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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밴디 리 엮음, 정지인.이은진 옮김 / 심심 / 2018년 2월
평점 :

현재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의 분위기가 물씬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정전협상을 평화협상으로 바꾸어 영구적인 평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방국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원하는 어느 이웃국가인 일본은 현재 패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중이다.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덕담은커녕 내정간섭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지도자는 정말 밥맛이다. 또 강력한 우방국인 미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첨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또 무슨 미국스러운 일인가 싶었는데 그가 쟁쟁한 공화당 후보들을 제치고 공화당 대선후보의 자리에 올라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하게 되자 이러다 진짜 대통령이 되는 거 아냐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503호나 716호처럼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가 대통령이 될 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식인 계층에서도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자 27명의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27편의 에세이를 펴내기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그런 결과의 집대성이다.
한국계 출신 밴디 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명백해 보이는 당선인의 정신적 불안정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권력자가 명백하게 정신적 장애징후를 보여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할 때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연예인과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경조증을 언급해서 의학회에서 제명되었다. 아마 책을 내면서 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았겠지만 결론은 도널드 트럼프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이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 문제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아울러 공공의 정신 건강의 증진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정가를 강타한 트럼프의 섹스 스캔들은 그가 가진 나르시스트로서의 자기성애적인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활발한 SNS 활동을 하면서도 왜 섹스 스캔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에 의하면 그는 극단적 쾌락주의자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가짜 뉴스들을 칭송하고, 불리한 진짜 뉴스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라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에 우리는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예전에 빌 클린턴이 전 미국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이 그의 섹스 스캔들이 아니라,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현대판 양치기 아저씨, 나르시스트의 경우에는 시민들이 그의 거짓말에 면역이 되어 버린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강화되는 편집증, 판단력 저하 그리고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신뢰의 결여로 트럼프를 대통령을 만든 이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에게 그의 변덕이 두려운 사실은 취임 4개월 동안 러시아 스캔들로 비화된 내부의 공격을 외부로 향하게 하기 위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여름, 한창 북한을 상대로 한 전쟁 위기설에 우리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생각해 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또다른 곳에서는 그의 소시오패시적인 성격에 대해 심층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다시 한 번 골드워터 규칙을 적용해서, 저술에 참가한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상대로 직접적인 진단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책에 소개된 진단들은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가정 혹은 가설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북한을 상대로 냉온탕을 오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십대 이래 계속된 반복된 거짓말, 자신이 한 말조차 지키지 않는 일관된 무책임성과 충동성 같은 케이스가 위에서 언급된 가설을 지지해 준다.
미국의 국내 문제를 돌아보면,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하며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포를 들으면서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왜 그동안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창조하면서 기존의 브레턴우즈 질서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래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팍스 아메리카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경찰국가로서의 위상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자신이다. 주변의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식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다시 한 번 자극해서, 올해 가을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자신과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진 모르겠지만 추락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위신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자신에게 불리하게 조성된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기존의 잘못된 정책과 거짓말들을 반복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이지 않는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예스맨으로 내각과 백악관을 채우고, 권력 남용 그리고 성공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장면은 어쩌면 그렇게 지금은 감옥에 가 계신 716호와 똑같은지 모르겠다. 어쩌면 물건너 이웃나라 대통령에 대한 글을 읽어볼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케이스를 조명해 보는 게 훨씬 나은 게 아닐까. 그들이 천조국으로 떠받드는 명백한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