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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예상대로였다. 이것은 프랑스 출신 르포 소설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엠마뉘엘 카레르의 벽돌 사이즈만한 기독교 르포 소설 <왕국>에 대한 이야기다. 기성작가로 활동하던 카레르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흔히 겪는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교조주의적 가톨릭 신자로 변신하게 된다. 무신론자에서 영성체를 하고 매일 같이 미사에 참석하게 되는 열혈 신자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에 서술이 소설의 초반 155쪽(!)을 집어 삼킨다. 무신론적인 입장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전개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고나 해야 할까. 내가 기대한 것은 기원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같은 헬레니즘 세계를 누비며 기독교 교리와 신앙을 전파한 바오로와 루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신앙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삼위일체, 무염시태, 영성체 의식(성찬식) 그리고 예수의 부활(교황 무오류설은 당연히 제외하자) 같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어쨌든 신앙과 불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저자 카레르는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조건 없이 투항해서 슬럼프를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삽입된 아이들의 보모였던 미국 출신 제이미에 대한 에피소드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속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회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장면이야말로 불완전한 피조물로서의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끔찍한 것을 쓰는 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는 법이라는 자조적인 패러프레이즈에 담긴 블랙유머에서 작가의 스타일을 읽을 수도 있었다. 고백하건데 카레르와는 첫만남이라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으로 도전에 나섰다.
고진감래라고, 드디어 바오로와 루카가 등장하는 장면과 만나게 됐다. 자, 이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로마 제국이 번성하던 가운데, 그리스도 사후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요즘 말로 하면 힙한 종교, 초기 기독교는 기존의 엄격한 유대교에서 요구하는 개종의 조건(할례) 대신 세례라는 비교적 간단한 개종 방식으로 민간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걸출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본인 역시 개종한) 바오로가 등장한다. 소아시아의 항구도시 트로아스(고대 트로이)에서 바오로와 만난 이방인(그리스인) 의사이자 프로셀리테스(개종자) 마케도니아 사람 루카는 소아시아 선교 대신 서방으로 목적지를 이동하기에 이른다. 루카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카레르가 고른 르포 소설의 원전에 해당한다. 복음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카레르 작가는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장장 20권에 달하는 자신의 신앙 노트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성서 연구와 다양한 주석을 바탕으로 <왕국>을 재창조했다는 점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신자/불가지론자로 돌아가게 된 자신의 신앙여정에 대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윤리적 혁명가이자 직접 노동을 하며 선교여행에 나선 러바이(rabbi) 바오로는 필리피와 테살로니카 그리고 베로이아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수차례 겪게 된다.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삼았던 로마 관리들은 바오로의 선교활동으로 빚어진 종교 갈등에 불개입의 원칙을 분명하게 한다. 초기 기독교 시절, 모든 종교인들은 사기업으로 인정받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기존 (종교) 고객을 빼앗아 가려는 유대교의 신흥 분파 ‘크리스투스의 형제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을 강조하는 크리스투스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모함이 난무했지만, 공통의 신경(信經:creed)으로 무장한 그들은 훗날 대대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박해로도 제압할 수가 없었다. 카레르 작가는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신들을 고문하고 박해하던 로마인 장교가 경험하게 되는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시도한다. 당시 유행하던 스토아철학의 범신론과 유물론적 아이디어들은 기독교 정신과 충돌하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금욕주의 정신과 인류애에 대한 사고들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소설 <왕국>이 진행되는 동안, 카레르는 신앙인에서 다시 불가지론자로 전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오로와 루카의 행적을 쫓는 여정이 식은 건 아니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개종자에게도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기존 교회의 트로이카(베드로, 요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와 일대 결전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상 기독교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지도자 바오로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신흥 종교가 아닌 세계종교로서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유대인은 유대인들의 규례를 따르는 대신, 신참 프로셀리테스들에게는 할례를 면한다는 절충안에 도달한다. 또한 소아시아 선교 중에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코셔(kosher) 음식에 대한 섭취 또한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당대의 유대인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저자가 소설에서 계속해서 주입하듯이, 현재의 시각이 아닌 당대의 시각으로 벌어진 사건을 보아야 한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대표적 보수주의자 야고보에게 개종자도 당연히 그들의 규례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예루살렘의 트로이카들은 크리스투스 살아 생전에 그를 따른 정통 사도들이 아니었던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크리스투스를 만났다고 주장하며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기독교 원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재정 지원까지 하겠다며 나선 바오로를 그들이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은 게 뻔하지 않은가. 저자 카레르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 가운데 백군 지도자가 등장해서 적군원수였던 스탈린에게 투항할테니 전권을 달라는 비유로 바오로와 트로이카의 구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도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바오로의 선교가 계속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이들이 바오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며 역습을 가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교리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라고나 할까. 내부의 적이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파들이었다면 외부의 적들로는 정통 유대교의 규례를 주창하는 바리사이인들과 사두가이 귀족들도 뽑을 수 있겠다. 결국 바오로는 그들의 고소에 따라 카이사리아의 로마 총독 거주지에서 2년간 유형생활을 겪고 로마로 압송된다.
소설 <왕국>에서 저자 카레르가 다루는 주제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크리스투스의 부활, 종말과 구속사, 칭의론 같은 이슈 같이 바오로가 천착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해서 프로셀리테스 루카가 관심을 보인 기독교인으로서 현실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은 되새겨 볼만하다. 사망 권세를 이겨낸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교통과 통신이 현대처럼 발달하지 않은 원시 기독교시절에 갈릴래아 출신의 크리스투스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이적이야말로 최고의 선교를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지배계급이 훗날 그 유익을 알게 되는 현세에 충실하라는 지상명령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현세의 고난이 내세의 지복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설정도 기득권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명제가 아니었던가.
한편 카레르는 기독교 신약의 정전들인 3개의 공관복음서와 그 결을 달리 하는 요한복음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가 소설 <왕국>의 집필에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고 했던가. 주를 이루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희대가 역사가 루카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서>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르포 소설가답게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술된 디테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복음서 중에 가장 늦게 출현한 <요한복음>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인 기독교도 혹은 그리스화된 교육받은 장로 요한이 대필했을 거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에서 출발한 사도들이 과연 그렇게 유려한 문장들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싶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원 66년부터 8년간 지속된 유대전쟁 그리고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편에 붙어 변절한 유대귀족 요세푸스 플라비우스가 남긴 당대의 기록 <유대전쟁사>(서기 79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착취에만 관심이 있었던 역대 로마 총독들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은 결국 성전 파괴와 유대인의 파멸(디아스포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트로이카로 대표되는 유대인 기독교를 대신해서, 그동안 주류에서 밀려나 니콜라오스파 혹은 발람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비주류의 설움을 겪던 바오로의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비롯한 세계를 아우르는 종교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뛰어난 역사가 루카가 등장하게 되는 장면에 저자 카레르는 방점을 찍는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에서는 너무 방대하면서도 신학적으로 논란거리가 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이 짧은 리뷰에 담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지식이 없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도 열렬한 신앙인에서 결국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하지만 여전히 실낱같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와 전승, 위경 속에서 진리를 구도하는 자세로 기원 1세기 민중들이 기대하던 ‘왕국’을 재조명한 엠마뉘엘 카레르의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