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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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 독서모임이 이번 토요일로 다가왔다. 이달의 책인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는 진작에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진도가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빌리는 순간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결국 다시 읽게 됐다. 분량이 매우 적어서 금세 읽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생길이 훤하게 열렸다.

 

우선 소설을 이끌어 가는 내레이터가 수시로 바뀐다. 첫 번째 화자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가 복수를 하는 스토리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후안이 찾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 꼬말라의 메디나 루아에서 만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죽은 사람들 뿐이다. 그러다 그도 소설의 어디선가 죽음을 맞이하고, 화자가 갑자기 후안에서 그의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이럴 수가! 부랴부랴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친절하게도 타임라인이 다 나와 있을 정도다. 놀랍군, 남아메리카 주술적 리얼리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그런 순간이었다. 아니 후안이 처음에 꼬말라에 왔을 때부터 이미 죽었다는 가설도 상당히 그럴 싸하게 들렸다.

 

위대하신 돈 뻬드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는 미겔의 죽음도 낯설지 않다. 메디나 루아는 이미 유령도시가 된 지 오래다. 돈 뻬드로는 변호사 불리는 마름 같은 대리인들을 이용해서 수탈을 계속한다. 유일하게 사랑한 수사나 산 후안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빠뜨론은 자신의 땅이 불모의 야노(평원)로 변해가는 걸 그저 바랄 볼 따름이다.

 

돈 뻬드로(뻬드로 빠라모)는 아버지 루까스의 뒤를 이어 메히코 농촌 지역 특히 토지 기반인 아시엔다를 중심으로 농민을 수탈하는 대지주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제3세계 국가에서 토지는 자본의 집적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지 않은가. 토지를 바탕으로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을 팔아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돈 뻬드로가 판초 비야의 혁명군을 자처하는 비적들과 통 크게 흥정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 <코코>에서 나오듯, 망자들과 삶을 영위하는 메히코 사람들의 풍속이 우리와 너무 달라 좀 놀랐다. 우리는 망자들을 산 사람들의 세계와 분리하기 위해 으슥한 곳에 공동묘지, 지금은 납골당을 만들지 않은가. 망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기괴한 장면 때문에 우리는 주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스타일을 떠올리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등장하는 종교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끝이 안 보이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메히코 신자들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억울하게 죽은 형제의 복수와 신의 용서라는 종교적 신념 가운데 갈등하는데 렌떼리아 신부를 보라. 혁명으로 대변되는 민중의 분노가 끓어올랐을 때, 신부는 주저하지 않고 총을 잡고 나서지 않았던가. 입으로만 신의 사랑을 노래하는 사제가 아니라, 신이 위로하라고 명령한 민중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무장한 예언자로 탈바꿈하는 모습이 염치도 없이 무자격 ‘종교사업자’로 변신한 어느 나라의 종교인들에 대한 힐난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의 상상이려나.

 

마지막으로 후안 룰포가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혁명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한 가장 빠르면서도 항구적인 방법은 바로 정치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민중은 결국 폭력을 동원하게 된다. 기득권층이 아무런 저항 없이 그들의 권력을 내준 적이 있었던가. 꼬말라의 대표적 기득권자 돈 뻬드로는 혁명이 그들의 삶에 미칠 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혁명가입네 하는 비적들이 나타나 자금을 요청했을 때, 배포 큰 남자 돈 뻬드로는 그들이 원하는 금액의 두 배를 부른다. 그렇지 거래는 그렇게 하는 거지. 중국 역사상 가장 수완 좋은 장사치 여불위가 조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하고 있던 별 볼 일 없는 자초를 진나라의 왕위에 올린 케이스를 보라.

 

혁명이 모든 질서를 뒤엎을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구질서를 몰아내면 권력을 쟁취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돈 뻬드로는 미래권력이 될 지도 모르는 혁명군들과 척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 루까스의 부와 권력을 물려 받았지만, 노회한 빠뜨론의 처신은 나무랄 데가 없다.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는 내가 느끼기에 확실히 매력적이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주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장면은 마음에 들었지만, 다수의 화자가 등장해서 현실과 과거를 분주하게 오가는 장면에서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잘 모르겠는 건 독서모임에 가서 물어 봐야지.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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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7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궁은 여전히 건재하군요. 달궁이라는 단어만 봐도 옛날 생각이 납니다.. ㅠㅠ 모임에 자주 오시는 삽하나님, 헤르메스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달궁이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어서 기분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18-04-17 22:02   좋아요 0 | URL
그러믄요 두 분 모두 열심으로 나오고
계십니다...

예전에 대구에서 설로 뛰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 땐 그랬지~입니다.

AgalmA 2018-04-18 0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서 이런 머리 복잡한 책도 읽으십니까ㅎㄱㅎ... 이 책 읽다가 몇 번을 잠들었는지 몰라요ㅋ 나중에 뭐야, 죽은 사람들이었어! 뒤통수 맞고 멍....
<불타는 평원>이 더 읽기 쉬운데 도전욕들이 대단하신 듯^^

레삭매냐 2018-04-18 09:00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우습게 보았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지금 바로 <불타는 평원>을 읽고 있는데 말쌈대로
<뻬드로 빠라모>보다 훨씬 쉽네요.
 
여기보다 어딘가 뚝딱뚝딱 누리책 12
거스 고든 글.그림, 김서정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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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공작소의 책들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전에는 동화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꼬맹이가 생기다 보니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책고래의 책들도 애정해 마지 않는다. 오디오북은 정말 멋지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고 만난 세 번째 그림책공작소의 책인데 드디어 리뷰도 쓰게 되었다. 호주에 거주하는 작가 거스 고든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조지다. 다른 친구들은 세상구경에 여념이 없는데, 조지는 만날 바쁘다. 맛난 사과파이랑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들을 구워 자신의 집을 찾는 친구들에게 대접하느라 부산하다. 그런 조지에게 친구들은 같이 여행을 가자고 졸라 보지만 조지는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만 된다면 당장에라도 여행길에 나설 텐데, 조지는 왜 그러지 않는 걸까? 베네치아의 운하길을 곤돌라를 타고 달려 보는 것도, 그 휘황찬란한 파리의 야경도 다 마다하는 조지의 속내를 도통 알 수가 없다.

 

겨울이 왔다. 문지방을 닳도록 조지네 집을 드나들던 친구들의 발길을 뜸해질 즈음, 곰돌이 친구 파스칼이 조지를 찾는다. 그리고 조지는 절친 파스칼에게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자신은 날지 못하는 새라고. 다른 친구 새들처럼 날기를 배울 적에 배움에 소홀히 하는 바람에 날지 못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자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의 친구, 파스칼이 가만 있을 수가 없지. 당장 조지에게 나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다. 그런데 파스칼은 그다지 나는 법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친구들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직접 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하늘을 나는 것에 도전하면 되는 게 아닌가. 기구를 만들어서 세계 곳곳을 날아가 보는 거야. 이번에도 파스칼의 서투른 실력이 들통나지만 친구들은 우여곡절 끝에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된다.

 

우리 인간은 현실에 만족할 수가 없는 존재다. 내 주변의 일상과 다른 것을 보기 위해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도. 난 뭐 그런 도전정신이 부족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지. 난 주로 책을 통해 배우게 되지만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니까. 동화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친구들에게 맛난 음식과 그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조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도 조지가 구운 사과파이를 한 번 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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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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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조국 프랑스를 위해 싸운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 외교관 그리고 문인으로 삶을 마감했던 로맹 가리의 데뷔작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대항해서 싸운 레지스탕스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로맹 가리에 전쟁 중에 집필했다는 소설은 나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자기가 관심이 있는 주제를 다룬 책을 읽을 적에는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유럽의 교육>은 히틀러의 독일군이 전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1942~43년의 폴란드의 어느 숲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열네 살 먹은 얀 트바르도브스키(야네크)는 나치 독일군의 야만적인 침탈행위에 분연히 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아버지가 몰래 만들어준 은신처에서 인디언 전사 와인투의 글을 읽으며 빨치산(partisan)의 꿈을 꾼다.

 

전격전(blitzkrieg)으로 독일에 참담한 패배를 당한 폴란드인들은 숲을 거점으로 삼아 독일점령군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야네크는 장렬하게 산화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브라우닝 권총을 가지고, 야블론스키가 이끄는 일단의 산사람들무리에 합류한다. 폴란드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볼가강 언저리의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진 영웅적인 저항과 폴란드의 빨치산 나데이다의 신출귀몰하는 신화는 점령군의 폭력에 떠는 폴란드 민중의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언제 독일군의 총탄이 그들의 가슴을 관통할지 모르는 극악한 상황 속에서, 어린 야네크는 야블론스키의 심부름을 하면서 듣게 된 음악, 특히 프레데릭 쇼팽을 사랑하게 된다. 쇼팽의 조국이 폴란드라는 사실에서, 작가가 쇼팽의 피아노곡 폴로네즈를 고른 것이리라. 로맹 가리는 전쟁이라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을 노래한다.

 

<유럽의 교육>에는 야네크가 빨치산 생활 도중에 만나게 된 대학생 출신의 아담 도브란스키가 애지중지하는 공책에는 소설 속의 소설이 등장한다. 나치의 천년제국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기에, 빨치산 나데이다의 신화만큼이나 전 유럽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을 불어 넣어주는 도브란스키의 메시지는 허무맹랑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로맹 가리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들려주는 관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폴란드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독일에 협력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증오하며 폐병으로 죽어가는 빨치산 아들,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장군 아들을 둔 늙은 제화공 출신 하사관 아버지, 빨치산과 독일군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가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점령군 경찰에게 빼앗겨 버린 농부, 30살이나 어린 아내를 둔 변호사 선생의 자살 트럭 공격, 사랑하는 두 딸을 잃어 미쳐버린 사나이의 절규 등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서게 된 사연들이 소개된다. 그네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이 처음에 나왔을 때 원제가 <분노의 숲>이었는지 바로 깨달았다.

 

빨치산 나데이다는 폴란드 민중 내부로부터의 신화다. 그는 절대로 독일군에게 잡히지 않으면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시간과 공간에서 빨치산 전사들을 위로한다. 그는 저항군의 신부일 수도, 노벨화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일 수도, 전직 레슬링 선수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전설적인 인물 나데이다가 될 수 있다는 변화무쌍한 신화는 독일군의 선전과 폭력에 대항하는 민중의 분노와 힘을 이끌어낸다. 나데이다가 내부로부터의 저항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스탈린그라드는 외부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상징이다. 훗날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것으로 간주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얼마나 레지스탕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는지 로맹 가리는 생생한 기록으로 독자에게 환기시켜준다.

 

어쨌든 평화로운 세상이었다면 유럽의 정상적인 문명의 세례를 받았을 야네크와 조시아는 전쟁의 포화 가운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들에게 당장 허기와 추위를 피하고, 살아남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다. 생존이 최우선 목표인 다른 아이들에게 유대인 분더킨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기 위해 자신의 생명 같은 감자 자루를 내던지는 야네크는 진귀할 존재일 따름이다. 로맹 가리는 전쟁을 통해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야네크의 뒤를 쫓는다. 야네크는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고, 또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 처절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작가가 말하는 선한 유럽의 교육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작가의 데뷔작이 이렇게 경이적인 혜안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과연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만한 작가의 필력이 데뷔작에서부터 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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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4-14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군요!

레삭매냐 2018-04-15 23:31   좋아요 0 | URL
올해 숙제 같은 로맹 가리의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잘 될 지 모르겠습니다.

유부만두 2018-04-16 08:12   좋아요 1 | URL
전 ‘새벽의 약속’ 읽고 울었어요;;;;;

레삭매냐 2018-04-16 09:16   좋아요 0 | URL
완독이 자꾸만 실패하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제게는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새벽의 약속>
입니다.

로맹 가리 이야기하다가 난 언제나 이 책을 읽게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작년에 세번째로 읽기 시작했는데 못 다 읽었네요...
 
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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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대작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이물감이 느껴졌다.10년 전,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첫 번째 장편을 발표한 저자는 조선에서 출발해서 일본에 거주하는 4대에 걸친 재일한국인 가족에 대한 서사시로 다시 한 번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출판사가 책의 표지에 떡하니 박아 놓은 대로 과연 ‘세계적 작가’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산 영도에서 출발한 김순자 가족의 이야기는 신산하기 짝이 없다. 사실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에게 먹고사니즘 만큼 중요한 게 없었으리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순자의 아버지 김훈의 삶은 조국을 일본에게 빼앗긴 식민지 백성의 심정을 절절하게 대변하는 문학적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순자의 어머니는 존경하는 남편을 잃고, 어린 순자를 억척스럽게 키워나간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하숙집 주인 노릇을 하며 근근하게 먹고사니즘은 해결해 나간다.

 

외동딸 순자가 그런 어미의 기대대로 잘 자라났으면 좋으련만, 시장통에서 힘깨나 쓰는 부유한 건달 고한수를 만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유부남이자 오사카에 본부인과 아이를 세 명이나 데리고 있는 한수는 자신의 딸같은 순자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장애 유전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딸이 과연 결혼할 수나 있을까 싶던 차에 순자의 어머니는 기가 막히는 상황을 처하게 된다. 시집도 안간 딸이 임신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언제나 구원의 손길은 있는 법, 평양 출신 멋쟁이 백이삭 목사가 나서면서 순자 모녀의 문제는 일시에 해결된다. 물론 그전에 결핵병으로 죽어가던 이삭 목사를 순자의 어머니가 구해 주면서 백목사에게는 마음의 빚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를 가진 순자와 결혼해서 형 요셉이 자리를 잡은 오사카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참, 그의 맏형 사무엘은 삼일운동 당시 죽음을 당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어째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와 무염시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가. 조선땅에서 한국인들이 당하는 고통의 역사는 유대인이 이집트땅에서 당한 환난과 그 궤도를 같이 하지 않는가.

 

물론 순자와 이삭의 일본행이 구원의 약속은 아니었다. 오사카 이카이노에 정착한 그들에게 행복의 순간들은 잠깐 뿐이었다. 만주침략으로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 뛰어든다. 백씨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요셉은 다른 가족들을 건사할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김치 아줌마’가 되고 싶어하는, 아니 시장에 나가 직접 돈을 벌고 싶어하는 양반집 규수 출신 아내 경희를 억압하는 구시대 남편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 현지에서 차별과 경제적 무능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노아가 태어나고, 이삭이 신사참배 문제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순간도 등장한다. 기이한 점은 이삭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의 소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순자 가족의 일본 고군분투기의 뒷배경에는 노아의 진짜 아버지 한수의 조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수는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대리인 김창호를 투입해서 순자 가족을 구원한다. 일찍이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당차게 일본행을 선택했지만, 어쩌면 그것조차 한수가 모두 계획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지면서, 미군의 공습이 격화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한 한수의 조언대로 순자 가족들은 한수가 준비한 시골 농장으로 이동한다. 요셉은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나가사키로 향했다가 원폭 피해자가 된다.

 

파친코의 1부 <고향>에서 식민지 조국에서 일본행을 선택한 순자 가족의 고난이 그려진다면 2부 <조국>에서는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인 노아(Noah)와 모자수(Moses)가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확실히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문득 한국어 번역에서는 구수하고 현란하게 전개되는 순자 아주머니의 부산 사투리가 과연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 지 궁금해졌다.

 

문제적 인간 요셉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식민지 조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시민 스타일의 민중에 대한 스케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형 사무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할 생각도 없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그는 굽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에 협력하거나 부역한 것도 아니다.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오로지 살기 위해 일본인 고용주 밑에서 일한 것이 부역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아내는 집에서 가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가치가 붕괴되고 전도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그것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점에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캐릭터의 입체화, 내러티브의 전개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고, 순자 가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유발은 탁월했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읽는다면 과연 부산 영도에서의 생활과 오사카에서 순자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작가가 묘사한 대로였는지 같은 디테일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재미작가 출신이라는 점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이물감이 독서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참 글은 잘 썼는데 결핍과 괴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저자가 소설 <파친코>에서 추구하는 문학적 핍진성이 재일한국인들에게만 벌어질 수 있는 유니크한 설정에서 벗어나, 글로벌리즘에 매몰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독자로서 파친코 1부 <고향>은 충분히 흥미진진했다. 이제 다음 세대의 주자들인 노아와 모자수(그의 이름이 모세라는 점을 알기 전까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이어받을 2부 <조국>에서 그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인스타에서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데, 참 표지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꼭 이래야만 했는가.

[뱀다리2] 작가로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재니스 Y. K. 리의 두 번째 소설 <국외거주자>의 출간이 궁금해졌다. 왠지 나는 재니스 Y. K. 리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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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2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표지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인스타를 안 해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18-04-12 13:19   좋아요 0 | URL
표지가 책을 살리지 못하고 구리다는
평입니다.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좀 그래요.
 
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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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이것은 프랑스 출신 르포 소설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엠마뉘엘 카레르의 벽돌 사이즈만한 기독교 르포 소설 <왕국>에 대한 이야기다. 기성작가로 활동하던 카레르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흔히 겪는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교조주의적 가톨릭 신자로 변신하게 된다. 무신론자에서 영성체를 하고 매일 같이 미사에 참석하게 되는 열혈 신자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에 서술이 소설의 초반 155쪽(!)을 집어 삼킨다. 무신론적인 입장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전개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고나 해야 할까. 내가 기대한 것은 기원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같은 헬레니즘 세계를 누비며 기독교 교리와 신앙을 전파한 바오로와 루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신앙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삼위일체, 무염시태, 영성체 의식(성찬식) 그리고 예수의 부활(교황 무오류설은 당연히 제외하자) 같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어쨌든 신앙과 불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저자 카레르는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조건 없이 투항해서 슬럼프를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삽입된 아이들의 보모였던 미국 출신 제이미에 대한 에피소드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속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회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장면이야말로 불완전한 피조물로서의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끔찍한 것을 쓰는 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는 법이라는 자조적인 패러프레이즈에 담긴 블랙유머에서 작가의 스타일을 읽을 수도 있었다. 고백하건데 카레르와는 첫만남이라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으로 도전에 나섰다.

 

고진감래라고, 드디어 바오로와 루카가 등장하는 장면과 만나게 됐다. 자, 이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로마 제국이 번성하던 가운데, 그리스도 사후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요즘 말로 하면 힙한 종교, 초기 기독교는 기존의 엄격한 유대교에서 요구하는 개종의 조건(할례) 대신 세례라는 비교적 간단한 개종 방식으로 민간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걸출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본인 역시 개종한) 바오로가 등장한다. 소아시아의 항구도시 트로아스(고대 트로이)에서 바오로와 만난 이방인(그리스인) 의사이자 프로셀리테스(개종자) 마케도니아 사람 루카는 소아시아 선교 대신 서방으로 목적지를 이동하기에 이른다. 루카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카레르가 고른 르포 소설의 원전에 해당한다. 복음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카레르 작가는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장장 20권에 달하는 자신의 신앙 노트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성서 연구와 다양한 주석을 바탕으로 <왕국>을 재창조했다는 점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신자/불가지론자로 돌아가게 된 자신의 신앙여정에 대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윤리적 혁명가이자 직접 노동을 하며 선교여행에 나선 러바이(rabbi) 바오로는 필리피와 테살로니카 그리고 베로이아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수차례 겪게 된다.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삼았던 로마 관리들은 바오로의 선교활동으로 빚어진 종교 갈등에 불개입의 원칙을 분명하게 한다. 초기 기독교 시절, 모든 종교인들은 사기업으로 인정받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기존 (종교) 고객을 빼앗아 가려는 유대교의 신흥 분파 ‘크리스투스의 형제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을 강조하는 크리스투스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모함이 난무했지만, 공통의 신경(信經:creed)으로 무장한 그들은 훗날 대대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박해로도 제압할 수가 없었다. 카레르 작가는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신들을 고문하고 박해하던 로마인 장교가 경험하게 되는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시도한다. 당시 유행하던 스토아철학의 범신론과 유물론적 아이디어들은 기독교 정신과 충돌하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금욕주의 정신과 인류애에 대한 사고들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소설 <왕국>이 진행되는 동안, 카레르는 신앙인에서 다시 불가지론자로 전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오로와 루카의 행적을 쫓는 여정이 식은 건 아니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개종자에게도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기존 교회의 트로이카(베드로, 요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와 일대 결전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상 기독교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지도자 바오로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신흥 종교가 아닌 세계종교로서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유대인은 유대인들의 규례를 따르는 대신, 신참 프로셀리테스들에게는 할례를 면한다는 절충안에 도달한다. 또한 소아시아 선교 중에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코셔(kosher) 음식에 대한 섭취 또한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당대의 유대인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저자가 소설에서 계속해서 주입하듯이, 현재의 시각이 아닌 당대의 시각으로 벌어진 사건을 보아야 한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대표적 보수주의자 야고보에게 개종자도 당연히 그들의 규례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예루살렘의 트로이카들은 크리스투스 살아 생전에 그를 따른 정통 사도들이 아니었던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크리스투스를 만났다고 주장하며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기독교 원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재정 지원까지 하겠다며 나선 바오로를 그들이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은 게 뻔하지 않은가. 저자 카레르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 가운데 백군 지도자가 등장해서 적군원수였던 스탈린에게 투항할테니 전권을 달라는 비유로 바오로와 트로이카의 구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도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바오로의 선교가 계속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이들이 바오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며 역습을 가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교리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라고나 할까. 내부의 적이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파들이었다면 외부의 적들로는 정통 유대교의 규례를 주창하는 바리사이인들과 사두가이 귀족들도 뽑을 수 있겠다. 결국 바오로는 그들의 고소에 따라 카이사리아의 로마 총독 거주지에서 2년간 유형생활을 겪고 로마로 압송된다.

 

소설 <왕국>에서 저자 카레르가 다루는 주제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크리스투스의 부활, 종말과 구속사, 칭의론 같은 이슈 같이 바오로가 천착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해서 프로셀리테스 루카가 관심을 보인 기독교인으로서 현실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은 되새겨 볼만하다. 사망 권세를 이겨낸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교통과 통신이 현대처럼 발달하지 않은 원시 기독교시절에 갈릴래아 출신의 크리스투스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이적이야말로 최고의 선교를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지배계급이 훗날 그 유익을 알게 되는 현세에 충실하라는 지상명령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현세의 고난이 내세의 지복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설정도 기득권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명제가 아니었던가.

 

한편 카레르는 기독교 신약의 정전들인 3개의 공관복음서와 그 결을 달리 하는 요한복음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가 소설 <왕국>의 집필에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고 했던가. 주를 이루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희대가 역사가 루카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서>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르포 소설가답게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술된 디테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복음서 중에 가장 늦게 출현한 <요한복음>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인 기독교도 혹은 그리스화된 교육받은 장로 요한이 대필했을 거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에서 출발한 사도들이 과연 그렇게 유려한 문장들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싶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원 66년부터 8년간 지속된 유대전쟁 그리고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편에 붙어 변절한 유대귀족 요세푸스 플라비우스가 남긴 당대의 기록 <유대전쟁사>(서기 79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착취에만 관심이 있었던 역대 로마 총독들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은 결국 성전 파괴와 유대인의 파멸(디아스포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트로이카로 대표되는 유대인 기독교를 대신해서, 그동안 주류에서 밀려나 니콜라오스파 혹은 발람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비주류의 설움을 겪던 바오로의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비롯한 세계를 아우르는 종교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뛰어난 역사가 루카가 등장하게 되는 장면에 저자 카레르는 방점을 찍는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에서는 너무 방대하면서도 신학적으로 논란거리가 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이 짧은 리뷰에 담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지식이 없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도 열렬한 신앙인에서 결국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하지만 여전히 실낱같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와 전승, 위경 속에서 진리를 구도하는 자세로 기원 1세기 민중들이 기대하던 ‘왕국’을 재조명한 엠마뉘엘 카레르의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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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1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흥미롭네요.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회심-불신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네요.
근데, 700페이지에서 좀 ㅠㅠ

레삭메냐님 깔끔한 엑기스 리뷰로 만족해야 할까요~~

레삭매냐 2018-04-11 21:47   좋아요 0 | URL
카레르 작가가 구교도의 나라인 프랑스 출신
이라 그런지 대모 자클린 여사의 영향 등으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귀의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말씀 대로, 분량이 문제긴 합니다.

아울러
흥미진진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그리고
뛰어난 역사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을 저술한 누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조금은 장황한 저자의 오락가락 신앙 분투기
라는 진입장벽이 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신앙에 대해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