough)이라는 표현으로 원명시기에 중국 전역을 강타한 기후에 의한 재난을 구분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대 기록에 남은 용의 출현이 홍수, 가뭄, 기근 그리고 역병 같은 재난이었을 거라는 추정에 도달한다. 세계제국이었던 원 시절에는 모두 3번의 그리고 쇄국정책으로 농업제국의 길을 걸었던 명나라 시절에는 모두 6번이 있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원나라의 실질적인 설계자였던 세조 쿠빌라이칸이 세계제국을 꿈꾸며 민족차별정책을 도입했다면, 명나라의 시조 홍무제 주원장은 일통 중화민족의 제국의 부흥을 도모했다. 다행히 명나라 건국 후, 100여년 동안 특이할 만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 제국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달랐지만, 그들의 이상은 거의 동일했다. 황제 전제정치의 구축은 제국 건설자들의 공통적 관심사였다. 제국 통치의 기반은 무력이었다. 몽골족의 원은 말할 것도 없고, 원말기 전국에서 할거하는 군벌 중의 하나였던 주원장 역시 무력으로 한족의 명나라를 건설했다. 물론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유가적 질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태조가 모를 리가 없었다. 유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 질서의 확대야말로 홍무제가 꿈꾸었던 이상향이었다.

 

정치 질서의 안정은 경제성장을 불러왔다. 경작할 수 없는 토지들은 모두 경작의 대상이었고, 그렇게 생산된 잉여물자를 바탕으로 상업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지나친 경작의 영향과 산림벌목으로 홍수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당대에도 이미 과도한 벌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관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환경문제는 이미 500년 전에도 심각한 문제였나 보다. 사농공상으로 분류된 명대의 신분제에서 상인들은 가장 계급제도의 가장 밑바닥이었지만, 실제 그들의 소비력은 과거제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가 된 이들의 경제력을 훨씬 능가했다. 며칠 전, 이마트에 들렀다가 그전부터 탐내던 코드제로라는 무선 청소기를 하나 사왔는데, 명나라 시절 죽어라고 노동한 댓가로 세간살이을 바꾸었던 농민들과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인들의 주거래품목이었던 곡물은 마침 개통된 운하 뱃길을 따라 중원을 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명조정에서는 기존의 현물징세보다 은(銀)을 이용한 재정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농민들이 담당하던 요역 역시 은으로 대납하는 게 정부 차원에서도 그리고 민간에서도 효율적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한편, 과거시험을 통해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년간 과거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가문의 유력한 자제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원천적으로 과거는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던 모양이다. 과거를 통해 일단 입신양명하게 되면 중앙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지만,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슷한 꿈을 가지고 관료로 선발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한 때 고시폐인이라는 말처럼 현대판 과거에 응시해서 입신을 꿈꾸던 후예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민간 상업의 발달은 당연히 대다수 인구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여유가 있는 부유한 상인들은 물론이고, 농민들도 얼마 전에 코드제도 무선청소기를 무이자 6개월 할부로 산 나처럼 이런저런 세간들을 사들였다. 경덕진에서 대량생산되는 도자기는 물론이고, 의자로 대표되는 목젝가구들 그리고 서적들이 대표적인 민간 상품들이었다. 그 중에서 역시나 책쟁이의 관심을 자극하는 물품은 바로 서적이었다. <수호전>, <서유기> 그리고 <금병매> 같은 대중소설들이 대중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적유통을 촉진시켰다. 과거에 필요한 서적들은 식자층에게나 필요한 것이었고, 문자를 깨우친 이들에게 삽화가 포함된 <금병매> 같이 흥미진진한 대중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통속소설이라며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티모시 브룩이 점지한 감식안을 갖춘 신사계급의 대표선수는 바로 이일화였다. 빼어난 감식안을 가진 이일화는 자신이 찾는 원명기를 대표하는 문인과 화가들의 가품과 진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판정을 의뢰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점을 흥미롭게 여기면서 상대적으로 진품이 비해 가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은 그런 싸구려 작품을 위한 시장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동시에 명 말기에 저명한 화가가 그린 <나한>에서는 서양 르네상스 화가들이 발명해낸 명암법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을 들어, 일정한 교류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티모시 브룩의 저서 <베르메르의 모자>를 한 번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한 스페인이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에서 대량으로 채굴한 은과 일본에서 명나라와 무역을 위해 개발한 막대한 양의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상업화의 가속도를 붙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카 건문제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한 영락제는 남경성이 불타면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건문제를 추적하기 위해 정화 원정대를 남양으로 파견했다는 일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명대 초기 활발했던 해양활동은 본토개발에 치중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정화의 원정대가 기존의 알려진 인도양과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전통적 조공무역을 확대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필요한 쇄국정책으로 훗날 해양세력에게 침탈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부분 중에 흥미로운 점은 원나라는 물론이고 명나라 역시 부지불식 간에 페르낭 브로델이 발명한 세계경제(global economy)에 명백하게 편입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의 네이벌 오렌지가 한국 이마트에서 팔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은광이 태평양을 가로 질러 마닐라를 거쳐 중국에서 화폐로 유통되었다는 점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레이 황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명나라 황제 가장 오랫동안 제위를 지킨 만력제야말로 망국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었다고 지목하고 있는데, 사실 명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만주족의 청나라가 아니라 이자성과 장헌충의 반란군이 아니었던가. 만력 연간 초기에 뛰어난 정치지도자였던 내각대학사 수보 장거정의 재정정책으로 첫 번째 만력 연간의 늪은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황위 계승 문제로 정치를 외면한 만력제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위기는 임진왜란 조선파병으로 막대한 전비 지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이끄는 만주족과의 끝없는 전쟁, 각종 재난으로 국가운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입이 줄어들면서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명제국의 멸망이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무능한 위정자가 이미 정상궤도에서 탈선한 국가의 방향성을 바로 잡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으로 작동하긴 했지만 말이다.

 

<곤경에 빠진 제국>은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중에 두 번째로 내가 읽은 책이다. 앞으로 4권이 더 남아 있고, 그 중에 두 권은 소장하고 있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이었던 청나라에 대한 책도 그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미처 완독하지 못했지 아마. 나의 세 번째 하버드 중국사 도전은 그 책으로부터 시작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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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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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쟁이로서 퓰리처상이니 맨부커상,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아우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처음 들어보는 미국작가인 비엣 타인 응우옌의 책 <동조자>를 선택해서 읽게된 첫 번째 이유는 아마 그것일 테고, 두 번째 이유는 지난달에 읽은 베트남 참전 용사가 기술한 <전쟁의 슬픔>과 비교해 보고 싶은 이유였다. 하나 더 추가해 보자면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 정도.

 

소설 <동조자>의 시간적 배경은 1975년 4월이다. 그러니까 적군 18개 사단에 포위된 사이공 함락을 눈앞에 두고, 프랑스 가톨릭 사제 아버지와 베트남 하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스로를 “잡종 새끼”라고 부르는 베트남군 병참 장교(실제로는 비밀경찰)의 자술로 시작된다. 화자는 확실히 문제적 인간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엔비엔푸 전투 후, 월남으로 도생한 나는 CIA 요원인 클로드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다. 하지만 십대 시절에 이미 그는 지기 만과 민족해방에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니까 그는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그리고 CIA 요원이기도 했다. 일단 응우옌 작가는 그의 혈통만큼이나 복잡한 캐릭터를 ‘나’에 심는데 성공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다는 <더 햄릿> 영화판에서의 고민처럼, 나의 일생 자체가 복잡다단했다.

 

나는 비밀경찰을 지휘하는 장군 휘하에 들어가 부관으로 뛰어난 실력으로 장군의 신임을 얻고, 숱한 정보들을 북쪽의 자신의 동지들에게 넘긴다. 투철한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친구 만이 있다면, 또 한편에는 공산주의자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 친구 본이 있다. 우정과 이데올로기를 가로지르는 주인공의 정체성이야말로 소설에서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이 믿는 조국을 위해 싸웠다. 사이공 함락의 날, 탄손누트 공항에서 악착같이 저항하는 베트남 공수부대를 상대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기록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바오 닌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문득 제목 <동조자>가 주는 어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무엇에 대해 동조한 사람을 가르키는 말일까하고.

 

다시 사이공 마지막 날로 돌아가 보자.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만은 현지에 남기로 하고, 나(혁명가답게 독신이다)와 본의 가족 그리고 장군 가족은 미군 수송기 허큘리스를 타고 사이공 탈출에 나선다. 사이공 탈출이라는 극적인 장면을 주인공에게 부여한 설정도 놀랍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M-16을 든 거구의 양키들에게 처참한 패배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잡종 새끼인 내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은 정말 탁월했다. 동시에 패배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미국 문학의 힘을 보았다고나 할까. 저자 응우옌 역시 베트남 출신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포스트워 세대가 아닌가. 거의 전 세계이 모든 문화적 용광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문학판의 위력을 소설 <동조자>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좋았던 시절인 사이공 함락에 있어 비극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본의 아내 린과 아들 덕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오랜 경구답게 어디서 날아온 총탄인지 모를 그런 총탄을 죽은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껴안고 거의 울부짖으며 허큘리스 비행기에 간발의 차이로 매달리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소설은 거의 반드시 영화화된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주인공 나의 캐스팅은 대니얼 헤니 정도가 좋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이제 무대는 괌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의 임시수용소로 이동한다. 미국 학위를 가진 나는 재빠른 속도로 미국 사회에 안착한다. 렌탈 숙소, 자동차 그리고 일자리의 삼위일체로 무장한 나는 미국 사회에 융합하기 시작한 베트남 난민들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반동적이고 불온한 움직임을 탐지하는 역할을 지속하게 된다.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시퀄은 끝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내가 대학으로 돌아가 보니,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맹렬하던 베트남전쟁 반대를 하던 세대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해서 떠나 버렸고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베트남전쟁은 태평양을 가로 지르는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는 것을 듣는 순간,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망각의 샘으로 인도하는구나.

 

<동조자> 첫 번째 권의 내러티브는 사이공 함락, 미국 사회에 재적응하기 그리고 <더 햄릿> 영화촬영으로 이어진다. 사이공 함락 후, 구 월남정권에 부역한 이들을 재교육이라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미국에서 임시수용소라는 신병교육대가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장군이나 나같은 이들에게는 재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의미했다. 뒤늦게 자신의 주변에 북베트남 스파이가 없었는지 의심하게 된 장군에게 나와 본은 무절제한 소령을 미끼로 던져주기에 이른다.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임무에 잠시 고민하기도 하지만, 조국에서 민족해방이라는 대의 앞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이른 나이게 미국 생활을 통해 이종교배된 장군의 딸 라나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사고와 의식은 완전하게 미국적이지만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에피소드는 내가 기술 컨설턴트로 참가하게된 작가주의 영화 <더 햄릿>의 촬영장이다. 촬영현장에서 나는 인종주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작가주의 감독과 열전을 벌인다. 이 과정은 서구인들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예리하게 타격한다. 어쩌면 작가주의 감독이 카메라워크를 통해 구사하는 모든 것들이 프로파간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씨퀀스들은 어쩔 수 없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켰다. 부랴부랴 영화를 구해서 바그너의 <발퀴리의 비행>이 나오는 미군 헬리콥터 부대가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골라봤다. 하늘에서 그러니까 신의 시선에서, 이제 막 징병되어 전선에 투입된 어리숙해 보이는 미군들이 민간인들에게 기총 소사하는 장면은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었다. 진격 나팔 소리와 함께 건국의 아버지들이 인디언들을 향해 기병대를 출동시켰던 것처럼, 말을 대신할 헬리콥터로 가상의 적을 소탕하는 장면이라.

 

영화 촬영장에서 단역에 동원된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에서 궁극적 승리자였던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고작 일단 1달러에 자신을 팔아야 하는 현실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왜곡과 명백한 승리의 훼손이었다. 카메라 렌즈로 필터링된 이미지가 어떻게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소설에 어딘가에 작가가 기술한 대로, 군산복합체의 일원인 할리우드가 제작한 영화는 베트남전쟁의 시퀄이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전쟁에 대한 프리퀄이었다는 진단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한편으로는 베트남 현지에서 그들이 쟁취한 승리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자유세계로 후퇴한 반동세력에 대한 우려는 나의 존재로 설명되지 않던가. 패배한 이들도 그리고 승리한 이들도 모두 전쟁의 후유증인 극심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숨가쁘게 첫 번째 <동조자> 1권을 읽었다. 원래 같으면 바로 2권을 사서 읽어야겠지만 다음달부터 산 책부터 소득세공제를 해준다고 하니 앞으로 책 사기는 모두 일주일 뒤로 미룰 생각이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사이공 탈출 때는 목숨은 건 친구이자 전우였지만, 알고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인 본과 나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베트남에서 출발해서 미국을 거쳐 과연 최종 종착지는 어디인지 그리고 자술하는 대상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어제 읽은 신문 인터뷰에 의하면 응우옌 작가의 <동조자>의 후속편을 기획 중에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뿌리인 프랑스 파리를 찾은 나의 1980년대가 시공간적 배경이라고 한다. 그전에 올해 발표된 응우옌 작가의 소설집 <난민들>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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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 비엣 타인 응우옌 - 동조자(The Sympathizer)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첫 소설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월남 출신 작가로 역시나 월남 패망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월남군 병참 대위 출신으로, 사실은 공산주의자 스파이였다. 고정간첩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만과 더불어 민족해방전선의 일원으로 비밀경찰을 지휘한 장군 휘하에서 참모로 활약했다. 아 게다가 가톨릭 사제인 외국인 아버지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로 어디에서고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그의 성공의 비밀이었다.

 

다시 한 번 처참한 패전까지도 자기네 문학의 일부분으로 소화시켜 버리는 미국 문학의 힘을 엿볼 수가 있었다. M-16을 거머쥔 양키가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사이공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비참한 패배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월남 출신 작가가 서술한 이방인 혼혈 스파이야말로 그 역할에 제격이지 않은가. 놀라운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괌을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었다. 자신의 모교에서 일자리를 얻고, 후원금을 바탕으로 임대거처를 구하고 중고차를 구하는 과정이 낯설지 않은 이국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난민들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로 받아 들여졌다. 그전에 임시로 거처하는 난민수용소는 미국 사회에 이질적인 난민들을 위한 신병수용소라고 콕 짚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지금 난민문제와 직면하게 되지 않았는가. 숱한 혐오와 차별을 뚫고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네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달에 읽은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은 최후까지 발악하는 월남 공수부대를 상대로 탄손누트 공항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르면서 거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는데, <동조자>의 주인공 나는 비록 절친 본의 아내 린과 대자 덕을 잃긴 했지만 미국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남은 부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할 지 기대해 본다.

 

 

그리고 여담으로 영화화되기에 아주 좋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서 아마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주인공 나를 캐스팅한다면? 아마도 다니엘 헤니가 어떨까 싶다. 혼혈이라는 강점도 있고... 아 베트남어 실력이 문젠가.

 

 

올해 초에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난민들>(Refugees>도 나왔다고 하는데 <동조자>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 아마 소설집도 곧 나오지 않을까. 분량도 적고 해서 지금 원서로 주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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