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2

 

- 비엣 타인 응우옌 - 동조자(The Sympathizer)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첫 소설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월남 출신 작가로 역시나 월남 패망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월남군 병참 대위 출신으로, 사실은 공산주의자 스파이였다. 고정간첩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만과 더불어 민족해방전선의 일원으로 비밀경찰을 지휘한 장군 휘하에서 참모로 활약했다. 아 게다가 가톨릭 사제인 외국인 아버지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로 어디에서고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그의 성공의 비밀이었다.

 

다시 한 번 처참한 패전까지도 자기네 문학의 일부분으로 소화시켜 버리는 미국 문학의 힘을 엿볼 수가 있었다. M-16을 거머쥔 양키가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사이공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비참한 패배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월남 출신 작가가 서술한 이방인 혼혈 스파이야말로 그 역할에 제격이지 않은가. 놀라운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괌을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었다. 자신의 모교에서 일자리를 얻고, 후원금을 바탕으로 임대거처를 구하고 중고차를 구하는 과정이 낯설지 않은 이국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난민들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로 받아 들여졌다. 그전에 임시로 거처하는 난민수용소는 미국 사회에 이질적인 난민들을 위한 신병수용소라고 콕 짚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지금 난민문제와 직면하게 되지 않았는가. 숱한 혐오와 차별을 뚫고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네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달에 읽은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은 최후까지 발악하는 월남 공수부대를 상대로 탄손누트 공항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르면서 거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는데, <동조자>의 주인공 나는 비록 절친 본의 아내 린과 대자 덕을 잃긴 했지만 미국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남은 부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할 지 기대해 본다.

 

 

그리고 여담으로 영화화되기에 아주 좋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서 아마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주인공 나를 캐스팅한다면? 아마도 다니엘 헤니가 어떨까 싶다. 혼혈이라는 강점도 있고... 아 베트남어 실력이 문젠가.

 

 

올해 초에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난민들>(Refugees>도 나왔다고 하는데 <동조자>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 아마 소설집도 곧 나오지 않을까. 분량도 적고 해서 지금 원서로 주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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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카스 2006 / 존 라세터

 

요즘 꼬맹이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 구하기에 바쁘다. 그 중에 제법 연식이 된 영화 픽사의 <카스>(2006)를 감상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영어자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빙판으로 보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픽사는 피스톤컵 처녀 출전에서 우승을 노리는 잘난 레이싱카 라이트닝 맥퀸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벌써 12년이나 되었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완성에 이른 듯하다. 이야기면 이야기, 캐릭터면 캐릭터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그렇게 잘 만들어내니 전세계 팬들의 열광을 받을 수밖에. 다만, 후속편은 좀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1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피스톤컵 레이스에서 공동 3위를 하는 바람에 66번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에 가서 재경기를 치르게 된 라이트닝 맥퀸. 이동 트레일러 카가 깜빡깜빡 조는 바람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 라이트닝 맥퀸.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쇠락한 마을에서, 경찰과 판사 그리고 변호사의 작당으로 과속에 신호위반이라는 죄목에 잡혀 도로포장이라는 노역형을 치르게 된다. 물론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서 피스톤컵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도주도 감행해 보지만, 아무리 시골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맥퀸의 도주를 예상하고 미리 기름을 빼둔 덕분에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잡혀오게 된다.

 

서사는 치기 어린 선수가 숨은 고수를 만나 비전을 전수받게 된다는 중국 스타일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고수는 너 혼자가 아니란다 꼬맹아. 왕년에 피스톤컵 3연패에 빛나는 닥 허드슨(폴 뉴먼 목소리 연기)과 경주를 벌이기도 하지만 패기만 가지고 왕년의 레이싱 챔피언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로 활약하던 포르쉐 샐리와의 만남도 점점 미래의 챔피언 맥퀸이 마을에 정을 붙이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아, 그리고 사이드킥으로는 고물 뻐드렁니 견인차 메이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아니 자동차라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외딴 마을에서 군소리하지 않고 묵묵하게 도로 까는 일을 하는 맥퀸에게 메이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성공의 단맛에 취할 수도 있었던 맥퀸이 심성 좋은 자동차들이 사는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서의 유배생활을 통해 비로소 실력만 갖춘 레이싱 챔피언이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진정한 챔피언으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픽사/디즈니는 그려내고 있었다. 뭐 항상 현실세계에서 그런 정공법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디엄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우승을 앞두고, 피스톤컵 우승을 라이벌에게 양보하는 점이 시사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번 실패하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점이 아니었을까. 물론 기본 조건은 라이트닝 맥퀸이 이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의 부여 그리고 누구 못지 않은 실력이었으리라. 물론 맥퀸이 그런 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야말로 감성에 메말라 버린 시절에 뉴스와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 축적된 자산을 지니게 된 맥퀸은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기회와 부를 선사해줄 다이노코 사와의 후원 계약 대신 어려운 시절 자신을 후원해온 러스티 사와의 계약을 유지할 거라는 선언을 한다.

 

디즈니 사의 창업주 월트 디즈니의 탐욕스러운 비즈니스 정책과는 사뭇 다른 맥퀸의 선택이 낯설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동심으로의 회귀라는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해서, 박스오피스에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는 거대 영화사로 거듭난 디즈니의 전통 서사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야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훌륭한 유산이라는 식의 감동 섞인 지도가 나는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렌더링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실사 같은 감정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표정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같은 기술적 질문들보다 전통서사에 입각한 낡은 가부장 질서야말로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생각들일 터인데 그것을 고집하는 디즈니 경영진의 고집에 두 손 들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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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2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롭네요~^^
이 영화를 무려 극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낄낄거리고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 자동차라면 꿈뻑 넘어가신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님도 겹쳐지고 그랬었어요.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꾸벅~(__)

레삭매냐 2018-06-22 10:36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픽사 애니 모두 챙겨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영화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네요...

자유롭게 영화 볼 날을 꿈꿔 봅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절대 사업으로 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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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4년 전, 소설리스트를 통해 <호텔 로열>의 작가 사쿠라기 시노를 알게 됐다. 이제 소설리스트는 가고, 사쿠라기 시노는 남았다. 그동안 작가의 다른 책들도 볼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나의 블로그 독후감 기록장에서 그 시절 내가 쓴 리뷰를 찾아봤다. 관능소설 작가라... 작가의 부친이 직접 <호텔 로열>이라는 상호의 숙박업소를 운영하셨다고.

 

점점 쇠락해 가는 지방 홋카이도의 구시로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문학적 시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소설집 <빙평선>에는 모두 6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 <설충>에서는 도회로 부나방처럼 성공을 쫓아 나갔다가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귀농해서 낙농업에 전념하고 있는 남자 다쓰로와 그의 불륜상대 시키코 그리고 필리핀에서 인신매매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집온 마리가 차례로 등장한다. 가업인 젖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남자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쓰로에게 반강제로 외국인 신붓감을 안겨주는 그의 부모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쓰로가 도시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과연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옛친구 시키코와 사일로에서 밀회를 가지며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파렴치해 보이는 다쓰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문득 일본의 농촌도 우리네 사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부모 세대의 모습과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도시에 나가 보란듯이 성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들의 충돌이라고나 할까.

 

다음 작품 <안개 고치>에는 오랫동안 스승의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해온 마키 씨가 스승에게 독립을 인정받고 어엿한 바느질쟁이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쩔 수 없니 김숨 작가의 <바느질하는 여자>가 바로 연상됐다. 김숨 작가가 긴 호흡으로 진짜 장편을 구사해냈다면, 사쿠라기 시노는 조금 빠른 템포로 달려간다. 지난주에 이른 여름휴가로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에 갔었는데 전시실을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소설에 등장하는 시침질과 겹봉 같은 바느질 용어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역시나 책의 위력이란! 하나의 어엿한 직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스케치해낸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엿볼 수 있는 장인-도제 시스템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시골로 시집온 도쿄 며느리는 가부장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시달려야 하고, 옆집 숟가락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웃들이 넘실대는 시골에서의 삶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젊고 변죽 좋은 초등학교 교사와 불장난으로 실화에 이를 뻔하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는 균형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 교코는 딸아이를 데리고 지긋지긋해 보이는 시집을 떠나게 되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살아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내가 얽매여 있는 일상이 얼마나 공고하고 루틴을 깨는 게 쉽지 않은지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이른바 관능소설 작가로서 사쿠라기 시노의 실력은 <바다로 돌아가다>에서 폭발한다. 이제 막 지난 10년간의 엄격한 도제 생활을 마치고 이발사로 독립한 게이스케는 25살이다. 혹독한 홋카이도의 계절들이 차례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는 스승이 물려 준 손님과 새로운 손님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실부모하고 오로지 이발 기술 하나로 세상에 맞서온 청년 앞에 어느 날 기네코라는 이름처럼 비단결 같고, 매혹적인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옷차림하며 범상치 않은 외모로 그저 오가는 평범한 손님인지 아니면 미래의 연인인지 모를 그런 위치가 주는 긴장감 속으로 독자는 내몰린다. 아니 이렇게 격정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더더욱 고혹적이었을까? 게이스케 청년과 팜므 파탈 기네코의 격정적 아니 관능적 로맨스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솟아오른다고나 할까. 그런 애증의 쌍곡선은 맨 마지막에 배치된 표제작 <빙평선>에서 그야말로 바다 위로 솟구치는 범고래의 점프처럼 튀어 오른다.

 

아 그전에 5번째 <물의 관>이 있었지. 이제 병치료도 서비스업이 된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매끄러운 실력으로 과잉진료로 서슴지 않고 권하는 니시데 원장과 그의 도제(?)이자 애인인 료코의 관계로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15살 연상이라는 나이차도, 특별수당이라는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둘의 욕망은 사위를 가리자 않고 분출한다. 하지만 료코는 자신이 관계를 중단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관계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시골 치과의사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고 과감하게 니시데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비로소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전문의로 거듭나게 된 료코는 여전히 니시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니시데, 병색이 완연하다는 점 말고는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떠난 그가 얼마 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과의사에게 치명적인 반신불수 증상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니시데의 장끼인 과잉진료가 이슈가 되면서 잘 나가던 그의 클리닉은 파산으로 내몰린다.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료코가 옛 연인을 건사하기에 이른다. 뭐랄까 글로 표현하기에는 오묘한 그런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더 나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그들이 잘 먹고 잘 살았는지 아니면 새로운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니까.

 

긴 여정을 거쳐 마지막 표제작인 <빙평선>에 도달했다. 기본적으로 <빙평선>은 어부 출신 아버지로부터 막말에 가까운 학대를 받으며 성장해서 자력으로 도쿄대와 재무성을 거친 엘리트 도고 세이치로와 마을 사람들에게 변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천대를 받은 도모에의 러브 스토리다. 세이치로 아버지의 학대는 아들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아버지와 격하게 한판 붙은 날, 세이치로는 5천엔을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도모에를 찾아 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시나 격정적 러브 씬. 사쿠라기 작가 양반은 역시나 관능소설 작가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세이치로는 다시 도모에를 찾는다. 둘에게 행복한 시간들이 펼쳐졌을까 과연? 아마 아닐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주변의 시선과 연이어 벌어진 방화사건은 관계의 파국의 전조처럼 슬며시 다가온다. 엔딩으로 치닫는 가운데, 빙평선 너머 바닷가 위를 위태롭게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홋카이도 구시로를 배경으로 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글을 보다 보니 문득 태화강이 흐르는 울산을 배경으로 지역색 강한 작품을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정정화 작가 생각이 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오키상 수상 작가라는 아우라가 있긴 하겠지만, 과연 어느 작가가 첫 작품에서부터 이런 애잔한 에로티시즘을 구사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거침없고 대범한 에로티시즘을 마치 무슨 공깃돌 놀리듯 관계의 핵심에 배치하고 애증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참으로 농밀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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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4 1 - 결혼이란 달면서도 씁쓸하구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북치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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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싸이월드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인스타그램이 대세인 모양이다. 인스타를 통해 수많은 예비 웹투니스트들이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낢 씨 같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인스타는 기회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아니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히 홍보를 하고, 콘텐츠를 전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말다를 거듭하던 <낢이 사는 이야기>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무려 이과장과의 레알 신혼 이야기란다. 작가의 어머님처럼 올빼미과인 낢 씨와 바른생활 싸나이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건축설계사 이과장 씨의 딴따따딴~ 딴따따딴으로 생활밀착형 웹툰은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요 작가의 웹툰에는 기똥찬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마 거창한 것을 싫어하는 그런 스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우리네 일상 어디에서고 걷어올릴 수 있는 그런 소재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보고 싶다면, 인스타의 또다른 페이지들을 찾으면 되니깐. 그런 인스타들은 주변에 차고 넘치지 않던가.

 

아무래도 집안의 청소를 맡고 있다 보니 바른생활 싸나이 이과장의 습성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물론 그처럼 열심히 그리고 잘하지도 못하는 청소지만 청결 유지와 음식물 쓰레기 처분에 힘쓰는 그의 모습에서 아 짝지들은 다 저렇게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되는 장면에서도 찡했다네 동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빡시게 돌아간다면 누구라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오로지 호구지책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레알리즘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장면들이 재밌었다. 물론 동물을 어려서는 좋아했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마당에,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하나만으로도 벅차기에 그저 낢 씨를 존경할 따름이다. 뮬론 녀석들을 통해 퍼올리는 소재사냥도 쏠쏠할테니 서로 윈윈 시츄에이션일까나. 고양이 삼총사 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카 불패를 비롯해서 모두가 소재일세. , 그리고 결혼한 뒤에 따라붙은 가족계획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사양한다고 밝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잘할 터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두시라는. 그러니까 일종의 경계선 긋기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라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생활만화가의 고뇌일까, 뭐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웹투니스트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건 여까지라는 선언.

 

웹툰을 신나게 읽을 적에는 무언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막상 타이핑을 하다 보니 기운이 다 빠져 버렸다. 나는 오늘도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버려야 하며, 먹고 남은 설거지들을 처리해야 한다. 엊그제 먹은 오징어 볶음의 잔재들 때문에 일차 설거지에서 진을 뺐더니 영혼을 털린 듯한 느낌이다. 격렬하게, 진심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녁이다. 뭐 그래도 이렇게 리뷰도 쓰고, 6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딱 절반 정도 남은 사쿠라기 시노의 <빙평선>도 마저 읽어야 한다. 낮보다 선선해 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날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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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영의 참모들 -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
위톈런 지음, 박윤식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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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단 술술 잘 읽힌다. 수년 전에 샀지만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결국 다 읽게된 위톈런의 <대본영의 참모들>에 대한 첫 느낌이다. 아무래도 역사를 전공한 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군더더기가 없고 나같은 아마추어들이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한때 작전의 신(허명이었다)이라는 쓰지 마사노부로부터 시작해서 만주사변의 원흉 이시와라 간지, 도쿄 전범재판의 슈퍼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 육군 최악의 전투였던 임팔작전의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에 이르기까지 메이지 시절부터 쇼와 군벌 시절을 아우르는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들이 화려하게 책 속에서 명멸한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을 계기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 아래 폭주를 거듭하기에 이른다. 그 중심에는 바로 삿초동맹으로 일본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사쓰마번과 조슈 번의 사무라이들이 있었다. 일왕을 정점으로 일왕에게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일단의 군인들이 군국주의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육군사관 학교 출신 엘리트 군인 중에서도 정예 소수만을 선발해서 육군대학(육대)에 진학시켜 훗날 일본 군계를 좌지우지할 일단의 군인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회 수석 졸업생은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 도조 히데노리였다.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지휘했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엄청난 전과를 올리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 엄청난 액수의 전쟁배상금과 타이완 할양, 조선에서의 우위권 확보는 전쟁의 목적과 규모 그리고 범위를 엄정하게 정한 이토의 혁혁한 공이었다. 하지만 제국 러시아와의 전쟁은 달랐다. 청일전쟁의 전비를 엄청나게 능가하는 비용과 수많은 전상자수를 보라.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치르고도 청일전쟁에 비해 얻은 게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의 망조가 시작된 게 아닐까. 일본인들이 군신으로 떠받드는 노기 마레스케가 뤼양 포위전에서 보여준 무모한 반자이돌격을 그대로 신봉해서, 태평양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서 그대로 재현한 참모들의 무능함을 비웃기도 한다. 군신이 아니라 바보장수가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문제점은 문민정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의 지휘권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가 아닌 일왕에게 귀속시키면서 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군의 운좋은 승리는 일본 국내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폭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육대 출신 참모들의 실력이라도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사회에서 격리된 채, 어려서부터 군대 문화만 체득한 이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책상머리에서 벌이는 작전만 최고라고 생각한 이들이, 현대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병참 문제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작전 지역에서 실제 작전보다 보급을 위한 약탈에 전념하느라 작전을 망친 게 한두 번이던가.

 

어쨌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바야흐로 세계열강들의 인정을 받게 된 일본제국의 군인들의 폭주가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육대 출신 엘리트 참모들이 있었다. 일본 육군의 이단아이자 천재였던 이시와라 간지의 경우를 보자. 만몽생명선이니 최종전쟁론 같은 황당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건설하고, 확전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시와라의 주장은 바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군령 계통을 무시한 후배들에 의해 1937년 노구교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라는 전면전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임팔작전 당시 사령관이었던 무타구치 렌야가 일선 지휘관으로 활약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다. 황도파와 통제파의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고질적이었던 육군과 해군의 대립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40년 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일본군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인 대륙의 장쉐량의 동북군벌과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상대하면서 기세가 올랐다. 제국주의 선배인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후발주자 미국의 앞마당인 동남아시아와 서남태평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조선과 타이완, 만주 그리고 중원까지 집어삼키는데 성공한 일본 군부의 가상적국은 원래 북방의 소련이었다. 작전의 신이라는 엉터리 참모 쓰지 마사노부가 드디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기계화부대에게 참패당한 관동군의 주역들은 아무래도 수월한 상대인 남방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끝까지 파국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현 시점에서 일본의 중국 지배까지 인정하고, 전쟁에 꼭 필요한 물자인 석유금수 조치의 해제와 일본의 미국내 자산 동결을 취하하겠다는 훨씬 완화된 조건을 내걸지만, 폭주하는 일본군 참모들은 뚜렷한 전쟁목표도 없이 오로지 주전만을 외친다. 도대체 일본 군부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정한 전쟁의 목표가 존재했던가. 오로지 침략의 확대만이 그들이 원한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공업국가 미국을 상대로 해서 승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진주만 기습이라는 도박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한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 전기를 내주기 전까지 필리핀, 홍콩, 말레이반도, 싱가포르 그리고 바타비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승전고를 울려왔다. 딱 거기까지가 일본군의 호시절이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비로소 미군의 실력을 알았음에도, 굳이 이단아 출신 천재 참모 이시와라 간지의 남양군도에서 후퇴해서 방어에 주력하라는 고언을 일본 군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미나가 교지의 사주로 시작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는 대전의 서곡이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어디 그런 엉터리 참모가 도미나가 교지 하나 뿐이었던가. 상세한 정세판단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정보참모들의 비관적인 의견들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무모한 돌격작전으로 무수한 병사들의 생명만 희생시킨 자들이 바로 육대 출신 무능한 참모들이었다는 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호리 에이조 같이 적의 정세를 뛰어나게 분석해내는 참모도 존재했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의견이었을 뿐이다. 상관에게 보내는 정보마저 차단하고, 개전 당시 외교상대국 국가원수의 전보까지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하극상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이들이 바로 국가가 애써 양성한 엘리트 참모들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도조 히데키 같은 정치군인들은 종전 후, 군사재판에서 전범으로 분류되어 교수형을 당했지만 참모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하긴 그전의 그들이 중국 대륙과 남양군도에서 숱하게 저지른 하극상과 쿠데타 기도, 작전실패에 대해 그들의 상관들도 역시 책임을 묻지 않았던가. 당연히 A급 전범으로 처벌받았어야 할 쓰지 마사노부가 전후 잠행해서 장제스 휘하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시점에 등장해서 일본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 때는 국가의 동량으로 떠받들어 지던 일단의 엘리트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대신, 자신들의 영달과 입신양명만을 위해 전쟁 확대를 주장하고 결국 국가를 패망으로 이끌었다는 점이야말로 <대본영의 참모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핵심이다. 만날 소설만 읽다가 간만에 읽은 역사평설이었다. 흥미로웠다.

 

* 과다한 오탈자와 오기 등등으로 별점 하나를 뺐다.
일본책을 번역해서 그런진 몰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출판사에서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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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1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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